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이들 재우는 저녁이면 늘 참 정신없다.

누워서 연제 젖물린 채로 연호 그림책 읽어주다가 연수 옛날이야기도 들려주다가

한 녀석이 물 찾으면 얼른 일어나 부엌에서 물 가져다주고, 어느 녀석이 또 어디가 아프다고 울어대면 거기 들여다보고 문질러주고 약발라주고, 그러다 또 갓난쟁이 젖주고..

 

며칠전, 연제 재우고 뒤이어 졸려서 엄마 찌찌 찾는 연호에게 연제 다 먹고난 빈젖 물려서 겨우 어린 두 녀석을 재워놓고 나니 

그제야 한숨이 쉬어지면서 그동안 저만치에서 혼자 뒹굴뒹굴 뒤척거리고 있는 연수가 보였다.

연수 곁에 가서 "연수야, 잘 자라.. 좋은 꿈 꾸고... 내일도 재미있게 잘 지내자.." 얘기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느새 쑥 커서 엄마가 동생들 돌보느라 종종거릴때 저도 봐달라고 보채지않고 혼자 조용히 기다릴 줄도 알게된 첫째..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에 연수에게 팔베게라도 해주려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 팔을 뻗는데

'으앙~'하면서 연제가 다시 깼다.

에고... 몸보다 마음이 더 고단해지는 그 순간

연수가 하던 말.

 

"에구.. 엄마는 정말 쉴 틈이 없구나.."

 

그걸.. 아는거야? 여섯살, 우리 아들. 벌써 그걸 알 나이가 된거야..?

 

연수가 연제만큼 작은 아기였던 시절을 기억한다.

연호만큼 커서 걷고 뛰고 깔깔깔 웃던 날들도..

그렇게 작디작던 내 첫아기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잠든 연수 바라보면서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순간 더없이 철든 것같은 멘트를 날려 엄마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던 우리 큰형아도

여전히 쪼그맣고 아직도 크려면 멀고 멀었다는 사실을 새록새록 확인시켜준다. 

얼굴에 '개구쟁이' 이렇게 써있는 여섯살 김연수.

유치원형아들에게 배운 '바보 똥개 멍청이'같은 말들이 재밌어서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엄마아빠동생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써보지 못해 안달이고

요리조리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 장난을 치면 엄마 반응이 어떨까?' 시험해보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듯

얄미운 장난이 끝이 없다.

만화에서 보고들은 버릇없는 표현들을 엄마아빠할머니께 연발하고, 조금만 제 맘에 안들면 버럭버럭 소리지르며 얼마나 불같이 펄펄 뛰는지...

천방지축 야단스럽게 커가는 남자아이 보고있기가 참 쉽지 않다.

 

며칠전에는 기어코 엄마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깊어지다 못해 이대로두면 안되겠다 싶어 처음으로 회초리를 들었다.

가느다란 회초리로 종아리를 딱 두대 맞고 나서 연수는 엉엉 울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형아들이 쓰는 욕을 배워하는 연수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받는다, 네 마음도 미워지고 듣는 사람도 마음이 아파서 잘 지낼 수가 없게되니 쓰지 말아라'하고 얘기했는데도 저는 재미삼아, 또 뭔가 속이 상할 때 엄마와 동생에게 거칠게 그 욕을 쓰며 화를 내기에 그대로두면 어른들 앞에서도 큰 실수 하겠다 싶어 강하게 안된다고 알려주려다보니 회초리를 들게 되었다.

한참을 서럽게 울고난 뒤로 연수는 그 말은 다시는 쓰지 않았다.

엄마가 혼냈던 그 표현만큼은 잊어먹은 것처럼 연수 입에서 사라졌다. 정말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회초리 자체가 연수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고, 어린 마음이 무섭고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한 결과 회초리를 불러온 그 말 자체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회초리를 들고나서 나도 마음이 무척 아프고 무거웠다. 다른 방법으로 따끔하고 엄하게, 분명하게 인지시켜줄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매에, 폭력에 기대고만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연수가 그 뒤로 저 혼자 1인2역을 하며 '너, 김연수, 네가 잘못했으니 너는 맞아야해!'하고 말하며 저를 회초리로 때리는 시늉을 하는 모습도 보고, 연호에게도 '너 한번만 더 잘못하면 형아한테 맞는다~'하고 엄포놓는 것을 보며 그 일이 연수 마음에 남긴 큰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저녁먹다가 그 얘기가 다시 나왔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께서 '엄마가 연수 잘 되라고, 잘 크라고 그때 연수 때린거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연수는 혼잣말하듯이 뭐라 궁시렁거리며 제 방으로 갔는데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연수가 한 말은 '그래도 말로 해야지..'. --;;;

 

여섯살은 이제 다 아는 나이인갑다.

엄마가 잠시도 쉴 틈없이 힘들다는 것도, 때리지말고 말로 가르쳐야한다는 것도, 갓난아기 동생이 큰형아가 곁에 오면 편안해한다는 것도...

연제는 연수 목소리가 들리면 웃으면서 큰형아를 찾는다. 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작은 형아는 아직 어려서 제 곁에 오면 어른들도 혹시 아기를 잘못 건들까봐 불안해하고 또 실제로 위험하게 찔러보고 깨무는 때도 있어서 연제도 그 기척을 아는지 작은 형아가 곁에 오면 금새 울음이 터지고만다.

그 얘기를 연수가 했다. "엄마, 연제는 큰형아가 좋은가봐.. 큰형아는 아프게 안 하니까 큰형아가 옆에 오면 울지않고 가만히 있나봐~"   

그걸 아는구나.... 나는 또 연수한테 놀랐다.

 

많은 감정을, 많은 느낌을 이해하고 알아가고 있는 여섯살 연수야..

너를 품어주고 네 마음에 고운 날개를 달아주려면

엄마도 더 크고 넓고 따뜻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소리지르고 놀 때보면 거칠고 개구진 독불장군이지만

네 마음속에는 여리고 곱고 보드라운 구석들도 참 많다는걸 엄마는 알지...

오늘밤, 창 밖은 깜깜해서 무섭다며 엄마 곁으로, 잠든 연제 곁으로 다가와서 연제 작은 손을 한참 어루만지고 엄마 팔끝을 베고 잠든 연수야.

고맙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얘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