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21.02.22 과자
  2. 2020.08.17 용용이에게
  3. 2020.08.05 용용이가 사라졌다
  4. 2020.07.22 비오는 여름날
  5. 2020.07.11 아침 호수 풍경
  6. 2020.06.23 냉동실 정리 6
  7. 2020.03.12 봄 찾기
  8. 2020.02.16 아침 산책
  9. 2020.02.11 뜨거운 차 한 잔
  10. 2020.01.31 눈이 귀한 겨울
하루2021. 2. 22. 16:02



아이들이랑 운동삼아 동네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고 마트에 들러서 장을 봐왔다.
나는 반찬거리를 고르고 아이들은 저마다 먹고 싶은 간식거리를 2개씩 고르기로 약속을 했다.
아이들은 과자 한 봉지, 음료수 캔 하나씩을 골라왔다.

집에 와서 손 씻고 사온 간식을 먹는데 연수가 골라온 과자가 ‘사브레’ 였다.
샤브레...

어린 날에 증조할머니는 내 책상 위에 휴지를 곱게 깔고 샤브레를 두어개 올려놓아 주곤 하셨다.
30년도 더 전에 참 고급과자였던 ‘샤브레’는 큼지막한 양철통에 들어있었던 적도 있고, 하얀색 두꺼운 골판지가 속에 들어있는 종이 포장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증조할머니께 ‘사브레’를 사다 드리는 것은 시내에 살고 계시던 쌀집작은할아버지.

증조할머니는 보름달처럼 둥글고 달콤한 그 과자를 아껴서 가끔 드시곤, 그나마도 거의 우리 삼남매에게 조금씩 간식으로 자주 내어주셨던 것 같다.

내가 열네살, 열다섯살 무렵에 돌아가신 증조할머니.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신입생 무렵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나름 바빴던 시절에 학교에 다녀와보면 책상위에 증조할머니가 살짝 가져다놓으신 ‘사보레’가 있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하얀 휴지 두 칸을 떼서 한칸을 바닥에 깔고 과자를 놓고, 이어진 한 칸은 곱게 과자 위를 덮어놓으셨었나...

연수에게 “너 왜 이 과자를 골랐어? 이거 엄마가 어릴때 엄청 좋아하던 과자인데... 증조할머니가 주시던 고급과자였어..” 하고 말했더니 “어디선가 먹어봤던 것 같아서...” 하다가 “아, 외갓집에서 할머니할아버지랑 먹어봤던 것 같아” 한다.

어릴때 먹던 것보다 샤브레는 많이 얇아지고 작아진 것 같다.
아닌가.. 내가 큰 건가?
어린 나에게는 정말 크고 두툼한 과자였는데... 아니다. 작아진게 맞는 것 같다. 포장도 가벼워졌고..
시간이 30년이 흘렀으니까...

증조할머니도, 증조할머니에게 샤브레를 사다드리던 작은할아버지도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작은할아버지는 지난 겨울에 돌아가셨다.
코로나 때문에 가뵙지도 못하고 집에서 마음으로 ‘편히 쉬세요 할아버지.. 다정한 말씀들 감사했습니다..’하고 마음으로만 인사드렸던 할아버지가
오늘 샤브레 과자를 보니 다시 생각이 난다.



(오랫만에 친정에 갔다가 차고옆에서 오래된 간판을 보았다. 엄마께 여쭤보니 작은할아버지가 하시던 가게 간판이라고 알려주셨다. 할아버지, 다정하신 어머니 곁에서 편히 쉬시길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8. 17. 16:47



용용이가 사라졌던 그 날 밤에 용용이를 찾았다.
용용이는 제가 살던 작은 집이 올려져있는 낮은 나무 책장 뒤쪽에 떨어졌던 모양이다.
밤늦게 남편과 함께 책장을 옮겨보니 그 밑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죽은 용용이가 있었다ㅠㅠ

혹시 물에 넣어주면, 먼지가 벗겨지면 숨을 쉬고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혹시라도.. 작은 기대를 하며
비어있던 용용이의 집 물 속에 용용이를 넣어주었다.
아이들은 모두 잠든 밤이었고,
집에 넣은 용용이를 안방 베란다에 옮겨놓으며 나 혼자 많이 울었다.

아이들은 낮에도 여러번 용용이를 찾았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야행성인 용용이가 이제 일어나서 돌아다닐지도 모른다며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나와 나름대로 집안 구석구석을 비춰보며 열심히 찾았다.
연호가 “아무래도 멀리 안 갔을 것 같은데.. 이 책장 주변 어디에 있을 것 같은데...”하면서 낮은 거실 책장을 열심히 살폈지만
벽에 거의 딱 붙어있다싶이 한 책장 뒤쪽 틈이나 바닥의 작은 틈으로 용용이가 들어갔을 것 같지는않다고 나는 계속 말했다.
그런 틈은 용용이가 들어가기에도 너무 작다고 생각했고, 설마 그 쪽으로 내려갔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리로 내려간 모양이었다. ㅜㅜ
밤에 아이들이 잠들고, 운동하고 온 남편과 이런 저런 얘길하고 자려고 누웠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일어났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남편과 함께 책장을 옮기고 용용이를 찾았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말해주지 말라고 했다. 알면 많이 슬퍼할텐데.. 그냥 멀리 밖에 나가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용용이 찾은걸 얘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알려주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돌보고 사랑하던 생명인만큼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슬퍼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보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서 제 핸드폰을 찾는다, 게임을 한다 분주할 때 용용이를 찾았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안방 베란다로 가서 용용이를 보고 용용이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많이 울었다.

“엄마, 내가 어제 후레쉬로 책장 밑에 비춰볼 때 거기 용용이 비슷한게 있는거 같았는데 엄마한테 말을 안 했어.. 흑흑”
연수는 울면서 자기가 그때 얼핏 후레쉬에 비친 무언가를 엄마에게 얘기해서 책장을 옮겼더라면 용용이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는 듯 했다.
나도 그랬다. 내가 진작 저 책장을 옮겨봤더라면.. 아침에만 그렇게 해봤더라면. 그랬다면 밤사이 책장 밑 먼지더미에 빠져 괴로워하는 용용이를 구해서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ㅠㅠ

우리는 아쉬움과 후회와 미안함을 안고 오래오래 서로 껴안고 울었다.
연호는 울면서 “엄마, 용용이는 하늘나라에 잘 갔을꺼야. 거기서 자기 친구들을 만나서(우리집에 함께 왔었으나 일찍 죽었던 도룡뇽들)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해줄꺼야.. 그리고 같이 재밌게 놀거야, 그지?” 하고 말했다. 나는 그럴거라고 대답하면서 연호 등을 쓸어주었다.

용용이를 어디에 묻어줄까... 밖에 마당에 묻어줄까? 내가 물으니 연수는 싫다고, 우리집 화분에 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용용이가 계속 우리집에 같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얼마전 분갈이해서 뿌리를 내려 살고있는 작은 인삼벤자민 옆에 묻어주기로 했다.

내가 모종삽으로 화분의 땅을 파고, 연수가 비닐장갑을 끼고 용용이를 들어올려서 먼지를 좀 떼어주고 땅 위에 잘 놓아주었다.
우리는 잠든 용용이 위로 흙을 두텁게 덮고, 그 위에 평소 용용이 집에 놓여있던, 용용이가 때때로 올라가 몸을 말리고, 그 아래 그늘의 물속에서 헤엄치던 큰 돌을 올려주었다.
용용이는 용용이의 돌과 함께 편히 쉬고, 인삼벤자민과 함께 자라나 푸른 하늘 아래 초록 잎사귀로 햇살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연호가 하늘을 보며 용용이의 영혼에게 인사를 했다.
“용용아 잘 가! 거기서 잘 지내! 친구들에게 우리는 잘 있다고 전해 줘~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

나도 인사를 했다.
“용용아 잘 가.. 그동안 함께 지내줘서 고마웠어.. 충만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렴.. 더 키워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용용이가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까? 그럼 다시 태어나서 또 우리집에 어떤 동물이나 생명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까? 또 만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물었다. 글쎄..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명은 돌고도는 것일지도 모르잖아.. 용용이는 인삼벤자민의 몸속에 들어가 나무가 될 수 도 있고, 또 어느 날에는 다른 무언가로 이 세상에 돌아올 지도 모르잖아. 우리도 그럴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아주 헤어지는건 없는지도 모르잖아...






용용이가 떠난 뒤로 오래오래 비가 왔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위기로 기록적인 긴 장마였다.
우리 앞에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다 알 수는 없다.
힘껏 오늘을 헤쳐나갈 뿐이다.
다만 내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제의 잘못들을 바로잡는 오늘을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용용이를 보내고 마음에 또 한겹 그늘을 얻은 아이들이 한뼘씩 자라난다.
우리 곁의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자고, 더 잘 돌보자고 마음을 모은다.

우리집 가까운 곳에 ‘구산’이란 지명을 가진 곳이 있는데 거기 있는 작은 산이 거북이를 닮았다고 해서 예전부터 ‘구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가 그친 주말에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구산에 다녀왔다. 오랫만에 맡아보는 숲의 공기는 향기로웠다.
자연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자연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사람이 아프다는 것은 자연이 병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해와 이상 기후와 코로나는 자연과 사람이 모두 아프다는 아우성이다.






모든 생명들의 터전인 지구, 우리들의 자연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작은 행동, 작은 마음을 함께 모아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8. 5. 11:32


용용이가 사라졌다.
용용이는 우리집에서 사는 도룡뇽 이름이다.
작년 초여름쯤에 연수가 방과후 융합과학 수업에서 받아왔다.

맨처음에 받아온 친구는 안타깝게도 며칠만에 죽었고, 다음주 수업에서 연수가 다시 한번 두 마리를 받아왔는데 그중에 한 마리는 죽고 한마리만 오래도록 잘 살았다.

우리는 도룡뇽에게 ‘용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작은 채집통에 집을 만들어 주었다.
큰 돌 하나와 물만 채워져 있는 작은 집에서 용용이는 주로 물 속에 들어가서 헤엄치고 걸어다녔다.
말린 밀웜을 한통 사서 밀웜 하나를 작게 몇 조각으로 잘라 넣어주면 그것을 먹고 살았다.

평소에 우리집은 건조한 편이라 용용이는 물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요며칠 비가 계속 내리고 집안이 습해지자 용용이가 집(채집통) 벽을 타고 올라와 공기구멍이 뚫려있는 뚜껑 가까이 까지 와있었다.
평소 못보던 모습이라 우리는 깜짝 놀라 용용이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몸이 마르거나 어디가 아픈 것 같진 않았고, 공기가 습해져서 물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기 좋은 환경이 되니까 움직이고 싶은 것 같았다.

어제 오허에 아이들과 오랫만에 용용이 집 물을 갈아주자며 화장실 세면대에 용용이를 넣어놓고 집 청소를 했다. 며칠전에 미리 받아두어서 염소를 날린 수돗물로 물도 다시 채워주었다.
잠깐동안의 세면대 나들이 동안 용용이는 신나게 타일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넓은 물에서 헤엄치기도 했다.



 

그렇게 물을 갈아주고 난 후에 오후에 보니 용용이가 또 벽을 타고 올라와 있었다. 문득 물이 너무 따뜻해서 더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계곡이나 개울에서 살면 아무리 여름이라해도 물이 좀더 시원할텐데 작은 채집통 집 속의 물은 방안 온도가 30도 가까이 되는 여름날 자연보다 훨씬 더울 것이었다.

그 얘기를 했더니 연수가 “맞아. 선생님이 한여름에는 물 속에 얼음 조각이나 아이스 팩을 넣어서 물을 시원하게 해주라고 하셨어.” 하고 들은 내용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오후 동안 얼음 조각을 한 두개씩 넣어주었더니 용용이가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시원해서 좋은가봐! 생각하고는 저녁 무렵에는 아이스 팩 하나를 물에 담가주었다.
그런데 아이스팩이 커서 용용이 집 뚜껑이 닫히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다 용용이가 나오면 어떡하지...
연수가 아이디어를 내어 비닐을 가져다가 아이스팩 부분을 빼고 나머지 부분을 비닐로 덮어놓았다. 공기는 통해야하니 비닐 한 쪽을 살짝 열어놓고, 플라스틱 채집통 뚜껑으로 비닐이 벗겨지지 않게 덮어놓았다.

그렇게 하고 모두 잠을 잤는데...
아침에 비닐을 걷으면서 보니 용용이가 없었다.
벽에도 없고, 물 안에도 없고, 돌도 꺼내서 뒤집어보았지만 없었다.
아침밥 먹고나서 연호가 “엄마, 용용이 집에 잘 있나 비닐 한번 치우고 봐봐” 했다. 아침에 몇번 비닐덮힌 용용이 집을 보면서 ‘잘 있겠지..’ 속으로 생각했는데 연제가 막상 뛰어가 살펴보고 “엄마! 용용이가 없어졌어!”하는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살짝 열린 비닐 한쪽 틈으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연수는 거의 울듯한 표정이 되어서 나와 함께 용용이를 찾아나섰다.
어제 밤에는 습도가 하도 높아 창문을 다 닫고 아이들은 거실에서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놓고 잤었다.
그러니 용용이가 갈 만한 곳은 거실과 부엌 아니면 문이 열려있던 안방 뿐이었다.
화장실은 아침에 남편이 일어난 뒤부터 열려있었으니 화장실로 들어갔으려나..
아이들은 모두 손에 손전등이나 핸드폰을 들고 가구들 틈사이, 침대 아래,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다.

“용용아, 어딨니—?”
“용용아 빨리 나와~!!”
용용이는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른 손가락 하나만한 길이의 작은 녀석이니 어느 틈 사이로 들어갔을지 알 수가 없다. 벽을 타고 올라갔는지, 화장실의 수채구멍으로 들어가버린 건 아닌지..

한시간 가까이 집안을 살피던 아이들은 용용이가 들어가 있을만한 구석 앞에 용용이 밥(밀웜)과 물 그릇을 몇 개 놓아두었다. 혹시 용용이가 숨어있다가 배고프면 밥 냄새를 맡고 나올지도 모른다고... 몸이 마르면 안되니까 물도 놔둬서 몸을 다시 적시고 갈 수 있어야한다고.

비가 계속 내리고 습한 날씨라 용용이가 나와있어도 몸이 금방 마르지는 않을꺼야.. 괜찮을꺼야... 용용이는 살 수 있을꺼야.. 원래 도룡뇽은 숲이나 산의 흙, 풀밭에서 사는 녀석이니까 가구먼지같은 것들도 잘 헤치고 지나갈꺼야... 그리고 우리집 안방 베란다에는 화분도 많고 흙도 많으니까 베란다로 갈 수 있으면 살 수 있을꺼야.
곤충이나 지렁이를 먹고 사니까 우리집 곳곳에서 가끔 보이는 거미들을 먹을 수 있을꺼야..
도룡뇽은 야행성이니까 지금은 자고 있을지도 모르고, 밤이 되면 우리가 내논 밥이랑 물을 찾아서 나올지도 몰라...

바램은 길고 마음은 짠하다.
작은 집에서 오랫동안 답답하게 살았던 용용이.
더 잘 지내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부디 잘 돌아오면 좋겠다. 돌아오면 더 널찍하고 돌과 흙과 풀이 있는 집을 꼭 마련해줄께..
혹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거라면 부디 무사히 잘 살아주렴...
그동안 용용이 물갈아주는 것은 연수랑 연호가, 밥주는 것은 나와 연호가 함께 해왔었다.
작고 소리도 없고 늘 제 집안에서 지내는 용용이를 우리는 곧잘 잊어먹고 한동안 지내다가 문득 ‘아! 용용이 잘 있나? 밥줘야지!’하고 들여다보곤 했다.
이따금 아이들대신 내가 ‘우리도 밥먹는데 용용이랑 물고기들도 밥 줘야지..’하고 생각나서 용용이 집앞에 가보면 용용이는 의연하게 물 속에 앉아있어서 “잘 살아줘서 고맙다. 밥 잘 먹고 잘 지내라~”하고 말건네곤 했다.

잘 돌보지는 못했지만 일년 넘는 시간동안 한집에서 함께 살던 생명이 사라지니 허전하고 마음 아프다.
부디 살아서 잘 지내기만 빌 뿐이다... 미안하고, 고마웠어.. 용용아.
지난 밤에는 잠들기전에 귀가 찢어질만큼 큰 소리로 천둥이 치고 벼락이 한동안 번쩍번쩍 했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들도 모두 무서운 밤이었을 것이다.
그 밤에 인생 처음으로 집을 나선 용용아, 부디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아주렴.




처음 제 집 밖으로 나와본 작은 용용이에게 우리집은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 혹시 밖으로 나갔다면 밖은 또 얼마나 어마무시하게 큰 세상일까. 용용이가 비오는 여름 마당으로 나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시원해 지기도 한다. 일생 처음으로 여름 세상을 만나보겠구나..
하지만 우리집 안에 어딘가 있는거라면 얼른 나와주렴, 용용아. 여름 세상으로 너를 데리고 나가서 보여줄께..
야생에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테니 다시 들어와야겠지만 너에게 꼭 자연을 만나게 해줄께.
용용아.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7. 22. 11:24


긴 장마를 지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장마하면 6월 말에 시작해서 7월 초에 끝나는 보름 남짓 되는 시간이었는데
요즘은 장마가 한 달 가까이 계속 되는 식으로 우리나라 기후가 변한 모양이다.

안그래도 아이들과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긴데 비까지 왔다갔다하니 더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 하루에 한두번은 마스크를 쓰고라도 놀이터에 나가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좀 쐬고오면 좋은데 어떤 날은 꼼짝못하고 집안에서만 복작복작 뒹굴거리게 되기도 한다.

비가 오고 세상에 온통 물안개가 엷게 차있는 것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어린 시절에 아빠와 함께 찾아갔던 삽당령 생각이 난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에서는 양봉을 오랫동안 하셨다. 한옥집에 살때는 마당 아래 밭이 시작되는 곳 정도에 벌통을 쭉 놓고 키우셨고, 양옥집으로 이사온 후에도 차고 옆, 지금은 아이들의 모래놀이터가 있는 곳에 벌통들이 예쁘게 조로록 놓여있었다.
그리고 벌통 곁에는 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의 전용 의자라고 할 수 있는 양철로 된 작은 삼발이 의자를 놓고 할아버지는 벌통 곁에서 앉아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오래오래 들으셨다.
벌을 지키는 것인지, 쉬시는 것인지,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 소식을 접하시는 것인지.. 그 모두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아버지는 그곳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나이가 드신 후에는 벌들을 돌보는 일이 할아버지의 중요한 노동이셨던 것이다.

더운 여름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더위를 피해 벌들을 데리고 삽당령이라는 깊은 산속으로 가서 지내다 오셨다.
삽당령은 이제 인터넷에 찾아보니 강릉에서 정선쪽으로 갈 때 넘어가게 되는 높은 고개로 행정구역은 강릉시 왕산면에 속해있다. 왕산은 강릉에서도 태백산맥쪽으로 붙어있어 산이 높고 숲이 울창한 지역이다.
벌들도 불볕더위에는 지치고 힘들어서 잘 지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는 삽당령 골짜기에 벌통을 갖다놓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동네의 빈집을 빌려서 한 달정도 살다가 오셨다.
가끔 아빠는 트럭을 몰고 삽당령에 가셔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필요한 생필품이나 반찬을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벌들을 살피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고 오셨다. 그리고 어린 내가 가끔 그 길에 동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시절이었다. 핸드폰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빌려쓰시던 작은 집은 허름했는데 가스나 전기가 제대로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가스 곤로 같은 것에 냄비밥을 끓여드셨을까? 전기밥솥은 있으셨을까?
작은 단탄방과 부엌이 있었던 것 같은 그 집의 벽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삼양라면이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걸려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전화도 없는 집이었을 것이라 아빠는 이따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잘 계신지 보기 위해서라도 몇일에 한번씩 삽당령에 다녀오셨을 것이다. 아마 산골 동네 어느 집엔가는 전화가 있는 집도 있었을테니 급한 일이 생기면 할아버지가 연락을 하실 수는 있었겠지만 별일없이 잘 계시면 그럴 일은 없을 터였다. 참... 그렇게도 살았네. 옛날에는..^^;;




깊은 산속의 여름은 시원하고 축축했다.
강릉 우리 동네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 날씨였어도 삽당령에 들어서면 비구름 속에 들어선듯 안개가 밀려올 때가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집은 안개가 엷게 덮여있어 축축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그 동네에서도 잘 나왔을까? 산에서는 전파가 잘 안 잡혔을지도 모른다. 나를 보고 반가워하셨던 할머니는 옥수수를 삶아주시고 나는 그것을 까먹으며 다시 아빠와 차를 타고 한 치 앞도 안보이는 안개로 덮인 구불구불한 산속도로를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밝히고 천천히 헤치며 내려왔었다.
벌들은 고지대에는 아직도 피어있는 싸리꽃들을 찾아다니며 사리꿀들을 만들어주었던 것 같고.. 나는 아홉살 무렵의 어린 아이였으니 30년도 더 전 이야기인 것이다.

삽당령에 따라가면 어른들이 일을 하시는 동안 나는 천천히 할아버지 집 주변의 계곡에 내려가보기도 하며 안개 속을 살살 돌아다녔다.
그 때처럼 천천히 깊은 안개 속에 오래 있어본 적은 없었다. 이제는 마흔이 훌쩍 넘은 어른이 되었지만 ‘안개’라는 말을 생각하면 삽당령에서 어린 날 만나보았던 안개를 떠올린다. 자연의 여러 현상을 생생한 감각으로 만나보았던 경험은 오래 남는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안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TV에서 본 적은 있겠지만 그 차갑고 사르르한 느낌은 모를 것 같다. 안개 속에 완전히 숨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안개는 그만큼 깊고 아득한 것이라는 것을 그 안에 있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삽당령을 오고 가는 길에 나는 트럭의 앞자리에 앉아 아빠와 무어라무어라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 아빠는 내가 물어보는 것들에 잘 대답해주셨고,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사물들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농작물이면 언제 심어 언제 거두는지, 산골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볼거리, 이야기거리는 끝이 없고 그래서 나는 아빠와 차를 타고 어딘가를 다녀오는 것이 좋았다.
학교에 다녀오다가 오죽헌 옆 길 쯤에서 트럭을 세우시고 “욱아, 아빠랑 어디 갈래?” 하고 소리치셨던 날이 있었는데 나는 신나고 기뻐서 “네!”하고 얼른 뛰어갔던 날의 풍경도 눈에 선하다.

자연이 풍부한 시간이었다.
우리 동네도 논과 밭과 뒷산, 앞산을 마음껏 오가며 놀 수 있는 곳이었는데
더 깊고 높은 산 속으로도 부모님을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오갈 수 있었던 날들.
도시의 아파트에서 단지 안의 나무 몇 그루와 새소리와 공원의 작은 호수물 정도만 접하며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좀 가엾게 느껴진다.
깊은 숲과 산허리를 둘러싼 안개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이 아이들은 알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것이 편리해졌고, 물자가 풍족하고, 여러 면에서 안전하고 살기좋아진 세상이기도 하지만 그 한켠에서는 자연이 날로 파괴되고, 사람의 삶에서 멀어지고, 전염병과 기후 위기가 극심해지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비가 오는 날, 상념이 깊다.
아이들이 자연과 행복하게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날을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싶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7. 11. 07:13


호수 물이 반짝이며 흘러간다.
잠수하고 나온 가마우지들이 날개를 활짝 펴서 말린다.
걷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꽃들이 눌 피었다 진다.
큰개미취도 이제는 까만 씨앗이 더 많이 보이고
푸른 붓꽃도 거의 다 졌다.
나팔꽃과 달맞이꽃, 개망초는 수수하고 잔잔한 아름다움을 담고 아직 아침 호수가에 피어있다.

노래기는 많이 줄었다.
쥐며느라가 많이 보이는 아침. 이제는 노래기를 밟게 될까봐 무서워 호수에 못 나오는 우리집 큰아이도 호수에 나올수 있겠다.
제 자전거 바퀴에 행여 노래기가 깔려죽을까봐, 그러면 노래기가 불쌍하니까 호수 공원에서 자전거를 못 타겠다는 아이 말을 들으며 ‘ 저 마음도 쓰일 데가 있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여리고 두렵고 생명가진 모든 것들을 애틋해하는 마음도 살다보면, 세상 어딘가에는 쓰임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태양이 떴다.
구름이 빛난다.

여름 한복판을 향해 가는데도 이른 아침에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벚나무에서 마른 잎들이 떨어져 날리는 것을 보니 아직 멀리 있는 가을 느낌이 언뜻 난다.
계절이 하루 안에도 여럿 들어있는 것 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6. 23. 10:48



냉장고의 냉동실이 고장났다.
이 냉장고가 몇년이나 됐지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강일동으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
강릉 엄마가 선물로 보내주셨던게 떠올랐다.
강일동에서 5년, 하남으로 이사와서 또 5년째가 되는 올해 정도면 얼추 10년이 되어가는 셈이다.
벌써 10년이라니.. 늘 새것같은 기분인데.

이사할때 한번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다른 짐들도 정리하느라 바빠
거의 빼냈던 것 그대로 다시 집어넣었을 것이다.
그후 5년이 흐르는 동안 한번도 완전히 비워본 적이 없었던 냉동실을 요며칠에 걸쳐 처음으로 정리해보았다.

곰탕이나 홍합삶은 물을 비닐에 넣어서 얼려두곤 했는데 그게 잘못됐는지 어느날부터 냉동실 한 칸 뒤쪽에 성에가 끼고 국물 얼려둔 것들이 녹아서 물이 자꾸 고였다.

며칠전에 맨아래칸에 국물 얼렸던 것들을 다 꺼내 버리고 물을 닦아냈더니 다시 물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성에는 계속 두껍게 얼어붙었고 어떤 것들은 잘 얼지 않았다.

AS 센터에 전화했더니 예약이 밀려있어서 7월 초나 되어야 출장서비스 예약이 된다고 했다. 그거라도 일단 예약을 해두고, 어제는 외근후 일찍 퇴근한 남편과 함께 드디어 냉동실의 모든 음식들을 꺼냈다.
얼마전에 냉동식품 많이 할인하는 온라인행사를 보고 아이들 좋아하는 반찬, 간식거리들을 많이 주문했더니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배송이 왔었다.
그 아이스 박스에 냉동실의 여러칸에 어지럽게 쌓여있던 수많은 봉지들을 꺼내 담았다.
몇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얼려진 야채들, 이미 한쪽이 녹아서 먹을 수 없게된 음식들은 버렸다.

그래도 그동안 가끔 조금씩이라도 정리해온 덕분에 많이 버릴 것은 없었지만 생기는데로 꾸역꾸역 넣어두기만 했던 식재료들이 뭐가 얼마나 있는지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올봄에 시댁과 친정에서 받은 떡봉지들을 한 바구니에 모아보니 쑥떡이 12봉지, 팥떡이 한 봉지.
청국장은 다 먹었고, 콩비지 얼려둔 것이 5봉지.
치킨, 돈까스 같은 냉동식품들은 맨 아래칸에 다 모아두었다.
곶감이 2봉지, 블루베리 얼린 것이 3봉지.
그외에는 국물멸치, 잔멸치, 오징어채가 1봉지씩.
이번주에 반찬할 돼지고기 얼린 것들, 국거리용 소고기, 생선 한봉지.
미숫가루 한봉지.


 

뭐가 얼마나 있는지 알게된다는 것이 이렇게 개운한 기분을 주는지 몰랐다.

어제 성에를 남편이 다 녹이고, 떼어내고 닦아낸 뒤로 냉동실은 우선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 눈에 안 보이는 판 뒤쪽으로 성에가 더 얼어있는 것 같고, 문도 좀 헐거워진 것 같아 7월에 수리 예약해둔 것은 받아야할 것 같다.
특냉실이 특히 냉동이 안되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기사님이 오시면 냉장고 전원을 끄고 냉동실을 한번더 다 비워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에 한번 정리를 해두고나니 기사님오셨을때도 훨씬 수월하게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전에 미리미리 냉동실에 있는 것들을 우선 많이 먹고, 냉장실 먹거리도 많이 먹어서 비워야지..

무엇이 얼마큼 있는지 알기도 어려울만큼 내가 정신없는 시간을 살아왔구나.. 싶다.
매일을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데리고 다니며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데만도 급급해서 정신없고 바쁠 때가 많았다. 집안 살림이든 내 마음이든, 아이들 자라는 모습이든 꼼꼼히 구석구석 살피기는 어려웠다.

십년쓴 냉장고가 살짝쿵 탈이 나면서 한번 그 속을 살펴보고 좀 숨이 통하게, 비우고 정리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 집에는 더 비워야할 곳들이 많다.
오래된 아이들 책이 쌓여있는 책장도 그렇고, 작아진 옷가지들도 계절마다 조금씩 비우긴하지만 더 많이 비워내야 한다.
묵은 장난감들도...
아이 셋이 만들어낸 온갖 미술작품들과 오래도록 가지고 놀다 망가진 장난감 쪼가리들도 나는 애틋해서 쉽게 버리지 못하고 다 모아두고 쌓아두며 살았다.
작은 구슬 한 알에도 우리들의 추억이 깃들어있고, 아이들의 손때가 묻어있으니 쉽게 버려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집이 온통 오래된 물건들로 꽉 차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느 정도 정리해서 내놓고, 꼭 필요한 것 말고는 물건을 너무 많이 사지않고.. 그래서 바람이 통하고 시원한 집을 유지해가야지.

집도 가볍게, 생활도 가볍게.
홀가분한 집에서 생각이, 마음이 자유롭고 깊게 오고갔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3. 12. 12:05

봄이라는 것이 그저 때되면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요즘같은 시절에는 애써 찾아야 찾아지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햇살이 따뜻해보이는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바람쏘이러 아파트 마당에 나갔다.
어린 쑥이 보인다.
연수는 냉이를 열심히 찾는다.

핸드폰으로 검색까지 해가며 최대한 냉이 비슷하게 생긴 풀을 찾아내 뽑아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미.. 미안하다 풀아..ㅠ
내가 보기엔 냉이가 아닌데 연수는 엄마가 끓인 냉이된장국에서 나는 냄새랑 비슷한 냄새도 난다며 냉이가 맞다고 열심히 우겨서 집에까지 가져왔다.


동네 마트에서 며칠치 먹거리를 장봐가지고 돌아오는 길, 자기들이 수레를 끌겠다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저 아이들이 봄인건가.
봄처럼 자라는 아이들.

어제 산책나간 망월천 호수 옆으로는 양지바른 둑에 쑥이 파랗게 올라왔고
아주머니 한분이 편하게 주저앉아 쑥을 캐고 계셨다.

봄이 어렵게 어렵게 찾아오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2. 16. 12:58

어제 아침에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동네 산책을 나섰다.
아이들이 친한 친구집에 가서 하루 자면서 놀고오기로 해서 집에 어른사람 둘뿐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놀아달라조르고, 밥차려줘야하는 아이들이 없으니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발걸음이 절로 가벼웠다.

우리집 옆에는 호수공원이 있다.
아이들과 자주 놀러가서 새들도 보고,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가끔 그림도 그리는 곳이다.
어제는 그 공원부터 가지않고 며칠전부터 생각해둔 숲을 찾아갔다.
집에서 좀 더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인데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니 작지만 나무가 빽빽한 숲이 있었다.
숲이 귀한 신도시인지라 그 정도만 해도 지나치며 눈길이 절로 갔었다.

얼마전 ‘아 걸어서 갈 수 있는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차타고 지나다니며 본 그 숲이 생각났고 좀 멀지만 어른 걸음이면 운동삼아 걸어가볼만 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 한가했던 어제 아침에 마스크를 끼고, 운동화를 신고서 숲을 향해 집을 나섰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혼자서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상쾌하고 홀가분한지 새삼 느낄 때가 많다.
안고 업고, 유모차를 밀고 킥보드를 끌어주며 몇년을 지내다보니
아무도 내게 매달리지않고 내 한 몸, 내 발로 가볍게 걸어 옮기는 그 감각이 너무나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힘든 일터를 오고가느라 종종걸음을 옮기는 시간이라면 혼자라도 힘들 것이고, 몸이 아프면 내 힘으로 걸어야하는 것이 무척이나 서럽겠지만.. 고맙게도 지금은 운동삼아 산책나선 길.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시간이다.

숲에 도착해 무사히 입구를 찾고 작은 숲을 한바퀴 빙 두르게 되어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청설모를 두 마리나 만났다.
동그랗게 허리 쯤에 산책로를 감고있는 숲 앞에는 올 봄에 문을 여는 ‘청소년수련관’이 공사를 거의 끝내고 서있었다.
옆으로도 체육시설과 놀이터가 같이 있는 공원이 있어 아이들과 봄에 여기와서 숲에도 가고, 수련관 프로그램도 듣고 하면 참 좋겠구나.. 생각했다.

주위를 더 둘러보다보니 우리집앞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망월천 산책로가 보였다.
이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야겠다.. 하고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겨울 냇물에서 헤엄치는 오리들과 하얀 백로가 나에게 ‘친구 안녕?’하고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았다. 안녕, 얘들아!

좁은 냇물인 망월천은 모래밭이 넓은 곳을 지나며 잠시 폭이 넓어지기도 했다가 다시 좁아져서 졸졸졸 빠른 물소리를 낸다.
그렇게 한참을 흘러서 우리집 옆까지 오면 꽤 널찍한 호수를 이룬다.
가마우지들과 해오라기, 오리들이 많이 사는 호수가에서 잠깐 구경하며 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지도로 거리를 계산해보니 왕복 거의 3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은 셈이었다. 와!
천천히 걷다가 동네 구경하다가 하느라 시간은 1시간이 좀 넘게 지났다.

어제 다녀오고 참 좋아서 오늘 아침에도 산책을 다녀왔다. 조금씩 길을 달리하면서 작은 풍경이 달라지는 것도 구경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편안히 할 수 있어 좋았다. 숲 사진은 못 찍었네.. 가능하면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싶다.

친정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면 아침 운동을 하신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1시간 남짓 동네길을 걸어서 다녀오셨는데 요근래에는 무릎이 아프셔서 많이 걷기가 어려우시다고 한다. 잘 나으셔서 봄에는 다시 운동하실수 있으시길..
친정오빠도 새벽에 늘 걷고.. 나도 새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침에 아이들 밥차려주기 전에 산책을 하면 좋겠다.
숲을 찾았으니.. 호수도 곁에 있으니..

아침에 나갔을 때는 흐리기만 했는데 지금은 눈이 펑펑 온다.
숲의 나무들도 하얗게 눈 옷을 입겠네..
내가 찾아가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늘 거기 있어주었던 숲과 호수야.. 고마워.
아름다운 것들은 찾아가야, 찾아내야 볼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2. 11. 12:12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내다
뜨거운 차를 한 잔씩 끓여 먹는다.
생강차나 유자청 사놓은 것을 타먹을 때도 있고
작년 가을에 친정오빠가 선물로 준 허브차를 마시기도 한다.

 

 

허브차와 홍차가 섞여있는 세트인데 차를 잘 모르는 나는 짧은 설명서를 잘 읽어보고 그 날의 차를 고른다.
며칠전 이웃분의 블로그에서 아름다운 숲 사진들을 보고나서는 나도 숲에 가고싶은 마음으로 ‘Mountain Herbs’(산 허브들)이라는 차를 골라 마셔보았다.
나는 비록 아파트 숲 속에 있는 내 집 부엌 식탁에 앉아있지만 아름다운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 듯한 마음으로..

오늘은 향이 시원한 ‘페퍼민트’를 마신다.
아이들은 수학 문제집을 펼쳐만 놓고 “어려워~ 안해~~!”하고는 도망가서 레고놀이를 하느라 돌아오지 않는 식탁에서
나 혼자 천천히 페퍼민트를 마신다.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며..-.,-

이렇게 매일 한 잔씩 마시다보면 어느새 겨울이 끝나있겠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새 학년의 공부를 시작할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좀 가라앉아 있으련지..
어려운 날들을 모두 다 잘 견디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밥을 잘 챙겨먹고, 뜨거운 차도 한 잔씩 마시며.. 애쓰고 있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싶은 오전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1. 31. 14:59

올 겨울 우리 동네에는 아직까지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강원도나 다른 지역은 눈 소식도 있고, 제설작업이 힘든 곳도 있다던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는 눈다운 눈이 한번도 안 온것 같다. 벌써 1월도 끝나가고 2월인데..

기후가 변하고 날씨가 달라지는 것이 한해한해 더 피부로 느껴진다.
이러다 또 춥고 눈많은 겨울이 찾아올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기온이 올라가고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의 계절이 예전과는 점점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온난화.. 멈출 수 있을까.
지구의 시간을, 아니 사람들의 시간을 지킬 수 있을까.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논다.
방학이고, 날이 따뜻하니 동네 남자 아이들은 우리집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축구장에 모여 낮이면 늘 떠들썩하게 축구를 한다.
우리집 아이들도 끼여서 놀다가 집에 와서 밥먹고 또 나가서 뛰어논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두려움과 긴장을 안고 있지만 아이들은 타고난 생명력으로 뛰고 웃고 어울린다.
부디 더 퍼지지말고, 아픈 분들도 잘 나았으면..

설 전에, 그러니까 19일 일요일 오전에 눈이 살짝 왔었다.
1시간 남짓되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올겨울들어 처음보는 함박눈이 잠시 펑펑 내렸다.
아파트 단지 안이 금새 하얀 눈나라가 되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눈은 아쉽게도 금방 그치고 잠시후 해도 나는 바람에 다 녹아버렸지만
짧은 한나절 눈세상이 된 아파트 단지에 정말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나와
모처럼의 눈을 반가워 했었다.

그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나와서 눈을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아이처럼 공을 들여 예쁘게 눈사람을 만들던 어느 아빠의 모습과
반갑고 좋으면서도 아쉽고, 걱정되는듯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의 복잡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디 멀리 눈썰매장이나 스키장을 가도 좋겠지만
내 집 앞에서, 우리 동네에서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같은 눈을
신비롭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맘껏 놀 수 있는 겨울날이 아이들에게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