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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28 두 발 자전거
  2. 2017.07.07 새우 4
  3. 2017.07.05 수박밭에 수박이
  4. 2017.07.04 파리 유치원
  5. 2017.03.23 엄마 생각 2
  6. 2017.02.06 내가 아기였을 때
  7. 2017.01.25 방학숙제 6
  8. 2017.01.24 눈물 그림자
  9. 2016.08.01 고맙습니다 3
  10. 2016.06.24 조르바와 함께 걷기
하루2017. 7. 28. 09:45



연호가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날

"엄마 너무 기뻐!"

하고는 전화로 아빠한테 소식 전하고
동네 이모들한테도 다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제 노트에 기록도 남겼다.

그림은 연호가 그리고, 글은 연호가 불러주는데로 내가 적었다.

씽씽 바람을 가르고 빠르게 달릴 때의 그 자유로움, 기쁨, 설레임.
열두살때 강릉대학교 운동장에서 동네언니에게 자전거를 처음 배웠을때
엄마도 느껴봤지.
도시의 아이들의 '달빛 창가에서'를 부르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내 그림자가
운동장 흙땅위로 길게 그려졌었다.

연호는 미사강변19단지, 지금 우리집 앞마당에서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탔고
풍차놀이터와 무당벌레놀이터와 방방놀이터들 사이로 요리조리 씽씽 돌아다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7. 7. 11:48

연호랑 연제가 유치원에서 작은 새우를 받아왔다.
새우를 받던 날, 마침 내가 유치원 하원 시간에 데리러 갔는데
아이들이 모두 새우가 든 작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공주님처럼 까치발을 하고 조심조심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통이 많이 흔들리면 새우가 힘들어서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집까지 가져가라고 선생님이 당부하신 것이다.

우리도 새우를 잘 모시고 집에 와서
조금 넓은 플라스틱 통에 자갈과 유리 장난감,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 같은 것을 넣어
새우 어항을 마련해주었다.

연호 새우는 좀더 빨갛고 큰 녀석, 연제 새우는 색이 투명하고 연한 빨강에 좀더 작았다.
둘이 밥 먹고 이리저리 어항 속을 기어다니며 한 보름 잘 지냈다.
아이들은 첨엔 하루에도 몇번씩 새우를 들여다보더니 나중엔 아예 까먹는 날도 있고, 그러다 문득 또 새우들이 뭐하나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새우어항 물을 갈아줬는데
하루이틀 있다 들여다보니 연호 새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새우는 죽어있었다.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얘기하지.. 생각하면서 하루이틀이 흘렀다.
연호가 많이 속상해할텐데...

처음에 각자 담겨온 통 안에서 혼자 며칠을 지냈던 새우들은
큰(?) 집이 마련되고 두 녀석이 함께 지내게 되자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고 같은 곳에서 함께 몸을 맞대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였었다.
그렇게 지내던 한마리가 죽었으니
죽은 새우도 가엾고 남은 새우가 외롭고 슬플 것도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물 갈아줄때 잘못해서 큰 새우가 다쳤나..ㅜㅜ
조심할껄.. 반성하고 미안해하며 어쩌지는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아이들은 새우를 별로 안들여다보는 것 같았는데 연수인가 연제가 무슨 얘길하다가 "근데 참, 연호 새우 죽었더라"하고 지나가는 말투로 말하자
연호도 대수롭지 않게 "응. 엄마, 내 새우가 죽었어"하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래ㅜㅜ 며칠전에 엄마도 봤어..."하고 그날 대화는 끝났다.

엊그제 내가 다시 새우어항 물을 갈아주면서 죽은 새우를 꺼내
연호가 유치원에서 받아와 키우고있는 나팔꽃 화분 흙을 살짝 파고 묻어주었다.
아주 작은, 어른 엄지손톱만한 작은 새우라 손가락으로 판 구멍이면 충분했다.

'예쁜 나팔꽃으로 피어나렴.. 다음 생엔 생명 가득하게 태어나라'

그날 저녁에 세녀석이 잠자리로 갈때
연호에게 나팔꽃화분에 새우를 묻어주었고, 새우가 꽃으로 태어날지도 몰라.. 했더니 연호는 제 나팔꽃 화분에 가서 흙을 뒤적여보기도 하고 한참 그앞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요즘 연호는 나팔꽃에 진딧물이 생기는 것땜에 걱정이었는데
한 생명이 죽으면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얘기를 전에 나랑 한적이 있어서 그 생각이 났던지
"엄마, 새우가 진딧물로 태어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으..응. 그럴수도 있겠지..만 새우는 나팔꽃을 잘 자라게 도와줄꺼야. 꽃이 될수도 있고.. 혹시 진딧물로 태어나면... 밭에 데려다주자.. 거기서는 진딧물도, 나팔꽃도 잘 살껄..." 딱히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이 말 저 말 나오는대로 하며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연호가 울기 시작했다.

형과 동생이 잠들고도 한참동안 연호는 훌쩍훌쩍 우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연호야, 새우가 진딧물로 태어날까봐 걱정돼서 우는거야?"하고 물었더니
연호는 "아니.."했다.

"그럼 왜 울어..?"
"새우가 죽어서 슬퍼... 내 새우..." 하고 오래오래 울었다.

그래.. 한번은 이렇게 울어야지..
아무렇지 않은듯 넘어갈 수는 없지.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지..

유치원 선생님이 내일모레 새우를 줄거라고 하셨을 때부터 많이 기다렸던 연호였다.
내게 미리 물을 받아놓으라고 부탁하고
새우 집할 어항도 찾아놔달라고 하고,
제 새우도 너무너무 좋아했다.

어리니까 아직 그렇게 잘 돌볼 수는 없다해도
마음 깊이 새우를 좋아했다.

새우가 죽고, 그래도 어항 속에 있을 때는 조금 덤덤하게 넘길수도 있었다가
땅 속에 묻었다고 하고, 다른 생명으로 태어날 거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제가 좋아하던 새우가 이제는 떠났다는 사실이 깊이 느껴져서 연호는 그날밤에 아주아주 슬프게 이불위를 뒹굴며 울었다.

사는 일이, 이별하는 일이 이렇구나..
우리 삶이 그렇구나..

잠든 연호의 얼굴에 어린 눈물자욱을 닦아주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함께 있는 날들에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다음날 연호는 평소처럼 일어나 웃으며 유치원에 갔고,
나는 텃밭에 가서 이엠발효로 만든 병충해 방지 약재를 한병 떠왔다.
연제 강낭콩에서 시작된 진딧물이 연수 토마토, 연호 나팔꽃에 조금 옮겨왔다.
연제 강낭콩은 다섯 꼬투리 수확해 밥에 잘 앉혀 먹고 대는 뽑았고, 나필꽃과 토마토에는 약을 뿌려봐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7. 5. 10:12


연제가 들고온 <말놀이 동시집>을 읽어주는데
'수박밭에 수박이'라는 동시 밑에 수박밭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게에 진열된 수박을 보거나
수박을 사서 잘라 먹을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옛날 기억 하나가
눈코입달린 귀여운 수박 가족이 웃고있는 동시책 삽화 한컷에
확 떠올랐다.

대학교 3학년 때였나..
경북 영주로 농활가서 수박밭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 한분이 땅을 기다시피 하시면서
수박순을 밭고랑에 잘 고정시키려고
얇은 철심을 반으로 구부려 만든 집게로
뻗어가는 순을 눌러주는 것을 도왔다.

그 날 그 할머니는 여러모로 나에게 충격을 주셨는데
온통 까맣게 흙물, 풀물이 들다 못해 닳아없어진 손톱과
마디가 모두 울퉁불퉁하게 꺽이고 휘어진 손이 그랬고,
90도로 휘어진 허리 뒤로 고추대에 묶어줄 하얀 비닐끈 타래를 묶고
고추밭 사이를 오가며 허리 뒤에서 실이 풀려나오게 하는 모습이
꼭 거미가 실을 뽑아내는 것 같았다.

고목처럼, 동물처럼
비틀어지고 닳은 몸.. 그렇게 일해야만 살아지는 삶.

할머니, 지금도 살아계실까.
할머니 수박밭에서는 지금도 수박이 자랄까.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7. 4. 09:24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 만드는 내내
재료들 주위로 날아다니는 파리 때문에
엄청 성가셨다.
어제 오후에 놀이터에서 간식봉지 따라 우리집으로 들어온 녀석이다ㅜ

먹는 동안에도 파리가 날아들어 연호가 손으로 몇번 잡으려다 놓치고 놓치고 했는데
아이들 유치원 버스태워 배웅하고 돌아와
혼자 설겆이하다보니 문득 생각났다.

파리 어디갔지? 잼그릇도 개수대 옆에 있는데
여기도 없고.. 잠잠.
아까 우리 나갈때 따라나갔나?
파리도 유치원갔나..? ^^



(생각해서 그림 그리려고 밥먹었던 탁자에 와보니 거기 여전히 맴돌고 있는 파리--; 안 나갔구나..

연수가 아침에 파리보고 '엄마, (프랑스) 파리에 파리가 앉았다- 는 말 되지? 재밌지?' 했는데
ㅎㅎ 이 글 제목보고 파리에 있는 유치원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3. 23. 13:22

아이키우는 엄마가 되고나서는
내가 내 아이만큼 어렸던 시절에,
지금의 내 나이셨던 엄마가 생각나는 순간이 자주 있다.

오늘처럼 아이들 주려고 바나나를 살때
강릉 중앙시장 골목의 과일 트럭에서
당시 참 비쌌던 바나나 1개(천원쯤 했을까?)를
엄마 시장길에 따라온 내게 사주셨던 기억이 나듯이 말이다.

참 신기하고 달콤한 맛이었지..
워낙 비싼 간식(?)이라 한번밖에 못사주신 것같긴 하지만
그 한번으로 충분했다.
유년의 특별하고 달콤한 추억으로 간직하기에.
'언니오빠한테는 먹었단 말 하지마라'하셨던 당부에 막내로서 비밀을 갖게된 것이 떨리기도 했고. ^^

나만 사주고 엄마는 드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맛있게 한개 다 먹는동안 엄만 옆에서 뭐하셨을까.. 드시고 싶지 않았을까..
이제사 생각하기도 한다.

엊그제는 연수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연수가 올해 덜컥 학급회장이 된 덕분에 그냥 편하게 가도 될 학부모 총회가 가기 며칠 전부터 고민거리였다.
1,2학년때는 늘 청바지에 운동화신고 편하게 잠바입고 다녀왔는데
이거 참 괜히 회장 엄마라 하니 정장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구두 정도 신을 옷차림은 갖춰야하지 않나 싶고 봄외출복이 뭐가 있나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아기들 키우는 10년동안 옷이나 화장은 나와 늘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늘 집과 놀이터, 동네 정도만 오가고
편하고 막 입는 옷이 제일이었다.
실은 원래도 멋낼 줄 모르고 예쁜 외모도 아닌지라 육아라는 좋은 핑계로
외모를 깔끔하고 단정하게 가꾸는 일은 귀찮아서 안하고 지낸 것이다.

결국 총회 당일 오전에서야 동생들 유치원 보내놓고 시간을 내서
잠시 옷을 사러 다녀왔다.
짧은 시간을 쪼개서 후다닥 매장 두어군데를 휘돌아 살펴보고
바지 한벌과 조끼 하나, 티셔츠 하나를 샀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구색은 맞겠다 싶었다.

옛날에 우리 엄마도 이랬겠지.
아이들 학교가봐야하는 날이 되면 뭘입고 가나.. 며칠전부터 생각했다가
모처럼 시내 나가서 바지 한벌, 쟈켓 하나 사입고 하셨겠지.
농사일과 살림으로 바쁘셔도
엄마는 반장 자주 하던 우리 남매들의 학교에 오실때면
옷도 깔끔하게 멋지게 입으시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오셨었다.

엄마는 언제나 좋다.
집에서 푸근히 밥차려주실 때도 좋고,
모처럼 예쁘게 꾸미고 손잡고 나들이 나갈때도 좋고,
뒷마당에서 부지깽이로 종아리 때리며 혼낼 때도 좋다.
들길로 새참 광주리 머리에 이고 광주리에는 손도 안대고 흔들림없이 걸어가시는 놀라운 묘기를 선보이실 때도 좋고,
좋은 동요와 가곡들을 함께 부르며 숲길을 산책할 때도 좋았다.

엄마는 언제나 좋다.
그런 엄마도 중년을 보내시는 동안 힘든 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힘들 때면
'아 엄마도 나처럼 힘들었겠지' 생각한다.
어린 날 사진속의 아빠모습이 연세드신 지금보다 오히려 더 피곤하고 아파보였던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40살이 되고 이제 칠순을 넘으신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
엄마아빠는 지금 나보다 더 씩씩한 목소리로
내 걱정을 하시고
잘 챙겨먹어라, 잘 살아라 생활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챙기며 당부하신다.
그러면 나는 다시 어린 시절처럼 용기가 생기고
잘 지내야지, 잘 살아야지 힘을 낸다.

부모님은 언제나 부모님, 자식은 언제나 자식인가보다.
나도 내 꼬마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어야지.
늘 든든하게 지켜주는, 언제나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봄날이 왔다.




동네 친구들과 봄방학 마치기전 올림픽공원으로 나들이가서 찍은 사진. 아이들 소풍이 엄마들 소풍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처럼 이날 참 좋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연제는 새해 다섯살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엄마, 나 이제 몇 살이야?' 묻길래 '다섯살이지' 했더니 '아직도? 나 얼른 이렇게 되고 싶다' 하면서 손가락 여섯개를 펴 보인다.

다섯살이 된 것도 신기한데.. 

연수가 열살 된 것도, 연호가 일곱살 된것도..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늘 신기하다.

그 중 제일 신기한 것은 내 나이가 어느새 마흔인 것이지만.. ^^


며칠전에 연제가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깬 적이 있었다.

바로 잠이 안들어 물 한잔 마시고 깜깜한 방에 누워 뒹굴뒹굴 하다가 묻는다. 


엄마, 저 집들에는 누가 살아?


안방에서 바라다보이는 옆단지 아파트 건물에 켜진 불빛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예전 집 같으면 우리가 아는 누군가들의 집이 있겠지만 지금은 아는 집이 없다. 그래서 연제도 묻나보다. 


글쎄.. 어떤 엄마아빠랑 아기들이 살지 않을까..?


엄마, 내가 애기였을 때는... 진짜 애기였어. 

한 살, 두 살, 세 살, 네살.. 그러다 다섯 살이 된거야.  


반짝이는 불빛 속 집에 살고있을 어느 어린 아기 생각을 하다가 저는 이제 꽤 많이 큰 형아라는 생각이 들었나..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다리는 그 위에 또 척 올려놓고 흔들흔들해가며 읊조리는 

다섯살 형님의 '아기 시절' 회고에 

나는 마음 속으로 크게 웃었다.  


연제가 가끔 의젓하고 다정하게 굴 때 참 뭉클하다. 


엄마, 엄마도 목말 타고싶어? 엄마도 나처럼 크면 탈 수 있을거야.. 토닥토닥. 


네살때였나.. 연제는 자기가 하고노는 재밌는 여러가지 놀이들을 엄마는 '어려서' 못 한다고 생각하고 '엄마도 나처럼 크면 할 수 있다'고 자주 격려해주곤 했다. 

포근히 안아주고 작고 따뜻한 손길로 토닥토닥 등도 두드려 주고...   


우리 막내가 어느새 다섯살, 

새봄이 되면 둘째 형아가 다니는 유치원에 함께 다니게 된다. 

아직도 키가 요만한 꼬꼬마 연제인데... 

아침마다 형이 타는 유치원 버스 마중을 함께 나가던 연제도 

한 달 뒤면 함께 버스에 오르겠네. 

씩씩하게 즐겁게, 친구들과 선생님과 잘 지내다 엄마품으로 돌아오길..


아기들은 하루에 천리길을 다닌다고

내가 젖먹이들을 키우던 시절에 친정에 가면 할머니는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요 녀석들이 집안에서만 요리 조리 왔다갔다 해도 하도 열심히 움직이니 하루에 천리 걸음은 족히 다닌다는 말씀이셨다. 

다리에 힘 올리느라고, 걷고 뛰는 연습 하느라고 

하루에도 몇 천 걸음. 

작은 발, 짧은 다리로 이쪽저쪽 다다다다 부지런히 오고가는 

그 아기들을 따라 나도 하루 천리씩을 종종걸음으로 오고갔을까. 


그렇게 흐른 십년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내가 온전히 내 품에만 머물던 시절을 끝내고 

세상으로 한발짝 나간다.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부지런한 십년이었다. 

애쓴 십년이었다. 

토닥토닥. 

연제와 자주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며 

새로운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새해들어 열살이 된 연수.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신나게 '놀고' 있다.

하루 종일 논다.
쉬지않고 논다.
동생들과 방방 뛰면서도 놀고, 티비 만화에도 한두시간 쏙 빠져서 보고, 레고랑 보드게임하면서 놀고..

나름의 방학숙제로 '만화책 한권 그리기'를 정했던데 몇페이지 그리다 말고,
일기는 아직 한편도 안썼고,
권장도서만 몇권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었다.

그러다가 어제 내 잔소리를 듣고
A4 한장으로 나온
'체험학습 보고서'를 겨우 썼다.



참 짧게도 쓴다.
맞춤법도 틀리고ㅠ

그래도 한 구절이 쓰린 엄마 속을 토닥여주었다.

"비올때 빗소리를 듯고"

문학적 감수성이 있어서라기 보단
'무엇을 보고 듣고 체험했나요?' 하는 질문에 지극히 충실하게
들은 것을 떠올려 답하려다보니
빗소리 들은 것이 기억에 남아서 쓴게 틀림없는 열살 사내아이.

요즘 나는 '아이 잘 키우는 법' 같은 것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어설프고 대중없고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저 즐겁게 웃으며 이 순간들을 보내주는 것만도 고맙다.. 생각하기도 하고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헤메는 엄마이기는 둘째, 셋째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첫 아이를 보면서는 더 아리송해져 버린다.
이제 열살.
아직 열살.. 벌써 열살.

십년치 사랑이나 뜨뜻한 국에 말아 잘 먹여주며 살아야지...

오늘도 고마웠다, 연수야.


Posted by 연신내새댁

연호가 아침에 울었다.
형과 동생은 집에서 재밌게 노는데 자기만 유치원에 가는게 슬프다고.

엄마, 눈물이 자꾸 나는데 어떻게 가?

이제 그만 울어..

엄마, 나 얼굴에 눈물 그림자 있지않아? 훌쩍, 훌쩍..

눈물 그림자? ^^ 그거 너무 예쁜 말이다...

조금 웃으며 연호가 눈물을 닦는다.

눈물 자욱 말이야.. 눈물 자욱있는데 유치원버스 어떻게 타? 엄마가 닦아줘..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걸으며
예쁜 연호의 작은 얼굴에 묻은 눈물 그림자를 급히 닦아주며
슈퍼 기둥뒤에 숨은 연호를 소리쳐불러
기다리는 유치원 버스에 태웠다.

선생님이 연호 옆에 앉아 무슨 일인지 물어주고 가방을 챙겨주고 안전띠를 해주시는게 보였다.

일곱살이 된 연호.
유치원 버스 창가자리에 앉아
바깥풍경을 보며 눈물그림자를 지우며 유치원에 가겠지.
자기 삶에 대해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도 하고
여러가지 감정을 겪으며..

나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고민 많고 고집스럽고 까무잡잡한 작은 여자아이였던 시절.
나름대로 굉장히 진지하게
나와 주변인들을 바라보고 생각을 키웠었다.
연호도 그런 시절에 들어섰을까.

내가 할 일은
그런 너의 곁을 잘 지켜주는 일.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네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일.

자기 눈물의 말간 그림자 속에
잠시 머물러 앉아서
곰곰히 들여다보는 시간.
마음이 한뼘 자라는 시간.
어른인 내게도 필요한 시간.

연호야, 힘내자.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6. 8. 1. 00:43

이 집에 사는 동안 참 좋았다.

서울시 강동구 강일동 고덕리엔파크 106동 403호.

결혼해서 두번째 살았던 집.
2011년 이른봄 네살된 연수와 배속의 연호를 데리고 들어왔던 집.
5년 하고 반년을 더 사는 동안
연호가 태어나 여섯살이 되었고
연제가 태어나 네 살이 되도록 자란 집.



이 집을 내일 떠난다.
아름답고 좋았던 많은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는 것이 슬퍼서
아이들도 나도 여러번 울고 아쉬워했다.

고마웠다.
참 고마웠다.
이 집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고
남편도 나도 무탈히 서로 보듬어주며 지냈고
다정하고 좋은 이웃들과 깊은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살았다.




앞마당이 내려다보이던 4층 우리집 거실 창가에서
아이들은 비둘기 밥을 주고
친구들과 동네 이모들을 열심히 불러 손을 흔들고
나는 학교에 가는 연수와 친구들의 자그마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있곤 했다.

저녁노을과 달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고덕천 쪽으로 바라보이는 먼산을 보며 오늘은 미세먼지가 어느 정도일까.. 가늠해보기도 했다.
먼지를 생갓하면 마음 아팠지만 산을 바라보면 언제나 행복했다.
작은도서관 앞을 살피는 일도 즐거웠다.
약속한 누군가가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갈께요~!' 소리치고 뛰어갈 수 있던 집.



처음 이사왔을 때는 답답한 벽으로 느껴지던 105동 건물은
이제 올려다보면 한층한층 누구네 집인지 거의 다 알게되어
불빛이 켜져 있으면 반갑고 꺼져있으면 어디 갔나.. 궁금해지는 다정한 친구들 집이 되었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갓난 아기들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업어재우고
그 작은 손을 잡고 걸음마를 함께 하고
막내가 네발 자전거를 씽씽타고 동네 형들과 신나게 놀러다니도록 자란 시간.

아이들과 많이 놀았고, 함께 고덕천 길과 오래된 성당 마을과 강명초등학교 오가는 길을
많이 걸었고, 텃밭을 일구고
한 2년 남짓은 작은도서관을 내집처럼 오고가며 마을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여럿 하고,
울고 웃고 사랑하며 살았다.



금요일에 도서관 친구들이 송별회를 마련해 떡과 꽃을 주셨고,
오늘 연호가 고덕천에서 놀다와서는 제가 만든 꽃다발을 선물로 주었다.

고운 꽃들처럼 고운 추억을 안고
이 집을 떠난다.
정들었던 사람들, 아름다운 한시절과 이별하는 일은 내가 평생 해온 일인 것만 같은데
이제는 서른 아홉.
뒤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떠나가는 일은 그만 하고 싶다.
오래오래 뒤돌아보고 싶다.
떠나온 것 안에 지겹도록 미적거리며 앉아있어보고 싶다.
이사에 임박할 때까지도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딴일로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는 버릇이 있다.
자꾸 그런다.
왜 그럴까.
뭐가 두려운 걸까.

내가 잃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내 마음은 어떤지
외면하거나 묻어버리지말고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마음이 하고픈 말을 들어주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마흔이니까.. 할수 있지 않을까.



내일이면 떠난다.
정든 집, 정든 마을, 정든 이웃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보살펴주시는 마음들, 기울여주는 애정들, 이 터전에 깃든 좋은 기운들, 멀리서 보내주시는 한결같은 기원들.

그 덕분에 저희 다섯, 잘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살겠습니다.
사랑하며, 나누며, 보듬으며
천천히 꾸준히 성장하며
저희 다섯 새 보금자리에서도
포근히 깃들어 지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새댁 책2016. 6. 24. 10:43



'산다는 게 곧 말썽이요'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조르바가 혼자 지껄였다. 

'두목, 계산 같은 건 이제 그만하쇼. 숫자 놀이는 그만두고 저울은 부숴 버리고, 구멍가게는 문을 닫아 버리라고요....(중략)' (148-149쪽)


'하느님은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두목,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있다면(뭐,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목, 나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외다. 나는 하느님이 꼭 나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지 나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힘이 세고, 좀 더 돌았겠지요. 그리고 죽지 않는다는 것도 있겠네. 부드러운 양피 무더기 위에 떡하니 앉아 있는데 그 양반 오두막은 하늘이야...(중략)... '제발 그만둬! 그런 소리라면 신물이 나도록 들었다.' 그러고는 처덕처덕 물 적신 스펀지로 문질러 죄를 몽땅 씻어 버리시고 혼령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천당으로 냉큼 꺼져라. 여봐라, 베드로. 이 잡것도 넣어 줘라!'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굉장한 임금이십니다. 굉장한 임금이시란 게 뭡니까? 용서해 버리는 거지요!' 

조르바가 이 심오한 객설을 지껄이던 그날 저녁, 기억하기로는,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굉장한 임금님>으로서의 하느님은 내 속에서 틀이 잡히면서 자비심 많은, 관대하고 전능하신 분으로 성숙을 거듭했다. (154-155쪽)



 

 

조르바를 읽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에는 가벼운 이야기에도 깊은 사색이 깃들어있고, 무겁고 처절한 주제 속에도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숨을 고르며 깊이 빠져 읽었습니다.

이윤기 선생님의 번역은 입에 착착 붙는 입말 그 자체여서 생생하게 크레타 해변에 저를 데려다주었고요.

 

조르바의 전반부를 읽고 있던 어느 밤, 문득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보니 노란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엷게 펼쳐진 흰 구름이 달 주위를 지나 푸른 밤하늘 멀리로 흘러가고 있었고요.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도 저 달을 바라보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달은 언제나 거기 있었지요. 우주가 태어나고, 지구와 달이 이렇게 자리를 잡은 이후,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많은 사람들이 올려다보고 그 달빛 아래를 걸었던 달이 이 밤에도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서울 강일동 냇가 옆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달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저는 많이 행복했습니다. '자연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한동안 일상에서 못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날밤은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뻐근했습니다. 조르바 덕분이구나.. 생각했어요.  

 

예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셋째 출산을 앞두고 밤에 냇가 옆길을 열심히 걸어다니며 운동을 했습니다. 눈이 아직 안녹아 미끄러운 곳을 피해 마른풀이 덮힌 흙땅을 밟았는데 뭉클했습니다. 흙. 이 흙 속으로 들어가면.. 지구의 중심을 지나 저 반대편 라틴아메리카 어느 땅의 흙으로 통하겠지. 그러니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흙은 지구 반대편의 흙과 이어진 흙, 내가 지구 반대편을 걷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 나는 지금 아르헨티나 어디께를 걷고 있다.. 공기도 대륙과 바다를 넘어 흘러다니고, 땅은 이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밤, 어찌보면 매일 반복되는 정해져있는 일상의 틈바구니 안에서 무한한 연결감, 시공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떄는 우연히 한 생각이었는데, '조르바'를 읽으면서 문학이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 새삼 알았습니다. 연결감. 세대를 넘고, 시공을 초월하는 연결감. 조르바를 읽는 동안 많이 느꼈습니다. 

 

날이 더워졌습니다. 열이 많은 아이들은 집에서 제일 시원한 곳을 찾아, 베란다 타일 바닥 위로 굴러가 잠이 듭니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냉기와 열린 창문으로 밀려들어오는 밤기운에 의지해 종일 뛰어놀아 고단해진 몸에 휴식을 줍니다. 잠든 아이들을 하나씩 방안의 이불위로 안아다 눕히면서 이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크레타 해변'에서 보내는 인생의 한 시절이, 몇 달이, 몇 년이 있기를 가만히 빌어보았습니다. 자기만의 '조르바'를 만나기를, 해변의 자갈 위에서 시원하게 잠들는 날이 있기를. 파도소리와 조르바의 산투르 연주와 이야기와 춤과 포도주와 스프 속에서 '인생에 대한 따뜻한 열정'이 몸과 마음을 충만하게 적시는 날들이.

 

저에게 '조르바'는 단 한명 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슬픔과 열정과 기쁨과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며 그 속에서 길어낸 보석같은 애정을 저에게 건네준 사람들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저의 '조르바'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 한 '조르바' 이야기를 함께 책읽은 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그 분은 저희 마을 도서관 요가 선생님이세요. 올해로 나이가 일흔이세요. 유연한 몸, 씩씩한 마음, 끝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인상적인 분이세요. 주민자치센터에서 '사주명리학' 강의도 하십니다. '캘리그라피' 강사 자격도 가지고 계시지요. 쉰이 넘고, 거친 생업의 세계를 일정하게 마무리하신 뒤에 선생님은 해보고싶었던 여러가지를 한가지씩 해보셨데요. 하실 때는 꼭 '강사 자격'을 딸 때까지 하셨고요. ^^

남쪽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에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담배밭에서 일할때 너무 힘드셔서 '엄마, 나는 꼭 나중에 농사일 안하고, 다른 일 하면서 살꺼야' 하셨데요. 어머니가 '뭘 배워서 그렇게 할래?'하시면서도 '그래, 그럼 너는 그만 나가서 식구들 점심 준비해라' 하시면 밭일 안하는게 고맙고 좋아서, 집에와서 열심히 팥칼국수를 끓이셨데요. 그래서 팥칼국수를 엄청 맛있게 잘 끓이십니다. 저희 도서관 운영위원회때 한 냄비 끓여주셨지요. 칼국수 면도 직접 밀어 슥슥 자르신 것인데, 며느님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을때 많이 끓였다가 남았다고 저희 집에 한 냄비 갖다주셔서 저는 진즉 그 맛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토요일 오전마다 도서관에서 요가하는 시간은 제가 딸린 아이들 없이 모처럼 홀가분하게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예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나오면 되는 도서관 유아실 넓은 마루에서 요가매트에 앉아 저는 한시간 반쯤 크레타해변에 앉아있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팔 다리를 지그시 뻗고 누르며 호흡하는 힘든 시간 중에 선생님은 물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뭘까요?'

'황금?' '아이들?' 여러가지 답이 오고가는 중에 선생님이 내놓으신 답은 '자유!'

한 시간 반정도의 즐겁고도 힘든 요가를 마무리할 때 우리는 선생님이 틀어놓으신 트로트(?)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보는 거지요. 리듬을 타보려고 해도 저는 잘 안 돼요. 발도 꼬이고, 팔은 그저 막 휘젓는 수준입니다. ㅎㅎㅎ 선생님은 아름답게 움직이셔요. 한국무용과 밸리댄스도 배워보셨던 선생님의 몸짓은 가볍고 아름다워요. 신나는, 어찌보면 조금 슬프기도한 음률에 맞춰 춤을 추다가 선생님이 다시 물으십니다.

'살면서 세 가지 정말 중요한 <금>이 있대요. 뭘까요?'

'소금', '황금' 요가를 함께 하는 마을 언니와 동생이 하나씩 잘 맞춥니다. 이제 제 차례인데, 저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요. 역시 지혜로운 우리 언니가 마지막 답을 찾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소리지르며 선생님과 한데 모여 끌어안고 뱅글뱅글 돌며 웃었습니다.

지금! 지금!

선생님과 함께 우리는 운 적도 있었어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오신 선생님은 아파트 옆 고덕천을 예전부터 많이 걸으셨데요. 때로는 외로움에 울며, 비오는 날 일부러 눈물이 가려지도록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셨데요. 사는 동안 괴롭고 아픈 날이 얼마나 많은지요. 예쁜 모자를 쓰고 선생님이 도서관에 오시면 우리는 깔깔깔 재밌는 이야기를 주고받조으며 웃습니다. 지금. 웃을 수 있는 지금 함께 웃습니다.

겨울,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을때 우리는 작은도서관에서 작게나마 '신영복 도서전'을 열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윤독하는 시간을 가졌었어요. 우리 요가 선생님은 신영복 선생님에 대해 처음 들어보셨다고 하셨는데, <사색>의 편지글들을 읽으시면서 참 좋아하셨습니다. 탄복하고, 어린 시절 '시골 장' 이야기에 공감하고, 글씨의 '관계'에 대해 '정말 그렇다'며 좋은 작가, 글을 알게된 것을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내내 하고싶은 얘기가 참 많았어요. 좀 신기할 정도로요.. 저의 20대를 함께 보냈던 여러 그리운 이들과 많이 고민했던 주제들이 실은 100년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에 벌써(?) 썼던 내용이라는 것이 놀랍고 멋쩍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희가 굉장히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줄 알았거든요. ^^;;;;

그래서 더 정리해두고 싶은데, 오늘은 이 정도 밖에 못 적겠어요.

다른 작품들을, 또 계속해서 읽어가면서 제의 여러 작은 경험들도 나름의 의미를, 자리를 잡아갈 수 있겠지요. 

<인문학 읽고쓰기>시간에 함께 하는 것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인데 가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 제 이야기만 보내서 죄송합니다.ㅠㅠ

다음 책, 또 함께 만나보아요.. 늘 감사합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