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주이야기/연수 '에 해당되는 글 25건
- 2018.04.11 연수 그림들
- 2017.01.25 방학숙제 6
- 2014.04.14 앗 실수
- 2014.03.22 무섭게 말해야
- 2013.11.18 딸 같은 아들 6
- 2013.04.26 여섯살, 다 아는 나이 2
- 2013.02.26 일기 대필
- 2012.12.27 핫도그를 만드는 방법 5
- 2012.11.05 돈까스 소스 이야기 4
- 2012.09.03 요즘 연수가 6
새해들어 열살이 된 연수.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신나게 '놀고' 있다.
하루 종일 논다.
쉬지않고 논다.
동생들과 방방 뛰면서도 놀고, 티비 만화에도 한두시간 쏙 빠져서 보고, 레고랑 보드게임하면서 놀고..
나름의 방학숙제로 '만화책 한권 그리기'를 정했던데 몇페이지 그리다 말고,
일기는 아직 한편도 안썼고,
권장도서만 몇권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었다.
그러다가 어제 내 잔소리를 듣고
A4 한장으로 나온
'체험학습 보고서'를 겨우 썼다.
참 짧게도 쓴다.
맞춤법도 틀리고ㅠ
그래도 한 구절이 쓰린 엄마 속을 토닥여주었다.
"비올때 빗소리를 듯고"
문학적 감수성이 있어서라기 보단
'무엇을 보고 듣고 체험했나요?' 하는 질문에 지극히 충실하게
들은 것을 떠올려 답하려다보니
빗소리 들은 것이 기억에 남아서 쓴게 틀림없는 열살 사내아이.
요즘 나는 '아이 잘 키우는 법' 같은 것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어설프고 대중없고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저 즐겁게 웃으며 이 순간들을 보내주는 것만도 고맙다.. 생각하기도 하고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헤메는 엄마이기는 둘째, 셋째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첫 아이를 보면서는 더 아리송해져 버린다.
이제 열살.
아직 열살.. 벌써 열살.
십년치 사랑이나 뜨뜻한 국에 말아 잘 먹여주며 살아야지...
오늘도 고마웠다, 연수야.
오늘 연수 친구 소정이네가 놀러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갔다.
소정이는 연수 네 살때부터 단짝 여자친구인데 요녀석이 나이보다 늘 조금 더 성숙하다.
연수 장난감중에 뭐 하나가 아주 재밌었는지 들고와서 나에게 귀속말로 물었다.
"이거 빌려가도 돼요?"
나도 작게 대답했다.
"연수한테 물어보렴"
다시 귀속말.
"이거 빌려가도 되냐고요~?"
다시 속삭임.
"연수한테 물어봐~"
오랫만에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함께 저녁을 먹으니 연수도 신나서 잘 먹고
연호랑 연제도 덩달아 신나서 잘 어울려다니며 먹고 놀고
나도 아빠가 늦어 혼자 힘들뻔했던 저녁이 오히려 유쾌하게 잘 마무리되었다.
소정이는 연수가 빌려준 장난감을 들고 흐뭇하게 돌아갔고, 연호와 동갑인 소정이 여동생과 소정이 엄마도 잘 놀고 잘 먹고 간다며 웃으며 인사하고 갔다.
아이들 재워놓고 집치우는데 아차 싶었다.
대답을 잘못 했네..
"그럼~ 빌려가도 되지. 그래도 연수 장난감이니까 연수한테 한번 더 물어봐줄래?"
했어야 하는데.
아무리 요녀석이 그전에 연수 장난감을 빌려갔다가 한번 잃어버린 전적(?)이 있다해도,
아무리 고 장난감이 연수가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간절히 기대하는 어린 마음에게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소정아...
"그럼~" 하고 대답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그럼, 되고말고~
그럼, 되고말고~
어린 마음들을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1. 무섭게 말해야
한동안 연수가 연호에게 무섭게 윽박지르며 말을 할 때가 있었다.
아직 어린 동생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같이 놀다가 답답할 때도 있고,
또 제가 시키는데로 하지 않아서 화 날 때도 있겠지..
그래도 지난 겨울 어느 맘때는 너무 심하다 싶게 거칠고 화난 말투에 '안그러면 나한테 맞는다'같은 협박과 위협의 말들이 자주 이어졌다.
걱정이 되었다.
'연수야, 연호한테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하니? 연호가 너무 무서워 하쟎아... 무서워서 네가 하자는 것도 잘 안하고, 형이랑 같이 놀기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
연수가 말했다.
'무섭게 말해야 말을 잘 듣는거 아냐?'
나는 놀랐다.
'아니야... 무섭게 말하면 듣는 사람이 겁이 나고, 무섭게 말하는 그 사람이 싫어지기도 해.. 그러면 같이 놀고싶지 않지.. 다정하게 말해주고, 잘 알려주면 그 사람이 더 좋아져서 말도 잘 듣고 함께 잘 놀 수 있어.. 너도 엄마가 너한테 무섭게만 말하면 좋겠어?'
'아니.'
'그래, 연호도 네가 좀 답답하더라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다정하게 말해주면 훨씬 잘 알아듣고, 너한테 배워서 같이 잘 놀 수 있게 될거야. 또 우리 형아 참 좋다 할거고.'
'알았어' 하고 대답하는 연수에게 몇가지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참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다.
참은 말은 '자꾸 무섭게 말하면 말하는 사람 얼굴도 그렇게 무서운 얼굴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었고,
못한 말은 '엄마가 너희들에게 자꾸 무섭게 말해서 미안해' 였다.
어른이 아이에게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내며 무섭게 말하면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똑같은 얼굴로 똑같이 말한다.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른이 섬뜩해질 때가 있다.
아이들의 세상을 어른들의 축소판같이 만들면 안된다.
어른들끼리는 오히려 조심하고 예의를 차리면서 아이들에게는 유독 쉽게 화를 내고 못되게, 무섭게 굴기도 한다.
아이들이 약자여서 그럴 것이다.
말을 잘 듣게 하겠다고 수시로 협박하고 위협하고 화를 내고 거칠게 대하고 공포를 조장한다.
누가 내게 그렇게 대한다면 너무 끔찍할만한 일을 어린 아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어른도 힘들어서 그렇다, 아이들하고 지내는게 얼마나 힘든데... 하고 항변하고 싶지만
어른이 아직 진짜로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어른답게, 자기를 돌아보고, 추스르고, 감정을 조절하고
포용. 존중. 이해. 배려. 공감. 기다림 그리고 웃음 같은 고귀한 능력들을 멋있게 사용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어른에게 이런 것을 일깨워주려고 온 것이 분명하다.
성숙한 사람이 될 기회를 주려고..
진심으로 행복한 시절을 저희들과 함께 살아보게 해주려고.
2. 첫 문장
여섯살쯤부터 연수가 글자에 흥미를 보였다.
어린이집 신발장에 붙어있는 제 이름자를 익힌 뒤에는 신나게 아무데나 제 이름 쓰기를 좋아했다.
학습지나 한글공부를 따로 하진 않았다.
하고싶은만큼, 관심가는만큼 자연스럽게 배우고 즐겁게 알아가면 좋을 것 같았다.
때때로 연수가 물어보면 집에 있는 한글판의 'ㄱ ㄴ ㄷ ㄹ'과 'ㅏ ㅑ ㅓ ㅕ' 를 읽어주고 냉장고 자석으로 자음모음을 붙여 간단한 단어를 같이 만들어 보곤 했다.
김연수, 김연호, 김연제, 엄마, 아빠.. 정도가 연수가 자주 쓰는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일곱살이 된 3월 어느날,
연수가 처음으로 문장을 썼다.
'연수 는 엄마 를 사랑해 요'
눈물이 날 뻔 했다.
아이가 생애 최초로 쓴 문장이 엄마인 내게 보내주는 사랑의 고백이라니...
너무 고맙고 좋아서 아이를 보고 함빡 웃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글을
저 혼자 좋아서
엄마가 보던 한살림 소식지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엎드려서 쓴 글씨.
엄마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어서
소중한 제 마음을
즐겁게, 신나게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준 아이.
고맙다, 연수야.
언제나 그렇게 행복하게 써나가렴.
너의 마음. 너의 이야기를.
오늘은 다같이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들이 차에서 잠이 들어서
동생들도 좀 더 재울겸, 따뜻한 봄날에 산책도 할겸
미사리 조정경기장에 차를 세우고
연수랑 엄마랑 둘이서만 잔디밭과 운동장을 걷고 뛰며 한참 놀았다.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썼다 지우며 놀다가
연수가 내 이름에 화살표를 긋고 '사랑해요 엄마'라고 쓴 것을 보고
나도 답으로 '김연수씨 사랑해요 나의 첫번째 아들'이라고 썼다. ('첫번째 아들'이란 문구는 연수가 정했다^^)
연수랑 그렇게 둘이서 놀고 있자니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
우리 둘이 종일 같이 놀던 연수 아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연수랑 둘이만 보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늘 생각만 해오다가
연제 낳고 일년만에 거의 처음으로 이런 시간이 생겼다.
오늘 저녁 연수에게서는 언뜻언뜻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 느껴졌다.
1. 딸 같은 아들
일전에 사촌여동생이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일이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딸 욕심 좀 나겠어요?'
'글쎄.. 예전에는 딸을 꼭 낳고 싶었고 딸이 없어서 아쉽단 생각도 많이 했지..
근데 이제는 괜찮아.
딸은 자라서도 엄마랑 다정하게 얘기도 많이 나누고 같이 오손도손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해서 좋다고들 하잖아.
엄마 마음도 잘 이해하고..
그러니 아들을 좀 그렇게 키워보지 뭐...
아들들이 워낙 크면 무뚝뚝해진다고는 하지만 안그런 아들도 간혹 있겠지.
난 아들이 셋이나 되니(ㅜㅜ) 그중에 한 명 정도는 딸같은 아들도 생기지 않을까? ^^;;;'
'맞아요, 언니. 꼭 있을거예요.ㅎㅎ'
그런데 엄마와 이모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연수가 얼른 끼어들었다.
"나! 나! 내가 딸같은 아들이잖아! 내가 그런 아들이 될꺼야~! "
'으... 으응~? 그..래... 우리 연수가 그렇지... 지금도 엄마랑 얘기도 많이 하고...^^;;'
ㅎㅎㅎ
내심 지금도 꼭 딸같이 성격이 다정한 연호나 고물고물한 갓난아기인 연제에게 기대를 걸고 한 말인데...
그런데 '친구같은 아들 여기 있는데 엄마는 어디서 찾고 있는거야?'하는 눈빛을 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연수의 얘기를 듣고보니 순간 미안했다.
걸핏하면 짖궂고 얄밉고 극성맞은 장난으로 엄마를 화나게 하는 못 말리는 개구장이.
또래 엄마들끼리 마주 앉으면 '아, 정말 내 스타일 아닌데~~'를 연발하게 만드는 여섯살 사내아이.
하지만 어느새 많이 자라 엄마를 도와주고 힘든 엄마를 위로해주기도 하는 우리 큰아들.
네 얘기에 웃고 네가 보여주는 빛나는 성장의 모습들에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순간도 정말 많은데
그만 엄마가 그런 것들을 생각 못했네..
태어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너는 줄곧 엄마 곁에서, 엄마의 제일 좋은 친구인데
엄마가 깜빡 잊고 있었네.
먼훗날에 친구돼주길 기다리지 말고 지금 네가 내 곁에 있을때 오손도손 아웅다웅 다정한 친구로 지내야지..
어느새 많이 큰 네 에너지를 받아주는게 힘에 부친다고,
여섯살 네 행동이 엄마 마음에 안 든다고,
동생들 돌보느라 바쁘고 힘들다고,
지금은 '엄마, 나랑도 놀아 줘~' 매달리는 너를 버거워하고 '그래, 놀자, 응응' 건성으로 대꾸할 때가 많았구나..ㅜ
미안하다, 연수야.
너와 나누는 이야기, 밝게 웃는 네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고맙다.
지금까지 딸같은 아들로 자라줘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
^^
2. 잘 안 되면
예전에 친정에서 받아온 늙은 호박을 어제서야 잡았다.
오늘 아침에 노란 속살을 칼로 썰어 삶고, 밤부터 불려놓은 찹쌀을 갈아 넣어 호박죽을 끓였다.
엄마의 요리에 늘 관심이 많은 연수가 옆에 와서 물었다.
"엄마, 호박죽 할 줄 알아? 이렇게 하는거 맞아?"
'...아마 맞을껄?'
"전에 해봤어?"
잘 생각이 안난다. 예전에 해 봤던가..?
'잘 모르겠네.. 근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호박 삶고, 쌀 넣고..'
"잘 안되면 어떡해?"
'글쎄...'
걱정이 되었다.
진짜 이렇게 하는게 아니면 어쩌지? 이상하게 되는거 아냐.. 불안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순간,
연수가 씩씩하게 말했다.
"다시 또 해보면 되지!"
^^
여섯살, 멋지구나.
그래, 이번에 잘 안되면 다음번에 다시 또 해보면 되지.
그때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거야, 이번에 해보면서 배운 것이 있을테니까..
아마도 '엄마, 나 이거 만들어줘, 저것 좀 그려줘~'하고 연수가 조를때마다
'니가 해봐, 엄마 지금 동생보느라 바빠..'하면
'난 잘 못한단 말이야, 잘 안돼~, 엄마가 해 줘~~!'하고 찡찡거리는 연수에게 내가 '자꾸 해보면 돼, 그럼 잘 할 수 있게 될꺼야'하고 말하며 연수의 청을 못 들어준 것이
세뇌되다시피 한 결과(ㅜㅜ)로 짐작되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 네게 그 말을 듣던 순간의 엄마 기분은 무척 시원+상쾌했다.
고맙다, 연수야 :)
+ 오늘 호박죽은 너무 연하게 되었다. 담엔 호박을 더 많이 넣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음..^^
그래도 수호제 모두 잘 먹어주어 다행. 흐뭇~
(자자~, 셋중에 누가 딸같은 아들이 될까? 엄마의 귀염둥이들, 저요! 저요! 해보세요~ㅎㅎ)
(엄마, 꿈이 너무 큰 거 아냐~~ 우린 그냥 아들들일 뿐이라구~!! -.,-)
혼자 아이들 재우는 저녁이면 늘 참 정신없다.
누워서 연제 젖물린 채로 연호 그림책 읽어주다가 연수 옛날이야기도 들려주다가
한 녀석이 물 찾으면 얼른 일어나 부엌에서 물 가져다주고, 어느 녀석이 또 어디가 아프다고 울어대면 거기 들여다보고 문질러주고 약발라주고, 그러다 또 갓난쟁이 젖주고..
며칠전, 연제 재우고 뒤이어 졸려서 엄마 찌찌 찾는 연호에게 연제 다 먹고난 빈젖 물려서 겨우 어린 두 녀석을 재워놓고 나니
그제야 한숨이 쉬어지면서 그동안 저만치에서 혼자 뒹굴뒹굴 뒤척거리고 있는 연수가 보였다.
연수 곁에 가서 "연수야, 잘 자라.. 좋은 꿈 꾸고... 내일도 재미있게 잘 지내자.." 얘기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느새 쑥 커서 엄마가 동생들 돌보느라 종종거릴때 저도 봐달라고 보채지않고 혼자 조용히 기다릴 줄도 알게된 첫째..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에 연수에게 팔베게라도 해주려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 팔을 뻗는데
'으앙~'하면서 연제가 다시 깼다.
에고... 몸보다 마음이 더 고단해지는 그 순간
연수가 하던 말.
"에구.. 엄마는 정말 쉴 틈이 없구나.."
그걸.. 아는거야? 여섯살, 우리 아들. 벌써 그걸 알 나이가 된거야..?
연수가 연제만큼 작은 아기였던 시절을 기억한다.
연호만큼 커서 걷고 뛰고 깔깔깔 웃던 날들도..
그렇게 작디작던 내 첫아기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잠든 연수 바라보면서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순간 더없이 철든 것같은 멘트를 날려 엄마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던 우리 큰형아도
여전히 쪼그맣고 아직도 크려면 멀고 멀었다는 사실을 새록새록 확인시켜준다.
얼굴에 '개구쟁이' 이렇게 써있는 여섯살 김연수.
유치원형아들에게 배운 '바보 똥개 멍청이'같은 말들이 재밌어서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엄마아빠동생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써보지 못해 안달이고
요리조리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 장난을 치면 엄마 반응이 어떨까?' 시험해보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듯
얄미운 장난이 끝이 없다.
만화에서 보고들은 버릇없는 표현들을 엄마아빠할머니께 연발하고, 조금만 제 맘에 안들면 버럭버럭 소리지르며 얼마나 불같이 펄펄 뛰는지...
천방지축 야단스럽게 커가는 남자아이 보고있기가 참 쉽지 않다.
며칠전에는 기어코 엄마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깊어지다 못해 이대로두면 안되겠다 싶어 처음으로 회초리를 들었다.
가느다란 회초리로 종아리를 딱 두대 맞고 나서 연수는 엉엉 울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형아들이 쓰는 욕을 배워하는 연수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받는다, 네 마음도 미워지고 듣는 사람도 마음이 아파서 잘 지낼 수가 없게되니 쓰지 말아라'하고 얘기했는데도 저는 재미삼아, 또 뭔가 속이 상할 때 엄마와 동생에게 거칠게 그 욕을 쓰며 화를 내기에 그대로두면 어른들 앞에서도 큰 실수 하겠다 싶어 강하게 안된다고 알려주려다보니 회초리를 들게 되었다.
한참을 서럽게 울고난 뒤로 연수는 그 말은 다시는 쓰지 않았다.
엄마가 혼냈던 그 표현만큼은 잊어먹은 것처럼 연수 입에서 사라졌다. 정말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회초리 자체가 연수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고, 어린 마음이 무섭고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한 결과 회초리를 불러온 그 말 자체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회초리를 들고나서 나도 마음이 무척 아프고 무거웠다. 다른 방법으로 따끔하고 엄하게, 분명하게 인지시켜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매에, 폭력에 기대고만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연수가 그 뒤로 저 혼자 1인2역을 하며 '너, 김연수, 네가 잘못했으니 너는 맞아야해!'하고 말하며 저를 회초리로 때리는 시늉을 하는 모습도 보고, 연호에게도 '너 한번만 더 잘못하면 형아한테 맞는다~'하고 엄포놓는 것을 보며 그 일이 연수 마음에 남긴 큰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저녁먹다가 그 얘기가 다시 나왔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께서 '엄마가 연수 잘 되라고, 잘 크라고 그때 연수 때린거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연수는 혼잣말하듯이 뭐라 궁시렁거리며 제 방으로 갔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연수가 한 말은 '그래도 말로 해야지..'. --;;;
여섯살은 이제 다 아는 나이인갑다.
엄마가 잠시도 쉴 틈없이 힘들다는 것도, 때리지말고 말로 가르쳐야한다는 것도, 갓난아기 동생이 큰형아가 곁에 오면 편안해한다는 것도...
연제는 연수 목소리가 들리면 웃으면서 큰형아를 찾는다. 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작은 형아는 아직 어려서 제 곁에 오면 어른들도 혹시 아기를 잘못 건들까봐 불안해하고 또 실제로 위험하게 찔러보고 깨무는 때도 있어서 연제도 그 기척을 아는지 작은 형아가 곁에 오면 금새 울음이 터지고만다.
그 얘기를 연수가 했다. "엄마, 연제는 큰형아가 좋은가봐.. 큰형아는 아프게 안 하니까 큰형아가 옆에 오면 울지않고 가만히 있나봐~"
그걸 아는구나.... 나는 또 연수한테 놀랐다.
많은 감정을, 많은 느낌을 이해하고 알아가고 있는 여섯살 연수야..
너를 품어주고 네 마음에 고운 날개를 달아주려면
엄마도 더 크고 넓고 따뜻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소리지르고 놀 때보면 거칠고 개구진 독불장군이지만
네 마음속에는 여리고 곱고 보드라운 구석들도 참 많다는걸 엄마는 알지...
오늘밤, 창 밖은 깜깜해서 무섭다며 엄마 곁으로, 잠든 연제 곁으로 다가와서 연제 작은 손을 한참 어루만지고 엄마 팔끝을 베고 잠든 연수야.
고맙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얘야.
그리고는 꼭 날짜와 설명을 써달라고 한다.
'얼굴도 있고, 연기도 나고, 기관차와 객차의 연결부분에 동그란 것도 달린' 그런 기차라고 설명하면서 써달라고 한 것인데 내가 미처 자세히는 못 받아적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해도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연수.
제 마음에 있는 생각과 풍경들을 너무 어려워말고 그저 쉽고 편하게 슥슥 그려낼 수만 있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이란 꼭 잘 그려야 맛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내 마음을 내가 표현할 수 있어서 내 맘이 시원하고 행복하면 그게 제일 좋은 거니까..
그림그리는 것,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기를..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어느 때고 종이와 연필이 있으면 그 순간에 마음에 남는 감동이든, 슬픔이든 꽉 막아두지 말고 조금씩 풀어내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어서 그려준 연호 그림에도 똑같이 쓰고 사진도 한장씩 찍어두었더랬다.
연수의 그림이 이정도 형태를 띄게 된 것도 워낙 최근의 일이라 나로서는 참 대견하고 뭉클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떄부터도 사물의 형태도 잘 잡아내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연수의 그림은 다섯살까지도 늘 미로찾기 같은 선의 나열이나 여러 색을 이것저것 마구 칠해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
그걸보고 뭐라 하진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싶은만큼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담아내는 그림 같은 것은 더더욱.
그리는 일과 색깔에 담긴 풍성한 느낌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어린시절에는 제일로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어른이 옆에서 자꾸 뭐라고 하고, 나무라거나 가르치면 오히려 그림이 부담스러워지고 싫어질까봐 한마디 하고싶은 것도 꾹 참는다. (에고~~ 참는게 젤로 힘들다.ㅠ)
앞으로 연수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어떤 일기를 쓸까... 궁금하다. ^^
글을 배우기 전까지는 아마 엄마의 대필은 계속 되겠지? ㅎㅎㅎ
오늘은 유치원에서 조정경기장 숲으로 산책을 다녀왔단다.
연수는 첫날인 어제부터 산책을 기다렸다. 월요일은 마당에서 놀고 산책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간다는 얘기에 조금 섭섭해했었다.
오늘 산책다녀오는 길에 작년에 엄마와 함께 봤던 머루 열매가 있나 찾아봤는데 없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멀지않은 작은 골목길의 담벼락에 붙어있던 마른 덩굴과 거기 달려있던 작고 까만 열매들을 보고 연수는 '머루열매 아닐까?' 했었다.
그 담벼락에서 까만 열매를 하나씩 따서 내게 주며 '엄마, 나 엄마랑 집에 가고 싶어'하던 다섯살 연수가 생각나서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그때 어린 연호를 아기띠해서 안고 눈물을 참으며 '그래도 유치원 가야지'하고 달래보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그때 연수를 데리고 그냥 집에 있자 하고 돌아오면서 사실 내 마음은 편하고 좋았다.
내 첫 아기. 품에서 떼어놓기가 참 어려웠던, 지금도 제일로 오래 마음에 품고 또 품게되는 나의 큰 아이.
연수가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모른다.
"엄마, 근데 산책가는 그 풀밭에는 새싹이 났더라. 오늘 새싹을 찾아서 봤어."
"정말? 벌써 새싹이 났어? 우와~~ 정말 예쁘겠다. 엄마도 보고싶다.."
"응. 정말 예쁘더라. 좀있으면 우리 아파트 풀밭에도 날껄? 엄마도 볼 수 있을거야."
"그래.. 맞아. 곧 볼 수 있을거야. 이제 봄이니까.."
.. 오늘 유치원 하교길에는 연수와 이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대신 써놓는 일기.
^^
1. 핫도그를 만드는 방법
휴일 한낮 네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따끈하게 데운 핫도그를 냠냠하고 있었다.
신나게 먹던 연수가 갑자기 소리쳤다.
연수: 아! 알았다! 핫도그를 어떻게 만드는지~!
엄마: 어떻게 만드는데? ^^
연수: 일! 빵을 핫도그 모양으로 만든다. 이! 빵 속에 소세지를 집어넣는다. 삼! 소세지 속에 꼬치를 끼운다~!!
의기양양해하는 연수를 보며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고(1번 들었을때부터 2, 3번이 짐작되어 웃기 시작한 엄마다. 먹는 순서, 혹은 보이는 순서대로 핫도그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다섯살의 발상이 얼마나 귀여운가 말이다. ㅎㅎ)
아빠는 웃기기도 하지만 무척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아빠: 연수야.. 아빠 생각엔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일. 꼬치를 준비한다.. 이. 꼬치에 소세지를 끼운다..
연수: (아빠 말을 중간에 자르며) 아니야!! 내 말이 맞아. 일! 빵을 반죽한다. 이! 빵속에 소세지를 넣는다!
아빠: 빵 속에 소세지를 어떻게 넣는데~?
연수: (잠시 생각하고는) 넣을 수 있어!!
확신에 찬 연수 말을 듣고보니 그래, 빵 반죽안에 소세지 못 넣으란 법이야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아무튼.
김연수. 엄마가 잘 기록해놓을꼐. 다섯살에 네가 생각해냈던 핫도그 만드는 방법. ^^
나중에 크면 엄마한테 핫도그 맛있게 만들어다오.. 어떤 방법으로든.
2. 약밥
연수는 약밥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겨울이면(이상하게 다른 계절에는 잘 안하게 된다. 왜 그렇지??) 자주 약밥을 한다.
며칠전에도 밤을 잔뜩 넣고 달달하게 만든 약밥을 연호랑 셋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연수: 엄마, 약밥은 왜 약밥이야?
엄마: 글쎄.. 약이 되는 밥이라서 약밥일껄? (실제 약밥은 찹쌀, 대추, 잣, 밤 등 좋은 재료가 많이 들어가 약이 되는 밥이란 뜻인걸로 알고있다)
연수: 음... 아이들이 밥을 잘 먹게 하는 약이 들어있어서 약밥이 아닐까?
^^ 그렇구나.. 그렇겠어.
그 약은 바로 무쟈게 달달한 '흑설탕'일수도 있고, 고소한 '밤'일수도 있고, 엄마의 사랑일 수도 있겠구나. 연수 덕분에 알았네..
한번은 연수가 '엄마, 난 약밥에서 밤이 제일 좋아!' 하길래 장난삼아 '엄마도 밤 좋아하는데..' 했더니 '엄마, 나눠먹자' 하면서 제 약밥에 있던 밤을 내게 나눠주었다.
약밥 뜰 때면 아이들 그릇에는 밤을 몇개씩 담아주면서 내 그릇에는 대추나 다른 것만 주로 담게 된다.
뭐.. 밤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나는 밤 없어도 약밥을 배불리 많이 먹지만 아이들은 밤이라도 많이 있어야 밤 한입, 밥 한입해서 약밥을 제법 배부르게 먹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은 나도 밤이 먹고싶기도 했는데...
어느새 이만큼 컸네.. 우리 큰아들. 엄마는 그 날 무척 감격해서 연수가 준 밤을 아껴아껴 맛있게 먹었다.
3. 산타할아버지
한달도 더 전부터 크리스마스가 언제 되는지 묻고 또 묻던 연수.
서른밤 자고 일어나면 돼.. 에서부터 줄고 줄고 또 줄어 세밤만 자면 크리스마스야, 두밤만 자면 크리스마스야 하는 답을 듣고는 '언제 이렇게 많이 줄었지?'하며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아빠는 애들이 잠든 뒤에 들어오려고 추운 밤, 선물상자들을 들고 집근처 마트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해결해가며 배회하고 있는데 연수와 연호는 들떠서 당췌 잠들 기미가 안보였다.
연수: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어떻게 들어오실까?
엄마: 그..글쎄...
연수: 창문으로 들어오시겠지?
엄마: 음.. 아마도..^^;;
연수: 근데 여기가 우리집인걸 어떻게 아실까?
엄마: 글쎄....
연수: 트리 장식을 창문쪽에 해놓을껄.. 그래야 '아 여기가 연수 집이구나'하고 알고 들어오실텐데...
엄마: 끄음... 산타할아버지는 연수랑 연호가 어디 살고있는지 잘 알고 계실꺼야. 그러니 어서 자자. 얼른 자야 산타할아버지가 오시지..
그래도 뭔가 맘에 걸린다는듯 거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온 연수.
연수: 엄마, 아빠한테 오늘밤에는 트리에 불 끄지 말라고 얘기해줘.
올해 우리는 거실 고무나무 화분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방울도 걸고, 반짝반짝 전구도 둘렀는데 그 불을 저녁에는 켜놓고 보다가 아이들 잠들면 아빠가 끄곤 했다.
엄마: 왜?
연수: 그래야 산타할아버지가 어디에 선물을 놔두면 될지 아시잖아... 깜깜하면 어디에 선물을 둬야할지 몰라서 헤메시면 어떡해...
엄마: 그래-^^ 알았어.. 엄마가 아빠한테 얘기할테니 어서 자.
그날 밤, 우리집 트리에서는 밤새 예쁜 전구 불빛이 반짝였고, 늦게늦게 잠이 든 연수는 새벽에도 두세번 꺠서 '산타할아버지가 왔다가셨을까?' 하고 내게 묻곤 했다.
'아직 깜깜하니 좀더 자렴..'하면 다시 잠들고, 쉬하고 다시 잠들고 하면서도 꼬맹이답게 거실에 나가볼 생각은 하지 않더니
드디어 동이 훤하게 틀무렵 일어나서는 '엄마, 나 거실에 나가보고싶어!'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올해 산타할아버지는 다섯살 연수에게 정말로 멋진 '캡틴킹' 로보트를 선물해주셨다. :)
연수야, 새해에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다오..
늘.. 갈수록.. 정말 고맙다, 나의 첫 아이.
돈까스 반찬을 차려놓고 저녁을 먹는데 연수가 말했다.
엄마, 내가 이야기 해줄까?
그래.
돈까스 소스 이야기야..
(마침 내가 소스를 접시에 따르려고 하고 있었다.)
돈까스 소스가 있었어.
소스가 병속에서 '나갈래! 나갈래~~!' 하고 있었지.
그런데 펑! 하고 뚜껑이 열려서 돈까스 소스가 천정에 탁! 튄거야.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소스를 보고 웃었어..^^
웃느라고 마지막 문장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내가 물었다.
친구들이 웃었다고? ^^
응. 다른 친구들이 천정에 붙은 소스를 보고 막 웃었어. 끝이야~~!
연수가 지어낸 첫번째 장편 이야기 :)
요즘 연수가 부쩍 많이 큰 것 같다.
말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여름 지나는 동안 키도 훌쩍 컸다.
며칠전 온식구가 집에서 종일 북적대다 오후 늦게 마트로 총출동할 때였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 내가 말했다.
"에고.. 엄마는 세수도 안하고 나왔네."
잠깐 나를 쳐다보던 연수가 말했다.
"괜찮아.. 엄마는 세수 안해도 예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우와~~~ 김연수, 너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엄마는?
엄마는 연수를 끌어당겨 배로 꼭 안아주었다. ㅎㅎㅎ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과음하고 들어온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기 힘들어서 고롱고롱하는걸 보고 내가 말했다.
"술을 꼭 그렇게 많이 마셔야되냐.. 이해가 안되네."
그랬더니 옆에서 놀고 있던 김연수 왈,
"엄마도 참... 아빠가 목이 많이 말랐나보지~~"
^^;;;;
이렇게 이해심 넓은 우리 아들이 실은 아빠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음 대화.
아빠랑 둘이 놀이터에 다녀오는 길, 편의점 앞을 지나는데
마침 중딩 형아 네명이 탁자에 둘러앉아 컵라면을 후후~ 불어 먹고 있더란다.
급 입맛이 동한 아빠가 "연수야, 저 형아들 먹는 라면 진짜 맛있겠다~~ 그지?" 했더니
김연수 선생님 빙그레 웃으며 아빠보고 한마디 하시길..
"보면 다 먹고 싶구나~?"
ㅎㅎㅎㅎㅎㅎ
'X'
'Y'
'Z'
ㅎㅎㅎ 연수가 요즘 무척 좋아하는 로보트 만화 '또봇 X'에 나오는 세 로보트 이름 'X, Y, Z' 몸으로 쓰기~! ^0^
제 또래 친구들은 다들 가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안가는 대신
하루종일 엄마를 상대로 쫑알거리고 두살배기 어린 동생이랑 뒹굴거리고 노는 연수에게는
엄마랑 동생, 그리고 주말에 같이 노는 아빠가 제일 친한 친구들이라서
어쩌면 말도 어른들 말을 더 많이 배우고 흉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면 좀 짠하다가도 가족들 속에서 나름의 제 자리를 잘 잡고 둘도 없는 끈끈한 관계들을 가족들과 맺을 수 있는 그 충분한 시간이,
때로는 지루하고 힘들게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한 그 시간들이 실은 무척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히 요즘 연수랑 연호가 서로를 찾고 의지하고 좋아하며 같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둘이 함께 자란다는 것이, 온전히 삶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 참 좋구나.. 자주 생각한다.
때때로 연수가 없으면 나 혼자 연호랑 어떻게 놀아줄까.. 싶을 떄도 있다.
내가 뭔가 연호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연호가 답답하다는 듯이 짜증낼 때
형아가 딱 등장해서 "연호야, 이것 떄문에 그래? 이거 하고 싶어?"하면 진짜 그걸 원해서 그랬던건지 아님 그냥 형아가 좋아서 그런건지 연호가 울음을 딱 그치고 형아 말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듣다가 헤헤 웃으며 형아가 준걸로 잘 놀 때...
에고, 역시 애들은 애들끼리 통하는게 있는갑다... 생각하며 연수가 더없이 고맙다.
연수가 혼자 책이나 뭔가 놀이감에 빠져있을 때
휘휘 둘러보며 형을 찾던 연호가 연수 등 뒤로 가서 목을 껴안을 떄가 있다.
그러면 연수는 잠깐 등을 앞뒤로 흔들어준 뒤에
"연호야, 형아가 크면 업어줄께. 지금은 너를 못 업어.."하고 말해주는데 그 말이 참 뭉클하다.
자주 투닥거리고 주로 형아의 힘에 못 당한 연호가 앙~ 울며 내게 달려와 안기는 일도 많지만
그런 순간과, 서로 마주보고 헤헤거리고 뒹굴거리며 노는 순간은 늘 공존한다.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겠지...
다만 늘 같이 있다보니 서로 아주 절실한 존재여서 더 많이 의지하고, 더 좋아하고, 잘 노는 시간도 많아지는 것 같아 좋다.
둘이서 서로 무엇을 먹여주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엄마인 나는 어쩔수없이 또 뭉클~~~^^;;
그래.. 앞으로도 늘 그렇게 서로 챙겨주며 지내렴.
밥먹는 것보다 노는 게 좋은 다섯살 김연수는 요즘 밥먹을 때마다 엄마한테 야단맞는게 일인데도
상차려지면 제 자리에 앉아 맛있는 반찬 위주로 몇 숟갈 먹고나서는 이내 자리를 떠나 노느라 남은 밥은 까맣게 잊기 일쑤다.
처음의 허기만 살짝 채워지고나면 계속 밥을 먹을 동기가 싹~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니 그 뒤는 거의 야단 반, 회유 반(밥 다 먹고 놀이터 가자, 맛있는 간식 먹자 등등 ㅜ)해서 겨우겨우 꾸물대며 놀다 먹다 한다.
오늘은 점심 먹을 때부터 너무 오래 걸려서 내가 오후내내 속상해있었고, 저녁밥 먹을 때도 얼굴을 펴지 않았다.
어찌어찌 저녁상 치우고 양치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졸린 연수도 이부자리 위에서 뒹굴거리고 칭얼거리던 연호도 누워서 젖물고 잠이 막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후두둑 후두룩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수가 '엄마, 비오나 봐!' 하더니 발딱 일어나 안방 베란다로 나갔다.
연수가 비구경을 하는 동안 소나기는 점점 거세져서 빗소리가 점점 요란해졌다.
연호가 잠들락말락한지라 꼼짝 못하고 누운채 속으로 베란다 빨랫대에 널어놓은 빨래 걱정을 하고있는데
비구경 다하고 들어오던 연수가 창문 가까이 붙어있던 빨랫대를 안방 쪽으로 끌어당겨 놓고는
제 이부자리에 돌아와 누웠다.
대견했다.
비 올때는 엄마가 빨랫대를 방쪽으로 끌어당겨놓는 것을 알고
이 밤에 엄마 대신 제가 슬쩍 끌어당겨 주다니... 부탁하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해주다니..
다섯살 연수가 갑자기 다 큰 아이처럼 느껴졌다.
손을 뻗어 누운 연수 머리카락을 몇번 쓸어주었더니
"엄마, 우리 손잡고 자자" 하면서 내 손을 이렇게 저렇게 몇 번 고쳐잡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누워서 생각했다.
내 첫아기가 제 나름껏 부지런히, 열심히 자라고 있구나..
늘 말도 안듣고 떼도 많이 부리고 어린 아기인 것만 같아도
나름대로 속이 깊어지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자라느라 애쓰고 있구나.
밥은 좀 안 먹을 수도 있지, 놀고 싶은 마음이 워낙 크니 아직 어린 다섯살은 그럴 수 있지...
안그래도 엄마랑 어린 동생이랑 하루 종일을 보내면서 밥먹을 때를 제외하면 연수에게 그리 큰 소리 낼 일이 없을만큼
참 잘 지내주는 아이인데
딱 한가지 밥 먹는 것까지 잘 하면 그야말로 너무 '입 뗄 데가 없는' 아이가 되는거지.... 그러면 되겠어.. 그럴 수야 있겠어..
그런 생각이 들면서 다섯살 엄마는 또 한껏 마음이 풀어져서 '아구 내 새끼, 이쁘기도 하지~'하는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버렸다.
('가야[그 애야] 참 어디 입 뗄 데가 한가지나 있나~'하는건 우리 친정엄마가 즐겨 쓰시는 반어적 표현이다. ㅎㅎ 물론 김연수가 밥 빨리 안먹는 것만 빼면 입 뗄 데가 없다는건 내 기준이고, 우리 할머니들 기준으로 보자면 김연수는 그야말로 문제투성이의 못말리는 장난꾸러기, 떼쟁이다. ^^;;;)
이렇게 다섯살 두살 형제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 뜨겁게 보낸 여름이었다.
어느 순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쓰윽 밀려왔듯이
아이들도 어느 순간 쑥~ 자라있을 것임을 믿는다.
매일매일 지지고볶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그러는 사이에, 우리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아이들은 몸도 자라있고 마음도 자라있고 밥도 잘 먹고 젖도 끊고... 그렇게 내 품을 떠나 세상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갈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화내지 말고, 상심하지 말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언뜻언뜻 아이들이 보여주는 저희들의 빛나는 성장, 예쁘디 예쁜 모습들을
놓지지말고 부지런히 눈에, 마음에 담을 일이다.
거기에 힘써야지... 생각하는 9월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