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새댁 책2016. 4. 29. 10:26
인간의 굴레에서 1 - 10점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민음사


<인간의 굴레에서> (서머싯 몸, 민음사)를 읽었다. 
'냇물아 흘러흘러' 북까페에서 열리는 '인문학 읽고쓰기' 모임에서 함께 읽었는데, 모임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두꺼운 책을 한달이라는 시간 안에 꾸준히, 꼼꼼히 읽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만에 읽는 고전문학은 재미있었다. 한동안 고전문학, 장편소설을 읽지 못했던 터라 처음에는 글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번역문체, 대화, 인물과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 하지만 무엇보다 긴장되었던 것은 인간의 성장을 다루는 소설이 당연하게도 물고들어오는 '나'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의 유년시절, 나의 청년기, 나의 탐색, 나의 열정, 나의 중산계급적 기질, 나의 실수, 나의 타협, 나의 곤란.. 읽는 것은 '필립 케어리'라는 청년의 성장 이야기인데 드는 생각은 나에 대한 것이어서 자주 뜨끔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마음을 휘젓고 다니는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이 활자로 인쇄된 것을 읽는 것은 분명 큰 쾌감이었다.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간사의 구석구석을 풍부하게 이야기해주는 소설의 힘이 좋았다.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의 삶을 이렇게 한 편의 이야기로 정리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좀 덜 부끄러움을 타게 되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할 수있는 때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글로 쓸 수 있을까. 

무슨 기록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럴만큼 의미있는 삶이었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굴레에서>와 같이 '누구의 삶이나 아름다운 무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자신이 삶으로 만들어온 양탄자의 큰 그림 전체를 조금 떨어져서, 천천히 응시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스럽지만 삶의 큰 행운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힘이 내게 있을까.

 

서머싯 몸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읽는 동안 마음 아프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의학도로, 의사로 지내며 만난 많은 아픈(보통) 사람들, 그들이 처한 어려운 형편과 사회 상황에 대해 찬찬히 묘사하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특출하고 뛰어난 수준의 인간이 아니라 그 자신 중간계급, 중산층이고 평범한 인간의 행복에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필립)의 시각에서 주변을, 혹은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함께 어울리며, 저마다의 고통으로 힘겨운 인간 모두를 '그래도 괜찮다'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 다같이 생의 굴레 안에서 힘겹게 노력하는 '인간' 임을 인정해주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서머싯 몸이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주의'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업혁명 이후 확립된 자본주의 사회의 비참은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해답은 각자가 삶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사는 것' 이상을 내어놓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애정, 고통과 비참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 보통 대중의 정서로 남아있어 영국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무상의료에 가까운 '국가의료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작은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젊음은 끝나고 낭만은 접힌다. 

'인생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강렬한 기대감은 '내 삶은 여기, 이 사람 곁에서'라는 현실적인 선택 아래,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는 쓰디쓴 깨달음 속에 접어진다.

이제 우리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생존이, 가장의 책임이, 어린 자식들을 안전하게 지켜내기위해 눈을 부릅떠야하는 현실이 남았다. '진정 원하는 것'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을 나날이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꿈꾼다. 낭만이,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에서 찾고, 살려지고, 지켜지면 좋겠다고. 삶은 그럴 수 있다.  


1900년대 초반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미세먼지, 방사능 같은 2000년대의 우리를 덮쳐오는 큰 문제들을 자주 생각했다.  

쳇바퀴를 멈출 방법은 찾지못한채 빠르게 굴러가는 쳇바퀴속에 몸을 담그고 저마다 당면한 오늘의 문제들에 골몰해 있는 2000년대의 우리들은 세계대전의 포화 앞으로 향해가던 1900년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대중은 바람에 부유하는 물결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은 것에 힘입어, 문득 하게도 되었다.  


밀드레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어쩌면 필립에게 '어머니' 아니었을까. 잃어버린, 사라진 그리운 존재. 아름답고 창백한 존재.

그와 전혀 다른, 건강하고 든든한, 소박하고 실제적인 여성과 가정을 꾸리는 결말은 어쩌면 잃어버린 세계에 작별을 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정신적 허기를 현실에서 극복하더라도, 가끔씩 망상처럼 뜨끔하게 상실의 고통, 불완전하게 남아있는 추운 유년(청년)의 결핍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선함, 아름다움. 

서머셋 몸이 '필립'을 통해 보여준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이 두 가지 가치를 몸의 감각으로, 정신의 감동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살아갈 힘을 준다. 나도 동의한다. 물음을 가지면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같다. 나는 어떤 물음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내 질문은 뭘까? 궁금하다. 다음 책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인간의 굴레에서>의 여운을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음미하고 싶기도 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