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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09 설 이야기 2
  2. 2014.01.25 서른일곱의 일월 4
  3. 2014.01.05 강릉에서 돌아온 날 2
  4. 2013.12.20 형제들 8
  5. 2013.12.13 눈 오는 날 6
  6. 2013.12.06 생일 8
  7. 2013.11.18 딸 같은 아들 6
  8. 2013.11.15 umma! 자란다 4
  9. 2013.11.01 세 아이와 함께 걷는 산길 - 양평 수종사를 가다 13
  10. 2013.09.17 한 시절 10



설을 잘 쇠고 왔다.


어른들과 떨어져 살고 자연의 흐름에도 많이 무딘 도시의 엄마다 보니 

명절이나 절기같은 우리네 세시풍속에 대해서도 많이 둔감해진다.

설은 차례지내고 세배하고 떡국먹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 날이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하며 옷가방안에 고운 한복을 챙겨넣었다. 

하지만 그 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 큰 명절을 맞는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한 며칠 아이들 데리고 시댁에 가서 지내다오는 시간. 

제사음식 준비며 대식구가 한데 모여 여러날 먹고 지내는 일로 고달프기도 하겠지만   

흩어졌던 가족들이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이니 반갑고 좋은 연휴.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종종거리며 큰 가방 여럿에 짐을 싸고 세 아이 씻기고 옷입혀 차에 태우고 숨차게 고속도로에 올랐다.









그런데 막상 명절이 시작되고보니 마음에 다가오는 일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참 많이 컸고, 고왔다.

오랫만에 만난 사촌들끼리 다정하게 어울려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아버님어머님께는 다섯명의 손주가 있다. 

우리 부부보다 먼저 결혼한 아가씨네 아이들 둘, 그리고 우리 아이들 셋. 

아직 결혼 전인 도련님이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더 많은 아이들이 명절에 할아버지할머니를 찾아올 것이다. ^^


시부모님은 아이들을 참 좋아하신다.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보면 어린 삼남매가 환하게,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이 많다.

행복하게 자랐구나.. 부모님이 참 예뻐하며 키우셨구나.. 싶었다.

살림은 어렵고 일은 고단하셨겠지만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시부모님이 삼남매를 바라보며 이렇게 환하게 많이 웃으셨구나.. 짐작하곤 했다.








결혼전에 돌잔치에 가서 처음 보았던 시댁의 큰조카가 어느새 아홉살이 되었다. 

귀엽고 잘생긴 큰조카는 여전히 개구쟁이지만 그래도 이젠 살짝 의젓한 느낌도 든다. 

내 큰아이 연수가 일곱살인 것도 신기하다.

내 삶에 흐르는 시간을 훌쩍 자란 아이들을 보며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평 남짓한 작은 주공아파트인 시댁에 부모님, 우리 가족, 아가씨네 가족, 도련님이 모두 모이면 12명.

큰 방, 작은 방, 거실과 주방마다 아이들과 어른들로 넘쳐난다. ^^

남편이 학생이던 무렵에 임대로 들어와 2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은 낡고 좁다.

하지만 어머님이 워낙 깔끔하게 닦고 정리하며 살아오셔서 따뜻하고 깨끗하다.


처음 결혼해서 시댁에 왔을 때 나는 속으로 많이 놀랐다.

우선 집이 너무 작아서 놀랐고, 집안 곳곳에 버리지 못한 오래된 세간들이 층층이 쌓여있어서 놀랐고, 그럼에도 또 그 낡은 집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고 늘 정리해온 부지런한 손길이 느껴져서 놀랐다.

가장 놀라운 것은 분명히 좁고 답답해보이는 집인데 좀 앉아있다보니 의외로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 느낌은 시댁에 갈 때마다 반복되었다. 

나중에는 시댁에서 자고 나면 왠지 '아.. 내가 지금 부모님 품에 와서 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포근한 기운이 느껴졌다.  


결혼하고 7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천천히 그 답을 찾게 되었다. 

부모님은 아이들을 참 사랑하셨다. 

하나하나 사랑하셨고, 다정하셨다. 

삼남매는 다정하게 자랐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하시는 오토바이 가게에 붙은 단칸방에서 서로 살을 부대끼고 뒹굴고 안고 아끼며 자랐다.

커서도 여전히 집은 작고 형편은 어려웠으므로 서로 많이 챙겨주고 배려하고 염려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명절에 만나면 어머님은 늘 어린 아기들을 키우고있는 나를 걱정하고 안쓰러워하셔서 제사음식 장만부터 설겆이까지 거의 내게 안 맡기고 본인이 다 하려 하신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명절날 오후에 친정으로 오는 아가씨는 역시 새언니인 내가 힘들까봐 설겆이며 우리 큰아이들 밥먹이는 것까지 다 살펴준다. 

명절지나고 좀 한가한 다음날 오전, 어머니가 아까워서 못 버리고 쌓아둔 낡은 세간살이들을 정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명절 지내느라 어질러진 부엌도 정돈하고, 좁은 수납공간들을 두루두루 훑어 숨통을 좀 틔워놓는 것도 아가씨다. 

명절이면 우리는 모두 아가씨네 오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함께 놀 사촌형누나를 기다리고, 남편은 좋은 술친구인 매제를 기다리고, 나는 속깊고 고마운 시누를 기다린다.  

얼굴도, 마음도 곱고 예쁜 딸인 아가씨가 오면 낡은 집은 더 환해지고 따뜻해지는 것 같다. 

집은 더 복닥거리고, 잠자리도 다들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함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명절마다 두 밤, 세 밤씩 한데 모여 자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물론이요, 고모네와 삼촌이 한해 한해 더 살갑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형제가 다정한 것이 참 큰 복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시댁 형편이 넉넉치 않고,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늘 힘들게 몸써서 일하시는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고 걱정되지만 

가족들이 서로에게 다정하고 화목하게 지내왔다는 것은 정말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그것이 참 큰 내 복임을 명절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모의 둘째인 예쁜 현서는 새해 다섯살, 우리 연호는 네살이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둘째들이 요리 조리 몰려다니며 깔깔거리고 장난치고 뒹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명절이면 아침 일찍 찾아가 함께 차례를 지내고 오는 큰댁에는 새해 세 살이 된 아기가 한 명있다. 

촌수로는 우리에게 조카뻘이지만 나이는 우리와 동갑인 큰댁 조카부부는 우리보다 두어해 일찍 결혼했지만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명절마다 우리집에는 손주들이 하나둘 늘어 네 명이 되도록 큰댁에는 아이가 없는 것이 마음이 쓰이곤 했는데 

참 기쁘게도 연제 태어나기 얼마 전에 큰댁에도 첫 손주가 태어났다. 

돌지난지 석달쯤 된 그 아기가 올 설에는 한복을 곱게 입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세배 흉내도 내서 두 집 가족이 모두 크게 웃으며 세배돈을 고사리손에 쥐어주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

어른은 아이를 보살피고, 아이들은 제 힘껏 뛰놀고 웃으며 자라고, 어른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게 되는 것.

그게 참 행복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가족이 모두 모인 명절에는 새삼 깊이 느끼게 된다. 

 

아이 키우고 돈 벌며 사는 일이 힘들고 정신없어 부모들은 별다른 새해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새해의 감흥을 따로 찾을 여유도 없지만 

문득 이렇게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의 훌쩍 자란 모습을 볼 때

'아 나의 지난 시간이 저 속에 녹아있구나.' 생각하게 되고 

'올해도 저 아이들을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키워야지..' 언뜻 다짐하는 것으로 새해의 각오도 세워보게 된다. 









순둥이 막내와 할아버지. ^^

낯가림이 별로 없는 연제는 이번 명절에 할아버지와 짝꿍이 되어 잘 놀았다. 


말수가 별로 없으시고 무뚝뚝한 경상도 분인 아버님은 조금 큰 아이들은 잘 데리고 놀지 못하신다. 

마음은 참 다정하신데 표현을 잘 못하시니 아이들과 살갑게 어울리지 못하시는 것이다. 

시댁 식구들이 모일 때면 아버님은 한번씩 큰 손주들 네 명을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오시며 슈퍼에서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과자를 사주시곤 했다. 

아이들도 그걸 알아서 할아버지 댁에 가면 으레 장난감을 한번은 사주시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조르고 한다.  

그것이 거의 유일한 아버님의 애정표현이고, 큰손주들과 어울리시는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 돌도 안된 연제같은 아기 손주에게는 아버님도 그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실 수가 있다.

안아주고, 얼러주고, 좋아하시는 유행가 노래에 맞춰 어린 손주의 손을 잡고 흔들며 어깨춤도 추시고, 입에 맛난 것을 넣어주시면서 행복해하시고 기뻐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참 좋았다.

연수는 어려서도 낯가림이 심해 할아버지께 거의 가지 않았다. 

연호는 지금의 연제처럼 아기시절에는 할아버지께 잘 갔지만 네살이 된 올해는 할아버지가 안아보려고 해도 몸을 빼고 도망을 다녔다. 어느새 많이 자라서 고집도 궁리도 커진 연호인지라 오랫만에 뵌 조금 엄한 인상의 할아버지께 금방 살갑게 대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자주 뵙고, 많이 같이 놀고 하며 다정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아이들이 할머니할아버지를 푸근하게 가깝게 느낄텐데.. 

내가 그걸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죄송했다. 이제 연제도 좀 컸으니 좀더 자주 시댁에 내려오고 해야지..   

연제가 자라서도 할아버지를 잘 따르고 할아버지 품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연수랑 연호도 할아버지와 차츰 더 많은 추억을 함께 만들면서 할아버지를 다정하게 대했으면 좋겠고.












아버님은 속정이 깊으시다.
내게도 그러시고, 아들들과 딸, 손주들을 대하시는 것을 보면 그 다정함을 알겠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버님께 속상해하실 때가 많다. 
명절이, 삶이, 아버님이.. 어머님을 고달프고 힘들고 속상하게 할 때가 많아서 그런 것이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어머님이 화를 내실 때 아버님은 별 대꾸는 않으시지만 좀 슬퍼보인다.
그 풍경이 결혼 후 아이들을 데리고 시부모님을 뵐 때 내가 가장 당황스럽고 마음 아픈 풍경이었다.
나중에 어머님께 들으니 젊으셨을 때는 아버님이 참 화를 많이 내셨었단다.
그러더니 몇해전부터는 화를 더이상 안 낸다고 하셨다.  
아버님이 화를 잘 내시던 시절을 마음 졸이며 견뎌내셨던 어머님은 
이제는 그 화를 아버님께 돌려주시려는 것처럼 한두마디 말끝에도 아버님께 울컥 화를 내시곤 한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익숙치 않아서 긴장하는 것일뿐
어머님아버님 사이에는 크게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저 일상적인 대화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마음이 자주 조마조마했다.

자식들은 모두 아버님을 좋아한다. 
야무진 딸인 아가씨가 아버님께 술 좀 적게 드시라, 엄마 말 좀 들으라며 아버지께 이런저런 얘기를 시원하게 잘 하지만 
큰아들인 남편은 그런 말을 않는다.
대신 아버지와 함께 거나하게 취하도록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 
어려운 시절에, 가난한 형편에서, 어딘가 비빌 언덕도, 특별한 기회도 없었던 
오토바이와 집짓는 기술 밖에 없었던 한 남자가 
어여쁜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 
크게 성공하지도 못했고, 때로 큰 실수와 실패도 겪었고, 
그래서 가족들을 힘들게도 했지만 
그 남자가 자신들을 참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며 자란 자식들은 
지금도 그들을 따뜻하게 지켜봐주는 
나이든 아버지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어머님은 아마도 아버님과 함께 살아온 긴 세월동안 우리가 미처 짐작하기도 어려운 많은 일들을 겪으시면서 애정 그 이상의 수많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지금 이렇게 아버님을 대하고 계실 것이다.
시간은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고, 삶은 계속 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께 힘이 좀 되어드리고, 그래서 부모님이 몸도 마음도 조금더 편안하고 푸근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보살펴드려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다. 
이제부터는 조금씩 더 그렇게 할 것이다. 
손주들이 할아버지할머니께 드리는 행복만큼이나 다 큰 자식들도 부모님께 행복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작년에 고모네가 시댁의 TV를 3D 입체영상도 볼 수 있는 큰 것으로 바꿔드렸다. ^^

손주들에게 3D 안경을 씌어주시는 아버님의 즐거움이 내게도 전해졌다. 

이런 풍경이 있어서 명절이 좋다.








설날 큰댁 차례, 우리집 차례가 끝나고 나면 오후 느지막히는 어머니의 친정인 청상에 간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엄마인 청상 증조할머니께 세배를 했다.

우리도 외할머니께 세배를 하고 아이들과 똑같이 빳빳한 천원 새 지폐 한장씩 세배돈을 받았다.

청상할머니께 받는 천원은 늘 내게 복돈으로 여겨져서 나는 그 돈은 쓰지 않고 내 책상서랍속 지갑에 간직해왔다.

올해도 복돈을 받았다. 기뻤다. ^^ 아이처럼, 할머니께 받는 세배돈이 좋다. 










청상 진외가에 가면 아이들은 신이 난다. 
장작이 산더미같이 쌓인 어두운 광에 앉아 증조할머니와 같이 아궁이에 나무를 넣어 불을 떼보기도 하고..








고모부와 사촌, 육촌들과 어울려 시골 동네를 한바퀴 돌기도 한다. 









다리 위에서 냇물에 물고기가 있나.. 살펴보는 중이다.


길에서 올려다보이는 앞산 산등성이에는 외증조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다.

외증조할아버지가 거기서 '조기 내 증손주 녀석들이 뛰어가는구나' 하시며 굽어보실 것 같다.

논밭과 내를 건너 바라보이는 앞산에 봉긋하게 솟은 외할아버님의 무덤은 청상 외가집 마당에서도 잘 보인다.

예전에는 누구나 시외할아버님처럼 

자기가 태어나 태를 묻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다가 

돌아가신 후에는 살던 집이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 자리를 마련하고 누워 잠들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여러번 집을 옮기며 자라고, 고향이라 부를만한 동네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다 또 어느 낯선 자리에 누워 잠드는 대다수 요즘 사람들의 삶이

문득 참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공간의 안정감. 

어린 시절을 한 동네에서 오롯하게 보낸 나에게는 이것이 참 크게 다가온다.

지금도 강릉 고향집에 가면 내가 태어난 집 자리가 지금 집과 밭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다보이고 

옛집의 눈에 익은 뒷산의 소나무숲과 대나무숲이 수런수런 반갑게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마음 깊이 찡한 감동과 평화를 느끼곤 한다. 

청상은 비록 시댁이지만 내게는 그런 친정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푸근한 곳이다.

명절마다 찾아와 외할머니를 뵙고 시골집의 돌답과 감나무와 대나무숲과 앞산을 바라보면 왠지모르게 마음이 평화로워지곤 한다.


외할아버님은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 돌아가셨다. 

만난지 얼마 되지않아 그저 호감만 조금 가지고 있을 때 전화통화를 하다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며칠 고향에 내려가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원래 어른들을 좋아하는 나는 잘 모르는 어르신이지만 그 날 일기장에 짧게 명복을 빌어드렸었다.

그 후 남편과 결혼을 하고

외가에 와서 할아버지의 무덤을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새롭다.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알던 어르신처럼 '안녕하세요, 할아버지'하고 인사드리게 된다.









아이들은 굽이굽이 시골 마을을 신나게 뛰어다닌다.









어릴때 시골에서 자란 우리 고모부가 

솜씨좋게 물고기를 여러 마리 잡아오셨다.

따라갔던 아이들이 모두 신기해서 어쩔 줄 모른다.

패트병 입구를 잘라 거꾸로 끼우고 그 안에 된장 한숟갈을 넣은 어항(?)을 작은 냇물에 쳐두었더니 

아이들 손가락만한 물고기가 아홉마리나 잡힌 것이다. ^^


손을 넣어 만져보고, 세숫대야를 흔들어 공기를 섞어주던 연수와 연호는 

'엄마, 물고기 우리집에 데려가서 키우면 안 돼?' 했지만

물 좋고 공기 좋은 청상을 떠나는 것은 이 물고기들에게 못할 일.

국 끓여먹을 것도 아니어서 

한참 외갓집 마당의 세숫대야 안을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고모부와 일군의 조무라기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저희 살던 냇물로 돌아갔다. 










시골집에 오면 나만큼 신나는,

나보다 할 줄 아는 것은 훨씬 많으신 

시골출신 잘생긴 우리 고모부. ^^

아궁이에 군밤도 구워주고, 고구마도 척척 굽는다.

남쪽 섬 출신인 사촌고모부는 아이들 데리고 강아지풀 꽃다발 만들어가며 동네 한바퀴 산책도 다녀오시고..

시골집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서 좋다. 

TV만화 틀어주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 지켜보는 것말고 

추억과 이야기거리가 될만한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이들이 노는 동안 어른들은 바쁘시다.

가마솥에서는 대식구가 먹을 육계장이 끓고..








서울이모님은 명절 지내며 어수선해진 외가의 부엌과 마당을 통털어 살림살이들을 깨끗하게 정리하신다.

외할머니께는 따님이 세 분 있는데, 이 분들이 모이면 정말 대단하시다.

어마어마한 청소와 정리를 척척 해내고, 어머어마한 양의 먹거리들을 끝도 없이 내놓고, 그리고 또 어마어마한 양의 짐보따리를 꾸려놓으신다.

도시의 자식들 가져가라고 외할머니가 마련해놓으신 먹거리들을 필요한 집집으로 분배해서 싸고 

혼자 지내시는 외할머니가 찾기 편하게, 드시기 편하게 부엌을 정리하고 음식을 마련해놓는 손길이 다라라락 움직인다.  

두 분의 며느님도 명절을 치르며 참 많은 일들을 하시지만

모두 모여 있을 때보면 역시 이 집에서 태어나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지금도 명절이면 모두 엄마 곁에 모이는 

이 댁의 세 분 따님들이 척척 가장 익숙한 손놀림으로 집 안팍을 돌보는 것이 느껴진다. 









외할머니는 어마무시하게 많은 자손들을 위해

이 집에서 가마솥으로 도토리묵을 한 다라, 두부를 한 다라 손수 만들어두셨고

떡국떡을 또 엄청 많이, 배추와 무를 또 이만큼 땅속에 묻어두고(이건 가을에), 고구마에 밤에, 간장 된장 고추장에,

엿과 땅콩을 넣어 강정을 또 이따만큼 손수 만들어놓으셨다. 

그리고 따로 튀밥은 어린 연제 먹으라고 우리집으로 또 한봉지 싸놓으셨다.    

두부만들며 나온 비지도 또 봉지봉지...


아이들 옷 챙기고, 어른들드릴 선물 조금, 용돈 조금 챙겨 내려오는 것이 명절 준비의 전부인 내가 

외할머니가 이 시간을 위해 들이시는 공을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자손들의 새해를 열어주기 위해 몇날 밤, 몇날 날을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얼마나 애를 쓰며 보내셨을까.


 








설 연휴 동안 우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청상 외가에 갔다. 

상주시내에 있는 시댁에서 청상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가니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매일 새로운 친지들이 오고가며 함께 뭐 맛난 것을 먹자 부르고, 외할머니께 무엇을 받아오고, 가져다드리고, 또 아이들이 놀러를 가고 하느라 빠질 날이 없었다.  

마침 날도 따뜻해 마당에서 놀고 먹고 치우기에 참 좋았다.


그런데 작은 집과 마당 가득히 북적하던 자손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 

다시 할머니 혼자 남으시면 갑자기 너무 고요해진 집에서 쓸쓸하시겠다.. 

우리 부부는 차를 타고 돌아오며 얘기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할머니께 전화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돌아온지 일주일이 되도록 못 드렸다.ㅠㅠ









오랫동안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썼던 2014년의 설 이야기를 이제 끝내야겠다.

처음 컴퓨터의 사진 폴더에서 이 사진을 작게 봤을 때 나는 어머니와 큰댁 아주머니가 우리집에서 제사 지낸 뒤에 함께 설겆이하시는 사진인줄 알았다. 

그리고는 이걸 내가 찍은줄 알고 '에구.. 정말 일도 참 안 하더니만 어른들 일하는 사진찍을 여유까지 있었구나, 욱' 하고 살짝 민망해했다.

그런데 클릭해서 크게 보니

이게 왠 걸... 어머님 옆에 있는 사람이 나였다. 

나는 내가 이렇게 덩치가 큰 사람인줄 몰랐던 것이다. ㅠㅠㅠㅠ

게다가 저 파마머리 하며.....

나는 정말로 과수원농사와 젖소 농장까지 크게 하시는, 우리 어머니보다 나이도 많으신 양촌 아주머니인줄만 알았다. 엉엉.


연제 키우며 젖을 많이 먹여서인가, 보는 사람마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해서 나는 내가 정말로 살이 많이 빠진줄 알았는데 

역시 얼굴살만 빠진 것이지 몸의 골격은 삼형제 안고 업고 하며 키우는 엄마 아니랄까봐 어깨며 허리며 무슨 역도선수만큼 우람하네....

한참을 충격먹고, 착각한게 웃겨서 혼자 웃고 하다가

우리 어머님이 워낙 갸냘프셔서 내가 더 우람해보이는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그도 설득력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시 내가 뚱뚱하긴 뚱뚱한 것이다.

새해를 열며 스스로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서른일곱의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어머님은 올해 설을 지내며 안방의 큰 침대를 버리셨다.

결혼하고부터 시댁에 내려갈 때면 어머님은 늘 시댁에서 제일 아늑한 공간인 안방을 우리에게 내주셨다. 

아버님은 평소에도 거실의 매트에서 주무시고, 어머님만 안방에서 주무시는데 

우리가 가면 어머님은 안방을 우리에게 주시고 어머님은 작은 방이나 거실에서 주무시곤 하셨다.

안방 침대는 낡았지만 튼튼했고 포근해서 식구들 모두 다 거기서 잠자기를 좋아했다. 

아이들은 거기서 방방 뛰며 놀았고, 남자 어른들이 한가한 시간에 살짝 낮잠자는 곳도 그 침대였다. 

하지만 나는 연수가 아주 어렸던 때를 제외하고는 늘 침대 밑에서 잤다.

침대와 장롱 사이에 어른 한사람 누울 만한 공간에서 어린 연호 젖을 먹이며 함께 잤고, 

연제가 태어난 후에는 연제 젖 먹여 재우고, 엄마 찾아 침대 밑으로 내려온 연호까지 어찌어찌 겨우 끌어안고 재우느라 좁은 공간에서 엎치락뒤치락 했다.

거실에서 자면 조금더 넓긴 하겠지만 아기가 어려 밤에 자주 깨니 다른 식구들 자는데 방해도 되겠고, 좀 춥기도 해서 

거실은 늘 아가씨 가족과 부모님이 주무시고 우리는 안방, 도련님은 작은방을 썼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어머님은 집이 좁은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이런저런 의논을 구하셨다.

좀더 외곽의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집터에 새로 집을 짓자, 아니다, 이 집을 리모델링 수준으로 깔끔하게 고치면 공간이 좀더 넓어질거다...

주로 이 세가지 안이 내가 결혼하고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명절마다 도마에 올라서 설왕설래했지만

어느 쪽으로도 실행은 잘 되지 않았다.

선뜻 움직이기 힘든 형편 때문이기도 하고, 또 명절 때가 아니면 부모님 두 분이 지내시기에는 전혀 좁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은 익숙하고 좋은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언제쯤, 어떻게 이 논의의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님은 우선 더는 안되겠다 하시며 내가 아이들과 청상 외가에 가있던 시간에 안방의 침대를 내다 버리셨다.

작은 방의 잘 쓰지않는 작은 책상과 역시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정수기도 이번에 같이 정리하셨다.

아끼고 또 아끼는 것이 삶의 절대적인 자세가 되어있는 어머니께서 멀쩡한 물건들을, 게다가 어머니께는 요긴하고 좋은 물건을 버리시는 것은 정말로 큰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많은 며느리가 불과 몇 밤이지만 불편하겠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좀 편하게 자게 해주시려는 어머님 마음이 정말 감사했다.



가족이 특별한 것은 삶을 함께 살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는 밉고 서운하고 싫은 순간도 있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도 있다.

슬픈 일도 함께 견디고, 기쁜 순간도 같이 맞으면서 점점 가족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이들을 보면서도 많이 느낀다. 

형제가 있어서 처음부터 좋기만 한 것이 아니고, 싫고 밉고 싸우다가도 또 같이 웃고 뒹굴고 놀면서 점점 닮아가고 진하게 정이 드는 것. 

그게 형제이고, 가족인게 아닐까.  

결혼과 함께 새롭게 생긴 가족들인 시댁 식구들은 이름은 '가족'이지만 실제 함께 지낸 세월이 없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느끼기가 힘들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로 출발했다.

하지만 시간은 쌓인다. 새롭게 사귄 친구와도 7년이면 긴 시간이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될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어머님아버님은 정말 많이 노력해주셨다. 나를 좋아해주셨고, 아이들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들로 사랑하고 계시다.

이제는 나도 많이 다가가야할 때인 것 같다.

내 블로그를 보시는 어머님이 이 글을 보시면 '뭐 그리 부끄런 일까지 다 적었냐' 하실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 것이 내가 시댁 식구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는 나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오래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 관심가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쓰게 된다.

솔직하게 쓰려고 노럭한다.  

내가 쓴 것을 나는 또 마음에 담는다. 

그래서 쓰는 것이 내게는 노력하는 것이 된다.



설이 잘 지나갔다.

부모님, 가족, 고향, 형제들, 아이들, 자연, 삶... 많이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한 해를 살아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4. 1. 25. 11:33



겨울비가 촉촉히 내리는 토요일 오전이다.

남편이 큰 아이들을 데리고 치과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간 덕분에 나는 연제 오전낮잠 재워놓고 커피 한잔 마시며 조용히 글쓸 짬이 생겼다.

이런 때에는 세상이 모두 온통 고요한 것 같다.


새해가 시작되고 어느새 한 달이 훌쩍 흘렀다.

겨울이고, 아직 연제가 어린 아가라 바깥 출입을 많이 못해 주로 집안에서 보내는 날들이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식구가 다섯이나 되다보니 자잘한 일들이 늘 끊임없이 많아서 작은 집안에서도 종종거리고 왔다갔다하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살았다. 


이번 겨울은 이렇게 보내야하고, 보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어릴 떄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단조롭고, 익숙한 생활의 리듬을 지키는 것, 역동적인 변화와 모험의 즐거움은 잠시 유보하고 조금은 심심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더 여물어지고 단단하게 자라는 아기의 성장을 눈여겨 보는 것.

연제 첫 돌이 멀지않은 이번 겨울은 그런 것들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연제 하나만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면 아마 요렇게만 지냈겠지만..

ㅎㅎ

나는 말같이 펄펄한 일곱살 연수와 한창 예쁘고 한창 미운 네살 연호를 진즉부터 키우고있는 삼형제 엄마이므로~~

이 겨울은 또 매일같이 동네 냇가 둑에서 눈썰매를 타고

밤이면 그 여파로 등허리팔다리 안아픈데가 없어서 끙끙 앓으며 애들과 같이 곯아떨어져 

책은 커녕 블로그 한번 열어보기가 힘든 날들이기도 했다.


일곱살 연수는 눈썰매를 어찌나 잘 타는지 혼자 큰 썰매를 들고 냇가까지 군말없이 씩씩하게 걸어가 

몇십번이고 지치지도 않고 썰매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리곤 했다. 

춥고 졸린 동생들이 먼저 집에 오고 싶어 앙앙 울 떄는 연수만 아랫집 형아와 한시간쯤 더 썰매를 타고는 형아엄마와 함께 돌아오기도 했다.

일요일에 내린 눈으로 월, 화, 수, 목 나흘을 썰매를 타고 인제는 거의 눈이 녹았다.

이 겨울이 다가기 전에 눈이 또 온다면 우린 몇번은 더 신나게 눈썰매를 탈 수 있겠다. 

연제가 순하게 유모차에 잘 앉아있어 주어서 아직 형아처럼 혼자 타는건 어려워하는 연호를 내 앞에 앉히고 나도 같이 눈썰매를 여러번 탔다.

엉덩이는 아팠어도 가파른 경사면을 쌩~! 하고 달려내려오는 그 느낌만큼은 정말 신나고 재밌었다. ㅎㅎ 

서른일곱에 이러고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다행히 나는 막내가 어리니 아마도 마흔까지도 동네 냇가에서 눈썰매를 타게 될 것이다. 

나중에 손주들이 태어나면 일흔일곱 할머니가 되어서도 꼬맹이들이랑 눈썰매도 타고 얼음썰매도 타야지...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그렇게 즐거운 겨울을 오래오래 보내야지. 



그럴려면 건강해야한다. 

1월에 한번 많이 아팠다.

몹시 추운 주말, 아이들 데리고 남편과 신나게 공룡박물관에 다녀왔었다. 

모처럼 서울 복판에 나간 김에 내가 좋아하는 '칼질의 재발견'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해서  

너무 신난 나머지 추운 저녁 서촌 골목길을 연제 아기띠해서 안고 돌아다니며 '빵나무'라는 예쁜 빵집도 들리고 

칼질에서 저녁도 잘 먹고 왔는데 

너무 과식을 했던지 그만 돌아와서 배탈이 났다. 

칼질의 조 세프가 1년만에 만났다고 반가워하며 삼형제 먹으라고 고기도 잔뜩 주고해서 넘 고마웠는데

다 같이 잘 먹고 다행히 아이들과 남편은 모두 멀쩡한데 나 혼자 탈이 난 것이다. 

배탈은 하룻밤 만에 나았지만 그 뒤로 며칠을 몸살과 소화불량 상태로 끙끙 앓았다.

아마도 내가 워낙 요새 바깥 출입을 안 하다보니 모처럼 많이 걷고, 어린 아기 데리고 신경쓰며 급하게 밥먹고 하며  몸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남편이 주중에 하루 휴가를 내고 쉬면서 큰 아이들을 봐주어서 내가 연제 데리고 많이 자고, 쉬면서 천천히 나았다.







11월에도 한번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이번에 또 앓고 나니 '내가 몸이 많이 약해졌구나..' 싶었다.

칠년째 거의 쉬지않고 모유수유를 하고 있고, 어린 아기들을 안고 업고 하며 키우다 보니

반복되는 살림과 육아의 몸놀림들은 큰 무리없이 해내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 몸을 다르게 움직이면 금새 탈이 나고 후유증이 오래 간다. 

몸을 좀 살피고 다양하게 써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밤에 걷기로 마음먹었다.


딱 작년 이맘때쯤, 연제 낳을 준비하면서 

남편이 일찍 퇴근한 밤이면 아이들 재워놓고 나 혼자 집 옆 냇가길을 걸었었다.

한 시간쯤 말없이 천천히 냇가옆 산책로를 걷다보면

졸졸졸 물소리에 귀도 기울여지고, 풀리지않던 고민들도 천천히 가닥이 잡히고

마음도 몸도 밝아지고 힘차지는 것이 느껴지곤 했다.

주말에 플라잉요가를 했던 것도 참 좋았지만 아직은 연제가 어려 주말에 긴 시간 혼자 집을 나설 수는 없으므로 

우선 밤에 걷는 것부터 다시 해야겠다. 

내 몸이 튼튼해야 삼형제와 앞으로 해보고싶은 재밌고 신나는 일들도 다 할 수 있지. ^^










일월부터는 청소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씩 오시게 되어서 내가 몸이 많이 여유로워지기도 했고, 아플 때도 다행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연제 낳고 산후조리 끝난 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청소아주머니를 모셔서 집안 청소 도움을 받아왔다.

여러번 아주머니들이 바뀌셨는데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우리집 오는 길이 멀기도 하고 또 아기들이 어리다보니 집이 늘 어지러워 일감이 많은데

어느 아주머니나 모두 기쁘게 와주셨고,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정성을 기울여 먼지투성이에 늘 아이들 장난감과 여러 세간살이로 어지러운 우리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구석구석 반짝반짝하게 닦아주시곤 하셨다. ㅠㅠㅠㅠ

아주머니들은 모두 내가 아이 셋 키우는 것을 대견해(?)하시고,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주셨다. 

아이들과 남편 말고는 거의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나로서는 일주일에 한번 오시는 청소아주머니도 큰 말벗이자 동료로 느껴져서 이 분들께 마음으로 깊이 감사했고, 의지하며 지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번 아주머니가 바뀌셨고, 이번에 해주시는 아주머니는 내가 몸도 힘들 때였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을 오시게 됐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우리 아이들 앞으로 지원되는 양육비가 있어 지금은 우선 이 일에 쓰고 있다. 

내 힘으로 아이들도 다 잘 돌보고, 집도 깨끗하게 건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직은 내 능력이 거기까지 안 된다. ㅜㅜ

늘 힘에 부쳐 허덕거리다가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아주머니가 오신 뒤로 집이 많이 깨끗해졌다. 

내 마음도 한결 푸근하다. 그래도 바닥 걸레질이나 설겆이를 아주머니만 믿고 쌓아놓거나 미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주머니 오시기전에 내가 한번 더 힘내서 치우게 된다. 왜냐면 너무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내 집이기도 하지만 아주머니의 일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어지럽히지 말고, 조금 더 단정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나는 아주머니께 따뜻한 점심밥을 대접하는게 좋다. 

아주머니가 계신 오전에는 아이들이 어른이 한분이라도 더 계시니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놀아서 내가 조금더 여유롭게 요리를 할 수 있다. 국이나 찌개 하나 끓이고, 반찬 한가지 만들고, 연제 죽 끓이고해서 아주머니와 함께 먹는 점심이 일주일에 두 번. 

친정과 시댁이 모두 먼 나로서는 어머니들 자주 뵙기가 어려운데, 비록 남이지만 정기적으로 오셔서 집안일도 도와주시고, 아이들 성장도 대견하게 지켜보며 나와 함께 얘기나눠주시는 청소아주머니는 가까운 친척 이모님처럼 여겨진다.  

연제가 좀 더 크고나면 아주머니 도움을 그만 받고 다시 내 힘으로 집안일을 다 해야지.

그 때까지는 일주일에 두 번, 오전 4시간씩 오시는 아주머니가 우리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주실 것이다.











오랫만에 만났던 대학시절 친구, 선후배 가족들과 1박2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20년지기 친구 오드리할뻔이 우리집에 다녀가기도 하고

내가 참 좋아하는 블로그이웃 고래가 가정출산으로 낳은 예쁜 둘째아가를 보러 살림언니와 하루 다녀오기도 하고..

2014년의 첫 한 달에 있었던 이 특별한 일들을 지나며 '육아와 내 삶의 균형', '삶의 친구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 얘긴 차차 또 하기로 하고...


일월에는 읽고싶은 책은 참 많은데 통 읽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읽고싶어 주문해서 책상위에 수도없이 쌓아놓기만 한 책들.. 어느 것부터 읽어야할지 이제는 그걸 못 정해 못 읽겠다ㅠㅠㅠㅠ

뒤늦게 올해의 목표를 하나 세워본 것은...

새책 사지말고 그동안 사놓고 못 읽은 책 다 읽기. ㅎㅎㅎ

읽고 블로그에 서평쓰기. (이러면 좀 강제력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아직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많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세상을 배우고 내 삶을 돌아보고 사색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다.

조금더 노력해서 책과 블로그를 가까이하는 한해를 살아야지.


토요일 오전에 시작한 글이 일요일 한밤중에 끝났네.

서른일곱, 좋은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4. 1. 5. 22:57



일주일 동안 강릉 친정에서 쉬고 왔다.

2013년의 마무리와 2014년 신년맞이를 강릉에서 하고 온 셈이다.

크게 한 해를 돌아보거나, 새해 소망과 계획을 새롭게 다짐하지는 못했다.

아이들 예쁜 모습 보고 웃고, 아픈 것 보며 안타까워하고, 혼도 내고, 엄마 좋다고 매달리는 아이들과 한데 엉켜 뒹굴고 부대끼고 안고 얘기하고 잠들고 깨고.. 

하는 보통의 일상을 또 한 주 살았다.


다만, 

내 부모님 곁에서 보낸 시간이어서 내 마음이 무척 푸근하였다.

내 엄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을 끼니마다 받아먹으니 너무 좋았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가 새벽부터 반겨주시는 외가에서 아이들은 모두 어른들 품과 손길과 눈길에 싸여

둥개둥개 둥글둥글 포동포동 지냈다.


오늘 서울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아이들이 모두 참 예뻐졌다.

얼굴도 훤해지고 아프던 것들도 잘 나았다.

내 얼굴도 그럴 것이다.

내 부모님 곁에 가서 그 품속에서 잠시 쉬는 동안

한동안 삼형제 데리고 종종거리며 지내느라 꺼칠하게 말랐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하얗게 펴지고, 포동하게 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따뜻하게 새해를 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찾아가 기대쉴 수 있는 고향집이 있어서, 부모님이 계셔서 너무 감사했다.


오늘밤 잠자리에 누워 

연수는 외가집 마당에 만들어두고 온 눈사람이 잘 있을까.. 궁금해했다.

연호는 외할아버지가 사다주시던 찐빵이 먹고 싶다고, 다음에 외가 가면 할아버지께 또 찐빵 사달라고 해야지.. 종알거렸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엄마 젖 먹으며 잠들던 연제가 저와 놀아주시던 외가집 어른들 생각은 제일 많이 했을 것이다.


돌아온 내 자리에서, 

올 한해도 힘내서 잘 살아야겠다.

예쁜 아이들 보며

남편과 나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우리 가정을, 우리 삶을 잘 꾸려나가야겠다.

고향집에서 덮혀온 따뜻한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한 해 내내 마음과 몸을 뜨뜻하게 덮히며 온기있는 삶을 살아야지.


모든 것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밤.

거기 깃든 고요와 평화와 그리움과 추억이 

돌아와서 다시 의연히 맞닥뜨리게되는 현실의 어려움들을 풀어갈 새로운 힘을 줄거라 믿는다.










새해 9살이 되는 친정의 제일 큰조카가 우리와 함께 방학의 며칠을 강릉에서 보냈다. 

연제를 얼마나 예뻐하고 잘 데리고 놀던지.. 연수연호도 누나가 있으니 더 신나게 잘 놀았다. 







강릉가기 전에 감기를 심하게 앓았던 연호.

다행히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 잘 먹고 기운 많이 차려서 올라왔다.








큰 눈사람은 할아버지고 작은 눈사람은 손주란다. ^^ 

둘 다 연수랑 내가 함께 만들었다. 

큰 눈사람 목에 붙은 모래는 연수가 '목도리'를 둘러준 것. ㅎㅎ







눈 치우는 아침.







밤새 눈맞은 눈사람들과 함께.







엄마가 찍어준 나.

아직도 눈이 신나는 철없는 서른일고..옵. ^8^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12. 20. 01:33



형제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심심한 시간을 함께 심심하게 보낼 수 있고...









때로는 멋진 무엇이 함께 되어볼 수도 있다.










비록 살짝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해도 괜찮다.

동생들은 언제나 형을 반짝반짝 빛나는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며

언젠가는 형과 똑같이 멋져질 것이다. ㅎㅎ










연호는 형이 책 읽어주는걸 좋아한다. 

아직 글씨는 모르지만 연수는 대략 엄마가 읽어준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 한장 한장 넘기며 잘 읽어준다.

엄마가 바쁘면 연호는 으레 형을 찾는다. 

"연수야, (나) 책 읽어주라~~" ㅎㅎ












형이 어린이집에 간 낮에는 연호가 연제에게 책 보여준다.

연호도 형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늘 바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마가 연호에게 동생 좀 봐주라고 부탁하면 연호는 제 그림책도 보여주고, 장난감도 갖다준다.











"아가야, 책에 침 묻히면 안된다.." ㅋㅋㅋ

세살 형님, 타이르는 자세가 아주 의젓하다.  

한살 동생은 형님 말씀은 귓등으로 흘리고 벌써부터 입맛 다시고 있다. 









'이따 형님 안볼때 하나 냠냠 해야지... 암튼 우리 형님들은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정말 멋져~ 헤헤' 












엄마 품을 제일 많이 차지하고 있는 한살배기 동생은 사실 형님들에게 많은 질투를 받는다. 

그렇지만 질투하는 시간보다는 

동생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 더 길다. 

점점 더 길어진다.












여섯살 큰형아는 한살배기 동생을 번쩍 안아줄 수 있다.

연수가 안아주면 연제는 형이 저와 놀아주려는 것인줄 알고 좋아서 까르륵까르륵 한다. ^^

연수와 연제는 얼굴 모습도 많이 닮았고 성격도 왠지 닮은 것 같다.

장난많고 흥도 많고 기운도 펄펄한 큰 형아가 제 앞에서 겅중겅중 뛰며 웃겨주면 

연제는 벙실벙실하며 저도 엉덩이를 들썩들썩한다.


다섯살 많은 큰형은 아마도 연제가 자라는 동안 내내 아주 큰 사람일 것이다. 

엄마아빠 다음으로 의지하고 좋아하는.. 











연제는 연호도 참 좋아한다.

엄마와 작은 형아는 언제나 연제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다.

작은 형아는 연제가 낮잠자고 깨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와 '아가, 잘 잤니~?'하고 반갑게 물어주고

때론 엄마대신 밥도 떠먹여준다.










연호도 이제는 아기가 저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제 뒤를 늘 졸졸 따라서 기어오고, 저와 눈이 마주치면 좋아서 꺅꺅 웃는다는 것도 안다.

"엄마, 아기가 예뻐, 아기 참 통통해.. 엄마, 아기가 내가 좋은가봐."


아기가 엄마 품에서 내려오면 얼른 제가 엄마 품을 차지하고 안기기 바쁜 

아직은 저도 참 어린 아기지만 

연호는 어느새 연제가 울면 스르륵 저도 졸려서 차지하고 있던 엄마 품을 빠져나가며

"아기야, 엄마 찌찌 먹어라~" 하고 양보하고 혼자 잠이 들만큼 

마음 따뜻하고 의젓한 형아가 되었다.











형제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형은 아마 평생 이보다 열광적인 팬을 가져보진 못할 것이다.

동생은 형의 숨소리까지 흉내내고 싶어한다. 


"**놀이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십구팔칠육오...일영, 땡!"

형의 외침이 시작되기 무섭게, 땡이 울릴까봐 온마음으로 걱정하며, 최대한 서둘러 형의 엄지손가락에 와서 필사적으로 붙는다. 

엄마아빠는 같이 하자고 할까봐 무서운, 모른척 바쁜척 하기 바쁜  

유치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에너지 넘치는 사내아이들의 놀이에

동생처럼 열성적인 참여자가 있다는건 정말 복받은 일이다.


엄마품을 동생에게 많이 나눠줘야해서 속상하고 힘들었던 형들에게 

이제 많이 커서 형을 선망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가르칠 것도 많고 야단칠 것도 많고 때때로 칭찬도 해주며 늘 같이 놀 수 있는 

동생이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이 된다.


연수와 연호를 보며 연호와 연제의 미래를 그려본다.

연호야, 네게도 동생이 있단다. 

지금은 어린 동생때문에 섭섭한 순간이 많지만 좀 더 지나면 

너도 지금의 형처럼 인생 최고의 팬을 거느리게 될 거란다..

우리 작은 형.. 힘내렴.. 










형제가 가장 다정한 때는 엄마를 거스를 때.


낮잠 자자며, 꼭 자야 한다며 안방에 이불펴고 누운 엄마 곁을 빠져나와 

저희들끼리 거실에 있을 때

연수는 연호를 참으로 다정하게 보살피고

연호는 연수 말을 정말 잘 듣는다.


엄마는 잠들고 왠지 집안에 조용한 정적이 흐르는 것 같은 그 시간..

동생에게 형은 어른처럼 든든하고, 

형에게도 동생은 저를 혼자 있게 하지 않는 반갑고 고마운 동지가 된다.

요즘은 때때로 연제도 형들을 따라 거실로 바쁘게 기어서 탈출한다. 

그러면 엄마는 모른척 눈감고 누워서 잠시 찾아온 조용한 휴식의 시간을 달콤하게 즐길 수 있다.  












삼형제의 막내.

어릴 때부터 북적북적 다섯 식구와 두 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함께 자라고 있는 우리 막내야.

엄마아빠 같은, 어쩌면 엄마아빠보다 더 가까워질 형들이 네게는 둘이 있구나.



아이들이 많다는 것, 형제가 많다는 것이 

키우는 부모에게도,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다.

세 녀석이 동시에 엄마에게 매달릴 때 

한 녀석 안고, 한녀석 얘기에 '응응' 겨우 대답하고, 한 녀석 밥 떠먹이며 

참 정신없구나.. 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주기 어려운 상황이 미안하고 힘에 부치기도 한다.

아이들도 형 때문에, 동생 때문에 서운할 때가 많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봐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 것이다.


하지만 여럿이라서 참 좋고, 행복하다는걸 느끼는 순간도 많다. 

북적북적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고, 서로가 고마워지고, 함께 있어서 즐겁고 재밌고 기쁜 순간이 참 많다.


어린 연호도 저보다 더 어린 연제가 자다 깨서 칭얼거리면 옆에 가서 다시 잠들 때까지 지켜봐준다.

잠깐 깼던 연제가 형아를 슬쩍 보고 다시 잠들면 연호는 연제 볼에 뽀뽀를 해준다.

연수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엄마가 부탁하는대로 동생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줄 줄 안다.

그렇게 아이들은 멋진 형아가 되어간다.


많은 식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 우리 가족 속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고,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

저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돌보고 그 약한 존재가 가족속에서 함께 자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을 더 소중하게, 힘있는 존재로 느끼며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여서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서로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세 아이가 하루하루 서로에게 더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 커가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란다더니 정말 하루만큼 더 크고, 더 든든해진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감동도 받고 행복도 느낀다.


연수야, 연호야, 연제야.

엄마가 참 고맙다.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12. 13. 00:06





어제도 눈이 오고, 오늘도 눈이 왔다. 

신난다. 
겨울은 역시 눈이 와야 제 맛이지~~!
얘들아, 얼른 옷 챙겨입고 나가자~!!! ^0^

여기까지는 펄펄한 아들들과 종일 집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마누라의 반응이고
미끄러운 길을 걸어 출퇴근해야하는 남편은 눈이 영 싫다. 
회사에 있다가 눈이 펑펑 오는 걸 보고 눈속에 애들에게 끌려나가 고생할 마누라가 걱정돼서 '애들데리고 나가 노느라 힘들겠다'고 문자도 보내왔다. 
에이, 자상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치만 이 분이 살짝 까먹으신게 있다.
눈이 오면... 우리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애들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ㅋㅋ









눈 많은 강원도 시골에서 자란 나는 눈이 참 좋다.
지금도 눈 속에서 놀라면 몇 시간은 정말 신나게 놀 수 있는데
올해는 연제가 아직 어려 아기띠에 안고 있어야해서 애들과 맘껏 놀 수 없는게 아쉽다. 
그치만 이제 여섯살, 세살이 된 연수와 연호는 
엄마가 많이 놀아주지 못해도 자기들끼리, 혹은 저만의 방식으로 눈을 반기고 눈 속에서 즐겁게 잘 논다.

연호는 주로 먹고... 












연수는 눈으로 세수를 하고는 '엄마, 나 산타할아버지 같지~?ㅎㅎ' 한다. 

에구, 이 못 말리는 녀석들...^^;;;










오늘은 함박눈이 제법 많이 쏟아졌다.
예쁜 눈이 이렇게 오는데도 아파트 마당에 나와노는 애들이 없었다.ㅠㅠ
모두 추우니 어린이집이나 자기 집 안에 있는가...
가끔 초등학교 형아들만 귀가하다 눈싸움 조금 하는 모습이 보이고.. 

아이들은 놀면서 커야하는데..
추워도 좀 밖에서 뛰어놀고, 눈이나 비같은 자연의 귀한 선물들을 제 손으로 만져보고 맞아도 보며 생생한 몸의 감각을 깨우면 좋을텐데..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또 얼마나 맞아보면 그 느낌이 좋은지.
얼마전에 바람이 아주 쌩쌩부는 날, 아이들과 아파트 다리에 서서 연을 날렸는데 연이 진짜 잘 날았다.
바람이 넘 세서 금방 집으로 철수했지만 나는 그 바람속을 뛰며 많이 웃어서 기분이 참 좋았다.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자주, 많이 있다는건 좋은 일일 것이다.
자연을 좋아하면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날의 하늘과 구름,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많은 것들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돈이 들지 않는 행복..
돈도 안드는 놀이를 통해 나는 아이들과 그런 것을 찾고, 그런 감각을 일깨우고, 익숙해지고 싶다.


 









연수는 꼬마눈사람을 여럿 만들었다. 
연수꺼, 연호꺼, 엄마꺼... 왜 나 혼자만 만드냐고 투덜거렸지만, 
엄마는 애기동생을 안고있어 못 만들고, 연호는 아직 세살이라 만들줄 모르잖아.. 했더니 
동생들 것도 만들어주었다. 
눈이 계속 와서 주말에 아빠랑 눈썰매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연수 얘기를 밤에 퇴근한 아빠에게 전해주었더니 얼굴이 급 어두워지셨다. ㅎㅎ 


 






연제는 오늘 태어나 처음 눈을 맞아보았다.

집에서 창문열고 구경하거나 아기띠 안에 폭 싸여 바라보기만 하다가 

오늘은 처음으로 유모차밖으로 나와 눈도 맞아보고, 

잠시 정자에 담요깔고 앉혀놓았더니 금새 기어나와 손가락으로 눈을 만지작거렸다.

 


눈이 오니까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것 같다.

춥고 긴 겨울을 애기들과 집에 갇혀 어찌보내나... 걱정이다.


앞에 써놓은 자연과 놀이 얘기가 민망하게시리 

밖에 한번도 못 나오는 날도 많을 것이다. 

애들이 감기 걸릴까봐, 혹은 내가 세 녀석 옷 챙겨입히고 안고 싸고해서 밖에 한번 나오는게 때론 넘 힘들어서 집안에서만 복닥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눈이 오면.. 

그때는 아마 꼭 나오겠지. 

눈이 내리면 왠지 참 특별하고 행복한 세상을 살고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눈내린 세상의 차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살아있는 기분이 드니까.


오늘 그 고마운 눈이 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3. 12. 6. 21:53



아침에 연수가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엄마! 생일 축하해~!!"

그리고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오늘이 엄마 생일이네~ 와~! 엄마 생일! 오늘은 크리스마스~~!! 엄마, 오늘 아빠 회사 가? 엄마, 나는 어린이집 가~?"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이 요란뻑적지근한 축하를 받으며 말헀다.

"...물론 가지. ^^;;"


출근 준비중이던 남편도 "여보, 생일 축하해~!"하고는 

오늘 아빠 회사가냐고 묻는 아들에게 "그러게 말이다~ 엄마 생일은 크리스마스 급인데~!!^^" 했다.

  

그리고 남편은 손을 흔들며 출근했다.

저녁에는 회사 팀에서 가는 엠티가 있어 내일 점심께에나 집에 돌아올 터였다.


나는 똥싼 연제 엉덩이를 따뜻한 물로 씻기고 기저귀를 간 뒤 

잠투정삼아 엄마 품에 매달리는 연호를 소파에 앉아 한참 안아주었다.

한바탕 엄마 손을 거친 아이들이 모두 제 놀 것을 찾아 내 품을 떠난 후 부엌으로 가서 아이들 먹일 계란찜을 만들어 아침상을 차렸다. 

밥은 어젯밤에 수수를 넣고 안쳐둔 잡곡밥. 

미역국은 생략했다. ^^;;


고향에서는 생일에 팥을 넣고 찰밥을 해먹는데 팥 삶는 것도 그렇지만 냉동실에 재어놓는 깍은 밤도 마침 떨어졌고 

어젯밤에 다 준비하기는 버거웠던지라 

붉은 수수도 생일떡해서 먹는 귀한 곡식이니 수수밥이라도 짓자 하고 그것만 준비해놓고 잤었다.




 







남편이 끓여주는 미역국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ㅋ~ 

결혼하고 여섯번 내 생일이 돌아오는 동안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이 요리를 싫어하거나 아주 안하는 사람은 아닌데 아마 미역국 끓이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남편이 생일날 미역국 끓여주는걸 싫어하는 부인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뭐 그래도 나는 그걸 바라진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다.

작년 생일 지나고 얼마 뒤였던 것 같다. 

그때도 생일 선물로 딱히 받고 싶은게 별로 없었던 내가 외출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말한게 있었다.

"여보, 앞으로 내 생일에는 꽃을 사 줘. 꽃을 꼭 받았으면 좋겠어~" ^^  


아이들 키우며 별로 밖에 나가는 일이 없는 생활을 결혼후 줄곧 해온지라

크게 필요한 소지품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책은 평소에 내가 자주 인터넷으로 사고 옷도 꼭 필요할 때나 어쩌다 한번씩 사니 

딱히 선물해달라 할게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일년에 하루, 

딱 한번은 내 인생에 아주 곱고 풍성한 꽃 한다발을 선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거창한 꽃바구니 같은건 말고, 

꽃집에서 작은 꽃다발 하나 만들어서 당신이 들고 와주면 좋겠다고

그러면 그 꽃을 집에 꽃아두고 한동안 아주 흐뭇하게 아이들과 들여다보며 행복할 수 있을테니 

앞으로 내 생일에는 내가 말 안해도 꽃다발을 꼭 선물해달라고 했다.


일년이 지나는 동안 몇 번은 그 얘기를 했던 것 같다.

12월 달력이 등장하고 아이들이 엄마, 아빠 생일이 곧 온다며 좋아할 떄도 '꽃 꼭 사 와야돼~~' 하고 다시 강조해 놓았다.

그런데 정작 생일 다되서는 잊어버렸다.

세 아이와 지지고 볶는 깨소금같은 나날들에는 내 생일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내일이 내 생일이라는 것도 

전날 강릉에서 언니가 생일선물로 따뜻한 내복을 사서 택배로 보내준 것을 받았을 때 고맙다고 통화하며 잠깐, 

또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차례로 전화를 걸어오셔서 미리 생일을 축하해주셨을 때 또 잠깐 기억했을 뿐

저녁에 남편이 퇴근했을 때는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일 졸려하던 연수부터 책읽어주며 재우고 나온 내게 남편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내가 당신 보여주려고 인증샷 찍어 왔어~"

뭔소린가.. 하며 들여다보니 컴컴한 밤거리에 셔터내린 가게가 보인다. 

'꽃뜨락'


잠깐 의아해하다가 알았다.

아. 우리 동네 꽃집.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있는 작은 꽃가게.

거기 들려 내 생일선물로 꽃다발을 사오려했는데 문을 닫아 꽃은 못 샀고 

그 옆 순대국밥집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에 국밥 한그릇만 사먹고 왔다고

그래도 당신 좋아하는 순대는 사왔노라며 

남편이 계면쩍게 웃는데 

나는 그만 화가 났다.  


방금전까지 생일도, 꽃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 기대도 안하고 남편이 늦지않게 집에 온 걸보고 좋아하고 있었으면서도

갑자기 그 순간 서글프고 속이 상해졌다. 

"그렇지 뭐, 내가.. 내 팔자에 무슨 꽃다발을 받아보겠어.."

말이 너무 거칠게 나왔다.

남편이 당황해서 "아니, 가게가 문을 닫은걸 어떡해..." 하는데

"동네까지 오면 늦을텐데 회사 근처에서 미리 사던가.. 그 가게가 문을 닫았으면 다른데 갈 수도 있고!"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냥 꽃다발은 아니었다.

남편은 속마음은 자상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지만  

그걸 세심하게 표현하거나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잘 못한다. 

꽃을 선물하는 일은 퍽 어색하고 쑥스러운 일이겠지.

연애할 때도, 결혼해서도 이벤트같은 것은 할 생각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왜 남자들에게만 그런걸 바라냐고 부당성을 지적하고 성토하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기 부인이 바라는 것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정성이 깃든 손편지, 작지만 예쁜 꽃다발을 꽃배달 서비스가 아니라 직접 꽃집에서 꽃을 골라 소박하게 묶어서 들고와주는 것,

그 길에 자기도 흐뭇하게 웃으며 걸어와주는 것..

꽃을 선물해달라고 했던 내심에는 남편이 평소에 잘 못하는 그런 일을 

생일을 핑계삼아 한번 노력해보라는 

내 요구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왜 꽃을 선물해달라고 하는지 남편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알고 그렇게 하려고도 했지만 

집앞 가게가 문을 닫은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과 

내가 결혼을 했을 뿐이다.


저녁 8시가 넘은 그 시간에 택시를 타고 다른 문 연 가게를 찾아보거나, 

내일이라도 꽃을 아내에게 선물해주려고 노력하거나,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에 꽃을 그리거나, 

또 다른 어떤 노력을 하는 사람과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런 것들은 남편이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컴퓨터로 내가 원하는 가전제품이나 기타 여러 상품들을 찾아 주문하는 일은 

아무리 번거롭고 힘들어도 군말없이, 즐겁게 정성껏 척척 해내주는 사람이다.

내가 어렵고 귀찮아하는 일들을 그는 잘 해주고

나는 그가 어려워하는 일들, 마음을 쓰고 정성을 기울이고 글과 말로 표현하고 오래 생각하는 그런 일들을 좋아하고 즐겨한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는 참 반대고

그게 때때로 나를 슬프고 속상하게 한다.









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졸려하는 아이들을 차례로 안방에 데려가 내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팔베게를 해주며 재우는 사이에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남편은 그래도 기억했다.

기쁜 마음으로 꽃집으로 걸어갔고, 아내가 실망할 것에 마음도 아팠을 것이다.

좋아하는 순대를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며 까만 봉지를 손에 들고 걸어왔을 것이다.

하루종일 창문도 못 열만큼 안개와 미세먼지가 자욱해서

괴기스럽기까지 했던 도시에서 

종일 컴퓨터 앞에 꼼짝않고 앉아 머리에 쥐나게 일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풀려나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부지런히 걸어 돌아온 남편이다.


결혼하고 6년을 사는 동안

때때로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몇차례 반복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해야한다는 것이다.


엄마한테는 미운 구석만 보여서 저녁내 야단만 맞고 있던 여섯살 큰아들에게

어린 아가 대하듯 다정하게 하루의 안부를 물어주고 안아주고 뽀뽀하는 아빠, 

아내를 참 많이 사랑하고 늘 존경한다고 말해주는 남편, 

다정하고 유쾌하고 재치있어 함께 있으면 참 즐거운 친구이기도 한 사람과

결혼해서 예쁜 아이들 낳고 건강하게 키우며 살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아쉽고 속상한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남편이라고 내게 왜 섭섭한게 없을까... 

많겠지만 그는 늘 내게 화내지 않고, 탓하지 않는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좋아한다. 

나도 그래야겠다.. 

살다보면.. 우리는 서로가 바라는 사람들로 조금은 성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으며 지지고볶으며 사는 지금을

감사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와서 

남편의 엠티 가방을 챙겨주고 

순대를 먹었다.

좀 식은 순대만 꾸역꾸역 먹으려니 목이 좀 메여서

냉장고에 맥주를 찾으니 없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들고 나가 분리수거도 하고 맥주도 사왔다.

맥주야 열번이라도 사오겠지만 이 밤에 분리수거는 남편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부엌 베란다에 쓰레기가 넘치면 낮에 그걸 쳐다보며 내내 괴로운 것은 나니 

얼른 내 손으로 해버리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맥주 홀짝이며 순대 소금찍어 먹으며 그날 온 '시사인'을 뒤적거려 읽으며 

노트북으로 영화보는 남편 옆에서 얘기도 좀 하다가

연제깨서 칭얼거리는 소리에 안방에 들어가 젖주며 나도 잠들었다.

그렇게 맞은 생일날 아침이었다.











아이들 모두 아침밥을 한그릇씩 잘 먹었다.

비록 제 손으로 먹는 녀석은 없고 세 녀석 모두 내 손으로 떠먹이는 것이지만(연수도 아직 몇 숟갈은 엄마가 거들어야한다ㅠ)

그래도 한 그릇씩 뚝딱 다 비운 것만 해도 고마워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야~~ 오늘 엄마 생일이라고 모두 밥도 잘 먹네~! 엄마 정말 좋다~ㅎㅎ" 



생일이라 그런가.. 

하루가 유난히 평화롭게 흘러갔다.

10시에 연수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돌아와 연제는 바로 긴 아침낮잠에 빠져들었고

연호와 둘이 조용히 집 치우고 놀고 맛있는 간식도 먹고 나는 커피도 한잔 잘 마시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 36년 전에 나를 낳고 이 아침 평화롭게 보내셨을까..

해뜰 무렵에 낳으셨다니까 밤새 진통하느라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래도 아이 낳고 나니까 아픈게 싹 없어져서 참 좋더마는 엄마도 그랬겠지..

다행히 올 봄에 연제를 자연출산으로 낳아봐서 나도 이제 엄마가 겪으셨을 출산의 시간들을 조금은 더 가깝게 느끼고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벽 5시 반쯤에 연제를 낳고 나니까 정말 거짓말처럼 아프지도 않고, 너무 행복하고

연제를 옆에 눕혀놓고 잠자고 처음 미역국 먹고 하던 그 아침이 생각났다. 

브이백이라 걱정을 많이 하셨던 담당의사 선생님은 내가 병원 도착해서 세시간 만에 큰 어려움없이 건강하게 잘 출산한 것을 두고 '어머니께 감사드려야해요. 좋은 몸으로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엄마께 정말 감사드려요.' 하셨었다.

엄마도 내게 '너는 나 닮아 쉽게 잘 낳을 수 있을거야, 내가 너희들 다 그렇게 힘들지 않게 낳았잖니..'하는 얘길 많이 하셔서 나도 믿고 있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의 딸인 나를..

멀리서 마음으로 엄마와 엄마가 나를 낳던 날, 그리고 힘들게 기쁘게 키워주셨을 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며 혼자 뭉클했다.

셋째를 낳고 맞은 생일이라 그런가... 엄마 생각이 더 애틋했다.









연제 일어난 뒤에 같이 점심 먹는데 역시 또 두 애 다 밥을 잘 먹는다. 맨날 생일해야겠다. ㅋ


2시에 연수 돌아오고는 아이들 목욕하는 사이에 한살림 배송이 왔다.

주문할 때는 생일이 또 기억나서 작은 케이크를 하나 시켜놓았었다. 

세 아이와 같이 촛불을 밝히고 조촐하게 생일파티를 했다. 

큰 아이 둘이 노래 불러주고, 촛불도 저희들이 다 끄고, 연수는 오늘 못 오는 아빠 대신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이들하고 나만 해도 넷, 연수가 사진찍는다고 빠져도 사진에 나랑 연호, 연제 셋이 찍힌다. 

참... 우리 식구 많다. ^^ 

식구가 많은게 나는 좋다. 우리끼리만 있어도 이 역할, 저 역할 다 할 수 있고 서로 보듬고 같이 할 수 있는게 많다.



엄마 생일이라고 연호는 제 놀잇감중에 초록색 버스를 내게 선물로 주고, 

연수는 우리집에 있는 한자글씨 액자를 보고 따라쓴 그림(?)도 주고, 제 로보트 색칠놀이 한장을 찢어 엄마 칠하라며 주고(괜찮은데..ㅜㅜ)

저녁에는 사과나무와 하트를 여러개 그린 예쁜 그림도 또 선물로 그려주었다. ^^

손수 테이프도 정성껏 발라 거실벽에 붙여주기에 사진 한장 찍어두었다.

연제는..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거실 소파를 붙잡고 일어서는 선물을 주었다. ㅎㅎ

어제까지만 해도 혼자 뭔가 잡고 일어서는 것은 어려워했었는데 

엄마 생일이라 진짜 큰 맘 먹었는지 오전부터 낮은 놀이감들부터 붙잡고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저녁 무렵엔 꽤 높은 거실 소파를 붙잡고 혼자 번쩍번쩍 일어섰다. 

와...... 고맙다. 

모두모두.

^^









서른여섯살 생일.

참 행복하게 잘 보냈다.

울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많이 많이 안아주고, 한번도 화내지 않았던 참 드문 날이었다. 

내 생일이라 내 마음도 무척 귀해져 있었나보다.

일년 삼백예순다섯날을 모두 생일처럼 살 순 없겠지만

오늘 이 평화롭고 고마웠던 마음의 여운을 자주 기억하고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1. 딸 같은 아들



일전에 사촌여동생이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일이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동생이 물었다. 



'언니는 딸 욕심 좀 나겠어요?'



'글쎄.. 예전에는 딸을 꼭 낳고 싶었고 딸이 없어서 아쉽단 생각도 많이 했지.. 

근데 이제는 괜찮아.

딸은 자라서도 엄마랑 다정하게 얘기도 많이 나누고 같이 오손도손 친구처럼 지낼 수 있고해서 좋다고들 하잖아.

엄마 마음도 잘 이해하고.. 

그러니 아들을 좀 그렇게 키워보지 뭐... 

아들들이 워낙 크면 무뚝뚝해진다고는 하지만 안그런 아들도 간혹 있겠지.

난 아들이 셋이나 되니(ㅜㅜ) 그중에 한 명 정도는 딸같은 아들도 생기지 않을까? ^^;;;'



'맞아요, 언니. 꼭 있을거예요.ㅎㅎ'



그런데 엄마와 이모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연수가 얼른 끼어들었다. 



"나! 나! 내가 딸같은 아들이잖아! 내가 그런 아들이 될꺼야~! "



'으... 으응~? 그..래... 우리 연수가 그렇지... 지금도 엄마랑 얘기도 많이 하고...^^;;'


 

ㅎㅎㅎ

내심 지금도 꼭 딸같이 성격이 다정한 연호나 고물고물한 갓난아기인 연제에게 기대를 걸고 한 말인데...

그런데 '친구같은 아들 여기 있는데 엄마는 어디서 찾고 있는거야?'하는 눈빛을 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연수의 얘기를 듣고보니 순간 미안했다. 


걸핏하면 짖궂고 얄밉고 극성맞은 장난으로 엄마를 화나게 하는 못 말리는 개구장이. 

또래 엄마들끼리 마주 앉으면 '아, 정말 내 스타일 아닌데~~'를 연발하게 만드는 여섯살 사내아이.


하지만 어느새 많이 자라 엄마를 도와주고 힘든 엄마를 위로해주기도 하는 우리 큰아들.

네 얘기에 웃고 네가 보여주는 빛나는 성장의 모습들에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순간도 정말 많은데 

그만 엄마가 그런 것들을 생각 못했네..

태어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너는 줄곧 엄마 곁에서, 엄마의 제일 좋은 친구인데

엄마가 깜빡 잊고 있었네.


먼훗날에 친구돼주길 기다리지 말고 지금 네가 내 곁에 있을때 오손도손 아웅다웅 다정한 친구로 지내야지..

어느새 많이 큰 네 에너지를 받아주는게 힘에 부친다고, 

여섯살 네 행동이 엄마 마음에 안 든다고,

동생들 돌보느라 바쁘고 힘들다고,

 지금은 '엄마, 나랑도 놀아 줘~' 매달리는 너를 버거워하고 '그래, 놀자, 응응' 건성으로 대꾸할 때가 많았구나..ㅜ  


미안하다, 연수야. 


너와 나누는 이야기, 밝게 웃는 네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고맙다.

지금까지 딸같은 아들로 자라줘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 

^^










2. 잘 안 되면



예전에 친정에서 받아온 늙은 호박을 어제서야 잡았다.

오늘 아침에 노란 속살을 칼로 썰어 삶고, 밤부터 불려놓은 찹쌀을 갈아 넣어 호박죽을 끓였다.

엄마의 요리에 늘 관심이 많은 연수가 옆에 와서 물었다.



"엄마, 호박죽 할 줄 알아? 이렇게 하는거 맞아?"



'...아마 맞을껄?'



"전에 해봤어?"



잘 생각이 안난다. 예전에 해 봤던가..?



'잘 모르겠네.. 근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호박 삶고, 쌀 넣고..' 



"잘 안되면 어떡해?"



'글쎄...'



걱정이 되었다. 

진짜 이렇게 하는게 아니면 어쩌지? 이상하게 되는거 아냐.. 불안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순간, 

연수가 씩씩하게 말했다.



"다시 또 해보면 되지!" 


^^



여섯살, 멋지구나.

그래, 이번에 잘 안되면 다음번에 다시 또 해보면 되지. 

그때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거야, 이번에 해보면서 배운 것이 있을테니까..



아마도 '엄마, 나 이거 만들어줘, 저것 좀 그려줘~'하고 연수가 조를때마다 

'니가 해봐, 엄마 지금 동생보느라 바빠..'하면 

 '난 잘 못한단 말이야, 잘 안돼~, 엄마가 해 줘~~!'하고 찡찡거리는 연수에게 내가 '자꾸 해보면 돼, 그럼 잘 할 수 있게 될꺼야'하고 말하며 연수의 청을 못 들어준 것이 

세뇌되다시피 한 결과(ㅜㅜ)로 짐작되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 네게 그 말을 듣던 순간의 엄마 기분은 무척 시원+상쾌했다.

고맙다, 연수야 :) 




+ 오늘 호박죽은 너무 연하게 되었다. 담엔 호박을 더 많이 넣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음..^^ 

그래도 수호제 모두 잘 먹어주어 다행. 흐뭇~







(자자~, 셋중에 누가 딸같은 아들이 될까? 엄마의 귀염둥이들, 저요! 저요! 해보세요~ㅎㅎ) 






(엄마, 꿈이 너무 큰 거 아냐~~ 우린 그냥 아들들일 뿐이라구~!! -.,-)






++ 오늘 우리 동네에 첫 눈이 왔다.
회오리같은 바람에 날려온 짧은 눈보라였지만 아이들도 나도 모두 아주 행복하게 첫눈을 맞았다.
거실 창문을 열고 손바닥에 내려앉은 눈을 먹어보다가  
나중에는 삼형제 모두 저 위의 사진처럼 모자쓰고 장갑끼고 연제는 아기띠에 방한덮개 씌워 꽁꽁 싸매고 아파트 마당에 나가 눈속을 잠시 뛰어다니다 왔다. 
첫눈도 오고.. 겨울이구나.
종일 아이들과 지지고볶고 힘은 들지만.. 그래도 추운 날, 따뜻한 집에서 예쁜 아이들과 함께 끌어안고 지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 일인지. 
맛있는거 많이 해먹고 성질 좀 덜 내고 재미지게 지내봐야겠다. 
핸드폰이 고장나서 한동안 가족들말고는 연락이 안되게 생겼다.
혹시 가까운 지인들께서는 연락주실 일있음 블로그로 주세요..^^ 
(집에 놀러오는건 연락 안하고 암때나 그냥 오셔도 되고요. 우린 늘 집에..^^;;)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11. 15. 01:32







우리 큰아들. 
연수.
어느새 여섯살의 가을을 맞고있는 65개월 큰 형아.

개구장이도 보통 개구장이가 아니고
촐싹거리고 까불기로 이보다 더한 녀석을 여지껏 엄마는 본 적이 없다.

뭐든지 저부터 제일 먼저, 제일 많이, 제일 큰 걸로 주기를 바라는 
욕심도 투정도 울음도 많은 첫째.

동생들 때리고 울려서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고
까불고 장난치다 혼나고 
밥 잘 안 먹는다고 또 혼나고... 

하루종일 혼낸 기억밖에 없어 미안해지는 밤. 
'나도 한 살 아기가 되고싶다.. 나도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  
엄마 양 옆을 차지한 동생들에게 밀려 멀찍이 저 혼자서 뒹굴거리
'엄마 옛날얘기 하나만 해줘~, 해줘~, 응, 하나만~'
조르고 졸라서 듣는 옛날얘기 하나에 스르르 잠이 드는 아직은 어린 내 큰 아기.










우리 둘째, 연호.

세번째 가을이구나, 29개월 연호에게는.


어리광도 많고 애교도 많고 요즘들어 부쩍 동생 샘도 많이 낸다.

엄마가 동생을 내려놓기만 하면 얼른 달려와 엄마품을 제가 차지하고 

엄마 찌찌도 만져보고 아기처럼 안아달라 조른다.

이제 많이 컸는데 왜 그럴까.. 동생 때문에 더 그런가.. 걱정하다가 

문득 연수가 지금 연호만 했던 떄를 생각해보니

그때 연수는 더 아기같았다는게 기억났다.

더 많이 업고 다녔고, 안아주었었다. 

하루종일 연수만 데리고 같이 놀고, 눈 맞추고, 얘기했었지.. 


연호는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혼자 걸었고,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쉬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둘째여서, 일찍 동생이 생겨서

본래도 찬찬하고 다정한 성격의 연호는 

어린 녀석이 참 일찍도 엄마 말을 잘 들어주고, 형아를 따라 배우며

온 힘을 다해 참 열심히 자라고 있다.


가을들어 감기 앓는 날이 많아지니 엄마가 손으로 제 이마를 짚어볼 때가 많았다. 

어느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연호가 내 옆에 와서 눕다말고 

내 이마를 짚어보고 내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제게 그러듯이, 꼭 그렇게.


이 아이가 좀 어리광을 부리고, 

이제는 고집이 세져서 제 뜻대로 안된다고 울기도 하고, 

형아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개구진 장난을 심하게 치더라도

나는 더 안아줘야겠다.

여섯살 형아에게 하듯이 그렇게 무섭게 화내지 말고..

형보다 훨씬 일찍 엄마 품을 동생에게 내어주고 작은 형이 된 

아직 어리디 어린 나의 둘째 아기에게. 


 








9개월 연제. 첫번째 가을.

하얗고 예쁜 아랫니 두개. 


가을 시작될 때쯤 배밀이로 살살 긴다 싶더니 

어느새 온데 사방 못 기어가는 데가 없고 

붙잡고 세워주면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오늘은 빨랫대를 붙잡고 드디어 혼자서 일어섰다.


셋째는 얼마나 빨리 크는지.. 

이 아이 자라는 모습을 미처 내 마음에 다 담아두기도 전에 훌쩍 다 자라버릴 것 같아 무서울 정도다.

이렇게 예쁜데.. 갓난아기 이 모습도 금방 지나가겠구나.



얼마전부터 연제가 '음마, 음마' 하고 나를 부른다.

블로그를 처음 쓰던 무렵에 

연수가 꼭 지금 연제만 했던 시절에 나를 보고 '음마, 음마' 하는 그 소리가 좋아서 

육아일기 쓰는 카테고리의 제목을 'umma(음마), 자란다'로 지었었다.

음마, 음마 하는 아기 연수도 자라고, 엄마인 나도 아이키우며 자라는 이야기를 써야지.. 했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참 많이 자랐다.

하나였던 아이가 셋이 되었고, 걸음마도 못 하던 아기 연수는 어느새 저렇게나 잘 웃고 잘 뛰는 큰 형아가 되었다. 

나는, 엄마 전욱은 많이 자랐을까.


아이가 셋이라 정신없다고, 그저 하루하루 밥하고 치우며 사는 것만 해도 바쁘다고 

어느틈엔가 좀 게을러져 있었던 것 같다.

손은 더 빨리 움직이고, 몸도 더 바쁘게 움직여서 

세끼 밥도 차려내고, 설겆이며 청소, 빨래도 어찌어찌 해내며 살고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힘들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며

아이들 키우며 함께 '자라는' 일에는 게을러졌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점점 팍팍해지고, 그저 매일매일의 삶을 어찌어찌 살아낸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며 

실은 좀 대충대충 넘어가고, 조금이라도 몸이 편안한 쪽으로 안주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인간의 온전한 성장 과정을 다 함께 겪는 일이어서

몸과 마음의 건강한 성장을 두고 공부하고 성찰하고 실천할 일이 정말로 많은 것 같다.

그건 일하는 엄마든, 나같은 전업맘이든 똑같아서 누구라고 더 많이 하고 누구라고 적게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고,

그 생명이 자라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겪어가는 사람으로써  

보살피고 지키고 격려하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써 

알아야할 것들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함께 성장해야한다.


그저 손만 빨라지고, 눈매는 날로 매서워지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몸만 바쁘고 마음은 불행한 엄마이고 싶지도 않다.

아이가 많아도 한 명 한 명, 그 시절에 맞는 정성어린 보살핌을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연제를 조금 더 세심하게, 조심스럽게 보살피고

연호를 더 많이 안아주고 연호 수준에 맞는 놀이를 더 많이 같이 해주고

연수 얘기를 더 귀기울여 들어주고 개구진 장난들을 더 너그럽게 대해줄 수 있었으면.. 


아이들의 건강을 어떻게 보살피면 좋을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말아야할지 

더 잘 알고, 중심을 잡고, 든든하고 차분하게 실천하며 살 수 있었으면. 


아니 아니, 그 모든 것을 다 하진 못하더라도 

그저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내고 

더 많이 웃어주고 사랑한다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조금 더 행복하게 육아를 하고,  

아이들도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품도 그만큼 넓어지고 깊어졌노라고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너무 힘든 시절이었어'하는 푸념과 원망만 남는게 아니라 

'참 좋은 시간이었어, 많이 자랐어..'하고 고마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자라는 행복

그 행복을 찾아 

서른여섯 엄마도 조금 더 힘을 내야지, 자라려고 노력해야지..

마음먹어 보는 가을이다. 








+ 얼마전에 가을여행을 함께 갔던 기동선배와 발랄 부부가 아이들과 우리 가족 사진을 이렇게 예쁘게 찍어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우리 같이 좋은 친구하면서, 오래오래 함께 아이들 키우고 같이 지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3. 11. 1. 00:33


아이들이 오래 감기를 앓았다.

중간에 나와 남편도 한차례씩 옮아 몸살과 기침감기로 고생을 했다. 

연수는 어린이집을 많이 쉬었고, 밤에는 아픈 세 아이가 번갈아가며 깨는 바람에 내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낮에도 밤에도 좀처럼 쉴 짬이 안나는 날들이었다. 집안일로 시댁에 내려갔다 온 주말을 제외하면 나는 아픈 아이와 집을 지키고 남편은 다 나은 아이들 데리고 바깥바람 쏘이며 조용히 몇 번의 주말이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한낮에는 여름처럼 무덥던 초가을이 다 지나가고 어느새 낮에도 찬바람이 불고 노란 나뭇잎들이 비처럼 떨어지는 깊은 가을이 되어있었다. 


한동안 하늘이 정말 아름다운 날들이 계속 되었다. 아픈 아이들 안고 집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매일 조금씩 물드는 나뭇잎들과 구름 한점 없이 푸른 하늘이 눈이 부셨다. 아파도 밖에서 놀고싶어하는 아이들 따라서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면 그 푸른 하늘만 한참 쳐다보고 있어도 기분이 한결 좋아지곤 했다. 

아이들 감기가 거진 다 나아간다 싶던 어느 일요일, 오랫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사람들처럼 나는 마음이 한껏 밝아져서 세 아이들 데리고 남편과 길을 나섰다. 두물머리가 한 눈에 보인다는 절, 수종사에 가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해 소식 궁금해하고 걱정해주셨던 이웃들께 이 사진들로 인사드리려고 한다. 우리.. 잘 있다고. 세 아이들, 아픈것 잘 이겨내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노라고. 보고싶다고. ^^







수종사는 남양주시 조안면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사찰이다. 

서울의 동쪽 끝, 강일동에 살고부터 한강을 자주 보고 그 강을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보는 일도 많아졌다.

남들은 어렵게 한번 시간내서 드라이브삼아, 여행삼아 찾아올법한 길을 동네 마실나가듯, 가까운 마트가듯 쓱 가게 된 것이 외곽에 살아서 누리는 좋은 점이다. 

미사리와 덕소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팔당대교 즈음부터 한강은 아파트 그림자를 벗어나 산의 푸른 빛을 담고 반짝이는 깊고 아름다운 강이 된다. 두물머리가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가까이 가면 한강은 습지이기도 했다가, 그 안에 여러 섬을 담고 굽이굽이 흐르는 넓고 유려한 곡선의 강을 보여준다. 

팔당생협과 슬로우푸드문화관이 있는 수종사입구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수종사 일주문까지 우리는 차로 올라갔다.

버스를 타고 와서 정류장부터 베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이 부럽고, 그 곁으로 흙먼지 일으키며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죄송했다. 

어린 아가들 데리고 가는 길이라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만 미안하고 좀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좀 크면 우리도 평지에서부터 우리 발로 걸어서 올라가리라.. 그 전에 또 오게 되면 그래도 조금은 더 아래쪽에 차를 세우고 좀 더 많이 걸어가야지..^^;   








일주문 앞에 있는 작은 기념품가게에서 산 빵을 연호는 꼭 제가 들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는 정말 한참동안 잘 들고 걸어갔다. 일주문에서 절까지도 어린 아이 걸음으로는 꽤 먼 거리인데 두 돌을 지나며 아기티를 벗고 어린 아이 티가 물씬 나게 된 연호는 제법 의젓하게 잘 걸었다. 아빠가 반쯤 안아주고, 마지막 오르막길은 조금 위험하기도 해서 내내 안고 올랐지만 그만하면 세살치고는 훌륭한 여행자였다.







연제 아기띠해서 안고, 때때로 연호 손 잡고 연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걷는 산길.

세 아이와 함께 '걸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세 아이와 '함께'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숲길을 걸어가는 기분은 참 좋았다. 

오래된 숲의 푸른 나무들은 아름다웠고, 어린 나무들처럼 내 곁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고맙고 흐뭇했다. 

지나온 일상은 참 힘들고 고단했는데, 이렇게 찬란한 숲속에 너희들과 함께 서보니 그 시간들이 모두 소중하고 빛나는 과정임을 알겠구나. 











딱따구리 소리를 나도 처음 들었다.
닥 닥 닥 닥 조금 둔탁한 듯 하면서도 또 어쩌면 가볍게 나무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
연수 연호가 모두 귀기울여 들었고, 아빠가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랫만에 큰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선 남편은 이 날 나와 아이들 사진을 아주 많이 찍어 주었다.

본래 하늘이 이렇게 맑고 날씨가 좋아서 두물머리 풍경을 잘 볼 수 있는 날도 드물 거라며 망설이는 나보다 앞장서서 수종사 행을 결정한 남편이었다. 

모처럼 경치좋은 곳에 가니 풍경사진을 열심히 찍으실 줄 알았더니 식구들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었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잘 나온 사진을 오랫만에 갖게 되었다.

아이 셋 낳고 키우느라 머리 손질도 제대로 못하고, 세수도 겨우겨우.. 옷도 대충대충 입는 영 관리 안되는 서른여섯 아줌마지만 

고운 아기 품에 안고 활짝 웃는 모습을 이렇게 빛나게 찍어주는 남편이 있으니 전욱은 행복한 여자네..^^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한강.


수종사 바로 아래있는 계단으로 된 가파르고 긴 오르막길은 그 위에 도착했을때 보게 될 풍경에 대해 미리 무척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을 때

탁 트인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기대 이상이다.















셋째 젖먹인다. 















이 날 연수, 씩씩하게 참 잘 걸었다. 


연수를 생각하면 아주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여러 곳을 씩씩하게 걸어주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게 대부분 연호 태어난 뒤의 일이니 연수가 세 돌이 지난 후다.

연호는 내년 여름이면 세 돌이 된다. 

그때쯤엔 두 형제가 함께 잘 걷겠구나. 

연제는 걸음마를 할 테고.

그러면 우리의 여행은 또 새롭겠구나.








운길산 수종사.

세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기쁨을 미리, 아주 달콤하게, 쵸코릿이 가득 든 상자를 살짝 열어 한 개 맛본 기분이다.

하지만 오랫만의 산행에(10kg 아가까지 안고-.,-) 돌아와서는 다시 엄마아빠는 병이 났고 아이들도 잘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쿨쩍..

연이어 지난 주말엔 시골에서 농사짓는 대학선배네로 친구들 여러 가족과 함께 1박2일 여행을 다녀와서 또 모두 감기 창궐..ㅠㅠ


빛나는 가을이 한 고비 넘을 때마다 쉽지않고나.

그래도 간다. 우리는. 힘내서. 





+ 혹시 이 글을 보고 '수종사'를 찾아가고자 하시는 분을 위한 팁.

점심은 조안IC 바로 옆에 있는 '기와집 순두부'가 맛있습니다. ㅎㅎ 직접 만든 뜨끈한 순두부 국물, 착한 가격, 맛있는 나물 반찬. 줄이 엄청 길지만 집이 커서 아주 오래 기다리진 않았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3. 9. 17. 22:28






연제가 만 6개월을 꼭 채우고 7개월에 들어섰다.

이번 달부터는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젖만 먹다가 이제 불을 써서 익힌 세상의 음식들을 직접 먹게 된 것이다.
유아기의 제일 처음 한 시절이 끝난 것같다.

모유만 먹을 때의 아가들 특유의 똥냄새가 있다. 
고 시절의 아가 똥냄새는 (엄마니까 콩깍지가 씌어서 그렇겠지만) 시큼하면서도 달달하다. ^^;; 
세상의 음식이 섞이면 섞이는대로 똥냄새는 달라진다. 

예전에 어디선가 아기들이 익힌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하늘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엄마젖만 먹는 시절의 아기들은 몸은 이 세상에 왔지만 아직 마음은 저 하늘에 떠있는 천사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과 아주 영적인 존재들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러다가 불에 익힌 세상의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 차츰 하늘의 언어는 잊어버리고
인간 세상의 사람들이 쓰는 말을 익히게 되고,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게 된다는 얘기. 

무슨 그런 말을~ 하고 웃어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그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아이들은 어른이 된 우리의 지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아주 신비로운 존재들인 것 같다.

아가들이 입술을 붙여서 '부우우~'하고 소리를 내는걸 내 고향인 강릉말로는 '투랭이'라고 부르는데 
할머니들은 아가들이 투랭이하는걸 보면 
'아고, 비가 올려나, 바람이 불려나.. 요녀석이 투랭이를 하네' 하고 꼭 말씀하신다.
그리고 정말 꼭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온다. ^^

세 아이 키우는 동안 늘 그랬다.
참 신기했다. 
아기들은 습도나 바람의 변화를 아주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센서라도 있는걸까? 
무튼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요 어리디어린 아가들이 실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교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천사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왠지 그런 것만 같다.

그래서 연제가 이제 6개월을 잘 채우고 7개월차에 들어선 것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왠지 아쉽기도 하다.
한 시절이 끝났구나.. 싶어서.
가장 작고, 가장 여리고, 가장 고물고물하고, 안고있으면 너무 작아서 품 안에 쏙 다 들어오고, 여기를 맡아봐도 저기를 맡아봐도 보드라운 아기 살냄새에 젖냄새가 가득해서 고 작은 품에 마냥 얼굴을 파묻고 싶어지게 하던 
우리 고운 막내 아가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컸다.













연제는 참 잘 웃는다.
엄마를 보면 벙글벙글, 순한 얼굴에 가득 웃음이 퍼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따뜻한 기운이 가득 퍼진다.

통통하고 키도 크고 펄쩍펄쩍 뛸 때보면 힘도 센 우리 아기.
아직 기지는 못하고 이리 저리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연제.
지난 여름 요녀석 안고 업고 지내느라 땀깨나 흘렸지만 
지나고보니 또 참 좋은 시절이었다. 
연제도 엄마와 형아들 가운데서 낑낑거리며 자라느라 참 애썼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이 고맙기만 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순하게 밤잠 낮잠 다 잘 자주고, 젖도 잘 먹고, 엄마만 곁에 있으면 언제든 큰 소리없이 잘 있어준 연제.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우리 아기는 또 얼마나 예쁘게 자랄까.
이제는 이 날들이 짧은 것을 알겠다.
꿈같이.
꿈같이 짧은 시절인 것을 알곘다.
고운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오고, 썰매를 타고 따신 차를 마시며 봄을 기다리다보면 
어느날 봄이 오고 연제도 첫 돌을 맞을 것이다. 돌 지나고나면 또 쑥 크지.. 그러면 아기시절도 금방이지..

그 시절동안 연제는 한가지씩 곡식과 야채들을 점점 더 많이 먹어보게 될테고, 
기어다닐 수 있게 될 거고, 어느 날은 일어서고 걷겠지.
참 경이롭다.
인간의 성장이..
모두 이렇게 경이롭게, 곱게, 애써 성장한 존재들인데 아끼고 예뻐해줘야겠다.
부족하다 싫어하지말고, 못났다 미워하지 말고..
오늘도 엄마한테 이래저래 혼나느라 정신없었던 연수도 미안하고, 안아달라 업어달라 매달리는 연호를 더 많이 안아주고 놀아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ㅠㅠ
다 이렇게 예쁘게 자랐던 아이들인데, 엄마가 세 아이 돌보는게 힘에 부쳐 잘 웃지도 못하고, 행복하게 같이 놀지도 못하니 참 미안한 시절이다.
이 시절이 지나가면 또 좋아지는 것도 있겠지..
아쉬운 것이 있는만큼, 잃는 것이 있는만큼 나아지고, 또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연제가 올 여름에 입었던 아기옷들은 아마 내년 여름에는 다시 입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요즘 연제 여름옷을 하나씩 빨아넣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하다.
안녕.. 우리 아기 입었던 고운 아기옷아, 안녕.
우리 아기 잘 크게 돌봐줘서 고맙다..

그렇게 안녕하고, 
새로운 시절로 가는 것이다.
아기들은 자라고, 엄마도 함께 자란다.
가장 고달프고, 조심스럽고, 어렵고.. 그래서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연제의 갓난아기 한 시절이 이렇게 끝나간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