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2012. 4. 25. 23:33


오늘 참 신통한 일이 있었다.

비오는 날.. 따뜻한 쑥국 끓여 점심밥도 잘 먹고 나니 무척 졸렸다.

얼추 연호도 졸릴 때가 된 것 같아 아이들 데리고 안방에 들어갔다.

누워서 연호 젖물리며 연수 책 읽어주는데.. 암만 봐도 나만 졸린 모양이다. 애들은 말똥말똥... 나는 헤롱헤롱.


젖을 다 먹은 연호는 떼구르르 굴러 발딱 일어나 앉더니 안방을 기어다니며 이것저것 뒤적이고 놀기 시작했다.

연수는 거실로 가서 책들을 몇권 더 들고와 '엄마, 이 책 좀 읽어줘'하는데 나는 너무 졸려서 그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렸다.

'아고.. 연수야, 엄마 너무 졸려서 안되겠다. 엄마 10분만 자고 일어나서 읽어줄께...'하니

왠일로 '응. 알았어' 하고는 저 쪽으로 간다.

연호는 연호대로 잘 놀기에 나는 그만 스르르 잠이 들어 한참을 잤다.

중간중간 연호가 내게 와서 머리카락을 좀 잡아당기는 것도 느끼고 

형한테로 기어가 둘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뒹굴거리며 깔깔거리는 소리도 듣기는 했다. 

그렇게 잠깐 자다가 내가 퍼뜩 놀라 일어나보니 

연수는 이불 저 쪽에서 혼자 누워 그림책을 배 위에 올려놓고 넘겨가며 보고 있고, 

연호는 내 옆에서 내 안경을 가지고 사부작 거리고 놀다가 내가 눈뜬 것을 보고는 내게로 얼른 안겨왔다.


정말 달게 잘 잤다.

엄마가 꺤 걸 보고는 연수가 '엄마, 10분 다 됐어?'하고 물었다. 

내 기분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된 것 같았지만 '응, 다 됐어. 엄마 너무 잘 잤어.. 고마워' 했다.


참... 이런 날도 있네..^^

많이 컸다. 우리 애기들.

연수가 혼자 그림책보는 모습은 그전에도 몇번 보긴 했지만 오늘처럼 조용히 엄마 자라고 기다려준 것은 처음이라 그 모습이 넘 예뻐보이고 고마웠다.

밥먹고 젖먹고 배부른 연호도 큰 탈없이 형아랑 엄마 곁에서 사부작거리며 잘 놀아준 것이 고맙고....

아. 좋다. 그렇게 한잠 자고 나서 

애들과 조금 더 이불 위에서 놀다가 그제사 졸려하는 연호를 다시 젖물려 재워놓고 연수와 거실로 나왔다.

나는 커피 한잔 하고, 연수는 우유 한잔 마시는데 

창밖에는 비바람이 제법 세차게 부는지 나무들이 많이 흔들렸다. 



저녁 준비할 때쯤.

연수는 식탁위에 올려둔 '새싹채소'화분들에 싹이 텄나 들여다보고있고

연호는 식탁 밑에서 진공청소기 만지며 잘 놀고있기에 

나는 돌아서서 가스렌지에 국을 데우고 있었다.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식탁위에 올려두었던 불고기담은 접시가 식탁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 나있었다.

연호랑 아주 가까운 곳이었는데 다행히 연호는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고 

그릇 조각들도 연호 있는 반대쪽으로 좀 튀어있을 뿐 많이 흩어지진 않은 것 같았다. 

놀란 연수에게 식탁의자에 꼼짝말고 앉아있으라 이르고 연호 안고가서 포대기로 업고 돌아와 

깨진 그릇조각을 치우고 걸레로 주변을 닦았다. 

제법 멀리까지 작은 도자기 조각들이 날아가 있어 꼼꼼히 살피며 여러번 걸레질을 했다.

내 잘못이었다. 식탁 위에 접시가 너무 많이 올려져 있었다.

그 속에서 연수가 채소 화분들을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릴때부터 주의를 주거나, 접시를 좀 치웠어야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연수에게 화를 냈다. 접시가 줄줄이 있는데 화분을 함부로 움직이면 어떡하냐고.... 다섯살 아이가 거기까지 생각하는게 무리인데도..ㅠㅠ 

마음 속으로는 사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있었다.

종교는 없지만, 이런 순간이면 어느 분께든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바로 곁에 있었던 연호가 아무데도 다치지 않은 것은 정말 하느님이 도와주신 덕분이다.. 싶었다.

연수에게도 엄마가 미리 얘기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 사실은 나에게 화가 날 떄가 더 많다. 

화 날 만한 상황을 미리 방지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또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에도 화가 나곤 한다.

빨리 사과하고, 앞으론 내가 더 조심해야지.. 생각하며 얼른 마음을 털어야하는데.




 비오는 날은 어디 나가지도 않고, 누구를 오라 하지도 않고

그저 우리 셋이서 오롯이 뒹굴뒹굴 놀 때가 많다.

농사짓는 사람들처럼 비오는 날이 휴일인 것이다.

안그래도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는 우리 아이들인데 비오는 날 풍경까지 더하니 정말 우리집은 농사짓는 집같다. ^^

가끔 같이 창가에 서서 비소리 듣고, 비오는 동네 풍경을 한참씩 보고 

그림책보고 기차길 만들고 하면서 오늘 하루도 참 여유롭게 잘 보냈다. 

크게 심심해않고 엄마랑 동생이랑 잘 놀아주는 연수가 고맙다. 

쑥국, 불고기, 시금치나물... 식구들먹는 반찬 다 먹어가며 밥 참 잘먹고 잘 노는 애교쟁이 연호도 참 고맙고... 

그래도 이 예쁜 애들한테 오늘도 꽤 여러번 화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굴기도 했다. 미안하다..ㅠ 

밤늦게까지 야근하며 고생하는 남편도 가엾다. 몸도 힘들텐데...



내일 하루도 잘 보내야지.. 

오늘보다 적게 화내고, 더 많이 웃으면서.

내일은 날이 좀 개려나... 따뜻해서 아이들이랑 장보러 다녀올 수 있었음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