하루2020. 1. 9. 11:46

 

2020년이라는 날짜는 참 어색했다.
2018, 2019 라는 숫자들도 어색하긴 매한가지였지만
2020이라니..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이 숫자는 어린시절 공상과학만화에나 나오던 숫자같이 적응이 쉽지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은 몇 년도이던 간에 똑같은 일이다.
기왕이면 성실하고 다정하게, 새로운 기운과 밝은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새해를 맞으며 작년을 돌아보고 올해 좀 더 변화하고 싶은 부분들의 계획을 세워보고 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매순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아이들도 자라고 나도 자라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가속화되고 있고, 아이들과 우리들이 맞을 미래도 어떤 면에서는 어둡게, 어떤 면에서는 희망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작년 말에 아이들이 독감을 앓으면서 아이들을 좀더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밥짓고 반찬만들어 먹고 있지만 좀더 신경써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챙겨먹여서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라도록 보살펴야겠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식단을 짜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씩 미리 식단을 짜서 음식을 하고 중간중간 장을 보면서 메뉴를 더하기도 한다. 대충 급하게 만들어먹는 한끼를 줄이고, 마음먹고 준비한 다양한 채소 반찬을 먹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변화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아무 바탕도 없는 상황에서 짠! 하고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같다.
조금씩 어떤 경향성이 생기고 약간이라도 쌓인 바탕위에서 그 방향으로 좀더 확고하게 강화하는 변화가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올해는 작년부터 조금씩 늘려온 책읽기를 더 다양하게, 깊게 확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운동, 여행, 집 정리, 그림그리기도 꾸준히 방향성을 가지고 실행력을 키워나가면 좋겠다.
전혀 바탕이 없는 어떤 것이 있다면 올해 조금씩 그 바탕을 쌓아가는 것도 필요하겠지.

 

작년 초에 외할머니외할아버지와 정동진에 놀러갔다가 시간박물관에서 아이들이 썼던 엽서가
1년이 지나 며칠전 우리집에 도착했다.
1년 뒤의 나에게 쓴 편지들.
시간을 건너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 오늘의 나에게 들려오는 과거의 내 목소리.
삶에는 이런 장치들이 참 필요한 것 같다.
오늘의 기록, 이야기를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마주할 필요가 있다. 지난날의 일기 다시 읽어보기, 수첩과 공책들 훑어보기,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예전 동영상과 사진 다시 보기..
올해는 어떤 돌아볼 장면들과 이야기들, 기억들을 함께 만들어가게 될까.
새해를 시작하며 새로운 날들에 사랑과 건강한 변화와 마음의 여유가 풍성하기를 바래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올 가을은 내가 퍽 바쁘게 보냈나보다.
그림을 많이 그리지 못했다.
그림 수첩을 늘 들고다니기만 하고
펴들고 앉아 가만히 그림 그려볼 시간이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겠지..





여름 끝무렵에는 선선한 저녁에 아파트 벤취에 앉아 있을 때가 좀 있었는데
그 때 정자와 정원 풍경을 그리다 말았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아버지가 고향집 마당 벤취에 앉아 마을 풍경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는 것처럼
요맘때는 나도 아파트 정원이 꼭 내 정원인 것처럼
한적한 정자와 오솔길, 나무들을 바라보며 앉아있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아파트에는 공작단풍이라는 단풍나무가 조경으로 많이 식재되어 있다.
지금 이 나무는 빨갛다못해 불타버린 것 처럼 검붉은 색깔로 단풍이 들어있지만
이 그림을 그렸던 초가을에는 가지끝에 달린 단풍나무 씨앗들만 빨갛고 잎은 온통 초록색이었다.







가을동안 혼자 조용히 그림그리는 시간은 못 가졌지만
화요일마다 캘리그라피 수업에서 수채화물감으로 그림그리는 것을 선생님께 조금씩 배웠다.
작은 그림을, 색이 자연스럽기를 바라며 그리는 것이 참 어렵다ㅜㅜ

+

추석에 큰 이모부님이 돌아가셨다.
명절 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통화를 하며 그 소식을 듣는데 눈물이 흘렀다.
오랫동안 못 뵈었던 큰 이모부.
젊은 시절 참 호탕하셨고 유쾌한 어른이셨다.
나를 보면 늘 반가워해주시고 예뻐해주셨어서 자주 뵙지 못해도 늘 마음에 감사함과 따뜻한 정이 있었다.

이모부님은 우리 아버지에게 아주 친한 한동네 형님이었다.
10월에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지께 여쭤보니
“그 이가 경포학교 18기, 내가 22기지” 하고 국민학교 졸업 기수를 얘기해주셨다.
나는 그 학교의 56기 졸업생이다.

큰이모부는 청년이 되자 고향을 떠나셨다.
멀리 대구, 아니 삼랑진까지 가서 일하실 때 큰이모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
그리고 큰 처제에게 듬직한 고향 후배를 소개해주셨는데
그 분이 우리 아빠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과 참 큰 인연이 있으신 분이다.

나고자란 고향에서 평생을 살고계신 아빠와 달리
큰이모부는 20대 이후로는 계속 타향에 사셨다.
대구에 오래 사셨고, 자녀들이 장성한 뒤로는 서울로 터전을 옮겨 언니오빠들의 대학과 결혼후 생활을 모두 함께 하셨다.

연수원 사업을 오래 하셨고, 호탕한 성품이셨고, 말씀을 재미있게 잘 하셨고, 사촌 언니들과 오빠와 그 손주들에게, 그리고 우리 조카들에게도 참 다정하셨던 분으로 나는 이모부를 기억한다.
무엇보다 만나면 나를 늘 아껴주셨고, 크게 되리라 잘 되리라 응원하는 말씀을 해주셨었다.

이모부님의 응원대로 큰 인물이 되지는 못했지만
지금 소박하게나마 내 가정을 꾸리고 잘 지내고 있는 데에는 이모부님이 보내주신 사랑과 축복도 늘 함께 했을 것이다.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
결혼하고는 찾아뵙지도 못한 것이, 늘 감사했다는 말씀도 못 드린 것이..

이 겨울은 큰이모부님의 빈 자리가 가족들 모두의 마음에 시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모부님을 기억할 것이다.
이모부님을 생각하면 젊으신 날의 웃는 얼굴, 그 억양과 목소리, 따뜻한 말씀들이 늘 마음속에 떠오를 것이다.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편히 쉬세요, 이모부.





Posted by 연신내새댁




주말에 친정에 가서 김장을 함께 하고 왔다.
전날 엄마아빠가 찬바람속에 밭에서 배추뽑아 절여 놓느라 고생하셨고
아침에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오빠와 새언니가 배추들을 헹궈놓느라 또 고생하셔서
나는 그저 김치통 들고 가서
양념한 속만 잘 발라 김장김치를 여러통 든든하게 담가 왔다.





이제는 어엿한 김장김치 마스터가 되신 전&이 프로 부부시다 ^^
친정 가까이 사는 언니도 함께 와서 우리들 김장을 도와주고, 저녁에는 퇴근하고오신 형부까지 온가족이 모여서 생굴넣은 겉절이 김치에 돼지고기 수육 삶아서 맛있고 든든한 저녁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컸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김장하고 이런저런 일로 바쁜 동안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친정집의 뒷산과 모래밭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자전거타고, 보드게임하고, 연극 준비해서 저녁엔 공연도 한편 무대에 올렸다. ^^
강릉 할아버지댁에 모이면 으레 그렇게 노는 아이들이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제일 큰 조카는 모래성도 엄청 멋지게 잘 만들고, 동생들을 데리고 연극 공연도 잘 만들어내는 멋진 친구다.
아이들 자라는 것은 볼 때 마다 신기하다.




김장이 한창이던 토욜 오후엔 할아버지와 연수아빠가 아이들데리고 경포호수에 가서 6인용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모두 낑낑 엄청 힘들었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지나고나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할아버지와 감을 따본 추억과 함께 말이다.
작고 푸른 주머니가 달린 감 장대 안으로 감을 쏙 집어넣은후에 탁 당겨서 따는 감장대의 손맛은 그야말로 여러번 해봐야 손에 익는 감각인데
나도 어릴때 그렇게 감을 땄던 기억이 참 생생하고 좋다.
손에 익은 느낌은 더 오래 기억된다. 내 손으로 해보는 것이 그래서 참 중요하다. 손으로 해보고 발로 뛰어다니며 직접 밟아본 기억.
논두렁 밭두렁 뒷산 오솔길을 밟을 때의 감촉 같은 기억들 말이다.
그런 것은 오래오래 남아서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예쁘게 깍은 곶감이 올망졸망 달려있는 아버지의 차고에는
아버지가 평생 써오신 손에 익은 도구들이 늘 제 자리에 잘 정돈되어 걸려있다.
봄이면 고운 흙이 깔린 모판에 예쁜 볍씨를 자라락 뿌려주던 기계와
논에 모를 심어주던 이앙기, 호미들, 줄자들, 밀집모자,
내년에 씨앗하려고 말려둔 옥수수까지
고향집의 창고를 보면 언제나 신이 나고 호기심이 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보물창고 같은 곳.






고향집에 가면 언제나 힘이 난다.
밥도 많이 먹게 되고 목소리도 더 활기차진다.
엄마아빠 옆에 가니까 나도 아이로 돌아가서 그런가. ^^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도 그럴까?
자기들 집에서도 까불고 놀겠지만 강릉 할아버지댁에 오면 더 신이 나고 목소리도 높아지고 펄쩍펄쩍 방방 뛰게 될까?
함께 모이니 더 그렇겠지.
반가운 언니오빠 동생들과 북적북적 어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넉넉한 품에서 어리광도 부리고
뛰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넓은 마당과 언덕을 쏘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 곁을 떠나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면 또 어려운 일들이, 어른과 부모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하는 삶의 무게들이 저마다 만만치 않게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숙제와 학원과 학교와 또 제나름 힘든 과제들이 다가오겠지만
강릉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모두에게 어깨 좀 펴고 한번 더 씩 웃으며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김장김치 속에, 배추와 무와 홍시 안에 듬뿍 담아 보내신 것은
고향의 가을이고, 사랑이다.

가족들 곁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즐겁게 일하고 웃고 이야기하고 돌아오니
추운 겨울이 와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든든히 채워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충전하고 올수 있도록 준비하고 애쓴 엄마는 몸살이나 나지않으셨는지,
대식구 식사와 김장 뒷설거지 도맡아하며 고생한 새언니도 많이 힘드시지 않은지..
누군가의 희생 위에 내 안온함이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죄송하게 돌아보는 아침이다.

모두들 맛있는 김치 많이 먹고 아프지말고 겨울 잘 났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9. 11. 5. 12:36

어릴때 우리집에는 어린이책 출판사인 ‘계몽사’의 판촉 사원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찾아오시곤 했다.
키가 크고 따뜻한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되는 나이가 지긋하셨던 계몽사 아저씨의 자전거 뒷자리에는
계몽사에서 나온 어린이 전집 종류를 소개하는 팜플렛이 꽂혀 있었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가 잠시 짬을 내 뜨락에 앉거나 서서 아저씨가 팜플렛을 펼치며 소개하는 전집 설명을 들으시는 동안
나는 그 주위를 괜히 기웃거려보곤 했다.

책이 귀한 시골에서 우리집은 책이 꽤 많은 집이었다.
범우사르비아문고의 어린이세계명작은 60권 정도되는 작은 문고판 책이었는데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내 유년기의 학습과 정서는 그때 우리집 책장에 꽃혀있던 책들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위인전들, <금오신화>, <구운몽> 같은 한국고전들도 전집으로 읽었고
좀 더 큰 뒤에는 김동인, 현진건, 김유정 같은 현대 소설가들의 단편 소설 전집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테스’처럼 고전 명화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아놓은 전집도 읽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값은 만만치 않다.
다 잘 읽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선뜻 책을 사실 때에는
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주리라는 믿음이 우리 부모님께 있으셨겠지.

그런 부모님 덕분에 나의 청소년기의 정신세계는 참 풍요로웠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자연속에서 보낸 유년기와 함께 좋은 책이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낸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릴 때는 좋은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했다.
뒤로 갈수록 많이 못 읽어줘서 아쉽지만 학교에 들어간 큰 애와 둘째는 다행히 자기들이 책을 좋아해서 책을 열심히 본다.
그런데 학습만화 종류를 주로 많이 읽는다.
만화는 책보다 훨씬 읽기가 쉽다.
줄글로 된 책은 훨씬 책읽기 훈련이 되어있어야 온전히 책 내용을 이해하고 감동도 느껴가며 읽을 수 있다.

만화책도 나름의 좋은 점이 있지만
좋은 책이 줄 수 있는 고유의 감동과 깊이가 따로 있다.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요즘 아이들 책을 열심히 찾는다.
우리집에는 계몽사 아저씨가 오시지 않으므로
인터넷 서점과 좋은 추천도서들 목록을 구해 나름대로 열심히 찾는다.

요즘은 정보가 워낙 많고, 아이들 책 또한 너무 많기 때문에 그중에서 정말 좋은 책, 필요한 책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고전, 명작 위주로 잘 추천해주시던 계몽사 아저씨의 팜플렛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내가 다녔던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 3학년 때쯤인가 처음으로 도서관이 생겼었다.
서가가 크지않았기에 정말로 또 좋은 책들만 엄선하여 들어올 수 있었던 작은 도서관이었다.
반짝반짝하는 새 책 맨 뒷장에 붙어있던 도서카드를 꺼내 내 이름을 적고 대출하던 기분이 지금도 생각난다.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 시리즈를 읽고, <초원의 집>, <작은 아씨들>, <시튼 동물기>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좋아했던 책을 읽혀줄까 싶어서 다시 구해 읽어보니
좋은 면도 있지만 아쉬운 면들도 이제는 보였다.
그때는 그저 감동과 재미에 푹 빠져 읽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봐도 좋은 책도 많지만, 그동안 읽어온 다른 책들이 있다보니 어릴때와 같은 기준으로 읽게되지는 않는 것이다.

아이들 책, 어른 책.. 여러 책들을 읽고 하면서 내가 책읽기를 참 좋아했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늘 좋아한다고는 생각했지만 따로 좀 정리를 해봐도 좋을만큼
책이라는 친구가 내게는 늘 가까이 있었고
큰 즐거움과 기쁨과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 이야기를 따로 좀 해보려고 한다.
네이버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이름으로 책 이야기하는 블로그를 하나 따로 마련했다.
원래 네이버에도 블로그가 있었는데 안 쓰고 있다가 이번에 책 이야기 블로그로 따로 열어보았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쌓일지는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소중한 내 공간으로 꾸려가보고싶다. 놀러오세요~~^^
(Http://m.blog.naver.com/dlahrrh)

아참참,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래서 어렵게 이번에 아이들을 위해 ‘고전 책’전집을 하나 구입했다.
우리 꼬마들이 재미있게 잘 읽어주길...! ^^
부족한게 많은 엄마지만 자연과 책, 두 가지의 아름다운 세상을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한 엄마지만
열심히 노력중이야.
재미있게 읽고, 건강하게 자라렴. 우리 꼬마들~!





주르륵 꽂힌 전집을 보니 내 어린 시절 언니방에 있던 갈색 책장이 생각난다.
재미있는 전집들로 가득 했던 나의 보물상자가. ^^

Posted by 연신내새댁
밥상2019. 9. 4. 12:02




만들기 참 간단한데 참 맛있다. ^^
어릴때 부터 많이 먹었는데 대학 시절 이후로는 잘 못 먹어봤다.
누가 만들어주질 않아서..ㅜㅜ

대학시절에는 언니가 이 반찬을 만들어 주었었다.
우리가 반포와 이대앞에서 함께 자취를 할 때
언니는 가끔 엄마처럼 부엌에 서서 뚝딱뚝딱 두부조림을 만들어 주었다.
또 양상추 샐러드랑 계란 후라이.
그렇게 하면 냉장고 안에 있는 엄마가 보내준 밑반찬들과 함께 해서
우리의 훌륭한 집밥 한상이 차려지곤 했다.

이 간단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반찬을
나는 애들 키우며 왜 못 해먹었을까?
고춧가루를 무서워해서 그랬겠지..ㅠ
진간장에 고춧가루, 마늘 찧은 것, 참기름 이면 떙인 양념.
우리는 양파깔고 구수하고 짭조롬한 국물도 좀 넉넉히 해서 끓여먹는걸 좋아한다.

강릉 언니가 차려준 밥을 나는 대학 몇 년동안 잘 먹었다.
고마운 언니..
다음에 언니를 만나면 우리가 가끔 잘 사먹었던 신촌 설렁탕처럼 뜨끈하고 맛있는 밥을 내가 사드려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밥상2019. 9. 1. 19:42




엄마는 오이를 무칠때 콩나물을 같이 넣곤 하신다.
친정집에 가면 가끔 이 반찬을 먹는데 어떻게 만드는 건지 궁금했다.
집에 와서 혼자 궁리해보건데 콩나물을 먼저 살짝 삶아서 오이랑 같이 무치신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콩나물국 끓일때 콩나물을 넣고 삶다가 한 젓가락 덜어내서
미리 소금에 절였다 헹궈 물기를 짠 오이랑 같이 섞어서 무쳐보았다.
고추장 좀 넣고 고춧가루도 넣고 들기름, 마늘 찧은 것, 매실액, 진간장도 조금 넣고 조물조물~

엄마의 손맛이 담긴 콩나물오이무침의 걸쭉한 맛은 안 나지만
그럭저럭 새콤달콤 맛있다.
자꾸 하다보면 좀 나아지겠지...^^



Posted by 연신내새댁
밥상2019. 8. 31. 14:27




기억속의 가자미조림은 더 빨간 색인데~
아직은 고춧가루 넣기를 무서워해서.. 내가 만든 반찬들은 색깔이 영 하얗다. ^^

강릉은 바다가 있어서 해산물이 풍성한 고장이다.
어릴때부터 많이 먹었던 여러 물고기들과 해조류들을 먹으면 고향 생각이 나고 입맛도 나서 밥 한그릇 뚝딱 하게 된다.

냉동실에 있던 작은 가자미로 만들어본 가자미 조림은 기억속의 짭쪼롬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런데로 삼삼하니 먹을만 했다.

고추장과 된장을 좀 섞고, 맛술과 설탕, 고춧가루를 넣고 마늘 넣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무랑 감자를 넣어서 같이 조렸는데 감자가 훨씬 맛있었다.
그래도 무에서 우러난 국물이 맛있어서 국물 떠먹으며 밥 많이 먹었다.

가자미도 조림으로 먹긴 하지만 엄마가 기름에 바삭촉촉하게 구워주신게 제일 맛있는데
내가 구워서는 그 맛이 안난다.
친정집 생선구이는 엄마가 부엌도 아니고, 바깥에서 무려 가스버너에 구워다주시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

우리 갈때만 구워주시지 말고, 힘드시더라도
엄마랑 아빠 두분도 생선 맛있게 많이 구워드세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밥상2019. 8. 28. 20:17




어릴때 많이 먹었던 반찬인데
기억을 더듬어 한번 만들어보았다.

감자와 계란,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든다.
기억속의 이 반찬은 고춧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고, 계란도 더 몽글몽글하게 익는데
내가 만드니까 좀 푸석푸석하고 훨씬 하얗게 되었다. ^^

맛은 그래도 조금 비슷하다.

어릴때는 엄마가 주로 만들어주셨던 반찬인데,
내가 나이가 좀 들었을 때,
언제였더라..
대학생? 이십대 후반? 정도였을 때
할머니가 한번 만들어주신 적이 있었다.

할머니 연세가 칠순쯤 되셨을때..
아마 모처럼(한 10년에 한번 정도? ㅎㅎ) 엄마가 어디 여행을 가셔서
할머니가 내 밥을 차려주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연세가 드신 후에는 거의 부엌출입을 안 하셨고
엄마가 전적으로 요리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기 때문에
할머니가 반찬을 만드시는 모습은 낯설고 좀 귀여우셨던 것 같다.

그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반찬이 이 감자계란볶음.
내가 “어! 할머니도 이거 할 줄 알아? 엄마가 많이 만들어줬는데~” 했더니
“엄마한테 내가 가르쳐준거야~” 하고 대답하셨었다. ^^

결혼하고 아이들키우며 가끔 이 반찬이 생각났었다.
해먹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고춧가루를 잘 못먹어서 여지껏 못 해봤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아주 매운 반찬아니면 고춧가루가 좀 있어도 잘 먹는다.

들기름두르고 감자를 볶다가
물넣고 고춧가루넣고 소금 좀 넣고
계란 풀어서 넣고 마늘 찧은것 좀 넣고...^^

할머니가 그때 이렇게 알려주신 것 같은데 잘 기억한 건지 모르겠다.

그리움을 안고 먹는다.
연제가 맛있다며 잘 먹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9. 7. 28. 12:36



5월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두 달이나 묵혀서야 썼다.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도 조금 했고, 생활에 쫒겨 시간을 못 내기도 했다.
짧은 글들은 간간히 썼지만 내 나름대로 좀 정리를 해가며 길게 쓰고싶은 이 여행기는 시작이 쉽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하루하루는 어렵게, 때론 수월하게 버티고 애써가며 그저그렇게 지나가는 것 같은데
그 시간들을 모아서 몇 년, 몇 십년의 단위로 묶어놓고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자신을 이루어왔는지가 보인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큰 그림을 이루는 모자이크 처럼.
그리고 그 그림은 계속 그려진다.
바로 오늘도.

엄마 주위에 우리가 모두 모여 동화사에서 사진을 찍은 그 날에
나는 엄마의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엄마라는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한 조각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삼랑진을 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목수였던 젊은 외할아버지와 책읽기를 좋아하셨던 외증조할머니,
장에 왔다가 무시로 들리시는 친지와 이웃 할머니들을 위해
큰 냄비에 수제비나 죽을 끓이다 한명 더 오면 물 한바가지 더 부으며
“점심 자시고 가시소~”하던 외할머니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손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나 잘 하시고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잘 하시는 울 엄마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어떻게 자란 것인지 조금 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마는 씩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과 함께 자신이 자란 곳에서 멀리 떠나와
가족들과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강릉이라는 낯선 곳에서 우리들을 키우며 보여준 엄마의 여러 모습들을 생각할때
엄마가 만들어온 엄마 자신의 그림은 씩씩한 사람인 것 같다.
작은 몸에 깃든 씩씩한 마음.





어쩌면 우리는 모두 나무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이야기라는 가지를 넓게 펼쳐가며 오늘도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언니인 서울 이모께서 “아고~ 나도 삼랑진에 한번 가보고싶다!”고 하셨다는 얘기를 여행하며 많이 들었다.
다음에는 큰이모도 함께, 강릉 언니도 함께, 외삼촌들도 함께 삼랑진 골목을 또 걸어봐도 좋겠다.
우리가 나무라면
가끔은 자기가 출발했던 곳, 자기 뿌리를 한번 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또 오늘의 가지를 뻗어가는 것이다.











우리 품에 깃든 고운 생명들을 보듬어가며.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9. 7. 27. 14:14





날이 좋았던 지난 5월,
엄마아빠를 모시고 오빠네 가족과 함께 삼랑진 여행을 다녀왔다.

삼랑진은 엄마의 고향이다.
1948년 삼랑진에서 태어난 엄마는 스물일곱살이던 1974년에 아빠와 결혼해 강릉으로 시집오실때까지 삼랑진에서 살았다.

엄마가 결혼하고 얼마후에 외할머니와 외삼촌들은 모두 대구로 이사를 하셨다.
그래서 삼랑진은 엄마의 유년시절과 처녀시절의 추억이 많이 깃든 곳이지만
찾아가보기는 어려운 곳이 되었다.

강릉에서 대구 외가까지도 먼 길이거니와
외할아버지 제사같은 가족 행사나 우리들의 외가나들이로 대구에 한번 간다고 해도
꽤 멀리 떨어진 삼랑진까지 일부러 가게는 잘 안되어서
엄마는 결혼후로 삼랑진에 한번도 못 가보셨다.

우리는 삼랑진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엄마의 옛날 이야기를 좋아했던 우리들은
삼랑진 역 근처 읍내에서 종묘상을 하셨던 외할아버지 이야기,
엄마의 동네 친구들 집에 가서 만화책 보며 놀던 이야기,
아직 어렸던 막내 외삼촌이 업어달라고 조르면
“요기까지 오면 업어주지~”하고 골목길에서 놀려주던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삼랑진 극장에 걸리곤 했던 옛날 영화들을 같이 구경하고,
처녀시절 엄마가 편물 일을 하던 방으로
모여들던 동네 친구들 이야기며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야했던 동상이 고모 집에 사는 호야라는 사촌 오빠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속에 삼랑진은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무척 친근하고 가보고싶은 곳이 되었던 것이다.







바빴던 날들이 지나고 지나
엄마는 46년만에 다시 삼랑진에 도착하셨다.
김해에 사시는 막내 이모와 이모부가 오셔서 엄마의 삼랑진 여행에 동행해주셨다.

먼길을 차로 달려와 지친 아이들과 아빠는 삼랑진 트윈터널을 구경하며 좀 쉬고 계시기로 하고
엄마와 오빠, 나만 삼랑진 읍내로 가서
이모와 이모부를 만났다.

엄마가 처음 살았던 집, 그리고 나중에 좀더 커서 처녀때까지 살았던 집터들을
이제는 많이 달라진 거리에서도 다행히 방향을 찾아 가볼 수 있었다.
옛 집들은 헐리고 그 자리에 이제는 큰 건물과 창고 등이 서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에게는 그 공간들에 깃들어있는 어린날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떠오르시지 않았을까.

엄마와 이모, 삼촌들이 모두 다녔던 삼랑진 초등학교도 찾아가보았다.
학교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있고,
운동장 조회대 옆의 나무는 큰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있었다.
60년 넘는 시간을 지킨 나무.







아침에 원주터미널에서 만나 우리차를 함께 타고 삼랑진까지 오는 동안
엄마는 삼랑진에 살던 시절의 추억들을 여럿 더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중에는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도 많았다.
젊었을때 외할아버지가 목수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며
책읽기를 좋아하셨던 자그마하고 예쁜 엄마의 할머니 이야기도 그랬다.
엄마의 할머니시니 내게는 외증조할머니가 되시는 할머니는
본래 유복한 집에서 자라셔서 글을 배웠고 책을 좋아하셨다고 했다.
가끔 친척이나 이웃 할머니들이 모이시면 할머니가 읽어주는 옛소설(흥부전이나 심청전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들을 재미나게 듣곤 하셨단다.
할머니가 가끔 시골에 있는 큰 기와집인 친정에 가실때면 엄마를 꼭 데리고 가셨는데
며칠 동안 할머니의 동생이 살고있는 시골 집에서 재미나게 지내고 오곤 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