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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3 반려식물 이야기
  2. 2020.03.12 봄 찾기
  3. 2020.02.16 아침 산책
  4. 2020.02.12 크리스마스 장식을 정리하며
  5. 2020.02.11 뜨거운 차 한 잔
  6. 2020.02.10 반성하는 시간 2
  7. 2020.01.31 눈이 귀한 겨울
  8. 2020.01.29 우리집
  9. 2020.01.22 강밥
  10. 2020.01.16 사랑을 키운다는 것

우리집에는 식물이 많이 산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살아온 식물도 있고
작년에 새로 우리집에 온 식물도 있다.

‘반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짝이 되는 벗’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반려자, 반려인이라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 있지만 요즘은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장난감이라는 의미의 ‘완’자가 들어있는 ‘애완’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친구라는 의미의 ‘반려’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식물은 어떨까.
식물들은 굉장히 독립적이다.
내가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기도 하지만 거의 스스로 살아간다.
햇볕을 받고 숨을 쉬며 자란다.
말을 주고받는 법은 없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문득 시선이 머문 나에게 빛나는 초록 잎으로, 고운 꽃으로 뭉클한 위로와 상쾌한 인사를 건네준다.

함께 살아가는 친구.
나에게는 안방 베란다와 거실 한켠, 아이들 방과 화장실에서 자라고 있는 이 식물들이 좋은 반려 친구들인 셈이다.

 

언젠가부터 안방 베란다를 가득 채운 이 식물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수선하고 정신없긴 하지만 나름의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식물들.
나에게는 모두 소중하고 예쁜 친구들이다.

바쁜 육아와 살림의 시간 사이에 잠깐 짬을 내서
이 베란다에 서서 호스로 물을 뿌려주면서
나는 구석구석 숨어있는 식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잘 자라고 있나 살피고
혹시 그새 시든 아이는 없는지, 새로 싹튼 식물은 없는지 찾아본다.
이렇게 초록 식물들과 눈을 맞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식물들의 냄새를 맡는 시간에 나는 참 큰 위로를 받곤 했다.
잠시 시골 친정집 마당에 선 것처럼..
나만의 작은 정원에 머무는 시간.

식물을 키우며 살아온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스물대여섯살, 혼자 자취할 때부터 식물을 키운 것이 생각나니 이십년 가까이 되었네.

식물들 이야기를 이제부터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으로 식물을 잘 알지도, 키우지도 못하는 사람인지라
식물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식물과 함께 해온 내 이야기, 나와,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온 식물 이야기 정도 될 것 같다. ^^
나에게 소중한 존재들- 친구들 이야기.
하다보면 더 좋은 생각도 들고, 더 잘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3. 12. 12:05

봄이라는 것이 그저 때되면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요즘같은 시절에는 애써 찾아야 찾아지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햇살이 따뜻해보이는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바람쏘이러 아파트 마당에 나갔다.
어린 쑥이 보인다.
연수는 냉이를 열심히 찾는다.

핸드폰으로 검색까지 해가며 최대한 냉이 비슷하게 생긴 풀을 찾아내 뽑아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미.. 미안하다 풀아..ㅠ
내가 보기엔 냉이가 아닌데 연수는 엄마가 끓인 냉이된장국에서 나는 냄새랑 비슷한 냄새도 난다며 냉이가 맞다고 열심히 우겨서 집에까지 가져왔다.


동네 마트에서 며칠치 먹거리를 장봐가지고 돌아오는 길, 자기들이 수레를 끌겠다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저 아이들이 봄인건가.
봄처럼 자라는 아이들.

어제 산책나간 망월천 호수 옆으로는 양지바른 둑에 쑥이 파랗게 올라왔고
아주머니 한분이 편하게 주저앉아 쑥을 캐고 계셨다.

봄이 어렵게 어렵게 찾아오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2. 16. 12:58

어제 아침에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동네 산책을 나섰다.
아이들이 친한 친구집에 가서 하루 자면서 놀고오기로 해서 집에 어른사람 둘뿐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놀아달라조르고, 밥차려줘야하는 아이들이 없으니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발걸음이 절로 가벼웠다.

우리집 옆에는 호수공원이 있다.
아이들과 자주 놀러가서 새들도 보고,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가끔 그림도 그리는 곳이다.
어제는 그 공원부터 가지않고 며칠전부터 생각해둔 숲을 찾아갔다.
집에서 좀 더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인데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니 작지만 나무가 빽빽한 숲이 있었다.
숲이 귀한 신도시인지라 그 정도만 해도 지나치며 눈길이 절로 갔었다.

얼마전 ‘아 걸어서 갈 수 있는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차타고 지나다니며 본 그 숲이 생각났고 좀 멀지만 어른 걸음이면 운동삼아 걸어가볼만 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 한가했던 어제 아침에 마스크를 끼고, 운동화를 신고서 숲을 향해 집을 나섰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혼자서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상쾌하고 홀가분한지 새삼 느낄 때가 많다.
안고 업고, 유모차를 밀고 킥보드를 끌어주며 몇년을 지내다보니
아무도 내게 매달리지않고 내 한 몸, 내 발로 가볍게 걸어 옮기는 그 감각이 너무나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힘든 일터를 오고가느라 종종걸음을 옮기는 시간이라면 혼자라도 힘들 것이고, 몸이 아프면 내 힘으로 걸어야하는 것이 무척이나 서럽겠지만.. 고맙게도 지금은 운동삼아 산책나선 길.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시간이다.

숲에 도착해 무사히 입구를 찾고 작은 숲을 한바퀴 빙 두르게 되어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청설모를 두 마리나 만났다.
동그랗게 허리 쯤에 산책로를 감고있는 숲 앞에는 올 봄에 문을 여는 ‘청소년수련관’이 공사를 거의 끝내고 서있었다.
옆으로도 체육시설과 놀이터가 같이 있는 공원이 있어 아이들과 봄에 여기와서 숲에도 가고, 수련관 프로그램도 듣고 하면 참 좋겠구나.. 생각했다.

주위를 더 둘러보다보니 우리집앞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망월천 산책로가 보였다.
이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야겠다.. 하고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겨울 냇물에서 헤엄치는 오리들과 하얀 백로가 나에게 ‘친구 안녕?’하고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았다. 안녕, 얘들아!

좁은 냇물인 망월천은 모래밭이 넓은 곳을 지나며 잠시 폭이 넓어지기도 했다가 다시 좁아져서 졸졸졸 빠른 물소리를 낸다.
그렇게 한참을 흘러서 우리집 옆까지 오면 꽤 널찍한 호수를 이룬다.
가마우지들과 해오라기, 오리들이 많이 사는 호수가에서 잠깐 구경하며 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지도로 거리를 계산해보니 왕복 거의 3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은 셈이었다. 와!
천천히 걷다가 동네 구경하다가 하느라 시간은 1시간이 좀 넘게 지났다.

어제 다녀오고 참 좋아서 오늘 아침에도 산책을 다녀왔다. 조금씩 길을 달리하면서 작은 풍경이 달라지는 것도 구경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편안히 할 수 있어 좋았다. 숲 사진은 못 찍었네.. 가능하면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싶다.

친정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면 아침 운동을 하신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1시간 남짓 동네길을 걸어서 다녀오셨는데 요근래에는 무릎이 아프셔서 많이 걷기가 어려우시다고 한다. 잘 나으셔서 봄에는 다시 운동하실수 있으시길..
친정오빠도 새벽에 늘 걷고.. 나도 새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침에 아이들 밥차려주기 전에 산책을 하면 좋겠다.
숲을 찾았으니.. 호수도 곁에 있으니..

아침에 나갔을 때는 흐리기만 했는데 지금은 눈이 펑펑 온다.
숲의 나무들도 하얗게 눈 옷을 입겠네..
내가 찾아가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늘 거기 있어주었던 숲과 호수야.. 고마워.
아름다운 것들은 찾아가야, 찾아내야 볼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20. 2. 12. 11:11

“루돌프야 안녕
나는 연제야
루돌프야 사이좋게 지내자
내가 너를 꼭 볼꺼야 알겠지
안녕 빠이빠이
연제가”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연제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크리스마스 장식에 써있는 편지.

편지 아래에는
썰매 줄을 매달고있는 루돌프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자기 모습도 그려놓았다.
^^

몇해동안 겨울마다 우리집 거실 창문에는 반짝이 전구줄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생겼었다.
요 전등 나무 아래에 해마다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이 놓여졌다.

크리스마스 이브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몰래 숨겨놓았던 선물을 꺼내와 조용조용 포장지로 포장을 하는 일은 번거롭기도 하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제는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진실’을 알아야하지 않겠냐며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얼마후에 연수와 연호에게 “사실은 산타할아버지가 아니고 아빠가 선물 사온거야~”하고 말했다.
열두살 연수는 ‘그럴줄 알았다’는 반응, 아홉살 연호는 ‘그럴리없다’는 반응. ^^;;
일곱살 연제는 아마 아직 굳게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의 존재를 믿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흔두살, 이제 마흔세살이 된 나도 믿고 있다.
산타할아버지의 정신은 세상의 많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가난한 아이들에게 따뜻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이브밤에 우리집 창밖에 와서 보고 “음~ 올해도 엄마아빠가 선물을 잘 준비해놓으셨구나. 루돌프야 우린 그냥 지나가도 되겠다. 연수연호연제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라~ 허허허허허” 하고 아이들의 꿈속에 인사를 남기고
다른 선물없는 아이들의 집으로 날아가셨을지 누가 아는가.

겨우내 창문에 붙어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얼마전에 떼서 상자에 넣어 수납장 꼭대기에 올려두었다. 아이들이 만들고 쓴 크리스마스 장식들도 함께.
한해를 잘 살고 12월 초쯤되면 아이들과 또 꺼내보겠지..
올해는 진실(?)을 알게된 아이들도 있으니 조금 다른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웃을 돕고 마음을 나누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벌써 기다려진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2. 11. 12:12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내다
뜨거운 차를 한 잔씩 끓여 먹는다.
생강차나 유자청 사놓은 것을 타먹을 때도 있고
작년 가을에 친정오빠가 선물로 준 허브차를 마시기도 한다.

 

 

허브차와 홍차가 섞여있는 세트인데 차를 잘 모르는 나는 짧은 설명서를 잘 읽어보고 그 날의 차를 고른다.
며칠전 이웃분의 블로그에서 아름다운 숲 사진들을 보고나서는 나도 숲에 가고싶은 마음으로 ‘Mountain Herbs’(산 허브들)이라는 차를 골라 마셔보았다.
나는 비록 아파트 숲 속에 있는 내 집 부엌 식탁에 앉아있지만 아름다운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 듯한 마음으로..

오늘은 향이 시원한 ‘페퍼민트’를 마신다.
아이들은 수학 문제집을 펼쳐만 놓고 “어려워~ 안해~~!”하고는 도망가서 레고놀이를 하느라 돌아오지 않는 식탁에서
나 혼자 천천히 페퍼민트를 마신다.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며..-.,-

이렇게 매일 한 잔씩 마시다보면 어느새 겨울이 끝나있겠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새 학년의 공부를 시작할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좀 가라앉아 있으련지..
어려운 날들을 모두 다 잘 견디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밥을 잘 챙겨먹고, 뜨거운 차도 한 잔씩 마시며.. 애쓰고 있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싶은 오전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오늘 그림2020. 2. 10. 13:33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는데...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별것도 아닌 일로 실랑이하고 목소리 높여 채근했던 방금전이 미안해진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1. 31. 14:59

올 겨울 우리 동네에는 아직까지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강원도나 다른 지역은 눈 소식도 있고, 제설작업이 힘든 곳도 있다던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는 눈다운 눈이 한번도 안 온것 같다. 벌써 1월도 끝나가고 2월인데..

기후가 변하고 날씨가 달라지는 것이 한해한해 더 피부로 느껴진다.
이러다 또 춥고 눈많은 겨울이 찾아올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기온이 올라가고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의 계절이 예전과는 점점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온난화.. 멈출 수 있을까.
지구의 시간을, 아니 사람들의 시간을 지킬 수 있을까.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논다.
방학이고, 날이 따뜻하니 동네 남자 아이들은 우리집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축구장에 모여 낮이면 늘 떠들썩하게 축구를 한다.
우리집 아이들도 끼여서 놀다가 집에 와서 밥먹고 또 나가서 뛰어논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두려움과 긴장을 안고 있지만 아이들은 타고난 생명력으로 뛰고 웃고 어울린다.
부디 더 퍼지지말고, 아픈 분들도 잘 나았으면..

설 전에, 그러니까 19일 일요일 오전에 눈이 살짝 왔었다.
1시간 남짓되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올겨울들어 처음보는 함박눈이 잠시 펑펑 내렸다.
아파트 단지 안이 금새 하얀 눈나라가 되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눈은 아쉽게도 금방 그치고 잠시후 해도 나는 바람에 다 녹아버렸지만
짧은 한나절 눈세상이 된 아파트 단지에 정말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나와
모처럼의 눈을 반가워 했었다.

그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나와서 눈을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아이처럼 공을 들여 예쁘게 눈사람을 만들던 어느 아빠의 모습과
반갑고 좋으면서도 아쉽고, 걱정되는듯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의 복잡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디 멀리 눈썰매장이나 스키장을 가도 좋겠지만
내 집 앞에서, 우리 동네에서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같은 눈을
신비롭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맘껏 놀 수 있는 겨울날이 아이들에게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20. 1. 29. 11:36

설 명절을 잘 쇠고 왔다.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인 시댁 식구들과 재미있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동안 대식구 먹일 음식들을 만드시느라 어머니가 올해도 고생을 많이 하셨고, 나는 그저 옆에서 좀 거들고 치우고만 했는데도
집에 돌아와서는 파김치가 되어 연휴 마지막 날을 꼼짝않고 누워 쉬었다.

마음속으로는 새해도 되었으니 어지러운 집을 좀 정리해야지.. 늘 생각하고 있었어서
어제는 몸을 다시 움직여서 청소를 하고 맘먹었던 집정리도 좀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정리할 거리가 너무 많고, 한 구석에서 내가 정리를 하는동안 심심한 아이들은 청소해서 나름 깨끗해진 거실에서 또 꼬물꼬물 자기들 맘대로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석 낚시놀이를 하겠다며 종이에 물고기들을 그려 오리고 클립을 붙여 자석달린 낚싯대로 잡는 놀이를 신나게 하느라 셋이 여기저기에 스케치북 쪼가리, 색연필 들을 흩어놓더니
나중에는 각자 기지를 만들어서 너프총(길쭉하고 말랑한 고무총알을 쏠 수 있는 총)들을 하나씩 들고 공격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그래서 한쪽 머리에서는 엄마 혼자 아일랜드와 장식장 위를 치우고
나머지 집 전체에서는 아들 셋이 온갖 가구와 이불을 끌어다가 기지를 만드는 난리북새통이 펼쳐졌다.


연수가 거실 한복판에 식탁 의자들로 기지를 건설하자 연호는 아일랜드 옆쪽에 공부방 의자를 끌어와 이불로 덮어 기지를 건설했다.

연제 기지는 식탁 아래와 옆으로 남은 식탁의자를 연결해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기지를 만드는 속도도 빠르거니와
한창 신나서 즐겁게 쿵짝쿵짝 노는데 내가 끼어들기도 뭐해서 가만 두고 봤더니
금새 거실은 볼만하게 되었다.

에고... 이 난리통에 정리는 무슨 정리냐..
새해를 맞아 수첩을 펴들고 적은 집정리 목록은 열가지도 넘는 것 같은데
딱 한군데(아일랜드 위)만 하고 나서
나는 우선 보류했다. ^^;;;

봄이 오면 하지..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나면..
그전에 살살 할 수 있는 옷장 정리같은 거나 좀 하고,
아이들 침대방에 우선 다 몰아넣은 장난감 정리랑
공부방에 잔뜩 쌓인 작년 교과서들과 책상 정리나 또 하루 하고...

연수는 막대걸레 봉에 오래된 밥상보를 매달아 자기 기지의 깃발도 만들어 신나게 흔든다.
열세살 큰아들의 겨울방학.
집에서는 이렇게 맘껏 어지르면서도 놀 수 있어야지.. 다같이 치우면 금새 치울 수 있다.
나만의 기지란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공간인가.

가끔 빨랫대를 펼치고 의자들을 연결해서 이불을 덮어씌우고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다.
제 힘으로 만든 텐트같은 공간에 아이들은 좋아하는 만화책도 갖다놓고, 귤이랑 간식거리도 챙겨다 놓고, 불을 밝힐 후레쉬랑 별거별거를 다 갖다나른다.

엄마인 내가 우리집을 가꾸고 싶어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자기가 마련한 작은 공간이 좋아서 포근하게 그 안을 꾸미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집안에 각자의 집도 마련해보고,
그러다가 또 다같이 치우고, 맘껏 어지르고 맘껏 놀고 같이 깔깔 웃고, 한쪽 구석을 치우고 밥을 함께 먹고,
잠잘때는 이불들을 다시 제 침대로 가지고 가서 덮고 잔다.
그러다 보면 이 겨울도 지나가고 봄이 오겠지..

아이들과 남편과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집의 오늘 풍경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20. 1. 22. 11:48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러 옆단지에서 열리는 알뜰장터에 다녀왔다.
연수가 좋아하는 어묵이랑 연제가 좋아하는 닭꼬치를 사고 돌아오려는데 강냉이 파는 천막이 보였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엄마가 시장에서 큰 봉다리로 하나씩 튀겨오시던 강냉이를 양푼에 한그득 담아놓고 야곰야곰 먹으며 책읽고 그림그리며 놀던 기억.
그 추억의 맛때문에 강냉이를 보면 그냥 지나가기가 어렵다. ^^;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강냉이 한 봉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쌀 튀밥 한 봉지를 샀다.
쌀을 튀긴 하얗고 보드라운 쌀튀밥을 나도 어릴때 참 좋아했었다. 우리집에서 할머니들이 과즐(한과)을 만드시던 시절에 기름에 튀겨 붕그렇게 부푼 과즐반죽에 조청을 바르고 하얀 쌀튀밥을 붙이면 달콤하고 촉촉한 과즐이 된다. 그게 정말 맛있었는데..

아빠가 몇해전부터 밀가루 알레르기가 심해지셔서 좋아하시던 음식들을 많이 못드시게 되었다.
심한 두드러기와 함께 쓰러지시곤 하셔서 응급실에 몇차례나 다녀오셨다.
다행히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 가라앉아서 괜찮아지셨지만
엄마아빠 두분 다 많이 놀라시고
평소에 먹는 음식을 많이 신경써서 가려드셔야하니
음식 준비하는 엄마도, 좋아하는 음식들을 못 드시는 아빠도 어려움이 많으시다.

고향에서는 ‘강밥’이라고 부르는 강냉이를 보고 있으니 아빠엄마 생각이 난다.
이런 간식도 참 좋아하시는데... 혹시 드시고 탈날까봐 이제는 선뜻 사드시기도 어렵겠지.
밀가루뿐만 아니라 기름에 튀긴 과자들이나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음식들도 조심하셔야 한다.

설이 며칠 안 남았다.
대식구의 먹거리와 제사 음식들을 준비하고 차리는 일은 힘들지만
그래도 보고싶은 가족들이 한데 모여 맛있게 잘 먹고, 조상님께 감사인사도 드리고, 서로의 얼굴을 환하게 바라보며 올해도 잘 지내기를 빌어주는 시간은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다.
친정의 엄마아빠도 설을 잘 보내시기를, 좋은 음식들 맛있고 편안하게 잘 드시고 푸근하게 지내시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새봄에 아이들데리고 뵈러갈께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20. 1. 16. 12:16

 

겨울방학이다.
아이들과 함께 아옹다옹 붙어지내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함께 있으니 좋다는 것.
집은 몹시도 어지럽고 세끼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은 쉽지않지만
같이 장난치고 웃고 잠깐씩 같이 게임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는 시간이 귀하고 좋다.

 

연수는 새해 열세살이 되었다.
오마나.. 언제 이렇게 컸담..
너의 아기시절이 생생한데

아직은 막내동생과 똑같이 삐지고 싸우며 엄마에게 응석을 부리는 큰아들이지만
얼마 안있어 성큼 내 곁에서 멀어져 저만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럴꺼라 생각하고 있어서 남은 시간을 달콤한 곶감빼먹듯 아껴아껴 보내고 싶어진다.

 

 

다정한 우리 둘째 연호는 새해 열살이다.
열살.. 얼마나 파릇파릇 좋은 나이인지! ^^

속상하고 서운할 때가 많은 둘째지만 그래도 언제나 가족들을 가장 많이 이해하고, 가장 많이 보듬으려고 애쓴다.
장래 희망이 축구선수인 연호야,
새해에는 더 튼튼해지렴.
밥 많이 먹고 많이 뛰어놀자~^^

 

막내 연제는 새해 여덟살.
새봄에는 초등학생이 된다.
내가 어릴때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재주꾼’이라고 하셨다. 한옥집 뜨락에서 가족 사진을 찍을 때였나.. 아무튼 그 말씀에 나는 좀 으쓱하고 기분이 좋았어서 오래오래 기억한다.
지금 연제를 보면 딱 할아버지 표현대로 ‘재주꾼’ 같다.

춤도 잘 추고, 운동도 잘 하고, 사람들 웃기기도 잘 하는 연제는
형님들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많아
나이보다 의젓한 면도 있지만
짖궂게 까불거릴 때도 많다.
고집은 또 어찌나 센지.. 형들도 고집이 있지만 그럭저럭 엄마 말은 잘 듣고 조율도 되는데 비해 막내는 그야말로 고집불통이다.

나는 그런 연제를 걱정했다가 화가 나면 혼을 내다가 미워하기도 했다가 또 어린 아이한테 사랑을 줘야지 미워하면 안되지.. 하고 반성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면서 연제도 자라는 것일까.
이러다보면 어느날 막내도 엄마 말을 어느 정도는 수긍할 줄도 알게 되고, 형들과 놀 때 제멋대로 고집부리지 않고 그러다 언젠가는 의젓하게 철이 든 중학생 형님도 되고.. 그러는 것일까.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사랑을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랑의 그릇을 키워가는 것.
처음부터 아주 넓고 찰랑찰랑 넘칠만큼 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내가 품고 키우고 마음쓰는 대상이 많아지고 커짐에 따라
내 사랑의 크기도 커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를 키우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키우고
친구들이, 동료들이 서로를 키우고
함께 있는 존재들로 인해, 사랑하는 존재들로 인해
내가 자라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필요한 것보다 줄 수 있는 것이 적어 부족할 수도 있다.
영영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늘리고,
서로 또 채워주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일방통행은 아니니까.
아이들이 나에게 주고 있는 사랑을
알아차리고 고맙게 받아서 나도 또 내 사랑을 키워가야.


 

방학 맞은 삼형제는 셋이서 많이 논다.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피구하고 축구하며 놀 때도 있지만 주로는 집이든, 공원이든 셋이 붙어 다니며 논다.
아직은 나도 늘 끼워주고 싶어해서
가끔은 넷이서 논다.
주말이 와서 아빠까지 다섯이 놀면 더 신난다.

오래 붙어있으면 많이 싸우지만 그만큼 더 서로에게 잘 맞출 수 있게 되고 잘 놀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시간의 선물이다.
하지만 그냥 시간만 같이 보낸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처가 쌓일 수도 있으니까..
보며 때도 .
서로 아껴주고 이해하려고 하고, 함께 잘 성장하려고 애쓰는 시간이 쌓일 때에만 이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의 비밀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고마운 ‘시간’ 말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