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꽤 그럴싸한 화분도 여러개 있다.
공기정화도 되고 멋있기도 한 큰 식물들이 자라는 그 화분들은 주로 이사할때 선물로 받거나 한 것들이다.
아이들이 과학수업에서 받아온 작은 화분들도 꽤 많다.
그 중 누구 이야기부터 할까... 고민하다가
며칠전 나에게 “또?!”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리게한 이 친구 이야기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큰아이 연수가 ‘마법의 텃밭’이라고 부르는 스티로폴 상자 텃밭이다.
크지않은 스티로폴 상자 두 개에서 지난 2년동안 우리가 수확한 것은 방울토마토 여러개, 초록고추 몇 개가 다다.
아이들은 학교나 유치원에서 가끔 모종을 받아온다.
방울토마토 모종은 재작년, 그러니까 연수가 4학년때 체험학습을 갔다가 받아왔다.
토마토는 키가 엄청 잘 자라는 식물이다. 지지대를 해서 묶어주면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면서 조금은 구불구불하게 엉키면서 잘 자란다.
노란 꽃이 조로롱 달렸을 때 작은 붓으로 몇번 건드려주면 수정이 되어서 초록색 토마토 열매가 달린다. 우리집 베란다는 여름이면 나름 밀림이 되어서 작은 날파리들도 좀 날아다니는지라 꽃들을 그냥 놔둬도 수정이 되기도 한다.

연수는 편식이 심해서 채소를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제가 받아온 토마토는 자라는동안 좋아하며 지켜보더니 열매가 달리자 씻어서 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토마토를 잘 먹게 되었다!
이 편식 심한 열두살이 잘 먹는 몇 안되는 생채소는 오이, 토마토, 상추 정도인데 다 텃밭농사에서 직접 키우고 수확해본 것들이다. 베란다에서라도 텃밭농사를 계속해온 보람이 있다.

2년을 자란 토마토는 이번 겨울에 가지가 말라서 많이 잘라낸 뒤에 죽는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연한 초록 새 가지가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 건 식물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텃밭에서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ㅎㅎ
왜냐면... 우리 꼬마들이 가끔 아무 씨앗이나 여기에 가져다 심기 때문이다.
사과를 먹다가 나온 사과씨도 심고, 망고 씨앗도 저 깊이 어디 묻혀있다.
밖에서 날아온 클로버나 이름모를 풀들이 자랄때도 많다.

그중에 며칠전에 내가 발견하고 크게 웃은 것은..
밤나무다.

막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고추모종을 심어서 쑥쑥 자라고 하얀 꽃이 피고 초록 고추가 달리기를 여러번, 겨울을 지낸 지금도 지난 가을부터 빨갛게 익다 못해 비틀어지고 있는 붉은 고추와
얼마전 따뜻해진 날씨에 새로 핀 하얀 꽃송이를 함께 달고있는 고추 나무 옆으로
비죽이, 언제 자랐는지도 모르게 키가 쑥 큰
밤나무 싹이 자라있었다.

정말 웃을 수 밖에 없다.
우리집 냉장고 저장실에 넣어둔 밤에서는 왜 뾰족이 싹이 트며
싹이 난 밤알을 ‘아이구 모르겠다’ 하고 상자 텃밭에 쏟아붓고 묻어두면 왜 나무가 자라는 것인지...

나에게는 ‘나무를 심는 사람’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우리집으로 온 밤알들, 도토리 씨앗들은 모두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우월한 유전자들을 타고난 씨앗들인건지.
아니면 연수의 말마따나 우리집 상자텃밭은 무엇이든 자라게하는 ‘마법의 텃밭’인 것인지?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죽던지 살던지 모르겠다, 너 맘대로 해라 하고 내버려두는 무심한 반려인간들 옆에서
애써서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향해 잎을 뻗으면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우리집 반려식물들의 숙명인건가.

저 밤나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디에 옮겨심으면 자랄까?
그냥 저기서 자라게 두어야할까?
겨울난 고추들은 이제 그만 따야지.. 빨간 고추 3개를 따서 잘 씻어서 썰어서 얼려두어야겠다.
가끔 반찬에 넣으면 예쁘고 맛도 있겠지.
토마토가 자라는 상자안에는 어떤 허브 같은 풀이 한구석에서 잘 자라고 있던데 뭘까?

상자텃밭에 들어있는 흙은 예전에 내가 강릉 친정에 갔을때 화분에 쓸 흙이 필요하다고 하니 엄마가 집옆의 밭에서 큰 비닐봉지로 한봉지 담아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식물들이 우리집에 와서 살다가 죽거나하면 그 마른 가지와 뿌리, 흙까지 모두 쏟아부어서 합쳐진 것들이다.

고향의 바람과 햇볕과 풀씨들이 담긴 흙, 그리고 어느 하우스의 배양토와 퇴비와 꽃씨가 함께 섞여있는
우리집 상자텃밭에는 많은 마음들이 함께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고향 부모님의 마음과 잠시 예쁘게 자라고 꽃피었던 많은 생명들의 꿈이
작은 스티로폴 상자 텃밭에 마법의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사는 일이 다 마법이지.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