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11.07.20 강릉집에서 17
  2. 2011.07.10 우리가 넷이 된 후 17
  3. 2011.07.03 연수 8
  4. 2011.06.22 평화 22
  5. 2011.06.09 오늘도 걷는다 15
  6. 2011.05.29 연수의 세돌 생일 11
  7. 2011.05.25 평화 기다리는 날들 10
  8. 2011.05.20 꽃이 핀다 8
  9. 2011.05.11 어린이날 작은 운동회 16
  10. 2011.04.12 봄날, 아이들과 엄마들 10
umma! 자란다2011. 7. 20. 21:07






강릉집에  내려와있다. 
참... 좋다.







연수는 외갓집 마당에서 하루종일 논다.
주말에는 외사촌누나와 동생도 함께 있어서 더 신이 났다.
아이들은 마당가 모래밭과 수돗가를 오가며 흙투성이, 물투성이가 되도록 놀았다. 
옷을 여러번 갈아입고 어른들의 걱정을 들었지만 얼마나 신나했는지 모른다.

사촌들이 서울로 돌아간 뒤에는 연수 혼자 옷을 버릴 정도로 모래놀이를 하지는 않는다.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 뒤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논에도 가고, 밭에도 가고
제법 멀리 떨어진 동네 양계장집으로 계란사러도 다녀온다.
할아버지 차타고 마트며 떡집, 시장으로 장보러 다니는 일은 또 얼마나 반가운지..

강릉은 태풍 영향으로 요며칠 계속 비도 오고 저온이었다.
연수는 우산을 쓰고 마당에도 자주 오가고 그래도 심심하면 할머니와 퍼즐도 맞추다가
할머니와 나란히 누눠 이비에쓰 만화도 보고....
엄마랑 같이 노는 시간이 거의 없어 섭섭하겠지만 그 빈자리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따뜻하게 채워주시는게 느껴진다.
연수도 엄마도 같이 그 따스함 속에서 지난 한달동안 생긴 고단함을 위로받고 새 힘을 얻고 있다.



 

연호는 첫 외가집 나들이.
나의 할머니, 아이들의 외증조할머니는 연호를 처음 만났을 때
"아이고~ 우리 햇님이가 왔구나! 어디 햇님이 얼굴 좀 보자~!" 하셨다.

햇님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낳은 어린 아기, 그 아기는 햇님이지. 순하고 여린 아기, 따순 햇살을 보내주는 햇님이지.

나도 강릉에 온뒤로 연호를 햇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햇님아, 젖먹자. 햇님이 잘 잤니. 햇님아..

강릉말 중에 '해든나'라는게 있다. 아주 어린 아기를 부르는 이름이다.
아기를 '언나'라고 부르는데 거기다 '햇'이란 접두사를 붙여서 '아주 어린 아기'를 부르는 것이다.
햇밤(막 생긴 어린 밤), 햇과일(새로 난 과일), 햅쌀..

여리고 고운 것들, 갓 생명을 얻은 귀한 것들... 
어린 아기를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몸이 힘들다보니 아이에게 더 다정히 대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엄마도 힘들지만... 아기, 너는 더 힘들겠지. 
사람 인생을 통털어 가장 빠르고 가장 큰 성장을 해내고 있는 젖먹이 아가야.
너를 더 많이 보듬어주고, 응원해줘야겠다.

강릉에서 지내는 동안 연수도 나도 연호도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 같다. 
낮시간동안 연수는 나를 찾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게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잠깐씩 짬이 나면 연수를 안아주고, 마당에서 함께 놀려고 애쓴다. 그래도 그 시간은 정말 짧다.
대신 연호는 하루종일 정말 많이 안아준다. 
밤잠을 수월하게 자는 대신 낮에는 거의 품에 안겨서만 자려고하는 연호.
연호를 재우느라 안고 다니다가 문득 '그래.. 이건 갓난아기, 너의 타고난 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젖먹이 시절 엄마 품에 종일토록 안겨있고, 나중에는 등에 업혀서라도 엄마와 살을 붙이고 오래오래 그 체온을 느끼는 것은
아가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고, 권리겠구나.. 하는 생각.
너도 네 권리를 최대한 누려야지..
서른네살이나 된 엄마도 이렇게 엄마곁에만 와있어도 좋은걸.
엄마란 그런 분인걸.




+ 강릉집에 컴퓨터가 생겨서 집에서 포스팅도 할 수 있고.. 참 좋다.
그래도 짬은 잘 안 난다. 낮에는 내내 아기를 안고 있으니 밤이 되면 너무 고단해서 쓰러져 자기 바쁘다.
자면서도 몇번씩 깨서 연호 젖을 먹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누워서 젖먹이기'신공을 터득해서 연수때보다 한결 낫다.
역시 둘째가 쬐금은 수월하구나... 

++ 엄마와 연수연호가 강릉에서 잘 지내고 있는 동안.. 서울에 혼자 남겨진 연수연호 아부지는....
아마 우리 가족중 가장 잘 지내고 계시겠지. ㅎㅎㅎ 
모처럼의 해방주간.. 뿌듯하게 잘 보내셔요. 

+++ 아.. 그러나 이 모든 웃음과 행복 뒤에는 우리 엄마의 고단한 수고가..ㅠㅠ
다리도 아프시고, 감기 기운도 있으신데... 연수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시랴, 미역국 끓이고 대식구 밥 챙기시랴.. 하루종일 종종걸음이시다.
딸은 더운밥 먹이시려고 나부터 밥먹으라 하시고 그동안 연호 안고 계시는 엄마. 우리 엄마.
엄마, 감사해요. 이 고마움, 어찌 갚을지...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7. 10. 23:26








우리집에 육아의 달인이 나타나셨다.
내가 아니고 연수아빠 말이다.
16년간 아이만 키우신건 아니지만... 아빠 4년차,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육아의 달인 김준철 선생님.
요즘 이 분의 활약이 눈부시다.

엄마가 못 재워서 힘들어하던 평화를 안고 안방에 들어가 몇분만에 슬쩍 재워놓고 나와서는 연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밖이 그리운 연수와 함께 주말에는 둘이서 놀이터로, 텃밭으로 룰루랄라 돌아다니는 짬짬히 산후조리중인 아내를 위해 밥솥에 밥을 안치고 밀린 설겆이를 한다.
아침일찍 일어나는 연수와 엄마가 밖에서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주말이면 꼭 즐겨주시던 달콤한 늦잠도 포기하고,  
무한도전과 나가수도 잊고.. 아이와 가족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주말을 보낸뒤 일찍 곯아떨어진 남편을 보니 뭉클하다. 
고맙다.









평화의 이름을 지었다. 연호. 김연호. 
연호를 보고 있자니 연수의 성장이 더 놀랍게 느껴진다.

하루종일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갓난쟁이 동생 덕분에 연수는 엄마손 한번 제대로 잡아볼 시간이 없다.
그래도 씩씩하다. 엄마 곁에 와서 종알거리고, 작은 집안을 부지런히도 뛰어다닌다.
지난 3년동안 우리는 참 징하게도 붙어있었다. 하루종일 같이 놀고, 돌아다니고 웃고 야단치고.. 
그렇게 붙어있었으니까 이제는 동생에게 엄마품을 내주고도 참을 수 있는걸까.
어느새 쑥 큰 내 큰아이가 고맙고 대견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 먹먹해진다.

두번째 출산이라 그런가.. 산후조리하는 동안 출혈이 심했다.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했는데 병원진찰을 받아보니 괜찮다고해서 안심했다. 
피를 많이 흘리니 아무래도 더 피곤하고 허리도 많이 아프다.
임신했을때 살이 많이 쪄서 지금은 그 살들덕분에 다리와 발목도 늘 뻐근하다.
나이가 들은게지, 이 엄마가.. 
내 예쁜 첫 아이가 저렇게 쑥 컸고, 둘째까지 세상에 태어났으니 엄마도 그만큼 늙는게 당연하지.

처음에 둘이었던 우리가 넷이 되었다.
그 사이에 참 많이들 자란 것을 느낀다.
연호가 우리에게 찾아와 준후, 우리 가족의 삶 속으로 들어와준 후.. 그 25일 사이에 정말 쑥 많이 컸다고 느낀다.
연수, 엄마, 아빠 모두 말이다.
연호야, 고맙다. 울고 보채며 참 쉽지않은 생애 첫 날들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아기, 고맙고 또 고맙다.

넷이 된 후, 엄마아빠는 한시도 쉴 틈이 없다.  
각자 한 아이씩 책임지고 분주히 움직이며 애들 먹이고 우리 입에 밥넣고 
책 읽어주고 기저귀 갈고 어질러진 집 치울 새도 없이 곯아떨어지는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눈물나게 예쁜 시절일 것 같다.
잘 커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육아와 삶의 든든한 동지로 서로의 곁을 지켜주고 있는 우리가 고맙다. 
응원해주는 가족들, 친구들..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기운들께도 마음깊이 감사드리게되는 날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7. 3. 14:25






요즘 이 분.. 많이 힘드시다.

엄마는 어린 동생 젖먹이고 재우느라 한 집에 있어도 같이 놀 시간이 거의 없고
할머니들과 아빠랑은 제 입맛에 딱맞게 놀기가 어려울 뿐더러 심통부리다가 야단맞기 일쑤다.
늘 밖에서 양껏 뛰고 구르던 아이가 집안에만 갇혀있자니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기 어려운데 
소리지르고 뛰고 구르는 모든 일이 어린 아기 옆에서는 위험한 일이 되니 조심해라, 하지마라 야단이 끝이 없다. 

연수는 연수대로 심통이 나서 어른들 말씀에 "흥~!, 그러지 마!"하고 소리치기도 하고 "싫어, 아니야"를 입에 달고산다.
"나 좀 구해줘~!"는 연수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인데 힘을 쓰면서 놀고싶어서 작은 집안에서라도 어딘가 매달리고 구르며 이 소리를 계속 지른다. 같이 놀아줄 수 없는 엄마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아프다. 










평화를 낳고 병원에서 다섯밤을 잤다.
그동안 연수는 내내 나와 함께 병원 입원실에서 잤다.
할머니나 아빠와 집에 갔다가도 잠은 엄마곁에서 꼭 자겠다고 해서 저녁이 되면 엄마와 평화가 기다리는 406호로 돌아오던 아이.
그때부터 시작해서 집에 돌아온 요즘까지도 아빠나 할머니와 밖에 나갈 때면
"엄마, 우리 갔다올께~~! 약 잘 먹고 잘 있어~~, 평화 잘 보고~~!"하고 길고 다정한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아이.
다녀오면 저 멀리서부터 타타타타 뛰어오는 작은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엄마 우리 왔어~~~!" 하고 뛰어들어오는 아이.










제왕절개 수술 후 긴 병원생활이 첫째때보다 훨씬 견딜만하다고 느꼈던 건 연수 덕분이다.
별처럼 빛나는 내 큰아이가 재잘재잘 떠들고 환하게 웃으며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작고 답답한 병실안에서 걸음도 잘 걷지 못하고 수술자리의 통증을 느껴가면서도 웃고 밥먹고 행복하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닟선 병원에서 여러날을 보내는 것이 네살배기 아이에게 퍽 힘든 일이었을 텐데도
엄마가 있기 때문에 저도 응당 엄마 곁에 함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며 잘 견디고 건강하게 지내준 연수가 정말 고마웠다.

이 아이가 나에게, 우리에게 준 기쁨과 행복이 얼마였던가.
얼마나 크고 많았던가.. 
지나온 모든 날들과 함께, 평화를 낳고난 후 더 절절하게 연수에게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연수는 평화가 참 예쁘다고 한다.
만져보고 싶어하고, 평화 곁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어한다.
엄마와 손발을 맞추어서 평화가 똥을 싸면 새 기저귀와 물티슈를 가져다주는 일은 제가 꼭 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엄마를 오래도록 차지하고 있는 어린 동생에게 샘도 나고 화도 나는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하루종일 저 혼자 엄마를 독차지하고 지내다가
갑자기 오랜 시간 엄마를 동생에게 내주고 저는 혼자, 혹은 집안일로 바쁜 할머니와 잠깐씩 놀아야하는 상황이 
생각하면 때로 참 못마땅할 것이다.
 
가끔 연수는 안방에 들어왔다가 엄마가 누워서 평화에게 젖을 먹이고 있으면 저도 평화곁에, 그러니 엄마의 한쪽 팔끝을 베고 누워서  평화를 툭툭 때리기도 하고, 평화 위로 슬쩍 굴러보려고도 한다.
어린 아기가 다칠까봐 겁이 난 엄마가 혼을 내거나, 구르지 못하게 막으면 
힘을 부쩍 써서 엄마에게 맞서도 보았다가 제 맘을 몰라주는 것이 서럽다는듯이 엉엉 울기도 한다.
낮잠이 올 때는 투정과 서러운 감정이 더 심해져서 아주 서럽게 한바탕 울 때가 많다.  

어느 날은 연수의 잠투정을 겨우겨우 달래가며 갓난아이 젖물려 재워서 한쪽에 눕혀놓고 
연수 팔베게해서 옛날이야기 한참 해가며 또 겨우 재우고 한숨 돌리며 팔을 빼려고하는데
그만 잠이 포르르 깨서는 팔 빼지 말라고, 엄마랑 같이 잘거라고 얼마나 얼마나 우는지 안쓰러워서 한참 안고 달랬다. 









그래도 연수는 36개월, 많이 커서 참 많이 참고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많이 이해하고,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동생이 태어난 후 찾아온 큰 변화를 그래도 나름대로 많이 소화하고 견디고 있는 것 같다. 

두돌 터울로 동생을 본 내 친구의 큰 아이는 동생이 태어난후 한달동안 굉장히 많이 아팠다고 했다.
말을 아직 제대로 못할 때여서 제가 받은 큰 심리적 충격을 말로 다 표현해내지 못하고 몸으로 시름시름 앓았던 것 같다고 친구는 말했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큰아이가 받는 충격과 고통은 남편이 첩을 데리고 들어온 것보다 크다는 말도 들었다.
  
평화가 엄마 젖을 빠는 모습을 보고있던 연수가 "나도 젖꼭지 빨고싶다.."고 말해서 그렇게 하게 해주었다.
한때는 늘 제 차지였던 엄마 젖꼭지를 이제는 아쉽게 살짝 빨고 물러난다.
평화를 때리는 것에 화가 난 엄마가 '한번만 더 때리면 안방에 못 들어오게 할거야!'하고서는 정말로 문을 잠갔더니 밖에서 한참을 열어달라며 울었다.
내가 너무 했다 싶어 미안해서 열어주고 연수를 안고 울었다.
그래도 또 때리면 나도 또 화가 나고, 또 혼을 낸다.
서로 아프게하고 다치게하면 어떻게 함께 살겠냐고, 연수가 자꾸 평화 때리면 우리가 같이 살 수 없겠다 했더니 연수는 "그런 말 좀 하지 마"하고, 때로는 나에게 "너무하잖아!"하고 소리치기도 한다.

아빠도 처음으로 연수에게 정색하고 야단을 치고, 벌도 준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모두 어색하다.
연수는 아직 '벌'이란 것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분위기나 말뜻은 눈치빠른 아이라 다 알아듣지만
그래도 가끔씩 섭섭하고 답답한 제 마음을 어른들이 하지말라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풀고 싶은 것 같다. 

그러다 평화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상처받을까봐, 적어질까봐 나는 그것도 걱정이 된다. 
어린 동생이 신기하고 예쁘고 좋기도 하지만, 때로 밉기도한 감정.

어느때는 이런 생각도 한다.
지금 참 힘든 시간이 우리곁을 지나고있긴 하지만... 삶의 어느 때에 형제가 있어서, 우리가 넷이어서 참 좋고 고맙다는 생각이 모두에게 드는 때도 있을 거라고..
엄마인 나도 몸이 고단하고, 두 아이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울 때가 있다. 
연수에게도 미안하고, 평화에게도 미안한 그런 순간에는 저 생각을 한다. 
아이가 둘이어서, 우리가 넷이어서 행복한 순간도 꼭 있을 거라고..
삶이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그렇지만 또 행복은 언제나 마음속에, 찾아보면 늘 살아있는 것이니
오늘 하루, 우리가 함께 있는 이 하루를 고마워하며 행복해하며 살자고...  









이렇게 작은 아이다.
아직 우리 큰 아이도.
장독대에 씌우는 하얀 천뚜껑을 뒤집어쓰고 뛰어노는 그렇게 작은 아기다.

연수는 요즘 잠들기 전에 하는 치카치카 시간을 몹시 기다린다.
평화가 잠든 후에 엄마아빠를 온통 저 혼자 차지하는 시간. 아빠가 노트북을 들고 뽀로로 만화를 보여주고 엄마 다리를 베고 누워서 입을 '아' 벌리고 하는 짧은 치카치카시간이 연수가 엄마아빠를 한꺼번에 독차지하는 하루중 유일한 시간이다.
이 아이에게 더 깊이, 더 온전히 집중해주고 보듬어주는 눈빛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우리 가족이 모두 한걸음 더 성장하느라 힘든 시간.. 
그 맨 앞에 서있는 연수야.. 힘내자.. 고맙다.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6. 22. 10:39







평화와 집에 왔습니다.
6일만인 일요일에 돌아왔어요.
평화는 잘 먹고, 조용하기만 하면 잘 잡니다.   

태어난지 7일만인 엊그제 배꼽이 떨어졌어요.
8일째인 어제는 할머니와 함께 목욕을 하고나서 보니 머리에 딱 붙어있던 귀도 살짝 펴지고 있었어요.
매순간이 신기합니다.
연수 때는 참 어리둥절한채로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만 같은데
평화는 둘째라 그런가 신생아의 첫 날들을 더 천천히 음미하면서 보내게 되는 것 같아요.








평화가 제일로 많이 닮은 것은 개구장이 형아 연수고요,
처음 태어났을때는 딱 어릴적 제 모습을 보는것 같아서 친정엄마도 '너랑 똑같이 생겼다'고 하셨어요.
얼굴 윤곽은 약간 네모난 것이 아빠랑 닮았어요.
연수는 턱이 뾰족한 세모 얼굴이어서 태어났을때 얼굴 모양은 저랑 많이 닮고 눈코입은 아빠랑 많이 닮았었는데 평화는 반대예요.









모유수유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 수술 후 몸의 불편함들을 견디는 일.. 모두 힘이 들지만
그래도 평화가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만 생각하면 고마워서 힘들다는 생각 거의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평화를 낳을때 유도분만을 위해 촉진제를 맞았어요.
약한 진통이 살짝씩 느껴질 무렵, 태아심박동을 체크하는 기계를 본 간호사들이 깜짝 놀라서 저에게 산소호흡기를 꽂아주었습니다.
저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는데, 평화는 배속에서 규칙적인 자궁수축에 따라
심장박동도 깊은 곡선 그래프를 그리며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예정일이 지나면서 양수 양이 많이 줄어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에 아기가 충격을 너무 크게 받는 것 같다고,
이대로는 정상적인 분만 과정을 아기가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겠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었습니다.

평화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는 엄마의 욕심의 너무 과한 것이었나.. 싶었습니다.
평화 스스로 나오겠다고 하는 때를 끝까지 기다려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고,
인위적인 수축을 견딜 수 없을만큼 약한 아이인데 엄마 마음만 앞서서 약물을 쓴 것도 정말 미안하고 무서웠어요.

유도분만을 하기로 되어있던 화요일 아침까지
저는 마지막까지 자연진통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접지 못하고 무리하다싶게 운동을 했습니다.
아이가 힘들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내 몸이 견딜만하니까, 그리고 힘이 들어야 진통이 올 것만 같은 생각에
새벽에 잠이 깨자 어두운 아파트 단지를 몇바퀴나 돌며 진통을 만들려고 애쓰기도 했어요.

그래서 유도분만을 하러 병원에 갔을때는 제 몸도 참 피곤한 상태였어요.
그러니 평화도 많이 힘들었겠지요.
그 밤에 잠을 푹 자고 잘 쉬었다고해서 유도분만을 잘 할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무리하지말자... 무리하지말자...
내 욕심을 앞세우지 말자.
평화를 얻으면서 내내 이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바로 수술을 해서 아이를 꺼내보니
자궁안에서 태변을 많이 싼 상태였다고 해요.  
피부에 태변 착색정도도 심한 편이라 바로 피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결과는 괜찮다고 나왔습니다. 
태변을 조금 먹기도 했는데 다 잘 토했다고 합니다. 









평화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젖을 참 잘 빨고, 엄마 젖이 아직 많이 돌지 않을텐데도 젖을 먹고나면 힘이 들어서인지 곤히 잠에 빠져드는 평화.
밤에도 서너시간씩 잘 자고, 쉬야도 똥도 잘 싸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기저귀 갈때나 옷 갈아입힐때, 배가 고플때 참 서럽게 우는데 
그 모습을 보면 애처롭고 걱정스러워 마음이 아픕니다. 
앙앙 크게 울떄도 있지만 주로는 훌쩍훌쩍 서럽게 흐느끼는데 그 모습도 연수때는 잘 못봤던 모습같아 
측은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 아이와 함께 할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되고 기다려집니다.
집에 돌아와서 오른쪽에는 평화, 왼쪽에는 연수를 눕혀놓고 썌근쌔근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듣고 있을때,
내가 조금이라도 뒤척하면 평화도 '끙~', 연수도 '크으~'하고 엄마의 작은 기척에도 반응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때 
온 집이 그득 찬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내 작은 품이 아주 커진 것 같기도 하고,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고맙고 좋아서 마음이 뻐근합니다.

함께 기다려주시고 많이 축하해주신 블로그이웃님들... 모두 감사해요.
병원에 있는동안 매일 남편의 아이폰으로 댓글을 확인하는게 참 큰 힘이 됐어요.
평화와 연수와 함께... 이제 더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살아갈께요.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6. 9. 00:03



'오늘도 걷는다-마아-는 정처어-없는 이 바-아알--길...'

요며칠 내가 해온 가장 중요한 일과는 걷는 것이다.
아침먹고 집을 좀 치우고나면 모자와 가방을 준비해서 연수와 길을 나선다.

"엄마 오늘은 우리 어디가?"
"글쎄... 한살림 가게에 갈까? 아님 성당 뒷산에 갈까?"

성당 뒷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연수는 뱀딸기를 따는 일에 열중했다.
빨갛게 잘 익은 뱀딸기를 먹어보기도 하고, 왜 뱀딸기인지 궁금해하기도 하다가
벌레들 먹으라고 뱀딸기를 따서 여기저기 숲길에 던져주는 놀이를 내내 즐거워했다.
그러다 처음 가보는 길로 내려서니 오래된 배드민턴장이 나와서 거기서 누가 버리고간 깃털빠진 배드민턴공을 던지며 또 한참을 둘이 신나게 놀았다. 

오전산책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면 또 오후산책을 나갔다. 
날씨가 다행히 매일 좋았고, 내 어린 동행은 고맙게도 햇볕속을 걷고 뛰고 흙과 물과 풀숲에서 노는 일을 참으로 좋아했다.  
우리집 근처에는 아이와 차걱정않고 천천히 걸을만한 산책로, 숲길이 많은 것도 다행이었다.
 
딱히 갈 곳이 정해져있지 않은 우리는 발길이 닿는데로 동네를 무작정 쏘다니기도 했다.
동사무소에 갔다가 강일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서 한참 그림책을 읽다 나오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커피 가게에 들어가 엄마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잔 마시고, 연수는 쥬스와 빵을 먹고 나오기도 했다.











이곳저곳 놀이터에서 오래오래 놀았고,
뭔가 평화 출산전에 준비해둘 것이 생각나면 연수를 유모차에 태우고 고덕역까지 걸어가서 한살림 매장이나 여러 다른 매장에서 물건을 사오기도 했다.

만삭의 애기엄마가 큰 아이를 앞세우고, 혹은 유모차에 태우고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젊은 아주머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본인이 숨이 차다는듯 안타까워하시기도 하고,
노점에서 떡이나 물건이라도 하나 살라치면 할머니들은 어김없이 "아들이지? 얘 동생이~"하고 평화의 성별을 딱딱 맞추셔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우리와 잠시 얘기를 나누게 돼는 가게 아주머니들이 한결같이 "인제 동생 곧 태어나겠네~ 너는 좋겠다! ^^"하고 연수에게 다정히 얘기해주셔서 나도, 연수도 더 설레고 기뻐지기도 했다. 

'아니, 이 산이 지난 봄에 흰 벚꽃잎이 비처럼 날리던 그 산이 맞나'싶게 나뭇잎과 풀이 무성하다못해 검푸러진 산을 보며 깜작 놀라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만난 초등학생쯤 돼보이는 누나에게서 뜬금없이 "우리 엄마아빠는 다 (밤)열한시에 오시는데.."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파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근데 아줌마.. 임신하셨어요?" ^^; 
이 질문은 놀이터에서 연수와 놀고있는 내게 참으로 많은 형아누나들이 했던 질문이다.  

















보통은 연수와 나, 둘이 걸었지만 지난 연휴에는 아빠도 함께 걸었다.
햇볕이 제일 뜨거웠던 일요일, 늘 차를 타고가던 우리 텃밭에 그 날은 세 식구가 걸어서 가보았다.
거리는 5킬로 남짓해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아침을 느지막히 먹고 세 식구가 걷다 꽃구경하다 하며 천천히 걸어가다보니 한낮의 제일 뜨거운 땡볕 아래를 걷게 되었다.

신영복선생님 서화중에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1m의 코스모스 꽃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라는 글귀가 있는데
가래여울 텃밭에 걸어가며 내가 느낀 것이 딱 그랬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10여분 남짓한 시간동안 그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아파트단지와 하우스 풍경일 뿐이었는데
천천히 그 길을 걸어보니 하우스 안에는 호박과 오이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토마토가 가득 실려있는 수레.. 산호수라는 예쁜 화분만 전문적으로 키우는 농장 등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모두 그렇게 신기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6월의 장미 향기도 마음껏 맡을 수 있었다.
장미 향기는 저녁 무렵이 더 진해서 연수와 둘이 나선 오후 산책이 길어져서 저녁 어스름이 깔린 뒤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담장에서 풍겨오는 그 진한 장미향기들에 참 행복해지곤 했다.

시원한 초여름의 밤공기속을 장미향기를 맡으며 걷고 있노라면
가본 적 없는 낯선 시공간- 오래전에 읽어 이제는 그 내용도 어렴풋한, 릴케나 하이네 같은 독일 작가들의 작품속에 나오는 그런 초여름 저녁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작은 아파트 단지 안을 빙빙 돌던 어느 날에는 놀이터 옆에서 한 고등학생 누나가 데리고나온 토끼를 만나기도 했다.
연수는 토끼옆을 오래도록 지키고 앉아서 제가 뜯은 풀을 토끼에게 먹여주고, 그 보드라운 털을 자꾸 만져보았다.
그 날 저녁, 결국 돌담 어디선가 떨어져 울음 끝에 엄마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면서 연수는 토끼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던 아이여서 '토끼를 키울까, 고양이를 키울까'하고 아빠가 물었더니 "토끼 키울꺼야." 해놓고는 뒷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네 살이니까 토끼를 키우고, 다섯살에는 고양이를 키울꺼야.. 여섯살에는 강아지도 키울꺼야."
아빠가 웃으며 "우리집이 농장이 되겠네..'했더니 "응. 토끼가 먹을 수 있게 풀도 키울꺼야" 했다. ^^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걷는 일에 쓰다 보니 요즘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로 할 일이 없는 사람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걷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곧 예정일이 다가오는 평화의 순산을 위해서다. 
배속에 품고있는 생명이 제 힘으로 세상을 열고 잘 나올 수 있도록, 나도 건강하게 이 아이와 만나기 위해 공을 들여 하고 있는 준비이다. 
그래서 걷는 것인데, 막상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어디로 걸어가볼까' 하고 생각할 때는 
내게 세상에서 제일 중한 일이 '걷는 일' 밖에 없는 그런 한가롭고도 할일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웃음도 나고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 나름대로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꼭 해야할 다른 급한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그저 네살배기 큰 아이의 손을 잡고, 혹은 그 애의 빠르고 가벼운 발걸음에 이끌리듯 의지해 무거운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걷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할 생각을 않고
선물처럼 주어진 이 하루하루를 눈부신 초록으로 가득찬 세상속을 걸어다니는데만 쓰고 있는 것이다. 
 서른넷, 초여름의 내 인생에는 그런 한 때도 있었던 것이다...^^ 



평화를 기다리면서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브이백(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을 하고싶어하는 임산부로서 
촉진제를 쓰지않고 정말 온전히 아이의 뜻, 아이와 나의 힘만으로 자연스럽게 출산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보니
아이가 조금이라도 작을 때, 예정일보다 일찍 진통이 오기를 내심 많이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아 오늘도 안 나왔네..'하며 지친 몸으로 고단한 잠에 빠져드는 며칠을 보내다 
문득 내가 중요한걸 잊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제일 하고싶었던 것은 평화가 스스로 나오겠다고, 나올 준비가 되었다고 신호를 보낼때까지 기다리는 일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걸 기다려주지 못한 것이 연수를 낳고나서 제일 안타깝고 미안했던 일이었고, 그래서 평화는 꼭 기다려주고 싶었다.
그러니.. 나에게 중요한건 수술이냐, 자연분만이냐 보다는 진통이 올 때까지, 아이가 준비되었다고 할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느냐 없느냐 이다.
기다려주고 싶었던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자.
더 늦어져도, 언제가 되어도.. 예정일이라는 것도 하나의 수치일뿐 내 아이가 준비되는 것은 저 나름의 때가 있을 것이다.

연수와 평화는 예정일도 6월 10일로 같다.
3년전에 나는 역아로 있던 연수를 예정일보다 1주일 앞선 6월 3일에 수술로 낳았다. 
6월 3일부터 6월 10일까지의 7일은 그래서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7일이다. 
나이가 더 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예정일을 앞둔 마지막 일주일의 몸은 참 무겁다. 
연수때는 이만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누우면 온 몸이 뻐근하고 아파서 '아구구~'하는 신음이 절로 터진다. 

처음 겪어보는 마지막 7일, 혹은 그 이상의 날들이 된다해도 나는 잘 견디고 싶다. 고맙게 기다리고 견뎌야지...
내 몸안에 작고도 온전한 생명을, 하나의 세계를 품고있는 신비한 느낌, 뻐근하고도 묵직한 이 감동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루 더 걸을 수 있다면 그만큼의 햇살과 푸른 잎사귀와 꽃향기가 내게 주어진 것을 고마워하면서, 
하루 더 놀이터 그네에 올라탄 연수의 보드라운 등을 오래도록 힘껏 밀어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앞으로는 될 수 있는한 걸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이번에 걸어보니 어지간한 거리는 다 걸어다닐만 하고, 걸어가는 것이 참 좋았다. 
풍경과 사람들이 길을 따라 내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연휴동안 세식구가 유모차를 밀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고속도로나 큰 도로를 보면 어김없이 차들이 꽉 막힌 도로위에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행렬속에서 답답해하던 많은 순간들이 떠올랐고, 지금 우리가 걷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그래서 걸어야겠다고, 이제는 곧 평화까지 네 식구가 되겠지만 최대한 많이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빠와 연수가 노는 동안 혼자 오래오래 걷은 적도 있는데 근래에 드물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짜증스럽고 답답하던 마음속이 천천히 정리되는 경험도 했다.  뭔가 속상한 일이 있어 씩씩거리며 걷기 시작해도 한참 걷다보면, 그런 후에 잠시 앉아 바람을 쐬며 땀을 식히고 있으면 속상했던 것들이 스르르 풀리기도 했다. 
걷는 동안 그런 변화가 가능헀다. 

걷기를 재발견하게 해준 이 시간들까지 평화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다. 
평화야, 고맙다.. 
고맙다.
사랑해.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5. 29. 01:16









지난주 목요일에 연수의 생일잔치를 했다.
연수 생일은 원래 6월 3일이다.
이 날 엄마친구들과 연수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왔는데 친구들이 같이 노래도 불러주고 케잌도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조금 일찍 당겨서 조촐한 잔치(?)를 열었다. 
준비한 것은 케잌과 고깔모자뿐이지만 우리 꼬마들은 모두 아주 즐거워해주었고, 많은 친구들과 이모들께 축하받을 수 있어 연수도 엄마도 더 기쁘고 고마운 생일이었다.









연수가 자기는 네 살이니 초를 네 개 켜야한다고 주장해서 그렇게 했다. ^^
내 첫 아이가 어느새 36개월, 세 돌을 꽉 채우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식탁위에 올라가 케이크의 달달한 잼과 크림을 찍어먹고 있는 개구장이들. ^^



이 날은 원래 얼마 안남은 새댁과 평화의 출산을 격려해줄겸 모처럼 다같이 얼굴보고 밀린 이야기도 실컷 나눌겸 블로그 이웃인 살림님, 고래님, 토토님이 멀리 강일동 우리집까지 와주시기로 한 날이었다. 
살림님네 아기인 희범이와 고래님의 아기 윤우는 연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들.
강일동으로 이사온후 제일 자주 만나고, 서로의 집에도 찾아가본 유일한 친구들이다.
연수에게도, 엄마에게도 참 귀하고 힘이 되는 친구들인 것이다. 

아이 넷을 데리고 먼길 오고가며 모두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특히 가장 어린 민하를 데리고 멀리 금천구에서 지하철을 타고오신 토토님...ㅠㅠ 가실떄는 그래도 아빠가 퇴근길에 데리러오셔서 다행이었지만, 역시 먼길이라 가시면서 힘드셨을까 걱정이예요.)  
모처럼 한나절 같이 밥해먹고, 아이들 어울려노는 것 보아가며 요즘 마음에 담고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풀어놓을 수 있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아유~ 그래서 내가 얼마나 속상했던지...'하는 푸념과 하소연과 고민이 쉼없이 쏟아져나오고  
'맞아맞아', '어머, 나도 그런데~', '그 맘 알지, 알아~'하는 공감과 위로와 다독임이 여기저기서 다정하게 튀어나왔다.
'잘 될꺼야, 너무 걱정마..'하는 격려와 응원에 응어리졌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그런 푸근한 수다가 서너살배기 아기를 키우는 고단한 엄마들, 서른 중반 삶의 고비를 넘어가는 우리들의 오후를 따뜻하게 적셔주었다.











나는 요즘 경쟁심이나 승부욕이 강한 연수의 성격, 그리고 그런 성격때문인 것으로 짐작되는 거칠고 예민한 행동들 때문에 고민이 참 많았다.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형아들에게도 때때로 거칠게 대할 때가 많고, 우리집에 놀러온 동생들이나 친구들을 때리거나 울리는 일도 잦아서 나는 적잖이 놀라고 당황하고 있었다. 아이가 뭔가 잘못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날 엄마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불안했던 마음도 많이 풀리고 걱정도 덜하게 되었다.

'연수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고민을 한참 털어놓다가 문득 '아 그러고보니 나도 어릴때 좀 그런 성격이긴 했는데..'하는 얘기가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왔다. 
참 뭐든 잘해내고 싶었고, 어른들과 친구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했던 아주 어린 꼬마여자아이가 기억속에 살아났다.
그래... 지금 연수도 그런 마음일 수 있겠구나... 연수가 어린 시절의 내 성격과 비슷한 걸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그제서야 슬며시 떠올랐다. 

이날 엄마들이 얘기해준 것처럼 연수는 남자아이인지라 그 표현이 더 거칠게 나타날 수는 있을지언정 연수가 왜 그러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뭔가 풀릴 것 같다.. 싶었다. 연수의 마음을 엄마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으니, 연수도 저를 바라보는 엄마 마음의 변화를 금세 알아차리고 더 편안하게, 더 안온하게 제 행동을 스스로 조금씩 조절해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이해해주고, 잘 할 수 있을꺼야.. 하고 믿고 바라봐주는 눈빛을 아이들은 정말 잘 읽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 마음속을 흔들던 불안하고 거친 충동도 훨씬 덜해지고 스스로 안정과 균형을 찾아간다는 것을 나는 지난 육아기간 동안 조금씩 더 분명하게 느껴왔다. 
엄마 마음이 평화로와지면 아이도 곧 평화로워지고, 도저히 풀릴 것 같지않던 문제들도 어느새 스르륵 풀려가곤 했던 것이다.  

이 날 함께 만났던 엄마들이 지난 몇달동안 연수를 함께 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얘기해주는 것을 들으며 나는 이 분들의 존재에 정말 깊이 고마워하게 되었다. 
나 혼자만, 또 늦은 밤이나 주말에만 연수를 보고 그 외에는 주로 내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연수에게 있었던 일들과 행동을 전해듣는 남편과 둘이서만 의논할 때보다
연수에 대한 훨씬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든든했다.

특히 그들은 모두 연수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기 때문에 자기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의 친구, 혹은 형이 되는 연수를 바라보는 시선도 굉장히 진지하고 애정이 깃들이 있어서 
주관이나 감정이 많이 섞인 엄마 혼자의 생각보다는 훨씬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있어서 따뜻한 이웃들, 또래집단, 마을 어른들처럼 지속적인 관계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번에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집도 더 가까이에 모여있어서 더 자주 어울릴 수있으면 참 좋으련만... 먼 거리가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종종 얼굴보고 서로의 고민을 얘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블로그의 글을 통해 접하는 이 분들의 육아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새댁에게 큰 힘과 배움이 되지만
그에 더해 직접 만나 함께 만나 놀면서 의논도 하고 조언도 얻을 수 있어 정말 고맙다는 생각으로 가슴벅찬 날이었다.    











며칠전 살림님, 희범이와 함께 올림픽공원에 놀러갔을때 연수가 내 디카로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살림님의 자상한 미소와 희범이의 예쁜 얼굴을 잘 담아냈네~. 흠.... 나보다 잘 찍는 것 같다...--;;;











이 사진은 지지난 주에 고래님댁에 놀러갔을때 내가 찍은 윤우 사진.
우리 텃밭에서 뜯어간 상추로 살림님이 맛있는 '상추 겉절이'를 해주셨고, 윤우는 자기집에 놀러온 이모들과 친구들을 특유의 차분하고 온화한 태도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

(정작 우리집에서는 사진찍을 정신도 없이 수다떨기 바빠서.. 예전 사진들을 올렸다. 토토님이랑 민하 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놓은게 넘 아쉽네..ㅠㅠ 담에 만났을 때는 꼭 예쁜 민하 사진도 담아야지~!)











우리집 개구쟁이 김연수. 
친구들과 장난감 문제로 제일 자주 투닥거리고, 밀고 뺏고 때리는 문제행동도 제일 많은 녀석이지만(ㅠㅠ)
그래도.. 사랑한다, 우리 개구쟁이.
부디 이 시절을 잘 지나 친구 귀한줄 알고 배려하고 나누고 사이좋게 놀 줄 아는 의젓한 소년이 되어주길...
엄마는 믿고 또 응원할께.

연수의 만 세살 생일은 내가 엄마가 된지 만 3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3년.. 이제 겨우 3년이 지났구나. ^^
언제 벌써 3년이나 됐나 싶게 여전히 참 우왕좌앙 미숙하고 부족한 초보엄마지만
그래도 그런 내 곁에서 이만큼 자라준 아이가 고맙고, 엄마로 살 수 있게 해줘서 너와 함께 성장할 수 있게 해줘서 더없이 고맙고 기쁘다.

지난 3년을 돌아보니
우리 이야기를 담아온 블로그를 통해 여러 이웃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았던 것,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것..
덕분에 앞으로 엄마도 너도 더 든든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을거란 기대가 들어서 두루두루 참 좋은 생일이구나.
고맙다, 연수야.
고맙습니다, 모두들....^^
엄마 4년차의 새댁,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로 또 좌충우돌 눈물콧물 빼겠지만... 더 힘내서 더 행복하게 아이들과 잘 살아가겠습니다. 꾸벅.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5. 25. 23:00









예정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둘째는 좀 일찍 낳는다고도 하고, 나도 그리 되길 바라고있어서 요며칠은 아기맞을 준비를 매일 한두가지씩 했다.

연수가 입던 배냇저고리와 천기저귀들을 꺼냈다.
아기시절의 옷들에서는 아기 냄새가 났다. 작은 옷에 배인 그 시절의 향기를 맡고있자니 마음이 뭉클했다.
천기저귀는 작년 가을까지도 연수가 썼던 것들이다.
'드디어 끝이다, 기저귀빠는 날들이여, 안녕~~!'하고 감개무량해했던 것이 그리 오래지않은데 다시 꺼내니 웃음이 난다. 
바쁘구나.. 우리집 기저귀들. ^^
연수 궁둥이에 발진 한번 안나게 잘 지켜주었던 고마운 기저귀들... 평화 궁둥이도 잘 부탁해~!
형아의 건강한 기운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기저귀를 차고 평화도 탈없이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진통오면 병원에 들고갈 가방도 싸두고, 산후조리 도와주실 분들과 연락도 다 하고..
마침 기간이 끝나가는 내 운전면허 적성검사까지 토요일에 무사히 마치고 나니
'아 이제는 평화가 언제 태어나도 되겠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 다음주에 연수 생일파티 해줄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얼른 뒤따라 들었지만..^^

연수도 엄마와 함께 동생맞을 준비를 많이 했다.
내가 아기옷을 정리하면 저도 돕겠다고 하면서 실은 개켜놓은 것들 죄다 펼쳐놓고 기저귀 담아놓은 큰 바구니를 거실로, 놀이방으로 자꾸 밀고다니고...  
그래도 대견하다. 엄마가 평화낳고나서 할머니가 와계신 동안에는 할머니랑 둘이 놀이방에서 자겠단다.
'할머니가 정말 좋아하시겠다~^^'했더니 '응! 연수는 할머니랑 전화하는건 싫지만 같이 자는건 좋아~'하고 안 물은 말까지 덧붙였다. 그래.. 곧 전화도 좋아하며 잘 하는 날이 오겠지..^^;











둘째때는 병원도 훨씬 뜸하게 가고 태담일기도 달랑 한편밖에 못쓰고 초음파사진마저 제대로 모아놓지 못했지만...
만삭사진만큼은 찍고 싶었다. 
아이키우는 것이 고맙고 행복해서 가능하면 셋째도(꼭 딸로!!^^) 낳아야지.. 생각하고는 있지만 사람일은 또 모르는 것...
이번이 내 생애 마지막 임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평생에 다시 없을 만삭시절 사진을 꼭 찍어두고 싶었다. 
그런데 여차저차 바빠 아직까지 찍지 못했다. 
아쉬운데로... 남편이 찍어준 만삭의 공원나들이 사진으로 대신해야할까보다.
얼굴에도 살이 쪄서 그런가.. 사진찍을때마다 눈이 잘 안 떠진다. 눈뜬 사진이 없다고 김작가님한테 한소리 들었다. 
나도 안뜨고싶어 안뜨는게 아니라구...  


















버스타고 지나갈 때마다 연수가 늘 들려보고 싶어하던 '딸기버스'에 왔다.
올림픽공원 평화의문 근처에 만들어진 조그만 쉼터인데 미끄럼틀달린 딸기버스랑 시소만 달랑 있는 조그맣고 낡은 놀이터지만 연수는 정말 좋아했다. 

둘째 출산이 다가오니 첫아이가 왠지 더 애틋하고 짠하다.
동생이 태어나고나면 큰아이도 아직은 어리디 어린 아가일 뿐이란걸 깜빡 잊고 
큰아이에게 더 의젓하게 굴어주기를, 힘든 엄마를 좀 이해해주기를 바라게 된다고 그래서 혼내고 야단도 많이 치고 하다가
깊은 밤에 잠든 큰아이 보고있으면 그렇게 미안하고 짠할 수가 없다는 얘기를 선배맘들께 많이 들었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아직 이렇게 작은 아인데.. 내 큰 아이도' 하면서 잠든 큰 아이 얼굴이며 발을 쓸어주게 될 것 같다.
어린 동생에게 밀려 엄마 품에도 오래 안겨보지 못하고, 혼자 많은 것들을 견디고 해나가길 기대받으며 힘들 때도 많겠지.. 
그래서 평화가 태어나기 전에, 아직 시간이 있을때 
연수가 가보고싶어했던 곳도 많이 가보고, 많이 안아주고 놀아주고 싶었다.
임신기간이 거의 끝나가니 마음만큼 연수에게 잘 해줬었나... 돌아보게 된다.














얼마전부터 연수가 사진찍을때 'V'를 하는데 꼭 양손으로, 눈을 윙크하듯 찡그리고 한다. 귀엽다. ㅎㅎ
 








연수가 꼭 타보고싶어하던 올림픽공원의 호돌이열차도 세 식구가 함께 타보았다. 아, 평화까지 네 식구가 함께. ^^
몹시 덜컹거려서 엄마와 평화는 함께 흔들리는걸 견디느라 아주 긴장해야했다. ^^;;;









또 감았다, 눈...ㅜㅜ

유채꽃밭, 청보리밭... 아름다운 5월을 마음껏 눈에 담고 아이를 낳을 수 있어서 기쁘다.
연수낳고 병원오갈때 길가에 예쁘게 핀 장미꽃 보면서 참 좋아했었는데 평화도 같은 6월이다.
우리 아이들.. 참 좋은 계절에 태어나는구나.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중이다.
처음 해보게될 진통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내 몸에 깊이 각인되어있을 우리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또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힘.. 모든 엄마들의 힘을 믿고 싶다.
스스로 자기 길을 열고 나오는 아기의 강인한 생명력도 믿고...
그래서 우리의 만남이 고통스럽지만 가장 평화로운 생명 본연의 일이 되기를 빌고 있다.

평화를 기다리는 날들이 이렇게 흘러간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5. 20. 19:04









우리집 치자화분에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작년 봄인가 여름에 갈현동 골목에서 미용실앞에 놓고 팔던 작은 치자화분을 사오면서 '아 이 나무에 꽃이 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미용실 아주머니가 줄기끝에 매달린 초록순들을 가리키며 이게 다 꽃이 될거라고 하셔서 기대는 더 컸다.
하지만 작년에는 치자꽃을 결국 보지 못했다.
동글하게 뭉쳐있던 초록순들은 그대로 펴져서 잎이 되었을뿐 꽃봉오리는 생기지 않았다.
15층에 살아서였는지도 모른다.
1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에서는 화분들도 어쩐지 잘 못 자란다고.. 화초도 사람도 땅기운에서 너무 멀어지면 힘이 없어지는 모양이라는 어느 이웃분의 말씀도 있으니 말이다.
4층인 지금 집으로 이사와서 맞은 첫 봄.. 치자는 다시 몽글한 초록순을 여러개 피워올렸다. 
나는 저기서 꽃이 필까.. 아니면 다시 잎만 자랄까 궁금해하며 연수와 그 이야기를 여러번 나누었었다.  











그런데 보름, 아니 한달쯤 전이었을까... 연수가 '엄마 꽃봉오리가 생겼어!'하고 말해주어서 자세히 보니
정말 여지껏 보지 못했던 둥글고 뾰족한, 틀림없이 꽃이 될것같은 연두색 봉오리가 솟아나 있었다.
'여기도 있다, 여기도 있다!'하면서 연수가 세어보니 세 개였다. 며칠 뒤에 잎사귀 뒤에 숨어있던 것을 하나 더 찾아서 꽃봉오리는 모두 4개였다.

치자화분을 둔 안방 베란다는 햇볕이 한나절 아주 잘 든다.
빨래건조대도 있고 예전에 연수가 쓰던 아기흔들의자도 있고 작은 나무탁자와 의자도 하나 있다.
연수는 아기의자를 비행기라고 부르며 거기 앉아 조종하기를 좋아한다.
오며가며 치자꽃이 피었나도 자주 살피고 내게 봉오리가 흰색으로 변했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꽃이 핀 것을 알게된 것은 며칠전, 아침에 일어나 안방과 베란다 사이에 있는 유리문을 열었을 때였다.
향기가... 향기가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이게 무슨 향기지? 무슨 향기가 이렇게 좋지..?'
처음에는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인가 했다. 그러다가 그동안에도 늘 같은 세제로 같은 빨래를 널어왔는데 이렇게 좋은 향기는 못 맡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나절만에야 치자화분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하얀 꽃이 벙그렇게 두 송이나 피어있었다. 
하얀 꽃잎이, 큰 꽃송이가, 아찔할만큼 향긋한 꽃향기가... 비현실적이다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연수야, 치자꽃이 피었어~!" 
둘이 같이 들여다보고 향기도 맡고 사진도 찍어가며 꽃 옆을 한참동안 떠나지 못했다. 가슴이 살짝 벅찼다. 연수와 함께 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 치자화분을 사들고 갈현동 골목을 올라오며 '연수야, 엄마는 예전부터 치자를 키워보고 싶었어. 이 나무에서는 하얀 꽃이 핀단다. 꽃이 피면 향기가 무척 좋아! 우리 같이 잘 키워보자~' 하고 얘기하던 저녁..
아마 세 식구가 모처럼 동네 돼지갈비집에서 외식을 하고 술렁술렁 걸어돌아오던 주말 저녁이었을 것이다.
그때만해도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연수가 '하얀꽃이 피어?'하고 묻고는 그 다음날부터 베란다에 둔 치자화분을 볼때마다 '엄마 꽃은 언제 피어?'하고 물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꽃이 드디어 피었다. 우리집에 온지 일년여만에 처음으로 꽃을 피워주었다.

꽃봉오리가 부푼것을 보고 나는 '평화가 태어나기 전에 꽃이 피어주었으면...'하고 바랬다. 
평화에게 꽃향기를 맡게 해주고 싶기도 했고, 오래 기다렸던 꽃이 피는 것 자체가 곧 우리집에 태어날 아기를 위한 선물을 받는 기분일 것 같았다.
치자는 내 바램을 들어주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아기를 기다릴 수 있어서 참 좋다.. 참 고맙다.

정갈한 느낌의 하얀 꽃, 생각보다 단단한 꽃잎..
은은한 치자향기가 안방에 가득한 요며칠, 꽃이 있는 생활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깊이 느끼고 있다. 










치자 옆에 있는 이 작은 나무는 '백정화'라는 꽃나무다.
이 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푸른 잎사귀들과 함께 가지에 꼭 잎사귀처럼 돋아오르는 하얀 잎들이 꽃잎이다.
저것이 백정화 꽃이라는 것은 나도 올해 처음 알았다.

이 나무는 신랑과 연애하던 시절에 산울림소극장 옆에 있는 작은 꽃집에서 내가 신랑에게 사달라고 해서 선물받은 것이다. 그전에 선물받았던 화분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은 것이 미안해서 하나 더 사달라고 하고 내가 직접 골랐다.
신랑은 그때 '또 죽으면 더 속상할테니 화분은 그만 사지..'했지만 나는 잘 살려보겠다고 꼭 사달라 졸라서 선물받았다.
그런데 근 4년이 흐르는동안 백정화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흰꽃이 핀다고 했는데 그도 피지 않았다.
나는 내심 '나는 꽃화분은 잘 못키우나봐..ㅠㅠ'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푸른 잎만 자라는 화분들은 그럭저럭 몇가지 신혼집에서 잘 키웠지만 꽃화분들은 늘 힘도 없고 겨우겨우 숨만 붙어있었다.

그런데 이집으로 이사오고나서 햇볕을 잘 쬐더니 백정화도 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잘 살아났다.
여린 새잎도 많이 돋았고, 드디어 어느날에는 하얀잎들이 아주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아 이게 꽃이구나!'하고 알았다.
그전에도 이런 잎이 한두이파리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꽃일거라는 생각을 못했을 정도로 작고 힘이 없었다. 

올봄에는 백정화도 튼튼한 꽃을 오래오래 피워주고, 치자꽃까지 피어서 작은 우리집 베란다 꽃밭이 풍성하다. 
작은 화분 두 개에 몇 송이 안되는 꽃들이지만 내게는 어느 넓은 꽃밭 안부러운 고맙고, 황홀한 꽃밭이다. 
고맙다.. 고맙다. 
큰 아이가 잘 자라고, 곧 둘째아이가 태어나는 우리집에 피어준 꽃.. 눈을 들면 예쁜 아이와 예쁜 꽃이 보이는 삶.
그렇게 살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연수는 노는 짬짬히 달려와서 꽃보다가 달팽이보다가 한다. 
작은 집안에 흙을 넣어줄때는 달팽이가 붙어있는 상추잎을 큰 그릇에 옮겨놓았었는데 
거실 베란다로 흙담으러가는 엄마 등뒤에 대고 "엄마, 연수는 달팽이 보고 있을께~. 달팽이 잘 있나 보고 있을께~!"하고 소리쳤다. 
작은 집안에서도 어딜가든 엄마 따라오던 녀석이 엄마와 잠깐 떨어지더라도 저는 달팽이 곁을 지켜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연수는 눈도 떼지않고, 말도 걸어가며 달팽이 곁을 참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연수는 달팽이 단단한 등껍질이 만져보고 싶어서 랩에 뚫어놓은 공기구멍으로 곧잘 손을 넣는다. 
이번 주말에 텃밭갈때 다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연수, 잘 헤어질 수 있겠지..
달팽이 엄마아빠랑 친구들이 달팽이를 기다릴지도 모르고, 먹을 것도 많고.. 아무래도 우리집보다는 원래 살던 텃밭이 달팽이에게는 더 좋을꺼야.. 제 고향이 그리울거야. 우리집에 와서 일주일동안 잘 지내주었으니 '고마워~' 인사하고 돌려보내주자.. 했더니 "응, 그러자~" 한다. 












엄마가 치자사진을 찍으니 저도 찍는단다. 이제 엄마의 작은 디카는 연수가 제법 능숙하게 다룬다.
만 36개월이 다되어가는 연수는 요즘 또 부쩍 많이 큰 것 같다.
말도 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하고, 질문을 받아도 당황하지않고 제 나름대로 떠오른 생각을 다 말하는 것이 신기하다.
떼도 많이 줄었다. 함께 길을 가면서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엄마와 제법 속도를 맞춰 잘 가준다.
여기저기 궁금한 것 다 둘러보고, 비둘기도 쫓아가고, 땅바닥에 떨어진 신기한 것들을 줍는 것이야 여전하지만
어린아이가 그마저 안할 수야 있나...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고, 차조심하자는 말이나 '이 쪽 길이네~'하고 알려주는 곳으로 잘 뛰어가니 그만해도 너무 고맙고 대견한 성장이다. 
 











지난 화요일에는 연수와 함께 관악구에 있는 '모태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고싶어하는 나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아빠와 함께 가려면 주말까지 기다려야하는데 그 전주 토요일에 연수 낳았던 병원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하고 나서는 기운은 빠졌지만 마음은 더 급해졌다. 
36주라 아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진통이라도 오는데 갈 병원이 없어 우왕좌왕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연수와 둘이서라도 병원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초음파도 볼테고, 이정도 주수면 내진을 할 수도 있어서 연수가 잘 있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연수에게 '선생님이 평화 잘있나 살펴보는 동안 연수가 엄마 옆에 가만히 잘 있어줄 수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한테 안아달라거나 밖에 나가겠다고 하지 말고 옆에서 같이 잘 보자.. 했더니 참 믿음직스럽게 '응!'하고 대답해서 믿고 떠났다. 
가는 길에도 택시탈까 물었더니 버스타고 싶다고 해서, 버스부터 타고 2호선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서울대입구역까지 잘 갔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들께 과자랑 사탕도 받아서 신나게 먹고, 내 손을 잡고 잘 걸어주는 연수가 얼마나 고맙던지.... 
우리 아기, 어느새 참 많이 컸구나.. 생각하니 내 첫아이의 성장이 고맙고 뿌듯해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모태산부인과에서 만난 브이백 전문의인 이건영 선생님은 내가 지금껏 만나본 산부인과 의사중에서 가장 자상한 분이었다. 
'출산은 산모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고 자연분만에는 산모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들은 옆에서 도와드릴 뿐이지요.' 
다른 두 병원에서 '저희 병원에서는 안되겠는데요'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돌아서야했던 나는 출산에 있어서 산모의 의지와 역할을 존중하면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의사를 만나자 그만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반갑고 고마웠다. 열심히 운동하고 많이 걸으셔서 꼭 순산하시라는 따뜻한 격려를 받고 진료실을 나오는데 '아 이제 살겠다' 싶었다. 

연수는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는 동안 엄마 옆에 서서 '동생은 자고 있네.. 여기가 얼굴이고, 여기가 다리야' 하는 말씀을 잘 듣고 있었다. 
내진할 때는 선생님이 종이와 연필을 찾아주시며 '잠깐 선생님 책상에서 그림 그리고 있을까. 동생 얼굴 한번 그려보자'하는 말씀에 정말 진지하게 제 나름껏 동그라미를 그리고 눈코입까지 그려넣으며 잘 기다려주었다. 
그런 선생님과 연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늦게라도 이 산부인과를 찾은 것, 이 선생님이 출산을 지켜주시게 된 것을 깊이 감사드렸다. 










병원을 나오니 12시, 점심시간이었다. 
마음도 가볍고 기분이 참 좋아서 '연수야, 우리 맛있는 점심 사먹고 가자. 뭐 먹을까?' 물었더니 '짜장면먹자'는 답이 돌아왔다. ㅎㅎ 
연수가 먹고싶어하는 포도쥬스도 한병 사들고 전철역앞 중국집에 들어가 간짜장 한그릇을 둘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택시타고 돌아오는 길.. 연수는 차에서 곤히 잤다.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엄마 곁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 네가 있어서 엄마는 정말 힘이 나'하고 속으로 말했다. 

연수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그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아이곁을 지켜주는 것 같지만 실은 아이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고.. 이 아이가 있어서 내가 이만큼 힘을 내고, 어려운 것도 견디고 그리고 웃고 행복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평화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두 아이가 내 곁을, 내 삶을 지켜줄 것이다. 

연수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이유도 연수가 안가겠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연수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이 참 좋아서이다. 연수가 집에 없는 낮시간은 상상이 잘 안된다. 연수와 함께 밥먹고, 같이 산책하고,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노는 시간들이,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참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우리는 때로 투닥거리지만 대개 늘 다정하다. 한참 고단할 때는 엄마 혼자 누워 자기도 하고, 연수는 그런 엄마를 좀 찔러보다가 안되면 저 혼자 뭐든 찾아서 한참 더 놀고 끝내 내곁에와서 잔다. 
이제 평화가 태어나면 익숙한 둘만의 시간이 큰 변화를 맞겠지.... 하지만 셋이 보내는 시간에 또 우리는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도..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연수와 평화... 아이들이 다 자라서 드디어 내가 혼자 낮시간을 보내는 때가 오면 아마 나는 많이 허전하고 허둥거릴 것이다.
한동안 정처를 못잡고 서성거리다가... 나중에야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혼자 산책하면서 다시 평온을 되찾으려 애쓰게 되겠지.. 그런 날은 아직...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

연수의 낮잠이 길어져서 오늘은 나도 모처럼 밤이 아닌 낮에 블로그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비가 많이 온다. 평화는 언제 태어날까..? 기다려진다. 아직 준비할 것들이 좀 남아있고, 만나기로한 약속들도 다음주까지는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줄까? ^^ 
형아될 준비를 하느라고 연수도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할 것이다. 
아 참, 연수랑 요즘 잘 보는 그림책 한권을 블로그에 올려야지.. 생각했었는데 잊지말고 덧붙여야겠다. 
이 책을 본 뒤로 연수는 내가 똥마려워서 '아 배아프다' 하면 '오늘 평화가 태어나는거 아니야?'하고 정색하며 묻는다. ^^;;
동생맞을 준비를 하고있는 아이와 함께 보면 참 좋은 책이다. 



아가야, 안녕? - 10점
제니 오버렌드 지음, 김장성 옮김, 줄리 비바스 그림/사계절출판사



집에서 태어나는 아기.. 자기를 기다리는 많은 형제자매들과 만나게되는 아기... 참 그리운 풍경이다. 
나는 이번에는 자연분만을 할 수있을거라는 기대만으로도 행복하다. 행복하게, 평화롭게 잘 만날 수 있길 빌 뿐이다. 
평화야, 연수야.. 고마운 아이들아. 너희들의 엄마가 되게 해줘서 고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5. 11. 01:10









'무슨무슨날'이라고 이름붙은 날이 다가오면 '그 날 뭐하지?' 하는 고민을 한다.
어딜 갈까, 누굴 만날까... 뭘 먹을까 까지.
일년을 통털어 그리 많지는 않은 특별한 날들을 맞아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특별한 준비를 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즐거운 일이다. 매해 새로운 일을 하면서 같은 날들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할 일이 정해져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리에게는 어린이날이 그렇다.  ^^









어린이날에는 아빠의 대학선배들 가족이 모교 잔디밭에서 만난다. 
우리는 작년부터 참가했는데 하루를 온전히 널찍한 잔디밭에서 아빠와 온갖 운동경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 모습에 반해서 
올해도 그렇게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는 망설임없이 '어린이날엔 버들골~~!'로 결정했다. 










아직 형아들의 야구세계에 끼기는 어려운 연수.
하지만 이제는 누가 하는걸보면 '연수도 해봤으면..'하고 잘 해보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 네살이다.
작년에 사서 집안에서만 늘 잘 가지고 놀던 야구놀이 세트가 드디어 바깥 나들이를 했다.
형들 발야구할때 옆에서 차고 놀 고무축구동도 출동~~~!










두근두근... 긴장하며 기다리는 김연수 타자.
형아들 게임하는걸 옆에서 보더니 "연수는 2번타자!"란다. 2번이 제일 맘에 드는 모양이다. ㅎㅎ
2번 김연수타자를 맞아 마운드에서 고전하고 있는 오늘의 투수는...










두둥~~! 바로 임신9개월의 평화엄마~. ^^

네 살배기 아드님이 던지기는 제법 하시지만 아직 방망이는 못 휘두르시는 관계로
공을 연수가 가만히 들고있는 방망이에 던져서 맞춰주는(?) 것이 본 투수의 어려운 임무다. ㅎㅎㅎ
 









폼은 상당히 우습지만(--;;;) 살살, 신중히 던져서 맞추기만 하면 되는 투수 역할은 엄마가 제법 한다. 
연수가 투수를 하겠다고 하면 엄마는 글러브와 공을 넘겨주고, 타자석에는 아빠가 서는 3인 시스템의 야구. ^^ 
평화가 네살쯤 되면 4인 시스템의 야구를 해볼 수 있으려나... 아, 그때쯤에는 아빠와 연수는 형아야구단에서 뛰게 되려나!











휴식시간. 연수와 동갑내기인 가원이는 간이침대에 누워서 아빠를 보며 저렇게 예쁘게 웃고있다.
아~~ 딸있는 집과 없는 집의 이 확연한 간극이여... 애교쟁이 딸과 노는 아빠의 모습을 연수아빠는 심히 부럽게 쳐다보았다. ^^










개구쟁이 아들의 휴식시간은 열심히 먹고, 또 뭘하면서 뛰어다녀볼까.. 궁리하는 시간. ^^











점심먹고는 엄마들까지 모두 함께하는 피구 게임이 진행되었다. (물론 나는 열외여서, 술렁술렁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
'작은 운동회'라고 내맘대로 이름 붙였듯이 정말 이 날의 프로그램은 다른 게없고 하루 온종일, 봄볕에 얼굴을 마음껏 태워가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운동'을 하고 논다.
운동경기에 끼기 어려운 어린 아기들은 제 나름껏 놀거리를 준비해와 옆에서 놀면 되고, 천막 한쪽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젖도 먹고 낮잠잘 시간이 되면 유모차를 타고 교정을 한바퀴 휘 돌며 산책을 하기도한다.  
때되면 모두 둘러앉아 준비해온 점심밥과 간식을 나누어 먹고
아빠와 아이들이 야구, 축구, 발야구 등을 할때 엄마들은 천막 아래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마음 넉넉하게 논다.
어른들이 좀 쉴때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또 잔디밭에서 뭔가 놀거리를 찾아내서 잘 놀았다. 
뭔가 운동경기가 하나 끝났을 떄는 진 것이 분한 어린 소년들은 끝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전 내내 신나게 뛰어논 연수는 유모차에 탄채로 천막 아래서 아주 긴 낮잠을 잤다.
볕을 많이 쬐어서일까, 바람이 시원해서였을까...
일년에 한번, 여기 버들골에 올때가 아니면 잘 듣지 못하는 풍물 소리가 그토록 온 골짜기에 쩌렁쩌렁 울렸는데도
연수는 곤하게 잘도 잤다.
덕분에 엄마 아빠는 오랫만에 만난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넉넉히 나누고 풍물소리도 마음에 담아보면서 잘 쉬고 왔다.











잘 자고 일어난 연수는 비누방울을 신나게 불고, 전날 엄마가 어린이날 선물로 장만(^^)해준 연도 날렸다.
늦은 오후에는 바람도 제법 불어 연이 꽤 높이까지 날아올라가기도 했다. 
 









연수는 얼레를 돌려 실을 풀고, 그 실을 여기저기 끌고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워했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연을 그리 많이 날려본 사람은 아니라서 영 서툴다. 
연수랑 앞으로 많이 날리다보면 엄마도 연날리는 실력이 좀 늘겠지...^^
사내아이를 키우는 날들은 꼭 저만한 사내아이가 되어서, 그 시절에 내가 그리 관심없었던 팽이, 연, 비행기, 기차, 자동차, 총, 칼, 배 같은 것들을 무수히 만들고, 날리고, 돌리고, 휘두르는 놀이들에 빠져지낼 수 밖에 없는.. 그런 날들인지도 모른다.
이미 야구, 축구 경기는 매일 같이 우리집 거실에서 나와 연수가 1대1로 벌이고 있기도 하다.  
연수가 좀더 크면 엄마가 좋아하는 수영과 자전거를 함께 배우는 날도 오겠지..^^
기대되기도 하고, 그 험난한 여정이 미리 겁나기도 한다. 

 










보람차게 잘 뛰어놀았던 어린이날 하루가 잘 저물었다.
학교 후문앞에 있는 고깃집에서 선배님들께 저녁밥까지 든든히 잘 얻어먹고 돌아왔다.
'내년에는 갓난아이 데리고 오겠네~!'하시며 순산하라고, 아기랑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내년 어린이날에 다시 만나자며 등두드려주시는 든든한 선배언니들의 손길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내년 어린이날에도 우리는 스케쥴이 정해졌다. 
연수도, 평화도 별탈없이 잘 커서 내년 봄에는 또 저 잔디밭에서 각자의 놀이와 푸른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4. 12. 23:31










30년. 아이의 아빠가 자라는 동안 마당의 회양목들도 함께 자랐다고 했다.
지금 아이는 딱 회양목만 하다.
동갑내기 친구와 서면 까만 머리꼭지가 슬쩍슬쩍 보인다.   











제일 어린 동생 민하는 아직 30년묵은 회양목보다 작다.
하지만 이 아이 키도 곧 회양목을 훌쩍 넘을만큼 자랄 것이다.











항아리와 물뿌리개가 있는 마당 한켠 수돗가.
여름이면 이 수돗가에 빨갛고 큰 고무다라를 놓고 시원한 물을 찰랑이도록 받아서
물에 비친 햇빛그림자도 보고, 범이의 특기인 '박태환 세러모니'도 하면 참 좋겠다... 상상만으로도 같이 있는듯 흐뭇했다.
까만 물안경도 쓰고있겠지. ^^ 살림님, 그 사진 좀 나중에 꼭 올려주세요.
















희범이 할아버님께서 가지치기 해놓으신 장미나무.
살림 4년차에, 화분이라고는 집안에서 키우는 서너가지 뿐인 초보새댁 주제에 감히 한마디 하자면...
화초를 아름답게 키우려면 제때 가지를 쳐줄줄 알아야하는 것 같다.
무심해서, 혹은 마음 아파서 그저 저 자라는대로 두고보기만 하면.. 종당에는 화초 저도 감당 못하고, 나도 감당 못하게 자라있곤했다.
숲속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자연이, 자연의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법칙이 생존과 변화를 가지고 오지만
집안이라는 통제된 환경속에서 자라는 화초들은 그런 자연스러운 성장과 쇠락도 겪지 못한다.
그러니 오래, 튼튼히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키우고싶다면 '잘라줘야할 때'를 알아야하는 것같다.
나는 언제쯤 그런 때를 알게 될까.











뜨락에 서서 아이와 엄마가 무어라 얘기를 나눈다.
봄햇살이 어쩌면 이렇게 환할까.. 엄마의 눈빛은 어쩌면 저렇게 따뜻할까.

'難長寸草心 報得三春輝'(난장촌초심 보득삼춘휘)

신영복선생님 덕분에 알게된 중국 옛시의 한구절인데
'풀마디같이 짧은 마음으로는 삼월의 봄햇살같은 부모님의 마음을 갚을 길이 없구나' 라는 뜻이라고 한다.

삼월의 봄햇살.. 달력을 보니 오늘은 음력 3월 11일이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에 빛깔이 있다면 오늘의 햇볕 같으려니.. 이렇게 따수우려니.. 싶었다.
















키를 넘는 나무숲 위로 민하가 날아간다.
작은 손에 만져지는 여리고도 강한 새잎... 그 잎 느낌이 아가, 바로 네 느낌이란다.










또래.









엄마들과 아이들.
살림님 블로그에서 어느 분이 '엄마와 아이들이 오물오물 현미밥 먹는 모습 생각만해도 예쁘네요'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오물오물 현미밥먹고, 뜨락에 나와 햇볕쬐고. 
엄마가 되고나서 알게된 행복중에 참 큰 것이 '엄마들 만나는 기쁨'이다. 
우리가 엄마들이라서, 이렇게 함께 모여 밥먹고 아이들 노는것보고 얘기할 수있어서 참 좋다. 
 










고도제한 때문이겠지만
어느새 눈이 고층아파트에 길들어버린 나에게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즈막한 지붕들이 이마를 마주하고 있는
세곡동, 이 오래된 주택가는 참 신기하고 이상하게 편안했다.
높지 않다는 것, 무언가가 내려다보고 있지 않다는 것. 멀리 보이는 작은 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는 느낌이 완연했다. 인간이 뭔가를 자꾸만 높게, 높게 지어서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제 머리를 내리누르는 무게감과 중압감뿐이지 않을까.. 싶었다.

















친구랑 엄마랑 다락방 올라가는 길. 얼마나 즐거울까, 저 발걸음.










낮은 천장, 비스듬한 경사. 작은 다락방.
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깃든 집에 추억이 깃든 비밀장소까지 있다.
집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는다면..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을까. 
 










엄마들 웃음이 환하다. 좋다.
우리가 같이 있어서, 이렇게 웃을 수있는 젊은 엄마의 날이 있어서, 고물고물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더러는 속이 상하고 힘에 부치고 적적하고 답답하지만..
그 모든 날들도 이 웃음속에 녹아있다. 이 웃음을 만들어준 고마운 과정들인 것만 같다.











예쁜 윤우 사진이 오늘 별로 없네.. 아쉬워라.. 하지만 예쁜 윤우엄마 사진으로 대신.
또 만나요, 우리~. ^^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림님.
앞으로도 감사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그리 되었으면 좋겠어요.
세상 일이 늘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인연이 좀 더 오래, 깊게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환한 봄날, 세곡동으로의 초대, 정말 감사합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