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10.12.30 눈이 오면 10
  2. 2010.11.05 아픈 시간 6
  3. 2010.10.27 가을 소풍 6
  4. 2010.10.19 둘째가 오다 26
  5. 2010.09.29 0.4인분 4
  6. 2010.09.25 아빠와 아들, 둘만의 첫 외출 10
  7. 2010.09.16 초가을 외갓집 풍경 8
  8. 2010.08.27 지난 여름, 우리는 4
  9. 2010.08.19 똥이 닮았다 2
  10. 2010.08.09 모유수유 이후. 15
umma! 자란다2010. 12. 30. 23:27










눈이 오면 우리는 신난다.

아슬아슬한 아파트 경사로와 동네 골목을 오르내리며 출퇴근하는 남편을 비롯한 이웃들의 고충과
밤새 제설작업을 하느라 안그래도 고단한 경비아저씨들의 등이 더 굽어지고, 복도의 눈을 쓸어내는 청소부 할머니들의 옷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신나하는 것이 일순간 죄송해지지만.
그래도 세살배기 아이에게는 세상을 한순간 바꿔버린 마법같은 눈이 신기하고, 그 위에서 뒹구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다.
행여 미끄러질세라 조심조심 한걸음씩 아이 뒤를 따라가는 나도 기쁘기는 마찬가지다.

공기는 차가워도, 눈 온 다음날 한낮의 햇살은 따스하다. 
모처럼 밖에 나와 신이난 아이의 빨간 볼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다. 
눈꽃핀 나무가지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눈부시다. 

동네 소년들은 가파른 시멘트 골목길 언덕배기에서 어린시절의 내가 비료푸대를 깔고 동네 산등성이를 내달렸던 것처럼 눈썰매를 탄다. 오늘 그 아이들 손에 들린 것은 어느 학습지 회사의 반질반질 튼튼한 포스터. ㅎㅎ
그래, 이 순간만큼은 학습지도, 학원도 모두 사뿐하게 엉덩이에 깔고 앉아버리렴! 그리고 마음껏 미끄러져가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아들을 구경하는 연수의 손을 잡고 서서, 놀이터옆 골목길을 쏜살같이 내려가는 사내아이들의 뒷모습을 마음깊이 응원했다.

 







엄마! 눈이다요!!


















아침 일찍부터 나가고 싶어하는 연수를 달래가며 집안일을 대충이라도 좀 해놓고
오전 11시쯤 놀이터에 나가보면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아무도 올라가지 않은 놀이기구에 소복이 앉은 눈이 우리를 맞아준다.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눈이온 이 아침에 나와노는 친구들이 더 있으면 좋으련만... 
큰 아이들의 방학과 함께 기상시간도 늦어지고, 감기도 걸리고 등등 여러 이유로 동네 친구들이 오전에 밖에 나와 노는 일이 적어진 겨울, 오전의 놀이터는 늘 우리 독차지다.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우린 둘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엄마는 몸으로야 연수랑 함께 못놀지만 마음만큼은 같이 흠뻑 신나있다.














놀이터 미끄럼틀에 소복이 앉은 눈을 엉덩이로 쓸어내며 미끄럼틀을 타는 연수. 신난다!
엉덩방아를 찧어도 좋다~!











눈도 뭉쳐보고...















엎드려도 보고....

요며칠 눈속에서 놀면서 연수가 제일 신나했던 놀이는 경비원 아저씨들이 주차장의 눈을 치우면서 높다랗게 쌓아놓은 눈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뒹굴고 미끄러지면서도 자그마한 눈산 꼭대기까지 기어이 올라가고, 깔깔 신나게 웃는다.
아쉽게도 그때는 카메라가 수중에 없었다.
그날 눈산 놀이를 끝내고 집에 들어와보니 장갑이며 겉옷이 모두 축축히 젖어있었다. 
1시간쯤 놀고도 더 놀고싶다며 안들어가겠다는 녀석을 꿀차와 빵으로 꼬드겨 겨우겨우 데리고 들어오면서 필히 주말에는 연수에게 보드복과 방수장갑을 하나 사주리라.. 다짐했다.
겨울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옷 젖는 걱정없이 더 신나게 놀아보자~~!
















엄마 손을 잡고 저 화단을 따라 걸어가는 놀이를 우리는 '기차놀이'라고 이름붙였다.
곧게 뻗은 길을 쭉 따라 걸어가는게 기차같아서인데, 오늘은 눈이 와서 연수가 좋아하는 '북극가는 기차'를 더욱 실감나게 할 수 있었다. ㅎㅎ











집에 들어오면 젖은 옷과 장갑은 벗어서 따뜻한 거실바닥에 널어놓는다.  











엄마 눈사람, 아기 눈사람도 우리집에 함께 왔다.









혀끝을 갖다대고 살짝 맛을 본다.
서울눈은 먹으면 안된다고 질색하면서도 나는 안다.
아이의 혀에 닿아 사르르 녹는 눈의 느낌이 얼마나 시원하고 산뜻했을지..

겨울이 아직 많이 남았다. 추위는 겁나지만 눈은 반갑다. 
눈 온 다음날은 햇살이 더 포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람 쌩쌩부는 추운 날보다 밖에 나가놀기 훨씬 좋다.  
세살 아이와 엄마의 지루한 겨울 나기에 그래서 눈은 늘 반가운 이벤트다. 
눈이 많이오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도 하니... 여러 분들이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우리는 눈이 많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11. 5. 01:13








몸은 고단한데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다.
요며칠 저녁마다 그렇다.
혓바늘이 돋아서 아픈 연수는 어제보다는 덜 보챘지만 오늘은 더 늦게 잠이 들었다.
이 겨울에도 살아있는 모기 한마리가 안방에 들어와 일찍부터 불을 끄고 누운 우리를 앵앵거리며 물어댔다.

간신히 연수가 잠들고나서 나와 시계를 보니 11시.
요사이 자꾸 밤잠을 설치는 연수를 더 일찍부터, 푹 재워보려던 생각은 오늘도 실패할 것 같다.
아주 어린 아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요며칠 연수는 밤잠이든 낮잠이든 거의 1시간 간격으로 깨어서 엄마를 찾고 운다.
자다 깨면 안아달라고 조르거나, 엄마 팔을 베고 겨드랑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한참 조물거려야만 다시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며 요즘 이 아이가 무슨 괴로운 일이 있나, 어려운 것을 참고있나.. 걱정이 된다. 

동생이 태어날거라고, 엄마 배속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다고 한두번 얘기도 듣고 엄마 병원에 함께 가서 아기의 심장소리도 엄마아빠와 함께 들어보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연수가 크게 실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아빠도 아직 많이 남은 일을 굳이 자주 이야기하지 않는게 나을 것 같아서 동생 이야기를 연수와 거의 하지 않았다. 
형이 될것이니 이제는 의젓해져야해... 같은 말들도 조심했다. 미리부터 부담을 주거나 동생의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엄마의 변화는 24시간 늘 엄마와 붙어지내는 이 아이에게 예민하게 포착될 수 밖에 없겠지..
엄마가 기운이 없고, 예전보다는 덜 씩씩하게 저와 놀고, 저를 더 많이, 더 오래 안아주지 않으려 한다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밤잠을 설치는 것과 혓바늘이 돋는 시기는 거의 엇비슷하게 찾아왔다. 
아이가 아프면 그나마 실낱같이 나를 지탱해주던 자신감이 급격히 무너진다. 
내가 잘 하고 있는걸까..

나는 내가 아이를 아주 잘 키울 수 있을줄 알았다. 막연하고 조금은 우쭐거리는 마음도 포함된 자신감이었다. 
다른 일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어. 하는.
그래서 나는 내 아이가 조금은 특별하게(?) 자랄 줄 알았다.
말도 아주 잘 듣고, 똘똘하며, 성품도 온화하고 안정감있고 균형있게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저 평범하게 큰다.
말을 정말 안 듣고, 떼도 많이 부리고 손가락을 빨거나 물어뜯으며 어딘가 조금은 불안해보이는 그저 그만한 보통 아이로.
 
그래서 속상하다는건 아니다. 그만그만하게 커주는 것만도 실은 고맙다. 
이렇게 아프고, 잠을 설치고 어딘가 자라는 것이 힘들어보일 때는 저 어린 것을 더 평화롭게,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지 못하는 것같아 부족한 내가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 
   









오늘은 오전에 연수와 동네 시장에서 이것저것 장을 봐가지고 오다가 가끔 간 적 있는 놀이터에 들렸다. 
늘 아파트 놀이터에서만 놀다가 동네 놀이터에 나오니 그것만 해도 새로운 환경인듯 아이도 엄마도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그 놀이터에는 키큰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많아서 큰 잎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오랫만에 키큰 나무를 올려다보며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또 한 번의 가을이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컨디션이 좋지않은 요즘은 낮이든, 밤이든 책도 거의 못 읽고 집에 오는 신문 몇쪽 겨우 펼쳐보는것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신문에 실려있는 세상 소식들은 기륭전자투쟁이 6년여만에 협상에 성공해서 비정규직 해고 노조원들이 정규직으로 고용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고, 
전태일 서거 40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자기 몸을 불사른 금속노동자의 아픈 소식도 실려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아프고도 힘든 일들을 쏟아내며 덜커덩덜커덩 어렵사리 돌아가는데
나는 이 어린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이 우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일인 것처럼 아이만 품에 품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무거워졌다. 
 
집에 돌아와 물감놀이를 하자는 연수의 말에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다.
오늘 본 플라타너스 낙엽과 키큰 나무를 그리다가 문득 윤도현밴드가 부른 '나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 살아가다가 또 살아가다가 
그 사랑에 마음이 아플 때에
고개 숙인채 울다가 속으로 울다가 잎새 하나 띄워보냈네
우린 세상 숲속의 나무
한결같은 마음 하나로 
나를 둘러싼 이곳 이 땅에서
나만큼의 그늘의 드리지
우리는 모두 세상 숲속의 나무


'나만큼의 그늘을 드리지'란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 내가 드리울 수 있는 나만큼의 그늘.. 그 그늘안에서 누가 쉴 수 있을까. 
내 아이는 그 속에서 잘 뛰어놀며 내게 매달려 잘 자라고 있을까.
내 품이 더 커지고 깊어지면 더 많은 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연수가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나도 얼른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평화도 무럭무럭 잘 컸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10. 27. 14:27









가을은 왠지 소풍의 계절같다.
단풍이 살짝 든, 낙엽이 제법 떨어진 숲으로 김밥 싸들고 한나절이라도 꼭 다녀와야할 것 같은.
이제 겨우 세살이 된 꼬마 녀석 손일지라도 꼭 잡고 '소풍가자~'하며 도시락가방을 들고 나서야할 것 같은.
그 가방에는 찐 계란과 사이다와 사탕, 과자같은 것들이 꼭 들어있어야 한다. ^^

ㅎㅎ 얼마전에 그런 소풍을 다녀왔다.
그랬더니 정말 큰 가을행사를 하나 잘 치른 것 같고,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한껏 푸근해졌다.

지난 봄쯤부터 내가 당원으로 가입해있는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의 애기 엄마들과 모임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대학 시절부터 알던 선배언니도 있고, 처녀적에 당에서 만나 알게된 선배 언니도 있다. 
20대 초중반부터 알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들 애기엄마가 되어서 애들 손목 잡고, 도시락 가방 주렁주렁 매달고 나와 만나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아고.. 우리가 이렇게 나이들고 있구나 싶어 살짝 마음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이 모임에서 처음 만난 분들도 있다. 
그렇다해도 같은 애기엄마라는 처지가 서로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 같다. 
아이키우며 궁금한 것도 묻고, 엄마로 살며 고민되는 것도 얘기하고 서로의 집에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 하루쯤 기대 놀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든든해지고 금새 살가운 사이가 된 것만 같은 사람들.  

한 달에 두 번쯤 만나 지역의 어린이 도서관도 같이 다녀보고, 새로운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의논도 한다.
엄마당원들이 관심있을만한 지역 복지, 육아나 교육문제에 대해 간담회 같은 활동도 기획중이다.
그래도 8월말쯤 가을 일정을 잡을때 제일 먼저, 제일 중요하게 날짜를 잡았던 것은 이 '가을소풍'이었다. ㅎㅎ
"가을엔 소풍을 가야지~~!" 이러면서.
"그 날은 큰 애들도 다 데리고 가자~~!" 하고. ^^












우리집에서 가까운 서오릉 숲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서 아이들이 놀게 너무 많은 곳이다.
각자 긴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워서는 뭘하고 놀까... 궁리중이다.
세 살배기 연수는 형아들이 어떻게 노나 궁금하다.
형들은 첨엔 누구 나뭇가지가 젤 긴가, 굵은가로 기선제압에 나서더니 이내 나뭇가지를 '뱀'이라며, 서로 '나는 독뱀이다!' '나는 왕뱀이다' '나는 코브라~~!'하고 놀았다.
엄마는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이지만 아직 뱀이 무서운줄 모르는 연수는 형들을 따라다니며 '뱀이다~~'하고 신나게 놀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살, 다섯살 형아 둘은 이 날 유치원을 하루 쉬고 엄마와 동생들과 놀기 위해 소풍을 왔다.
숲에서 하루를 노는 동안 형들과 살짝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형아들이 있어 동생들은 더 신나는 날이었다.
형아들도 좋았으리라. 
비록 어린 동생을 따라다느라 바빠 한 열번쯤 불러야 겨우 한두번 제 곁에 와줄까 말까한 엄마한테 속상하고, 동생이 저보다 더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으면 부러워 뺏어보고 싶지만 그도 뜻대로 잘 안돼 툴툴거리긴 했어도 말이다. 
숲에서 나올때쯤 여섯살 제일 큰 형아가 엄마에게 살짝 말했다. 
"엄마, 유치원 안가고 동생들이랑 노니까 좋다.." 
엄마 마음은 기쁘면서도 조금 걱정이 들기도 한 것 같았다. "그랬어? 그래도 내일은 유치원가야지.. 친구들이 00이 어디갔나..  보고싶어했을텐데..." 
 
둘째를 갖고 나니 새삼 형아들에게 더 눈이 간다.
연수도 형이나 오빠가 될 것이다.
동생과 어떻게 지내게 될까, 잘 놀 수 있을까.. 서로 보듬어주면서 자라야할텐데...
아이들을 믿어봐야겠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충분히 부대끼고 투닥거리다보면 서로 보살피고 아껴주는 날이 오겠지..
이 날 큰 형아처럼 '동생들이랑 노니까 좋다'고 말하는 날이 오겠지.
엄마와 동생과 가족들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노니까 참 좋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깃드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이 날 소풍은 오후늦게 서오릉에서 제일 가까운 우리집으로 자리를 옮겨 
통닭으로 엄마와 아이들의 이른 저녁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ㅎㅎ 












숲에 다녀오니 입덧도 한결 덜하고, 마음도 개운했다. 평화도 즐거웠나보다.
날이 너무 추워지기 전에 숲에 더 올 수 있으면 좋을텐데... 생각했지만 소풍 뒤로는 날이 바싹 추워져 집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몸이 더 괴롭고, 연수도 집에서 답답하다.

그래도 씩씩한 연수는 제가 기운없는 엄마 대신 설겆이를 해보겠다고 고무장갑 끼고, 변기의자위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제 간식그릇들을 열심히 헹구기도 한다. 
비록 싱크대 한쪽위를 물로 온통 흥건하게 적셔놓긴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 예뻐 고슴도치 엄마는 또 사진만 찍고 말았다.
깨질 염려가 없는 그릇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일이라 '설겆이는 나중에 커서 하라'고 당부했다.
사진을 보니 새삼 흐뭇하다. 요즘 설겆이를 도맡아 하느라 고생많은 신랑에게도 참 고맙다. 아들도 당신 닮아 설겆이를 잘 할 듯하니 나는 참 기쁠 따름이라오..^^;
 










가끔은 이렇게 엄마일을 도우려고 애쓰는 의젓한 순간도 있지만 실은 요즘들어 부쩍 청개구리 노릇에 재미가 들어 뭐든 거꾸로해 엄마 속을 긁어놓는 장난꾸러기 아들이다. 

여전히 안아달라, 업어달라 요구도 많고
점심 먹기 전에는 배고픔과 고단함과 졸음이 한데 몰려오는지 한번은 꼭 울음을 터트리고 떼를 쓴다.
오늘도 결국 엄마의 호통과 한숨도 잔뜩 집어넣고 훌쩍훌쩍 제 눈물 콧물도 듬뿍 섞은 밥을 받아먹고 잠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엄마 배속에 이제 겨우 두달된 동생이 하나 생겼을 뿐, 연수는 변함없는 응석쟁이 29개월 어린아이일 뿐이다.
어느새 키는 90cm, 몸무게는 14kg를 훌쩍 넘긴 제법 큰 세살배기이지만 여전히 자다 깼을 때는 한참동안 엄마 품에 안겨 엄마심장소리를 들으며 남은 졸음을 달콤하게 즐기고싶은, 그래서 칭얼칭얼 '안아주세요~' 매달리는 세살배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면 눈물 자국이 때때한 채로 잠든 연수가 안쓰럽다.
 
그래도 나는 어렵사리 잠든 연수가 우선 고맙고, 다시 울렁울렁 속을 흔들며 제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평화와 같이 앉아서 귤 한개를 그야말로 '평화롭게' 까먹으며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게 다행스럽다.

가을이, 힘들고도 예쁜 가을이 그렇게 가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10. 19. 20:47









둘째가 왔다. 
엄마 자궁속에 자리를 잡은지 이제 6주를 조금 넘긴, 아주 아주 작은 녀석이다.
연수낳고 2년동안 먹인 젖을 끊으면서 '이제 둘째 생각을 좀 해야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연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피임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터울이 조정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은 내심 걱정도 조금(?) 하고, 또 한편으로 방심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둘째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글쎄요, 연수도 좀 크고 우리 상황도 이만저만해지면 가지려구요..' 했더니 
'아이(둘째)는 하늘이 주는 거야'하는 대답을 나도 한번, 신랑도 한번 각자의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인상적인 얘기여서 마음에 길게 남았었다.
생명이 오는 때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명은 뜻대로 되지않는 일이기도 하다.
제 뜻을 가지고 제게 제일 좋은 때를 택해 생명은 온다고 믿는다.
하늘이 준 둘째.. 우리를 찾아와준 둘째. 고맙다.


둘째의 태명은 '평화'라고 지었다.
평화를 갖기 한참전에 내가 꿈을 꾼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 고향집 논둑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논들이 죽 이어진 넓은 들판(平)에 푸른 벼(禾)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잘 자란 벼이삭들을 손으로 훑어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꿈속인데도 푸른 벼이삭을 손에 쥐어보는 느낌이 생생했다.  
깨고나서도 '이것 참 태몽같은 꿈이네...' 했었다. ^^; 
평화가 생기기 한달도 훨씬 더 전에 꾼 꿈이긴 하지만 임신이란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왠지 그 꿈이 태몽이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태명을 '들판의 벼', 평화라고 짓기로 했다. 
내 두번째 아이가 평화롭게 잘 자라주기를, 이 아이의 삶에 평화(平和)가 가득하기를 비는 마음도 담아서. 
함께 살아갈 우리들의 나날에도.


그러나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우선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참 좋질 않다.
추석 명절쇠고 돌아와서부터 영 으실으실한 것이 몸살기운이 있어서 '명절쇠고온 후라 그런가부다'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고 열이 나는듯하면서도 추운 기운이 몇주 동안 계속되었다. 
때마침 생리도 늦어져서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에도 생리가 불규칙한 편인지라 속단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테스트로 임신인 것을 확인하고 병원에 다녀온 뒤에는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지만 몸은 더 힘들어졌다. 
본격적인 입덧이 시작된 것이다. 

연수를 가졌을 때는 입덧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철없는 엄마아빠가 '속도위반'을 한지라 입덧을 할 형편도 아니긴 했다.
다음해쯤 하려던 결혼을 부랴부랴 당겨서 겨울에 하기로 하고 대학원 4학기 마무리와 결혼 준비로 바쁘던 그 가을에
나는 입덧 하나 없이 무던하게 잘 자라주던 똑순이(연수)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똑순이랑 둘만 있는 저녁에는 괜히 서글픈 생각에 곧잘 울기도 했지만 배속의 똑순이에게 늘 '고맙다 고맙다' 되뇌이고 쓸어주며 지냈다. 

당시에 똑순이 태명도 실은 한가지 노래때문에 지은 것이었다. 
처음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이 아이를 뭐라고 부를까 고민할때 문득 옛날 인기TV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에서 들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똑순이랑 아버지가 함께 걸어가면서 "똑순이 손잡고 아버지 손잡고~"하며 부르던 노래.
아마 그 아버지역은 탤런트 강남길씨가 맡았던 것같다. 뜬금없이 그 노래가 왜 생각이 났는지... 
아무튼 나는 그 노래 가사를 "똑순이도 괜찮고 엄마도 괜찮다"로 바꿔서 마음속으로 자주 불렀다. 
생각하면 참 불안하고 일견 서글픈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황홀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연수의 태명은 '똑순이'가 되었던 것이다. 
내 맘속의 이 구구절절하고 어찌보면 별것아닌 배경이야기를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똑똑하라고 똑순이라고 지었냐?"고 물었지만 실상은 그저 '괜찮다'는 위로를, 격려를 스스로와 아이에게 주고싶은 마음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형편이 달라져서인 것인지, 
아니면 한껏 기대에 부푼 연수 아부지의 바램대로 '딸'이어서 그런 것인지
첫째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초반부터 입덧이 무척 심하다. 
뭔가 속에 들어가면 조금 잠잠하다가 살짝만 속이 빈다싶으면 여지없이 울렁거리고 미슥거린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입에 뭔가를 넣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한잔으로 씻어내려도 보고, 귤 한개 까먹고 견디기도 한다.









속이 불편하고 힘이 없는 엄마가 연수의 놀이상대를 제대로 해 줄수도 없다.
연수는 누워있는 엄마옆에 와서 뒹굴기도 하다가 저 혼자 저쪽에서 놀기도 하다가 
웃음이 부쩍 적어진 엄마때문에 시무룩해하기도 하고, 엄마가 신경이 날카로울 때는 전과 달리 야단도 많이 맞는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엄마 혼자 임신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첫째 아이도 그 모든 과정을 함께 겪는다는 것을.

삼남매중에 막내딸로 자란 나는 언니오빠와는 다르게 아빠엄마에게 어리광을 많이 부리면서 컸다. 
언니오빠는 엄한 아빠엄마를 조금 어려워하는 기색도 있었지만 나는 무서울 때보다는 친근할 때가, 야단맞을 때보다는 어리광부리고 매달릴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원래 언니오빠에게는 처음부터 엄하셨고 나한테는 다르셨나보다, 나를 특히 귀여워하시는가부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알 것 같다. 
첫째에게는 그 이후의 아이들이 알 수 없는 강렬한 유년기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동생들이 생긴 이후에는 제일 많이 야단맞고 엄하게 대해지지만 부모의 마음속에는 제일 큰 미안함과 고마움이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형들은 부모와 함께 동생을 키워준 존재라는 것을.
어린 마음으로 많은 변화를 감당하고, 때로 슬퍼하고 때론 힘들어하면서도 끝내는 어린 동생을 향해 웃어주고 함께 놀고 즐거워하면서 동생의 성장을 늘 부모와 함께 지켜본 존재이니 부모님 떠난 뒤에는 형이 부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26개월에 젖을 끊은 뒤에도 한동안은 엄마의 빈 젖을 빨며 잠드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연수는 
요즘 임신으로 예민해져서 가만 있어도 아픈 엄마 젖꼭지를 빨지 못하게 하자 낮잠도 제대로 못자고 밤에도 종종 잠을 설친다.
오늘도 낮잠잘 시간을 놓치고 하루종일 피곤하게 뛰어놀다가 급기야 저녁에 씻을 때는 코피까지 살짝 흘렸다.
어린 것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나 피곤한 것만 생각하면서 연수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어찌나 미안하던지..ㅜ   

남편도 나와 같이 임신상태다.
전과 달리 입덧이 심하고, 신경이 예민한 아내때문에 퇴근하면 요리하랴 설겆이하랴 바쁘고
온 집안을 붕붕 뛰어다니는 펄펄한 연수를 전담마크하며 노느라 진땀을 뺀다.
온 식구가 둘째를 같이 맞고 같이 키운다. 
이제 겨우 엄마 배속에 자리를 잡았을 뿐인데도 이 정도니 내년 봄에 태어나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일까.
온 식구가 같이 눈물콧물빼며 키우게 되겠지. 
평화가 웃으면 같이 웃고, 평화가 울면 같이 울고, 평화가 잠들면 같이 잠드는 날들이
처음 똑순이가 우리 곁에 찾아왔을때와 같은 그런 날들이 다시 또 찾아오겠지.      
이제는 기억도 살짝 가물가물한 그 날들은 참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휴... 그 초여름, 장미꽃이 피는 무렵에 삼년만에 또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좀 더 기운을 내야한다. 
밥상머리에서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밥숟갈 놓자마자 쓰러져 잠든 연수를 보며 엄마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늘어져 있으면 안된다...
내게는 똑순이도 있고, 평화도 있다. 이제 보살필 아이가 둘이 된다. 
곁에서 든든히 도와주는 남편도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덧도, 약해지고 우울해지는 마음도 견뎌내야지. 
몸이 늘어진 와중에, 마음만 시커멓게 태워가던 논문 걱정도 그만 뚝!하고 할수있는만큼 해봐야겠다.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동안은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생명있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산다. 
똑순이와 평화, 내 아이들도 나도 그런 강렬한 삶의 에너지를 지니고 자기 삶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또 한번 엄마가 되는 과정을 시작하며 생의 의지를 다져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9. 29. 00:46









만 28개월을 꽉 채워가는 연수.
이제는 음식점에서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키면 0.4인분은 먹는 것 같다.
반보다는 적지만 1/3보다는 많이 먹는다. ^^
그래서.. 엄마아빠가 밥이 부족하다. 어린이메뉴를 시켜줘야하는 때가 된걸까?

먹을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엊그제는 돈까스집에서 '꼬치우동세트'를 시켰더니 우동도 먹고, 새우튀김도 먹고, 돈까스도 먹고, 치즈스틱도 먹고... 가지가지 다 먹었다. 
신나게 먹는 연수를 보면서 잘 먹는게 참 고맙기도 하고, 야, 이 녀석도 이제 제법 먹는구나 싶어 놀랍기도 했다.

아이들이 한창 클때는 쌀이 푹푹 줄어든다고 하더니 요즘 우리집 쌀독 비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것같다.
벌써 이런데 초등학생쯤되면 와.. 얼마나 먹을까?
아빠는 돈벌 일이 걱정이 되겠지만 엄마는 밥 해 먹일 일이 걱정이다. 
이미 끼니마다 반찬이나 국 하나는 새로 만들게된다. 점점 더 잘 먹을테고, 잘 먹여야할텐데..

빨래대에 널어놓은 연수 옷들도 점점 커지고, 벌써 제 팬티도 다섯벌이나 되고 양말도 부쩍 커졌다.
예전에는 엄마아빠 옷 사이에 걸려있는 연수 옷을 보면 참 앙증맞았는데 이제는 어엿하게 한 자리 차지한다.

자라는 아이들은 참 쑥쑥 잘도 큰다. 
몸만 자라는게 아니라 마음도 함께 자라고 있겠지.
몸의 성장이 퍼뜩 포착되는 순간이 있듯이, 아이의 깊어지고 커지는 마음의 결도 문득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쩍 추워진 가을, 아이와 더 따뜻하게 마음 나누며 지내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9. 25. 15:37










연수와 아빠가 집을 나섰다.
가까운 아울렛 실내놀이터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울렛 속옷매장에 들러 연수 양말과 팬티도 사오기로 했다.
"이거.. 혼자 애키우는 싱글파파 같이 보이겠는데?" 하며 웃는 남편에게
"아빠도 그런 것 좀 사보고 해야지~" 하고 말하면서도 연수 데리고 혼자 쇼핑하기 어려우면 그냥 오라고 했다.

연수는 좋아하는 실내놀이터에 가는 것이 신나 펄쩍펄쩍 앞장서서 뛰어갔다.
아파트 놀이터나 동네 가게에야 아빠랑 둘이 자주 다녀오지만   
아빠랑 둘이서만 차를 타고 놀러가보는 것은 처음이다.

잘 다녀올까? 괜찮겠지..? ^^;
보내놓고 걱정이다.
아빠 가방에는 연수가 혹시 쉬했을때 갈아입힐 옷과 물티슈, 비상용 쉬통, 간식으로 먹을 두유가 얌전히 들어있다.

둘 다 아주 씩씩하게, 한껏 상기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아빠와 연수 둘만의 외출이 두 사람 모두에게 특별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나 혼자 있으니 기분이 어색하다.
시댁에서 명절쇠고 어젯밤 늦게 도착했지만 오전에 열심히 치우고 정리한 터라 집안일은 할 게 없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랫만에 블로그도 열어보고... 공부도 해야지.

오가고 놀고 간식도 먹고하는 시간을 다하면 어림잡아 세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다.
연수 낮잠잘 때말고 세시간이나 더 나만의 시간이 생기다니...
대식구 속에서 분주했던 명절 직후라 내게 주어진 이 조용한 시간이 더 반갑고 고맙다. 

두 사람이 돌아와 들려줄 '무용담'이 벌써 궁금하네.. 
잘 다녀와요, 두 사람~!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9. 16. 15:44









9월초에 일주일동안 연수와 외갓집에 다녀왔다.
지난 4월 논문쓴다고 꽤 오래 머물고 온뒤 4개월여 만이다.
여름나며 부쩍 큰 연수는 지난 봄의 애기티를 많이 벗고 이제는 제법 어린이같은 모습으로 외갓집 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초가을 하늘은 푸르게 높아만 가고 엄마아빠는 가을겆이에 손길이 바쁘셨다. 











바쁜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느라 어린 연수도 바빴다.
할머니가 고추를 말리러가면 그 뒤를 따라가고, 할머니가 무밭에 가시면 또 그 뒤로 졸졸졸..
지난 봄과는 달리 연수는 엄마를 거의 찾지 않고 문만 들썩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 뒤를 따라 마당으로 뛰어나가기 바빴다.
할아버지와 둘이 차를 타고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 하고, 바다에 놀러갔다 오기도 했다.
친할아버지할머니는 더 자주 뵈도 머무는 시간이 짧으니 아직 서먹한데 외가는 가끔 와도 오래 머무르니 연수에게는 더 친근하고 익숙한 모양이다.
친가 어른들 곁에도 좀 오래 머물러야할텐데.. 연수가 더 크면 그럴 수 있겠지. 나도 좀더 노력을 해야하리라.









일하랴, 연수 장난 말리랴... 엄마는 두 배로 바빠지셨다.
나는 한가하게 술렁술렁 마당을 돌아다니다가 두 사람 사진이나 찍고 하늘이나 올려다보고 했다.
여기는 지상에서 내가 가장 마음놓고 쉴 수 있는 곳, 나의 하나뿐인 친정이 아닌가... ^--------^










지은 지 20년도 더 된 이 양옥주택은 우리 식구의 첫 양옥집인 동시에 아마 마지막 양옥집이 될 것이다.
우리집 지을때 함께 지었던 인근의 양옥들은 모두 다 헐고 새로 지었다고 한다.
시멘트집이 오래되면 외풍도 세지고 부엌이며 집안 구조들이 불편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 집이 불편하지도 않고, 아버지도 그런 힘든 일을 하실만한 체력이 없으실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동안 아빠는 여러차례 크고 작은 공사를 해서 집 안팍을 개조해오셨다. 엄마는 또 공사를 할 엄두가 안나실 터이다.

한옥집에서 태어나 양옥집에서 자랐던 우리 형제들은 이제는 모두 아파트 살이를 한다.
나는 내가 살아온 방향에서 역순으로 다시 회귀하기를 꿈꾸는데... 오래 걸리더라도 그렇게 해야지..









삽의 적당한 사용처를 찾은 연수.
지난 봄에는 온통 동백꽃으로 어지럽던 모래언덕이 백일홍만 핀 여름에는 한결 조용했다.









뜨개질 솜씨좋은 엄마가 연수의 조끼를 한벌 떠놓고 계셨다.
엄마표 조끼를 입고있는 연수를 보니 어린 시절 우리 삼남매의 모습을 보는 것같다. 
우리는 엄마가 떠준 스웨터나 바지, 아니면 원피스를 자주 입곤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뜨개질 옷들. 막내까지 입히고 작아지면 풀어서 다른 실과 합쳐 더 큰 옷으로 떠주시곤했던..
처녀시절 편물일을 하셨던 엄마가 아니면 이제 누가 그런 옷을 만들어줄까.
나도 연수에게 내가 만든 옷을 입혀보고 싶다.

  








청소기를 좋아하는 연수, 기어코 마당까지 가지고 나와 널어놓은 벼를 휘저어본다.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있어 아빠는 올해의 추수를 하셨다.
추석전에 수확하는 이른벼를 심으셨던 아빠는 태풍이 오기전에 추수를 해야겠다고 서두르셨다. 
태풍 '콘파스'가 강릉을 지나가기 전날 아빠는 무사히 추수를 끝내셨다. 
다음날 벼를 다 벤 논에 나가보니 주변의 논들에는 벼가 좀 쓰러진 곳도 있었지만 그래도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서해안과 서울에 많은 비와 바람을 뿌린 태풍은 동해안에는 바람만을 좀 남기고 빠져나갔다했다.  










머리에 구르프(?)를 만 엄마가 연수의 고무신에 들어간 벼낟알을 털어주며 연신 뭐라고 얘기를 해주신다.
아마도 쌀 얘기겠지..
창고겸 차고인 여기서 연수와 나는 농기구를 넣어두는 나무통 밑으로 뛰어가는 작은 꼬약쥐(생쥐의 사투리)를 보기도 했다.
집없는 고양이도 자주 들락거리는 창고 한구석에 꼬약쥐들의 보금자리도 있나보다.









시골에서는 할 일이 없는 때가 별로 없다.
그 말은 연수 입장에서는 한시도 심심할 새가 없다는 말이다.
고추는 매일 조금씩 더 빠삭하게 말라가고, 할머니는 하루는 어린 무순을 솎아내 다듬고 하루는 할아버지가 논에서 주워오신 벼이삭을 터셨다.
그게 모두 연수가 따라다니며 구경하고, 참견하고, 제 맘껏 자투리들을 붙잡고 놀아도볼 일들이어서
서울같았으면 하루종일 놀아달라고 매달리는 연수와 책읽고, 뛰어다니느라 바빴을 나는 시골에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 저렇게 마른 벼이삭을 맨발로 밟아보기도 하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웃어가며 자랐으면 좋겠다.
내 어린시절에 그랬듯이..










추수가 끝나고 조금 한숨돌리게 된 아빠가 우리를 바닷가에 데려다주셨다. 
이 순간을 위해 서울에서 싸온 모래놀이 장난감들을 연수는 모래밭에 도착하자마자 풀어놓았다. 
연수야, 좀 더 바다 앞으로 가자... 모래밭은 아주 넓단다.

 

















여름이 끝날 무렵 바다는 한산했다.
그래도 낮에는 더워 바다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도 보였다.
연수는 잠시 바다물에 발을 담궈보더니 이내 다시 모래밭으로 올라왔다.

아빠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이렇게 바다앞에 와있다.
연수와 둘만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외롭긴 했지만 연수도 나도 아빠 없이 잘 놀았다.
둘이 있으니 괜찮아, 우리는 좋은 짝.












연수와 내가 모래와 바닷물을 옷에 묻혀가며 노는 동안
엄마아빠는 솔밭 안에 있는 벤취에 앉아 두 분이 커피도 사다 드시고, 연수줄 아이스크림도 사오시며 기다리셨다.
멀리서 보니 두 분이 무슨 얘기를 끝도 없이 나누고 가끔 크게 웃기도 하셨다.
저 두 분도 둘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나도 나이가 들고 부모님도 나이가 들어가시니 두 분이 함께 계시다는 것 그래서 저렇게 웃으며 어디든 함께 다니신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고맙고, 마음이 놓였다.











내가 아주 어릴때도 우리집에 있었던 것 같은 국방색 갑빠(이건 일본말일 것 같은데... 우리말로는 천막일까?)위에
내 어린시절만큼이나 새까맣게 탄 연수가 앉아있다.
세살 가을, 엄마도 아마 이런 사진이 있을거란다.
외갓집의 풍경이 연수의 유년시절과 내면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8. 27. 21:51




참 무더운 여름이었다.
아직도 한참은 더운 날이 남아있을 테지만 어느새 밤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제법 돌고 귀뚜라미 소리도 청량해져간다.

연수의 두 돌이 있었던 여름. 그러니까 만2세를 꽉 채우고 3세가 되어 맞은 여름의 흔적을 좀 모아놓고 싶어졌다.
뜨겁고 긴 낮동안 우리는 무얼하고 놀았었던가...










물감놀이는 이번 여름 내내 연수가 제일 좋아했던 놀이였다.
손바닥 발바닥을 찍고, 스케치북에 물감을 되는데로 발라보고.. 얼굴에 고양이 수염도 그려본다.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인 '이웃집 토토로'의 등장인물들을 달력에 그려서 오린 것을 연수는 온 여름 내내 잘 가지고 놀았다.
내가 봐도 참 닮았다고 말하기 민망한 그림인형인데 연수는 저 달력종이인형을 아주 좋아해주었다. 
엄마의 그림실력이 초등학교 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다 연수 덕분이다.










 

가끔은 욕조안에서 물감을 풀면서 한바탕 놀았다. 
'과연 저 물감 염료가 피부에 안전할까..?'하는 불안과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그냥 놀게 놔뒀다. 
우리 인생에서 이렇게 맘껏 물감을 풀며 놀아볼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있으랴..
어느 날은 노란 물로, 어느 날은 파란 물로 시작하지만 언제나 끝날 때는 깜장색 물에 들어앉아 있는 아이를 건져 비누칠을 하던 날들. 
이렇게 풀면서 놀았는데도 비싸지 않은 수채화물감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가을에는.. 낙엽을 주워다 물감찍기를 해볼까. 
 
 









더운 한낮에 연수는 가끔 발가벗고 낮잠을 잤다.
그래도 맨바닥에 배를 깔고 자면 안될것 같아 조심조심 들어 이불위로 옮겨놓으면 어느새 굴러서 다시 바닥에 내려와 있던 녀석.. 












오후가 되면 햇볕이 바로 드는 집안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아파트 마당에 나가 단단한 회양목 열매들을 따고, 옥잠화 보라색 꽃잎속에 있는 꽃술로 꽃술싸움을 하고 놀던 오후.
올 여름들어 또래 친구들이 모두 네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연수보다 생일이 서너달 빠르다고 해도 다 고만고만한 세 살, 네 살배기들인데 참 잘도 탄다.
연수는... 아직 페달을 못 돌린다. ^^;
다리가 짧은 것인지, 힘이 부족한 것인지...? ㅎㅎ 
재촉할 마음은 없다. 언젠가는 제 힘으로 페달을 돌리며 씽씽 달려가는 날이 오겠지.
그런데 어떻게 타냐고? 엄마는 절대 손을 못대게 하고, 저 혼자 발로 바닥을 열심히 밀며 앞으로 나간다.
여름 내내 오후마다 열심히 저렇게 탔다.












이번 여름들어 연수는 처음으로 퍼즐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
연수가 아주 조용히, 한참동안 혼자 퍼즐을 맞출 때가 엄마아빠에게도 천금같은 휴식시간이다. 
그러나 점점 맞추는 시간이 짧아지더니 요즘은 약간 소강상태..
더 조각이 많은걸 구해줘야할까나. 











밤에 어린 주인이 잠들고나면 신발도 한숨 돌린다.
오늘 하루도 주인과 함께 여기저기 잘도 쏘다닌 신발은 바퀴가 두 개나 떨어졌다. 
비싼 신발이 아니라해도 되도록이면 깔끔하게 잘 손질해서 오래 쓰게 하고파서 연수가 주워준 바퀴를 주머니에 잘 넣어왔다.
실리콘을 바르고, 밤새 단단히 붙으라고 고무줄로 감아놓는다. 
조용한 밤에 혼자 책상에 불밝히고 앉아 어린 아들의 신발을 손질하고 있으려니 몸은 노곤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마음이 차분하고 따뜻해지는 기분... 조용히 손을 움직여 손때묻은 물건을 손질할 때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
옛날에 아이들 잠든 밤에 조그만 불을 켜놓고 떨어진 아이옷을 기우던 엄마들 마음도 이러셨을까..

큰맘먹고 샀던 비싼 샌달 하나는 여름내 잘 신다가 얼마전에 그만 한 짝을 잃어버렸다. 
엄마랑 둘이 나들이를 다녀오다 연수가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정류장에서 바쁘게 업고 내리다가 한짝이 벗겨졌던 모양이다. 
집앞에 다 와서 보니 한쪽 발이 맨발이었다. 세살 여름을 나느라니 그런 일도 있었다.
값보다도 연수가 무척 좋아했던, 온 여름 같이 잘 났던 고마운 신발이어서 곱게 잘 보관하고 싶었는데 한짝을 잃은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연수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처음이라 몹시 마음이 쓰렸지만.. 비싼 교훈을 얻은셈치고 마음을 다스려야했다.
(아이가 잠들면 꼭 신발을 벗기고, 아님 단단히 신겨있는지 확인하고 업거나 안아야겠다ㅠ)

이 샌달도 엊그제 끝내 끈이 떨어졌다. 여름이 다 끝나는데 비싼 샌달 사기가 뭐해 시장에서 흰 고무신을 하나 사신겼다.
연수는 제 고무신이 맘에 들어서 밖에서 신다 들어오면 화장실에서 씻어 집안에서도 신었다. 진작 사줄껄..^^;












뜨거웠던 세살 여름이 지나간다.
이 여름동안 나는 매일매일 아파트 화단을 순례하는 연수를 따라다니며 옥잠화, 맥문동 같은 꽃과 풀 이름도 익히고
세 개의 삐죽한 뿔을 가진 회양목 열매가 초여름에는 푸르고 단단하다가 늦여름에는 갈색으로 익어 세 조각으로 갈라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달개비 푸른꽃은 8월 중순이 지나서야 피고, 나팔꽃처럼 아침에는 활짝 벌어졌다가 낮에는 오므라든다는 것도 알게됐다.
자연에는 늘 철이 있어서 그 날이 그 날 같아도 매일 꽃은 조금씩 달라지고 화단에는 작은 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우리도 우리 몫의 여름날을 견뎌내고 살아내고 자라왔다.

연수는 이 여름동안 엄마젖을 끊었고 혼자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곡 생겼고 무엇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줬다.
엄마는 놀이터 햇볕은 혼자 다 쬔 것처럼 얼굴이 새까맣게 탔고(보는 사람마다 놀란다ㅠㅠ) 
이젠 저도 말 좀 한다고 엄마가 하자는 것마다 따박따박 청개구리 대답을 하는 아이와 옥신각신하느라 속도 시커멓게 탔다.
큰 일 한 것은 없지만.. 애썼다고 다독다독 해주고싶은 밤이다. 
 
가을이 온다.
가을에는 우리 둘 다 더 여물어지고 깊어져야하리.. 너는 너의 길을, 엄마는 엄마의 길을 따로 또 같이 부둥켜안고 지나가야하리. 힘내자, 연수야. 힘내자, 아빠. 힘내자, 엄마!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8. 19. 16:20










가끔 이 녀석이 도대체 나랑 어디가 닮았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얼굴을 보면 아빠랑 닮은 구석은 알겠는데 나와는 어딜 또렷이 닮은 데가 없는것 같다.
발가락이라도 닮았나.. 싶어 찾아보면 그마저도 안 닮았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우리 둘이 정말로 닮은 것 한가지를 깨달았다. 
똥.. 똥이다. ^.,^;;;


어제는 덥다고 토마토얼려놓은 것을 우유랑 꿀넣고 믹서에 갈아 토마토샤베트를 둘이 한대접씩 먹었다.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는 연수도 나도 살짝쿵 설사를...;;;
저 사실을 발견한 뒤 몇 달동안 관찰했는데 거의 매일 같은 사실을 확인하곤 한다. 닮았다.ㅎㅎ

연수와 나는 식성이 똑같다. 
둘다 과일, 야채는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면으로 된 음식도 다 좋아하고, 버섯도 좋아하고, 육고기도 좋아하지만 해산물을 더 좋아한다.
달달한 건 없어서 못 먹는다.

하루종일 붙어서 밥도 같이 먹고, 간식도 같이 먹는 우리가 유일하게 다르게 먹는게 있다면
엄마가 커피 마실때 연수는 오미자차 먹고, 엄마가 김치 먹을때 연수는 무나물 먹는 정도..
그러니 똥이 닮을 수 밖에. ^^

얘기가 영 민망하지만.. 나는 우리의 똥이 똑 닮아있는 이 시절이 좋다.
이제 연수가 커서 학교를 다니고 내 품을 떠나 밖에서 밥먹고 간식 먹고 하는 날이 오면 
우리의 닮은 것중 큰 한가지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나는 좀 섭섭할 것도 같다.
그 때는 아마 확인할 길도 거의 없겠지만..
아이 똥을 더러운줄 모르고 '예쁜 똥 잘 쌌네~!'하고 칭찬까지 해주며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치우는 날도 그리 오래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닮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가 또 뭐가 닮았을까.. 생각해봤다.
 
수다스러운거?
나도 정말 어릴때 연수만큼 수다스러웠을까? 며칠후 친정엄마가 연수를 보시면 판명해주시겠지.

27개월을 향해가는 연수는 요즘 깨어있을 때는 거의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다.
쫑알쫑알 웅얼웅얼.. 주로 엄마만 온전히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얘기로 쉴새없이 말을 거는데 일일이 응대해주려면 보통 피곤한게 아니다. 

"엄마, 이렇게 튀어나온 블럭 조각 못 봤어요?" (바로 옆에 보통 떨어져있다)
"엄마, 같이 퍼즐 맞추기해요~"
"고리가 안 걸어져요. 엄마, 어떻게 하는 거예요? 엄마가 도와줘요!"
"엄마, 이 책 읽어줘요~" (엄마가 지금 요리중이라.. 어쩌구하면 바로 말투가 바뀐다.)
"지금 읽어야돼요! 지금 해야돼요!! 지금 빨리 읽어줘~~요!!!" -.,-;;;

제가 하고 있는 일, 들리는 소리들에 대해 쉴새없이 중계방송을 하고 중간중간 흥얼흥얼 노래도 곁들인다. 
나도 어릴때 늘 엄마 옆에서 쫑알쫑알 쉬지 않고 떠들어서 "아구~ 송신타(씨끄럽고 정신없다는 뜻의 경남 사투리)~~, 절로(저리로) 좀 못 가나!!"는 말을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사셨는데 인제 나도 꼭 그렇게 되려는지... 참 걱정이다.


고집스러운 것도 날 닮은걸까..
그래도 난 청개구리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요즘 연수는 아주 소수의 솔깃한 제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엄마의 제안에 "싫어~!"로 일관한다.

밥먹자, 싫어! 안 먹어.
손씻자, 싫어! 안 씻어.
옷입자, 싫어! 안 입어.

포도먹을까? 좋아~~(이건 꼭 작게 말한다)

그만 자자, 싫어! 계속 놀아~!!
이 닦자, 싫어! 안 닦아.
목욕할까? 싫어! 머리 안감아!!

토토로 보고싶어? 좋아.....

혼자 하겠다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연수가, 연수가 해야 돼요, 연수가 혼자 할꺼야, 연수 혼자 힘으로~~~~~~!!!!!!"
그러다 잘 안되면 저 말들이 점점 흐느낌과 고함으로 바뀌는데... 그쯤돼면 엄마의 인내심도 바닥이다.

장난도 나는 연수만큼 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토마토 사진만 봐도 그렇지만... 온 얼굴에 토마토를 묻히고 바닥에 문질러놓고... 말린다고 말리지만 대개 엄마가 잠시 곁을 떠난 사이에 번개같이 한바탕 일을 벌려놓는다.

덕분에 하루종일 엄마랑 티격태격하다 결국 제 맘껏은 못 놀고 옛날 얘기 두어 마디에 스르륵 잠이 든 세살배기 어린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는 행복했니? 원하는만큼 마음껏 잘 놀았니..? 풀고 싶은 에너지, 채우고 싶은 사랑.. 흠뻑 누렸니? 그러지 못했다면 미안하구나.. 하고 가만히 속삭이게 된다.


저랑 똑닮은 자식을 낳아 키워봐야 부모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면 나는 아직 울엄니아부지 마음을 알려면 멀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말을 안 들을까? 얼마나 더 장난을 치고, 놀아달라고 조르고, 이런저런 위험한 일로 마음 조이게 할까..?

생각해보면 이 애가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참 많다.
나보다 솔직하고, 나보다 자유롭고, 나보다 용감하게 살아갔으면 좋겠고
나보다 결단력있고, 나보다 신중하고, 나보다 끈기있었으면 좋겠다.
눈치 많이 보고, 늘 인정받고 싶어하고, 허영심많은 나와는 달리 당당하고 자존감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기 위해서 나는 뭘 해야하고, 또 뭘 하지 말아야할까.
내 안에 들어있는 내 부모님의 그림자 중에 어떤 것을 살리고 어떤 것은 극복해야할까..
내 유년의 기억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참 쉽지 않지만... 둘 다 밥 잘 먹고 힘내서 잘 해볼 일이다.
아자아자아자~!
똥이 닮은 이 시절.. 아이야, 우리 더 깊이 사랑하고 함께 잘 자라자.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0. 8. 9. 13:48



젖을 끊었다.
연수 낳고 꼬박 2년 2개월동안 먹였던 젖이다.
25, 26개월차에는 낮에 먹는 젖은 끊고 밤에만 젖을 먹다가 얼마전에 그마저도 끊었다.

허전하다.
연수도 나만큼 허전할까? 아마도 아이는 나보다 더 그리울 것이다.

천천히 낮에 먹는 젖부터 줄이고, 끊고 해와서 그런지 젖양은 많이 줄어있었어서 
젖을 끊는데도 특별히 젖이 많이 불거나 하진 않았다. 큰 통증없이 젖을 끊을 수 있어서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연수는 많이 힘들었다.
밤젖은 연수에게는 어떤 자장가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안식이고 위안이었어서
젖없이 밤잠들기가 힘들어 처음 며칠은 밤마다 많이 울었다.
처음 잠들 때만이 아니라 자다가 두어번 깰때도 그전같으면 엄마 젖을 한모금 흡족하게 빨고 금새 다시 곯아떨어졌을 것을
젖을 먹지 못하니 다시 잠이 안들어서 새벽녘에 한시간 이상 말똥거리며 놀다가 겨우 다시 잠들기도했다.

엄마젖의 빈자리가 어린 마음을 온통 허전하게 한 것이 안쓰럽고 그 깊은 밤에 서럽게 줄창 울지않게 하기위해 
나는 잠에서깬 연수가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다해주려고 노력했다. 
업고 밖에 나가자하면 깜깜한 아파트 복도에 나가 한참을 왔다갔다하다가 들어왔고, 안고 다니라하면 비몽사몽간에도 어린 것을 끌어안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하필 일년중 가장 무더울 때라 더위를 많이 타는 연수는 밤에 평소보다 더 자주 깼다.
내가 왜 이 더운 날에 젖을 끊겠다 했을꼬... 시원한 가을까지 먹이고 끊을껄.. 하는 때늦은 후회도 하고
젖달라고 우는 아이가 측은해 그냥 한1년 더 먹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엄마젖은 오래 먹을수록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가 밥같은 고형식을 안먹고 젖만 먹으려고하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젖처럼 아이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정서적 안정과 충족감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연수는 젖을 먹으면서도 밥도 잘 먹었다. 
굳이 젖을 끊은 것은 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낮에 먹는 젖은 연수가 두 돌이 될 즈음에는 거의 한 번 정도, 낮잠잘때 먹는 것으로 줄어있어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밤에 꼭 두어번은 깨서 젖을 먹이고 자는 일은 지난 2년 동안 나름대로 몸에 익었다고해도 갈수록 피곤하게 느껴졌다. 
26개월동안 먹었으면 그래도 오래 먹인 것이니 이제는 좀 끊어야겠다고 천천히 내 마음은 정리했는데
엄마 젖먹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하는 연수는 엄마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때때로 많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하고, 화도 내고 하면서 연수는 어렵게 젖없는 생활에 적응해갔다.
마음이 허전하지 않게 더 깊이 안아주고 따뜻하게 자주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지만
때로는 더운날 매달리는 아이에게 짜증도 내고, 한숨도 많이 쉬었다.
그러는 동안에 일주일 정도가 지나가고 더이상 연수가 젖을 찾지 않는 날들이 찾아왔다.

요즘 연수는 엄마와 목욕을 하면 꼭꼭 엄마 젖꼭지를 한번씩 빤다. 
엄마젖꼭지를 입에 물고있는 그 느낌을, 아주 잠시동안 음미하는 것이다. 
그래, 그것이 네 그리운 갓난아이 시절의 느낌이지..
돌아갈 수 없는 한 시절이 네 인생에서도 생겨났구나.. 앞으로는 계속 그런 날들이 생겨날 거란다. 
가끔 엄마젖을 빨면서 그 시절의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건 행복한 일일 것이다. 늘 보호받고, 언제든지 네가 원할때면 안고 마음껏 젖을 먹여주었던 젋은 엄마와 함께 지내던 갓난아이의 시절, 그 시절이 네게 참 행복했었기를 빈다, 얘야...








+ 처음 연수가 엄마 젖을 빨때의 느낌, 그 쫑긋거리고 콕콕 잡아당기던 느낌이 지금도 기억난다. 








+ 이렇게 수유쿠션 위에 발끝까지 딱맞게 올라오던 작은 아기는 어느새 수유쿠션에 엉덩이도 겨우 걸치는 큰 아이가 되었다.
26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와 함께 붙어있었던 수유쿠션. 수고많았어.. 우리 아기를 잘 키워줘서 고마워..^^
 



젖을 끊고 연수는 밥을 전보다 많이 먹고, 나는 더 적게 먹게 됐는데도 나는 살이 찐다.
낮수유을 끊을 때부터 찌기 시작한 살은 밤수유까지 끊은 요 2주 사이에 급속하게 쪄서 두어달 사이에 3~4킬로가 늘어버렸다.
몸이 무겁다. 젖이 늘 차서 붕긋하게 부풀어있던 가슴은 꺼지고, 배와 허리살은 날로 찌고 있으니 안그래도 젖주는 엄마시절을 마감하며 우울해졌던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난 2년동안 한시도 쉼없이 달렸던 몸이다.
쉬지 않고 젖을 만들고, 미처 지방이 쌓일새도 없이 만들어지는 족족 아이먹일 젖으로 빠져나가던 날들.. 고등학교 시절에도 못보던 몸무게를 연수 한창 젖 많이 먹이던 시절에 다시 보고 깜짝 놀랄만큼 나는 많이 말랐었다. 
그런 날이 끝났으니 이제야 비로소 내 몸도 지방을 좀 제 몫으로 쌓아보고 있는 것이다. 
잠깐은 쉴 틈이, 잠깐은 한없이 퍼져볼 시간도 필요하겠지...
그래서 마음을 좀 편히 갖기로 했다. 

연수도, 나도 시간이 필요하다.
젖을 끊고 나면 연수가 금방 밤에 한번도 깨지 않고 푹 잘 자는 날이 올거라는 기대도 실은 섣부른 것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26개월 동안 지녀온 수면패턴이 하루 아침에야 어찌 바뀌랴.. 
나도 그렇다. 연수가 깨지 않아도 내가 먼저 예전에 연수가 깨던 그 새벽녘쯤엔 스르르 잠이 깨곤 한다.   
우리는 한동안은 이렇게 잠이 잘 안들어 뒤척이고, 자다 깨는 날들을 살다가
머지않은 어느 날쯤에는 더이상 잠들 때 서로를 찾지 않고, 자는 동안에는 서로를 까맣게 잊고 지내는 날.. 푹 잠이 들어서 더이상 중간에 깨지 않는 날을 맞을 것이다. 

내 몸도 천천히 더 편안해지겠지.
젖을 끊고나면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 아프거나 입맛을 잃는 엄마들도 많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얼마나 긴장된 날들이었던가. 젖먹이는 엄마는 마음놓고 아플수도 없다. 엄마가 아프면 젖먹는 아이는 정말로 큰일이기 때문이다. 밥도 못먹는 시절에는 엄마젖이 아이 밥이고, 생명이다. 밥을 먹게 되더라도 계속 젖을 먹는 중의 아이들은 젖을 못먹게 되면 울고 보채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몸이 아파도 아이 젖은 물려야하는 것이 젖먹이는 엄마의 삶이다. 나는 절대 아파서는 안된다고 눈 똑바로 뜨고 품에는 아이를 꼭 안고, 그렇게 버티던 날들이 끝났다 생각하니 긴장이 풀린다.    
마른 나를 보고 안쓰러워하던 두 분 어머니들은 통통해진 나를 보면 반가워하실 것이다...


젖먹이던 엄마 시절이 벌써 조금 그립다.
내 품에 안겨 작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만큼 힘들게 엄마젖을 빨고나서 마침내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어린 아가의 얼굴이 그리울 것이다.
내게 젖먹이는 엄마의 행복을 알게 해준 아이가 고맙고, 26개월동안 잘 버텨준 내 몸도 고맙다. 
젖먹이는 엄마의 힘겨움을 이해하고 고단한 다른 일거리를 덜어주려 애쓴 남편도 고맙다.
아이를 키우며 제일 잘 한 일이 모유수유라고 생각한다던 어느 육아선배의 얘기에 나도 깊이 공감한다.
가장 힘들었으나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다. 가장 애틋하게 그리워질 것이다.
다정했던 또 한 시절이여, 안녕.
이제는 아이도 나도 또 새로운 날들속으로 걸어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씩씩하게, 손을 더 굳게 잡고.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