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를 지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장마하면 6월 말에 시작해서 7월 초에 끝나는 보름 남짓 되는 시간이었는데
요즘은 장마가 한 달 가까이 계속 되는 식으로 우리나라 기후가 변한 모양이다.
안그래도 아이들과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긴데 비까지 왔다갔다하니 더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 하루에 한두번은 마스크를 쓰고라도 놀이터에 나가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좀 쐬고오면 좋은데 어떤 날은 꼼짝못하고 집안에서만 복작복작 뒹굴거리게 되기도 한다.
비가 오고 세상에 온통 물안개가 엷게 차있는 것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어린 시절에 아빠와 함께 찾아갔던 삽당령 생각이 난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에서는 양봉을 오랫동안 하셨다. 한옥집에 살때는 마당 아래 밭이 시작되는 곳 정도에 벌통을 쭉 놓고 키우셨고, 양옥집으로 이사온 후에도 차고 옆, 지금은 아이들의 모래놀이터가 있는 곳에 벌통들이 예쁘게 조로록 놓여있었다.
그리고 벌통 곁에는 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의 전용 의자라고 할 수 있는 양철로 된 작은 삼발이 의자를 놓고 할아버지는 벌통 곁에서 앉아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오래오래 들으셨다.
벌을 지키는 것인지, 쉬시는 것인지,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 소식을 접하시는 것인지.. 그 모두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아버지는 그곳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나이가 드신 후에는 벌들을 돌보는 일이 할아버지의 중요한 노동이셨던 것이다.
더운 여름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더위를 피해 벌들을 데리고 삽당령이라는 깊은 산속으로 가서 지내다 오셨다.
삽당령은 이제 인터넷에 찾아보니 강릉에서 정선쪽으로 갈 때 넘어가게 되는 높은 고개로 행정구역은 강릉시 왕산면에 속해있다. 왕산은 강릉에서도 태백산맥쪽으로 붙어있어 산이 높고 숲이 울창한 지역이다.
벌들도 불볕더위에는 지치고 힘들어서 잘 지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는 삽당령 골짜기에 벌통을 갖다놓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동네의 빈집을 빌려서 한 달정도 살다가 오셨다.
가끔 아빠는 트럭을 몰고 삽당령에 가셔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필요한 생필품이나 반찬을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벌들을 살피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고 오셨다. 그리고 어린 내가 가끔 그 길에 동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시절이었다. 핸드폰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빌려쓰시던 작은 집은 허름했는데 가스나 전기가 제대로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가스 곤로 같은 것에 냄비밥을 끓여드셨을까? 전기밥솥은 있으셨을까?
작은 단탄방과 부엌이 있었던 것 같은 그 집의 벽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삼양라면이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걸려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전화도 없는 집이었을 것이라 아빠는 이따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잘 계신지 보기 위해서라도 몇일에 한번씩 삽당령에 다녀오셨을 것이다. 아마 산골 동네 어느 집엔가는 전화가 있는 집도 있었을테니 급한 일이 생기면 할아버지가 연락을 하실 수는 있었겠지만 별일없이 잘 계시면 그럴 일은 없을 터였다. 참... 그렇게도 살았네. 옛날에는..^^;;
깊은 산속의 여름은 시원하고 축축했다.
강릉 우리 동네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 날씨였어도 삽당령에 들어서면 비구름 속에 들어선듯 안개가 밀려올 때가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집은 안개가 엷게 덮여있어 축축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그 동네에서도 잘 나왔을까? 산에서는 전파가 잘 안 잡혔을지도 모른다. 나를 보고 반가워하셨던 할머니는 옥수수를 삶아주시고 나는 그것을 까먹으며 다시 아빠와 차를 타고 한 치 앞도 안보이는 안개로 덮인 구불구불한 산속도로를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히고 천천히 헤치며 내려왔었다.
벌들은 고지대에는 아직도 피어있는 싸리꽃들을 찾아다니며 사리꿀들을 만들어주었던 것 같고.. 나는 아홉살 무렵의 어린 아이였으니 30년도 더 전 이야기인 것이다.
삽당령에 따라가면 어른들이 일을 하시는 동안 나는 천천히 할아버지 집 주변의 계곡에 내려가보기도 하며 안개 속을 살살 돌아다녔다.
그 때처럼 천천히 깊은 안개 속에 오래 있어본 적은 없었다. 이제는 마흔이 훌쩍 넘은 어른이 되었지만 ‘안개’라는 말을 생각하면 삽당령에서 어린 날 만나보았던 안개를 떠올린다. 자연의 여러 현상을 생생한 감각으로 만나보았던 경험은 오래 남는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안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TV에서 본 적은 있겠지만 그 차갑고 사르르한 느낌은 모를 것 같다. 안개 속에 완전히 숨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안개는 그만큼 깊고 아득한 것이라는 것을 그 안에 있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삽당령을 오고 가는 길에 나는 트럭의 앞자리에 앉아 아빠와 무어라무어라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 아빠는 내가 물어보는 것들에 잘 대답해주셨고,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사물들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농작물이면 언제 심어 언제 거두는지, 산골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볼거리, 이야기거리는 끝이 없고 그래서 나는 아빠와 차를 타고 어딘가를 다녀오는 것이 좋았다.
학교에 다녀오다가 오죽헌 옆 길 쯤에서 트럭을 세우시고 “욱아, 아빠랑 어디 갈래?” 하고 소리치셨던 날이 있었는데 나는 신나고 기뻐서 “네!”하고 얼른 뛰어갔던 날의 풍경도 눈에 선하다.
자연이 풍부한 시간이었다.
우리 동네도 논과 밭과 뒷산, 앞산을 마음껏 오가며 놀 수 있는 곳이었는데
더 깊고 높은 산 속으로도 부모님을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오갈 수 있었던 날들.
도시의 아파트에서 단지 안의 나무 몇 그루와 새소리와 공원의 작은 호수물 정도만 접하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좀 가엾게 느껴진다.
깊은 숲과 산허리를 둘러싼 안개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이 아이들은 알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것이 편리해졌고, 물자가 풍족하고, 여러 면에서 안전하고 살기좋아진 세상이기도 하지만 그 한켠에서는 자연이 날로 파괴되고, 사람의 삶에서 멀어지고, 전염병과 기후 위기가 극심해지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비가 오는 날, 상념이 깊다.
아이들이 자연과 행복하게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날을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