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벤자민은 신혼집 집들이선물로 받았다.
남편 회사분들의 집들이가 있던 날 낮에 먼저 우리집에 배달로 도착했던 작은 화분.

찾아보면 아마 이 블로그 예전 글 어디쯤에 이 화분이 처음 우리집에 온날 글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 우리 벤자민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볼 수 있겠네^^
한번 찾아서 나중에 링크를 걸어놓던지 해야겠다.
(찾아보니 처음 온날 포스팅은 없고 첫 분갈이때 쓴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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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풀꽃들이 손짓할 때 - https://sadeak.tistory.com/m/entry/%EA%B8%B8%EA%B0%80%EC%9D%98-%ED%92%80%EA%BD%83%EB%93%A4%EC%9D%B4-%EC%86%90%EC%A7%93%ED%95%A0-%EB%95%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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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1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삼벤자민은 우리 가족과 함께 성장해왔다.
연신내 갈현동에서 첫째가 태어나고 자랄 때 인삼벤자민도 조금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다.
그리고 두번째 집인 강동구 강일동으로 이사와서 지금의 큰 화분으로 두번째 분갈이를 했다.
둘째와 셋째가 태어나고 세번째 집인 지금 하남집으로 이사오기까지 벤자민은 언제나 우리집의 큰 화분중 하나로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몇 번 위기는 있었지만... 거실이나 방에 있을 때 벤자민은 가끔씩 내가 물주는 것을 게을리해서 잎이 새들새들 마르곤 했다.
한참만에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 주면 그 물이 물받이 밖으로 넘쳐서 강화나무로 된 마루바닥에 검게 얼룩을 남기며 스며들곤 했다.
그럼 황급히 다른 자리로 옮기고..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금씩만 주는 날이 오래되면 어느새 벤자민 잎사귀가 말라서 우수수 떨어지기도 했다.

하남 집에 와서는 안방에 두었다가 빛도 잘 못보고 물도 잘 못 줘서 많이 시들었다.

오래 우리와 함께 지낸 인삼벤자민이 힘이 없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파서
결국 방 안에 예쁘게 두기보다는 베란다로 옮겨서 요양(?)을 하기로 했다.
안방 베란다는 햇볕도 잘 들고 무엇보다 물을 가끔씩 흠뻑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집 반려식물들에게는 가장 살기좋은 곳이다.
어지간히 시들하던 화분들도 안방베란다로 오면 신선한 공기, 햇볕과 물을 듬뿍 마시며 친구들 사이에서 싱싱하게 기운을 차리곤 했다.

인삼벤자민도 다행히 다시 잎의 윤기를 되찾고 살아났다.
기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는
이제는 벤자민보다 키가 더 커진 벤자민 아기가 옆에 함께 있다. ^^

 

 

초록색 그로우백안에서 팔을 쑥 뻗으며 자란 인삼벤자민 아기.

이 녀석은 엄마 벤자민의 가지가 쑥쑥 자랄때 가지치기를 해서 잘려진 가지를 그로우백에 심어본 것이다.
(내가 했는지, 아빠가 해주신 건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만큼 자랄 때까지 꽤 오래 그로우백에서 시간이 걸린걸 보면 아빠가 하남집 이사하고 처음 오셨을때 잘라주신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잘린 여러개의 가지를 잎을 좀 떼고 물에 며칠 담가두었다가 같이 심었는데 그중에 이 한 녀석만 살아서 자랐다.

나는 가지치기를 못한다. ㅠㅠ
천성이 정이 많고 겁도 많은 나는 무엇을 버리거나 잘라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지러운 안방베란다 사진을 본 분들이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버리지 못하는 나는 무엇이든 최대한 모으고 쌓아둔다.
자잘한 화분들도 버리지 못해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모아두고, 이제는 버려도 될 법한 지난 날의 물건들도 한구석에 쌓아둔다. 언젠가는 쓰일 데가 있을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큼직한 창고가 있고, 마당도 있다면야 이 모든 화분들과 부속품들이 좀 더 정돈되어 지낼 수 있겠지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두세번을 이사를 하면서도 끝끝내 들고 다닌 화분들과 흙주머니들과 버팀목으로 쓰는 막대기들 사이에서 우리집 반려식물들은 오늘도 오밀조밀 아웅다웅 살아간다.

엄마 벤자민은 그나마 한번씩 친정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두어번 크게 가지치기를 해주셔서 그럭저럭 모양이 잡혔지만
그로우백에서 정말 제 멋대로 자란 아기 벤자민은 삐죽하니 키만 크지 전혀 모양이 없는 채로 가지를 벌려간다.
한번 잘라주어야할텐데..
그리고 그 잘린 가지들을 다시 심어서 또 다른 벤자민 아기들을 키워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여름이 오기 전에 엄두를 내봐야겠다.
아니, 친정 아빠가 한번 하남 우리집에 오시는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 벤자민 화분을 받았을 때 나는 결혼생활이 어떠하리란건 1도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은 아냐고 하면.. 역시 잘 모르겠다.
13년.. 내가 살아온 만큼은 알 것 같지만 가보지않은 앞으로의 길은 또 모르는 거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앞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전혀 모른다는 건 똑같지만
달라진 것도 있다.
그때의 나는 조금더 힘이 있고 씩씩했던 것 같다. 용감했던 것도 같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며 힘들어도 즐겁게 웃으며 살아왔다. 기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벤자민에게서도 이제는 시간이 느껴진다.
그녀도 몰랐겠지. 13년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이렇게 여러 곳을 오가며 우리 가족이 자라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살게 될 줄은.
이제는 햇볕좋은 베란다에서 오래전에 그녀가 떨군 잎사귀들을 이불처럼 덮고 오래되어 터진 줄기 옆으로 새로 진한 갈색의 줄기들을 감아올리며 살아가고 있는 벤자민.
우리, 애썼다고.. 앞으로도 잘 지내자고 말을 건네본다.
그전만큼 젊지는 않지만 다시 봄을 맞아 가지 끝으로 여린 연두색 새잎을 밀어올리는 벤자민처럼 나도 오늘의 새 잎을 키워내며 더 깊은 초록빛을 간직한채 살아가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