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하나로마트가 지금도 있을까.
신촌로터리에서 그랜드마트쪽 출구로 나와 홍대 방향으로 조금 걸어올라가다보면 큼지막한 하나로마트가 있었다.
그 동네에서 스물다섯살부터 서른까지 5년쯤 살았다.
어느날, 한가한 토요일 저녁쯤이었을까. 천천히 걸어서 장을 보러갔다. 식빵을 사고, 계란과 우유, 토마토 정도가 그때 내가 보던 장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마트를 나오다가 마트 앞마당에 넓게 펼쳐져있던 화분 시장에 쭈그려 앉았다.
멀리서 마트가 보일 때부터, 봄이었나, 고무나무며 산세베리아같은 공기정화식물들, 색색깔의 꽃화분, 아기자기한 여러 식물들이 나를 맞아주는 것 같아 맘이 설레었던 것이다.

돈도 많지 않고, 집도 작고, 햇볕도 옆건물에 가려 조금 밖에 들지않는 내 자취방 창가에 놓을만한 친구를 고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잎사귀가 딱 두개, 양 옆으로 벌어져있는 관음죽 한 뿌리가 갈색 플라스틱 화분에서 호젓하게 자라고 있었다. 2천원이었던 것 같다. 작지만 야자수 나무처럼 생긴 뿌리가 튼튼해보였고 초록색 잎사귀도 싱싱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 우리 같이 살자.

그 날 하나로마트 앞마당에 쭈그려앉아 화분을 고를 때 초록 식구를 맞을 생각에 내 맘은 설레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이십년이 어떻게 흐를지는 까맣게 몰랐지.
누구나 모른다.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그런데 스물대여섯살 쯤에는 특히 모르는 것 같다. 짐작도 못했지..
신생 진보정당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일주일에 세번은 동네보습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칠 무렵이었나. 밤에는 홍대앞에 있는 연습실에서 탱고를 배우기도 했고, 나중에는 정당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 어느날 쯤에 관음죽을 사서 함께 살기 시작한 거였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 5년 정도의 신촌 자취시절중의 어느 날인 것이다.

지나온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사회를 고민은 했을지언정
당장 몇년 뒤의 내 인생, 내 미래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감도 못 잡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공부도 그리 잘 하진 못했지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시간은 참 쏜살같이도 흘렀다.
정신없이 바쁜 순간도 있었고, 아이들은 참 예뻤고, 몸은 퍽 고단하였다.
그저 낭만적인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 비슷한 기대만 있었을뿐 현실의 어려움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육아는 주변의 선배들이 키우는 아가들이 예쁘다는 생각만 했지 얼마나 고달프고 얼마나 어려운 것일지 짐작도 못했다.

이십대 후반에 내가 다녔던 대학원에는 NGO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이 함께 있어서 시민단체나 학교에서 일하시던 40대의 직장인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친하게 지냈던 석, 박사 과정의 여자 선배 중에는 그래서 꽤 큰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도 계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 고등학생 큰 아이와 초등학생 둘째를 키우며 대구에서 멀리 서울까지 일주일에 이틀 수업을 들으러 ktx를 타고 오가는 분도 있었다.
내가 지금 그 분들의 나이가 되었다. 내 아이들이 열세살, 열살, 여덟살.
그 때 나는 그 분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것인지, 얼마나 쉽지않은 일상을 꾸리며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인지 다는 몰랐다. 막연히 멋지시다.. 고 생각했을 뿐 그 분들이 어떤 삶의 시간을 지나온 것인지, 지나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대학원을 수료만 한채로 결혼을 하며 그 분들께 축하 선물을 받고, 큰아이를 낳고 또 선물을 받고 격려의 인사를 들으며 지내오는 동안 종내 졸업논문은 쓰지 못했다. 아이들은 자라고, 관음죽 화분은 여러차례 분갈이를 하며 크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하나로마트 마당에 앉아 관음죽을 고르던 그 저녁에, 내가 그 뒤로 펼쳐질 십칠팔년의 시간을 주르륵 그려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나는 크게 다르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래도 미리 생각을 좀더 해봤더라면, 인생과 여성과 결혼에 대한 책이라도 좀더 읽었더라면, 아니 그냥 인생이 짧다는 것과 사람들은 떠난다는 것과 아쉬운 많은 일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큰 틀에서는 같더라도 조금은 더 내밀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나눠쓰며 살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대체로 부질없다.
조금 의미가 있다면 앞으로의 시간을, 40대 중반의 이 시간을 내가 관음죽을 만날 즈음에 함께 만났던 그 분들처럼 용감하게, 알뜰하게, 지혜롭게, 어렵지만 굳세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때 나보다 하나로마트에 더 가까이, 바로 그 앞 골목에 살던 후배가 있었다.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구석에 높다랗게 쌓여있는 책더미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녹색평론’을 보았었다.
안방 베란다 안에서 여러 화분들에 둘러싸여있는 관음죽에게 조금 더 바람이 통하도록 자리를 정리해주고, 올 봄에는 늘 쌓아두기만한 녹색평론을 제대로 읽어야겠다.

함께 긴 시간을 건너와준 관음죽.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고마웠다.
후회는 없지만 어쩌면 나는 그렇게 인생을 몰랐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아채는 20년지기 친구 곁에서
묵묵히 온힘을 다해 자라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같이 잘 건너가자. 용감하게.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