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순이 어디 가니 -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보리 |
첫아이 돌선물로 이 책을 받았다.
그림책이라고는 보드북 두어권밖에 없었던 때라 어린 아기보다 내가 더 설레어하면서 책장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한장씩 책장을 넘기며 읽어주다가 그만 목이 콱 메어왔다.
목소리가 이상해지고, 눈물을 자꾸 훔치고, 그러다가 우는 자신이 멋쩍어서 또 헤헤 웃는 엄마를 우리 꼬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려나..?
책 내용은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니다. ^^
어린 여자아이 순이가 엄마를 따라 밭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아버지께 새참을 갖다드리러 가는 길에
들쥐, 청개구리, 딱따구리 들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순이 어디 가니?' 하고 묻는.
봄날 들판의 풍경이 너무나 따뜻하고 밝은 색감으로 그려져있고, 머리에 새참 광주리를 이고 멀리 걸어가시는 엄마의 뒷모습, 양은주전자를 들고 팔랑팔랑 따라가는 순이의 모습이 아련하고 고운 그림책이다.
문제는 할머니.
그림책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증조할머니랑 똑같이 생기셨다!
하얀 머리를 하나로 묶어 비녀로 쪽진 모습, 얼굴 모양.. 우리 증조할머니를 보고 그렸나? 싶을 만큼 똑같이 생긴 책속의 할머니를 보고 시작부터 나는 콧날이 시큰해져 버렸던 것이다.
어린시절에 나는 증조할머니 짝꿍이었다. 언니는 할머니 짝꿍, 오빠는 할아버지 짝꿍.. 함께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던 어린시절이었다. 나는 증조할머니와 한 방을 썼다. 귀가 잘 안들리는 할머니를 위해 큰소리로 다른 식구들 말을 전해주는 통역사 노릇도 하고, 할머니가 살짝 챙겨주시는 사탕과 과자를 오물오물 받아먹으며 놀았다. 증조할머니는 내가 열네살때, 아흔여섯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자그마한 몸, 주름진 얼굴, 하얀 머리.. 말수가 거의 없으셨던, 하얀 치마저고리를 늘 입고계셨던, 나를 좋아해주셨던 다정하고 고운 증조할머니.
그림책이 주는 감동과 기쁨이 참 크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림 한장으로 단박에 나를 유년시절로, 증조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속으로 데려가 주었던 책.
이 책에는 젊은 시절의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도 들어있고, 새참이고 가는 엄마 뒤로 주전자를 들고 따라갔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도 들어있다.
아마 그 시절의 나도 순이처럼 들판의 많은 자연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다정한 목소리들, 잘있니, 욱아, 우리는 잘 있어, 손흔들듯 흔들리는 나뭇잎, 풀잎들, 먼 산 풍경에서 늘 듣는다.
세월호 이야기 - 한뼘작가들 지음/별숲 |
<내 인생의 그림책>이란 주제로 '엄마를 위한 그림책' 모임 엄마들과 함께 글을 쓰기로 하고,
무슨 책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보았다.
그림책에도 숨결이 있다면 이 책의 숨결은 거칠다. 뜨거운 울음이 목구멍에 차있어서 '흑흑'하고 금방 터져나올 것 같은 그런 글과 그림의 모음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고, 지금도 울고있다.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남을 큰 아픔과 슬픔을 그림책 작가들이 어떻게 같이 지고 나가려고 하는지.. 애쓰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기억'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충 잊고 지나가자 하다가는 다시 반복될지 모르는 무서운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명 한 명.. 그 삶의 이야기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슈퍼집 착한 아들, 음악 좋아하는 아이, 구두 좋아하던 딸, 아들 만나러가던 엄마, 엄마아빠동생과 함께 이사가던 일곱살 어린 아이...
한번 쭉 읽고나니 힘이 탁 풀려서 '내가 이 그림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꽂이에 꽂힌 다른 그림책들처럼 이 책도 이따금 한번씩, 그냥 뽑아서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꼭 그러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면 함께 읽기도 할 것이다. 작은 내가,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슬플 사람, 아픈 사람을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내가, 우리가 되고싶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