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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6 자연스러운 변화 6
  2. 2011.04.01 천수관음보살 4
  3. 2011.03.24 연수와 평화 2
  4. 2011.03.09 연수와 어린이집 2
  5. 2011.03.08 새 놀이터 탐방 6
  6. 2011.02.01 해뜰날 10
  7. 2011.01.31 눈과 아이 그리고 아빠 4
  8. 2011.01.30 평화야, 20주를 축하해~! 2
  9. 2011.01.29 '미안해'와 자존감 14
  10. 2011.01.13 잠약 엄마약 8
umma! 자란다2011. 4. 6. 11:20









남편이 회사 점심시간에 찍어서 보내준 민들레 사진.

어제는 연수와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가 올봄 들어 처음으로 제비꽃을 보았다.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 진한 보라색 작은 꽃잎.
따뜻했던 주말을 지나고 나니 목련나무들도 하얀 꽃봉오리가 몰라보게 부풀어 있었다.

봄이.. 이제야 온 것 같다.
어느 해보다도 길고긴 진통끝에.











일요일에는 올림픽공원에 처음 가보았다.
이사한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 크고 오래된 공원은 아름답고 한적했다. 
몽촌토성의 잔디위로 봄볕이 따뜻하게 일렁거렸고, 미술관(soma)옆 넓은 잔디밭에 펼쳐진 조각들은 한번에 다 둘러 보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큼직하고 신기한 조각품들이 그저 그늘을 드리운 큰돌이나 나무처럼 여사로워질 때까지 천천히, 자주 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점심먹으러 갔던 파스타 집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졸린 연수가 엄마를 꼭 껴안더니 뽀뽀를 퍼부어 주었다.
우린 이런 사이라구~ 대로변에서 자유롭게 뽀뽀하는 사이! ^^ 아빠, 부럽지? ㅎㅎ











우릴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친 김에 더 찐~하게. ㅎㅎㅎ












올 봄들어 처음 돗자리를 펴보았다. 이만큼 날이 따뜻해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몸무거운 엄마는 연수와 아빠가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동안 돗자리 위에 길게 누워 해바라기도 잘 해주었다. 
평화에게도 따신 봄볕이 전해졌기를. 











남편이 아이폰으로 찍어 트윗에도 올린 올림픽공원 풍경.
연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엉키는 것 하나없이 모두들 푸른 하늘을 양껏 차지하고 날았다.
늦은 오후쯤 되니 가족체육대회라도 열린 것처럼 소풍나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하늘처럼 땅도 여럿이 함께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복잡하다는 생각보다는 여럿이어서 더 즐겁고, 구경하는 재미도 더 있었다.
이런 곳에 가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 이런 잠깐의 휴식이 더없이 귀하고 절실한 소시민들이구나... 하는 동질감이 진하게 든다. 내일이면 또 바쁜 일터로, 복작복작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지라도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하는 휴일 한때만큼은 얼마나 인간답고 아름다운지. 
그러나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는 엄마아빠가 있고, 모처럼의 공원 나들이가 어려운 아이들도 많다.
휴일의 권리, 휴식의 권리, 가족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있는 권리... 그런 것들이 더없이 사무치는 날들이다.  













이 날 오후 늦게 커튼설치 기사님이 오셔서 우리집 거실과 안방, 연수 놀이방에 예쁜 커튼을 달아주고 가셨다.
밤에 연수는 느닷없이 제 놀이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연수방에도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귀여운 고양이커튼을 발견해서 "이걸로 달아줄까?" 물었을 때 연수는 무척 좋아했다.
커튼있는 집에 가서 그 뒤에 숨어 숨바꼭질도 하고, 까꿍놀이도 했던 기억이 있어 우리집에도 커튼을 단다니 참 좋았나보다.  
그런 연수를 보고 아빠가 장난삼아 "연수야, 이제 고양이커튼 달고나면 연수방에서 연수 혼자 잘까?"하고 물었더니 대뜸 "응!"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 얘기를 기억했던지 고양이 커튼이 달렸으니 이제 제 놀이방에서 혼자 자겠다는 연수를 보며 웃음이 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진지하면서도 뭔가 어색한 말투. 짐짓 다 큰 아이처럼 의젓하게 보이고 싶으면서도 실은 엄마가 잡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시선..^^

연수가 이런 시선과 말투를 종종 쓸 때가 있다.
온가족이 외출준비로 바쁜 주말 아침 같은 때.. 옷입자며 따라다니던 엄마가 끝내 폭발해서 "빨랑 옷 안 입어?! 엄마아빠 다 가는데 너 혼자 집에 있을거야?"하고 묻기라도 하면(이건 연수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닌데 엄마아빠는 흥분하면 가끔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한다) 연수는 짐짓 시무룩해진 체하며 "응, 안갈래. 연수 혼자 집에 있을래."하고 대답한다. 
바보같이 제 발등찍은 엄마는 그만 어물어물.. "더 크면 혼자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같이 가야해. 얼른 옷입고 가자, 연수야..." 하고 달랠 수 밖에 없다.
놀이터에서도 이제는 그만 집에 가야한다며 앞장서 걸어가는 엄마를 마지못해 따라오면서 "엄마 혼자 가.. 연수는 여기 계속 있을래."하고 버텨보다가, 또 따라오다가 하는 연수에게서는 '혼자서도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있는 큰 형아'가 되고싶은 마음과 '엄마가 제 뜻을 좀 따라주었으면..'하는 바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말에는 '설마 엄마가 나를 여기 혼자 두고 가지야 않을테니..'하는 믿음도 들어있다. 

아무튼 이 날 저녁 '혼자 자겠다'는 연수의 고집은 마침 몰려온 졸음과도 겹쳐서 아주 완강한 상태가 되었고, 
나와 남편은 서로 마주보고 난감해하다가 결국 연수방에 이부자리를 펴주었다.  
대견함 반, 서운함 반.
연수는 34개월이 되도록 한번도 엄마와 떨어져 자 본 적이 없다.

그런 녀석이 제 뜻대로 혼자 자게 된 것이 신나는지 이부자리에 쏙 들어가서 눕더니 곁에 앉은 나에게 "엄마, 나가." 했다.
나는 나대로 감상에 젖어서 안그래도 콧날이 시큰거리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얼른 불을 끄고 눈물을 닦고는 연수 옆에 누웠다. "연수 잠드는거 보고 나갈께. 그리고 연수야, 자다가 엄마 보고싶으면 안방으로 와. 아직은 연수도 어리니까 혼자 안자도 돼. 나중에 더 커서 무섭지 않으면 그때 혼자 자도돼.." 

결국 연수는 이날도 안방에서 잘때와 별다를 바없이 엄마에게 옛날 얘기를 두어편 듣고, 엄마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몇차례나 조물락거리고 뒤척뒤척하다가 잠이 들었다. 
혼자 재울까.. 하다가 맘 약한 나는 '첫 날이니까.. 오늘은 방이 어떤지도 좀 봐야겠고..'하면서 결국 연수 옆에 가서 장난감들 사이의 비좁은 틈에 끼어잤다. 
여느 떄처럼 연수는 자다가 두어번 깼고 그때마다 엄마가 옆에 있는지 확인하고는 내 옆으로 와서 다시 누워잤다.  

다음날도 연수는 놀이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했다. 이 날은 나도 연수를 혼자 재울 생각이었다. 
내 생각보다는 이르지만 혼자 자고싶어하는 마음이 들 때, 제 뜻대로 해내게 된다면 스스로 더 뿌듯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둘째날 밤 연수는 결국 자다가 한밤중에 엄마를 찾아 안방으로 왔다. 마침 나도 불을 많이 때지않다가 어제오늘 보일러를 세게 튼 놀이방에서 새가구냄새 같은 것이 너무 심해서 잠든 연수를 안방으로 데려왔으면..하고 남편과 의논 중이었다.
연수의 '혼자 자기' 1차 시도는 이렇게 끝이 났다. ^^;  












변화와 성장.
아이들의 삶은 매순간 저 두 단어로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곧 동생이 태어나는 34개월 연수에게는 제 내부에서 우러나는 목표들뿐만 아니라 밖에서 부딪혀오는 도전들도 적지않다.
엄마아빠는 '곧 형이 되니 이렇게 해야한다'고 강요하는걸 조심하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연수는 은연중에도 많은 압력(?)을 받는것 같고, 제 스스로 궁금해하는 것도 많다.
평화가 태어나면 자동차에서 어느 자리에 타는지를 먼저 궁금해한 것도 연수였다.
"글쎄.. 평화 자리는 어디에 하면 좋을까?"하고 물었더니, 아빠 옆자리에 하란다. 뒷좌석에 있는 엄마 옆자리는 연수 자리니까.
그래서 너무 어린 아기는 앞자리에 탈 수가 없고, 큰 형아들은 앞자리에 앉을 수 있다. 앞자리에 앉으면 아빠가 운전하는 것도 잘 보이고, 밖에 차들도 잘 보일텐데... 정도로 엄마 아빠가 얘길하면 그 뒤로 연수는 속으로 갈등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느 날은 자기 카시트를 앞좌석으로 옮겨달라고해서 거기 앉아 제법 며칠 잘 타기도하고, 또 어느날은 엄마 옆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연수가 처음 카시트를 떼서 아빠 옆 앞좌석으로 갔을때는 3년동안 꽉 차있던 옆자리가 널찍하게 빈게 허전하고 어색해서 눈물쟁이 엄마는 또 콧날이 시큰해졌었다.

앞자리에도 갔다가 뒷자리에도 왔다가, 혼자 자겠다고 놀이방에 이부자리를 폈다가 또 돌아오기도 하면서
연수는 그렇게 자라간다.
하루 아침에, 아니 며칠 아이를 울리더라도 아이 혼자 자도록, 동생에게 엄마 옆자리를 빼앗기다시피 양보하도록 만들고 싶지않다.
천천히, 제 마음의 힘으로 엄마 옆에서 한발짝 떨어지고, 동생 자리도 만들어주고 저만의 세상을 조금씩 더 키우게 되었으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성장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듯이, 연녹색 새싹과 여리고 눈부신 꽃잎들이 가지를 뚫고 솟아오르듯이...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우리들의 삶을 채워주었으면.

자연스럽다고해서 치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겨울을 이겨낸 새싹을 보면 누구나 눈물겹듯이, 어느날 갑자기 핀 것 같은 작은 들꽃도 얼마나 치열하게 온겨울 제 생명을 지키고 힘을 키웠을지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
어린 아기가 자라는 것, 형이 되는 것, 제 힘으로 할 수있는 것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더디고 지루하고 걱정스러워서 떄로는 옆에서 짜증도 내고 채근도 하게 되지만 그나름대로 얼마나 애쓰고 있는 것인지만은 잊지말고 알아주어야겠다.. 다짐한다. 
 










엄마의 친한 친구인 지은이모가 놀러온 날. 
연수가 아주 어렸을때 이모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고 얘기했더니 다다다다 뛰어가 제가 잘 가지고노는 엄마 카메라를 들고왔다.
"연수가 엄마랑 이모랑 사진 찍어줄께~!"하더니 이렇게 예쁘게 찍어놓았다. ^^
생후3개월 연수를 조심스레 안고 사진을 찍었던 이모는 그 연수가 어느새 이만큼 커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보고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랬다.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이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이. 


방사능 비가 온다, 온다 해서 불안하기도 하고 '이번 지진으로 인해 우리가 겪을 어떤 불안과 고통이라도 일본인들이 겪고있는 것에 비하면 아주 너무나 작은 것'이라는 한상진씨의 메일 내용이 떠올라 슬프고 안타깝다.
저 아름다운 봄꽃들 위로, 엊그제 엄마아빠가 고향밭에 심으셨다는 감자 싹 위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 위로 내리는 방사능비.
생각하면 눈물겹고, 그럼에도 살아있는, 자라는 모든 것들이 또 고마운 봄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4. 1. 23:54



며칠전, 연수와 아파트 놀이터로 걸어가는데 우리가 가는 놀이터쪽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남의 집 아이 우는 소리가 여사로 들리지 않는다.
꼭 내 아이 우는 소리인 것만 같고, 그게 아니더라도 왜 울까, 엄마는 어디 있을까, 엄마가 달래도 그치지 않는 울음이라면 그 엄마는 얼마나 난처하고 속상할까....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놀이터에 도착해보니 우는 아이는 두돌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왜 우냐, 울지마라' 곁에 서서 달래고있는 엄마 품에는 아기띠를 매서 안은 어린 동생이 안겨있었다. 

"아기, 응응, 안으!" 
큰아이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 제가 타고온 유모차를 손으로 두드려가며 서럽게 울었다. 

"아기 여기 내려놓으라고? 아님 아기를 안으라고?"
아이 말을 알아들어보려고 애쓰는 그 엄마의 답답함과 난처함과 속상함이 남일 같지 않았다. 

늦가을쯤 몸풀고 겨우내 갓난아이와 큰 아이를 데리고 참 씨름을 많이 했을 것같은 엄마였다. 
이제 겨우 봄볕이 좀 따셔져서 늘 집안에만 있는 큰 아이에게 미안해 어렵게 둘째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큰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놀이터로 쉽지않은 나들이를 나선 것 같았다. 
츄리닝바지에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짧은 머리를 한 그 엄마에게서 몇 달 뒤의 내 모습이 보였다. 

어렵사리 나온 나들이에서 큰아이는 제 성에 차지않고 어려운 무언가에 부딪혔던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 품에 안기고 싶은데 품에 안은 어린 동생에게 행여 찬바람이라도 들새라 코트깃까지 세워야하는 엄마가
큰 아이까지 안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말로 달래고, 그만 들어갈까 물어보고, 울며 매달리는 큰아이를 겨우겨우 끌고 놀이터를 떠나는 그 엄마의 난처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보고있는 내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도울 수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
 
나라도 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울때는 어느 아이라도 제 엄마에게 안겨서 위로받고 싶지 낯선 아줌마 품에 안겨 울음을 그칠리도 없고..
그 흔한 사탕도 하나 들고나오지 않은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 날 놀이터에서 스쳐갔던 애기엄마의 잔영이 오래오래 머리에 남았다. 
 






신영복 그림, '생각하는 손'
<나무야 나무야>(1996. 6. 돌베게)에 수록. 신영복 홈페이지 '더불어숲' http://www.shinyoungbok.pe.kr 에서 담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그림을 찾아보았다.
양손에 큰 보따리를 들고, 큰 아이 걸리고 작은 아이 업고 장에서 돌아오는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의 머리위에 올려진 임이 떨어질까봐 뒤에서 걸어오는 내내 불안했던 어린 날의 신영복선생님이 '저 아주머니에게 손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하고 생각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였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손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내 몸이 둘 아니 셋이었으면..'하고 바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특히 아이가 울 때..
우는 아이도 안아 달래야겠고, 하던 일도 마저 해야겠고, 내 몸도 고단하고...
그래서 그만 나도 같이 울고싶은 심정이 되어 우는 아이를 안고 발만 동동 구를 때.

어느새 연수는 34개월 제법 큰 아이가 되어 엄마를 그렇게 발 동동 구르게 하는 순간은 훨씬 적어졌다.
그러나 이제 두 달뒤, 평화가 태어나면.. 
갓난쟁이 돌보느라 분주한 엄마 곁에서 큰 아이는 섭섭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여 아마 때때로 저도 갓난아이처럼 굴고 싶어지겠지... 
말이 아닌 울음으로 우선 저부터 안아달라고 막무가내로 떼쓸 때도 있을 것이다. 

많이 의젓해졌다해도 놀다 넘어져 어디가 좀 아프면 엄마 품에 달려와 안겨야 위로가 되고
울음이라도 터졌다치면 엄마 윗도리 속에 제 손을 쑥 집어넣어 은근슬쩍 엄마 젖가슴도 만지고 겨드랑이도 꼭 쥐어봐야 맘이 풀리는, 여전히 어린 내 큰 아이. 
그 큰 아이도 안아줄 수 있게 내게 팔이 두개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지금도, 실은 조금 조급한 마음이 들어 내 몸이 한 개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보고싶은 책들도 좀더 읽고, 글도 쓰고 할 내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온종일 내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아이와 놀고, 밥 해먹고, 집 치우며 보낸 고단한 하루가 끝날 무렵 
아이를 재우다가 그만 몸이 피곤해 나도 같이 잠들어버리거나
요행히 잠이 안들더라도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나 한 날은 마음이 무척 우울해진다. 
평화가 태어나기 전에 책도 글도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이라도 가능할 때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하는데..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 중에 아이셋을 키우며 글을 쓰는 평온님의 '평온한 강가에서'란 블로그가 있다.
아이 하나 키우면서도 시간이 없다고 허덕이는 내가 보기에 평온님은 정말 신기하고 부럽기 그지없는 분인데
언젠가 그 분 글에서 '맘편히 잠 한번 푹 자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보고 뜨끔했었다.
세 아이를 돌보며, 것도 셋 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고 온전히 하루종일 돌보고 키우면서
밤에는 책 읽고, <민들레>와 여러 매체에 실을 원고를 쓰고 또 짬짬히 블로그까지 쓰는 그 분은 정말 잠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게 너무나 힘들지만, 또 너무나 원했던 삶이므로 어렵지만 행복하게 그 삶을 살아가신다.















+ 얼마전 둘째아이를 낳은 친구집에 놀러갔다. 둘째는 큰 아이와 딱 두 돌 터울로 태어났다.
본디 부처님 같은 성격인 친구는 두 아이가 다 기저귀에 똥을 싸놨던 다급한 순간을 웃으며 얘기해주었다.
그녀와 두 아이에게 축복과 평화있으라..! ^^ 
아마 그럴 것이다. 아이가 둘이라는 것은 행복도 두 배라는 것을 친구와 함께 지내며 느낄 수 있었다.




'천수관음보살'은 천개의 손을 가진 부처님.
그런데 그 천개의 손마다 눈이 하나씩 있다 한다. 천개의 손, 천개의 눈.
눈이 있는 손은 마음이 있는 손. 마음이 있는 손은 단순한 집합이나 맹목이 아니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손. 
그저 짐을 들어주고 일을 거들어주는 손이 아니라 아픔을 쓰다듬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악수의 손이라고 신영복 선생님은 저 글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몸의 손은 두 개뿐이지만
마음의 손만은 좀더 여러 개를 지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의 마음도 어루만져주고, 이웃들 생각도 하고, 글도 쓸 수 있는 손. 눈이 있어 책도 보고, 세상도 밝게 볼 수 있는 손..
 


두 아이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던 그 엄마는 오늘 잘 지냈을까. 
아이들이 울면 그 엄마도 마음으로 함께 울텐데 오늘은 좀 덜 힘들었을까. 
다음에 혹시 놀이터에서 또 만나게되면 봄햇살아래서 수줍게 인사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3. 24. 00:01









"엄마, 연수도 (엄마처럼) 배가 동그래! 연수도 아기 가졌어~."
볼풀공을 옷속에 넣고는 불룩해진 옷을 가리키며 연수가 말한다.

엄마: 그래? 연수 배속에도 아기가 있어? (^^;)
연수: 응! 공 아기야, 빨간공 아기~!









연수: (옷을 들어올려 공이 떨어지게 하면서) 퐁! 아기가 태어났어~!^^



이 '아기놀이'가 참 재미있었나보다.
며칠동안 연수와 계속 공을 옷 속에 집어넣고 아기를 가졌다가, 낳는 놀이를 했다.

엄마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엄마 배속에 있는 아기에 대한 연수의 관심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연수에게 '너는 이제 곧 형이 되니까 이러이러해야해' 하는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괜한 부담과 긴장을 주고 싶지않아서였다. 그러다보니 임신 중반까지는 평화 이야기를 연수와 같이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연수가 먼저 평화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아졌다. 

"엄마, 평화는 높은 곳에서 못 뛰어내려?"
"엄마, 평화도 젓가락질 할 수 있어?"
"엄마, 평화는 밥 못 먹어?"
"엄마, 평화는 못 걸어다녀?"

"응... 평화도 연수만큼 많이 크면 뛸 수 있겠지.."
"아니.. 평화도 바로는 젓가락질 못하지. 태어나서 한참 지나야 젓가락질을 할 수 있지."
"응.. 평화는 한동안은 엄마 젓만 먹어. 연수도 그랬지..."
"응.. 평화는 처음에는 누워있기만 하다가 뒤집고, 기고... 그러다가 한참 지나야 걸을 수 있어. 아기들은 다 그래.."

이런 대화가 끝도없이 이어진다.
제가 움직이고 밥먹고 뛰어노는 모든 순간에 어린 동생을 같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저는 이만큼이나 할 줄아는게 많은 큰 형아란 것을 으쓱거리며 자랑해보고픈 마음이기도 하고, 
엄마가 그걸 확인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제 일상에 슬그머니 꽤 큰 자리를 차지해버린 엄마 배속의 어린 동생을 살짝 견제하는 심리도 엿보인다. ^^;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이 나는 다 좋다고 생각한다. 고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의 몸속에서 꼬물거리며 자라고있는 평화를, 그 어리고 작은 존재를 
연수만큼 자주 생각하고 진지하게 궁금해해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평화도 아마 그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늘 저에 대해 궁금해하고, 쫑알쫑알 제 얘기를 해주는 네살배기 형아에게 깊은 애정과 존경(? 워낙 형이 '연수는 이것도 할 수있고, 저것도 잘 해~!하고 외치고 있으므로 ㅎㅎ)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엄마 혼자 그런 짐작을 해보는 것이다. ^^ 

형제가, 남매가 혹은 자매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핵가족 시대에 참으로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언제였더라.. 지난 겨울 어느날, 갈현동집 모래놀이터에서 놀 때였다. 
내가 모래위에 그린 나비 그림을 보고 연수가 "이건 연수 나비, 저건 엄마 나비.."하고 이름을 붙여주다가 
"평화 나비도 그려줘야지~!" 했다. 그리고는 "평화는 작으니까 제일 작은 나비가 평화 나비야.." 하고 말했다. 
그게 제일 처음이었다. 연수가 평화에게도 뭔가를 해줘야한다고 생각해서 얘기한 것이.

그 이후로 연수는 언제나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할때 평화를 끼워서 얘기하고, 평화와 함께 할 일들, 평화에게 나눠줄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달랑 셋뿐인 단촐한 식구에 한 사람이 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증가여서, 늘 사람이 그리운 연수로서는 이미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평화가 무척이나 반갑고 소중한 것이다. 

"평화가 태어나면, 그래서 많이 자라면... 연수랑 평화랑 2층 침대에서 잘 거야. 
연수는 제일 위에서 자고, 평화는 밑에서 잘꺼야. 연수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도 잘 하니까!"
나중에 연수도, 평화도 많이 커서 엄마랑 떨어져서 잘 수있게 되면 2층침대를 사주마..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는 
그림책에서 침대 그림이라도 볼라치면 거듭, 거듭 이야기한다. (꼭 사달라는 말보다 더하다^^;;) 

그런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우리 가족에게 큰 일이 안 일어나서, 우리 모두 별탈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서... 그래서 많이 자란 사내아이들에게 저희들만의 방을 주고 그 방에 튼튼한 2층침대를 놔줄 수 있게 되기를..









+ 겨우내 잘 입었던 스키복을 빨려고 욕조속에 담궈놨더니 연수가 저도 같이 빨겠다고 성화였다. 
그래, 그럼 한번 밟아봐라.. 하고 들여보냈더니 신나서 첨벙첨벙 잘도 밟았다. 
 








+ 하지만.. 못말리는 장난꾸러기 어디 가랴. 말릴 새도 없이 빨래위에 홀랑 업드리는 바람에 내복을 다 적셨다.
결국 빨래위에서 샤워까지 하고 나왔다. 그래도... 이렇게 신나는 순간이 일상에서 자주 있는건 아니니. 고마운 일이라 여겨야겠지..^^;




"연수는 아기는 잘 못 돌봐. 인형은 잘 돌봐줄 수 있지만.." 하고 말하면서 제 곰돌이 인형이랑 강아지 인형을 품에 꼭 안아주는 연수. 
"그래.. 연수는 인형을 잘 돌봐줘.. 아기들은 너무 작고 여러서 어른들도 아주 조심조심 돌봐야하거든.. 연수가 많이 크면, 그때 아가들도 잘 돌봐줄 수 있을거야.." 
하고 대답하면서 나는 웃었다. 
형아가 된다는 것이, 그래서 어린 동생을 보살펴줘야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아기를 보면 장난부터 치고싶고 괜히 한번 울려보고도 싶고, 또 어른들이 '그러지마라' 하면서 동동거리면 재미있어서라도 한번더 장난쳐보고 싶어하는 연수.
'형은 동생을 잘 돌봐줘야지!'하는 어른들 말에 막무가내로 반대로 하고싶은 마음도 굴뚝같을 것이다. 

어느 날은 조금 큰 뽀로로 인형과 치로 인형을 나란히 세워놓고, "치로는 뽀로로 동생이야~"하더니 제가 만든 상황설정이 맘에 드는지 씩 웃었다.
그리고는 "뽀로로가 너무 귀여워~"하면서 뽀로로만 제 품에 꼭 안고는 치로는 슬며시 엄마 손에 쥐어주었다. 
형이 된 뽀로로를 애틋해하는 마음, 형이 된 스스로를 위로해주고픈 마음이 느껴져서 살짝 안쓰러웠다. 
"연수는 뽀로로가 제일 좋아~"하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연수가 제일 좋아~"하고 얘기했더니 내 품에 와서 폭 안겼다. 

그렇게 연수는 형이 되어간다.
평화는 그런 연수의 동생으로 태어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두 아이와 함께 자라는 일이 기대된다.
몸은 더 힘들겠지만 마음은 우리 모두 더 풍요롭기를... 그럴 수있을거라 믿는다.
고맙다, 우리 아이들.


   
 







+ 나와 함께 여름에 두 아이 엄마가 되는 명이님이 지리산 시댁에서 만들어주신 맛있는 한과를 연수랑 엄마랑 평화랑 같이 먹으라고 한박스나 보내주었다. "이모네 과자, 최고~!" 하는 연수. 고맙습니다, 명이 이모&미페이 삼촌.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3. 9. 00:07








연수가 만든 '아빠와 연수' 조각(?).

"엄마 엄마, 이것 좀 봐~"
며칠전 저녁, 연수가 부엌에 있는 나를 연신 부르길래 가보았더니 제 나무자동차에 태우는 사람 둘을 쌓아 놓고는 "연수가 아빠 목마탄거야~"하고 의젓하게 작품소개를 해주었다. ㅎㅎㅎ
"그렇구나~! 연수가 아빠 목마탄 모습이구나~. 정말 재밌다!"하고 둘이 한참 웃었다.
네살이 되며 부쩍 저만의 놀이와 이야기들을 잘 만들어내고, 그 안에 엄마와 아빠를 참가시키고 싶어하는 연수.
덕분에 함께 있는 순간들이 더 즐겁고 유쾌해졌다.

만33개월이 된 연수는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
주위에서 보면 직장맘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돌이 지나 두돌쯤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내게도 '연수 어린이집 보낼때 안됐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곧 둘째도 낳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첫째는 인제 어린이집 보내야겠네' 하고 얘기한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안되지..'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남편도 가끔 '연수를 어린이집 안보내도 정말 괜찮겠어? 낮에 당신 혼자 너무 힘들지 않겠어?' 묻는다.

나도 앞으로의 날들이 솔직히 걱정된다.
평화가 태어난 후도 그렇지만, 지금도 몸이 고단하고 무거울 때면 기운넘치는 연수와 노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연수 가졌을 때 산모체조와 산후조리원을 함께 다니며 친해졌던 한 애기엄마도 나처럼 첫아이가 둔위(역아)로 있어 제왕절개를 했는데, 얼마전 만났더니 둘째는 소망하던데로 자연분만을 했다고 했다.
어떻게 준비했냐고 물었더니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그이는 아이들 터울도 짧아 임신한채로 큰아이 돌보기가 나보다 훨씬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시간에 요가도 열심히 하고, 운동을 많이 했다고 했다. 
나도 평화는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고, 꼭 그때문이 아니라도 나날이 무거워지는 몸을 요가나 산모체조로 좀 가뿐하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마도 연수를 지금 어린이집에 보낸다면 평화를 낳기 전까지 두세달 동안 연수 낳은후로 처음 가져보는 꿈같은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은 연수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가 않다. 
만3살까지는 내 품에서 온전히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일찍부터 생각해왔기도 하고, 평화를 갖게 되었을 때도 그때문에 연수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동생이 태어나는 시점에 임박해서 어린이집에 보내면 어떻게 얘기해도 아이에게는 슬며시 '동생때문에 엄마랑 떨어져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기 쉬우니 어린이집을 보낼거면 동생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보내서 동생의 출현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되도록 하는게 좋다는 주위의 조언이 많았지만, 두 돌이 막 지난 연수를 생각보다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어린 동생이 엄마의 배속에서 자라는 시간 동안, 그리고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연수가 어린 동생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난아기에게 행여 심한 장난이라도 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엄마를 제가 더 많이 차지하지 못한다고 시샘하거나 화내는 일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족'과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부대끼며 정을 쌓고 나름의 이해를 키우는 시간이 네살배기 형아에게도 꼭 필요할 것만 같다.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도 보고, 지금도 그렇지만 저와 가장 신나게 놀아주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려가며 좀 심심한 시간도 보내고, 애타는 시간도 가지며 그렇게 형아가 되고 큰 아이가 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장미빛 미래만 상상하고 있는걸까?
연수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지도 모르겠고, 그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오는 것이 더 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내 생각대로 한번 부딪혀볼 생각이다.
많이 힘들겠지... 뜨거운 여름날에 마음껏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내내 집안에 붙들어놓고 지내자면 보는 나도 마음 아프고, 연수도 많이 답답하겠지.
할머니들이 오셔서 산후조리를 해주시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어찌 살아지겠지만, 그 후는 참 어찌될지 나로서도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아직은 연수에게 제 집만큼 편안한 공간은 없고, 엄마 곁에서 엄마가 겪는 일들을 함께 겪고, 함께 밥먹고, 함께 놀고 잠드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절실하리라 믿는다. 
어린 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에도 충분한 부대낌과 힘든 이해의 시간이, 연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것이다. 사랑은 분명히 그를 위한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견디는 속에서 더 환하게 피어나는 것이니까.. 힘들다고 어느 시간만큼 뚝 떼어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고, 큰아이와 작은 아이, 엄마 모두에게 더 행복한 시간을 셋이 함께 만들어갈 수도 있을테니까.. 










  
아이가 자라는 순간은 매순간 참 예쁘다.
혼자 무엇에 몰두해 있는 짧은 순간도 예쁘고, 내게 조잘조잘 얘기를 걸며 같이 놀자고 졸졸 따라다닐 때도 예쁘다.
갓난아이가 조금씩 자라며 이뤄내는 작은 성취들을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뿌듯하고 감동적인지!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겠다는 마음은 사실 그 예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때문이기도 하다.

조금 더 자라면 아마 아이에게도 친구가 몹시 필요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친구든, 형이든, 동생이든 그 나름대로 반갑기는 해도 엄마아빠처럼 제 것을 다 나눠주며 찰싹 달라붙어 놀고싶은 마음도 없고, 저희끼리만 같이 노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조금만 더 크면 친구들과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노는 일에 능해지고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런 때가 되면 아마 연수를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보내줘야 하겠지.

그 전까지는 아이에게 전부이다 싶이한 '엄마', 내 곁에 있고싶을 때까지는 마음껏 있게 해줘야지. 
떠나보내야할 때를 모르고 한없이 품안에 붙들어두고만 싶어하는 답답한 엄마가 되지 않기위한 경계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3월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은 낯설기만 한 동네지만 조금씩 더 용기를 내서 연수와 함께 나들이도 가보고 재미있는 일들도 만들어봐야지.
평화를 기다리며 둘이 함께 보낸 즐거운 봄날들이 우리의 고단한 여름을 받쳐주는 든든한 힘이 되기를.. 



 






덧. 연수가 장난감블록 팜플렛을 보고 저 '칼'을 만들어달라기에 제 것, 엄마 것 두개를 만들어 주었더니 좋아서 가지고 놀다가 말했다. 

연수: 평화가 태어나면 이 칼로 콕 찔러줄꺼야~!
엄마: (마음이 쿡 찔리는듯 무서운 이야기지만 애써 진정하고..ㅠㅠ) 응..? 평화한테 장난치고 싶어서?
연수: 응! 칼로 콕 찔러서 장난칠꺼야.
엄마: 그래... 장난치고 노는건 좋지만 너무 아프게는 하면 안돼지.. 아기가 아파서 울거아냐..
연수: 엄마. 근데 평화가 크면 같이 칼싸움도 할 수 있겠네?
엄마: 아.. 그렇지. 평화가 연수만큼 크면 같이 칼싸움할 수 있겠지.(그 북새통을 생각만해도 한숨나오는 아들둘 엄마--;;)
연수: 좋아~! 평화 칼도 만들어주자~!!

연수, 언제부턴가 매일의 제 생활속에 평화도 넣어 얘기하게 되었다. 주로 장난치고 견제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어린 동생을 생각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예쁘다. 평화야, 너도 형이 보고싶지?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3. 8. 22:30









새집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앞마당에 작은 인공냇물이 있다.
지금은 겨울이라 물을 틀어놓지 않은 모양인데, 얼마전 내린 비로 빗물이 고여 며칠동안 연수의 좋은 놀이터가 돼주었다.

"엄마, 저거 뭐야? 저 밑에, 돌 많은데, 저기."
"응.. 작은 냇물이 있네."
"냇물? 그럼 징검다리도 있어?"
"음.. 아.. 냇물 옆에 쭉 놓은 돌이 꼭 징검다리 같기도 하다."
"다람쥐가 다닐 수 있겠네?" ('다람쥐가 건너갈 수있게 징검다리를 놔주자'하던 그림책을 보고 하는 얘기다)
"글쎄... 다람쥐도 다닐 수 있겠지.^^;"

이사온지 얼마지 않아 이 냇물을 발견한 연수는 아침을 먹고나면 거실 창에 붙어서서 "엄마, 징검다리에 가자~, 가자~~"하고 연신 졸랐다. 
아직은 바람이 차고, 여기저기 계속 공사가 진행중인 새 아파트 단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더 황량하게 느껴져서 
자꾸 움츠러드는 엄마와 달리 연수는 새로운 공간을 여기저기 탐색하고, 나가 놀고 싶어 몸이 근지러운 것만 같다. 











필시 물에 들어가려할 것같아 장화를 신겨 나오길 잘했다. 
얼음이 살짝 언 물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 연수는 돌도 주워오고, 깨진 얼음조각도 엄마에게 주워다주며 신나게 놀았다.  
새단지를 청소하느라 분주하신 경비아저씨들과 오가는 어른들이 우리를 보고 웃기도 하고, 춥다며 얼른 들어가라고 일러주기도 하셨다.
혹시나 연수 또래의 아이들과 엄마가 나와노는가 싶어 흘깃거려봤지만 아직은 추워그런가 잘 보이지 않았다.











"엄마, 얼음이야, 얼음~!! 엄마도 물에 들어와!"
요즘 뭐든지 제가 하는 것은 엄마아빠도 다 같이 하면서 놀기를 바라는 연수는 내게도 물에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장화를 안신어서 못 들어간다했더니 '엄마 장환 어딨어?'하고 묻는다.
없다고 했더니 다음에 마트에 가서 엄마도 장화를 사란다. 연수꺼랑 똑같은 별무늬 장화로 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 하고 웃었다. ^^ 
어느새 이렇게 컸나.. 내 어린 아기. 조잘조잘 말도 잘한다.
덕분에 조만간 커플장화를 맞춰 신고 동네 개울에서 첨벙거리게 생겼다. 평화가 태어나기 전에 그럴 날이 있어얄텐데..











연수가 주워준 얼음조각과 돌들.
나중에는 이 큰 돌에 자리가 모자라서 이쪽 저쪽 큰돌마다 작은 돌들을 하나씩 올려가며 놀았다.
하루에 한벌씩 장갑을 흠뻑 적셔가며 들어오긴 했지만 워낙 물놀이 좋아하는 아이이고 조약돌과 얼음은 여지껏 자주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잠깐씩이라도 맘껏 놀게 해주었다.
큰 돌위에 앉아 등허리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아이가 가져오는 것들을 '참 이쁘네'하며 바라보고, 
같이 서서 조약돌 던지기도 하면서 실은 나도 참 좋았다. 징검다리.. 새로 사귄 좋은 친구처럼 든든하고 고맙다.  











징검다리를 지나서 작은 길을 건너가면 우리가 '벌레 놀이터'라 이름붙인 작은 놀이터가 나온다.
큰 애벌레 의자가 있고, 작은 애벌레 모양 놀이기구들도 있어서 그리 부른다.
날로 몸이 무거워져서 제 힘을 다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랑 같이 지내다보니  
놀이터에만 나오면 못 다 쓰는 힘을 다 쓰겠다는 듯 뛰고 매달리고 기어오르기 바쁘다.











새로 만든 놀이터라 신기한 기구도 많았다.
처음 이 놀이터에 왔을때 '두레박'이 설치돼 있는 걸보고 나는 속으로 '대박이다!'를 외쳤다.
연수와 재미있게 본 그림책중에 <풍덩!>이라고 늑대와 돼지와 토끼들이 차례로 깊은 우물에 빠졌다가 두레박을 타고 올라오는 얘기가 있는데 아무리 그림책으로 읽어도 연수에게는 두레박의 원리(?)라는게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았을 터였다.

놀이터에서 직접 두레박을 끌어올리고, 내리며 연수와 나는
"돼지가 올라가요~ 늑대가 내려가요!", "성공이예요! 토끼가 올라가요~" 하고 그림책 대사들을 읊어가며 신나게 놀았다. 
어린 시절에 내가 집에서 쓰고 보며 익혔던 우물이나 두레박이나 펌프같은 것들을 이제는 생활에서 접하기 어려운 내 아이가
이렇게 놀이터에서라도 그런 것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참 반가웠다. (우물이나 펌프도 있으면 좋을텐데.. ㅎㅎ)











끝까지 올라간 두레박. 됐어요, 성공이예요~! ^^











어느새 만 33개월을 꽉채운 개구장이 연수는 미끄럼틀도 얌전히 타는 법이 없다.
엎드려서도 타고, 누워서도 탄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신기한 포즈들도 다 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 모험심이 부럽다.
이제는 겁이 많아져서 제일로 안전한 자세로만 삶의 징검다리들을 조심조심 건너려하는 엄마와 달리
새로 시작하는 연수는 다리에 멍이 좀 들고, 손가락 어디쯤을 살짝 다칠지언정 조금이라도 신기하고,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해보려고 열심이다. 
그래... 너에게는 그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겠구나. 어쩌면 엄마에게도. 
 

어느새 새 아파트에서도 '징검다리 - 벌레놀이터 - 배놀이터'로 이어지는 연수의 바깥놀이 코스가 만들어졌다.
예전 집 놀이터에서는 못 보던 기구들이 많아 아직은 심심한줄 모르고 잘 논다.
엄마도 새로운 놀이터들이 좋지만, 예전 아파트는 두 놀이터가 모두 모래놀이터여서  
여름이면 모래놀이장난감들을 가지고 나와 모래를 담고 두드리며 한참씩 놀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아직 모래놀이터를 못 찾아 아쉽다. 
이제 날이 좀더 따뜻해지면 연수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길건너 주택가 놀이터에도 가보고, 
동산이랑 근처 들판으로도 나가서 흙냄새, 풀냄새를 더 많이 맡고 다녀야지..

오늘 나가보니 바람이 여전히 차긴해도 언뜻언뜻 봄기운이 실려오는 것도 같았다. 
따순 봄이 어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2. 1. 00:59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아.
설움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아.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사실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은 것같지만...
젓가락질은 사람이 노력해서 얻을 수있는 것중에서도 참으로 멋지고 뿌듯한 성취가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쨍하고 해뜰날....이 왔습니다.
32개월 연수.
이젠 엄마가 먹여주지 않아도 혼자서 밥도 잘 떠먹고, 쉬마려우면 혼자 화장실에 가서 바지 내리고 쉬도 합니다. 응가도 혼자 해요. (뒤처리는 아직이지만 그것만해도 감격입니다.^^:)

눈물과 고달픔의 세월이 아직은 한참 더 남아있겠지만..
오늘 이것만해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 곧 설이네요. 저희도 이제 시댁에 내려갑니다.
어느해보다 힘든 일이 많은 세모지만... 어둠속에 뜨는 새 해는 더 밝고 따뜻하기를 빕니다. 
새해는 조금 더 희망차고, 웃을 일이 많은 날들이기를 빕니다.  
모두. 있는 힘껏. 행복해지는. 날들이 되기를. 블로그 이웃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 31. 00:32









겨울을 맞은 아이에게 눈처럼 신기하고 재미있는게 또 있을까.
집안일로 가족 모두가 지방에 내려갔던 날, 눈이 아주 많이 왔다.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서서 연수, 처음으로 제대로 눈을 맞아보았다. 











혼자 걷는다. '아주아주 먼 데까지 걸어가 볼래요' 어느 그림책의 아기곰처럼.











'앗! 아빠다!'
그림책속 아기곰도 아빠와 함께였는데.. 머리와 어깨에 눈이 수북하게 쌓인 아빠. 안쓰럽다. 


















'엄마도 왔네~!' 
눈길이 조심스러운 엄마는 멀찌감치 눈안맞는 곳에서 두 사람을 보고만 있다가 뒤늦게 조심조심 눈위로 나가 보았다.
두 남자의 사진을 찍어주러.. 


 









바깥놀이를 좋아하는 엄마가 조심해야하는 처지가 된 뒤로 연수를 따라다니는 것은 늘 아빠 몫이다.
사실 연수 아빠는 따뜻한 실내에서 아이폰 보는 것을 제일로 좋아하는 분인데,
엄마를 꼭 닮아 밖에서 몸으로 뛰어노는걸 좋아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추운 날에도 밖에서 고생이 많다.











나중에, 멀리 로비에서 손주와 아들 노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시던 아버님이 차에서 우산을 꺼내다 아들에게 씌워주셨다.
별로 말이 없으신 시아버님이 큰 우산을 펼쳐서 이제는 저도 아버지가 된 아들에게 씌워주시는 모습을 보며
우산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철없는 아내는 미안하기도 하고, 아들 걱정하는 아버님 마음에 뭉클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에는 세식구가 일산에 있는 'YMCA 눈썰매장'에 다녀왔다.
이웃 애기아빠가 YMCA에서 일하시는 덕분에 겨울마다 이 눈썰매장의 무료초대권을 선물받아 참 고맙게 잘 쓴다.
작년에는 연수가 어려서 위에서 내려오는 썰매는 못 타보고 밑에서 아빠가 왔다갔다 끌어주기만 했었다.
올해는... 연수가 눈썰매의 맛을 제대로 알아버렸다.











두 남자, 쌩! 내려온다.
아빠 품에 거의 눕다시피한 연수 폼이 재미있다. 저렇게 누우면 파란 하늘이 보일까.
하늘을 보며 눈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기분... 나도 느껴보고 싶다. 내년 겨울에는 나도 꼭~!
  











토요일인데도 아는 사람만 아는(?) 눈썰매장이라 그런지 북적거리지도 않고 여유로와 참 좋았다.
지난번 서울랜드 눈썰매장의 그 인파를 생각하면... 우. 아찔하다.
연수에게는 너무 크고 높지 않은 이 눈썰매장 정도의 규모가 딱 좋은 것 같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연거푸 7번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단다.
얼른 또 타러 가자며 아빠보다 앞장서서 꼭대기로 가는 흙길을 씩씩하게 걸어올라가기도 했던 모양이다.  












YMCA 수련원 건물 앞뒤의 넓은 공간을 써서 뒷마당에는 길이가 제법 긴 눈썰매장을, 앞마당에는 구릉구릉한 눈언덕을 만들어 놓았다.
앞마당에서 조금 큰 형아들은 눈썰매판을 보드처럼 잡고 타기도 했고, 연수같은 어린 아이들은 혼자 썰매를 타보기도 했다.











요 사진을 찍다가 그만 균형을 잃은 엄마가 미끄러져서 눈위에 쿵 넘어지는 바람에 그 길로 엄마는 퇴장.
햇볕 잘 드는 건물안 매점 탁자에 앉아 창밖으로 두 남자 노는 모습도 구경하다가, 
따뜻한 차도 마시다가 얼마전부터 읽기 시작한 '꼬마 니꼴라'를 펼쳐놓고 마음껏 키득거리는 호사를 누렸다.
나는 눈썰매장이 정말 좋다! 











눈놀이는 정말 신난다.
썰매에 눈을 싣고 끌어도보고...











눈밭 옆에 있는 작은 숲에서 나무가지들도 잔뜩 주워와서 썰매에 담고 끌어봤단다.

 










우리 나무꾼, 사슴썰매가 있는 깊은 숲속 나라에 데려다주고 싶다. 
눈이 많이 오고, 높은 침엽수들이 빽빽한 숲속으로 썰매와 스키를 타고 다니는 핀란드는 내 소녀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여보, 우리 핀란드 가자. (싫어, 추워.... 하겠지. ^^;)











밖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무한 군것질의 세계.
오늘은 회오리 감자다. 불고기맛난다는 무슨 가루는 진짜로 불량식품의 포스가 너무 강해서 빼달라고할껄... 후회했지만 연수는 그 신비로운 맛에 입을 떼지 못했다.  











연수는 정말로 즐겁게 잘 놀았다.
낮잠시간이 훨씬 지난터라 졸립기도 하고, 너무 뛰어다녀 몸에 힘이 다 빠졌으면서도 계속 놀고 싶다고 집에 가지 않겠다고 열심히 주장했다.
남편은 정말 고생했다.
보드복은 부끄럽다며 안입고 오더니 매운 겨울 추위속에 세시간쯤 밖에서 떠느라 무척 추웠을 것이다. 변변한 겨울 털모자도 미리 하나 장만해주지 못해서 귀도 빨갛게 얼었다.

다음 날은 영하14도.
눈썰매장 표는 2장이 남아있었다.
연수와 나는 또 가고 싶다고 졸랐고, 남편은 오늘 또가면 자기는 진짜 병난다며 절대 못간다고 드러누웠다.
집밖에 나가도 놀게 마땅치않은 도시의 겨울, 늘 고만고만하게 단조롭고 심심한 일상을 보내는 마누라와 아들은 주말만큼은 밖에서 신나게 놀고싶어 고단한 아빠를 참 봐주지도 않고 끈덕지게 졸랐다.
그러다 결국 안가기로 한뒤에는 엄마는 삐져서 누워버리고, 낮잠도 안자고 집안을 온통 헤집으며 노는 연수를 보는 것은 한동안 아빠 몫이 되어버렸다.
누워 생각하니 주중에 힘들게 일한 남편도 주말에는 집에 좀 편히 누워 뒹굴뒹굴 TV도 보고 마누라가 해주는 뜨신 밥먹으며 쉬고싶을텐데.. 싶어 미안하기도 하다가, 
집에서도 잘 놀긴 하지만, 어제 눈썰매장에서 봤던 연수의 빛나고 생기넘치는 얼굴을 생각하니 아이에게 그런 즐거움을 또 선물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고..   
어느 한쪽으로 시원하게 마음 정리해서 툴툴 털지 못하고는 끙끙거리는 내가 한심스러워 더 속이 상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집 공기는 영하 14도보다 더 냉랭했을 것이다.

오후 늦게 일어난 내가 연수를 데리고 나오고, 선수교체한 남편은 안방에서 한동안 달게 낮잠을 잤다.
그 사이 내 마음도 좀 가라앉고, 연수는 졸려지고, 아빠는 병나기 일보직전에서 다행히 피로를 조금 풀었다.
저녁식탁 온도는 영하 5도 정도.
연수가 일찍 잠들고 나서 나는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도 서운했던 것들은 얘기했다. 겨우 영상권의 기온이 저녁 우리집을 데워주었다.

겨울이 아직 한참 남았다.
유난히도 추운 올 겨울... 눈도 계속 많이 오려나?
눈이 오면 힘든 분들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나는 함박눈이 곱게, 포근하게 많이 내려주기를 빈다.
그래서 연수가 모처럼 아빠와 함께 눈 속에서 재미나게 노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즐거운 순간들, 기억나지 않더라도 마음안에 남아있는 즐거움의 힘이 살아가는 내내 힘이 된다고 믿는다.
남편에게는 꼭 따뜻한 겨울모자를 사줘야지... 눈이 안들어가는 목긴 신발도. 
아이들이 아주 어린 동안에는 남편의 고생이 심하겠지만.... 나중에 조금만 크면 사내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눈속에서 신나게 뛰어놀 것이다. 언젠가는 아빠의 안락한 주말을 보장해주고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주말을 보내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보, 힘들더라도 부탁해요. 



+ 이렇게 써놓고보니 당신이 싫은데 억지로 눈에서 놀았던 것 같아 좀 억울하기도 하겠다. ^^
사실 당신도 아주 재밌게 눈썰매탔고 연수랑 신나게 놀아 즐거웠는데.. 그지? 다만 연이틀 놀기에는 몸이 넘 힘들었던 것 뿐이데. ㅎㅎ 억울해도 할 수 없지 뭐. 내 블로그잖아. 
당신 몸살 안나게 내가 더 잘 챙겨고 고기 반찬도 많이 해주고 그래야되는데.. 미안해ㅠ.ㅠ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 30. 23:12








소리없이(^^;) 잘 크는 평화가 지난 주로 만 20주를 맞았다.
둘째는 아무래도 긴장이 덜하고, 또 아직 어린 첫째를 보살피는 일에 바빠서 배속에 있을때 신경을 적게 쓰는 것 같다. 
병원에서 정밀초음파가 아닌 일반초음파만, 그것도 이따금씩 보는 것이야 초음파 소리가 아이에게 그리 좋을 것 같지 않고, 또 장애나 기형 검사도 그 결과에 상관없이 내게 찾아온 소중한 생명이니 고맙게 잘 낳아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있어 않하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과는 또 다르게 음식도 훨씬 덜 조심하고, 체조나 운동 같은 것에도 거의 신경을 안쓰고 있으니 긴장감이 덜한 것은 확실히다.  
 
똑순이 때는 임신 사실을 안 첫날부터 장문의 편지를 쓰기 시작해서(절반은 눈물 바람인 편지였다. ^^;;) 거의 매일 일기처럼 쓰던 태담 노트도 평화 것은 뒤늦게 마련해서 겨우 초음파 사진들만 붙이고 편지는 엄마아빠가 한 편씩 밖에 못 썼다. ㅠㅠ
태교동화도 형아 그림책 읽어주고 옛날 얘기 해줄때 마음속으로 '평화야 너도 같이 들어라~'하고 한마디 하는 것이 전부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많이 미안하다. 

그래서 게으른 평화엄마가 모처럼 산모수첩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손가락 꼽아가며 계획한 것이 있었으니... 
평화의 20주 기념파티. ^^

실은 이것도 오랫만에 똑순이 태담노트를 다시 펼쳐 읽어보다가(평화 노트를 만들어놓고, 똑순이때는 무슨 얘길 썼던고.. 하고 다시 뒤적여보니 이건 아기한테 하는 얘기라기 보다는 결혼과 육아를 동시에 준비하게 된 철없는 엄마의 두려움과 설레임들이 참 구구절절하게도 매일같이 적혀있었다--;;;) 똑순이가 10주 됐을때 엄마아빠가 10주 기념파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글이 있는걸보고 뒤늦게 기억이 나서.. 부랴부랴 날짜를 찾아보니 20주가 곧 다 되길래.... 아이구 다행이다~~ 하고 얼른 마음먹은 것이다. (평화야, 너도 파티하고 사진 찍었다, 참고로 형도 10주때만 하고 그뒤엔 안했다.^^;;) 











평화가 만 20주 하고 2일째 되던 일요일 아침(평화가 아들이란 것을 확인한 다음 날이다, 딸이었으면 왕큰 생크림케잌 사왔을래나 평화아부지~ㅎㅎ), 아빠가 동네 빵집에 가서 작은 치즈케잌과 숫자초를 사왔다.
똑순이 10주 파티는 늦은 퇴근길에 아빠가 편의점에서 사온 호빵 2개에 집에 있던 큰 초 하나를 세워놓고 했었는데 3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우리 형편이 많이 나아졌나보다. 축하해주는 사람도 둘에서 셋으로 늘었다. ^^
연수는 촛불을 앞에 두고 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북극행 특급열차 타고 가지요, 희망을 싣고 달려가는 폴라 익스프레스~~" 를 축하노래로 불렀다.   

만20주, 이제 자라온 만큼의 날들을 더 살아내고나면 평화는 세상에 나온다. 
지금도 늘 같이 있고, 우리 가족이 나누는 일상의 대화속에 늘 평화 이야기가 함께 하고 있지만 
이제 세상에 태어나고나면 고 작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울고 웃으며 우리 삶의 매순간을 온통 사로잡아 버릴 것이다.
꼬물거리는 작은 손과 발을 잡아볼 일이 꿈만 같다.  

긴장이 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나 설레임까지 덜한 것은 아니다. 
평화는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은 나는 겪어보지 않은 진통의 고통이 벌써부터 두렵기도 하고, 수술의 무서움과 아픔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혼자 고개를 저어보기도 한다.   
모유수유의 힘든 첫 날들을 어찌 다시 살아내나...그리고 연수가 어린 동생이라는 새로운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도 자주 걱정한다. 

우리가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오랫동안 셋으로 지내온 우리 식구가 새로운 가족을 맞고, 키우고, 함께 성장하는 일.
이제는 평화까지 우리 넷이 잘 해나갈 수 있기를.. 온 힘을 다해 서로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기를..  
평화의 20주를 맞으며 마음 속으로 가만가만 빌어 보았다.  

평화야, 우리 곁에 와줘서 고맙다.
무럭무럭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 배속에서 보낼 앞으로의 날들도 행복하게 잘 지내다가 푸른 잎과 붉은 꽃들이 반짝일 6월에 만나자.  
사랑한다, 평화야.











* 임신의 반환점을 돌며 그간 긴장감 떨어져있던 엄마, 새롭게 맘을 다잡고 결심했다.
그동안 가끔씩 입맛 다시며 먹어온 커피, 라면, 맥주를 남은 20주간은 먹지 않겠음..ㅜㅜ
아침점심저녁으로 5분정도는 시간을 내서 산모체조 두세가지를 하겠음.
3월이 오면 주말에는 꼭 임산부수영이나 요가같은 운동프로그램을 하며 평화와 나만의 시간을 갖겠음.

특히 2번. 이틀은 잘 지켰으나 삼일째인 오늘이 관건임. 흑. 
평화야, 엄마만 믿어. 아니.. 엄마에게 힘 좀 주라. 우리 둘 다 화이팅하자.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 29. 01:21


밤늦게 퇴근한 남편이 공부방에 앉아 심각하게 컴퓨터화면을 보고있는 내게 물었다.
"뭐 봐?"
"응... 아이 발달. 자녀 대화...그런 거." 
후후 웃더니 한 마디한다.
"전공을 바꾸시는게..."

나도 따라 웃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오늘 밤에도 연수랑 한 판 했단 말이야....."
"왜 또? 오늘은 무슨 일이야?"
기운없는 내 목소리에 남편은 재미있다는 듯이 물었다.

휴.. 한숨이 나온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말하자니 목이 컬컬하다. 통닭 한마리를 시켜놓고 우선 블로그부터 쓴다.







+ 연수, 큰일 본다.




연수가 두 돌쯤 됐을때 오랫만에 만난 대학후배가 연수를 보며 물었다.
"언니 아기는 성격이 어때요?"
"아... 음.. 성격? 글쎄... 좀 예민해... 고집도 센 것 같구.."

24개월 즈음의 아기를 키우며 '성격'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발달이나 건강, 이유식이나 모유수유같은 '아기 돌보기'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공부해가며 정신없이 배워가는 중이었지만 '성격'이라는 질문을 받으니 좀 깜깜한 느낌이었다.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아이를 생각하기에는 나나 아이나 너무 어렸던 것일까. 
그때까지 나에게는 아기가 잘 먹고, 잘 싸면서 그저 건강하게 커주는게 고맙고, 옹알이하고 걸음마하며 잘 노는 일이 제일로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두 돌을 지난 후로는 아이의 성격이나 태도, 개성이나 관심사 같은 것이 조금씩 더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관심이 갔다.
만 31개월 반에 접어든 연수는 일찌기 24개월에 판단한대로(다소 얼떨떨하게 파악한 것이긴 했지만) 예민하고, 고집이 세다.
이대로가면 '까도남(까칠한 도시남자)'이 될 것만 같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힘들다고, 사내아이 둘 키우는 선배언니는 얘기했었다.
잠도 쉽게 못들고, 잘 깨고,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에도 쉽게 토라지고 상처받고,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나..
언니는 연수를 볼 때마다 '우리 큰아들을 보는 것 같네~'하며 걱정스러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하는 눈으로 나를 보곤 했다.
 
사실 아이가 예민하고 까칠한 것이 아이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린 나이에도 조금 세상살기가 피곤하고 제 뜻에 안맞아 속상한 경우가 있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 예민하고 까칠한 고집쟁이의 투정과 요구를 다 받아주며 돌봐야하는 사람의 피곤과 스트레스에 비하랴...   
 







+ 엄마가 잠시 방치(방심?)하는 사이, 옷을 입은채로 욕조에 들어가 따뜻한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논다.ㅜㅜ




오늘 저녁의 사건은 '미안해'에서 시작되었다.
연수는 어릴 때부터 '이거 해봐라' 하는건 잘 하지 않았다. 
제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말은 끝도없이 쫑알거리고 어디서 한번만 들은 말도 금방 외워 잘 써먹는 녀석이 '이 말 해봐라'하는건 절대 하지 않았다. 
자주 얼굴보는 이웃 어른들께 '안녕하세요~' 인사하자고 아무리 말해도 하지 않아 민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주 어릴때는 낯가림도 참 심했다. 엄마가 아니면 잘 웃어주지도 않고, 엄마 품이 아니면 안기지도 업히지도 않으려고 버둥거렸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한테라도 잘 웃고, 누구 품에도 잘 안기는 아기들을 보면 속으로 무척 부러웠다. 
커서는 낯을 가리는 것은 아닌데, 속으로는 저도 반가우면서도 "인사해야지~?"하면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최근들어 남편과 나는 연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써봤다. 
제 몸으로 엄마아빠를 세게 들이받고, 어깨에 올라타고, 매달리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연수 덕에 엄마아빠의 안경이 망가진 적도 여러 번이요, 때로는 야구방망이나 다른 아픈 무엇으로 엄마아빠를 쿡쿡 찌르고 때리며 장난치는 경우도 있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을 때는 꼭 '미안하다'고 말해야하는 거라고 여러번 말했다. 
조용조용 설득도 하고, 야단을 치거나, 엄마아빠가 토라져서 놀아주지 않는 등 갖은 방법을 써서 '미안해'라는 말을 하게 해보려 했지만..... 절대 하지 않았다. 
저보다 어린 낯선 아기를 만나면 툭툭 떄리기도 하고, 밀쳐서 넘어뜨리는 일도 많아 그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해야한다고 일러보지만 절대 하는 법이 없어서 우리 부부가 그 아이 부모에게 더 미안해지기도 하고, '얘가 왜 이럴까' 근심도 많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엄마랑 놀다가 엄마 귀 쪽으로 박치기를 했는데, 슬쩍 했지만 안경테를 건드리는 바람에 귀가 몹시 아팠다. 
잠잘 시간이 거의 다 된때라 내 피로도도 제일 높아져있었다.
몸의 아픔이 그만 마음의 짜증으로 화르륵~ 점화해버렸다.
   
"연수야, 엄마 너무 아프다..... 박치기 좀 살살 해..! 글고 엄마 너무 아프니까 얼른 '엄마 미안해' 하고 말해줘-."    
연수는 딴청을 피웠다.
제 장난감들을 뒤적이며 못 들은 척하더니 이내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 나는 연수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은채 다시 내 얘기를 했다. 
"연수가 '미안해~'하고 사과하지 않으니까 엄마 속상한게 안 풀리잖아... 엄마 화나서 너랑 얘기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겠어.
얼른 '미안해'하고 사과해. 그래야 엄마가 연수랑 놀 마음이 생기지."
연수의 대답은 "싫어, 안해!"였다.
그리고는 잠시 있다 또 내게 다른 질문을 하고, 얘기를 걸고, 놀자고 졸랐다.
그러면 나는 또 "먼저 '미안해'부터 해... 안그럼 엄마는 마음 아파서 못 놀아!" 하고 쌀쌀맞게 대꾸하고 돌아서서 설겆이며 집안정리같은 내 일만 했다.

이런 상태가 한 시간쯤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 연수는 "에이~ 그러지 마~"하고 한 마디 했을뿐 '미안하다'는 말은 계속해서 싫다고 거부했고, 나는 나대로 야단도 쳤다가, 좀 밝은 분위기에서 말하면 혹시 잘 될까 싶어 다정한 말투로 "미안하다고 한번만 말해줘, 응? 응?"하고 조르고 구슬러도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계속 제자리....
나중에는 둘 다 너무 지쳐서 연수는 "엄마, 자자, 가서 코~ 자자.."고 졸랐고,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 "여기는 북극가는 기차야, 연수는 기관사야!" 동물인형 승객들을 줄룰이 태워놓고, 기관사 모자를 쓰기위해 애쓰는 중.



평소에 우리는 죽이 아주 잘 맞는 편이다. 
끝도 없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특히 제가 관심있는 것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묻는 연수에게 나는 조금씩 표현이나 내용을 바꿔가며 성실하게 대답해주고, 이런저런 놀이에도 죽을 잘 맞춰가며 논다.
밖에 나가도 아는 얼굴 구경하기 힘든 이 겨울, 거의 24시간을 둘이서만 얼굴보고 둘이서만 얘기하면서도 그럭저럭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잘 보내고, 낮잠 밤잠 다 챙겨가며 잘 자고 밥도 잘 먹을 수 있는 나름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래서 둘이 마음을 잘 맞추는게 무척 중요한데... 오늘 밤처럼 어느 한쪽이 마음이 상해서(마음이 상하는건 주로 엄마다, 게다가 나는 뒤끝도 길다-.-;) 티격태격하거나, 짜증이 나서 징징거리면(이건 주로 연수ㅜㅜ, 대신 연수는 금방 풀고 잊어버리고는 헤헤한다) 그야말로 둘 다 마음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다.
 
결국 오늘밤 연수는 잠자리에서 울다가 체념하고 혼자 스스륵 잠이 들었다.
여전히 마음이 안풀린 엄마가 팔베게도 안해주고 겨드랑이도 못 만지게 하자 연수는 "엄마, 팔베게 하자~~!"며 잠시 떼를 쓰고 울었다. 내가 좀 너무 하는가 싶은 반성이 슬며시 들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한번 그 말을 하게 해보자 싶어 한번 더 최후의 시도를 해보았다.
"연수가 '미안해~'하고 말해주면 엄마가 팔베게 해줄꺼야..." 
"싫어, 싫어, 싫어어~~~!" 
그러더니 이 녀석 울음을 뚝 그치고 혼자 이불을 심하게 부시럭거린다. 
뭘하는가 싶어 살짝 눈을 뜨고 지켜보니 글쎄 제 베게를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똑바로 누워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려 덮고는 잠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누워있던 연수는 이내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아! 그 순간의 배신감이란..!!
엄마 팔을 베거나 겨드랑이를 만지지 않으면 결코 잠이 들지 못할처럼 그토록 잠잘때마다 엄마를 제 옆에 꼭 붙여놓고 힘들게 하더니... 제가 싫은 것은 죽어도(?) 안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하나로 글쎄 혼자서도 저렇게 쉽게 잘 잔다.
아... 연수가 잠들기 직전에 나도 얼핏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그래, 타협하거나 굴복하기 싫다면.. 자존심을 지키려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야. 따뜻한 엄마 품을 포기하더라도 네 고집을 지키고 싶은거냐..'
무슨 사춘기 아이도 아니고 고작 31개월된 네살배기를 키우면서 이렇게 자못 비장한 생각까지 해야하다니...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었다. 








+ 드디어 모자 쓰고, 기관차 운전중. 아주 큰 핸들을 돌린다. 연수야, 버스운전하는거 같은데? ^^



연수는 평소보다 더 잘 잔다.
오늘밤에는 엄마를 찾지 않기로 결심했는지 자다 깨서 "엄마 어디 있지?"하고 찾지도 않는다.
나는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밀쳐두었던 에다 르샨의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 때>을 펼쳤다. 육아와 자녀대화에 대한 좋은 글이 많은 블로그 '아이의 마음을 여는 행복한 자녀대화법' 도 찾아갔다.  

그 글들을 읽으며 우선 나는 '미칠 것 같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 내가 왜 그리 화가 났었는지, 무엇을 걱정하고 있었는지.. 천천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보다는 내가 더 문제였던 것 같았다.
본래 문제가 되었던 일(연수가 박치기해 나를 아프게 한 일)보다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더 큰 문제처럼 생각하면서 그 말을 하게 해보려고 협박아닌 협박을 했던 것이 아프게 반성이 되었다. 
아이가 내 뜻을 잘 따라주지 않으면 화가 난다. 더구나 내가 분명히 '옳은 말'을 하고 있는데도 거부하고 반항하면 그것이 나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거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마치 '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라도 된듯, 감정적으로 거칠게 아이를 대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연수는 아직 만 세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다. 
그런 아이가 옳고그름에 대해 얼마나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저 엄마가 무서운 분위기로 나무라는 것이 싫고, 그러니 그 순간에는 엄마가 강요하는 그 말이 너무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의 연수 고집은 황소고집보다 더 세진다.
엄하면서도 따뜻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이렇게 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라고 말해주고, '앞으로는 더 조심할 수 있을거야, 너는 멋진 아이로 잘 크고 있으니까' 하고 믿어주고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수가 꼭 기억해야할 것들을 한번더 말해주었다는 정도로 만족하고, 언젠가는 그것이 이 아이의 입과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면, 그래서 당장에 사생결단하는 태도로 아이와 감정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해서 문제가 됐던 상황을 빨리 털어버리고 이후 시간을 다시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면 우리 둘 모두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여는 행복한 자녀대화법'블로그에서 '아이의 욕심, 그건 당연해'란 글을 읽다가 뒤통수를 한대 맞은듯 깜짝 놀란 구절이 있었다.
대체로 사회운동의 경험이 있거나 도덕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들일수록 아이에게 너무 일찍부터 그런 가치들을 강요해서 오히려 아이들의 심리적 반항이나 거부감을 키우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꼭 내가 아주 도덕적인 사람이라서만은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늘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싶어하고, 행여라도 나쁜 인상을 줄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나는 너무 예의를 지키려고 애쓰거나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쩌면 나는 내 아이에게도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예의바르고, 배려깊다고 평가받고... 그래서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
나는 내 아이가 남보다 착하지는 못할망정 '못되게' 구는 것을 보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곤했다.

게다가 나 자신도 물질적 욕심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면서도 나는 연수가 아주 어릴때부터 친구와 장난감을 잘 나눠서 노는 아이가 되기를 바랬다. 때로 큰 아이들이나 또래 친구들이 연수가 가지고 놀던 것을 뺏어가서 연수가 돌려달라고 울어도 그 놀이감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우린 다른걸 가지고 놀자'며 연수의 관심을 얼른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그렇게 해서 '연수는 참 욕심이 없는 아이'라는 평가를 듣게 되면 나는 내심 무척 흐뭇해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연수 입장에서는 제 정당한 요구를 엄마가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었을지도...
좀 더 큰 뒤에 연수가 자기 놀이감을 절대 친구와 나누지 않으려하고, 어린 동생들이 집에 놀러오면 적대감부터 드러내게된 것은 정상적인 발달 과정상 자기 것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더 어렸을때부터 내가 연수의 욕구를 잘 인정해주지 않고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뒤늦은 걱정도 든다. 

만18개월쯤부터 만3세까지는 아이들에게 '자의식'이 생겨나는 시기이기도 하고, 자존감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한다.
이 시절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한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고, 자신의 그런 바램을 충분히 인정받는 것이 이후에 아이가 다른 사람도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는 안정감있는 아이로 자라는데 무척 중요하단다.
그래서 아이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려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부터 허락해야 한다고..
감정과 느낌에 대해서는 수용하되 행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무서운 것과는 다르다) 잘 설명하고, 얘기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만 3살이라고 꼭 한계를 그을 수도 없을 것같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고, 저마다 독특한 성격과 개성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예민하고 고집도 센 우리 아이는 얼마만큼의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할까..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 따뜻한 사랑으로 지켜봐주는 것, 그리고 가르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부모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 그런 것이 제일 중요하고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이 참 어렵다. 
때때로 내 어린 시절, 내 부모님이 나에게 남긴 것들, 그 중에서 부정적인 것들과 대면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래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내일 내 아이가 만나게 될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의 행복을 위해서.. 

밤이 깊었다. 통닭을 먹으며 열심히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남편도 공감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속은 더부룩하지만... 내일부터는 연수와 조금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같다.
내 귀염둥이,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 13. 00:24









연수가 많이 아팠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본격적으로 기침과 콧물 감기를 앓기 시작해서 꼬박 일주일을 앓았다.
아직도 이따금 기침을 하고 쿨쩍쿨쩍 콧물 소리도 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일요일 저녁부터는 제 장난감들에도 다시 관심을 보이고, 평소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놀기도 했지만 여전히 밥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오래 잤다.
어제부턴 밥도 제법 많이 먹고, 잠도 낮잠 1~2시간 밤잠 9~10시간의 평소 리듬으로 돌아왔다. 특히 아픈 동안에는 색이 진한 노란 오줌을 하루 2-3번밖에 안눴는데 오늘부터는 색깔없는 맑은 오줌을 자주 자주 눈다. 
휴... 이제는 그 심하던 감기가 거진 다 지나갔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연수는 그동안 참 오래 아프지 않았다. 
감기 기운이 좀 있어도 하루이틀 콧물 흘리고 기침 좀 하다가 금방 다시 건강해지곤 했다. 
병원도, 약도 그래서 연수에게는 먼 일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늘 고마워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우리 연수는 튼튼하니까..'하고 슬쩍 방심했던 것일까..
지난해 연말에는 많이 바빴다. 
12월만 해도 생각해보면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은 주말이 거의 한주도 없었다. 
춘천으로 시댁어른 문병도 다녀왔고, 친정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가느라 강릉 친정집에도 내려갔다가 한주 쉬고 그다음 주말에는 서울로 돌아왔다. 신정 연휴에는 기차를 타고 시댁 친지들을 만나러 구미에도 다녀왔다. 
12월에는 마침 이사도 결정해야해서 주말에 지방에 다녀오는 길마다 멀리 있는 새집에 들러 집안팎을 둘러보기도 했다.
임신 5개월로 접어든 내게도 쉬운 일정은 아니었지만 이제 막 네살이 된, 31개월 연수에게는 체력이 떨어질만한 힘든 일정이었던 모양이다. 오고가는 일 자체보다는 낮잠같은 일상의 패턴이 자주 깨지고, 먹는 것도 오락가락하고.. 그런 것들이 어린 몸에 무리가 되었겠지... 

처음 몸이 좀 이상한 것 같았던 지난 주 화요일, 오전에 동네에 내려가 장도 보고 놀이터에서도 잠깐 놀고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연수는 씩씩해보였다. 그런데 그 날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며 너무 졸려하길래 안방에 데려가 눕히자 마자 혼자 잠이 들었다.  이불덮고 누워 옛날 얘기도 두어편 듣고 엄마 겨드랑이를 몇번씩 조물락거려도 쉽게 들지 않던 낮잠을 혼자 눈 몇번 껌뻑껌뻑하더니 스스르 잠들어버리는 아이를 보고 '얘가 많이 피곤하구나...' 생각은 했지만 이토록 많이 아플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수요일부터 콧물기침이 시작된 연수는 거의 하루종일 잤다. 
다행히 목요일에는 조금 덜해진듯이 보였는데 그날에는 내가 아팠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싱크대앞에 나가 서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더니 속이 미슥거렸다. 입덧을 다시 하나.. 싶었는데, 배가 아프고 구토감이 들더니 그만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으실으실 떨려왔다. 몸살이었다.
아침밥을 겨우 차려놓고 들어와 누우면서 마침 전날 과음하고 들어와 늦잠을 자고 있던 신랑을 깨웠다. 
"나.. 너무 아프니 당신이 잠깐만 연수 좀 봐..." 하고 누워서 들으니 남편은 거실에서 연수에게 죽을 먹인다, 회사에 전화해 월차를 낸다 하며 분주했다. 
오전에 잠시 쉬고 내가 조금 기운을 차려서 점심을 먹으려고 일어났더니 남편은 "다행이네... 근데 이제는 내가 아프다"하면서 나와 교대를 하고 가서 누웠다. 오후에는 남편까지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다행히 조금 놀던 연수도 이내 졸려해서 세 식구가 이른 점심을 먹고는 모두 드러누워 끙끙 앓으며 오후 내내 오래오래 잤다.

내가 아프면 온식구 먹을 일이 제일 걱정이다. 부모님들이 모두 지방에 계신 우리는 아프다고 쉽게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런데 뜻밖에 구원의 손길이 뻗어왔다. 목요일 오전에 이웃의 쌍둥이 언니가 마침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며칠전 동네에서 만났을때 '같이 마트 한번 가자'고 약속했던 것을 오늘 갈까하고 묻는 연락이었다. 연수도 나도 아프다고 했더니 언니는 꽁꽁 얼린 사골국물과 조기, 빵과 피자를 싸가지고 찾아왔다. 
아픈 몸으로 밥해먹기 힘들것 같아 집에 있는것 좀 싸왔다는 언니 얘기에 콧날이 시큰했다. 이렇게 살가운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저녁에 일어나 뜨끈한 사골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며 우리 세식구가 큰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동안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던 연수도 사골국물에 말은 밥은 제법 먹었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하루 앓고 일어났다. 다음날 남편은 출근을 했고, 나는 힘을 내서 연수 죽을 쑤고 아픈 아이를 돌봤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금요일, 토요일.. 주말이 흘러갔다.











아픈 동안 연수는 참 많이 잤다.
마치 잠을 못자 아프기라도 한 아이처럼 거의 하루 종일 잔 날도 있고, 깨어있는 동안에도 최소한의 물과 음식만 먹고 엄마에게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졸라서 몇 권 듣고 나면 또 졸려했다. 
"엄마, 자자.." 
지난 일주일동안 그전에는 잘 들을 수 없던 저 말을 연수에게서 참 많이 들었다.

연수가 앓는 동안 나는 졸려하는 아이를 재워주는 것 말고 다른 조치는 거의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집안의 습도를 좀 더 높히고, 물 종류를 계속 먹게 하려고 애쓰고 손발을 많이 주물러줬을 뿐 병원이나 약은 찾지 않았다.  
연수의 기침은 제법 심했고 콧물도 많이 났다. 열은 높지 않았지만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기운없는 아이를 싸안고 추운날 병원까지 다녀오며 가뜩이나 없는 힘을 더 빼놓고 싶지 않았다.
잘 쉬고 충분히 앓고 나면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기침이나 콧물은 몸이 스스로 나쁜 것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이니 방해하지 말아야한다... 열도 나쁜 병균과 싸우느라 생기는 것이니 40도가 넘는 고열이 아닌 이상 일부러 떨어뜨리려고 애쓰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불쑥불쑥 불안해하고 약물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나를 진정시키는 것이 힘들었다. 
  
고맙게도 연수는 감기와 싸우는 길고 힘든 시간을 오롯이 제 힘만으로 견뎌냈다.
어찌보면 아픔에 순응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계속해서 졸려했고, 오래오래 잤다. 죽이나 미음을 조금씩 먹고 물과 우유로 목을 축여가며 제 몸안에 들어와 저를 쉬라고 하는 병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늘 분주하고, 한시도 몸을 가만 두지 않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놀던 네살배기의 몸이 그토록 오래 조용히 쉬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끊이지 않는 기침과 콧물만이 아이의 몸이 긴 시간동안 계속해서 싸우고 있음을, 제 몸안에 고인 나쁜 것들을 밖으로 끝없이 내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거기에만 집중하느라고 다른 활동들은 일체 접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흘을 그렇게 쉬던 연수는 일요일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콧물기침도 조금은 덜해졌고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픈 아이에게는 잠이 약이구나.... 이번 감기를 겪으며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약이 있다면 엄마일 것이다. 
예전에 모유수유를 할때는 내 몸에서 아이를 키우는 밥이 나온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는데, 이번에 아프면서는 내 몸이 아이의 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아픈 동안 연수는 나와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한 시라도 제 몸이 엄마와 닿아있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듯이 엄마에게 매달렸다. 
그토록 오래 자는 동안에도 수시로 내가 제 옆에 있는지 확인했다. 내 팔을 베고 누워야만 잠이 들었고, 자다가도 자주 손을 더듬어 엄마 겨드랑이를 만지고 다시 잠이 들었다. 덕분에 나도 참 오래오래 누워있었다. 팔에는 쥐가 났다 풀렸다 하고 나중에는 허리도 아프고, 잠도 안오고 일어나고 싶어 고역이었다. 
기운이 없어 다른 놀이를 할 수 없는 연수는 꺠어있는 동안에는 내내 책을 찾았다. 엄마와 살을 딱 붙이고 앉아 그림책을 수도없이 듣고 또 보았다. 책이 딱히 재미있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엄마를 제 옆에 앉혀놓고, 엄마 목소리를 계속 들으며 쉬고 싶어 그러는 것 같았다. 주말에 잠깐씩 나와 교대로 책을 읽어주던 남편은 나중에는 연수가 또 책을 잡으려고하면 겁부터 냈다. 책 읽어주는 일도 이게 참 쉽지 않은 것이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중에 음식을 준비하고 병원을 데리고 다니거나 하는 다른 일들도 엄마를 힘들게 하겠지만, 제일로 힘든 것은 끝없이 엄마를 찾는 아이 옆에 계속 붙어있는 일이 아닐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다가도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 아이의 약... 그 옆에 붙어있어 주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마음을 추스러야 했다. 
하지만 순간순간 내 몸이 힘들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짜증도 냈다. 
어느 아침, 너무 오래 누워자서 더는 눕기가 싫었던지 엄마가 소파에 앉은채로 저도 세워안고 재워달라고 떼를 쓰는 연수에게 그만 화가 나서 "엄마도 힘들어 더는 못 하겠다"고 왈칵 화를 내고 혼자 방에 들어와 누워버렸다. 엄마도 고단해서 눕고 싶은데 앉아 자고싶은 제 뜻만 따르라고 요구하는 철없는 어린 아들이 어찌나 밉고 야속하던지.. 나도 아직 철이 없다.  다행히 그 날은 남편이 집에 있어 우는 연수를 달래고 만화영화 한편을 틀어놓고 나를 잠시 쉬게 해주었다.   
 









연수가 앓는 동안 시간도 없고 굳이 알려서 걱정하시게 하지 말자는 생각에 나는 어머니들께 전화를 하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서 얼굴도 못 보고 소식만 듣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서는 걱정도 더 많이 하시고, 특히 병원에 얼른 가서 주사나 약을 먹어 얼른 병을 떨구라고 재촉하실 게 분명했다. 
친정엄마는 자주 전화하던 내게서 전화가 없자 토요일에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는 사위와 통화를 하고 병원에 어서 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꼭 그때문은 아니지만 우리는 일요일 오전에 가까운 소아과병원이 마침 진료를 하기에 연수를 유모차에 태워 잠깐 다녀왔다. 5일째 계속되는 기침이 혹시 폐렴이 되진 않을까... 기침소리나 연수 컨디션을 봐서는 기우일것 같은 걱정이었지만 전문가인 의사의 진단을 한번 받아보면 더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마침 연수도 제법 기운을 차렸으니 따뜻하게 입혀서 바깥 공기를 한번 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진찰결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감기약 처방전을 받았지만 약을 짓진 않았다. 안심하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고 고마웠다.
친정엄마는 약을 짓지 않았다고 또 걱정을 하셨다. 연수처럼 잘 안아픈(그래서 약도 거의 안먹어본) 아이는 약 한두봉지만 먹으면 뚝딱 나을텐데 괜한 고집으로 아이를 오래 힘들게 한다며 나와 외손주를 딱해하셨다.     
엄마의 꾸지람과 걱정을 들으면서도 나는 "제 힘으로 나아야 다시 감기에 잘 안걸리고, 면역력도 강해진다. 약을 먹으면 병이 더 오래가고 자주 걸린다"고만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연수가 10개월쯤 됐을때 연수를 아주 오래 앓게 한 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들은 타고난 면역력으로 생후 6개월까지는 거의 아프지 않는다. 그 이후에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감기나 이런저런 바이러스성 질환들을 앓기 시작한다는데 연수도 그랬다. 10개월쯤에 시작된 감기는 콧물, 기침, 열을 번갈아가며 근 두세달을 계속 됐다. 중간에 조금 나아지면 일주일 정도 병원과 약을 쉬다가, 다시 조금 쿨쩍거리면 소아과를 찾았다. 이틀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는 동안 우리집에는 항생제와 물약먹는 작은 약병이 수도없이 쌓여갔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나 돌잔치까지 하고나서 이제는 한의원에 한번 가보자 하며 처녀적에 내가 다니던 한의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한약 감기약을 먹여보라 하시고는, 계속해서 낫지 않으면 알레르기나 비염, 천식을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어린 아이에게 병원약을 두달 넘도록 계속 해서 먹이면서도 아무 두려움이나 경각심이 없었던 내가 무섭게 느껴졌다. 
몸안의 좋은 균까지도 모두 죽이는 항생제와 병원약에 내성이 생겨 자꾸만 강해지는 바이러스 같은 얘기들이 그제사 내 일로 느껴졌다.    

한약 감기약을 먹은후에도 연수의 증상이 완전히 좋아지진 않았지만 나는 그때부터 병원도, 약도 끊었다.
자연히 두니 질질 끌었던 그 긴 감기도 자연히 흐지부지 사라졌다. 여름과 함께 걸음마도 시작해서 매일같이 밖에 나가 신나게 놀기바쁜 연수는 더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같은 책과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같은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조금만 걱정되면 들춰보던 '삐뽀삐뽀 소아과'와 같은 책에서도 내가 보고싶은 부분들만 확대해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과 두려움속에 무조건 병원과 약에만 의지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아이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고, 면역력을 키워주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한두번 연수가 감기에 걸린 적은 있었지만 보통 이삼일 앓고 나면 금새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래서 근 1년 반동안 병원을 찾아보질 않았다. 

일주일이나 앓으면서 나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우리 연수는 튼튼해서 여간해선 안 아프다'고 은근히 자랑스러워도 하고, 아이의 건강을 자신하기도 했던 내 마음에 이번 일은 크게 경종을 울렸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앞으로는 더 많이 아픈 날도 있을 것이다. 
클수록 집밖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질테니 새롭고 강한 바이러스들과 맞닦뜨리는 기회도 잦아질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이 아이 곁을 지켜주어야 할까. 어떤 조치들이 필요할까.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이란 사이트는 이번에 회원가입을 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항생제와 양약에 의존하지 않는 자연의학 치료법들이 여럿 소개되어 있었다. 부모들이 함께 공부하고, 공유하는 이야기들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번에는 제일 쉬운 '각탕'만 남편과 내가 해보았는데 기분도 개운하고, 내 불면증도 덜해져서 앞으로 자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풍욕과 냉온욕 같은 것은 살짝 번거롭기도 하고, 찬물이 무섭기도 해서 좋다는건 알면서도 잘 안해왔는데 이것도 조금씩 시도해봐야겠다. 평화가 태어나기 전부터 익혀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 좀더 능숙하게 아이들의 건강을 살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겨자찜질이나 겨자탕같은 방법들도 기침 감기에 좋다고하는데 이번에는 연수에게 해주질 못했다. 다음에는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가 약보고 대신 싸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몸의 힘을 북돋워서 병을 잘 이겨낼 수 있게, 그래서 병을 앓고난 후에는 몸은 비록 지쳤지만 저 깊은 곳에는 더 든든한 기억과 면역력이 남겨지도록 도와줘야지... 


+


새해의 첫날들이 감기와 함께 정신없이 지나갔다. 
네 살을 시작하며 연수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룬 셈이다. 
제 몸안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루는 동안 연수는 아마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도 함께 그 과정을 겪으며 나름의 배움을 얻었다. 틈틈이 찾아보고 미리 공부해야할 더많은 숙제도 얻었지만. ^^
새해 첫 날들의 이 배움이 우리의 한 해를 더 단단하고 따뜻한 것으로 만들어주기를.. 
 
그 와중에도 집주인이 연말에 전세를 내놓은 우리집을 보러 끝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왔다.
눈오고 추운 날에도 어김없이 하루 한 두사람은 꼭 집을 보고가는 것을 보면서 말로만듣던 전세대란이 실감났다.
나까지 앓고 있을때는 집안이 정말 폭탄맞은 것처럼 어지러웠는데 미처 치울 새도 없이 집보러온 사람들을 맞을수밖에 없어 부끄럽고 힘들었다.
연수가 한창 아프던 금요일 저녁에 드디어 새로 들어올 사람이 집주인과 계약을 했고, 이사 날짜도 결정되었다. 2월 27일.
우리는 새봄을 새로운 집에서 맞게 되었다.
우리의 신혼집이자 연수가 태어나 처음 자란 집을 떠나게 되는 섭섭함과 애틋함,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 같은 것들은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연수가 아픈 것이 얼른 낫기만을 바라고, 굳이 이사에 대해 생각하자면 이사갈 집이 새집이라 행여 가족들의 건강이 더 위험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오늘 연수는 많이 씩씩했다. 엄마와 동네에 장보러 내려갔다 오기도 했다. 
추웠지만 바깥 공기는 맑고 상쾌했다.  
저녁에는 아픈 후의 아이라는 것을 깜빡하고 엄마가 저녁밥을 너무 많이 먹이는 바람에 자기 전에 기침도 심해지고, 먹은 것을 조금 토하기도 했다. 조심 또 조심... 잘 먹는다고 너무 많이 먹이지 말아야지... 좋아한다고 너무 덥썩덥썩 다 먹이지 말아야지.... 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찍부터 곤히 자는 연수야, 내일은 우리 조금 더 씩씩해지자.
그래서 다시 네 몸이 긴 휴식을 청할 때까지 우리 더 신나게 재미있게 많이 놀자.
사랑한다, 연수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