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이름



어느날 연호가 물었다. 


연호 : 엄마, 엄마는 왜 이름이 두 글자야?


나는 익숙한 대답을 준비했다. '엄마의 할아버지가...'로 시작되는. 

워낙 많이 받아본 질문이라 대답도 거의 자동으로 나온다. ^^;


엄마 : 그건..


연호 : 그렇지? '엄'하고 '마'하고 두 글자잖아~~ 왜 그래??


ㅍㅎㅎㅎㅎㅎㅎㅎ

아. 정말.. 아이들 질문이란걸 깜빡했네.
늘 같은 대답 "글쎄다.."가 자동으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우리 꼬마들 질문이란걸!




2. 형아


올해가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아빠가 연호를 꼭 끌어안고 있다가 문득 말했다.


아빠 : 와~~! 우리 연호 다섯밤만 자면 다섯살되네~~!!^^


연호 : 응!! 그럼 형아는 몇살이야?


아빠 : 형아는 여덟살~~.


연호 : 그래? 그럼 아직도 형아라고 불러야되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은.. 숙명.




오늘 저녁에는 잠들기전에 연수가 찾아온 그림책 '뽀뽀손'과 '주머니 속 뽀뽀손'을 읽었다.

아이들은 차례로 손바닥에 뽀뽀를 해달라고했다.
그리고 연호는 잠시 누웠다가 일어나서는
'엄마의 손바닥을 부채처럼 펴서' 라고 종알거리며 내 손바닥에 정성스레 뽀뽀를 해주고는 다됐다는 듯이 씩 웃으며 제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저 예쁜 녀석을 내년에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내나..
'다섯살되면 나도 형아처럼 어린이집에 다닐꺼야! 엄마 나도 보내줘~'하고 말해왔던 연호는 씩씩하고 의젓하게 너무도 잘 갈 것이다.
연호가 집에 없는 시간동안 내가 허전하고 그리울 것이 문제~ㅠㅠ
연제도 그리울껄~~~ 늘 저와 함께 놀아주던 형아가 곁에 없으면..ㅜ

남은 겨울 동안
연호와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안아봐야겠다.

다정하고 속깊은 우리 둘째..
연호야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14. 12. 22. 01:45

쓰고싶은 블로그 글은 많은데.. 사진들만 정리해두고 쓰지 못한 포스팅도 많은데...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 쓰지 못했다. 

생각할 것들도 있었지만, 움직일 일들이 우선 많아서 아이들데리고 종종거리며 작은도서관과 아파트 마당을 오고가다 보면

밤에는 고단해 아이들과 함께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에 12월도 어느새 21일이 지나 오늘은 벌써 동지다.

한해가 저물어가네..

올한해 많은 시간을 보냈던 우리 아파트 작은도서관 까페에 썼던 글 하나를 소식삼아 우선 퍼온다. 

작은도서관 이야기, 올 한해 돌아보는 글... 조만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쓸 수 있겠지...? 꼭 쓸테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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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꼬마들이 설레어하며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습니다. ^^
작은도서관에도 친구들의 소원을 적은 손바닥트리가 빼곡히 채워지고, 양말로 만든 산타할아버지 인형이 웃고 있답니다.  










15일부터 작은도서관 멀티미디어실에서 '상상마루 크리스마스 도서전'이 열리고 있어요. ^^
작지만 우리 도서관의 소중한 첫 도서전이네요~~ㅎㅎ

도서관과 각 가정에 있는 크리스마스 그림책들을 모아서 전시해 보았어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그림책들이 많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 작가들의 아름다운 그림.. 
아이들 데리고 찾아오셔서 한번 천천히 읽어보셔요.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거예요. ^^
(초등학생들이 읽으면 좋을만한 책도 많답니다! 자녀들께 권해주세요~~)









혹시 지금이라도 함께 보고싶은 크리스마스 책이 있으시면 잠시 도서관에 빌려주세요~^^
'비치용 도서' 라벨을 붙여 12월 동안 전시하고 돌려드릴께요. 
도서관 데스크로 문의해주시면 된답니다~,









이번 도서전은 '엄마를 위한 그림책 모임'에서 준비해주셨어요. 
도서전의 일환으로 '세월호 머그컵'도 함께 판매하고 있답니다. 
모두들 행복한 날일수록 아픈 사람, 약한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여주시민모임'에서 제작한 이 머그컵은 세월호사건을 함께 아파하는 작가분들의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1개 3,000원이고요, 수익금은 '여주시민모임'을 통해 세월호희생자 가족분들께 전해진답니다. 

작은도서관에 들리시면 따뜻한 머그컵도 하나 장만하셔서 
추운 겨울, 따뜻한 차 한잔 드실때 마음아픈 분들께 소중한 위로도 함께 건네주시길 부탁드려요..


상상마루를 찾는 이웃분들 모두.. 가족과 함께 행복한 성탄절과 겨울 보내시길 빕니다. ^^



Posted by 연신내새댁


우리 순이 어디 가니 - 10점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보리












첫아이 돌선물로 이 책을 받았다. 

그림책이라고는 보드북 두어권밖에 없었던 때라 어린 아기보다 내가 더 설레어하면서 책장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한장씩 책장을 넘기며 읽어주다가 그만 목이 콱 메어왔다. 

목소리가 이상해지고, 눈물을 자꾸 훔치고, 그러다가 우는 자신이 멋쩍어서 또 헤헤 웃는 엄마를 우리 꼬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려나..?  


책 내용은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니다. ^^

어린 여자아이 순이가 엄마를 따라 밭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아버지께 새참을 갖다드리러 가는 길에 

들쥐, 청개구리, 딱따구리 들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 하고 묻는.

봄날 들판의 풍경이 너무나 따뜻하고 밝은 색감으로 그려져있고, 머리에 새참 광주리를 이고 멀리 걸어가시는 엄마의 뒷모습, 양은주전자를 들고 팔랑팔랑 따라가는 순이의 모습이 아련하고 고운 그림책이다. 


문제는 할머니.

그림책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증조할머니랑 똑같이 생기셨다!

하얀 머리를 하나로 묶어 비녀로 쪽진 모습, 얼굴 모양.. 우리 증조할머니를 보고 그렸나? 싶을 만큼 똑같이 생긴 책속의 할머니를 보고 시작부터 나는 콧날이 시큰해져 버렸던 것이다.

어린시절에 나는 증조할머니 짝꿍이었다. 언니는 할머니 짝꿍, 오빠는 할아버지 짝꿍.. 함께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던 어린시절이었다. 나는 증조할머니와 한 방을 썼다. 귀가 잘 안들리는 할머니를 위해 큰소리로 다른 식구들 말을 전해주는 통역사 노릇도 하고, 할머니가 살짝 챙겨주시는 사탕과 과자를 오물오물 받아먹으며 놀았다. 증조할머니는 내가 열네살때, 아흔여섯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자그마한 몸, 주름진 얼굴, 하얀 머리.. 말수가 거의 없으셨던, 하얀 치마저고리를 늘 입고계셨던, 나를 좋아해주셨던 다정하고 고운 증조할머니.


그림책이 주는 감동과 기쁨이 참 크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림 한장으로 단박에 나를 유년시절로, 증조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속으로 데려가 주었던 책.

이 책에는 젊은 시절의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도 들어있고, 새참이고 가는 엄마 뒤로 주전자를 들고 따라갔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도 들어있다. 

아마 그 시절의 나도 순이처럼 들판의 많은 자연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다정한 목소리들, 잘있니, 욱아, 우리는 잘 있어, 손흔들듯 흔들리는 나뭇잎, 풀잎들, 먼 산 풍경에서 늘 듣는다.  





세월호 이야기 - 10점
한뼘작가들 지음/별숲



<내 인생의 그림책>이란 주제로 '엄마를 위한 그림책' 모임 엄마들과 함께 글을 쓰기로 하고,

무슨 책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보았다. 

그림책에도 숨결이 있다면 이 책의 숨결은 거칠다. 뜨거운 울음이 목구멍에 차있어서 '흑흑'하고 금방 터져나올 것 같은 그런 글과 그림의 모음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고, 지금도 울고있다.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남을 큰 아픔과 슬픔을 그림책 작가들이 어떻게 같이 지고 나가려고 하는지.. 애쓰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기억'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충 잊고 지나가자 하다가는 다시 반복될지 모르는 무서운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명 한 명.. 그 삶의 이야기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슈퍼집 착한 아들, 음악 좋아하는 아이, 구두 좋아하던 딸, 아들 만나러가던 엄마, 엄마아빠동생과 함께 이사가던 일곱살 어린 아이... 


한번 쭉 읽고나니 힘이 탁 풀려서 '내가 이 그림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꽂이에 꽂힌 다른 그림책들처럼 이 책도 이따금 한번씩, 그냥 뽑아서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꼭 그러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면 함께 읽기도 할 것이다. 작은 내가,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슬플 사람, 아픈 사람을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내가, 우리가 되고싶기 떄문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카테고리를 어디로 설정해야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엄마를 위한 그림책'으로 정했다. 

'엄마를 위한 그림책'모임 덕분에 알게된 책들이 여럿 있기도 하고, 

아이들과 넘 재밌게 깔깔거리며 보고 있어서 '아이들책'으로 분류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조금 갈등하다가 전자로 결정. 

요즘은 그림책이 아이들과 같이 보는 책이기도 하지만 내게도 워낙 중요한 책이 되었다. ^^




돌시계가 쿵! - 10점
이민희 글.그림/비룡소



'이민희'라는 작가가 참 궁금해지고, 이 분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든 책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해시계'에 대해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ㅠㅠ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여러번 암기(?)하고 지나간 것 같기는 한데 그 원리는 사실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학교를 어떻게 다닌건지.. 그렇게해도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다는게 우리 교육의 문제인건지..ㅜㅜ

무튼, 원숭이는 대단하다. ^^

그리고 '나만의 하루를 되찾겠어!'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초원의 동물들은 멋지다. ㅎㅎㅎ 

연수연호가 너무 좋아하고, 아빠도 읽어주고는 '야~, 이 책 정말 재밌네!'했던 요즘 우리집 인기 그림책!

 





삐딱이를 찾아라 - 10점
김태호 글, 정현진 그림/비룡소





이것도 참 재밌는 그림책이다. 

집나간 집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달까~~ㅎㅎㅎ

자신을 자꾸 찌그러뜨리고 망가지게 만드는 가족들이 싫어져서 '우지끈 뚝딱!'하고 발을 뽑아 성큼성큼 집을 나가버리는 집 '삐딱이'. 

집이 어떻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사람만 괴롭냐, 집도 괴롭거등~!!'하고 말해주는 것 같은, 

'에고, 우리집, 고마워~ 고마워~~'하고 엉덩이라도 토닥거려주고 싶게 만드는 책. ^^ 

떠나보는 것은 사람에게도 참 필요하지만 집에게도 역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과, 

중요한 것은 돌아오는 것, 그러나 그전과 똑같지 않은 나, 그리고 이미 떠나기전과는 달라진 상황과 관계속으로 

다시 으랏차차 풍덩 뛰어드는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까만 코다 - 10점
이루리 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 그림/북극곰





<삐딱이를 찾아라>와 <까만 코다>는 주간지 '시사인'의 추석 별책부록으로 나왔던 '행복한 그림책 읽기'란 소책자를 통해 알게된 책들이었다. 

한국작가의 글에 외국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까만 코다>.

따뜻한 이야기, 아름다운 그림에 덧붙여 우리말의 묘미(?)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어서 연수연호가 깔깔거리며 '어, 엄마의 까만 콧구멍이다!' 하며 놀았던 책. ^^

커다랗고 풍성한 하얀털의 북극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림책이고, 

모든 것을 떠나 지금 이순간 아이들을 꼭 안아주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책이다. 




감기 걸린 날 - 10점
김동수 글 그림/보림



오리털 잠바를 입는 것에 대해 어느새 의문도, 죄책감도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아이들은 물을 수 있고, 또 미안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읽고, 나도 다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발그스레해졌다. 

'나는 참 따뜻한데 오리들은 춥지 않을까..' 

이 마음은 얼마나 중요한가..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 마음.





여우 나무 - 10점
브리타 테켄트럽 글.그림, 김서정 엮음/봄봄




얼마전 '엄마를 위한 그림책 모임'에서 소개받은 책.

죽음이란, 사랑했던 한 존재를 떠나보내는 일이란 무릇 이래야하는데... 싶었다.

세월호.. 군대에서의 죽음, 환풍기사고와 가수 신해철씨까지.. 

안타까운 죽음들이 너무 많은 우리 사회라

제대로 떠나보낼 수도, 온전히 추억하고 회고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빼앗긴채로

우선 싸우고, 그러면서 추억하고, 분노하고, 또 슬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더 또렷이 대비되어 다가왔다.


그렇다해도

소중했던 그 한 명, 한 명의 존재들은 숲의 여우처럼 아름답고 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로

사랑했던 이들, 추억하는 모든 이들의 삶속에 튼튼하게 자라나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기를... 빌고 또 믿는다.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 10점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웅진주니어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 아이와 함께 어린시절부터 한번 더 인생을 살아보는 일...

글쎄. 뭐라 정의하기 어렵지만 아이는 엄마를 그전과는 참 다른 존재로 만든다. 

엄마 스스로의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엄마들은 대부분 노력하고, 알게모르게 많이 달라진다. 

사람이 쉽게 변하냐, 갑자기 뭐가 그리 달라지겠어.. 본래 성격이야 예전부터 만들어진거고, 아무리 엄마가 됐다해도 '난 나야!' 하고 싶기도 하고, 그 말이 맞는 측면도 있지만

분.명.히 달라진 것도 있다. 

매일 자고나면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되어있다는 깨달음까지야 아니더라도, 

아이라는 새롭고 커다란 존재가 삶에 들어온 후 그 존재와 함께 살아가면서 어떻게 나라는 존재에도 변화가 없겠는가. 

그 변화가 뜻밖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삶이 준비한 깜짝선물 아닐까. ^^


내가 처음 엄마가 되고서 느꼈던 경이로움과 환희.. 같은 것을 이 책은 뭉클하게 다시 되살려주었다. 

내가 웃으면 마주보고 벙실 웃어주던 아기 연수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라 울고싶은 기분이 되기도 했다.

엉덩이가 크고 펑퍼짐한 마이어 부인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장면과 이어지는 두어장의 그림은 오래오래 머리속에 남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 10점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이지유 옮김/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며칠전에 엄마그림책모임에서 마련한 '그림책으로 철학하기'라는 강좌가 있었다. 

동덕여대 유아교육과에서 같은 제목의 강의를 하고 계신 선생님과 함꼐 두어시간동안 이 그림책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한권의 그림책을 함께 읽고, 떠오르는 질문들을 자유롭게 모으고, 그중 하나의 질문을 선정해 다같이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보는 집단토론수업인데

그림책 한권을 아주 깊이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자기 삶에서 중요한 고민과 어려움에 대한 답까지 꼭 연결해서 고민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신선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고.. 무튼 참가한 모든 엄마들이 마음에 큰 울림을 얻었던 강의였다. 


'철학'이라는 것이 언뜻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우리 삶의 문제들, 세상속의 한 존재로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과 힘겨움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함께' 함으로써 더 집중하고, 풍성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림책도 그런 생각과 토론에 참 좋은 재료이구나.. 토론의 방법(규칙 혹은 장치)을 달리하는 것은 생각을 진전시키는데서 이런 효과를 거두는구나..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어 좋았는데, 요 얘기와 별개로... 


이 그림책도 참 재밌다. ㅎㅎㅎ     





어머니의 감자 밭 - 10점
애니타 로벨 글.그림, 장은수 옮김/비룡소




작은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읽어본 그림책. 

자발적 고립.. 은둔이라 해야하나, 대안, 희망같은 것을 마지막까지 지키고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눠줄 수 있는 노아의 방주같은

'어머니의 감자 밭'.

전쟁, 우리 아들(딸)들을 유혹하는 세상의 많은 폭력적인 제도와 문화들.. 그럼에도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참 좋아하는 언니들과 그 아이들 생각도 많이 하게 했던 책이어서 마지막에 올려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생명/한살림.농업2014. 11. 12. 23:28















해가 살짝 기울던 파장 무렵에 한마당을 찾았습니다. 
아이들 손에 이끌려 '쌀'님과 함께 풍물에 맞춰 춤도 추고, 마지막 파전 한장도 사서 꿀떡꿀떡 잘 먹는 아이들 입에 넣어주면서도
제가 눈으로 계속 찾았던 곳은 바로 '팔당 제철꾸러미' 부스였답니다. 

그전주에 양평 질울고래실 농촌체험마을로 우연히 이웃들과 가족캠프를 갔다가 
바로 요기 계신 '살림꾼 삼촌'님을 만나뵜거든요! ^^
제가 <생산지에서 온 편지>에 늘 써있던 성함을 기억하고 여쭤봤더니 정말로 그 분이 그 분이시지 뭐예요..!
꼭 진즉부터 알던 분 만난 것처럼 정말 너무너무 반가웠답니다...^^
25일 한마당에서 꼭 뵙자던 말씀에 '네~!'하고 왔던지라 토요일마다 하는 도서관 자원봉사 일이 끝나자마자 늦었지만 부리나케 달려간 것이었어요. (행사장 입구에 놓인 '나무수레 씽씽이'를 보고 아이들도, 저도 넘 반가웠습니다 ㅎㅎ)

생산자분들의 얼굴을 뵙고 나니 꾸러미에 담겨오는 작물들을 보는 마음이 왠지 더 애틋합니다. 
얼마나 애쓰셨을까.. 정말 감사히, 정성껏 먹게됩니다.

이날 한살림 가을겆이 한마당을 잠시 보면서 '참 좋구나..'하면서도 
이렇게 좋은 풍물가락이 마을마다, 우리 농촌의 마을마다 울려퍼지면 참 좋을텐데... 싶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11월 1일에 열리는 '설레임보따리 함께 푸는 날'은 아마도 그런 날이 될테지요. 
초등학교 운동장에 생산자분들과 함께 모여 어깨춤도 추고, 감사인사도 드리고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올해에는 함께 못 하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큰 아이들과 함께 좀더 자주 얼굴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살림 가을겆이 한마당 날, 거의 마지막으로 들렀을 저에게 고구마 한봉지와 함께 쥐어주셨던 감자 세 알의 따뜻한 기운..
저는 그 시간에 떨이로 팔던 멀리 홍합부스에 다시 뛰어가서 홍합 좀 많이 사서 팔당 생산자분들께 저도 좀 선물로 드리고 오지 못한 것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답니다.ㅠㅠ

올한해.. 궂은 날씨, 어려운 농업현실 속에서 한결같이 맛있는 꾸러미 꾸려주시느라 너무너무 애쓰신 팔당 생산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겨울에도 모두 건강하세요.. 내년에 또 반갑게 뵙겠습니다. ^^




(이 글은 한살림서울 제철농산물꾸러미 까페 http://cafe.naver.com/hansalimseoulcsa 에 썼던 글인데 이번에 꾸러미 소식지에도 조금 중략된채로 실려서 내 블로그에도 기록삼아 올려놓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1. 


연호와 '꿀벌' 책을 보는데 농부가 꿀을 따는 장면이 나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그물이 달려있는 큰 모자를 쓴 농부의 그림이 무척 신기했던지 연호가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이건 뭐야? 요정이야?"


^^

나는 웃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연호를 내 어린시절로 데려가서 외할아버지와 외증조할아버지가 벌통을 열어 꿀을 따시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쑥을 태워 나는 연기를 커피주전자처럼 생긴 분무기(그걸 뭐라고 부르지, 아빠?)에 넣고 '푸슉~ 푸슉~!' 흰연기를 나오게 해서 벌을 쫓고

긴 직사각형의 벌집판을 꺼내 뜨거운 물에 적신 긴칼로 밀랍 벌집을 살살 잘라내면 거기 가득 채워져있던 노랗고 진한 꿀! 


나는 연호에게 "아니.. 이건 사람이야.. 벌집에서 꿀을 꺼내가는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김연호 하는 말.


"악당이구나!"


ㅎㅎㅎㅎㅎ


죄송해요, 아빠. 졸지에 악당이 되셨지 뭐예요. ^^

저는 그만 웃음이 터져서 그 뒤로 어물어물 잘 설명은 못 해주었답니다. 

벌이 만들어준 고마운 꿀을 사람이 잘 얻어먹는건 사실이니까요..


여름이면 꽃이 많고 조금 덜 더운 삽당령 깊은 산속으로 벌통들을 옮겨주고, 거기서 할아버지할머니가 여름 두달을 벌을 돌보며 지내다 오시고, 겨울에는 또 마당 한쪽 수십개의 벌통들에 따뜻한 천을 둘러주고, 설탕물로 부족한 겨울양식을 공급해주기도 하셨다는 얘기를 연호랑 또 나눌 날이 있을거예요. 

그때는 연호가 뭐라고 할지 벌써 기대됩니다. ^^ 






(양평 질울고래실마을에 놀러갔을 때 큰 움집앞에서 원시인 체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꼬마원시인 연호)



2. 


거실 소파위에 우리집의 좀 큰 인형들을 쭈루룩 올려놓는데 어느새 소파위를 빼곡이 채울만큼 인형이 많아졌다.

오늘 아침, 소파 앞에서 내 무릎을 베고 뒹굴거리던 연호가 인형을 쳐다보더니 문득 말했다. 


"하나가 빠졌네~?"


빈 자리가 하나가 큼지막했다.


"응~ 돌고래가..."

좀전에 보니 놀이방에 가 있더라고 얘기하려는 순간, 연호가 말했다. 


"탈출했어?!!"


ㅎㅎㅎㅎㅎㅎㅎ


평소 우리집 인형들도 자유를 원했던걸까..?

연호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던게 아닐까....


무튼, 네살 연호의 한마디 한마디에 왈칵 웃음이 터지는 요즘이다. 

세 돌이 지난 네 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참 좋다. 

놀자, 놀자, 엄마 같이 놀자~~ 하루종일 조르는 녀석이 귀찮을때도 있고, 심심해보여 측은할 때도 있지만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제대로된 대화로 종알종알 저만의 순수한 세계를 엄마에게 꾸밈없이 보여주고, 

마지막 어린 아기 티를 팍팍 내며 엄마 품에 매달리고 안기는 시절.

요 시절이 참 예쁘다. 

엄마와 함께 온종일 지내는 네살의 하루하루가 가을이 깊어가니 끝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문득 아쉽고 아깝고 그렇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말씀이 조금 어눌하셨다. 
평소 선생님의 옛이야기 글을 보면 어쩜 이렇게 이야기를 맛깔나게, 리듬도 딱딱 맞게, 구수하면서도 생기넘치게 쿵덕쿵덕 잘 흘러가게 쓰시는지 감탄하게 되곤 해서
말씀도 꼭 글처럼 그렇게 달변으로 하시지 않을까.. 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천천히, 조근조근.. 그리고 조금은 어눌하게 말씀하셨다. 

말수도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어서 천천히 뜸들이듯 한가지씩 해주시는 얘기들을 듣다 보니 
보통의 강좌와는 다르게 듣는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을, 마음의 여유를 주는 차분한 힘이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선생님도 꼭 옛이야기의 주인공 같으시네..^^

오늘 선생님이 객관식 문제를 하나 내셨다. 

"다음중 우리 옛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세요...

1) 지지리 가난한데 마음은 착한 나뭇꾼 총각
2)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간 노총각
3) 콩과 보리도 구분 못할만큼 어수룩한 아이
4) 똑똑하고 영리하고 잘생기고 지혜롭고 무예도 뛰어나고 암튼 뭐든지 다 잘하는 엄청 부잣집의 외동아들... "

엄마들은 모두 웃으며 외쳤다. 
"4번이요~!" 

객관식 문제에서는 보통 제일 긴 게 답이지요..^^ 하시면서 선생님은 또 물으셨다. 
"4번같은 사람을 세글자로 뭐라고 할까요?"
역시 엄마들이 번개처럼 이구동성으로 외친 대답, 
"엄친아(엄마친구아들 의 줄임말)요~!!" 

웃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웃을수가 없었던게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확~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튼, 서정오 선생님도 그런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조금은 어눌한 말투의, 결코 달변이라 할 수 없는 그런 말투를 가진 백발의 할아버지 선생님이신데 
대구경북지역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오래 재직하시던 때부터 우리 옛이야기를 발굴해서 너무도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한 '옛이야기 보따리' 등의 좋은 책들로 많이 묶어내셨고, 지금은 옛이야기 전업작가로 글을 쓰고 계신 '이야기꾼'이라는 반전의 묘미를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이셨다. ^^


강의 내용이 참 좋기도 했거니와 오늘 꼭 함께 듣고싶어하셨는데 어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못오셨던 고여사 언니를 비롯한 내 블로그 이웃들, 그리고 우리동네 그림책모임 엄마들과도 나누고 싶어 강의 내용을 기억나는대로 써보려고 한다. 
연호연제 봐가며 띄엄띄엄 들은 것이라 좀 빼먹는 것도 있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써보면서 나도 다시 한번 마음에 잘 새겨보려고 한다. 큰 따옴표 안에 써넣는 것이 선생님 강연내용이다. 





깔깔 옛이야기 - 10점
서정오 지음, 서선미 그림/보리




선생님은 우선 어린 아이치고 옛이야기, 옛날 얘기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는 말씀부터 시작하셨다. 

"그런데 간혹 옛이야기 싫어한다는, 안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는 얘길 듣습니다. 그건 작가가 글을 잘못 써서 그렇다고 저는 말합니다. 옛이야기에서 지나치게 교훈을 강조하려고 하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교장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옛날 얘기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옛이야기는 아이들을 대상화하지 않습니다. 어른들, 부모들은 아이를 이해한다, 아이들 편에 서려고 한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생활과 대화에서 아이들을 대상화합니다. 대상으로 바라보고 자꾸 가르치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런 대상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느껴질 때 아이들은 그것을 멀리합니다. 좋은 옛이야기, 좋은 책은 아이들이 깔깔 재미있어하고, 그 속에 그냥 편안히 푹 빠질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옛이야기 보따리 - 10점
서정오 지음/보리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흔히 어딘가 좀 부족한 데가 있는 사람, 몹시 가난한 사람, 부모없는 아이, 힘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바보.. 이런 사람들입니다. 너무 잘나고, 너무 부유하고,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인공들이 보통 길고긴 어려움을 참고 견디다가 복을 얻게 되거나, 아니면 아주 고생하다 우연히 어떤 행운을 만나서 결국에는 모두 '잘먹고 잘 살았대~'로 끝나게 되는 것이 옛이야기입니다.

옛이야기가 주고 싶은 메세지가 저는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우리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 어딘가 좀 못나고, 기본으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뜻밖의 행운도 생기고, 또 착한 마음으로 온정을 베풀었다 복도 받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많이 읽고, 그 사람들을 본받으라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그 사람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어른들은 많이 얘기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동쪽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떴던 그런 사람들처럼 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몇백년에 한명 날까말까한 그런 위인과 나를 견주면서 아이들은 넘을 수 없는 벽앞에 좌절감을 느끼거나 거리감을 느낍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랴,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것만이 강조되면 아이들은 지치고, 기대만큼 잘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좌절하게 됩니다. 
균형이 중요합니다. 어느 한쪽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 옛이야기에는 열심히 일하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연히 얻은 행운으로 가난과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내용은 아주 많습니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은 아주 예외적이고, 또 제가 이번에 연구하다보니 그 이야기가 1967년 교과서에 실리기 전까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승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곧 개정판을 낼 제 책에서도 그 얘기는 빼려고 합니다. 전승의 기록이 없는, 그러니까 67년 교과서에 싣기위해 새롭게 창작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기 떄문입니다.  

왜 우리 옛이야기에는 열심히 일하라는 내용이 없을까요?
옛이야기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긴 낮시간 동안 열심히 논에서, 밭에서 고되게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들, 어머니들이 저녁에 삼삼오오 동네 사랑방에 둘러앉아 새끼를 꼬고 남은 일을 해가며 쉬는 중에 재미나게 서로 들려주고 왁자하게 웃으며 나누던 얘기들이 바로 옛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열심히 일하자는 얘기를 하겠습니까.. 부자들 놀려주는 이야기, 우연히 복을 얻은 착한 총각 이야기, 못된 사람은벌받고 착한 사람은 복받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가 창작되기 전에 '소가 된 사람'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어떤 사람이 고갯길을 가다가 여우가 주는 떡을 받아먹고 소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여우는 그 사람을 장에 팔아 돈을 벌려고 그런 짓을 꾸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소가 되어 팔려가 고생고생 하다가 무를 먹고 겨우 다시 사람이 됩니다. 그런 다음에 못된 여우에게 복수를 하려고 다시 모른척하고 여우를 만나 떡을 조금 먹는척만 했답니다. 이 사람이 소가 안되니까 여우가 이상해서 떡이 잘못됐나 하고 제가 먹어보았다가 그만 소가 돼서 이 사람이 그 소를 장에 팔아 복수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솝우화에서 유명한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일한 개미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지금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본래는 개미를 들판의 먹을 것을 독차지해버리는 욕심쟁이 부자로 묘사하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그랬던 것이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에 따라 권장하고 싶은 내용만 남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양 옛이야기에도 보면 그림형제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별노력없이, 우연히 행운을 얻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1 - 10점
이우정 그림, 서정오 글/현암사





"옛이야기는 환상적입니다. 참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 문제삼지 않습니다. 옛이야기만의 특권이고, 매력입니다. 어른들은 이미 합리적인 생각이나 행동방식이 습관처럼 되어있어서 하려고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만, 아이들의 사고는 자유롭습니다. 상상력의 한계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래서 옛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세계에 푹 빠질 수 있습니다. 

옛이야기 읽어주시면서 자꾸 생활사 수업을 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가 모를 것 같은 옛날 물건이나 직업 등이 나오더라도 아이가 묻지 않는 이상 설명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세요. 아이가 물어보면 그 때는 대답하시되 답이 하나인 것은 (보통 낱말의 뜻같은 것) 분명히 알려주시고, 부모님이 생각하시기에 답이 여러개일 것 같은 것은 (보통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 살아날 수가 있어? 도깨비가 정말 있어? 같은..) 질문에는 '그러게', '글쎄' 처럼 대답을 얼버무리고 지나가세요. 어른들은 몸에 밴 합리성 때문에 자꾸 옛이야기를 하시면서 논리적으로 보완하려고 하거나, 시대상황에 대한 해설내지 설명을 붙이려고 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엄마아빠는 고단한데 아이들은 밤에 자꾸 옛날 얘기해달라고 조르면 참 피곤하시죠.. 어른이 옛이야기 해주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불친절하셔야 합니다. 너무 친절하게 다 대답하고,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하지 마세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그러게 참 이상하다' 정도로 대답하고 마세요. 또 무책임하셔야 합니다. 졸려서 자기도 모르게 여러가지 얘기가 섞이기도 하고, 이상하게 없던 얘기를 지어내고 계실 때도 있죠? 그럴때는.. 그냥 끌고 가시면 됩니다. 모른척 하고 그냥 하던데로 마무리하세요. 아이가 '그거 다른 얘기 아냐?'하고 물으면 '이런 얘기도 있어'하시면 됩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옛이야기는 하는 사람, 쓰는 사람에 따라 다 조금씩 달라지는 '각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새롭게 '각편'을 쓰고 계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하지만 너무 고단해서 그마저도 어려우실 때는 그냥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셔도 됩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대" 하시는 거죠. (ㅎㅎㅎ) 그래도 괜찮습니다. 

옛이야기의 환상적인 성격에 대해 제가 또 생각한 것이 어쩌면 현실과의 균형 같은 것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구에서도 보면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가 제일 성행하고 지금도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오는 곳이 영국이예요. '해리포터'도 그렇죠. 영국은 산업혁명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잖아요. 합리성, 기계적 사고에 대한 극단적인 추구 속에서 부족해지는 것에 대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깜박깜박 도깨비 - 10점
권문희 글.그림/사계절

(이 책은 서정오 선생님 책은 아니고.. 요즘 우리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옛이야기 그림책이라 소개삼아 올려둡니다. 읽다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넘 재밌는 옛이야기 그림책~~!!^^)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았는데 두 질문 다 내 평소 고민과도 닿아있어 반가웠다. 

첫번째는 '옛이야기 중에 보면 첫째는 욕심많고 부자고 둘째는 착하고 가난한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왠지 첫째가 속상해할까봐 마음이 쓰입니다'는 질문.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속에서 약자의 입장에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됩니다. 약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큰아이들도 자기보다 큰 형(강자)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는 동생(약자)의 입장에 서서 속상해도 하다가, 나중에 복을 받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형을 다시 받아주기도 하는 그 입장에서 같이 기뻐하며 이야기를 듣습니다."하는 말씀에 '아, 그렇겠구나..' 싶었다.    

두번째는 '옛이야기 그림책중에 보면 그림이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이야기에는 표현되지 않는 것(피 라든지)까지 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책도 괜찮을까요?' 하는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잔인한 이야기와 잔인한 그림은 좀 다릅니다. 어른의 입장에서보면 너무 잔인하다 싶은 내용들이 옛이야기에 꽤 많습니다. 호랑이가 엄마를 잡아먹는다던지, 서양 옛이야기 중에도 늑대의 배를 갈라 그 속에 돌을 채워넣는다던지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끔찍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일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면 또 다릅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늑대가 아무리 배를 갈라도 늑대는 멀쩡합니다. 멀쩡해야합니다. 통증을 느끼거나 피가 묘사되지 않습니다. 우리 옛이야기 '해님달님'에서도 어떤 각편에서는 호랑이가 엄마 팔을 떼 먹고, 그 다음 고개에서는 다리를 떼먹고 합니다. 그래도 엄마가 아파서 운다던가, 피가 난다던가 하는 얘기가 없기때문에 엄마는 그냥 멀쩡(?)하게 또 다음 고개로, 얼른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도 가려고 그냥 부지런히 가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도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마음 졸이며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림이 지나치게 잔인하게 표현된 옛이야기 그림책은 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맞추셔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예민해서 무서움을 많이 타거나, 끔찍해하거나 두려워한다면 굳이 들려주고 읽어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들을 그야말로 두런두런 하시고 나는 구립 강일도서관 유아실의 맨 뒤쪽 자리에 앉아 
사탕먹으며 한참 잘 놀다가 졸려하는 연제 젖물려 재워가며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 찾아와 읽어달라 조르는 연호에게 소근소근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그림책 읽어주며 한쪽 귀로는 열심히 선생님 강의를 들었다. 
강일도서관의 독서동아리로 등록되어있기도 한 '한살림 강일동 그림책읽기모임'에서 마련한 이번 서정오 선생님 강좌에는 50영 가까운 엄마들이 오셨다. 어린 손주들 데리고 오신 할머님들도 여러분 계셨다.  
작은 유아실이 가득 차게 모여앉은 엄마들의 따뜻하고 진지한 기운이 참 반가우면서도 의아했다. 
우리 엄마들이 옛이야기에 원래 이렇게 관심이 많았을까? 서정오 선생님은 워낙 우리 옛이야기를 많이, 재미있게 소개해주신 대표적인 옛이야기 작가시라 많이들 알고계셔서 그런가?
하지만.. 역시나 선생님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모두 힘든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고단한 것이다. 
현실이 힘든만큼 환상과 상상력과 판타지 세계의 위로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도, 우리 엄마들에게도. 
엄마들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지금 이 시대의 고단한 아이들에게 엄마들은 옛이야기라는 작지만 포근한 이불을 하나 덮어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독다독.. 괜찮아.. 너도(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고 얘기해줄 수 있는 그런 마법같은 선물을 말이다.  













이야기 속에서 만이라도 한없이 자유로운 아이들.
이것도 되어보고 저것도 되어보고, 아무 제약없이, 불가능도 없이 신나게 날아다니며 제게 찾아온 생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놀이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공간이 된다.
만화도 어쩌면 그런 시간이 될 것이다. 마법같은 판타지에 빠지는 시간. 
갑자기 매일 '만화보고 싶다~' 조르는 우리 꼬마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에게 '책 읽어줘~~'하고 조르며 쫓아다녀서 함께 책을 펼치고 앉는 시간도 그런 시간일 터이고..









서정오 선생님을 정말 좋아한다는 
열두살 형준이형아를 위해 대신 선생님 책에 싸인을 받아놓았다. 

"옛이야기 한마당 행복 한아름"

글귀가 따뜻했다. 


즐거운 시간은 그 자체로 삶에 힘이 된다. 
어린 시절에 옛날 이야기 듣던 시간이 그랬다. 
한옥집 사랑방에 누워 할머니 팔베게를 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듣던 옛날 얘기들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할머니는 정말 재밌게, 구수하게 얘기를 잘 하셔서 나는 '바보신랑 장가간 날 식혜대신 똥 먹은 이야기' 같은 것을 정말 깔깔 웃어가며 들었다. 배꼽을 잡고 떼굴떼굴 구를만큼 재미있었다.  
그런 밤에는 달빛도 얼마나 환했던지..
이야기 속에 나오는 보름달이 환한 밤에 감나무에 올라앉아 감터진 것을 먹고는 '에구, 똥이 달기도 하다' 하던 그 바보 신랑과 꼭 같은 달빛을 내가 받고 있었던 것처럼 기억된다. 
신나게 얘기해주시던 할머니 목소리도 생생하고, 어린 시절 고향집 마당의 밤풍경도 생생하다. 차갑고 시원한 공기도..

나에게 마음의 힘이란 게 있다면 
아이들과 복닥복닥 정신없고 힘든 순간에 그래도 한번 씩 웃고, 아이들에게 농담이라도 한마디 던질 수 있는 여유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아마 다 어릴 때 할머니께 들은 재미난 엣날 얘기들 덕분에 생긴 것들일 것이다. 

 
이제는 내가 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할머니 만큼의 내공은 없지만, 그래도 즐기려고 애써볼란다.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옛날 얘기 해달라고 조를 시간도 많이는 안 남았다. 한.. 5년? ^^;;;

한창 어린 아이들 키우는 이 시절에 서정오 선생님을 뵈어서 참 고맙고 다행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생명/한살림.농업2014. 10. 23. 21:27




농사를 왜 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무슨 그런 우둔한 질문을 하느냐고,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데 
그것들이 다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것들인데 
당연히 농사를 지어야지, 
안그러면 무엇을 먹고살 것이냐고..

누군가 이렇게 바른 말씀을 하시면 '네, 그렇죠'하고 대답하고 싶지만
현실은 자꾸 반대로 돌아가는 듯하다.

마트에 가면 신선한 채소와 과일, 곡식과 고기가 차고넘친다.
싸게, 잘 생긴 농산물을 구입해 먹을수만 있다면 
누가 그 농작물을 키우는지, 어디서 온 것인지, 그 분은 어떻게 사시는지 
크게 관심갖지 않고 그저 맛있게 냠냠짭짭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입개방 시대에 우리 농촌은, 농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농민이 농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
나라가 나서서 식량안보, 식량주권 같은 것은 생각도 않고 농업을 죽이고 있다는 것.
농사짓던 땅들이 메워지고 그 위에 상가와 아파트와 공장과 유흥업소가 세워지는 것을 '발전'이고 '성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이런 시대에, 이런 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는 말이다.








아이들과 종종 인형극을 보러가는 '암사어린이극장'의 정원은 살뜰하게 가꾸시는 먹거리들이 가득한 텃밭이다.
지난 달에 갔더니 마당의 아치형 터널 안에 호박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같은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걸어들어가는데 호박은 꼭 등같기도 하고, 풍선같기도 했다.
그림책 '뒤집힌 호랑이'(김용철, 보리출판사)에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소금장수가 호랑이 뱃속 구경을 하며 뒤룽뒤룽 매달린 창자와 염통을 볼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극장에서는 아이들 구경하라고 아이스박스 논에 벼까지 심어놓으셨다.

토란, 배추, 깨... 이 모든 푸성귀들을 극장에서는 또 알뜰히 거두어 드신다.

오전 공연이 끝나고 오후 공연히 시작되기 전에 배우들과 스텝들이 모두 모여 함께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외곽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어린이공연만 해오신 작은 극단의 열명 남짓한 식구들이 먹을 반찬거리들을 이 정원 텃밭에서 부지런히 키우고 계신 것이다.











사먹는 것보다는 부식비가 훨씬 절약될 것이기에 '있는 땅에서 키워먹으면 맛도 좋고 여러모로 훨씬 좋지 뭐' 하고 간단히 생각하고 말기에는 
키우고 거두는 수고와 노동이 작지 않기에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떤 마음이실까.. 이 농사를 짓는 마음은.
극단의 대표로 보이는 분이 늘 밀짚모자를 쓰고 부지런히 텃밭을 돌보고 계신데 채소마다 지지대를 세우고, 풍성하게 열매맺고 또 거둔것을 말리기까지 하시는 솜씨도 보통은 아니신 것 같다.









묘적사에 갔을 때도 해우소 옆에 작지도 크지도 않은 텃밭이 있기에 눈이 갔다.
가지, 고추, 상추같은 채소들이 착실히 자라고 있었다.
스님들이, 어느 보살님이 가꾸셔서 절 공양에 쓰시는구나.. 싶었는데 역시 어떤 마음이실까.. 궁금했다. 
굳이 내 손으로 짓지 않아도 되기는 할텐데
그 시간에 수도를 더 하시고, 불자들과 행사를 더 하셔서 시주를 더 많이 받아서 절 재정을 윤택하게 할 수도 있을텐데 농사를 짓는다.
그것은 어떤 이유일까..










여름 끝무렵에 우리 텃밭에서는 봄에 그저 씨만 뿌려두었던 당근을 수확했다. 
상추모종 사러갔던 모종가게에서 아이들이 당근 그림을 보고는 사자고 하도 졸라서 한봉지 사고는 '이게 되겠냐' 싶은 마음으로 그저 씨만 술술 뿌려두었던 것인데
가뭄속에 파리하게 어린 싹이 나고 조금씩 자라더니 비 몇번 맞고는 줄기가 쑥 자랐다.
신기해서 뽑아보니 진짜로 당근이 나왔다!









강일동으로 이사온 후부터 3년정도 텃밭 농사를 시이모님과 함께 짓고 있다.
10년 넘게 서울에서 텃밭농사를 지어오신 이모님과 이모부님이 살뜰하게 키우고 거두어주시는 텃밭을 
우리는 그저 구경다니며 얻어먹기만 실컷 잘 얻어먹는다는게 맞는 얘기다.
이모님은 직접 키운 채소를 바로 수확해 드시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어디 가서도 이런 채소는 못 구한다는 말씀과 
약 안치고 키우니 얼마나 좋냐고 자주 말씀하신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늘 보고 해온 일이라 농사도 잘 지으시고, 건강에 관심도 많으시고, 또 무엇보다 부지런하시니 도시농업을 하실 수 있는것 같다. (이모님과 이모부님이 지으신 올해 우리 텃밭은 암사동 도시텃밭에 있는 200여팀중에 '우수텃밭'으로도 선정되었다! ^^)

어느날 내가 연수에게 "연수야, 할아버지 하시는 것 잘 보고 잘 배워~"하고 말했더니 이모님이 "그거 배워서 뭐하게~?"하시면서 웃었다. 
"저희집 텃밭농사 연수가 책임지고 지어야죠~"하고 말하며 나도 웃었지만 
이 시대에 농사일을 배운다는 것이, 어린 아이에게 권하고 격려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다수인 시대가 된 것이 
씁쓸하고 마음 아팠다. 








농사를 왜 짓는가.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고, 부모님 봉양하고, 저축도 하고, 놀러도 좀 다닐 수 있을만큼 돈을 벌기위해서 농사를 짓는다면
이제 그런 것은 더이상 농사로 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고, 날로 그렇게 되어간다.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어 제철의 싱싱하고 맛있는 반찬거리를 얻는 정도, 
아이들이 채소가 이렇게 자라는구나.. 신기하게 바라보고 배울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어른인 우리가 자연 가까이에서 땀흘리며 생명을 키우며 작은 보람과 명상과 기쁨을 얻는 정도...
그런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오락거리, 소일거리, 여흥, 구도의 도구말고
농업이 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농업이 생업이 될 수 있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올해 채소값이 참 한결같이 쌌던 것 같다.
조금 값이 오를만하면 그 품목을 금세 수입해오니까 결국은 어떤 농산물도 싼 값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 소비자에게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산자는 버티지 못한다.
값이 폭락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정부도, 시장도 무대책이다. 
채소를 밭째 버리고 수확하지 않고, 자르고 파헤쳐 또 다른 채소를 심어본들 어짜피 생산단가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다가 결국 농민들은 두손 두발 다 드는 것이다. 
그 논밭을 메워 집짓겠다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제일 나은 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많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내년부터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겠다고 이 정부는 당당히 선포를 했다.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쌀산업 포기'에 다름아닌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하고 나선 나라한테 과연 국제기구가 잘도 '아구 무서워라'하고 고율의 관세에 동의해주겠다 싶다. 
쌀이 지키고 있던 이 나라 농업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평생 쌀농사를 지어오셨다. 

어린시절에는 학교에서 나온 가구조사지의 아버지 직업란에 '회사원'같은 좀 폼나는 것 대신 '농업'이라고 쓰는 것이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철든 뒤에는 내가 농민의 딸이라는 것, 아버지가 농부라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고 좋았다. 


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아이들중에 누군가가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을 사랑하고, 계절과 생명의 순환과 이치를 알고, 부지런하고, 새벽에 풀숲에 내린 이슬을 밟으며 벼를 살펴보고, 밭을 가꿀 수 있는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이들에게만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 

내 손으로 내 먹을 것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런 나도 지금은 도시의 6평짜리 작디작은 텃밭 하나도 겨우 구경만 할 뿐이다.


농민은 점점 줄고 있다.

우리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의 품목도 아마 많이 줄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3%, 그나마도 쌀 자급률이 80% 대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수치다. 

쌀시장 전면개방으로 많은 소농들이 쌀농사마저 포기한다면 우리나라는 스스로 부식은 물론 주식조차도 자급을 못하는 

그야말로 식량 예속국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먹는 전체 농산물중에 쌀을 제외한 채소, 과일, 고기 등의 식량은 단 3.7%만이 우리 땅에서 우리 농민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그마저도 이제 포기 일로에 서있는 것이다.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고, 그깟 쌀쯤, 그깟 식량쯤 핸드폰 팔아, 자동차 팔아 사다먹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누가 농사를 지을 수가 있을까. 

누가 남을까. 



유기농업에 평생을 바치며 한살림 생산자공동체를 꾸려온 농민분들이 계시고, 

오늘도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직거래로 매주 '꾸러미'를 보내주시며 자립하려는 귀농, 소농 생산자분들이 전국에 계시고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님을 봉양하며 정말로 묵묵히 귀한 농토와 농업을 지키고계신 농민분들이 정말로 많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농사를 왜 짓는가' 외람되게 묻고 싶었던 것은

이제 더이상 농사로는 먹고살 수가 없는데, 죽어라 죽어라 하는데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는가, 살아라 살아라 해도 어렵고힘들고 중요한 일이 농사인데 

이런 떄에도 농사를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 

내가 꼭 들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93년 우루과이라운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화 협상의 고비들마다 쌀수입 개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농민분들의 지난한 투쟁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농민분들은 그만한 힘이 없으실 것 같다.

올해 7월 농림부장관이 달랑 기자회견 한번 열어 '쌀시장 개방 방침'을 발표했을 때 

농민단체에서는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상여를 메고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르며 쌀을 뿌렸지만 

그 시잔은 우리 아버지가 받아보시는 농민신문의 1면에만 나왔을뿐 어느 TV방송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마침 순천 야산에서 발견된 유병언씨의 사체 소식과 그 아들의 체포 과정만 요란하게 방송에 넘쳐났을 뿐이다.

나는 고향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는데 '세월호 사건 100일'이기도 했던 시점이라 특별법 제정이나 100일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진상규명, 실종자 수색 등에 대한 여론을 덮기위해 유병언 일가에 대한 언론보도가 집중되는 것 같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었다.

서울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때 같이 덮어졌던 정말로 중요한 또 한가지는 바로 '쌀시장 개방'이었다는 것을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못했구나... 혼자 후회했었다.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도하협상장 옆에서 쌀시장개방을 반대하는 한국농민 이경해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죽는 나라라,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300명씩 떼죽음을 당하고, 

공연을 관람하다가 또 죽고 하는 나라라 이제는 우리 모두가 죽음을 그만 옷처럼 입고 다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 명의 죽음은 안그래도 숨쉬기 힘든 사람에게 그저 작은 짓눌림 하나 더 얹는 정도 같이 느껴지지만

2002년의 그 분 생각이 나는 요즘 문득문득 다시 나곤했다. 

그 자라에 내 선배 한분도 함께 있었는데.. 그 충격과 상처를 어떻게 안고 살아갈까. 자신이 보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내놓는 장면과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어했던 가치들이 또다시 종잇장처럼 버려지는 현실속에서 그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4. 10. 9. 23:38







세 아이가 차례로 수두를 앓았다.
연수네 어린이집에 수두가 돌아 연수가 제일 먼저 앓았고, 
큰형이 걸린 때로부터 잠복기를 3주쯤 거치고 둘째가 앓고, 또 그로부터 2주쯤 후에 막내가 앓았다. 

연제는 수두는 약했지만 기관지염이 함께 걸려 어린 녀석이 고생하며 지냈고, 
연제가 나을 무렵에 연호가 기관지염이 옮아 힘들게 지내다가 이제야 겨우 회복되는 중이다. 
  
여름 끝물부터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는 요즘까지 근 두 달 가까운 시간을 
아이들이 돌아가며 앓는 통에 밤낮으로 마음 졸이며 보냈다. 
처음 겪어보는 수두를, 세 녀석이 모두 충실하게 앓고 낫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수두 자체보다는 그로인해 약해진 어린 몸들이 환절기의 온도와 바람을 겪어내느라 감기를 심하게 앓는 곁을 지키면서 
못난 엄마 만나 그런것 같아 마음도 아프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낮에도 잘 쉬지 못해 몸도 많이 힘들었다.
이제 아이들이 거진 회복되는 즈음이 되니 엄마는 온 몸의 진이 다 빠진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 아팠던 어린 녀석들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연호나
앓고 나서 훨씬 씩씩해진 연제나 
맨 첨에 수두 때문에 잠깐 아팠던 것을 제외하면 동생들이 아픈 긴 기간동안 내내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던 연수도 
부쩍 추워진 날씨에 또 아프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는 것이라하고, 아이들이 많은 집이니 아픈 날도 많을 수밖에.. 좀 마음 편히 생각해야지... 하다가도
아픈 날들이 워낙 길어지니 엄마 마음 좀 개운해지도록 이젠 제발 아무도 안 아팠음 좋겠다..! 하고 바라게 된다. 

그래도 이만하게 지내주어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엄마 마음졸이는 것 다 안다는 듯이 
어린 녀석들이 아프고 힘든 것을 온 힘을 다해 견뎌내고 끝내 나아주는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 
힘없이 매달리기만 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기운차릴 때 엄마를 보며 웃어주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후.. 하고 새어나오곤했다.

다행이다. 이만해서..
고맙다. 정말 고맙다.
우리 모두 같이 잘 견뎠고.. 또 잘 회복하자. 천천히, 감사하며.. 
나도 그래야겠다. 
아이들 나았으니 이제 나 좀 앓자, 할 수도 없이 나는 계속 밥하고, 막내 젖도 주고, 아이들 책도 읽어주고, 쉬엄쉬엄 천천히.. 내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야한다. 
그래서 또 다행이다. 
긴장은 조금 내려놓고 오래 미뤄두었던 블로그 글도 이제 쓰고 밀쳐놓았던 책들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어서..












수두가 전염성을 갖는 1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은 오롯이 우리끼리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 모인 곳에 가지 못해 답답한 것도 있지만 
우리끼리 호젓한 곳을 찾아 온종일 함께 놀고 먹고 잠자고 투닥거리고 안아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연수 수두가 시작된 떄는 8월 말이어서 아직 꽤 더웠다. 
땀나게 놀 것은 아니지만 수두난 아이도 바람쏘이며 적당히 노는 것은 괜찮다고 해서 가끔씩 세 녀석 데리고 냇가 길로 한번씩 산책 다녀오곤 했다.
연수는 수두 발진 나기 전에 하루 저녁 정도만 열이 나면서 아파하고 발진도 많이 나지는 않고 수월하게 지나갔다. 










아직도 아침이면 동생들과 엄마와 떨어져 저만 어린이집에 가야하는 것을 싫어하는 연수는 
수두 때문에 쉬는 기간 동안 
아침에 서두르는 일 없이 맘껏 놀고, 하고싶은 것들 오래오래 하고, 저 좋아하는 간식 먹으며 지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형이 같이 있어 제일 신난 것은 연호.
세살 터울 정도는 가볍게 극복하고 형아랑 정말 꿍짝 잘 맞춰서 노는 연호는 몸은 네살이지만 마음은 일곱살이다.
행동도 가끔은 형보다 더 의젓하고 말도 야무지게 잘 해서 형을 타이르기도 하고, 형한테 맞아서 울다가도 금새 또 형이 좋아 따라가서 노는, 연수에게는 둘도 없는 단짝 동생이다.










세 아이 앉혀놓고 사진 찍을 때면 내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 생각이 난다.
오죽헌 예쁜 꽃밭 앞에 하얀 스타킹 신고 쪼르륵 앉아 사진찍었던 우리 삼남매와
지금의 나처럼 웃으며 그 사진을 찍고 계셨을 젊은 내 엄마와 아빠 생각이.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 데리고있는 나를 보시면 "에고. 힘들겠네.."하시고는 꼭 바로 덧붙이시는 말씀 "그래도 어린 애들 키울 때.. 그 때가 제일 좋을 때야.."에 나는 이제 깊이 동의한다.
삶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같다.
그냥 머리로 이해하던 때를 지나서 마음으로 절절이 공감할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아껴주시는 명선 이모님께서 며칠전에는 '사람이 고정돼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이들은 늘 요렇게 이쁜채로 더 안크고 말이예요' 하셨다.
만 19개월을 채운 연제는 요즘 참 예쁘다. 
아장아장 걷고 뛰고, 무어라 제 나름대로 얘기하고, 귀엽게 웃어주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요대로 더 안 컸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왜 하시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덧붙였다. "그러게요.. 어른들도 더는 안 늙고 말이예요..." 
내 부모님이 나이드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또 내가 나이들어 가고 있음을 어느새 많이 실감하고 있어서 하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고, 또 어른들은 나이들어 가신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일 뿐이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에 깃들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 깊이깊이 누리는 일. 
오래도록 따뜻하게 되새겨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일구고 그 온기로 마음을 채우는 일뿐이라는 것을.


서른일곱 나는 어쩌면 마흔이 되면 더 홀가분해지고 여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꼭 제일 좋은 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제일 좋은 때가 아닐 이유도 실은 없다.
언제나 지금을 '제일 좋은 때'로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비밀이라고 어른들은 알려주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지금이 참 좋고, 
부모님이 건강하게 내 곁에 계셔주시는 지금이 참 좋다.
함께 애들 키우랴, 서로 맡은 일 하랴, 바쁘고 고단한 삶을 함께 꾸려나가는 우리 부부는 아직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서로 아껴주고, 고마워하며 지내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다행이고 좋다.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 동안 부족한 것들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하고 기대할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어느 비오는 날, 연수가 연제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막내 동생 곁에 선 다섯살 많은 큰 형아의 뒷모습이 왠지 든든하다.










연수가 막내동생 그림책 읽어준다. 
연호는 아직 글을 모르지만 '미끌미끌 미꾸리 미꾸리는 길어~ 길면 뱀장어..' 책을 비롯해 연제가 좋아하는 보리 아기 그림책 몇권은 통째로 외우고 있어서 한장씩 넘기며 천천히 잘 읽어주곤 한다. 

형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얼마나 신기할까..
연제야. 막내라 힘든 것도 많지만 참 좋은 것도 많지? 엄마도 그랬단다. ^^ 












7월 어느날, 서울시청 나들이 갔다가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찍은 사진.



아이들이 차례로 수두 앓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 졸이고 있자니 문득 예전 어머니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라는 종과 함께 해오고 있는 질병, 그리고 그것을 겪고 견디며 성장해가는 인간이라는 생명에 대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수두 발진은 혀와 눈, 코 안까지 그야말로 온몸 구석구석 돋고 물집이 잡혔다가 터져서 딱지가 앉는다. 

그것이 다 잘 떨어지고나면 몸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어린 아기들이 그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겪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두렵기도 하면서 신비롭기도 했다. 

잘 견뎌주는 것이 정말 고맙고 대견했다.

이렇게 자라는구나.. 생명은 이렇게 약하고도 강하구나. 다시 한 번 배웠고, 앞으로 또 함께 겪어가야할 성장의 진통들이 걱정되면서도 아이들이 힘껏 견디고 겪고 자라는 곁에서 나도 함께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도우며 지나가야겠구나.. 의연하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아픈 날들에 형제들이 함께 있어 서로 아옹다옹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것이 참 고맙고 좋다는 생각도 새삼 했다.

내가 아팠던 것을 너도 앓는다는 것, 그 고통을 이미 겪어봤기에 이해할 수 있고, 아프고 힘들 때 곁에서 함께 지켜줄 수 있다는 것.

답답할 때 같이 바람쏘이러 나가주고, 같이 웃고, 싸우고 토라져도 다시 부대끼고 의지하고 보듬을 수 밖에 없는 

우리는 형제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어렴풋하게, 아니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그냥 피부로, 생활로, 밥먹고 숨쉬는 모든 삶의 시간들과 함께 마음에 새겼으리라.




이렇게 내 아이들에게 형제가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질 때마다 마음에 사무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형제를, 자매를 잃은 아이들이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아옹다옹 함께 깔깔대고 투닥이며 꼭 우리 아이들처럼 그렇게 붙어서 자라왔을 그 아이들의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어른과 또 달리 청소년기에 이토록 큰 충격과 상실과 고통을 겪은 그 아이들이

사건의 진상도 철저히 밝혀지지 않은 채, 책임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은 채 

형제의 죽음이 묻혀지고, 죄없는 부모가 비난받는 싸늘하고 비정한 사회를 지켜봐야 한다면

그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어질지.. 차마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진실은 꼭 필요하다.

진실은 치유와 용서를 위해 꼭 필요하다.


백인에 의한 극심한 인종차별정책으로 고통받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인권운동가인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설치했던 기구의 이름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였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져야만 피해자들의 한이 풀리고, 가해자들의 반성과 참회가 가능하고, 용서와 화해가 이어질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독립된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그곳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침몰을 함께 본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제안한 법안이다.

헌법체계를 흔들지도 않고, 오직 성역없는 수사, 속속들이 모든 관련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해 검토할 수 있는 법안이다.

국정조사에도 제대로 자료제출을 않고, 감사원 감사에도 응하지 않았던 기관들을 상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가진 조사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회에서 양당이 힘겨루기와 아햡으로 일관한다면 차라리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제안을 포함해 

진지하게 진심을 다해 제대로된 방법을 찾지않으면 안된다.

대충대충, 경제 살리기나 지겨우니 이제 그만하자, 정치권이 다 그렇지 뭐 같은 얄팍하면서도 노련한 계산속에 넘어갈 수 없다. 


상식있는 어른들이 버티지 않으면 자라는 아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귀한 목숨까지 잃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환절기에 감기 한번 넘기는 일도, 수두 앓고 지나는 일도 한 가족에게는 참으로 어렵고 중한 일임을 매일 깊이 느끼고 있다.

한 아이가 자라는데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과 사랑이 필요한지도 매일 배워가고 있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을,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한 생명을 키우기위해서는 내 남은 생 전체를 걸어야한다는 것을 엄마가 되고 알았기에 

물러설 수 없는 마음이 된다.


가을이 깊어간다.

날은 급속도로 추워질 것이다.

물러설 수 없는 마음들이 함께 어깨 기대고 

추운 겨울을 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 

그것을 믿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일주일에 한번씩, '동네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연놀이'라는 모임을 하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세 집 엄마들이 함께 모여 아이들 데리고 아파트 안팎의 자연에서 작은 놀거리를 찾아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던 7월쯤부터 어떨때는 두 집, 어떨 때는 동네 꼬마들 잔뜩 다같이 모여 놀기도 하며 꾸준히 지내오고 있다. 









다행히 우리집은 아파트 바로 옆에 작은 냇가가 있고 산책로가 있어 아이들이 냇물 옆을 오고가며 놀 수 있다.
산이 좀 먼 것이 아쉽지만 아쉬운데로 아파트 안에 있는 자투리 흙땅이라도 눈밝은 아이들은 잘도 찾아내 놀고, 
작은 곤충들이며 꽃, 열매, 나뭇가지, 돌들은 많지는 않아도 예쁘게 여기고,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두어시간 참 재미나게 고맙게 누릴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땅을 바라보고,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는 엄마들이 
한 아파트에서 오래 지내다보니 눈에 들어왔다.
혼자 내 아이들만 데리고 자연속에서 놀아도 재미있지만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도 소중하고 행복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어디서도 잘 논다. 

놀이기구들이 잘 갖춰진 폴리우레탄 바닥 놀이터에서 놀 때도 재밌게 놀고

이렇게 냇물과 풀밭을 첨벙거리고 뛰어다니며 놀 때도 잘 논다. 

어디서든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놀며 클 수 있으면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자연이 주는 고마운 선물들을 느끼며 시간을 보낼 때가 참 행복하다.

산책을 하고, 흙을 만지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함께 신기해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거기에 한동안 흠뻑 빠져보는 순간이 참 좋다.

나와 비슷한 엄마 친구들을 만나서 참 좋다. 

아이들을 보며 같이 웃을 수 있고, 잘 노는 아이들 곁에서 우리는 사는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가

함꼐 해질 무렵 서로 이웃해있는 집으로 걸어돌아올 수 있어서 좋다. 










지난 여름에 이 친구들과 함께 한 일은 
잠자리 잡기(잡았다 놓아주기), 진흙 소꿉놀이, 아카시아 잎으로 가위바위보하고 줄기로 파마하기, 냇물 물고기 잡기, 비탈흙에 계곡만들고 댐만들기(?) 같은 놀이들이었다. ^^
잠자리 잡을 때는 엄마들이 더 펄쩍펄쩍 뛰면서 땀 깨나 흘리기도 했다. 










지렁이를 좋아하는 멋진 꼬마 여자아이인 유이담이 자매와 
곤충이라면 안 좋아하는 것이 없고 또 안 키워본 것도 없는 시우우진 형제, 
그리고 무척 용감한 척 하지만 실은 거미를 무서워하는 연수와 쥐며느리를 좋아하는 연호, 돌멩이를 사랑하는 연제가 함께 냇가를 오고가며 여름이 지나갔다.










기차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아빠데리러 가나보다. 기차야 잘 다녀와~! 기차야 안녕!'하고 손을 흔드는 외곽 동네.

여기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유년의 고향으로 기억되겠지.

살다보면 슬픈 일이 많을 것이다. 

자라는 일이 힘든 시간도 많을 것이다.

유년의 풍경은, 어린 날의 추억은 그런 날들에 조용한 위로가 된다. 

이제 그것을 알겠다. 

어떤 구체적인 사건들보다, 어린 날의 내가 매일 걸었던 길가에 서있던 나무, 논밭과 하늘, 멀리보이던 학교 풍경, 소꿉놀이하던 뜨락, 마당, 집 안팍의 여러 풍경들이 

그 아스라하고 고운 그림같은 장면들이 그냥 힘이 된다.

내 아이들에게는 지금 이렇게 친구와 같이 놀고, 엄마와 함께 산책하고 걷던 길들이 그런 마음속의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가을에는 어떤 놀이를 함께 할까.. 

아무리 슬퍼도 엄마는 밥을 하는 것처럼 

아무리 세상이 무시무시해도 아이들은 뛰어놀 것이다.

우리에게 그럴 시간이 아직 허락되어지는 것에 감사하면서 가을에도 고맙게, 함께 잘 놀아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