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딸 같은 아들
일전에 사촌여동생이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일이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딸 욕심 좀 나겠어요?'
'글쎄.. 예전에는 딸을 꼭 낳고 싶었고 딸이 없어서 아쉽단 생각도 많이 했지..
근데 이제는 괜찮아.
딸은 자라서도 엄마랑 다정하게 얘기도 많이 나누고 같이 오손도손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해서 좋다고들 하잖아.
엄마 마음도 잘 이해하고..
그러니 아들을 좀 그렇게 키워보지 뭐...
아들들이 워낙 크면 무뚝뚝해진다고는 하지만 안그런 아들도 간혹 있겠지.
난 아들이 셋이나 되니(ㅜㅜ) 그중에 한 명 정도는 딸같은 아들도 생기지 않을까? ^^;;;'
'맞아요, 언니. 꼭 있을거예요.ㅎㅎ'
그런데 엄마와 이모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연수가 얼른 끼어들었다.
"나! 나! 내가 딸같은 아들이잖아! 내가 그런 아들이 될꺼야~! "
'으... 으응~? 그..래... 우리 연수가 그렇지... 지금도 엄마랑 얘기도 많이 하고...^^;;'
ㅎㅎㅎ
내심 지금도 꼭 딸같이 성격이 다정한 연호나 고물고물한 갓난아기인 연제에게 기대를 걸고 한 말인데...
그런데 '친구같은 아들 여기 있는데 엄마는 어디서 찾고 있는거야?'하는 눈빛을 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연수의 얘기를 듣고보니 순간 미안했다.
걸핏하면 짖궂고 얄밉고 극성맞은 장난으로 엄마를 화나게 하는 못 말리는 개구장이.
또래 엄마들끼리 마주 앉으면 '아, 정말 내 스타일 아닌데~~'를 연발하게 만드는 여섯살 사내아이.
하지만 어느새 많이 자라 엄마를 도와주고 힘든 엄마를 위로해주기도 하는 우리 큰아들.
네 얘기에 웃고 네가 보여주는 빛나는 성장의 모습들에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순간도 정말 많은데
그만 엄마가 그런 것들을 생각 못했네..
태어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너는 줄곧 엄마 곁에서, 엄마의 제일 좋은 친구인데
엄마가 깜빡 잊고 있었네.
먼훗날에 친구돼주길 기다리지 말고 지금 네가 내 곁에 있을때 오손도손 아웅다웅 다정한 친구로 지내야지..
어느새 많이 큰 네 에너지를 받아주는게 힘에 부친다고,
여섯살 네 행동이 엄마 마음에 안 든다고,
동생들 돌보느라 바쁘고 힘들다고,
지금은 '엄마, 나랑도 놀아 줘~' 매달리는 너를 버거워하고 '그래, 놀자, 응응' 건성으로 대꾸할 때가 많았구나..ㅜ
미안하다, 연수야.
너와 나누는 이야기, 밝게 웃는 네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고맙다.
지금까지 딸같은 아들로 자라줘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
^^
2. 잘 안 되면
예전에 친정에서 받아온 늙은 호박을 어제서야 잡았다.
오늘 아침에 노란 속살을 칼로 썰어 삶고, 밤부터 불려놓은 찹쌀을 갈아 넣어 호박죽을 끓였다.
엄마의 요리에 늘 관심이 많은 연수가 옆에 와서 물었다.
"엄마, 호박죽 할 줄 알아? 이렇게 하는거 맞아?"
'...아마 맞을껄?'
"전에 해봤어?"
잘 생각이 안난다. 예전에 해 봤던가..?
'잘 모르겠네.. 근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호박 삶고, 쌀 넣고..'
"잘 안되면 어떡해?"
'글쎄...'
걱정이 되었다.
진짜 이렇게 하는게 아니면 어쩌지? 이상하게 되는거 아냐.. 불안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순간,
연수가 씩씩하게 말했다.
"다시 또 해보면 되지!"
^^
여섯살, 멋지구나.
그래, 이번에 잘 안되면 다음번에 다시 또 해보면 되지.
그때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거야, 이번에 해보면서 배운 것이 있을테니까..
아마도 '엄마, 나 이거 만들어줘, 저것 좀 그려줘~'하고 연수가 조를때마다
'니가 해봐, 엄마 지금 동생보느라 바빠..'하면
'난 잘 못한단 말이야, 잘 안돼~, 엄마가 해 줘~~!'하고 찡찡거리는 연수에게 내가 '자꾸 해보면 돼, 그럼 잘 할 수 있게 될꺼야'하고 말하며 연수의 청을 못 들어준 것이
세뇌되다시피 한 결과(ㅜㅜ)로 짐작되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 네게 그 말을 듣던 순간의 엄마 기분은 무척 시원+상쾌했다.
고맙다, 연수야 :)
+ 오늘 호박죽은 너무 연하게 되었다. 담엔 호박을 더 많이 넣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음..^^
그래도 수호제 모두 잘 먹어주어 다행. 흐뭇~
(자자~, 셋중에 누가 딸같은 아들이 될까? 엄마의 귀염둥이들, 저요! 저요! 해보세요~ㅎㅎ)
(엄마, 꿈이 너무 큰 거 아냐~~ 우린 그냥 아들들일 뿐이라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