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주이야기/연수 '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2.08.15 세탁기야 안녕 4
  2. 2012.05.31 쭈쭈바는 왜 6
  3. 2012.03.07 엄마, 돌담 같아 4
  4. 2011.12.27 75살과 105살 10
  5. 2011.03.15 레몬 쉬야 요술쟁이 4
  6. 2011.03.11 팬티 부자가 가르쳐준 것 8
  7. 2010.12.27 연수의 냉장고 9
  8. 2010.11.13 오늘 하루, 연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2
  9. 2010.11.09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꺼야 12
  10. 2010.10.11 연수는 이 그림 좋아해요~ 13

 

 

 



결혼할때 우리 부부는 세탁기를 새로 사지 않았다.

남편이 자취하면서 쓰던 세탁기가 산지 몇 년 안된 비교적 새 것이라 그냥 쓰기로 했던 것이다.

비록 20만원 조금 더 줬다는 저렴한 모델이었지만 싸면 어떤가.. 빨래만 잘 되면 되지. 

당시만해도 깨끗하고 용량도 10kg로 큰 세탁기라 결혼하고 지금까지 참 잘 썼다. 

식구들 옷은 기본이요, 두 아이 천기저귀며 수시로 나오는 이불빨래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가면서 정말 세탁기가 우리집에서 제일로 고생했다. ^^



그런데 얼마전부터 이 녀석이 그르렁그르렁 쿨럭쿨럭 힘들어하며 고장이 자꾸 났다.

갈현동 살 때도 고장나서 한번 AS를 받은 적이 있는데 

수리기사님 말씀이 이 모델은 이제 단종됐고, 회사도 어려워져서 세탁기쪽은 거의 하지 않으니 다음에 또 고장나면 AS가 쉽지 않을것이라 하셨었다. 

남편도 가전제품파는 가게에 있던 세탁기중 제일로 싼 모델이었으니 이만큼만 써도 참 쓸만큼 썼다고 세탁기를 새로 사자 했다.

나는 내심 '그래도 아직은 좀더 쓸 수 있지 않을까.. 겉은 정말 멀쩡해보이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가

힘든 이불 빨래끝에 물이 넘쳐 새었는지 누수로 정전까지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안되겠다 싶었다.

세탁조에 찌든 때도 밖으로 보일 정도라 세탁조 청소를 한번 받아볼까.. 싶었는데 이래저래 수리비용아 더 들겠다싶어 새로 사기로 했다.



결혼하고 5년, 남편 자취시절부터 치면 8년을 함께 지낸 세탁기.

단순한 살림거리라 해도 오래 내 손길이 닿았던 물건을 내놓는 일에는 마음이 쓰인다.

고마웠다... 네가 빨아준 옷입고 남편도 나도 잘 지냈고, 아이들도 잘 컸어. 고맙다.. 좋은 곳에 가서 잘 쉬고 다시 좋은 물건으로 태어나렴...    

사진을 한장 찍어두고 싶어서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세탁기랑 안녕하자.. 


 




 





연수는 세탁기가 새로 온다고 했더니 '지금 세탁기는?'하고 물었다.

지금 세탁기는 오래동안 일을 많이 해서 이제는 고장도 잘 나고 해서 더 쓸 수가 없다 했더니 '그럼 어떻게 해?'한다.

'새 세탁기 가져오는 아저씨들이 데려가실거야'

'어디로?'

'음...... 낡은 세탁기들 모아두는 곳으로...? 거기 가서 새로 고쳐 쓸 수 있는 부분은 쓰고, 안그런 부분은 녹여서 다른 물건 만들고... 그럴꺼야.'

'그냥 우리 집에 두면 안돼?'

'응.. 우리집에는 둘 자리가 없어.'

'내 방 뒤에, 거기 베란다에 두면 되지 않을까?'

'거긴 비상공간으로 가는 통로라 거기에 뭘 두면 안돼... 우리집에 세탁기를 두 대나 둘 필요도 없고...'

'그래도... 그래도 나는 이 세탁기가 좋단 말야. 우리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연수는 울었다.

연수는 사람에게도, 물건에게도 애착이 많다.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질 때는 엉엉 울고 

오래 함께 있었던 물건, 제가 좋아하는 물건들도 버리기 힘들어한다. 





 







한참 울던 연수는 세탁기가 어떻게 될지 여러번 다시 물었다.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대답을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었다.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북극 요정들이 헌 장난감을 손질해서 너무너무 멋진 새 장난감으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 세탁기도 그렇게 다시 고쳐질거다..

그러니 나중에, 나아중에 오늘 새로 오는 세탁기가 또 오래오래 써서 고장나고 힘들어해서 못 쓰게 되면

그떄는 꼭 지금 우리집의 이 첫 세탁기가 새로 고쳐져서 태어난(일종의 환생!^^;;) 세탁기를 데려오겠노라고 

엄마가 꼭 그렇게 주문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연수는 세탁기를 꼭 껴안고 인사를 했다.

'세탁기야, 잘 가.. 그동안 고마웠어... 나중에 새 세탁기로 태어나서 우리집에 꼭 다시 와.. 잘 가, 잘 가 우리 세탁기..'



아저씨들이 새 세탁기를 가지고 오셔서 원래 세탁기를 들고 나가실 때 

연수는 내게 아저씨들께도 이 세탁기를 잘 고쳐서 나중에 다시 우리집에 보내달라고 얘기해달라고 했다.

나는 나가시는 아저씨들 뒤에 대고 그렇게 얘기했다. 

일하느라 바쁜 아저씨들이 잘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자 연수는 다시 얘기하라고 했지만 

나는 '이 분들은 세탁기를 배송만 해주시는 분들이라 세탁기 만드는 과정은 잘 모르실거야.. 그러니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데려오자'고 속삭여주었다.



우리 세탁기가 정말로 나중에 어떤 물건으로 새로 태어나서 우리집에 돌아왔으면 좋겠다.

스테인레스 세탁조든, 플라스틱 통이든 무언가 새로운 물건으로 태어난다면 

우리들의 애정과 우리들 삶의 기운을 간직하고 잘 지내다가 다시 우리 아이들과 만났으면 좋겠다. 

세탁기야, 고마웠다.

늘 산더미같은 빨래 돌리기만 바빴지 제대로 청소 한번 안해주는 주인 만나 네가 참 고생 많았다..

이제 푹 쉬고.. 다시 좋은 물건으로 태어나렴.  







Posted by 연신내새댁

 

 

 

 




며칠전 아침먹고 노는데 연수가 갑자기 종이를 찾아오더니 '인디언'이 되야겠다며 종이를 잘라 머리에 꽂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인디언이 되었다. ^^;; 


 

 

 




다섯살이 되면서 얼굴이 위아래로 많이 길쭉해진 연수.

가끔은 아기같기도 하고, 가끔은 또 훌쩍 큰 형아같다. 

그래도 아직은 아기같을 떄가 더 많다.



 

 

 

 


그전부터도 그랬지만 요즘도 질문이 참 많은데.. 주로 '왜?' 하고 저는 쉽게 툭 던지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머리싸매고 한참 끙끙거려야하는 것들이 많다.

자연 현상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면 과학 지식이 필요하고, 단어의 뜻이나 어원에 대해 물으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지식이 폭넓게 요구된다.

하지만... 아이는 다섯살. 그냥 떠오르는대로 성실히 대답만 해도 충분하다. ㅎㅎㅎ


며칠전 장보러 갔다가 연수가 열망하는 '쭈쭈바'를 하나 사주었다.

한참 즐겁게 쪽쪽 거리던 연수가 물었다. 

'엄마, 쭈주바는 왜 쭈쭈바지?'

'글쎄... 쭉쭉 빨아먹어서 쭈쭈바 아닐까?'

'음.. 쭈쭈 맛이 나서 쭈쭈바인 것 같은데~'


ㅋㅋ

'쭈쭈'를 빨던 아기 시절로부터 그리 멀리 오지 않은 연수의 경험이 빛나는 순간이다.

'그렇구나..! 쭈쭈 맛이 나서 쭈쭈바구나.. 연수 말이 맞는거 같아!'




 

 



아이들의 기억은 정말 강렬한 것 같다.

살아온 시간이 짧아서인지 그 안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어른들이 깜짝 놀랄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아이들은 제게 일어나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 사물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하고 깊이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베란다 텃밭에 심을 모종들을 좀 더 사러 조금 큰 화원에 갔었다.

쑥갓이랑 토마토 등을 엄마가 고르는 사이에 연수는 저쪽에서 어떤 키 큰 나무 모종을 보고 있더니 

'엄마 나 블루베리 먹고 싶어. 우리 블루베리도 키우자' 했다. 

연수가 보고있는 가느다란 나무에는 '불로베리'라고 아주머니가 직접 쓰신 것 같은 리본이 붙어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화원 아주머니 아저씨는 야단이 났다. 아니 어떻게 요렇게 어린 애가 블루베리를 아냐고.. 책에서 봤냐고 물어보시고, 그 녀석 참 신기하다 하시는데 나도 참 신기했다. 

다른 손님들이 또 들어오셔서 아주머니가 바빠지셨고, 그 블루베리 모종은 연호 아기띠하고 나온 내가 한손으로 들고 가기엔 좀 큰 것 같아 연수에게 오늘은 사기 어렵겠다 얘기하고 얼른 골라놓은 작은 모종들만 사가지고 나왔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 연수에게 그 나무가 블루베리인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초록색 작은 열매가 달려있었는데 블루베리 모양이어서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주에 떡집에 갔을 때 주인아저씨가 연수에게 블루베리 말린 것을 몇 개 주셨는데 아마 그때 먹으면서 모양을 기억했나보다.

그날 나는 연호 돌떡을 맞추느라고 버둥거리는 연호 붙들고 아줌마와 떡얘기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연수는 그동안 아저씨가 준 블루베리를 요모조모 들여다보았던걸까..

 



 

 




그래도 그렇지... 마른 보라색 열매랑 어린 초록색 열매는 다를 것 같은데 어찌 그리 알았을꼬... 

신기하기도 하면서 살짝 두렵기도 했다. 

이 녀석.. 뭘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거지.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이 어리다고, 잘 모른다고 어른인 내 맘대로 막 밀어붙일 때도 많고, 말도 안되는 얘기로 윽박지를 떄도 있는데... 그런 것들도 다 기억하는거 아닐까. ㅠㅠ 

가끔은 아이들이 마치 귀머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앞에 두고도 어른들끼리 아이들 얘기, 다른 어른들 얘기를 할 떄가 있다. 

자기 얘기를 엄마가 어떻게 하는지 아이들이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을거라 생각하면 좀 조심하게 된다. 

말을 배우기 전, 아주 어릴떄의 아기들도 말이다. 

엄마의 평가(?) 혹은 흉, 혹은 아이를 탓하는 이야기... 모두모두 조심해야겠다.

 


 

 

 




'내가 커서 아빠가 되면 연호가 사달라는거 다 사줄꺼야. 장난감도 로보트도 다 사줄꺼야. 건전지만 빼고.'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라는 동요CD에 이런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한살 두살 나이먹어 어른이 되면 

내 아들이 사달라는건 다 사줄꺼야 

자꾸자꾸 귀찮게 얘기 안해도

다 알아서 다 알아서 뭐든지 다 사줄거야'


^^

보람유치원 아이들이 직접 한 얘기를 기록한 '마주이야기'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여서 만든 노래들인데 정말 재미있고 찔리는 내용이 많다. 

연수도 나도 저 CD의 노래들을 참 좋아해서 자주 부른다. 

둘이 각자 흥얼거리기도 하고, 함께 목청껏 부르기도 하고, 연수는 그 마주이야기들을 슬쩍 바꿔서 자기 하고픈 말을 하기도 한다.



무튼 김연수, 자기가 커서 아빠가 되면 왜그런지 모르지만 '연호'한테 연호가 사달라는건 다 사준댄다. ㅎㅎ

그 마음.. 변치마시길.

그 나이쯤에 연호가 갖고싶은 것이 장난감 로봇일지는 잘 모르겠다만... 

연수야, 네가 커서 이 글을 다시 보고 있다면 연호한테 전화해서 '요즘 너 뭐 갖고싶은거 없냐?'하고 물어서 꼭 사주길 바란다.

다섯살 여름에 네가 그렇게 말한게 있으니. ^-----^


근데 건전지는 왜 빼냐고 물어봤더니

'건전지는 연호가 먹으면 안되잖아' 한다. 

그렇지. 건전지는 아직 연호 금지품목이지.


연수 얘기 덕분에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아직 낯설고 상상이 잘 안된다. 

그러나 그런 날이 곧 오겠지.

늘 바라듯이 둘이 다정한 형제였으면 좋겠고, 따뜻한 어른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나는.... 아주 잘 나이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만 48개월을 향해가는 내 고운 첫 아기 그리고 아빠.

고맙다.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1. 

어느 볕좋은 오후, 내가 잠시 거실 바닥에 누워 팔을 괴고는
연수 연호 잘 노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연수가 한마디 했다.

'엄마, 돌담 같아'

'뭐가 돌담같아?'

'엄마가..'

'엄마가? 왜?' 

'기~일잖아.'

ㅎㅎㅎ
그렇구나.. 돌담은 길구나... 길게 누운 엄마는 돌담 같구나. 

연수는 냉큼 앞으로 와서 내게 기대 저도 길게 누웠다.
아가, 네게 돌담처럼.. 그렇게 따뜻하고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엄마로 오래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2.

봄비오던 날. 유치원에서 산책갈 때 입었던 비옷을 집에 오는 길에도 입고 걸어왔다. 
봄비속으로 걸어가던 레인코트맨.. 집 옆 냇물을 바라보며 엄마에게 말했지. 

'엄마, 물은 우산이 없네..'

그러네.. 네 말듣고 바라보니 물은 맨얼굴 그대로 비맞고 있었지. 

연수는 제가 해놓고도 재미있어서 그 뒤로 한참 '물은 손이 없네~ 물은 발이 없네~ 물은~~'하고 종알거렸지만
나는 비맞는 물 생각을 하며 괜히 혼자 슬퍼져서 집에가면 커피 한잔 꼭 마셔야겠다... 생각하며 걸어왔다.












3. 


연수 아기였을때 선물받았던 목욕가운이 너무 커서 여직 못입히다가 며칠전에 꺼내주었다.
폭신한 수건천으로 만든 가운이 맘에 쏙 들어서 연수는 그냥 내복 위에도 잘 입고 놀았다.
이 가운에 곰돌이 모양의 큼지막한 단추 한개가 붙어있는데 연수가 몇번 끼우고 풀고 하다가 그만 실이 풀려 떨어졌다.
그날 밤 연수 잠들었을때 바느질해서 다시 달아놓았다. 
다음날 목욕한 뒤에 '연수야 가운 입어. 단추 다시 달아놨어' 했더니 좋아라하고 찾아입으며 들릴락말락하게 읋조리던 말.

'엄마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서, 정말 좋아서 가만가만 혼잣말하듯 감탄사처럼 내놓던 아들의 인사에 엄마도 괜시리 뭉클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연수가 외사촌누나와 전화통화를 하며 자랑했다. 


'난 이제 다섯살된다~!'


전화를 끊은후 내가 말했다.


'연수가 다섯살 되면 예원이누나는 일곱살이 되겠네.'

'연수가 일곱살이 되면?'

'그럼 예원이 누나는 아홉살이지.'

'연수가 아홉살이 되면?'

'그럼 누나는 열한살.'

'연수가 열한살이 되면?'

'열세살'


.... (두 계단씩 계속 올라간다.ㅠㅠ 그 사이 연호는 집전화기를 맛있게 맛있게 빨았다.ㅜㅜㅜㅜ) 


'연수가 마흔 다섯살이 되면?'

'그럼 누나는 마흔 일곱살이지.'
 

말해놓고보니 그 나이가 참 까마득하다.
아직 나도 못 되어본 나이. 
내 아이가 그런 나이가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와.. 연수가 마흔다섯살이 되다니.. 그럼 엄마는 몇살이지.. 헉. 칠십다섯살이잖아? --;;;'

'그럼 연수가 칠십다섯살이 되면 엄마는 몇살이야?'

'음... 그럼 엄마는.. 백다섯살? 아고... 그 때는 엄마는 없겠다. 어떻게 백다섯살까지 살겠어.' 

'안돼.. 아빠 회사가고나면 엄마가 나랑 놀아줘야지'


ㅎㅎㅎㅎ 


'연수야. 그때는 연수한테 친구가 많을꺼야.. 부인이랑 아이들도 있을껄.. 그 사람들이랑 놀면 되지..'

'안돼.. 엄마랑 놀아야돼.' 

'엄마랑 놀아야돼?'

'응. 엄마랑'


생각해봤다. 칠십다섯살이 된 연수가 백다섯살이 된 나와 함께 노는 장면을.


'그래. 엄마 그때까지 살께. 엄마가 백다섯살됐을때 연수가 엄마랑 놀아주면 엄마는 참 좋지.'

'근데 뭐하고 놀지?'

'글쎄... 그림책도 보고 폴리 놀이도 하고 그러지 뭐'

'그럼 폴리, 헬리가 두 개씩 있어야겠다. 엄마꺼도 있어야지!' 

'그...럴까?'

'응! 오늘 엄마 헬리 사러가자!'

'으응...? 오늘은 저녁이 다됐는데 어떻게 가.. 그리고 백다섯살까지는 아직 엄청 많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사도 돼..'

'아냐. 오늘 있어야해! 오늘 사러가자!!'



백다섯살된 엄마와 칠십다섯살된 아들이 폴리, 헬리 장난감을 가지고 다정하게 노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재미있을 것도 같다. 그때는 내가 더 애기처럼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수에게 폴리놀이 해달라고 조르면 어쩌지.

문득 오늘 아이와 더 많이, 더 성심껏 놀아주지 않은게 후회되었다. 
지금, 더 많이 놀아줄께. 
언제나 엄마와 더 놀아주고 싶어하는 연수.. 고마워.













 
Posted by 연신내새댁









1. 레몬 쉬야


"엄마, 쉬 마려워요~!"하고 달려온 연수. 화장실에 데려가 발판을 놓아주니 올라가서 쪼르륵~ 싼다. 

연수: 오줌 색깔이 하얗네. 물 쉬야네~.

엄마: 물 쉬야?

연수: 응. 오줌이 하얀색이니까 물 쉬야지~.

엄마: ^^ 그럼 노란색은 무슨 쉬야야?

연수: 레몬 쉬야!!


푸하하~! 재밌어서 크게 웃었다. 

쉬 다하고 거실로 나간 연수는 엄마가 웃으니 저도 재밌었는지 "주황색 쉬야는 귤 쉬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2. 요술


점심밥을 먹으며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고 있었다.
그림책이 있어야만 밥상앞에 잠시라도 진득하게 앉아있는 연수인지라 책 읽어주랴, 밥 떠먹이랴, 내 밥먹으랴.. 정신없는 엄마는 곧잘 지친다. 오늘도 '언제쯤 혼자서 밥을 좀 잘 떠먹게 될까...' 한숨쉬며 밥을 먹이고 있었는데.. 
괴물나라에 간 주인공 맥스가 '마법을 써서 괴물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을 읽자 연수가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연수: 연수도 요술 부릴 수 있어. 

엄마: 그래~? 연수도 요술을 부릴 수 있어?

연수: 응!! 연수는 냉장고를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어. 

엄마: 에? 정말? 우리 연수 대단하네. ^^

연수: (신이 나서) 연수는 물로 빵을 만들 수 있어! 쓰레기를 꽃으로 만들 수도 있구... 나무를 기차로 만들 수도 있어!

엄마: (술술 이어지는 연수 이야기에 감동받아서 밥먹일 생각도 잊은채) 와... 우리 연수 정말 대단하구나~. 쓰레기를 꽃으로 만들다니 너무 감동적이다...! +_+

그 뒤로도 몇가지 더 자신이 할 수있는 요술을 읊고 난뒤 연수가 말했다.

연수: 그만~! 이제 밥은 그만이야.

그러더니 휙하니 의자에서 내려가 제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칙칙폭폭하며 논다.

연수 요술에 제대로 걸린 엄마는 일찍 숟가락 놓은 아이를 쫓아가 밥을 더 먹일 생각도 못하고,
연수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서 마냥 행복해하며 자기 밥만 마저 다 먹었다.










우리 요술쟁이. 언제 이렇게 쑥 컸나..
생각해보면 이 아이가 내곁에 온지 만3년도 안됐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지켜보고, 함께 지냈던 것만 같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삶에 나타나기로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내게 와서 나를 온통 사로잡아버리기로 운명지어져 있었던 것처럼. 이런게 아이의 요술일까...^^  
 










엄마를 꼼짝못하게 제 요술에 걸어놓은 귀여운 요술쟁이 같으니라고.
오늘도 쫑알쫑알 펼쳐놓은 네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하게 해줘서 고맙다. 
건강하게 잘 크고 잘 놀아줘서 고맙다. 고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1. 팬티 부자










"엄마, 이거 망토처럼 해줘~"
어제 오후, 연수가 곧잘 가지고노는 엄마 스카프를 들고와서는 그림책에서 본 '앙팡맨'처럼 망토를 해달라고 했다.
목에 가볍게 묶어주었더니 흡족해서 이리저리 흔들어보다가 이내 망토자락을 펄럭이며 거실 소파에 오른다.

자.. 망토까지 갖춘 이 분의 전체패션을 공개하자면..









짜잔~~~!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복바지위에 한벌 더 입어주신 팬티가 포인트다.
ㅎㅎㅎㅎ
그제 오후부터 이렇게 입고 지냈다.

팬티와 내복 바지 정도는 혼자서 입을 수 있게된 연수.
'와~ 우리 연수, 혼자서도 팬티 잘 입는구나!'하는 엄마아빠의 칭찬에 고무라도 될라치면
이내 보이는대로 팬티를 가져와서 바지 위에 더 입는다.
그러면 엄마아빠는 그 모습이 웃겨서 깔깔깔.

어제는 드디어 세벌째 팬티를 껴입으며 자랑스레 한마디 덧붙였다.
"이 것 봐, 연수는 팬티부자야~~"

총 여섯벌 되는 제 팬티들을 두고 '팬티부자'라 자부하다니.. 그 소박한 마음이 고맙다고 해야할지, 우습다고 해야할지. ^^

"연수야, 근데 고추가 '아고~ 답답해' 하지 않을까?"
"왜?"
"고추 위에 너무 옷을 많이 입었잖아.. 고추 안아파?"
"안 아파. 연수는 팬티부자니까!"
 
잠시후, 쉬마렵다는 연수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겹겹이 입은 바지와 팬티를 힘겹게 내려주었더니...
이크. 옷에 잔뜩 눌려있던 고추가 그만 펴지지 않고, 오줌이 그대로 옷으로 주르르 흘러버렸다. ^^;;;;

팬티부자는 역시 다르다. 쉬야 한번에 팬티 석 장을 적시다니.. 
그 뒤론 마른 팬티를 못 찾아 내복만 입고 있는 연수.
 










늦은 오후, 해바라기 하는 연수.
저렇게 창에 하염없이 붙어서서 바깥구경을 하는 연수를 보고 있으면 뒷모습이 좀 쓸쓸해보이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나도 어디 창밖으로 훌쩍 걸어나가고 싶어진다.
슬리퍼를 가볍게 끌면서 자그마한 아이 손을 잡고.. 차지않은 바람이 부는 봄날 저녁 내내 별생각없이 걸어다니다 오고 싶다.

 



2. 좋은 것도 많아?









엄마가 첨으로 집에서 타준 코코아를 마시고, "오~ 맛있는데!"하는 연수. ^^



어제 연수 데리고 단지 건너편 주택가 안에 있는 재래시장에 다녀왔다.
'말우물공원'이라는 제법 크고 오래된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동산 산책까지 하고나면 긴 재래시장 길이 바로 이어진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로 된 야채가게에 들렸더니 체구가 큰 할머니와 까만 고양이 한마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마수걸이쯤 될듯한 우리의 등장을 반가워하시며 이것저것 덤도 얹어주시고, 연수가 고양이를 좋아하자 이름이 '솔이'라며 물지않으니 겁낼 것 없다고 다정히 얘기해주셨다.
요즘 야채값이 너무 비싸지만 단골들이 찾기 때문에 종류별로 아무리 비싸도 다 가져다놓아야한다고 얘기하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돌아오면서 나도 아무래도 이 할머니 야채가게에 단골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연수에게도 다음에 솔이 보러 또 오자 했더니 좋단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산 마늘 봉지를 열어보고는 크게 실망했다. 
가게 저 안쪽에서 까만 봉지에 담아주실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오래되고 상한 마늘이 제법 섞여 있었다. 
깐마늘 2천원어치 달라는 내 말에 마늘값이 너무 비싸 그렇게는 못 판다며 3천원치주마 하셔서 그러시라 했는데, 
양은 제법 많았지만 그 중에 상한 것도 너무 많았다.   

"뭐야~. 상한 마늘이 너무 많잖아. 너무한다...!"

씩씩거리는 내게 연수가 물었다.
"엄마, 왜?"
"아까 할머니네 가게에서 산 마늘말야.. 안 좋은게 너무 많아. 에이, 속상해~." 
"안 좋은게 많아?"
"응."
"좋은 것도 많아?"
"응?" 

나는 가만히 마늘을 내려다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좋은 것도 많아."


그래. 좋은 것도 많았다.
그 많은 마늘 중에, 군데군데 상한 구석이 있는 마늘도 많았지만 말짱하니 좋은 마늘도 많았다.
마트에서 팩에 담아 깔끔하게 랩씌워파는 천원, 이천원짜리 깐마늘의 양을 생각하면 까만 봉지에 스덴 그릇으로 퍼담아주신 3천원치 깐 마늘의 양은 참 많은 것이었다.
손님이 뜸한 재래시장에서 까둔지 오래되어 좀 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샀어야했을 할머니의 마늘이다. 
그것이 나이고, 내게 마늘을 팔수있어서 할머니는 참 좋으셨을 것이다. 
나도 상한 부분을 도려내는 손질을 좀더 해야했을뿐, 마늘을 넉넉하게 많이 얻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까만 고양이 솔이가 있는 할머니네 야채가게. 
연수 덕분에 잃을뻔 했던 단골가게를 마음안에 다시 담아둘 수 있었다.
33개월 연수.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 마음의 균형을 찾아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대하게 해준다.

고맙다. 연수야. 















Posted by 연신내새댁



1. 우리집 방들


연수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중에 '찔레꽃울타리' 시리즈란 것이 있다.
질 바클렘 이란 영국작가가 쓰고 그린 예쁜 그림책인데 들쥐들이 모여 사는 질레꽃울타리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사건들이 담겨있다.  
그 책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세대와 이웃간의 따스한 정이 넘치는 마을공동체의 이야기가 정겹고, 계절감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담아낸 그림도 참 좋다. 
특히 들쥐들이 사는 돌능금나무집, 자작나무집, 산사나무 오두막 등의 집안 풍경이 너무 예쁜데
한 나무속마다 큰 부엌, 저장실, 침실, 아이들방, 다락방, 거실, 화장실 등등 아기자기한 방들이 층층이 그려져 있다. 
그중 느티나무성 이라는 큰 성에는 연회장도 있고, 꼬불꼬불한 비밀의 계단도 있고, 아무튼 이것저것 멋진 방이 엄청나게 많다. 
그 느티나무성의 수많은 방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연수가 말했다. 


연수: 이 집은 방이 참 많네! 우리집은 놀이방이 한개 뿐인데.
엄마: (속으로 깜짝 놀라) 응? 그렇지만... 우리집에는 공부방도 하나 있잖아. 또 안방도 있고... 
연수: 화장실도 있고! 
엄마: 그래, 부엌도 있고 거실도 있잖아..
연수: 와~ 우리집에도 방이 많네! 
엄마: (다행스러워하며) 그럼그럼.. 우리집에도 방이 많지. 그리고 넓은 방도 있고..
연수: 우리집에도 넓은 방이 있어?
엄마: 응? 어.. 그럼. 안방이 아주 넓잖아.(우리집에서 현재 제일 넓은 공간이다. 손님이 2명 이상 오면 우린 안방에 상을 편다. ㅎㅎ) 또 거실도 넓고... 손님들이 오면 거실에서 다같이 밥도 먹고 놀기도 하잖아.(어른 2명+유아2명까지는 소화 가능.^^;;)


저 그림책을 보다보면 집안에 계단이 있고,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며 뛰어다닐 수 있는 단독주택의 꿈이 더 간절해진다.
들쥐들이 사는 인간다운(?) 주거환경이 우리에게도 부디 허락되기를...! ^^








+ 30개월 연수, 어부바를 좋아한다. '고양이가 졸린가봐~'하며 들고와서는 제 등에 업혀달라고 한다.



방들이 다 고만고만하게 작고 낮에는 연수랑 나랑 둘만 있는 집에서는 안방도 연수 놀이방이고, 거실도 놀이방이다. 놀이방이라 이름붙인 작은 방에서 실은 제일 뜸하게 논다. 안방 이부자리는 연수가 타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됐다가, 고양이 인형의 침대가 됐다가 한다. 좁은 집에서도 아이는 하루종일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놀이를 지치지않고 반복하면서 논다.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집이나 마당있는 단독주택이 아쉽다가도 아이 입장에서 제일 아쉬운 것은 눈을 마주치며 제 앞에 함께 앉아 놀아줄 엄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당신과 함께라면 단칸방이라도 행복해!' 이 말을 제일 진심으로, 절절하게 하고싶은 사람은 바로 엄마와 놀고싶어하는 어린 아기가 아닐까.    






2. 연수의 냉장고 


연수와 거실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연수: 엄마, 이것봐. 음식이 아주 많아~~~. 
엄마: 그래, 정말 많구나... (야채나 과일 모양을 한 소꿉놀이용 음식도 몇개 있지만, 연수한테는 볼풀공, 우유병 뚜껑도 다 음식이 된다)  
연수: 냉장고에 넣어놔야지! 어.. 그런데 연수는 냉장고가 없네?
 
헉. 예전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본 소꿉놀이 냉장고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소꿉놀이 음식들을 층층이 넣어놓을 수 있는 제법 큰 플라스틱 냉장고를 연수는 신기하게 열어보고 닫아보고 했던 것이다. 
무슨 말이 이어질까... 나는 긴장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연수는 거실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더니 갑자기 눈을 반짝! 하며 말했다.  

연수: 여기를 냉장고로 하면 되겠다! 여기다 음식을 넣어놓을꺼야~.

바로 옆에 있는 책장이었다.
휴~~,
연수는 꽂혀있는 책들위로 제 음식들을 하나씩 잘 넣어두었다.



아직은 뭘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마트에서 다른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거나, 새 장난감 세트를 손에 들고 있으면 '연수도 저거 먹고 싶어, 저거 갖고 싶어~'라고 말하긴 하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엄마아빠가 말하는 '이만이만하니 다음에 먹자, 사자'는 얘기를 수긍해주어 다행이다. 관심이 금방 다른 곳으로 돌려지는 것도 고맙다. ^^;;

어느 정도 더 크면 연수도 비교를 할 수 있고, 하게 될 것이다. 
큰 집과 작은 집을 비교할 수 있고, 다른 아이가 가진 좋아보이는 장난감과 먹을 것을 두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겠지.
소유욕도 겁나고 비교도 겁난다.
그러나 어느만큼 시간이 또 흐르고 나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은 마음도 생겨나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의 마음과 태도일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비교와 소유욕과 낮은 자존감 같은 것들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지면 어쩌나... 걱정하다보니 아이가 만날 가족 밖의 다른 어떤 세계보다 내가 더 무섭다. 
나부터 좀 달라져야 할텐데... 쉽지 않다는걸 느낀다.

새해가 멀지 않았다.
새해에는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 사람에 나부터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꼬물꼬물 애쓰며 살아야지..
메롱메롱 개구장이와 꼬물꼬물 갓난쟁이와 함께 할 새해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평화가 태어나기 전까지 반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어느 시절보다 '평화'로운 시절이 되기를..
평화가 태어난 후의 반년은 그 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진정 '평화'로운 시절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ㅎㅎ
이웃님들도 모두 행복한 새해 맞으셔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1. 너무 추워서


늘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보는 연수가 내게 달려와 소리쳤다.


연수: 엄마 엄마, 베란다에 벌레가 죽어있어!
엄마: 그래...? 벌레가 죽어있어?
연수: 응. 벌레가 죽어있었어... 너무 추워서 죽었나봐.
엄마: (나름 과학적인 추론에 깜짝 놀라서) 그래.. 그렇구나. 밤에는 베란다가 많이 춥지...
연수: 낮에는?
엄마: (과연 이 녀석이 뭘 알고 있는건가 헷갈려하며) 낮에는 햇빛이 비치니까 밤보다는 덜 춥겠지..
연수: 엄마, 벌레 밟아도 될까?
엄마: 읔.. 너무 가엾다.. 그냥 화분에 넣어주자. 그럼 흙이 될꺼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나도 쌀을 씻다 쌀벌레가 나오면 여사로 죽이고, 우리집 찬장에 알을 깠는지 요즘 너무 많이 집안에 출현하는 조그만 나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퇴치할까.. 고민하고 있다. 
아이에게 벌레를 가여워하는 마음을 키워주고 싶어하기 전에 나부터 우리집에 함께 살고있는 작은 생명들과 어떻게 화해할지, 어떻게 자연스럽게 적절히 공존할지 고민해야할 것 같다.




2. 까만 비가 내렸나봐


아침 벌레사건으로 베란다에 나가게 된 내가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다 말했다.

엄마: 간밤에 비가 오더니 길이 아직 젖었네...
연수: 어떤 자리?
엄마: 밖에 길 말이야.. 어제밤에 비가 많이 왔잖아.. 
연수: 천둥 번개도 치고!
엄마: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니 대화가 한결 즐겁다. 어제 저녁 천둥번개칠때 둘이서 그 얘길 여러번 했던터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맞아~, 천둥번개도 많이 치고 비가 많이 왔지~. 그래서 길이 까맣게 젖어있네...
연수: 까만 비가 내렸나봐....
엄마: ㅎㅎㅎㅎ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제 나름의 추측으로 제 나름의 논리를 부단히 만들어가는 어린 녀석이 귀엽고 대견하다.
비록 그런 논리로 엄마 의견보다는 제 의견을 고집할 떄는 화가 나더라도.. 다시 생각하면 우스워서 잔뜩 힘줘 구기고 있던 마음과 얼굴을 펴고, 웃고 만다.




3. 째째하게 굴지 마라


낮잠자고 일어나 간식을 먹는데 뜬금없이 연수가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연수: 째째하게 굴지마라~~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제 연수 앞에서 '사노라면'을 부른 적이 있었나..?
어쨌든 어린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저 가사는 신기하고, 뜨끔했다.

엄마: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 연수가 이 노래 불렀어?
연수: .... (잠시 생각하다가) '째째하게 굴지마라'란 노래가 '꼴 따먹기' 책에 나오더라~.

아!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저 대사는 국시꼬랭이 그림책 중 하나인 '꼴 따먹기'에서 친구들이 주인공 병준이를 놀리느라고 부르는 노래 중에 한 귀절이었다는걸.

엄마: 아, 그랬구나. 그래, 거기 그런 말이 나왔지~^^;

연수는 제가 좋아하는 책의 주인공 이름인 '최병준'도 여러차례 불렀다. 나는 나중에 네가 자라서 같은 이름의 친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네 이름을 세 살때부터 많이 불렀어~'라고 말해주는 상상을 하며 같이 웃었다.
어쨌든 나는 연수 덕분에 오랫만에 '사노라면'을 불러보고, 새삼 째째하게 살지 말고 가슴을 쭉 펴자고 스스로의 어깨를 툭툭 쳐주게 되었다.
아이의 입을 통해 듣는 우연한 말들에 가슴이 찡할 때가 있다.
다른 좋은 말도 많이 들려줘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1.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꺼야


연수는 간식거리들을 이 방 저 방 들고 돌아다니면서 먹는 버릇이 있다. (접시들고 어디든 가는 엄마에게 배운 거겠지만...--)
흘리고 쏟아서 방이 어질러지는 것도 문제지만 먹던 음식을 아무 곳에나 던져두고 놀다가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라
음식은 되도록 식탁에서만 먹고 먹다 남으면 식탁위 접시에 다시 가져다 놓으라 일렀다.
물론 잘 안 듣는다..-,.-;;;
 

엄마: 연수야, 안방 바닥에 놔둔 귤조각들 얼른 주워라..
연수: 싫어요~
엄마: 먹던 음식을 바닥에 놔두면 어떡해. 그릇에다 잘 담아놔야지. 얼른~~.
연수: 아니예요~~~, 그냥 바닥에 놔두는 거예요.
엄마: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고구마 담긴 접시도 소파위에 놔뒀더라... 그 접시에 귤도 같이 담아서 식탁위에 올려놓자.... 응?!!
연수: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않음을 느끼긴 했으나 그래도 장난삼아 좀더 버텨볼려고 노래를 한다) 안된다요, 안된다요~~~
엄마: 김연수!!!! 얼른 담아놓고 놀아. 안그러면 이제부터 다른 간식은 아무 것도 안 줄거야! 음식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음식먹을 자격이 없다고 엄마가 여러번 말했지!!!! 니가 바닥에 던져논 귤들이 얼마나 속상하겠어!

다른 간식을 먹을 수 없다는 말에 찔끔한 김연수..... 그제야 귤을 주우러 간다. 그러면서 쫑알쫑알, 신기한 말을 하길래
가만히 들어보니...

연수: 귤아, 걱정하지마~ 접시에 있는 친구들이 데리러 올거야~~.

귤을 위로하고 있다. ^^;;;;;;
아구, 이 녀석아.. 위로는 엄마도 필요한데..

언제쯤이면 아이에게 '이거 안하면 다른 걸 못하게 될 줄 알아' 하는 협박을 안하고 아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오늘도 또 단단한 벽에 머리를 쿵 박는 기분으로 반성한다.
'걱정하지마, 친구들이 데리러 올거야' 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만큼 어느새 쑥 자란 아이에게 고맙고 부끄럽다.





2. 여우가 도망갔어


연수가 요즘 옛날 시골 어린이들의 놀이문화가 고스란히 살아나있는 그림책 '국시꼬랭이' 세트에 푹 빠져있다.
어느 저녁 제 놀이방 형광등을 번쩍! 키더니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로 후다닥 뛰어왔다.

연수: 엄마, 엄마! 여우가 도망갔어!
엄마: 여우가 도망갔다고?
연수: 응~! 놀이방에 불을 켰더니 여우가 도망갔어!

무슨 소린가.. 하고 얼른 못 알아듣고 있다가 잠시 후에야 '달구와 손톱'편에 나오는 여우귀신이 엄마가 방에 불을 켜자 뒷문으로 후다닥 도망갔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엄마: 아~ 연수가 불을 켜니까 여우가 깜짝 놀라서 도망갔어? ^^
연수: 응! '아구 무서워~'하고 도망갔지 뭐야~~!

그랬구나... 아무튼 그 뒤로도 연수는 우리집 화장실에 부엉이가 살고 있다며 부엉이 가지고 놀으라고 제 장난감을 화장실에 갖다주는가 하면 
제 고무신으로 기차도 만들고 배도 타고 이것저것 따라하며 신나게 잘 논다. 

바야흐로 상상의 시대가 만개하는가 보다. 
이야기속의 등장인물들과 함께 놀고, 실제로 겪은 것처럼 지치지도 않고 여러번 반복해서 흉내내고 상상한다.  
그 시절이 부럽고, 나도 그 상상에 생동감과 즐거움을 더 해줄 수 있는 놀이친구가 되고싶어 우리집에 같이 사는 여우와 부엉이를 잊지않으려고 노력중이다. 




3. 생각해보자



늦은 낮잠을 자고난 연수와 식탁에 앉아 떡을 나눠먹었다.
그때 마침 압력밥솥에서 밥이 끓느라고 '스륵스륵' 소리가 났다.

연수: 연수랑 엄마랑 떡을 먹는데 귀뚜라미가 우네?
엄마: ^^;;; 그랬어? 정말 귀뚜라미 소리 같네.. 저기 밥솥에서 밥이 끓는 소리같은데.
연수: 아니야,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가 울었어!
엄마: (한발 물러서기로 하고) 그래~ 연수가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나보구나..
연수: 귀뚜라미는 뭐 먹지?
엄마: (어떻게 대답할까 궁리하다 얼른 대답을 못하고) 글쎄....?
연수: ... 생각해보자.

ㅎㅎㅎ
떡을 먹다가 밥솥소리를 귀뚜라미 소리로 잘못 듣고, 이제는 (나는 떡을 먹는데) 귀뚜라미는 뭘 먹어야하나를 '생각'하는 세살배기 아들을 보며, 나는 그 진지함에 깊이 감동받았다.
흐뭇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으며 내가 남은 떡을 마저 먹는데 연수가 벌컥 화를 냈다.

연수: 연수가 다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 왜 먹었어! 앙~~~!!!!!

무안하게도 진짜 화를 낸다. 울음도 터진다. 
거 참, 떡 하나 가지고.... 말은 의젓한 녀석이 먹는 거 앞에선 엄청 쫀쫀하다.

엄마: 엄마랑 너랑 같이 먹는거지.. 너 혼자 다 먹으려고 하면 되냐~ 울지마 울지마.. 치즈 줄께!

눈물고인 눈으로 치즈를 먹는 연수.
이 일에 대해서도 생각 좀 해보자.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나씩 새로운 말을 배워가고 제 나름대로 그 말들을 제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순간에 절묘하게 써가며 
어린 연수가 매일 자라고 있듯이
나도 내게 주어진 매일의 시간을 그렇게 성장에 쓰고 싶다.
꼬물꼬물거리며 내 속에서 부단히 조금씩 자라고 있을 어린 태아 평화처럼..
같은 시간이 흘러간뒤에 우리의 성장도 공평하기를. 




Posted by 연신내새댁

 


우리집 카메라 두 대가 다 고장났다.ㅠㅠ
덕분에 연수 사진도 많이 못 찍어주고,
엄마는 안써지는 논문을 붙잡고 끙끙거리느라 통 정신이 없다보니 한동안 포스팅도 못 했다.

만28개월을 꽉 채우고 이제 29개월차에 접어든 연수는 씩씩하고 즐겁다.
쫑알쫑알 말도 끊임없고, 엉뚱한 일들로 엄마아빠의 웃음보를 터트리게 한다.
어느날은 제 바지를 모자라고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타나기도 했다.
연수가 하는 얘기들도 잊어버리기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흐르고 그때그때 기록을 안하니 아쉽게도 잊혀져간다.
얼른 두어개만 옮겨놔야겠다.









1. 엄마 밥 안먹어도 될 것 같은데...


연수는 그림책보면서 밥먹는걸 좋아한다.
TV보면서 밥먹는거랑 원리는 비슷하다. 그림과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엉겁결에 밥숟갈을 꿀떡꿀떡 받아먹는 것이다..^^;
한참 그렇게 밥을 먹이다보면 읽어주는 엄마는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다.
연수가 배가 부른지 더이상 안먹겠다고 하길래, 그럼 이제는 일찌감치 밥 먹고 소파에 앉아계신 아빠한테 가서 놀으라고 했다.

연수: 엄마랑 그림책 읽을래요. 엄마, 이것도 읽어줘요.
엄마: 엄마는 밥먹어야하니까 아빠께 가져가서 읽어달라고 해..
연수: 싫어요. 엄마랑 읽어야돼요.
엄마: 엄마 배고파. 밥 먹을테야. 
연수: 엄마 밥 안먹어도 될 것 같은데.. 그냥 책 읽어도 될 것 같은데... (이건 요즘 연수가 제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을때 곧잘 쓰는 말투다.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고 '뭐뭐해도 될 것 같은데...'하고 뒤를 길게 뺀다ㅎㅎ)
엄마: 안 먹어도 될 것 같다고? 먹어야될 것 같은데? 엄마 배 많이 고파. 아빠께 읽어달라고 해.
연수: 엄마는 연수 책 읽어주고 그러는건데... 엄마 밥 먹지말고 책 읽어주세요.

이 녀석이.... 엄마도 배가 불러야 책을 잘 읽지~!!  
저에게 책 읽어주는 것이 응당 엄마의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저런 생각도 할 줄아나.. 싶어 놀랐다.
그래도 그렇지. 밥도 먹고, 엄마도 가끔 쉬기도하고 그래야지!












2. 연수 이 그림 좋아해요~


식탁유리 밑에 물이 들어갔다. 유리를 들어올리고 밑에 스민 물기를 닦는데 연수가 그림종이를 끄집어내려고 했다. 

엄마: 연수야, 그냥 놔둬. 
연수: 엄마, 이거 뭐예요?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이야~ (사실 고흐의 그림인 것만알지 제목은 모른다. 가을들판의 풍경이 좋아서 모처럼 식탁이 깨끗한 날이면, 그런 날은 드물지만..^^; 일하는 사람들 풍경을 오래오래 본다.)
연수: 이거 빼자요~
엄마: 안돼...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이라니까, 그냥 두고 보자. 
연수: 그거 빼고 이거 넣자요..(좀전에 대문에 붙어있던 중국집 전단지를 어느새 들고와서 집어넣으려고 한다)
엄마: 응?? 그걸 왜... 안돼.
연수: 연수 이 그림 좋아해요! 이거 넣자요~
엄마: -.,-;;; 김연수, 우리집이 학생회실이냐???  


그렇게 해서 우리집 식탁밑에 두 개의 그림이 깔리게 되었다. 
볼때마다 우습다. 하하. 한번은 시켜먹어야할 것 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