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2014. 1. 25. 11:33



겨울비가 촉촉히 내리는 토요일 오전이다.

남편이 큰 아이들을 데리고 치과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간 덕분에 나는 연제 오전낮잠 재워놓고 커피 한잔 마시며 조용히 글쓸 짬이 생겼다.

이런 때에는 세상이 모두 온통 고요한 것 같다.


새해가 시작되고 어느새 한 달이 훌쩍 흘렀다.

겨울이고, 아직 연제가 어린 아가라 바깥 출입을 많이 못해 주로 집안에서 보내는 날들이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식구가 다섯이나 되다보니 자잘한 일들이 늘 끊임없이 많아서 작은 집안에서도 종종거리고 왔다갔다하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살았다. 


이번 겨울은 이렇게 보내야하고, 보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어릴 떄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고립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단조롭고, 익숙한 생활의 리듬을 지키는 것, 역동적인 변화와 모험의 즐거움은 잠시 유보하고 조금은 심심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더 여물어지고 단단하게 자라는 아기의 성장을 눈여겨 보는 것.

연제 첫 돌이 멀지않은 이번 겨울은 그런 것들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연제 하나만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면 아마 요렇게만 지냈겠지만..

ㅎㅎ

나는 말같이 펄펄한 일곱살 연수와 한창 예쁘고 한창 미운 네살 연호를 진즉부터 키우고있는 삼형제 엄마이므로~~

이 겨울은 또 매일같이 동네 냇가 둑에서 눈썰매를 타고

밤이면 그 여파로 등허리팔다리 안아픈데가 없어서 끙끙 앓으며 애들과 같이 곯아떨어져 

책은 커녕 블로그 한번 열어보기가 힘든 날들이기도 했다.


일곱살 연수는 눈썰매를 어찌나 잘 타는지 혼자 큰 썰매를 들고 냇가까지 군말없이 씩씩하게 걸어가 

몇십번이고 지치지도 않고 썰매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리곤 했다. 

춥고 졸린 동생들이 먼저 집에 오고 싶어 앙앙 울 떄는 연수만 아랫집 형아와 한시간쯤 더 썰매를 타고는 형아엄마와 함께 돌아오기도 했다.

일요일에 내린 눈으로 월, 화, 수, 목 나흘을 썰매를 타고 인제는 거의 눈이 녹았다.

이 겨울이 다가기 전에 눈이 또 온다면 우린 몇번은 더 신나게 눈썰매를 탈 수 있겠다. 

연제가 순하게 유모차에 잘 앉아있어 주어서 아직 형아처럼 혼자 타는건 어려워하는 연호를 내 앞에 앉히고 나도 같이 눈썰매를 여러번 탔다.

엉덩이는 아팠어도 가파른 경사면을 쌩~! 하고 달려내려오는 그 느낌만큼은 정말 신나고 재밌었다. ㅎㅎ 

서른일곱에 이러고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다행히 나는 막내가 어리니 아마도 마흔까지도 동네 냇가에서 눈썰매를 타게 될 것이다. 

나중에 손주들이 태어나면 일흔일곱 할머니가 되어서도 꼬맹이들이랑 눈썰매도 타고 얼음썰매도 타야지...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그렇게 즐거운 겨울을 오래오래 보내야지. 



그럴려면 건강해야한다. 

1월에 한번 많이 아팠다.

몹시 추운 주말, 아이들 데리고 남편과 신나게 공룡박물관에 다녀왔었다. 

모처럼 서울 복판에 나간 김에 내가 좋아하는 '칼질의 재발견'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해서  

너무 신난 나머지 추운 저녁 서촌 골목길을 연제 아기띠해서 안고 돌아다니며 '빵나무'라는 예쁜 빵집도 들리고 

칼질에서 저녁도 잘 먹고 왔는데 

너무 과식을 했던지 그만 돌아와서 배탈이 났다. 

칼질의 조 세프가 1년만에 만났다고 반가워하며 삼형제 먹으라고 고기도 잔뜩 주고해서 넘 고마웠는데

다 같이 잘 먹고 다행히 아이들과 남편은 모두 멀쩡한데 나 혼자 탈이 난 것이다. 

배탈은 하룻밤 만에 나았지만 그 뒤로 며칠을 몸살과 소화불량 상태로 끙끙 앓았다.

아마도 내가 워낙 요새 바깥 출입을 안 하다보니 모처럼 많이 걷고, 어린 아기 데리고 신경쓰며 급하게 밥먹고 하며  몸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남편이 주중에 하루 휴가를 내고 쉬면서 큰 아이들을 봐주어서 내가 연제 데리고 많이 자고, 쉬면서 천천히 나았다.







11월에도 한번 심하게 몸살을 앓았고 이번에 또 앓고 나니 '내가 몸이 많이 약해졌구나..' 싶었다.

칠년째 거의 쉬지않고 모유수유를 하고 있고, 어린 아기들을 안고 업고 하며 키우다 보니

반복되는 살림과 육아의 몸놀림들은 큰 무리없이 해내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 몸을 다르게 움직이면 금새 탈이 나고 후유증이 오래 간다. 

몸을 좀 살피고 다양하게 써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밤에 걷기로 마음먹었다.


딱 작년 이맘때쯤, 연제 낳을 준비하면서 

남편이 일찍 퇴근한 밤이면 아이들 재워놓고 나 혼자 집 옆 냇가길을 걸었었다.

한 시간쯤 말없이 천천히 냇가옆 산책로를 걷다보면

졸졸졸 물소리에 귀도 기울여지고, 풀리지않던 고민들도 천천히 가닥이 잡히고

마음도 몸도 밝아지고 힘차지는 것이 느껴지곤 했다.

주말에 플라잉요가를 했던 것도 참 좋았지만 아직은 연제가 어려 주말에 긴 시간 혼자 집을 나설 수는 없으므로 

우선 밤에 걷는 것부터 다시 해야겠다. 

내 몸이 튼튼해야 삼형제와 앞으로 해보고싶은 재밌고 신나는 일들도 다 할 수 있지. ^^










일월부터는 청소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씩 오시게 되어서 내가 몸이 많이 여유로워지기도 했고, 아플 때도 다행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연제 낳고 산후조리 끝난 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청소아주머니를 모셔서 집안 청소 도움을 받아왔다.

여러번 아주머니들이 바뀌셨는데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우리집 오는 길이 멀기도 하고 또 아기들이 어리다보니 집이 늘 어지러워 일감이 많은데

어느 아주머니나 모두 기쁘게 와주셨고,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정성을 기울여 먼지투성이에 늘 아이들 장난감과 여러 세간살이로 어지러운 우리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구석구석 반짝반짝하게 닦아주시곤 하셨다. ㅠㅠㅠㅠ

아주머니들은 모두 내가 아이 셋 키우는 것을 대견해(?)하시고,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주셨다. 

아이들과 남편 말고는 거의 만나는 사람이 없는 나로서는 일주일에 한번 오시는 청소아주머니도 큰 말벗이자 동료로 느껴져서 이 분들께 마음으로 깊이 감사했고, 의지하며 지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번 아주머니가 바뀌셨고, 이번에 해주시는 아주머니는 내가 몸도 힘들 때였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을 오시게 됐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우리 아이들 앞으로 지원되는 양육비가 있어 지금은 우선 이 일에 쓰고 있다. 

내 힘으로 아이들도 다 잘 돌보고, 집도 깨끗하게 건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직은 내 능력이 거기까지 안 된다. ㅜㅜ

늘 힘에 부쳐 허덕거리다가 이렇게 도움을 받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아주머니가 오신 뒤로 집이 많이 깨끗해졌다. 

내 마음도 한결 푸근하다. 그래도 바닥 걸레질이나 설겆이를 아주머니만 믿고 쌓아놓거나 미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주머니 오시기전에 내가 한번 더 힘내서 치우게 된다. 왜냐면 너무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내 집이기도 하지만 아주머니의 일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어지럽히지 말고, 조금 더 단정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나는 아주머니께 따뜻한 점심밥을 대접하는게 좋다. 

아주머니가 계신 오전에는 아이들이 어른이 한분이라도 더 계시니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놀아서 내가 조금더 여유롭게 요리를 할 수 있다. 국이나 찌개 하나 끓이고, 반찬 한가지 만들고, 연제 죽 끓이고해서 아주머니와 함께 먹는 점심이 일주일에 두 번. 

친정과 시댁이 모두 먼 나로서는 어머니들 자주 뵙기가 어려운데, 비록 남이지만 정기적으로 오셔서 집안일도 도와주시고, 아이들 성장도 대견하게 지켜보며 나와 함께 얘기나눠주시는 청소아주머니는 가까운 친척 이모님처럼 여겨진다.  

연제가 좀 더 크고나면 아주머니 도움을 그만 받고 다시 내 힘으로 집안일을 다 해야지.

그 때까지는 일주일에 두 번, 오전 4시간씩 오시는 아주머니가 우리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주실 것이다.











오랫만에 만났던 대학시절 친구, 선후배 가족들과 1박2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20년지기 친구 오드리할뻔이 우리집에 다녀가기도 하고

내가 참 좋아하는 블로그이웃 고래가 가정출산으로 낳은 예쁜 둘째아가를 보러 살림언니와 하루 다녀오기도 하고..

2014년의 첫 한 달에 있었던 이 특별한 일들을 지나며 '육아와 내 삶의 균형', '삶의 친구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 얘긴 차차 또 하기로 하고...


일월에는 읽고싶은 책은 참 많은데 통 읽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읽고싶어 주문해서 책상위에 수도없이 쌓아놓기만 한 책들.. 어느 것부터 읽어야할지 이제는 그걸 못 정해 못 읽겠다ㅠㅠㅠㅠ

뒤늦게 올해의 목표를 하나 세워본 것은...

새책 사지말고 그동안 사놓고 못 읽은 책 다 읽기. ㅎㅎㅎ

읽고 블로그에 서평쓰기. (이러면 좀 강제력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아직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많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세상을 배우고 내 삶을 돌아보고 사색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다.

조금더 노력해서 책과 블로그를 가까이하는 한해를 살아야지.


토요일 오전에 시작한 글이 일요일 한밤중에 끝났네.

서른일곱, 좋은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