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12.12.06 서른 다섯, 내 이야기 10
  2. 2012.11.28 라디오를 듣는 시간 4
  3. 2012.11.13 집의 추억 8
  4. 2012.10.19 내가 할수있는만큼, 그 안에서 사는 일 6
  5. 2012.09.21 아파트에서 보내는 우리들의 가을 4
  6. 2012.06.23 먼 나들이 6
  7. 2012.04.25 하느님 감사합니다 2
하루2012. 12. 6. 22:13


큰 눈 내려 세상이 하얗던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오늘부로 서른다섯해 삶을 꼭 채웠구나... 생각하니 새삼 내가 살아온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사이 잊은 일도 많기도 많아서 작년 생일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벌써 생각나지 않는다.


올해 생일은 조용히, 간소하게 잘 보냈다.

요즘은 늦잠자는 일이 많아진 아이들과 함께 나도 늦잠을 자서 출근하는 남편에게 겨우 인사만 하고 그때 깬 연호와 둘이 책을 보며 놀았다. 

연수까지 일어난 뒤에 생일케잌을 꺼내놓고 두 아이, 아니 세 아이와 함께 내 생일케잌에 촛불을 밝혔다.

아이들 노래소리가 불빛처럼 환했다.

따뜻하고 좋은 생일아침이구나... 

케잌 잘라 신나하는 아이들 나눠주고 나는 커피 한잔 타서 케잌이랑 같이 먹는데 창밖에는 밤새 언 눈이 하얗게 빛났다.

 

점심에는 어제밤에 불려놓았던 미역 씻어서 굴넣고 굴미역국을 끓였다.  

결혼하고부터는 내 생일에 꼭 미역국을 끓인다. 엄마 생각 해서다. 

힘든 진통끝에 나를 낳고, 오늘 아침 미역국을 드셨을 우리 엄마. 그 고마운 분을 생각하며 끓이고, 먹는다. 

내가 끓였지만 참 맛있다. 밥을 말아 숟가락에 김장김치 얹어서 한그릇 잘 비웠다. 

연수는 맛있다고 '엄마, 최고~!'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어린 연호도 작은 손으로 국그릇을 야무지게도 잡고 국물을 훌훌 마셔가며 숟가락질도 열심히 했다. 

엄마 생일날, 아이들에게 미역국 한그릇 맛있게 끓여 먹일 수 있으니 좋구나.. 

케잌도 먹었고, 놀이터 나간 김에 과일가게 들러 아이들 좋아하는 포도도 사와서 먹었으니 이만하면 참 좋은 생일이었다.


어제밤에 뒤늦게 대선후보 TV토론회 동영상을 본다고 밤에 너무 늦게 자서 

오후에는 연호 잘 때 나도 낮잠을 곤하게, 오래 잤다.

요즘 연수가 엄마랑 동생 잘 때 혼자 그림책보면서 참 잘 놀아주어서 

임신8개월의 고단한 엄마는 염치없게도 혼자 노는 아이에게 고맙다, 고맙다.. 하면서 낮에 한잠씩 푹 잘 잔다.

자고 일어나면 벌써 늦은 오후, 해가 금방 지는 요즘이라 그때부터는 시간이 짧다.

아이들 그림책 좀 읽어주고, 레고도 하다가 야구도 하다가 이래저래 놀다보면 금새 껌껌해지고 

저녁먹고 양치하고 잘 시간이 된다. 

겨울의 또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오늘도 몸은 퍽 고단했으나 근래들어 마음은 가장 밝은 하루였다.

아이들보고도 그저 환하게 많이 웃어줄 수 있었으니 아이들도 오늘은 울 엄마가 맘이 참 좋은가보다.. 했을 것이다.

오전에 햇빛 따뜻할 때 아이들과 눈놀이하러 밖에 나갔더니 

눈치우는 아파트 관리실 직원들은 겉옷을 벗어놓고 더운 김을 후후 불어가며 가래질을 하고 계셨다.

연수는 눈산도 만들고, 눈사람도 만든다고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고 연호와 둘이 손을 꼭 잡고 눈밭으로 변한 놀이터를 걷는데 뽀드득 뽀드득 눈밟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작년 이맘때는 6개월 남짓된 어린 아기였던지라 밖에 나올때면 늘 엄마품에 안겨있었던 연호가 

어느새 커서 제 발로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고 걸어간다. 

손잡고 걷는 나와 연호 그림자가 눈위에 길게 놓여지던 모습은 오래 기억해두고 싶다.

연호에게는 처음 밟아보는, 처음 제 손으로 떠서 먹어보고 그 위에 뒹굴어보기도 하는 눈이 왔다.


어린 시절 내 생일에도 눈이 많이 온 적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많이 왔다고 하려면 한 30cm정도는 와야 하는데 내 기억에 그보다 더 많이 쏟아졌던 어느 해, 

엄마가 생일잔치 해주신다고 했는데 친구들이 눈때문에 못오면 어떡하나 걱정되었던 나는 

친구들 마중간다고 눈밭을 헤치고 걸어가다가 끝도 없는 하얀 눈속에서 잠시 눈앞이 까매지며 어지럼을 타서 눈위에 쓰러졌었다.

여전히 머리가 어찔어찔한채로 푹신한 눈밭에 누워서 하얗고 큰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는 막막한 하늘을 올려다봤었지.

며칠전 '엄마, 엄마 생일에는 엄마 친구들 전부 초대할꺼지?'하고 연수가 묻는데 웃으며 '아니~'하고 대답하다가 어린날의 그 생일 생각이 났었다.

이제는 내 생일이 아니라 아이들 생일에 그렇게 아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상 차려줄 그런 나이가 되었네.. 어느새. 


자라는 동안 엄마는 가끔 나를 '헛똑똑이'라고 야단치셨었다. 

똑똑한 것 같지만 실은 속이 빈 것처럼 야무지지 못하다고 혀도 끌끌 차시고, 나무라기도 하셨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속으로 화가 부글부글 났었다.

그런데 요즘 그 말이 자주 생각나면서 '아... 내가 정말 그렇구나..' 생각한다.

서른다섯살이 되서 그런가.. 내가 어떤 사람이구나... 새삼스레 조금씩 더 알게되는 것 같다.


열정은 많지만 차분하고 야무지지 못한 내가 덜렁덜렁 좋아하는 일들에 여기저기 발을 담궈보는 동안

심사숙고해야할 일들, 더 긴 호흡으로 더 오래 밀고나갔어야했던 일들, 천천히 준비해서 시도해야했던 많은 일들을

얼마나 엄벙텀벙 뛰어들고 대충대충 얼렁뚱땅 해치우며 살아왔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대가들을 살면서 늘 치루게 된다는 것도.


어린 시절에 내가 잃어버렸던 수많은 물건들처럼, 재미난 무언가에 골몰하느라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잃어버렸던 가방, 모자, 돈.. 어디 걸린줄도 모르고 신나게 뛰다가 찢어졌던 옷들, 깨진 안경.. 그것들처럼 내 삶의 시간도, 나라는 사람의 영혼도 어느 순간 살짝살짝씩 흘리고 잃어버리고 뭉그러진 것 같다.


용감하고 싶었으나 끝까지 용감하지 못했고 열정이 있었으나 그 열정을 단련하고 연마해서 무언가 빛나는 결정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나.

무언가 마음안에서 쫓긴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허둥대고 서두르고 되도 않는 갖은 고려들과 걱정들만 끝도 없이 키워가다가 덜컥 실수하기 일쑤인...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실은 세속의 잣대들을 내 안에 철저히 내면화하고 있는 속물스럽고 겁많은 내가 

이제 서른다섯이다.

내년이면 세 아이의 엄마인데.. 올망졸망 이 녀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하지.

눈에 덮힌 것처럼 막막한 날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2. 11. 28. 23:19
가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아침 나절, 연수가 만화영화를 잠시 보고 연호가 제 형 곁에서 뭔가에 몰두해 놀때 
그때 보통 나는 얼른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만들고, 설겆이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아무튼 집안일을 부리나케 하는 오전 시간이 있는데
그 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부엌 싱크대 찬장에 붙어있는 작은 라디오를 켜놓고 일을 하노라면
잠깐 아이들 생각이나 집안일 생각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디제이가 읽는 짧은 글 같은 것에 더 집중하게 될 때가 있다.
잠시 내 일상에서 벗어나보는 것 같은 그 잠깐의 시간이 좋다. 

아직은 어려 한가지 놀이를, 엄마 없이 오래 할 수없는 연호가
금새 '엄마~~'를 부르며 뛰어와 옷자락에 매달리지만
귤 하나를 까서 손에 쥐어보내기도 하고, 연수에게 '연호 데리고 이것 좀 하면서 놀아줘라' 하고 부탁하기도 하면서
어렵게 집안일을 하나씩 하는 동안
라디오는 멀어지기도 했다가, 다시 귀에 와서 붙기도 하면서 때로는 마음 뭉클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저녁이면 5시 좀 넘을때부터 부엌 라디오를 켠다.
내가 주로 듣는 방송은 KBS 1FM (93.1) 인데 오전에는 클래식 방송이, 저녁 무렵이면 국악과 월드뮤직이 나온다. 
저녁 6시에 시작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은 처녀시절부터 즐겨 듣던 방송이다.
퇴근하던 저녁, 한강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듣던 그 음악방송을 지금도 나는 제일 좋아한다.

몹시 고단했던 며칠전 저녁, 저녁밥상을 차리면서 무심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데
'오늘 하루도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하는 세음 디제이 정은아씨의 목소리에 그만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 모두 힘들다. 이 시간,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두가 오늘 하루도 참 애쓰고 힘들었을 것이다.
추운 저녁,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지만 따뜻한 위로의 인사..
씩씩한 아이들과 보낸 고단한 하루 끝에 부엌에 불을 밝히고 따뜻한 밥을 푸고 국을 데우는 지친 내게도 '수고많았다..'고 따뜻하게 말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얼마전까지도 연수는 엄마가 라디오를 틀면 저는 제 노래를 듣고싶다면서 
거실 오디오로 가서 동요CD를 틀곤 해서 
나는 맘편히 내가 듣고픈 노래를 조용히 듣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얼마전부터는 엄마의 라디오 청취를 방해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 6시 반쯤하는 '일기예보' 덕분이다. ^^
연수는 일기예보 듣기를 좋아해서 내일은 어디에 강풍이 부는지, 기온이 어떤지, 눈소식이 있지는 않은지 집중해서 들으려고 애쓴다. 궁금한 것도 많아서 일기예보 도중에도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묻기 바쁘다. 
무튼 그렇게 좋아하는 일기예보 듣는 재미에 엄마가 라디오를 켜면 일기예보는 언제쯤 하는지 묻고 제 놀이를 하며 기다리다가 '연수야 일기예보한다~'하고 알려주면 라디오 앞으로 달려온다.

어느날은 오전에 클래식 방송에서 연수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벼랑위의 포뇨' 주제곡을 피아노로 연주한 음악이 나왔는데
연수는 '포뇨 노래가 나오네~!'하면서 무척 좋아했다.
'어제는 일기예보가 나오더니, 오늘은 갑자기 포뇨 노래가 나오네. 엄마, 포뇨 노래는 몇 시에 하는거야?' 하고 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갑자기' 흘러나올 떄의 기쁨을 다섯살 우리 꼬맹이도 이제 알게 되었을까...^^

클래식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듣는 것은 좋아하는 나는
연수가 '엄마 이건 무슨 노래야?'하고 물어보면 가끔 제목이라도 아는 곡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얘기해준다.
'아기코끼리의 산책'이란 곡을 듣고 묻는 연수에게 '이건 아기코끼리가 꿍짝꿍짝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음악으로 만든거야..'하고 얘기해주었더니 재밌다고 좋아했다.

음악은 그것이 담고있는 많은 이야기속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그리고 음악속의 풍경은 다시 지금 내가 고민하고, 꿈꾸고, 살아가는 지친 삶의 면면과 연결되어
떄로는 위로를, 때로는 향수를, 때로는 슬픔과 행복을 조용히 마음에 안겨준다.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참 좋다. 
셋째를 낳고 또 한동안은 라디오 한번 켤 짬 없이 종종거리게 될 것 같지만..
그떄까지는, 이 겨울이 가는 동안은 
하루에 두번, 라디오를 들으며 일을 하고 잠시 식탁의자에 앉아 쉬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며칠전 공지영씨 산문집에서 읽은 한 시조도 마음에 많이 남아 여기 같이 적어둔다.



저음으로 말할 것
잔잔하게 웃을 것

햇빛을 가득하게
음악은 고풍으로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 평화를 지킬 것


- 유자효 '가정'  

  











둘이 잘 논다. 그럼 엄마는 일하면서 음악도 듣고, 모처럼 잠시 앉아 쉬면서 노는 모습 구경도 한다.
오늘은 거실 매트가 두 녀석이 들어가 숨는 동굴로 변했다.





형이랑 하는 매트놀이, 신나~!!




사진에는 좀 위험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하게 넘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 

날으는 양탄자도 되었다가, 숨바꼭질하면서 숨는 동굴도 되었다가.. 매트 하나로 형제는 잠시 아주 즐거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2. 11. 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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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시절의 첫 집은 한옥이었다. 
살짝 비탈진 넓은 밭을 내려다보며 아담한 뒷동산 품에 폭 안겨있던 마당 넓은 기와집.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고, 열살 무렵까지 살았다. 

어린 시절에, 기억이 존재할만한 시절부터 치자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았던 그 집의 많은 풍경들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왼쪽부터 할아버지할머니가 사시던 사랑방, 엄마아빠가 살던 작은 방, 증조할머니가 계시던 안방, 그리고 밑으로 큰 계단을 쑥 내려서면 아궁이와 가마솥, 흙바닥을 한 큰 부엌이 있었다. 
그 부엌을 꼭지점으로 집은 ㄱ자로 꺽어져서 아래쪽으로는 작은 고모가 살던 건넌방과 온갖 물건이 가득한 광이 붙어있었다.
집 뒤켠에는 장독대가 있는 뒷마당과 물을 쓸 수 있는 수도가가 있었고 작은 언덕위쪽에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영세할머니와 그 아드님들이 살던 작은 행랑채가 있었다. 행랑채로 가는 언덕에는 큰 가마솥 아궁이가 있어서 집에 큰 일이 있을때는 엄마가 거기서도 국을 끓이곤 하셨다. 그 곁에 밤나무에서 가을이면 밤송이들이 툭툭 떨어져 어느날은 언니가 머리에 밤송이를 맞고 울기도 했었다. 아래 밭으로 가는 길에는 화장실과 소들이 사는 우사가 있었다.
 
뒷동산이라고 했지만 뒤와 옆으로 꽤 넓은 야트막한 산이었던 뒷산에는 아빠가 키우시던 사슴들이 여러마리 살았다. 
녹색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사슴 축사안에서 산비탈에 난 풀들을 뜯어먹고 또 떄론 철망 근처까지 와서 나를 보던 고운 사슴들이 기억난다.

강릉은 소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어느 눈 오던 날, 사랑방에 붙은 대청마루에 서서 하얗고 굵은 눈송이들이 쏟아지는 하늘과 뒤산의 키 큰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은 아마 설날이었던가보다. 나는 고운 한복을 입은 것이 설레고, 멀리 살던 친척과 사촌들이 모두 모인 것도 신나고, 떄마침 큰 눈이, 함박눈이 밤부터 내려서는 날이 환해진 아침에도 쏟아져내리는 장면이 좋았던 모양이다. 
차례를 준비하며 잠시 모두 대청마루에 나와 눈을 보던 그 아침 풍경이 이리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집의 방들도 모두 잘 기억난다.
우리 남매중 제일 큰 언니는 대학생이던 작은 고모와 함께 건넌방을 썼다. 
그래서 그 방에서는 예쁜 고모와 언니 냄새가 났다. 물건들도 모두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어린 내게는 그 방에서 노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어느 겨울에 작은 고모는 친구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붓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아주 여러장 정성껏 만드셨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거드는게 좋았다. 
나는 증조할머니와 함께 안방에서 지냈다. 집의 본 마루와 붙어있는 안방에는 증조할머니의 물건들이 들어있는 오래된 낮은 옷장이 있고, 그 위로 이불이 곱게 개어져 올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 이불 위에 올라가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어둑한 오후, 거기 가만히 누워있으면 가족들이 안방문을 열어보고도 나를 얼른 못찾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걸 나는 잘 안다. 숨어있는건 더 좋아하고..^^ 
오빠는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잤다. 사랑방에서는 할아버지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의 머릿기름, 작고 까만 트랜지스터라디오.. 어린 시절, 나는 오빠와 그닥 사이가 좋지않은 여동생이었지만 그 방에서 가끔 꿍짝꿍짝 재밌게 놀았던 기억도 난다.

부엌도 눈에 선하다. 
한겨울, 부엌 가마솥에서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팥시루떡을 쪄내시던 할머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팔시루떡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밤잠도 참아가며 그 순간을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내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기도'라고 불리던 겨울 행사는 집 안팍의 여러 신들께 그 한해도 액운없이 무탈하게 잘 지낼 수있기를 빌면서 팔시루떡과 얼큰한 명태국을 시원하게 끓여 대접하고 그 깊은 새벽에, 자지않고 기다린 혹은 자다 깬 어린 아이들까지 함께 맛있게 나눠먹곤 했다. 
그 한옥집 부엌의 큰 가마솥에서 할머니가 고으시던 달콤한 엿, 두부를 직접 만들어 큰 보자기로 두부 물을 짜내던 풍경... 
엄마와 할머니께는 허리가 끊어질듯한 고된 노동이셨을 그 모든 수고로운 부엌일들이 어린 내게는 행복하고 맛있고 더없이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늘 열명이 넘던 대식구의 먹거리를 마련하고 농사일을 해내시느라 고생하셨던 어른들 덕분에 유년의 나는 참 풍요로운 추억들을 새기며 자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어른들의 젊은 시절인 그 시간이 얼마나 눈물겹게 지나갔는지 알 것 같다. 
사랑방 할머니 곁에 누워 들었던 옛날이야기들도 잊을 수 없다. 떼굴떼굴 구를만큼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달은 밝고, 창호지바른 문밖으로 바람소리가 들리던 그 밤에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좋은 밤동무가 있었던가..  지금 그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많이 편찮으시다. 멀리서 소식만 듣고 아직 내려가 뵙지 못해 죄송하다. 이번 주말에 뵈러가면 오래오래 꼭 안아드려야지.. 


어린 시절의 꼬맹이 욱은 대책없고 무모하고 망아지처럼 뛰어놀기 좋아하고 언니오빠에게 잘도 대드는 막둥이여서 크고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너무 재밌고 신이 나서 제법 경사와 커브가 심한 마당 아래 길로 아빠의 큰 자전거를 타고 쌩~ 내려가다 그대로 엎어져 여기저기 까지고 다친 적도 있었다.
쓰고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별로 달라진게 없고나. ㅜㅜ
  
큰 벽돌이 드문드문 깔려있던 그 길가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던 수도가가 있었고, 우리집의 첫자동차였던 갈색 트럭 '세레스'가 세워진 차고가 있었다. 반대쪽 밭 입구에는 벌통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벌통에서 꿀을 모으는 날, 우리집에 놀러왔던 내 어린시절 친구는 벌에 쏘여 엉엉 울면서도 맛있는 꿀을 얻어먹고 좋아하기도 했었다. 어느 해에는 그 밭에 딸기를 심어 딸기 달리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았던 기억도 난다.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고있던 어느 여름 저녁, 나 혼자 동네친구들과 어두울 때까지 놀다가 식사시간에 늦게 들어와서 마당에 서서 야단맞던 기억도 난다. 시멘트로 된 뜨락, 그리고 그보다 높은 마루에 앉아있는 식구들이 얼마나 까마득히 높아보이던지.. 고개를 푹 숙이고 흙마당 위에 서있던 일곱살, 여덟살 무렵의 까맣고 조그만 여자아이.. 생각난다.
ㅎㅎ 이런 기억도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내일이 개학이었던가.. 혼자 속태우며 밀린 방학숙제를 하느라 건넌방에 엎드려 낑낑대고 있는데 아빠가 마루에 앉아 언니오빠와 얘기를 하고 계셨다. 방학숙제는 다 했냐는 아빠의 물음에 다 했다는 모범생 언니오빠의 대답이 들려왔고, 그래야지 숙제는 미리미리 잘 해야지.. 하는 흐뭇한(ㅜㅜ) 대화가 울려퍼지는 속에 나는 얼마나 마음이 다급해졌었던가.... 

햇볕 따뜻한 봄날, 그 뜨락에 세수대야를 놓고 엄마가 부엌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다 부어주시면 거기에 머리를 감던 기억도 난다. 참빗으로 긴 머리의 이를 잡아주신 적도 있고.. 여름에는 뜨락에서 봉숭아를 찧어 손가락에 감잎을 감아 봉숭아물을 들였었다. 우습고 촌스럽고 따뜻한 그 모든 풍경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 안에 열살 무렵까지의 어린 욱이 지금도 늘 숨쉬고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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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친정집인 양옥집이 지어진 것이 1987년 이니까(시멘트 벽에 지금도 준공기념일자가 적혀있다) 아마 내가 열살되던 해에 나의 첫 집인 한옥은 새로 나는 고속도로 부지에 포함되면서 헐려 버렸다. 
안방에서 뒷문을 열면 보이던 예쁜 장독대 풍경과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던 너른 밭풍경을 잃고 우리는 새 양옥으로 이사했다.
그 집에서 십년을 살고 스무살이 되면서 나는 서울로 와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양옥집에서 보냈던 십대 시절에도 집에 대한 추억이 있고, 이십대를 보낸 서울의 여러 자취집들에도 잊을 수 없는 여러 추억들이 그 공간에 깃들어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첫집과 거기서보낸 유년기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이 풍성한 기억을 다른 곳에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십대부터는 본격적인 학창시절이라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많아 상대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은 유년기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집에서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도 많이 줄었고..
하지만 공간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보고 즐기고 그 속에 깃들어 놀 수 있는 꺼리들이 양옥부터는 훌쩍 줄어든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양옥집에서도 마당은 넓었지만 예전에 한옥에 살 때처럼 그 마당에 큰 멍석을 펴놓고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부터, 곶감만들 감을 마당 가득 따놓고 기계를 돌려가며 감껍질을 깍던 일도 없었고, 할아버지가 짚을 꼬아 새끼를 만드시는 일도 없었다. 
뒷마당 아궁이에서 국이 펄펄 끓고, 그 수도가에 둘어앉아 국거리를 다듬는 엄마와 할머니 곁에서 무언가를 얻어먹는 재미에 기웃기웃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처음으로 하루 반나절을 다녔던 여섯살의 유아원은 동사무소 직원이었던 예쁜 여선생님이 혼자 수십명의 농촌 꼬마아이들을 모아놓고 노래도 가르치고 미숫가루도 한그릇씩 타주던 곳이었는데 
허름하고 큼직한 마을창고 안에 차려졌던 그 유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우리집 뒷산 좁은 산길에서 참았던 똥을 바지안에 싸고는 '엄마~!!!'하고 부르며 어기적어기적 뛰어왔던 기억.. 
그 와중에도 봄이었나, 가을이었나 그 산길에 빛나던 햇살은 참 예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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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키우며 이 아이들은 유년시절의 집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게 될까... 궁금하다.
놀이터 어느 틈새에서라도 흙을 찾아내고 거기서 땅을 뒤지고, 나무가지와 돌로 무언가를 만들고 풀벌레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내 아이들은 어떤 풍경을 기억하게 될까... 생각하면 때로 마음아프다.
앞동 뒷동 똑같이 키큰 아파트로 둘러싸인 집, 작은 풀밭과 나무와 비오면 생기는 작은 물웅덩이에서 철벅거리면서도 마냥 신나고 행복해지는 아이들이지만
다 자란 어느날 '내 인생의 풍경이야'하면서 떠올려볼 수 있는 키큰 나무숲, 함께 살던 여러 생명들, 뛰어놀던 들판의 풍경이 없다는 것이 미안하다.
아이들이 꼭 나와 같은 기억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높은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집 풍경은 크게 슬플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는 그저 일상의 일부, 자연스럽고 어쩌면 그것이 이 아이들에게는 안도스럽고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그래도 도시의 엄마는 고민한다.
아이들을 조금 더 땅이 가깝고 하늘을 가리는 것이 적고, 마당과 숲이 있는 곳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다고.
신 신고 현관 문만 열면 바깥인 집에서 아이들끼리도 얼마든지 마당에 나가 놀다가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집의 추억을 갖게 해주고 싶다고.
다음 집을 구할 때면 꼭 그런 집을 찾아야지.
요며칠 이사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 진행중이긴한데.. 여러모로 엄두내기가 쉽지는 않다. 
마침 살아보고싶은 마당있는 집을 알게되어서 아이들 데리고 남편과 함께 한번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집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내년 봄에 태어날 바다와 아직 어린 연호가 계단많은 주택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 저런 걱정에 쉽게 발걸음이 떼지진 않는다. 
그러다 내 어린 시절의 집에 대한 생각이 나서 이모저모 되새겨보다보니 '그래, 연수가 더 크기 전에, 학교에 다니기 전에 마당있는 집, 시골동네에서 자라면 좋을텐데..'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 
좀더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요즘 아파트 주차장에는 이사 트럭들이 심심치않게 보인다. 겨울, 봄... 이사철이 돌아오고 있나보다. 이 도시에서 마음편히 내 가족과 발뻗고 누울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아이를 낳기 전, 처음 결혼하고 신혼집을 구할때는 왜 그랬는지 꼭 '아파트'를 구하려고 했다. 
부모님이 그걸 바라시기도 했지만 나도 왠지 '아파트' 정도는 살아줘야(?)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축에 들 것 같아서 다른 생각은 전혀 안해보고 아파트를 찾았다.
도시의 삶에서 아파트만큼 관리하기 편하고 사는데도 큰 불편없도록 갖춰진 집도 많지않으니 형편만 되면 아파트에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아이도 키우고 나이도 먹고 하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가 살고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다. 
지금 아는 것들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후회도 들지만 
때늦었기도 하거니와 그 때는 그게 가능하지도 않았다는 걸, 조금씩 더 살아보고 느끼고 찾아가야 '나'란 존재도, 그 존재가 원하고 살아가고 싶은 방향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서 그 동안의 시간을 고맙게 여겨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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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꼬맹이들은 안방 이불장의 이불을 모두 끄집어내고 이불과 쿠션을 계단삼아 사뿐히 밟고 올라가서는

이불장 2층에 자기들만의 침대를 꾸미고 거기서 한참 재밌게 놀았다.

이 모든 것이 다섯살 연수의 힘이면 가능하다.

연호는 형아가 만든 2층 침대에 저도 올라가고 싶어서 고단하다고 드러누워 이 모든 사태를 수수방관하기만 하는 엄마 옆에서

'엄마, 아야~, 응응~~'(저도 아야 옆에 데려다달라는 말) 수차례 조르고 낑낑거리고 야단이었다. 

그래도 꿈쩍 않고 결국 지친 연호를 낮잠까지 한숨 재우며 같이 잔 엄마가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 번쩍 안아올려주자 연호는 좋아서 저 위에서 춤도 추고 아야랑 나란히 누워보며 뒤늦게 소원을 풀었다.


어느 집에 살든 아이들은 잘 놀고 잘 클 수 있다. 

재미있게, 행복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면서. ^^

그래도 이 펄펄한 사내녀석들을, 것도 셋이나 데리고 놀 일을 생각하니 엄마는 마당이 간절해진다.

집 밖에 풀어놓고 힘을 많이 빼야 저녁에도 일찍들 자고, 밥도 잘 먹고 하겠지? 

다가오는 겨울은.. 그래도 둘이고 아직 어리니 지낼만 할 것이다. 

힘을 내자, 힘을 내. 

오늘 오후처럼 몸안의 동력이 다 소진된 것같이, 밧데리 떨어진 자동차마냥 꼼짝하기 싫고 짜증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때가 자주 오지 않기만  바라면서...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2. 10. 19. 23:00


아침 나절 햇볕이 잘드는 거실에 앉아 두 녀석 손톱을 깍아주었다.
목욕하고 나와 찐고구마랑 보리차를 먹으며 셋이 아옹다옹 놀다가 문득 생각나 셋이 차례대로 손발톱을 깍은 것이다.
따뜻한 볕아래 작고 보드라운 손들을 쥐어보는 순간이 참 좋았다.

저녁에는 자다깨서 찐찡거리는 두 녀석 배를 차례로 쓸어주었다. 자기전에 빵이랑 찬우유를 많이 마셨는데 그것땜에 속이 아픈가싶어 '엄마손은 약손'하며 한참씩 쓸어주니 다행히 둘다 다시 순하게 잠이 들었다. 연호배를 문지르다 연수배를 보니 새삼 내 큰아이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알겠다. 누워있을때는 아이들이 더 커보여서 늘 놀란다.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지내며 아이키우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참 많이 누리고 산다.
두 아이데리고 종일 보내는 일이 힘들지 않은건 아니지만
내 힘 안에서, 그럭저럭 하루를 잘 꾸려나갈수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좋다.
내가 할수있는만큼, 내 힘안에서 내 아이들을 돌보며 지낼수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네 식구 둘러앉아 아침밥먹고 출근하는 아빠에게 아이들이 오래도록 손을 흔들고, 내가 집안일하는동안 '아야(형아)'가 연호데리고 잠깐이라도 다정히 잘 놀면 흐뭇하고, 모처럼 청소라도 하는 날에는 깨끗한 집에서 아이들노는 모습 보는게 또 참 흐뭇하다.
점심에 볶음밥이나 카레같은걸 해서 셋이 같이 배부르게 잘 먹었을때 내가 애들데리고 이렇게 밥잘챙겨먹으며 지낼수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감사하다. ^^

셋째가 태어난 뒤에는 어찌될까?
한동안은 또 참 정신없고 나도 어설픈 세 아이 엄마노릇에 허둥거리게 되겠지...
시간이 한참 지나고나야 우리만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 수있겠지. 그러면 아마 다시 지금같은 고단하지만 내 힘안에서 감당할수있는 일상을 살수있을 것이다. 힘들지만 평화롭고, 부단히 성장통을 겪지만 마음은 한결 안정된 그런 날 말이다. 어쩌면 셋째 출산이 예정된 '폭풍 전야'이기 때문에 두 녀석과 보내는 순간순간들을 더 애틋하고 평화롭게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전투를 앞둔 장수의 심정이랄까...ㅎㅎ

게다가 나는 참 과분하게도 '삼형제 엄마'라는 버겁고 긴장되는 자리에 당첨! 되었으므로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운 엄마 수련의 길을 가야할지 모르겠다. ^^;;
'쫄지 말고' 가봐야지, 내게 주어진 길.

밖에 나가면 한걸음 옮길때마다 "엄마 선물이야!"하며 들꽃과 나무잎과 열매들을 내 손에 쥐어주는 큰아들과
형과 엄마를 따라 이제 제법 꽃향기도 맡을줄아는 둘째아들에 이어
셋째 아들도 데리고 함께 꽃같은 일상을 살아볼 일이다.

내일 우리는 제주에 간다.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을 살고올 생각이다.
친구네 게스트하우스와 바닷가 작은집에서, 작은 마을에서
서울 우리집서 그랬듯 아이들과 밥해먹고 산책하며 지내려고한다.
씩씩하게 즐겁게 잘 지내다 올수있길-!
아기돼지 삼형제와 엄마, 화이팅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2. 9. 21. 22:29






요즈음 날씨가 참 좋다.

아침에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 어서 밖에 나가야겠다..' 싶어진다. 

아침먹은거 정리하고 빨래돌리고 점심먹을 준비 좀 해놓고나면 얼추 10시.

연수 자전거타고 연호 유모차태워 얼른 아파트 마당으로 나간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오지만 막상 나오면 어디 크게 갈 데는 없다. ^^;;

바다를 임신한 뒤로는 내가 연호를 안고 먼 외출을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주중에는 주로 유모차를 밀고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논다. 마음같아서는 이 가을에 어디 멀고 멋있는 곳에 아이들 데리고 훨훨 나들이 다녀오고 싶지만... 그런 날은 내후년 가을쯤에나 가능하겠지..^^


들고나온 쓰레기들 버리고 오늘은 어디서 놀까 연수랑 잠깐 의논한 뒤에 

커다란 애벌레 조형물이 있는 벌레 놀이터나 연수가 요즘 좋아하는 작은 나비들이 많은 정자 옆 징검다리 같은 곳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이 커다란 애벌레 머리에 올라타는걸 좋아하는데 연수는 올려줄 때마다 무섭다고 엄살이지만 연호는 까르르 좋아한다. 겁없는 두살 같으니라고~^^ 심지어 거기서 엄마 품으로 떨어져내리는걸 즐기니 참 요녀석 앞날이 궁금하다.


오전의 아파트 놀이터는 한산하다못해 고요하다.

주로 우리 셋밖에 없다.

가끔 아파트안에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나오기도 하지만 그 때빼고는 거의 늘 우리 셋의 독차지다.

여름내 연호는 어디를 가든 내 손을 붙잡고 걸어다녀서 

나는 '아 내 인생에 남자랑 땀띠나게 손잡고 걸어다녀보는 시절이 또 언제 있으랴'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려야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아니 온 우주를 통털어서 다른 사람 다 아니고 바로 전욱, 내 손잡기를 이토록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또 누가 있으랴.. 그러니 우리 연호가 엄마 손잡기를 이토록 갈망하는 시절에 기꺼이 손 한번 더 잡아야지... 같이 걸어줘야지... 생각하면 돌을 막 지낸 어린 내 아기가 또 무척 애틋해져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귀찮은 마음이 몰려와도 끙~ 하고 한번더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서 연호 가자는데로 걸어가곤 했다.

그런데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날부턴가 스르르 이 녀석이 엄마 손을 놓고 저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벌레 놀이터에서, 익숙하고 즐거운 곳에서 형의 뒤를 따라 어느 풀숲으로 갈 때였나 놀이기구를 향해 갈때였나... 저 혼자 아장아장 걸어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편한 나무 의자에 앉아 두 아이가 나비처럼 돌아다니는걸 구경도 하고 

조금 가다 나를 돌아보고 웃는 연호에게 마주 웃어보고 연수가 뭐라뭐라 말거는 거에 답도 해주면서 

서서히 놀이터에서 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마전부터는 급기야 놀이터 나무의자위에 드러눕게 되었다. ㅎㅎㅎ

그렇게 누워 바라보는 가을 하늘은 참 푸르고 예쁘다.

놀이터는 고요하고, 의자옆 풀밭에서는 가을벌레들 울음소리가 찌르찌르 청량하게 울리고

연수랑 연호가 잡기놀이 하는지 깔깔 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고...

단 1분이어도 그렇게 누워있는 시간이 정말 꿀맛같이 달콤하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놀이터여서 더 좋기도 하다. 

아이 둘 데리고나온 아줌마가 잠시 허리펴고 누워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누가 있음 그리 못할텐데~^^;;    

(높은 층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거나, CCTV에 찍혀서 집안에서 TV채널돌리다 놀이터화면을 누가 보기라도하면 좀 챙피할 일이지만.. 뭐 사실 그리 오래 누워있지도 못한다. 두 녀석이 금새 달려와서 같이 놀자고 일으켜세우므로~~ㅋ)


요즘처럼 날좋은 오전에는 주로 그렇게 우리 셋이 놀이터와 아파트의 작은 동산 곁에 자리잡고 앉아

연수는 나비를 잡고 연호와 나는 마주보고 놀다가 싸가지고나온 간식도 좀 먹고 

여러 나무 열매며 잎사귀, 꽃들을 구경하고 줍고 강아지풀 꽃다발 같은 것을 하나씩 만들어서 선물처럼 소중히 챙겨들고 점심때쯤 집에 들어온다. 









연호는 점심 무렵에 낮잠을 한번 길게 잔다. 

연수는 내 옆에서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면서 누워 뒹굴거리거나 아님 옆방에서 만화영화를 한편씩 보기도 한다. 

이 시간이 내게도 소중한 휴식시간이어서 연호 옆에 누워 좀 자거나 만화보는 연수 옆에서 동무해주더라도 주로 누워있는다. 

그래야 허리도 덜 아프고 오후를 또 아이들 따라다니며 보낼 힘이 생긴다.


 









아파트의 오후는 활기차다. 

어린이집과 유치원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소리가 왁자하고 놀이터도 어린 아이들데리고 나온 엄마들과 할머니들로 북적인다. 

연수는 이 시간에 동네 형아들과 요즘 메뚜기를 잡는 일에 푹 빠져있다.

점심먹고 설겆이랑 빨래같은 집안일을 조금 정리해놓고 밖에 나가는 세시반 무렵부터 6시 해질 무렵까지 신나게 뛰어논다.

김연호는 형아들 주위를 알짱거리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주머니들에게 달달한 간식거리 받아먹는 재미에도 빠졌다가 

엄마랑 놀이기구도 타다가.... 아무튼 저도 왔다갔다 바쁘다. ^^











올가을, 메뚜기 잡기의 달인이 된 다섯살 김연수 선생님.

잠시 풀밭을 주시하고 있다가 번개같이 한마리씩 잡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달려와서 보여주고 미리 준비하신 통에 바로 투척! --;;;

방아깨비도 잡고, 심지어 이제는 나비도 맨손으로 잡는다. 헉.. 사내아이들은 정말...ㅠ

나비는 오래 잡고있으면 잘 날지 못하게되니 잡은 뒤에 바로 놓아주게 하지만, 메뚜기랑 방아깨비는 하도 어디 잠깐만 넣어두고 싶다고 졸라서 재활용쓰레기장에서 찾아낸(7살 형아들이 주로 잘도 찾아온다) 생수페트병 같은 곳에 담아두고 구경하다가 집에 올때 다시 풀밭에 풀어주고 온다.










응, 이게 뭐지~~? 맛있어 보이는데~~? ㅎㅎ

이 날은 통이 이것밖에 없었는가... 형아들이 막걸리 통을 찾아와서 여기다 메뚜기를 넣어두었다.

내가 열어보니 불쌍한 메뚜기들이 막걸리에 취해서인지 꼼짝도 못하고 있어서 얼른 풀어주라고 해 바로 풀밭에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 예쁜 초록통을 김연호가 가만 두랴...











'아!아~~('형아'란 말이다), 응! 응~!(여기다 넣으란 뜻인듯~ㅎㅎ)' 하며 

메뚜기잡는 형아들 뒤로 저 통을 들고 열심히 쫒아다녔다. ㅋㅋ


연수가 메뚜기를 잡는 저 풀밭은 우리 아파트 끝자락에 있는 배모양의 놀이터 바로 곁에 있는데 냇가 건너로는 지하철이 다니는 철로도 있다.

5호선 종점역에서 사람들을 모두 내려준 기차가 이 길을 지나서 차고지로 들어간다. 

연호는 기차가 지나갈떄마다 '어! 어~!'하고 가리키며 신기해한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 동네가 참 시골같이 느껴진다. 

팽창하는 서울의 외곽,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자꾸자꾸 늘어나고 커다란 상가빌딩도 몇채씩이나 들어서고있는 우리 동네지만 

그래도 이렇게 풀벌레를 잡으며 기차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하늘은 높고 파랗고, 가을 오후의 따뜻한 햇살은 풀밭과 아이들과 기차 위로 쏟아진다. 

나는 그 풍경을 벤치에 앉아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기억에 새겨놓았다.











내 마당과 내 뜨락이 없는 아파트에서의 삶이 허공에 붕 뜬 것처럼 휑하게 느껴질 떄가 있다.

요즈음에는 그 생각이 조금 덜해졌다. 

아마도 아기들이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두 발이 있지만 땅을 밟기가 어려운 그런 날들에는 아파트란 공간이 더 외롭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인가 보다.

마음만 먹으면, 아니 크게 마음먹지 않아도 창밖의 햇빛과 나무들을 보고있으면 저절로 아이들 신 신겨서 아파트 마당으로 나오게 되는 요즘같은 좋은 가을날에는 

아파트에 가득한 크고작은 나무들과 풀꽃들과 예쁘게 만들어진 정자와 돌담과 나무다리 같은 것들이 참 고맙고 좋다.

모두의 공간이지만 때떄로 우리만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곳. 

그리고 나와 내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도 또 지겹지않게 하루가 흘러가는 곳.

구석구석 놀 곳도 많고, 쳐다보고 만져보고 주워담을 풀꽃과 나뭇잎과 열매들이 가득한 곳. 

요즘은 주목나무에 빨간 열매도 달리기 시작했고, 벚나무에서는 버찌열매가 떨어진다. 화살나무 잎들은 붉은 색으로 예쁘게 물들기 시작했고, 소나무 동산에는 언제부터 자랐는지 모를 어린 떡갈나무가 제법 잎을 크게 펼쳤다.  

이 아파트에서 맞는 두번째 가을에는 연호도 많이 컸고, 늘 곁에 있어 든든한 연수도 많이 커서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만져보고 놀 수 있어 참 좋다. 

작년엔 신축아파트의 썰렁함이 더 많았던 우리 아파트도 그새 많이 안정된 것도 같다. 

아마도 풀과 나무들이 잘 자라준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덩달아 어른들의 마음도 좀더 푸근해진 덕분이겠지. 









우리집이 있는 106동 앞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 '마리'를 만났다. 

마리는 7층 누나가 키우는 귀여운 할머니(토끼들 나이로~^^;) 토끼인데 작년부터 연수가 무척 좋아해서 그집 누나들과 아줌마와도 무척 친해졌다.

마리네 식구들은 갓난아기였던 연호가 어느새 자라서 걸어다니는걸 신기해하고

'먼머! 먼머~!('멍멍이'란 말인데 연호는 동물은 모두 '먼머'라고 한다.ㅎㅎ)하며 토끼를 따라다니는 연호는 보드라운 털에 둘러싸인 이 작은 동물이 신기해서 어쩔줄 모른다. 

드디어 이 날은 연호도 마리에게 풀 먹이기에 성공. ^^


아파트에서 보내는 초가을이 이렇게 흘러간다. 

매일 참으로 규칙적이고도 단조로운 하루하루지만 즐겁게 지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밥하고 국 끓여 아이들과 부지런히 챙겨먹으며 그럭저럭 아이들 뒤따라다니며 엄마노릇 해내는 나도 다행스럽다.

엄마 배속에서 4개월을 채우고 5개월차로 접어든, 소리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있는 바다도 고맙다. ^^

추운 날들이 오기 전에, 그래서 다시 4층 허공위에 갇히기 전에

아이들과 더 많이 햇볕도 받고, 풀밭을 걷고, 나무그늘에 앉아있어야지.

고마운 이웃들과 고마운 내 터전에서 앞으로의 날들도 잘 보내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2. 6. 23. 00:13


오늘 연수 연호와 그동안 한것중에 제일로 먼 '대중교통 나들이'를 했다. ^^

지하철을 타고 아빠 회사가 있는 여의도까지 가서

점심시간인 아빠를 만나 여의도공원에서 커피와 요구르트와 빵을 얻어먹고 

다시 택시를 타고 신대방에 있는 연수 친구 휘건이네 집에 놀러갔다.

집에 올 떄는 휘건엄마가 여의도까지 태워주어서 다시 여의도에서 5호선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왔다.

근데 5호선탈때 마천행인지 상일동행인지 제대로 확인을 안하고 타서(ㅠㅠ)

마천으로 갈뻔 했다가 둔촌동에서 내려 다시 택시...--;;


중간중간 택시도 타서 완벽한 '대중교통 나들이'라 부르긴 어렵지만 

이제 막 12개월이 된 연호와 48개월을 채웠지만 여전히 지하철에서 꾸벅꾸벅도 아니고 쿨쿨 잠들어버리는 연수를 깨워 걸려가며 이 정도 거리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혼자 감격해서 기록으로 남겨보는 것이다. ^^;;;

얘들아, 고맙다.. 오늘 엄마따라 강행군하느라 많이 힘들었지...ㅠㅠ 푹 잘 자고, 내일도 쌩쌩하게 잘 놀아다오. 


우리 동네 상일역에는 아직 엘리베이터가 없기도 하고, 연호가 아기띠에서 더 잘 자는터라 

연호를 아기띠해서 안고 연수 손잡고 기저귀며 옷이며 간식까지 챙겨넣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오늘 하루 여의도로, 신대방으로 부지런히 쏘다니느라 나도 진짜 힘들었는데

그래도 오랫만에 멀리 다니오니 나는 오히려 마음도 시원하고 기분도 좋아 몸이 힘든 것도 그럭저럭 견디고 있다.


저녁 7시반에 집에 도착해서 힘들어하는 애들 씻겨 부랴부랴 재우고 나서

나도 씻는데 고단하기는 해도 평소보다 몸에 힘은 더 있는 것 같았다.

일상에서 좀 벗어나서, 내 힘으로 많이 멀리 움직인 것이 몸에 활기를 좀 더해 준 것 같다.

둘째를 임신한 엄마들이 첫째 가졌을 때보다 입덧도 훨씬 심하게 하고 피곤해하는 것이 

첫째 키우는 동안 아무래도 어린 아기와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피곤은 심해도 멀리 움직이지 않으니

몸에 활력이 덜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더 들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연호 돌잔치 마치고 연호가 앓던 감기를 바로 이어받아서 요며칠 꽤 많이 아팠다.

그래도 아이들과 세 끼 밥 차려먹고 놀이터도 가고 동네 도서관이며 병원에도 다녀오고 했지만

몸이 아프니 마음도 무겁고 연수에게 야단도 더 많이 쳤다.

오늘도 그게 미안하여 내 몸이 좀 나아져서 힘이 생기기도 했고 연수도 바람 쏘여주고 싶어서 즉흥적으로 먼 길을 나서본 것이었다.

연수는 무척 신나했다. 

연수도 나도 지하철을 오랫만에 타보아서(강일동 이사와서는 버스만 타고 다녀서 우린 5호선 지하철을 처음 타보았다. ㅎㅎ) 신기했고, 

연호는 지하철탄 동안에는 아주 순하게 잘 잤다. 시원하고, 규칙적으로 덜컹거리고... 애기들 재우기 그만이다. ^^

다만 연호가 깰까봐 최대한 환승을 자제하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5호선으로 쭉 타고 갔는데 역시나 요녀석, 열차에서 내리니 바로 깼다. 앞으로도 우린 5호선만 타야겠다. 

퇴근길 지하철은 자리도 없고 붐벼서 한동안 서서 오느라 힘들었는데 

우리가 오늘 탄 길이 아빠가 매일 반복하는 출퇴근 길이라 남편 고생 많겠구나... 새삼 생각하기도 했다.


연수는 오늘 휘건이네랑 같이 생전 처음 실내수영장에도 갔는데 

그렇게 깊은 물에는 처음 들어가는 거라서 구명조끼를 단단히 입고도 무섭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얕은 바다나 개울에서 주로 놀고, 수영장도 야외에 있는 낮게 시작해 점점 깊어지는 수영장만 가봤던 터라 

안그래도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가 무서웠을 것 같다. 

다행히 잠깐만 휘건아빠 품에 꼭 안긴채로 풀 안에 들어가있다가 울어서 그냥 바로 나왔다. 







들어가기 전에는 요렇게 휘건이랑 수영복에 물안경 쓰고 좋다고 폼잡으며 사진도 잘 찍었는데 그만 생각보다 너무 깊은 물에 깜짝 놀라서는 다시는 수영장 안 갈거라고 선언해버렸다. 

에고... 나중에 연호가 좀 커서 엄마가 두 녀석 다 데리고 얕은 수영장을 찾아 거기서부터 다시 적응을 시켜봐야하려나... 

엄마는 수영이 넘 하고 싶은데. 3년후를 기약해보자...


돌아올 때 아이들도 나도 힘들긴 했지만

집을 나서서, 아빠를 만나고, 아기자기 재미있는 휘건이네에 가서 노는 동안 우리 셋 다 무척 즐거웠다.

그 뿌듯함을 안고 자야지.... 

하지만 앞으로 한동안 휘건네에는 다시 못갈 듯 하다. 흑. 정말 멀다..ㅠㅠ

지난 달부터 일주일에 한번 가기 시작한 세곡동 희범이네 나들이로 당분간 만족하고 

오늘 가보니 아빠 회사까지는 갈만 한 것 같으니 여의도 나들이나 이따금씩 한번 해봐야겠다. 

요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나들이 반경을 넓혀서...  

나중엔 우리 셋이 별데 별데 다 갈테다! 

ㅎㅎㅎㅎ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2. 4. 25. 23:33


오늘 참 신통한 일이 있었다.

비오는 날.. 따뜻한 쑥국 끓여 점심밥도 잘 먹고 나니 무척 졸렸다.

얼추 연호도 졸릴 때가 된 것 같아 아이들 데리고 안방에 들어갔다.

누워서 연호 젖물리며 연수 책 읽어주는데.. 암만 봐도 나만 졸린 모양이다. 애들은 말똥말똥... 나는 헤롱헤롱.


젖을 다 먹은 연호는 떼구르르 굴러 발딱 일어나 앉더니 안방을 기어다니며 이것저것 뒤적이고 놀기 시작했다.

연수는 거실로 가서 책들을 몇권 더 들고와 '엄마, 이 책 좀 읽어줘'하는데 나는 너무 졸려서 그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렸다.

'아고.. 연수야, 엄마 너무 졸려서 안되겠다. 엄마 10분만 자고 일어나서 읽어줄께...'하니

왠일로 '응. 알았어' 하고는 저 쪽으로 간다.

연호는 연호대로 잘 놀기에 나는 그만 스르르 잠이 들어 한참을 잤다.

중간중간 연호가 내게 와서 머리카락을 좀 잡아당기는 것도 느끼고 

형한테로 기어가 둘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뒹굴거리며 깔깔거리는 소리도 듣기는 했다. 

그렇게 잠깐 자다가 내가 퍼뜩 놀라 일어나보니 

연수는 이불 저 쪽에서 혼자 누워 그림책을 배 위에 올려놓고 넘겨가며 보고 있고, 

연호는 내 옆에서 내 안경을 가지고 사부작 거리고 놀다가 내가 눈뜬 것을 보고는 내게로 얼른 안겨왔다.


정말 달게 잘 잤다.

엄마가 꺤 걸 보고는 연수가 '엄마, 10분 다 됐어?'하고 물었다. 

내 기분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된 것 같았지만 '응, 다 됐어. 엄마 너무 잘 잤어.. 고마워' 했다.


참... 이런 날도 있네..^^

많이 컸다. 우리 애기들.

연수가 혼자 그림책보는 모습은 그전에도 몇번 보긴 했지만 오늘처럼 조용히 엄마 자라고 기다려준 것은 처음이라 그 모습이 넘 예뻐보이고 고마웠다.

밥먹고 젖먹고 배부른 연호도 큰 탈없이 형아랑 엄마 곁에서 사부작거리며 잘 놀아준 것이 고맙고....

아. 좋다. 그렇게 한잠 자고 나서 

애들과 조금 더 이불 위에서 놀다가 그제사 졸려하는 연호를 다시 젖물려 재워놓고 연수와 거실로 나왔다.

나는 커피 한잔 하고, 연수는 우유 한잔 마시는데 

창밖에는 비바람이 제법 세차게 부는지 나무들이 많이 흔들렸다. 



저녁 준비할 때쯤.

연수는 식탁위에 올려둔 '새싹채소'화분들에 싹이 텄나 들여다보고있고

연호는 식탁 밑에서 진공청소기 만지며 잘 놀고있기에 

나는 돌아서서 가스렌지에 국을 데우고 있었다.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식탁위에 올려두었던 불고기담은 접시가 식탁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 나있었다.

연호랑 아주 가까운 곳이었는데 다행히 연호는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고 

그릇 조각들도 연호 있는 반대쪽으로 좀 튀어있을 뿐 많이 흩어지진 않은 것 같았다. 

놀란 연수에게 식탁의자에 꼼짝말고 앉아있으라 이르고 연호 안고가서 포대기로 업고 돌아와 

깨진 그릇조각을 치우고 걸레로 주변을 닦았다. 

제법 멀리까지 작은 도자기 조각들이 날아가 있어 꼼꼼히 살피며 여러번 걸레질을 했다.

내 잘못이었다. 식탁 위에 접시가 너무 많이 올려져 있었다.

그 속에서 연수가 채소 화분들을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릴때부터 주의를 주거나, 접시를 좀 치웠어야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연수에게 화를 냈다. 접시가 줄줄이 있는데 화분을 함부로 움직이면 어떡하냐고.... 다섯살 아이가 거기까지 생각하는게 무리인데도..ㅠㅠ 

마음 속으로는 사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있었다.

종교는 없지만, 이런 순간이면 어느 분께든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바로 곁에 있었던 연호가 아무데도 다치지 않은 것은 정말 하느님이 도와주신 덕분이다.. 싶었다.

연수에게도 엄마가 미리 얘기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 사실은 나에게 화가 날 떄가 더 많다. 

화 날 만한 상황을 미리 방지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또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에도 화가 나곤 한다.

빨리 사과하고, 앞으론 내가 더 조심해야지.. 생각하며 얼른 마음을 털어야하는데.




 비오는 날은 어디 나가지도 않고, 누구를 오라 하지도 않고

그저 우리 셋이서 오롯이 뒹굴뒹굴 놀 때가 많다.

농사짓는 사람들처럼 비오는 날이 휴일인 것이다.

안그래도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는 우리 아이들인데 비오는 날 풍경까지 더하니 정말 우리집은 농사짓는 집같다. ^^

가끔 같이 창가에 서서 비소리 듣고, 비오는 동네 풍경을 한참씩 보고 

그림책보고 기차길 만들고 하면서 오늘 하루도 참 여유롭게 잘 보냈다. 

크게 심심해않고 엄마랑 동생이랑 잘 놀아주는 연수가 고맙다. 

쑥국, 불고기, 시금치나물... 식구들먹는 반찬 다 먹어가며 밥 참 잘먹고 잘 노는 애교쟁이 연호도 참 고맙고... 

그래도 이 예쁜 애들한테 오늘도 꽤 여러번 화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굴기도 했다. 미안하다..ㅠ 

밤늦게까지 야근하며 고생하는 남편도 가엾다. 몸도 힘들텐데...



내일 하루도 잘 보내야지.. 

오늘보다 적게 화내고, 더 많이 웃으면서.

내일은 날이 좀 개려나... 따뜻해서 아이들이랑 장보러 다녀올 수 있었음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