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정에 가서 김장을 함께 하고 왔다.
전날 엄마아빠가 찬바람속에 밭에서 배추뽑아 절여 놓느라 고생하셨고
아침에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오빠와 새언니가 배추들을 헹궈놓느라 또 고생하셔서
나는 그저 김치통 들고 가서
양념한 속만 잘 발라 김장김치를 여러통 든든하게 담가 왔다.





이제는 어엿한 김장김치 마스터가 되신 전&이 프로 부부시다 ^^
친정 가까이 사는 언니도 함께 와서 우리들 김장을 도와주고, 저녁에는 퇴근하고오신 형부까지 온가족이 모여서 생굴넣은 겉절이 김치에 돼지고기 수육 삶아서 맛있고 든든한 저녁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컸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김장하고 이런저런 일로 바쁜 동안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친정집의 뒷산과 모래밭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자전거타고, 보드게임하고, 연극 준비해서 저녁엔 공연도 한편 무대에 올렸다. ^^
강릉 할아버지댁에 모이면 으레 그렇게 노는 아이들이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제일 큰 조카는 모래성도 엄청 멋지게 잘 만들고, 동생들을 데리고 연극 공연도 잘 만들어내는 멋진 친구다.
아이들 자라는 것은 볼 때 마다 신기하다.




김장이 한창이던 토욜 오후엔 할아버지와 연수아빠가 아이들데리고 경포호수에 가서 6인용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모두 낑낑 엄청 힘들었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지나고나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할아버지와 감을 따본 추억과 함께 말이다.
작고 푸른 주머니가 달린 감 장대 안으로 감을 쏙 집어넣은후에 탁 당겨서 따는 감장대의 손맛은 그야말로 여러번 해봐야 손에 익는 감각인데
나도 어릴때 그렇게 감을 땄던 기억이 참 생생하고 좋다.
손에 익은 느낌은 더 오래 기억된다. 내 손으로 해보는 것이 그래서 참 중요하다. 손으로 해보고 발로 뛰어다니며 직접 밟아본 기억.
논두렁 밭두렁 뒷산 오솔길을 밟을 때의 감촉 같은 기억들 말이다.
그런 것은 오래오래 남아서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예쁘게 깍은 곶감이 올망졸망 달려있는 아버지의 차고에는
아버지가 평생 써오신 손에 익은 도구들이 늘 제 자리에 잘 정돈되어 걸려있다.
봄이면 고운 흙이 깔린 모판에 예쁜 볍씨를 자라락 뿌려주던 기계와
논에 모를 심어주던 이앙기, 호미들, 줄자들, 밀집모자,
내년에 씨앗하려고 말려둔 옥수수까지
고향집의 창고를 보면 언제나 신이 나고 호기심이 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보물창고 같은 곳.






고향집에 가면 언제나 힘이 난다.
밥도 많이 먹게 되고 목소리도 더 활기차진다.
엄마아빠 옆에 가니까 나도 아이로 돌아가서 그런가. ^^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도 그럴까?
자기들 집에서도 까불고 놀겠지만 강릉 할아버지댁에 오면 더 신이 나고 목소리도 높아지고 펄쩍펄쩍 방방 뛰게 될까?
함께 모이니 더 그렇겠지.
반가운 언니오빠 동생들과 북적북적 어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넉넉한 품에서 어리광도 부리고
뛰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넓은 마당과 언덕을 쏘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 곁을 떠나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면 또 어려운 일들이, 어른과 부모라는 이름으로 감당해야하는 삶의 무게들이 저마다 만만치 않게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숙제와 학원과 학교와 또 제나름 힘든 과제들이 다가오겠지만
강릉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모두에게 어깨 좀 펴고 한번 더 씩 웃으며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김장김치 속에, 배추와 무와 홍시 안에 듬뿍 담아 보내신 것은
고향의 가을이고, 사랑이다.

가족들 곁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즐겁게 일하고 웃고 이야기하고 돌아오니
추운 겨울이 와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든든히 채워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충전하고 올수 있도록 준비하고 애쓴 엄마는 몸살이나 나지않으셨는지,
대식구 식사와 김장 뒷설거지 도맡아하며 고생한 새언니도 많이 힘드시지 않은지..
누군가의 희생 위에 내 안온함이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죄송하게 돌아보는 아침이다.

모두들 맛있는 김치 많이 먹고 아프지말고 겨울 잘 났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