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새댁 책2016. 6. 24. 10:43



'산다는 게 곧 말썽이요' 내가 대꾸하지 않자 조르바가 계속했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조르바가 혼자 지껄였다. 

'두목, 계산 같은 건 이제 그만하쇼. 숫자 놀이는 그만두고 저울은 부숴 버리고, 구멍가게는 문을 닫아 버리라고요....(중략)' (148-149쪽)


'하느님은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두목,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있다면(뭐,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목, 나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외다. 나는 하느님이 꼭 나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지 나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힘이 세고, 좀 더 돌았겠지요. 그리고 죽지 않는다는 것도 있겠네. 부드러운 양피 무더기 위에 떡하니 앉아 있는데 그 양반 오두막은 하늘이야...(중략)... '제발 그만둬! 그런 소리라면 신물이 나도록 들었다.' 그러고는 처덕처덕 물 적신 스펀지로 문질러 죄를 몽땅 씻어 버리시고 혼령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천당으로 냉큼 꺼져라. 여봐라, 베드로. 이 잡것도 넣어 줘라!'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굉장한 임금이십니다. 굉장한 임금이시란 게 뭡니까? 용서해 버리는 거지요!' 

조르바가 이 심오한 객설을 지껄이던 그날 저녁, 기억하기로는,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굉장한 임금님>으로서의 하느님은 내 속에서 틀이 잡히면서 자비심 많은, 관대하고 전능하신 분으로 성숙을 거듭했다. (154-155쪽)



 

 

조르바를 읽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에는 가벼운 이야기에도 깊은 사색이 깃들어있고, 무겁고 처절한 주제 속에도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숨을 고르며 깊이 빠져 읽었습니다.

이윤기 선생님의 번역은 입에 착착 붙는 입말 그 자체여서 생생하게 크레타 해변에 저를 데려다주었고요.

 

조르바의 전반부를 읽고 있던 어느 밤, 문득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보니 노란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엷게 펼쳐진 흰 구름이 달 주위를 지나 푸른 밤하늘 멀리로 흘러가고 있었고요.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도 저 달을 바라보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달은 언제나 거기 있었지요. 우주가 태어나고, 지구와 달이 이렇게 자리를 잡은 이후,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많은 사람들이 올려다보고 그 달빛 아래를 걸었던 달이 이 밤에도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서울 강일동 냇가 옆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달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저는 많이 행복했습니다. '자연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한동안 일상에서 못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날밤은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뻐근했습니다. 조르바 덕분이구나.. 생각했어요.  

 

예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셋째 출산을 앞두고 밤에 냇가 옆길을 열심히 걸어다니며 운동을 했습니다. 눈이 아직 안녹아 미끄러운 곳을 피해 마른풀이 덮힌 흙땅을 밟았는데 뭉클했습니다. 흙. 이 흙 속으로 들어가면.. 지구의 중심을 지나 저 반대편 라틴아메리카 어느 땅의 흙으로 통하겠지. 그러니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흙은 지구 반대편의 흙과 이어진 흙, 내가 지구 반대편을 걷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 나는 지금 아르헨티나 어디께를 걷고 있다.. 공기도 대륙과 바다를 넘어 흘러다니고, 땅은 이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밤, 어찌보면 매일 반복되는 정해져있는 일상의 틈바구니 안에서 무한한 연결감, 시공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떄는 우연히 한 생각이었는데, '조르바'를 읽으면서 문학이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 새삼 알았습니다. 연결감. 세대를 넘고, 시공을 초월하는 연결감. 조르바를 읽는 동안 많이 느꼈습니다. 

 

날이 더워졌습니다. 열이 많은 아이들은 집에서 제일 시원한 곳을 찾아, 베란다 타일 바닥 위로 굴러가 잠이 듭니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냉기와 열린 창문으로 밀려들어오는 밤기운에 의지해 종일 뛰어놀아 고단해진 몸에 휴식을 줍니다. 잠든 아이들을 하나씩 방안의 이불위로 안아다 눕히면서 이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크레타 해변'에서 보내는 인생의 한 시절이, 몇 달이, 몇 년이 있기를 가만히 빌어보았습니다. 자기만의 '조르바'를 만나기를, 해변의 자갈 위에서 시원하게 잠들는 날이 있기를. 파도소리와 조르바의 산투르 연주와 이야기와 춤과 포도주와 스프 속에서 '인생에 대한 따뜻한 열정'이 몸과 마음을 충만하게 적시는 날들이.

 

저에게 '조르바'는 단 한명 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슬픔과 열정과 기쁨과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며 그 속에서 길어낸 보석같은 애정을 저에게 건네준 사람들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저의 '조르바'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 한 '조르바' 이야기를 함께 책읽은 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그 분은 저희 마을 도서관 요가 선생님이세요. 올해로 나이가 일흔이세요. 유연한 몸, 씩씩한 마음, 끝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인상적인 분이세요. 주민자치센터에서 '사주명리학' 강의도 하십니다. '캘리그라피' 강사 자격도 가지고 계시지요. 쉰이 넘고, 거친 생업의 세계를 일정하게 마무리하신 뒤에 선생님은 해보고싶었던 여러가지를 한가지씩 해보셨데요. 하실 때는 꼭 '강사 자격'을 딸 때까지 하셨고요. ^^

남쪽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에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담배밭에서 일할때 너무 힘드셔서 '엄마, 나는 꼭 나중에 농사일 안하고, 다른 일 하면서 살꺼야' 하셨데요. 어머니가 '뭘 배워서 그렇게 할래?'하시면서도 '그래, 그럼 너는 그만 나가서 식구들 점심 준비해라' 하시면 밭일 안하는게 고맙고 좋아서, 집에와서 열심히 팥칼국수를 끓이셨데요. 그래서 팥칼국수를 엄청 맛있게 잘 끓이십니다. 저희 도서관 운영위원회때 한 냄비 끓여주셨지요. 칼국수 면도 직접 밀어 슥슥 자르신 것인데, 며느님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을때 많이 끓였다가 남았다고 저희 집에 한 냄비 갖다주셔서 저는 진즉 그 맛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토요일 오전마다 도서관에서 요가하는 시간은 제가 딸린 아이들 없이 모처럼 홀가분하게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예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나오면 되는 도서관 유아실 넓은 마루에서 요가매트에 앉아 저는 한시간 반쯤 크레타해변에 앉아있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팔 다리를 지그시 뻗고 누르며 호흡하는 힘든 시간 중에 선생님은 물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뭘까요?'

'황금?' '아이들?' 여러가지 답이 오고가는 중에 선생님이 내놓으신 답은 '자유!'

한 시간 반정도의 즐겁고도 힘든 요가를 마무리할 때 우리는 선생님이 틀어놓으신 트로트(?)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보는 거지요. 리듬을 타보려고 해도 저는 잘 안 돼요. 발도 꼬이고, 팔은 그저 막 휘젓는 수준입니다. ㅎㅎㅎ 선생님은 아름답게 움직이셔요. 한국무용과 밸리댄스도 배워보셨던 선생님의 몸짓은 가볍고 아름다워요. 신나는, 어찌보면 조금 슬프기도한 음률에 맞춰 춤을 추다가 선생님이 다시 물으십니다.

'살면서 세 가지 정말 중요한 <금>이 있대요. 뭘까요?'

'소금', '황금' 요가를 함께 하는 마을 언니와 동생이 하나씩 잘 맞춥니다. 이제 제 차례인데, 저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요. 역시 지혜로운 우리 언니가 마지막 답을 찾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소리지르며 선생님과 한데 모여 끌어안고 뱅글뱅글 돌며 웃었습니다.

지금! 지금!

선생님과 함께 우리는 운 적도 있었어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오신 선생님은 아파트 옆 고덕천을 예전부터 많이 걸으셨데요. 때로는 외로움에 울며, 비오는 날 일부러 눈물이 가려지도록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셨데요. 사는 동안 괴롭고 아픈 날이 얼마나 많은지요. 예쁜 모자를 쓰고 선생님이 도서관에 오시면 우리는 깔깔깔 재밌는 이야기를 주고받조으며 웃습니다. 지금. 웃을 수 있는 지금 함께 웃습니다.

겨울,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을때 우리는 작은도서관에서 작게나마 '신영복 도서전'을 열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윤독하는 시간을 가졌었어요. 우리 요가 선생님은 신영복 선생님에 대해 처음 들어보셨다고 하셨는데, <사색>의 편지글들을 읽으시면서 참 좋아하셨습니다. 탄복하고, 어린 시절 '시골 장' 이야기에 공감하고, 글씨의 '관계'에 대해 '정말 그렇다'며 좋은 작가, 글을 알게된 것을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내내 하고싶은 얘기가 참 많았어요. 좀 신기할 정도로요.. 저의 20대를 함께 보냈던 여러 그리운 이들과 많이 고민했던 주제들이 실은 100년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에 벌써(?) 썼던 내용이라는 것이 놀랍고 멋쩍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희가 굉장히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줄 알았거든요. ^^;;;;

그래서 더 정리해두고 싶은데, 오늘은 이 정도 밖에 못 적겠어요.

다른 작품들을, 또 계속해서 읽어가면서 제의 여러 작은 경험들도 나름의 의미를, 자리를 잡아갈 수 있겠지요. 

<인문학 읽고쓰기>시간에 함께 하는 것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인데 가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 제 이야기만 보내서 죄송합니다.ㅠㅠ

다음 책, 또 함께 만나보아요.. 늘 감사합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새댁 책2016. 6. 10. 11:16
아들과 연인 1 - 10점
D.H. 로렌스 지음, 정상준 옮김/민음사

 

 

 

 

이야기가 될만하지 않은 삶이 있을까.

누구의 삶, 어떤 성장 과정, 어떤 경험도 이야기가 될 만하다. 될 수 있고, 그러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보고, 그 경험 전체를 조금 떨어뜨려놓고 바라보면서 '아 이 삶에는 이런 면이 있구나' 생각하고 '나의 삶'을 그에 비춰 돌아볼 때 삶은 뜻밖의 위로를 얻기도 하고, 비통한 공감, 작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이야기가 잘 정돈된 글로 쓰여진다면 더 수월하게, 두고두고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다.

 

1910년대에 쓰여진 로렌스의 소설 <아들과 연인>을 한달 동안 즐겁게 읽었다.

읽는 동안에는 긴 이야기 속에서 조금 헤메는 듯이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장편 소설, 고전소설들의 힘과 매력은 책을 마무리할 즈음에 비약적으로 커지는 것 같다. 중간중간 함께 책모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게 특별히 깊이 와닿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책을 덮으면서는 긴 여행을 마치는 기분으로 내 감상의 갈피를 잡고 글쓰기도 조금은 수월해졌다.

 

<아들과 연인>의 영어 제목은 <Sons and Lovers>로 주인공 모렐 부인의 아들들(윌리엄, 폴, 아서)과 그들의 연인들을 뜻한다. 아들들이 성장하며 만나는 연인들과 그들 사이의 이야기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머니인 모렐 부인과 그 아들들이 맺는 깊은 정신적 관계, 성장기의 인생 전체를 통해 공유하게된 삶의 가치, 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의존과 애정, 그로인해 생겨난 질곡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다.

 

가족간에는 어느 정도의 정신적 유대가 가능할까.

인간에게 있어 자기가 태어나 자란 가족, 가정은 어떤 의미에서든 '알'과 같다.

포근하고 따뜻한, 완벽하게 보호받는 곳으로서의 '알'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깨고 나가 세상속에서 내 발로 서야하는 '알'이기도 하다.  

 

완벽하게 따뜻한 알도, 완벽하게 엉망인 알도 세상에는 존재할 것이다.

행복뿐이거나 고통뿐인 삶도 존재하고, 순간순간 섞이기도 하고, 삶의 어느 기간은 주로 행복이, 어느 기간은 불행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모렐 가'처럼 엄마가 '행복'을, 아빠가 '고통'을 주로 담당할 수 도 있다.

'엄마' 곁에서 절대적인 안정과 행복을 느끼고, '아빠'가 등장하는 순간 불안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형제들 안에서, 혹은 부모 전체와 아이들 사이에 긴장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성장과정이 성인 이후의 삶을 떠받치는 바닥이 된다. 그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자기 모델이나 기준으로 삼아 애써 추구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배우자의 상을 부모에게서 찾는다면..  자신의 부모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도 아빠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아내가 우리 엄마 같았으면..'하고 바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라면 '나는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나는 아빠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아야지' 할 수도 있다.

스스로 자신의 가정(의 한부분)이 이상적이라 느끼고, 너무나 깊이 의존하며 성장한 사람이 오히려 성인 이후의 삶과 관계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아들과 연인>의 주인공 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나에게 유사한 면에서는 슬픈 공감을 일으키고, 달랐던 부분에서는 위안을 주기도 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폴이 겪는 정신적 공황을 읽으며 나는 유교문화에서 존재했던 '시묘살이'를 떠올렸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3년동안 자식이 부모의 무덤 근처에 움집을 짓고 살며 부모를 모시던 의례.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만한 슬픔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당이 되지 않는 정신적 충격이 존재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공을 초월해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살았던 로렌스(폴)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은 정신적으로 깊이 의존했던, 깊게 결합되어있었던 존재가 사라지는, 자기 존재의 기반이, 자기가 속해있었고 성장해왔던 한 세계가 붕괴하는 것, 바닥이 무너지고 추락하는 것과 같은 상태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 충격이 작가에게 이 소설을 쓰게 하고, 소설에 폴의 이야기로 담겨있다고 나는 느꼈다.

 

어쩌면 인간에게 자기가 태어나고 속해있었던 존재와 세계가 '죽음'을 통해 사라지는 것은 오래오래, 두고두고 깊은 상처와 공포, 슬픔을 주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로렌스로 부터 불과 10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가족의 유대는 많이 느슨해졌다. 자극을 주는 매체가 너무 많고, 사회에는 즐거움과 관심거리가 넘쳐나므로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적인 관계들에 대해서는 그 극진함과 집중도가 많이 약해졌다.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시묘살이는 하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슬픔과 충격의 정도가 갑자기 약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마음이 겪는 일에 우리가 더 무심해질 수 있을 뿐이다. 현대인의 삶의 여러 요소가 그런 망각, 외면, 회피를 돕는다.

그러나 조금 더 인간적 본질을 생각해보고 싶다면, 우리는 기쁨만큼이나 슬픔에도 응당한 시간을, 정신적 에너지를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붕괴 이후의 세계. 폴의 이후 삶.

궁금하고 불안하며 연민이 인다.

폴의 삶이 이야기되어서 고맙다.

읽고, 내가 생각해볼 수 있어서 고마웠다.

 

어떤 길을 걸어갈지는 그도, 나도 아직 모른다.

다만 살아갈 뿐. 때때로 아프게 추억하며.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새댁 책2016. 4. 29. 10:26
인간의 굴레에서 1 - 10점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민음사


<인간의 굴레에서> (서머싯 몸, 민음사)를 읽었다. 
'냇물아 흘러흘러' 북까페에서 열리는 '인문학 읽고쓰기' 모임에서 함께 읽었는데, 모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두꺼운 책을 한달이라는 시간 안에 꾸준히, 꼼꼼히 읽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만에 읽는 고전문학은 재미있었다. 한동안 고전문학, 장편소설을 읽지 못했던 터라 처음에는 글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번역문체, 대화, 인물과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 하지만 무엇보다 긴장되었던 것은 인간의 성장을 다루는 소설이 당연하게도 물고들어오는 '나'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의 유년시절, 나의 청년기, 나의 탐색, 나의 열정, 나의 중산계급적 기질, 나의 실수, 나의 타협, 나의 곤란.. 읽는 것은 '필립 케어리'라는 청년의 성장 이야기인데 드는 생각은 나에 대한 것이어서 자주 뜨끔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마음을 휘젓고 다니는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이 활자로 인쇄된 것을 읽는 것은 분명 큰 쾌감이었다.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간사의 구석구석을 풍부하게 이야기해주는 소설의 힘이 좋았다.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의 삶을 이렇게 한 편의 이야기로 정리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좀 덜 부끄러움을 타게 되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할 수있는 때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글로 쓸 수 있을까. 

무슨 기록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럴만큼 의미있는 삶이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굴레에서>와 같이 '누구의 삶이나 아름다운 무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자신이 삶으로 만들어온 양탄자의 큰 그림 전체를 조금 떨어져서, 천천히 응시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삶의 큰 행운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힘이 내게 있을까.

 

서머싯 몸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읽는 동안 마음 아프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의학도로, 의사로 지내며 만난 많은 아픈(보통) 사람들, 그들이 처한 어려운 형편과 사회 상황에 대해 찬찬히 묘사하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특출하고 뛰어난 수준의 인간이 아니라 그 자신 중간계급, 중산층이고 평범한 인간의 행복에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필립)의 시각에서 주변을, 혹은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함께 어울리며, 저마다의 고통으로 힘겨운 인간 모두를 '그래도 괜찮다'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 다같이 생의 굴레 안에서 힘겹게 노력하는 '인간' 임을 인정해주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서머싯 몸이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주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업혁명 이후 확립된 자본주의 사회의 비참은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해답은 각자가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는 것' 이상을 내어놓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애정, 고통과 비참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 보통 대중의 정서로 남아있어 영국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무상의료에 가까운 '국가의료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작은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젊음은 끝나고 낭만은 접힌다. 

'인생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강렬한 기대감은 '내 삶은 여기, 이 사람 곁에서'라는 현실적인 선택 아래,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는 쓰디쓴 깨달음 속에 접어진다.

이제 우리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생존이, 가장의 책임이, 어린 자식들을 안전하게 지켜내기위해 눈을 부릅떠야하는 현실이 남았다. '진정 원하는 것'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을 나날이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꿈꾼다. 낭만이,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에서 찾고, 살려지고, 지켜지면 좋겠다고. 삶은 그럴 수 있다.  


1900년대 초반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미세먼지, 방사능 같은 2000년대의 우리를 덮쳐오는 큰 문제들을 자주 생각했다.  

쳇바퀴를 멈출 방법은 찾지못한채 빠르게 굴러가는 쳇바퀴속에 몸을 담그고 저마다 당면한 오늘의 문제들에 골몰해 있는 2000년대의 우리들은 세계대전의 포화 앞으로 향해가던 1900년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대중은 바람에 부유하는 물결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은 것에 힘입어, 문득 하게도 되었다.  


밀드레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어쩌면 필립에게 '어머니' 아니었을까. 잃어버린, 사라진 그리운 존재. 아름답고 창백한 존재.

그와 전혀 다른, 건강하고 든든한, 소박하고 실제적인 여성과 가정을 꾸리는 결말은 어쩌면 잃어버린 세계에 작별을 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정신적 허기를 현실에서 극복하더라도, 가끔씩 망상처럼 뜨끔하게 상실의 고통, 불완전하게 남아있는 추운 유년(청년)의 결핍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선함, 아름다움. 

서머셋 몸이 '필립'을 통해 보여준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이 두 가지 가치를 몸의 감각으로, 정신의 감동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살아갈 힘을 준다. 나도 동의한다. 물음을 가지면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같다. 나는 어떤 물음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내 질문은 뭘까? 궁금하다. 다음 책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인간의 굴레에서>의 여운을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음미하고 싶기도 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새댁 책2010. 1. 21. 00:13


정말 좋은 책을 만났다.
덕분에 부엌에 있는 시간이 훨씬 즐거워졌다.


평화가 깃든 밥상 - 10점
문성희 지음/샨티



요즘 우리집 식탁 위에는 이 책이 항상 있다.
낮에는 그 날 만들 음식이 나오는 쪽을 펼쳐놓고 오며가며 짬짬히 들여다보고,
밤에는 미처 못읽은 부분들을 천천히 조금 더 읽고 덮어놓는다.
내일 아침이 되면 또 어딘가를 펼쳐놓고 있을 것이기에 식탁 한 구석, 그 자리에 가만히 둔다.


쉽고 소박한 문성희의 자연요리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밥상 차리기
란 부제가 붙어있는 범상치않은 요리책,
바로 <평화가 깃든 밥상>이다.

이 책에 나온 요리들은 쉽다. 그런데 그 맛은 깊다. 
이게 참 신기하다.
뭘 그닥 하지 않는데, 바쁘게 굽고 볶고 후다닥 거리지도 않고 그저 천천히 익히고 푹 끓이는데 맛이 좋다.
초보주부가 부엌에 서서 뭘 하나 만들려치면, 그게 국이든 반찬이든 재료를 준비할때부터 끙끙대고 연기가 나며 타기 일쑤인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어수선하고 피곤한 분주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너희들이 요가 상태에 머무르면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을 것이다. 
너희들의 음식과 음료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기품이 있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신의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 곧 마음을 만든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슈마리트'(신의 가르침이란 뜻)다.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 즐겁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그 자체가 몸과 마음을 살리는 약이 되고 생명이 된다는 생각.. 
세살배기 아이와 씨름하다보면 밥때는 어찌 그리 금방 돌아오는지, 이번엔 또 뭘 해먹나.. 엄마는 고민인데 아이는 계속 저와 놀자 매달리니 부엌에서 조용히 식사 한끼 준비하기가 정말 어렵다.
이런 마당에 어찌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을 담을 수 있으랴... 싶지만, 그래도 책을 본 뒤로는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한결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 있는 제일 큰 이유는 부엌에 서있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짧아졌기 때문이다.

책 첫머리에 저자는 '요리 솜씨 비법1,2,3'을 간단하게 정리해놓았는데 그중 두번째, '쉽고 즐겁게 요리하기'가 참 와닿았다.

"부엌에 오래 있는 아낙치고 음식 솜씨 있는 이 없다"는 옛말이 정말 일리있는 말이예요. 모든 엄마들이 하루도 쉼 없이 하는 일이 부엌일이니 요리는 무엇보다 쉽고 간결해서 즐겁게 할 수 있어야해요. 밥상 위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과 설거짓거리를 줄이는 것도 요리를 즐겁게 만드는 비결 중의 하나예요... 씻다가, 썰다가, 익히다가 하는 식으로 두서없이 이 일, 저 일을 섞지말고, 손질할땐 모든 재료를 손질해놓고, 씻을 땐 모든 재료를 함께 씻어놓고, 썰 땐 모든 재료를 다 썰어 요리할 순서대로 각각 큰 접시에 담습니다... 요리를 만들땐 그릇을 씻어가며 하는게 좋아요. 이 그릇 저 그릇 다 내어 사용하다보면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설거짓거리만 산더미입니다. 그러다 보면 두 번 다시 요리를 하기 싫어지니 설거짓거리를 미리 줄이는게 좋아요. (책 21쪽)

기본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이 작은 충고가 내게는 참 큰 것이었다. 이 일 저일 섞지말고 차근차근, 차례차례 해나가다보면 짧은 조리과정은 금세 끝나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할 일은 연수와 놀며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는 일.

요즘 우리집 식탁에 자주 오르는 국인 '무호두탕국'.
가을무는 참 달고 맛있다. 무나물 같은 반찬을 해도 맛있고, 국을 끓여도 시원하고 단 국물맛이 좋은지 연수가 아주 잘 먹는다.
버섯은 집에 있는 한가지만 넣고, 호두나 밤은 넣을때도 있고 없으면 그냥 끓여도 맛있다.
이 요리 한가지를 하면서 나는 국물요리의 여러 비법(?)을 이제사 배우게 되었다.

(무, 버섯, 연근, 밤 같은 재료들을 썰어두었다가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볶는다)
볶을 때 음식 맛이 결정되는데 간장과 참기름 향이 재료에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국물 요리인 국의 맛을 잘 내는 비결은 재료와 장맛의 어울림이므로, 국물안에서 서로 어우러질 수 있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 끓이는 게 중요하다.


말린 애호박나물, 무나물, 버섯장조림.. 한번 만들어두면 끼니때마다 입맛을 살려주는 이 반찬들은 찾아보면 만드는 방법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다. 말린 애호박나물에 불린쌀을 갈아두었다가 쓰는데 그렇게 따로 뭔가 하나 더 준비해두는 것 정도가 제일 번거로운 것이니 그 외의 과정은 그야말로 씻어서 썰고, 냄비에 넣어 단순한 양념 두어가지 넣어 잘 익히면 끝이다.
재료의 풍미가 살아있으면서도 짜지 않고 입맛도는 반찬 한가지만 꺼내놓고 거기에 따뜻한 밥만 비벼줘도 아이는 잘 먹으니 내가 만들었지만 참 먹을때마다 알려준 분께 고마운 마음이다. 

저자인 문성희 씨 소개를 보니..

이십여 년간 요리 학원 원장으로 살면서 맛있고 화려한 요리를 만들고 멋진 요리상을 차리는 일에 몰두해왔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는 것이고,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마트가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과 조리 과정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리 학원을 그만 두었다...
거친 밥과 푸성귀, 생식가루를 먹고 사는 동안 점차 몸 세포가 변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끼면서 생명을 살리는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분이 갖고 있는 밥상의 원칙 열가지가 다 마음에 와닿는다. 그중 지금 바로 내가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것-채식-도 있지만 특히 공감하고 바로 우리집 밥상에 적용해보고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셋째, 먹을거리를 손수 재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득이할 때는 유기농 재배 농가나 협동조합, 유기농 매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매한다...
다섯째, 되도록 조리 가공을 적게 한다. 신선한 날것을 많이 먹고, 익힐 때는 가열을 최소화하며, 양념을 적게 하여 재료의 신선한 맛을 최대한 살리고 살짝 찌거나 굽거나 데쳐서 먹는다.
여섯째, 조리법을 간단하게 하는 대신 한가지 요리에 다양한 채소를 골고루 사용하고 밥도 다섯 가지 이상의 알곡을 섞는다. 반찬 가짓수를 두 세개 이상 놓지 않으며, 조리된 음식은 서른여섯 시간안에 먹고 음식물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열째, 씨앗이 자라 꽃 피우고 열매 맺도록 한 흙, 공기, 물, 햇빛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내게 들어와 내 몸으로 모양을 바꾼 그것들, 곧 내 몸에게 자주 사랑을 보낸다. (책, 9-10쪽)


이 책에 나온 요리들을 아직 많이 해보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몇가지 해보면서 느낀 것은
한 요리의 조리 과정은 짧지만 음식 하나를 준비하는 시간은 길다는 것이다.
서너시간 전에 콩을 씻어 불려놓고, 말린 버섯이나 호박, 가지같은 나물도 불려놓고.. 약한 불에서 푹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하룻밤쯤 재워두다가 불려두었다가 다음날 끓이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바쁘지 않게, 천천히 흘러간다. 콩이 불는 동안 아이와 책을 읽고, 집을 치우고 빨래도 한다.
하루밤 기다리며 내일 그걸 끓이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것도 좋다.
조리과정이 단순하지만 맛은 깊은 것은 아마도 그 기다리는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그 시간에 실리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밥상을 바꾸는 것 만으로도 화석 연료는 물론, 물과 세제의 사용도 현저히 줄일 수 있었고, 쓸데없는 일손과 조리하는 시간도 줄여 부엌일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소유를 줄이게 되었지요.
내가 먹는 바로 그것이 나를 만듭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가 전달돼서, 먹는 사람도 충족함을 느낄 수 있어요.(10쪽)
나는 먹는 것이 단순해지면 생각이 단순해진다고 믿어요. 생각이 단순해지면 지각이 선명하고 명료해져서 삶 속에 복잡하게 파고든 여러 가지 불필요한 관계에도 휩쓸리지 않게 돼요. 불필요한 관계가 정리되기 시작하면 시간이 느슨하게 흐를 것이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163쪽)



요리 한가지에만 해도 이만한 삶의 철학이 깃든다.
그러니 우리 삶을 이루는 한 가지, 한 가지 모두를 깊이 느끼고 진심으로 수행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체득할 수 있을까..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보양식(모두 채소로 만든다 ㅎㅎ)이 가득한 '열두 밥상'과 이름들만 봐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곱 죽상'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안심 간식'과 약선 김치들, 효소와 소스 만드는 법까지 참 알차고 고마운 내용이 가득한 이 책, 평화롭고 건강한 밥상을 꿈꾸는 모든 지인들께 권하고 싶은 책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새댁 책2009. 12. 20. 22:39



늦지 않았다 - 10점
한명석 지음/북하우스




밤 10시, 똑순이가 잠들고 나면 비로소 하루중 유일한 내 시간이 시작된다.
가끔은 그 시간에도 기저귀 빨래나 방닦기 같은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지친 몸이나마 잠시 책상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블로그를 볼 수 있다.

요즘 내 밤시간은 이 책이 있어 뜨거웠다.
블로그 이웃 '미탄'(티스토리 블로그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님의 첫 책, <늦지 않았다>가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삶이 다시 열리는 시간 중년의 인생 매뉴얼'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사실 따져보면 내가 성인이 되어 이제까지 생활해온 시간과 똑같은 시간이 또 한 번 남아 있다. 삶에 관한 아무런 지식 없이, 겁도 없이 저지르며 산 전반생에도 그토록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었는데, 내 걸음걸이를 계획하고 의식하고 점검하며 걷는 후반생은 두 배 이상의 밀도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시간은 결코 짦은 시간이 아니다... 그저 성공적으로 쇠퇴만 하기에는 너무나 길고, 너무나 중요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열정을 조금만 더 유지하기만 한다면."(26쪽에서) 

이 구절을 읽고 깜짝 놀랐다.
중년에 대해서는 사실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끔 '은퇴후 설계'라는가 '노후 대책'같은 얘길 보험사 팜플렛같은 곳에서 보더라도 '글쎄.. 뭘 좀 하긴 해야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그저 지나쳐갔는데 음.. 성인이 되어 생활한 것과 똑같은 시간이 한 번 더 남아있다니.. 생각하니 정말 그랬다.
스물부터 쉰까지 30년, 쉰부터 80살까지 또 30년. 저자의 표현대로 '전반생', '후반생'이라 부를만하다.
전반30년 중에서도 전반을 살며 겨우 첫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허덕거리고 있는 나로서는 후반30년은 정말 상상할 엄두도 못 냈던 삶인 셈이다.

이 후반생을 생각하니 경제력도 경제력이지만, '무엇에 열정을 쏟으며 살 것인가'하는 문제가 정말 내게도 크게 고민되기 시작했다. 아직 먼 얘기같지만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니 시간은 정말 금방 가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눈깜짝하고 나니 벌써 19개월이다. 며칠 지나면 아이는 세살이 되고, 그렇게 몇년만 지나면 학교에 간다고 가방메고 나설 것이다.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나는 쉰이 된다. 신랑도 쉰이 된다. 쉰. 쉰. 휴... 그러면 얼마안가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겠지? 음.. 그 뒤에는 뭘 하면서 살고싶을까? 쉰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니 내 일보다 먼저 신랑의 일이 궁금해진다. 그동안 가족들 부양하느라 못펼치고산 자기 꿈을 펼치고 싶을까?  

책을 겨우 30쪽 남짓 읽었을 뿐인데 꼬리를 무는 생각에 계속 읽을 수가 없다. 책을 덮고 신랑을 불러 얘기를 나눴다. 오십 이후에 우리 어떻게 살까? 아이를 몇 명 낳느냐에 따라 몇 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얼추 쉰을 지나 환갑이 되기 전에 아이들은 성년이 될 것이고, 그럼 그 녀석들을 독립시키고 우리는 뭘 하면서 살까? 회사도 거의 다 다녔을테고.. 세계 여행을 하자! 그것도 한두 해지, 다녀와서는 뭐할까? 길면 30년쯤 되는 긴 시간을.. 돈벌고 애키우느라 못한 일을 해야지.. 새로 학교에 들어가 관심있던 공부를 해볼까? 시민운동을 할까..? 흠.. 정말 뭐하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얘기 많이 하자.

이쯤에서 대화를 일단락하고 다시 책을 읽는다.



"구구절절 흔치않은 경험을 하며 인생의 모퉁이마다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고 나니, 소중한 은유를 하나 갖게 되었다. 인생은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이다. 폭우가 오면 흙탕물이 되는 수도 있고 때로는 범람하여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강물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조그만 마을과 나룻터, 갈대숲을 지나가지만, 그곳이 강물의 목적지는 아니다." (34쪽에서)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은유를 가질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오래, 치열하게 살아야할까.
나는 아직 '인생은 무엇'이라는 은유를 할 수가 없다. 미탄님의 은유를 빌리자면 나는 아직도 세차고 좁은 어느 골짜기를 부지런히 달려내려가는 작은 시내쯤 될 것이다. 이제는 도도하게 바다를 향해가는 선배 강물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듣고 화득! 놀라 제가 곧 이를 곳이 어디인지, 지금 이 시절은 어떻게 지나야할지 뒤척거리며 묻는 시내.


"노년에 '파우스트'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완성한 괴테는 76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에 모호하고 대략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다음날 할 일을 정확히 숙고했다. 아침에 시작할 수 있고 가능한 한 시행할 것들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다시 내일이, 영원한 내일이 있다고 믿거나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날들에 게을리 했던 일들을 할당받은 날들에 꼼꼼하게 완수한다." " (112쪽에서)

영원히 내일이 있을 것처럼, 인생의 숙제들을 내일로 내일로 미루기 일쑤인 나에게 괴테의 이 말은 참으로 뜨끔했다. 저자는 중년, 노년에 더 많은 성취, 더 질적으로 우수한 성취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인용했다. 중년이 되면 내 생에 남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에 공허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지금부터 가질 수 있다면...! 
이 책 곳곳에 젊은 나를 일깨우고, 다잡게 하는 구절이 어찌나 많은지... 지금 중년인 사람만이 아니라 언제고, 곧 중년이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참 절실한 지침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는 사람은 찾으면 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곰곰히 뒤져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 모조리 찾아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워 몰두하던 일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잘한다고 칭찬받은 일을 떠올려보라. 아주 작은 일이어도 괜찮다. 어렵게 배우지 않아도 쉽게 익힐 수 있었던 일들도 끄집어내라. 어쩐지 마음이 가는 일도 빼놓지 마라. 자기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을 존중하라. 그렇게 해서 정리된 내용을 직업화할 수 있는 것과 취미로 남겨두어야 할 부분으로 구분한다." (123쪽에서)

바깥 일은 접고 아이만 키우는 전업육아(?)를 하기로 마음 먹은 뒤 가끔 아이를 좀 키워놓고 나면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한다. 하다만 공부가 있지만 과연 그 길이 내 길일까.. 계속 가고 싶은지,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고 새삼 확신이 들지 않기도 한다. 아이가 자라서 제 길을 찾아가는 동안 나도 내 길을 찾아야한다. 걸어온 길은 그리 길지 않으므로, 걸어온 길과 걷는 길 모두를 통해 내 길을 잘 찾을 수 있길...

이미 어른으로서의 삶을 꽤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계획할 때는 자기가 정말 하고픈 일을 찾는 것과 함께 아래 옮겨놓은 것처럼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딸을 시집보낼 때 그럴듯한 '명함'이 아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컨설턴트라면 늙어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은행 실무와 연결이 되는 '벤처 중소기업학' 박사학위에 도전하기로 했다.
 4. 은퇴 후에도 만날 수 있는 친구 10명에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5. 내 생활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결심했다. 설거지, 빨래, 음식 장만 등 집안일과 사소한 가전제품 수리는 직접 하기로 했다.
- 은행원 조성권씨가 46세였던 2001년에 작성한 '앞으로 10년간 행할 10가지 은퇴 준비 리스트'중에서."(128쪽)

딸이 없는 신랑도 십분 공감하며 '그렇지'한다. ^^ 나는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겠다는 이 분의 결심이 참 훌륭해보였다. 나와 신랑도 그런 중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원봉사가 매력 있는 이유는 계속해서 나의 잠재력을 계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국문화원연합회에서 실버 세대를 문화 분야의 도우미로 활용하고 있는 '땡땡땡 실버문화학교'를 보자. '땡땡땡 실버문화학교'는 2005년에 10개 문화원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되어 2007년에 76개 문화원에 개설되었다... 짚풀 만들기나 목공예, 한지 인형처럼 전통적인 영역은 물론 벽화 제작, 젊은 노인의 희망연극 만들기처럼 혁신적인 영역도 있다. '끝없는 음악여행 silver of Rock'이라는 록밴드까지 있다." (143쪽에서)

책은 다양한 중년의 직업전환 사례, 노년의 도전과 아름다운 삶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례도 그중 하나다.
지방에서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후배가 지역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연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땡땡땡 실버문화학교'같은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좋지 않을까.
찾아보면 우리집 가까운 곳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을지 모른다. 똑순이는 친가와 외가가 모두 멀다. 제 조부모님들을 가까이서 자주 뵙고 직접 배울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가까이에서 다정한 어르신들께 공예도 배우고, 따뜻한 정도 나눌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 분들의 손끝에 깊이 체화된 성실한 노동과 삶의 지혜 같은 것들을 자연스레 배우고 차분하고 온화한 마음도 닮게 되지 않을까. 다른 무엇보다 '문화'를 매개로 한 만남이니 그것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노년의 문화인류학'에서 정진웅이 말했듯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곧 자기 형성의 능력이며 동시에 자기 긍정의 능력이다.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을때 우리는 남이 만들어주는 삶의 조건에 맞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뜻에서 문화역량은 주도성이요, 독립된 개인이 갖추어야할 필수 조건이다. 나의 취미와 특기, 재능과 경험을 모조리 뒤져 그중 강력한 것을 한두개 집중적으로 계발할 필요가 있다." (144쪽에서)
  


중년을 맞으며 미탄님 스스로가 설정한 과제들 중 하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이다.
장성한 아이들을 독립시킨 후 다시 단촐해진 삶, 그 삶을 어디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전통사회와 같은 이웃, 마을들은 사라졌고, 가족들도 단촐해진 후의 삶이라...
대안학교에 이어 대안마을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조한혜정 교수의 활동과 고민을 소개한 내용은 내게도 너무나 절실하고 반가운 얘기였다.  

"그녀가 이번에 주목하는 것은 '마을'이다. 그녀가 꿈꾸는 곳은 작은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생기 있는 작은 마을이다. 거대한 백화점과 우뚝 솟은 관 주도적 문화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학교와 문학 까페와 식당과 소극장과 작은 진료소가 있는 타운 센터이다. 노인들이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으며, 수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잘 알기에 함께 있음으로 안전한 마을! 근대적 거대주의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로 들리겠지만, 이미 그런 마을이 실험되고 있다고 한다." ( 213쪽에서)

아! 나도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실은 이 실험의 무대인 마포 성미산 마을은 지금 우리집에서 가까운 편이다. 결혼 전부터 이 마을 얘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공동육아'가 내 문제가 아니던 시절에는 그저 '대단한 사람들이네' 하고 먼산 건너보듯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발등의 문제가 되었다. 아이를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배우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꼭 성미산에서가 아니더라도 나도 내 나름의 마을을 만들며 살아가야 하리라. <늦지 않았다>는 내게는 적어도 정말로 '적실한' 고민들을 다루고 있는 '늦지 않은' 책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창조하는 일은 우리 중년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 한 세상 살아낸 우리는 모두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가 별건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창조하는 사람이지."(234쪽에서)

"한 세상 살아낸 우리는 모두 아티스트"란 말의 울림이 넘 좋아서 이 페이퍼의 제목으로 할까.. 여러번 망설였다. ^^
나는 정말 우리 엄마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음식을 만들고 뜨게질로 우리들의 옷을 만들때 엄마에게서는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엄마가 담그는 김치, 엄마가 만드는 식혜, 약밥, 찰밥, 각종 나물과 묵과 탕과 밑반찬들.. 그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다 내가 배울 수 있을까.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나도 엄마같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늦지 않았다>는 미탄님 개인의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고도 볼 수 있다.
중년이란 어떤 나이인지, 중년의 긍정성과 강점을 확인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찾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해
중년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자세들(끊임없이 배울 것, 자신을 표현할 도구를 가질 것, 커뮤니티를 구성할 것)을 찾아낸다.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고찰도 있고, 오늘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과 구체적인 사례들도 풍부하다.
글에서 인용하거나 소개한 책들중에는 '아, 나도 꼭 읽어야겠다'싶은 책도 많다. 
2년 가까이 그 모든 책과 사례들을 수고스럽게 읽고 정리한 성과를 나는 너무 쉽게 앉아서 얻는 것이 조금은 미안할 정도다.    
진정 '늦지 않기'위해 지금 아기가 잠든 이 밤에 내가 해야할 일들, 그것을 실행할 결심, 용기 같은 것들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일깨워준 미탄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저술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에게 선물한 그녀는 앞으로 아마 더욱더 자기 책에 적합한 사례가 되어 갈 것이다. 
미탄님의 에필로그 한 꼭지와 이 책을 통해 얻게된 '읽고싶은 책' 리스트를 덧붙여 놓는다.     



"인생이 참 길어졌습니다. 별별 시행착오를 다 겪었는데도 아직도 고쳐 살아볼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그런데 이 길어진 시간에 할 일이 없다면 그것 또한 고역이겠다 싶습니다... 이 금싸라기같은 시간을 나는 아주 실험적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하는 공동거주에 대한 실험,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 하는 '호모 루덴스'로서의 탐구,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 즉 50대에 전문가가 되기 위한 도전 같은 것들입니다... 나는 좋은 삶이란 끊임없이 창조하고 성장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라고 해서 반드시 대단할 것도 없고, 반찬 한 가지를 다르게 해보는 마음, 조금 다른 스타일에 대한 시도, 안 가본 길로 가보는 탐구심 같은 것도 다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을 더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활기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번져나가 세상을 완성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 이것이 나의 꿈입니다." (저자 에필로그 중에서)



* 읽고싶은 책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
알렌 B. 치넨의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셰릴 자비스의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대니얼 레빈슨의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Posted by 연신내새댁
책/새댁 책2008. 11. 14. 09:50

새댁네 아파트 물탱크 청소관계로 오늘 하루(오전8시부터 오후5시까지) 단수가 진행됩니다.
상반기, 하반기 한번씩 있는 일이라
어제 안내방송 듣고는 '낼 아침에 일어나서 욕조에 물을 좀 받아둬야겠구나' 생각했지요.

오늘 아침 6시부터 일어나 뒹굴뒹굴 낑낑 거리는 똑순이와 잠시 놀다가
'아 물 나올때 똑순이 빨래를 좀 돌려야겠다' 생각하고는
방수요와 천기저귀들, 옷과 손수건 등을 세탁기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는데
물은 안나오고 끼이 끼이~ 이상한 소리만 나는 거예요.

응? 이게 뭔일이래?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봤는데 앗! 여기도 물이 안나옵니다. 샤워기도..
당황스럽습니다. '벌써 물이 끊겼나? 8시부턴데??'

생각해보니 이 시간쯤 이집저집에서 다들 물을 받아두려고 많이 틀어서
안그래도 수압이 약한 꼭대기 바로 아래층 새댁네 집에는 잠시 물이 안나오는게 아닐까 싶더군요.
이 일을 어쩌나.. 신랑은 씻고 출근도 해야하고
쌀씻어 밥도 지어야하는데요..ㅠㅠ

일단 세탁기 취소버튼을 누르고, 신랑 세숫물이라도 받아야겠다 싶어 샤워기를 트니
그래도 다행이 물이 '졸졸졸' 아주 조금씩은 나왔습니다.
똑순이 욕조에 그 물을 받는데 잠시 지나니 '크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좀 세게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물 색깔이 누르스름한 것입니다.ㅠㅠ 이건 또 무슨 일인지....
결국 그 물은 버리고 다시 받으니 이제 색깔없는 '정상물'이 나옵니다.

휴~~ 물 떨어지기 전에 할 일이 많습니다.
얼른 쌀씻어 밥안치고, 하루동안 마실 물 받아놓고, 가습기에도 물 채워넣고..
신랑깨워 씻게 하고.. 새댁도 얼른 씻었습니다. 

사실 평소엔 하루쯤 세수 안해도 잘만 지내던 새댁인데
(똑순이랑 둘이만 얼굴 마주보고 있는 날은 뭐~ 똑순이는 세수안한 엄마얼굴도 전혀 개의치않고 좋아라 웃어줍니다~~^^;;)
물이 안나온다 생각하니 
갑자기 얼굴이랑 몸이 막 근질근질한 거예요.. 깨운하게 샤워까지 해버렸습니다^^ 

예전에 학교 화장실 개수대 위에 '2010년 물부족국가! 한방울씩만 아껴도 하루 10t의 물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던게 생각납니다. 
2010년이면 낼모레쟎아요..ㅠㅠ
그 사이에 사람들이 특별히 물을 아껴쓰진 않았을것 같고... 정말 물이 부족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당장이야 큰 불편 모르고 지낼 수 있겠지만
우리 똑순이가 자랐을때 이 세상은 어떨까요..
물부족,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나랑 먼것같은 얘기들이 이제는 조금씩 실감나고 있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때는 정말로 지옥같은 현실로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무섭고 지금 여기서 뭘 해야하는걸까.. 고민도 됩니다.
환경운동에 동참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녹색'을 살리는 정치가 펼쳐지게 감시하고, 요구해야할 것도 같고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단수일'입니다.

물이 안나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목이 바짝 마르는 느낌입니다. 
다행히 오늘 마실 물은 준비해뒀는데, 아침에 씻고 식사 준비하느라 분주해 그만 '손씻을물'을 따로 받아두지 못했네요..
어쩌나.. 똑순이도 있어 집에서 자주 손씻는 편인데.. 물티슈로 하루 연명해얄듯합니다.
간편하게 휙휙 뽑아쓰는 이 물티슈도 실은 참 그렇습니다.. 똑순이 종이기저귀도 그렇구요.
잘 썩지도 않는 이 쓰레기들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내다니... 
지구와 아이가 같이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어찌해야하는지-
천기저귀쓰고.. 물에 잘 분해되는 재활용빨래비누로 빨고 하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에서 환경을 지키는 작은 실천은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실천해봐야할 것 같은데
새댁, 엄두를 잘 못내고 있습니다ㅠ 

예전에 참 짠하게 읽었던 환경관련된 좋은 책들 생각나 제 블로그 놀러오시는 분들께 권해봅니다.
보시고 새댁에게도 좋은 얘기 많이 해주세요..
새댁도 오늘 하루는 그 책들 다시 한번 뒤적거리며
'똑순아, 우리 어떻게 살아야할까'하고 똑순이 앉혀놓고 얘기 좀 해봐야겠습니다. 

*

김곰치 르포 산문집, <발바닥 내 발바닥>, 녹색평론사



소설가로 등단한 김곰치 씨의 언어에는 정말 살아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같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 곁에 찾아가 서는 뜨거운 발바닥의 온기가 느껴지는 글들입니다.   


최성각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 녹색평론사


 
앗. 이분도 소설가시군요. 저와 동향이시라 괜시리 더 애틋해하며 읽었던. ^^
환경단체 '풀꽃세상'에서 해마다 수상하는 '풀꽃상' 이야기와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로, 한국경찰에서 행려병자로 오해(?)받아 6년간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던 찬드라 구마리 구릉 씨(이 분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이 '내 이름은 찬드라'란 영화로 만들기도 했지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여섯개의시선' 1편 중)에게 사과하기위해 네팔을 찾아다녀온 여정이 가슴 뭉클했습니다.


요시니 타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들녘



아바나! 참 가보고싶은 도시입니다. 
쿠바여행.. 새댁 평생에 한번은 가능하려나요? ^^
도시농업(건물 옥상이나 주택 마당, 거리 화단 등에서 농사를 짓는 거예요!^^)을 통해 220만명이 넘는 아바나 시민들이 야채를 자급자족하고 있다는 것과
자전거가 도시의 주 교통수단이며, 버스와 전철은 자전거를 충분히 보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다는 내용이 넘 놀라웠던 책.
미국의 경제봉쇄가 또다른 의미에서 아바나를 진정한 '대안세계'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도시, 혹은 한 나라 차원에서 어떻게 '생태적인 삶으로의 변화'가 가능할까... 궁금했는데 어렴풋한 윤곽은 그려볼 수 있게 해줬어요.
우리 사회도 환경위기에 대한 절박함이 좀 더 공유되고, 제대로된 대안들이 정책으로 추진된다면...
그린벨트도 없어지고, 대운하도 뚫고파하는 시대에 영 가당치않은 얘기인듯 하지만요..ㅠㅠ 
나온지는 좀 오래된 책입니다. 그 사이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겠지요. 새댁에게도 좀 알려주세요~


*

앗! 
마침 토댁님네에서 재미있는 '책 세권 제목으로 한 문장만들기' 릴레이가 진행되고 있네요~^^
새댁이 소개한 책도 마침 세 권이라~~ 언능 동참해봅니다. 

"달려라! 냇물아~
발바닥 내 발바닥 도 함께 달려라~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을 보러가자~~~^^"

이 가을, 새댁도 똑순이 놀고 자는 짬짬이 좋은 책들을 손에 많이 펼쳐봐야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