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부모님들이 감자를 캐서 보내주셨다.
감자가 오면 하지가 지났다는 것이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 것이고, 순하게 비가 잘 지나가기를 빌면서 어둑한 집에서 고소한 기름냄새를 풍기며 감자전을 부쳐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4월 봄에 심어서 6월 하지 무렵에 캐는 고향집 감자가 익는 동안 앞산에서는 멧비둘기가 ‘구구우~ 구구’ 하고 여러번 울었을 것이고, 친정집 밭 옆에 있는 고속도로로는 차들이 씽씽 달렸을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오고가는 차들도 좀 적었으려나.. 고향집 밭 흙기운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은 감자를 만져보며 물어본다.
감자가 오면 아이들이 바쁘다.
큰 감자 사이사이에 섞인 작은 감자들을 찾아내 따로 양푼에 담는다.
호미에 찍힌 상처가 있거나 빨리 먹어야할 것 같은 감자들도 따로 담아서 오늘 감자전을 하기로 한다.
두고 먹을 감자들은 젖은 박스에서 빼내서 검은 자루에 담아둔다. 연호와 연제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잘 분류하고 잘 담았다.
연수는 오늘 먹을 감자를 씻어서 깍는 담당.
너무 잘하면 담에 강릉갔을때 외할머니가 자꾸 시킬 것같아서 안된다며 일부러 천천히 한다.
형이 필러로 깍아준 감자를 엄마가 칼로 쪼개주면 연호와 연제가 녹즙기로 간다.
그러면 건더기와 물이 따로 분리되서 나온다. 따로따로 큰 그릇에 모아준다. 감자 간 물 밑에는 뽀얗고 말캉말캉한 녹말이 잔뜩 고여있다. 윗물을 따라서 다른 그릇에 부어두고 처음 만졌을때는 딱딱하지만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주면 말캉하게 떠올려지는 하얀 녹말은 감자 건더기쪽에 합쳐준다. 쫄깃한 감자전이 되도록..
올해로 감자갈기 경력이 최소 5년 정도 되는 연호는 이 과정을 잘 한다. 연제도 가르쳐가며...^^
이 과정을 위해 신문지 깔고 녹즙기 갖다놓고 조립하며 세팅하고, 뒷마무리하고, 중간중간 아이들 장난치는거 말리고, 자기만 많이 못 갈았다며 삐지는 막내 달래는 등의 수발드는 것이 내 역할이다.
한바탕 소동끝에 감자가 다 갈아지면 건더기 모은 것에 녹말과 물을 적당히 잘 섞고, 소금도 넣고, 야채가 있으면 좀 잘라 넣어서 감자전 반죽을 만들고 부친다.
식구가 여럿이니까 후라이팬을 두개 정도 놓고 부친다. 감자전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해먹는 것은 내가 강릉 사람이고, 아이들이 많고, 밖에는 장마비가 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멀리 살고 아이들 많은 막내딸을 위해 가장 큰 박스를 갖다놓고, 자꾸만 감자를 더 채우고 채워가며 자주 보지 못하는 딸 생각을 하셨을 부모님을 나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위 속에 고향집 밭에 앉아 감자를 캐고, 리어카에 싣고오셔서 차고 뒤에 깔아놓은 돗자리위에 감자를 쏟아 널어놓고 말린뒤에, 박스에 차곡차곡 넣고 신문지로 덮고, 박스를 닫은 후에 테이프를 단단히 붙여서 동네 택배 사무실까지 싣고가서 택배용지에 주소를 단단히 써서 붙여 보낼 때까지.. 다리가 아픈 아버지와 어깨가 아팠던 엄마의 손길과 발걸음을 따라가며 나는 아이들과 감자를 씻고 갈고 부쳐서 먹는다.
작은 감자들로는 알감자 조림을 했다.
두고먹을 수 있는 반찬이지만 냉장고에 넣었다 꺼내니 감자가 너무 쫀득해졌다. 만들어서 바로 먹었을때가 제일 포슬포슬하고 맛있었다.
땅은 정말 신기하다. 땅에서 온 먹거리들을 맛있게 먹을때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먹거리들이 만들어질까.
감자가 도착한 날 저녁밥은 감자전으로 대신했다.
알감자조림에 밥도 조금씩은 먹고, 감자전을 배부르게 먹고 수박도 먹었다.
내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감자를 심고, 감자를 캐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고생스런 일이기도 하지만 땅이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것을 준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끼고, 또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먹는 것은 가족들의 짭짤한 손맛,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사랑, 땀, 감자의 생명력, 택배기사님들의 수고, 지구의 온기, 고향의 바람과 비, 태양.. 그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