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안방베란다가 정리되기 전부터도 화분이 많은 베란다를 ‘우리집 식물원’이라고 불렀다. 선반을 설치하고 화분들이 좀더 깔끔하게 자리를 잡으니 더 식물원 같아졌다고 좋아한다. 나도 참 좋다. 아침에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을 열면 아주 좋은 냄새가 난다. 달콤하기도 하고 향긋하기도 한 식물들의 냄새. 흙냄새.
벌레들도 좀 다니고, 관음죽은 아래쪽 잎이 많이 말라버린 것을 보니 뭔가 병충해 약이 필요한 것도 같은데, 식물과 사람 모두에게 나쁘지않은 것으로 잘 알아봐서 구해야겠다.
고추도 잘 자라고, 밤나무도 1그루 더 싹이 나서 먼저 자란 큰 나무 옆에 바싹 붙어 자라고 있다. 밤나무를 키울 수 있는 흙화분이나 땅을 찾아봐야겠다.
봄이 지나는 동안, 바깥 세상에는 여름이 오는 동안 우리집에서도 조용하고 치열한 성장의 나날이 흘러갔다. 고맙고, 더 애써봐야겠다. 함께 자라고 살아가기 위해.
동교동 하나로마트가 지금도 있을까. 신촌로터리에서 그랜드마트쪽 출구로 나와 홍대 방향으로 조금 걸어올라가다보면 큼지막한 하나로마트가 있었다. 그 동네에서 스물다섯살부터 서른까지 5년쯤 살았다. 어느날, 한가한 토요일 저녁쯤이었을까. 천천히 걸어서 장을 보러갔다. 식빵을 사고, 계란과 우유, 토마토 정도가 그때 내가 보던 장의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마트를 나오다가 마트 앞마당에 넓게 펼쳐져있던 화분 시장에 쭈그려 앉았다. 멀리서 마트가 보일 때부터, 봄이었나, 고무나무며 산세베리아같은 공기정화식물들, 색색깔의 꽃화분, 아기자기한 여러 식물들이 나를 맞아주는 것 같아 맘이 설레었던 것이다.
돈도 많지 않고, 집도 작고, 햇볕도 옆건물에 가려 조금 밖에 들지않는 내 자취방 창가에 놓을만한 친구를 고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잎사귀가 딱 두개, 양 옆으로 벌어져있는 관음죽 한 뿌리가 갈색 플라스틱 화분에서 호젓하게 자라고 있었다. 2천원이었던 것 같다. 작지만 야자수 나무처럼 생긴 뿌리가 튼튼해보였고 초록색 잎사귀도 싱싱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 우리 같이 살자.
그 날 하나로마트 앞마당에 쭈그려앉아 화분을 고를 때 초록 식구를 맞을 생각에 내 맘은 설레고 행복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이십년이 어떻게 흐를지는 까맣게 몰랐지. 누구나 모른다.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그런데 스물대여섯살 쯤에는 특히 모르는 것 같다. 짐작도 못했지.. 신생 진보정당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일주일에 세번은 동네보습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칠 무렵이었나. 밤에는 홍대앞에 있는 연습실에서 탱고를 배우기도 했고, 나중에는 정당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 어느날 쯤에 관음죽을 사서 함께 살기 시작한 거였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 5년 정도의 신촌 자취시절중의 어느 날인 것이다.
지나온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사회를 고민은 했을지언정 당장 몇년 뒤의 내 인생, 내 미래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감도 못 잡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공부도 그리 잘 하진 못했지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시간은 참 쏜살같이도 흘렀다. 정신없이 바쁜 순간도 있었고, 아이들은 참 예뻤고, 몸은 퍽 고단하였다. 그저 낭만적인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 비슷한 기대만 있었을뿐 현실의 어려움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육아는 주변의 선배들이 키우는 아가들이 예쁘다는 생각만 했지 얼마나 고달프고 얼마나 어려운 것일지 짐작도 못했다.
이십대 후반에 내가 다녔던 대학원에는 NGO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이 함께 있어서 시민단체나 학교에서 일하시던 40대의 직장인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친하게 지냈던 석, 박사 과정의 여자 선배 중에는 그래서 꽤 큰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도 계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 고등학생 큰 아이와 초등학생 둘째를 키우며 대구에서 멀리 서울까지 일주일에 이틀 수업을 들으러 ktx를 타고 오가는 분도 있었다. 내가 지금 그 분들의 나이가 되었다. 내 아이들이 열세살, 열살, 여덟살. 그 때 나는 그 분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것인지, 얼마나 쉽지않은 일상을 꾸리며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인지 다는 몰랐다. 막연히 멋지시다.. 고 생각했을 뿐 그 분들이 어떤 삶의 시간을 지나온 것인지, 지나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대학원을 수료만 한채로 결혼을 하며 그 분들께 축하 선물을 받고, 큰아이를 낳고 또 선물을 받고 격려의 인사를 들으며 지내오는 동안 종내 졸업논문은 쓰지 못했다. 아이들은 자라고, 관음죽 화분은 여러차례 분갈이를 하며 크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하나로마트 마당에 앉아 관음죽을 고르던 그 저녁에, 내가 그 뒤로 펼쳐질 십칠팔년의 시간을 주르륵 그려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나는 크게 다르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래도 미리 생각을 좀더 해봤더라면, 인생과 여성과 결혼에 대한 책이라도 좀더 읽었더라면, 아니 그냥 인생이 짧다는 것과 사람들은 떠난다는 것과 아쉬운 많은 일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큰 틀에서는 같더라도 조금은 더 내밀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나눠쓰며 살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대체로 부질없다. 조금 의미가 있다면 앞으로의 시간을, 40대 중반의 이 시간을 내가 관음죽을 만날 즈음에 함께 만났던 그 분들처럼 용감하게, 알뜰하게, 지혜롭게, 어렵지만 굳세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때 나보다 하나로마트에 더 가까이, 바로 그 앞 골목에 살던 후배가 있었다.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구석에 높다랗게 쌓여있는 책더미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녹색평론’을 보았었다. 안방 베란다 안에서 여러 화분들에 둘러싸여있는 관음죽에게 조금 더 바람이 통하도록 자리를 정리해주고, 올 봄에는 늘 쌓아두기만한 녹색평론을 제대로 읽어야겠다.
함께 긴 시간을 건너와준 관음죽.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고마웠다. 후회는 없지만 어쩌면 나는 그렇게 인생을 몰랐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아채는 20년지기 친구 곁에서 묵묵히 온힘을 다해 자라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같이 잘 건너가자. 용감하게.
아이들이 가끔 학교와 유치원에서 화분을 받아온다. 유치원의 특별활동으로 진행되는 과학수업에서 식물 키우고 관찰하는 단원이 있을 때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둘째와 셋째가 다닌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화분 선물(?)하기를 무척 좋아하셨다. 봄이면 봄꽃 화분, 가을에는 들국화, 겨울에는 포인세티아 화분... 아이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건강한 에너지를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유치원의 고마운 교육관에 나는 대체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엄마이지만.. 밀려오는 화분들을 잘 키우기는 쉽지않았다.
이 친구는 작년 봄쯤에 온 ‘애플 민트’라는 허브 식물이다. 물을 자주 주면 안되고 햇볕을 좋아한다. 그래서 잘 자랐다. ^^ 햇볕 잘 드는 거실 피아노 책상위에 올려놓고 잊어먹고 몇 주쯤 물을 안줘도 이 녀석은 잘 살아있었다. 잎을 건드리면 향긋한 사과향이 퍼져서 좋다. 그래도 한때 너무 물을 못 줘서 시들려고하기에 안방 베란다로 옮겨준 후에 다행히 기운차리고 더 부쩍 잘 자랐다. 봄에는 분갈이를 해줘야할 듯..
이 친구는 작년 봄에 온 장미. 고운 분홍꽃송이를 많이 달고 우리집에 왔다.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두기가 안쓰러워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고, 가을까지 분홍 장미를 집안에서 보는 호사를 누리게 해주었다. 그런데 겨울에 춥고 너무 물이 부족했던지, 아니면 병에 걸린건지 잎이 다 떨어지면서 죽을 것 같았다. ㅜㅜ 꽃나무 키우기는 내가 특히 못하는 일중에 하나라 어쩔 수 없이 너도 이별해야하나보다... 했는데 어찌어찌 겨울을 견디고 살아있더니 얼마전부터 연초록 새잎을 조금씩 내밀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이 많이 춥지않았고 안방베란다에 햇볕이 잘 비친 것이 장미에게는 다행이었던걸까. 함께 5월을 기다리고 있다.
치자 나무와 포인세티아, 이 친구들도 유치원에서 온 친구들. 포인세티아는 둘째가 일곱살 크리스마스 즈음에 받아온 것 같으니 올해로 3년차 식구네. 치자도 같은 해에 온 것 같다. 치자가 하얀 꽃이 피면 향기가 어마무시하게 좋다는걸 알고있어서 기대하며 분갈이를 했건만 2년 넘도록 꽃은 안 피었다. 그래도 신혼초에 키우던 치자가 죽었던 기억이 있어서 푸르게 잘 살아있어주기만 해도 고마운 녀석이다. 포인세티아를 셋째도 작년 크리스마스에 유치원에서 받아왔는데 그 녀석은 부엌 아일랜드 위에 장식으로 두었다가 많이 말라서 잎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ㅠ 살 수 있을까.. 지금은 안방베란다에서 요양중.
화분을 키우며 아이들도 나도 생명도 배우지만 죽음도 배운다. 생명이란 강하기도 한 것이고 여리기도 무척 여린 것이어서 어떤 생명이 오래 잘 살아간다는 것은 평범한 일이면서도 기적같은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똑같은 것 같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매일을 함께 보내다 어느 날은 눈부신 꽃을 피우기도 하고 어느 날은 쓸쓸히 잎을 떨구기도 한다. 고요한 것 같지만 늘 꿈틀대며 약동하는 것이 생명이고 식물이다.
2년 쯤 전에 첫째가 방과후 과학수업에서 받아온 ‘아스파라거스’는 푸르게 자라면 잘라서 요리에 넣어 먹으라고 하셨다는데 아직 한번도 먹어보진 못했다. 제때 잘 잘라줘야 줄기가 굵어지면서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굵기까지는 안되도 어느 정도는 자랄 것 같은데 늘 푸실푸실하게 넝쿨지며 키만 멀쑥이 크게 방치하는 아줌마와 사는 관계로 우리집 아스파라거스는 언제나 파슬리같은 느낌이다. 꽃대를 자주 올리며 붉은 꽃을 피우고 또 지고 또 피우는 제라늄 꽃화분도 유치원 친구. 이제 드디어 막내까지 유치원을 졸업했으니 우리집 베란다 정원에 당분간은 새식구가 좀 줄겠지..
하지만 의외의 복명- 학교 방과후 과학수업이 아직 남아있다. 작년 가을 우리집 베란다를 술렁이게 했던 그들이 언제 또 돌아올지 모른다.
생명의 세계는 정말 놀랍고도 신비하여라... 과학 수업의 영역도 무궁무진하다. 느타리버섯은 그래도 잘 수확해 요리해 먹었다.
인삼벤자민은 신혼집 집들이선물로 받았다. 남편 회사분들의 집들이가 있던 날 낮에 먼저 우리집에 배달로 도착했던 작은 화분.
찾아보면 아마 이 블로그 예전 글 어디쯤에 이 화분이 처음 우리집에 온날 글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 우리 벤자민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볼 수 있겠네^^ 한번 찾아서 나중에 링크를 걸어놓던지 해야겠다. (찾아보니 처음 온날 포스팅은 없고 첫 분갈이때 쓴 글이 있다)
—————————————————————
길가의 풀꽃들이 손짓할 때 - https://sadeak.tistory.com/m/entry/%EA%B8%B8%EA%B0%80%EC%9D%98-%ED%92%80%EA%BD%83%EB%93%A4%EC%9D%B4-%EC%86%90%EC%A7%93%ED%95%A0-%EB%95%8C
—————————————————————
그후로 1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삼벤자민은 우리 가족과 함께 성장해왔다. 연신내 갈현동에서 첫째가 태어나고 자랄 때 인삼벤자민도 조금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다. 그리고 두번째 집인 강동구 강일동으로 이사와서 지금의 큰 화분으로 두번째 분갈이를 했다. 둘째와 셋째가 태어나고 세번째 집인 지금 하남집으로 이사오기까지 벤자민은 언제나 우리집의 큰 화분중 하나로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몇 번 위기는 있었지만... 거실이나 방에 있을 때 벤자민은 가끔씩 내가 물주는 것을 게을리해서 잎이 새들새들 마르곤 했다. 한참만에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 주면 그 물이 물받이 밖으로 넘쳐서 강화나무로 된 마루바닥에 검게 얼룩을 남기며 스며들곤 했다. 그럼 황급히 다른 자리로 옮기고..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금씩만 주는 날이 오래되면 어느새 벤자민 잎사귀가 말라서 우수수 떨어지기도 했다.
하남 집에 와서는 안방에 두었다가 빛도 잘 못보고 물도 잘 못 줘서 많이 시들었다.
오래 우리와 함께 지낸 인삼벤자민이 힘이 없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파서 결국 방 안에 예쁘게 두기보다는 베란다로 옮겨서 요양(?)을 하기로 했다. 안방 베란다는 햇볕도 잘 들고 무엇보다 물을 가끔씩 흠뻑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집 반려식물들에게는 가장 살기좋은 곳이다. 어지간히 시들하던 화분들도 안방베란다로 오면 신선한 공기, 햇볕과 물을 듬뿍 마시며 친구들 사이에서 싱싱하게 기운을 차리곤 했다.
인삼벤자민도 다행히 다시 잎의 윤기를 되찾고 살아났다. 기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는 이제는 벤자민보다 키가 더 커진 벤자민 아기가 옆에 함께 있다. ^^
초록색 그로우백안에서 팔을 쑥 뻗으며 자란 인삼벤자민 아기.
이 녀석은 엄마 벤자민의 가지가 쑥쑥 자랄때 가지치기를 해서 잘려진 가지를 그로우백에 심어본 것이다. (내가 했는지, 아빠가 해주신 건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만큼 자랄 때까지 꽤 오래 그로우백에서 시간이 걸린걸 보면 아빠가 하남집 이사하고 처음 오셨을때 잘라주신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잘린 여러개의 가지를 잎을 좀 떼고 물에 며칠 담가두었다가 같이 심었는데 그중에 이 한 녀석만 살아서 자랐다.
나는 가지치기를 못한다. ㅠㅠ 천성이 정이 많고 겁도 많은 나는 무엇을 버리거나 잘라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지러운 안방베란다 사진을 본 분들이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버리지 못하는 나는 무엇이든 최대한 모으고 쌓아둔다. 자잘한 화분들도 버리지 못해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모아두고, 이제는 버려도 될 법한 지난 날의 물건들도 한구석에 쌓아둔다. 언젠가는 쓰일 데가 있을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큼직한 창고가 있고, 마당도 있다면야 이 모든 화분들과 부속품들이 좀 더 정돈되어 지낼 수 있겠지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두세번을 이사를 하면서도 끝끝내 들고 다닌 화분들과 흙주머니들과 버팀목으로 쓰는 막대기들 사이에서 우리집 반려식물들은 오늘도 오밀조밀 아웅다웅 살아간다.
엄마 벤자민은 그나마 한번씩 친정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두어번 크게 가지치기를 해주셔서 그럭저럭 모양이 잡혔지만 그로우백에서 정말 제 멋대로 자란 아기 벤자민은 삐죽하니 키만 크지 전혀 모양이 없는 채로 가지를 벌려간다. 한번 잘라주어야할텐데.. 그리고 그 잘린 가지들을 다시 심어서 또 다른 벤자민 아기들을 키워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여름이 오기 전에 엄두를 내봐야겠다. 아니, 친정 아빠가 한번 하남 우리집에 오시는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 벤자민 화분을 받았을 때 나는 결혼생활이 어떠하리란건 1도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은 아냐고 하면.. 역시 잘 모르겠다. 13년.. 내가 살아온 만큼은 알 것 같지만 가보지않은 앞으로의 길은 또 모르는 거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앞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전혀 모른다는 건 똑같지만 달라진 것도 있다. 그때의 나는 조금더 힘이 있고 씩씩했던 것 같다. 용감했던 것도 같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며 힘들어도 즐겁게 웃으며 살아왔다. 기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벤자민에게서도 이제는 시간이 느껴진다. 그녀도 몰랐겠지. 13년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이렇게 여러 곳을 오가며 우리 가족이 자라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살게 될 줄은. 이제는 햇볕좋은 베란다에서 오래전에 그녀가 떨군 잎사귀들을 이불처럼 덮고 오래되어 터진 줄기 옆으로 새로 진한 갈색의 줄기들을 감아올리며 살아가고 있는 벤자민. 우리, 애썼다고.. 앞으로도 잘 지내자고 말을 건네본다. 그전만큼 젊지는 않지만 다시 봄을 맞아 가지 끝으로 여린 연두색 새잎을 밀어올리는 벤자민처럼 나도 오늘의 새 잎을 키워내며 더 깊은 초록빛을 간직한채 살아가야겠다.
우리집에는 꽤 그럴싸한 화분도 여러개 있다. 공기정화도 되고 멋있기도 한 큰 식물들이 자라는 그 화분들은 주로 이사할때 선물로 받거나 한 것들이다. 아이들이 과학수업에서 받아온 작은 화분들도 꽤 많다. 그 중 누구 이야기부터 할까... 고민하다가 며칠전 나에게 “또?!”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리게한 이 친구 이야기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큰아이 연수가 ‘마법의 텃밭’이라고 부르는 스티로폴 상자 텃밭이다. 크지않은 스티로폴 상자 두 개에서 지난 2년동안 우리가 수확한 것은 방울토마토 여러개, 초록고추 몇 개가 다다. 아이들은 학교나 유치원에서 가끔 모종을 받아온다. 방울토마토 모종은 재작년, 그러니까 연수가 4학년때 체험학습을 갔다가 받아왔다. 토마토는 키가 엄청 잘 자라는 식물이다. 지지대를 해서 묶어주면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면서 조금은 구불구불하게 엉키면서 잘 자란다. 노란 꽃이 조로롱 달렸을 때 작은 붓으로 몇번 건드려주면 수정이 되어서 초록색 토마토 열매가 달린다. 우리집 베란다는 여름이면 나름 밀림이 되어서 작은 날파리들도 좀 날아다니는지라 꽃들을 그냥 놔둬도 수정이 되기도 한다.
연수는 편식이 심해서 채소를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제가 받아온 토마토는 자라는동안 좋아하며 지켜보더니 열매가 달리자 씻어서 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토마토를 잘 먹게 되었다! 이 편식 심한 열두살이 잘 먹는 몇 안되는 생채소는 오이, 토마토, 상추 정도인데 다 텃밭농사에서 직접 키우고 수확해본 것들이다. 베란다에서라도 텃밭농사를 계속해온 보람이 있다.
2년을 자란 토마토는 이번 겨울에 가지가 말라서 많이 잘라낸 뒤에 죽는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연한 초록 새 가지가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 건 식물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텃밭에서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ㅎㅎ 왜냐면... 우리 꼬마들이 가끔 아무 씨앗이나 여기에 가져다 심기 때문이다. 사과를 먹다가 나온 사과씨도 심고, 망고 씨앗도 저 깊이 어디 묻혀있다. 밖에서 날아온 클로버나 이름모를 풀들이 자랄때도 많다. 그중에 며칠전에 내가 발견하고 크게 웃은 것은.. 밤나무다.
막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고추모종을 심어서 쑥쑥 자라고 하얀 꽃이 피고 초록 고추가 달리기를 여러번, 겨울을 지낸 지금도 지난 가을부터 빨갛게 익다 못해 비틀어지고 있는 붉은 고추와 얼마전 따뜻해진 날씨에 새로 핀 하얀 꽃송이를 함께 달고있는 고추 나무 옆으로 비죽이, 언제 자랐는지도 모르게 키가 쑥 큰 밤나무 싹이 자라있었다.
정말 웃을 수 밖에 없다. 우리집 냉장고 저장실에 넣어둔 밤에서는 왜 뾰족이 싹이 트며 싹이 난 밤알을 ‘아이구 모르겠다’ 하고 상자 텃밭에 쏟아붓고 묻어두면 왜 나무가 자라는 것인지...
나에게는 ‘나무를 심는 사람’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우리집으로 온 밤알들, 도토리 씨앗들은 모두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우월한 유전자들을 타고난 씨앗들인건지. 아니면 연수의 말마따나 우리집 상자텃밭은 무엇이든 자라게하는 ‘마법의 텃밭’인 것인지?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죽던지 살던지 모르겠다, 너 맘대로 해라 하고 내버려두는 무심한 반려인간들 옆에서 애써서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향해 잎을 뻗으면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우리집 반려식물들의 숙명인건가.
저 밤나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디에 옮겨심으면 자랄까? 그냥 저기서 자라게 두어야할까? 겨울난 고추들은 이제 그만 따야지.. 빨간 고추 3개를 따서 잘 씻어서 썰어서 얼려두어야겠다. 가끔 반찬에 넣으면 예쁘고 맛도 있겠지. 토마토가 자라는 상자안에는 어떤 허브 같은 풀이 한구석에서 잘 자라고 있던데 뭘까?
상자텃밭에 들어있는 흙은 예전에 내가 강릉 친정에 갔을때 화분에 쓸 흙이 필요하다고 하니 엄마가 집옆의 밭에서 큰 비닐봉지로 한봉지 담아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식물들이 우리집에 와서 살다가 죽거나하면 그 마른 가지와 뿌리, 흙까지 모두 쏟아부어서 합쳐진 것들이다.
고향의 바람과 햇볕과 풀씨들이 담긴 흙, 그리고 어느 하우스의 배양토와 퇴비와 꽃씨가 함께 섞여있는 우리집 상자텃밭에는 많은 마음들이 함께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고향 부모님의 마음과 잠시 예쁘게 자라고 꽃피었던 많은 생명들의 꿈이 작은 스티로폴 상자 텃밭에 마법의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사는 일이 다 마법이지.
우리집에는 식물이 많이 산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살아온 식물도 있고 작년에 새로 우리집에 온 식물도 있다.
‘반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짝이 되는 벗’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반려자, 반려인이라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 있지만 요즘은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장난감이라는 의미의 ‘완’자가 들어있는 ‘애완’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친구라는 의미의 ‘반려’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식물은 어떨까. 식물들은 굉장히 독립적이다. 내가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기도 하지만 거의 스스로 살아간다. 햇볕을 받고 숨을 쉬며 자란다. 말을 주고받는 법은 없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문득 시선이 머문 나에게 빛나는 초록 잎으로, 고운 꽃으로 뭉클한 위로와 상쾌한 인사를 건네준다.
함께 살아가는 친구. 나에게는 안방 베란다와 거실 한켠, 아이들 방과 화장실에서 자라고 있는 이 식물들이 좋은 반려 친구들인 셈이다.
언젠가부터 안방 베란다를 가득 채운 이 식물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수선하고 정신없긴 하지만 나름의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식물들. 나에게는 모두 소중하고 예쁜 친구들이다.
바쁜 육아와 살림의 시간 사이에 잠깐 짬을 내서 이 베란다에 서서 호스로 물을 뿌려주면서 나는 구석구석 숨어있는 식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잘 자라고 있나 살피고 혹시 그새 시든 아이는 없는지, 새로 싹튼 식물은 없는지 찾아본다. 이렇게 초록 식물들과 눈을 맞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식물들의 냄새를 맡는 시간에 나는 참 큰 위로를 받곤 했다. 잠시 시골 친정집 마당에 선 것처럼.. 나만의 작은 정원에 머무는 시간.
식물을 키우며 살아온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스물대여섯살, 혼자 자취할 때부터 식물을 키운 것이 생각나니 이십년 가까이 되었네.
식물들 이야기를 이제부터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으로 식물을 잘 알지도, 키우지도 못하는 사람인지라 식물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식물과 함께 해온 내 이야기, 나와,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온 식물 이야기 정도 될 것 같다. ^^ 나에게 소중한 존재들- 친구들 이야기. 하다보면 더 좋은 생각도 들고, 더 잘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