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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02 천기저귀를 쓴다 18
  2. 2012.01.21 뚱구 빵구 내 사랑 10
  3. 2012.01.13 두 아이와 겨울나기 11
  4. 2011.12.09 설국의 새끼곰 8
  5. 2011.12.08 눈오는 날 2
  6. 2011.12.02 사랑하는 엄마에게 6
  7. 2011.11.10 잠깐 18
  8. 2011.10.31 우리들의 가을 소풍 16
  9. 2011.10.15 함께 여는 새날 12
  10. 2011.10.03 우리들의 백일 15
umma! 자란다2012. 2. 2. 23:12








천기저귀를 쓴다.

연수 낳기 전에 출산용품 준비하면서 나는 자신만만하게 '천기저귀 쓸꺼야!'했다. 친정엄마는 '정말 쓸수 있겠냐' 하시면서도 딸의 큰소리를 믿고 천기저귀를 20장이나 사주셨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낳고 나니 모유수유하는 거며 잠재우기가 어찌나 힘든지, 내 입에 밥 한술 떠넣기도 쉽지 않아서 그만 천기저귀는 여름속싸개&목욕수건으로만 겨우 몇장 꺼내놓고 살았다.
그러다 연수가 7, 8개월쯤 됐을때 그제야 좀 정신이 들어 천기저귀를 쓰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니 그럭저럭 할만해서  두돌지나 기저귀 뗄 때까지 종이기저귀는 외출용으로만 쓰고 주로 천기저귀를 쓰며 지냈다.

연호는 연수때 써본 경험이 있어 신생아 시절부터 천기저귀를 쓸 수 있었다.
연수 때보다 훨씬 바빠서 기저귀 빨래는 더 밀리지만..^^;;

천기저귀 쓰기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얼마전 이웃 아기엄마집에 놀러갔다가 무심코 연호 기저귀를 가는데 천기저귀인걸 보더니 그 엄마가 '딴 세상 사람같다'고 해서 그 말에 내가 더 놀랐다.
해보면 할만하고, 또 여러모로 이로움이 많은 일인데 너무 어려운 일로만 생각되는것 같아 블로그에 한번 써야지.. 하면서 돌아왔다. 내가 예전에 솔이엄마(도시자연육아) 블로그 글을 보고 천기저귀 쓸 엄두를 냈던 것처럼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음.. 못할건 아니네'하면서 써보시면 좋겠다. 










연수 낳고서 처음에 천기저귀 쓰기를 겁냈던 이유중에 하나가 안그래도 예민한 아이가 천기저귀가 젖으면 더 자주 잠을 깰까봐 겁이 나서였다. 그땐 정말 연수가 몇 분 더 자주느냐가 내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던 시절이었다.ㅜㅜ
그런데 지금 연호 키우면서 봐도 그렇고, 연수때 막상 천기저귀를 쓰고보니 천기저귀라서 특별히 아이가 더 자주 잠을 깨는건 아닌 것 같다. 깨어있을 떄야 기저귀가 젖으면 바로 알려주지만 졸려서 잠이 든 뒤에는 사실 잠을 깨는데 기저귀가 관건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천기저귀는 좀 젖었더라도 발진이 쉽게 일어나진 않는다. 아기띠 같은 것으로 오랜 시간 눌렸을때는 좀 빨개지지만 그건 종이기저귀도 마찬가지.. 

그담으로 겁났던건 빨래.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말려둔 기저귀가 다 떨어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장마철에는 진짜 약간 긴장된다.ㅎㅎ) 

연수 때는 스무장으로도 그럭저럭 잘 썼다. 
천기저귀는 아주 잘 마르기 때문에(요즘 많이 쓴다는 땅콩천기저귀는 마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지만) 
하루에 한번씩만 세탁기를 돌리면 금새 말라서 바로 개서 쓸 수 있다. 
연호는 천기저귀를 장만만 해놓았다가 쓰지 못했던 친척들께 더 받아서 40장을 가지고 쓰니 꽤 여유롭다.
커버도 넉장쯤으로 쓰다가 지금은 그 배쯤 생겨서 한결 넉넉하다.

오줌 기저귀는 세탁기옆에 따로 대야를 하나 마련해두었다가 나오는데로 거기 모아놓고 흰빨래 돌릴때 함께 넣어 돌린다. 
물에 담가두면 3~4시간 지나면 세균이 너무 많아진다고해서 물에 담그지는 않고 모은다.
좀 찜찜하면 빤 뒤에 햇볕에 잘 말리면 살균이 된다고 하고, 우리 아이들을 보면 어디서 말려도 기저귀 발진은 거의 없는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 

똥 기저귀는 욕실에 따로 대야를 마련해서 거기에 모은다. 
밤에 아이들 잠들고나면 똥기저귀 애벌빨래를 한다. 
오늘은 어떤 똥 쌌나.. 아까 기저귀 갈때도 봤지만 밤에 또 보면서 요즘 아이가 먹는 것과 감기기운 같은 것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본다. 내 아기 똥이니 그다지 더러운 줄 모르고 털어내고 가볍게 문질러 빤다. 젖먹는 아기 똥이라 냄새도 그리 심하지 않다. 비누칠해서 큰 들통에 넣고 물 붓고 푹푹 삶는다. 오줌 기저귀가 오래 묵었으면 이때 같이 헹궈 삶고, 똥묻은 아기 옷이나 기저귀 커버도 같이 삶는다.(커버는 오래 쓰고, 특히 자주 삶고하면 나중에 오줌이 샌다. 그럼.. 바꿔야지, 뭐. ㅎㅎ) 

들통이 무거울 때 욕실부터 가스렌지까지 들고가 올려놓는 것은 남편 몫이다.
연호가 깨서 내가 재우러 들어가면 빨래솥 불끄는 것도 남편 몫.(어느 집은 똥기저귀 애벌빨래를 아빠가 하는 멋진 집도 있다는데... 김준철씨는 애기 똥을 겁낸다. 흥!! ㅜㅜ)











비누칠해서 삶으면 누렇던 똥기저귀가 새하애지는게 나는 아직도 좀 신기하다. ^^;
깨끗하게 빨아진 천기저귀를 탁탁 털어 빨래대 가득 널어놓고나면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하얀 기저귀가 가지런히 널린 모습은 보기에도 예쁘고 무엇보다 오늘 할 큰 일 한가지를 끝냈다는 안도감이 든다. 건조하던 집안 공기도 새삼 촉촉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기저귀 빨래 다 되기를 자주 기다린다. 

연호가 8개월이 된 요즘은 하루에 보통 기저귀가 열두어장 나온다. 
크게 어렵지 않다고 썼지만 그래도 매일 그 빨래를 하는 데는 적지않은 수고가 든다.
귀찮기도 하고, 손목이 아프거나 힘들 때도 많다.
그래도 천기저귀를 쓰는 이유는..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기 떄문이다.

아기 한 명이 일년동안 쓰는 종이기저귀를 만들려면 나무 72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게다가 그 종이기저귀는 땅에 묻어도 잘 썩지 않고, 태우면 기저귀만들때 들어간 독성강한 화학약품들이 방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종이기저귀를 써보면 10L짜리 쓰레기종량제봉지 채우는데 2~3일이 안걸린다.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많은 나무를 자르고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다.
깊은 밤, 욕실에 불을 켜고 철퍼덕 거리면서 기저귀에 비누칠을 하는게 고달파서 툴툴거리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연호 낳기전에 산후도우미를 신청하자 상담하는 분이 우리집에 오셨었는데 '특별히 요구하시는게 있냐?'고 묻길래 '천기저귀를 쓰고싶다'고 했더니 왜 굳이 천기저귀를 쓰려고 하냐고 물으셨다.
'종이기저귀는..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요.'했더니 '환경운동가시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고 싶다.
법정스님의 법문을 모아놓은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보기도 했다. 
'옛날 오래된 절들에 가보면 절 부엌에 조그많게 용과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와 물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산에 흔한 나무지만 허투루 많이 쓰면 호랑이가 화내고, 강에 흔한 물이지만 함부로 많이 쓰면 용이 화낸다는 뜻입니다.'
흔한 나무고, 흔한 땅이고, 흔한 물이지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한사람 한사람 자꾸 함부로 대하고 해치면 끝내는 그 고마운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호랑이와 용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영혼들이 깊이 분노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나는 때때로 두려운 마음이 든다.

법정스님 법문이 마음에 많이 와닿아서 이제는 물도 좀 아껴쓰려고 노력한다.
연수가 목욕(놀이)하느라 욕조에 물을 많이 받아놓고 첨벙거리고나면 그 물을 그대로 뒀다가 밤에 똥기저귀 빨래에 쓴다.
여행작가 오소희씨는 아프리카 여행 후에 세수하거나 샤워한 물을 변기에 부어 물을 내리게 됐다던데 그 마음도 이해된다.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을 구하기위해 하루 종일 먼지날리는 거친 사막길을 오고가야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고오면 누구라도 그저 편하다는 이유로 세숫물 따로, 변기물 따로, 애벌빨래 물 따로 맑은 물을 그리 펑펑 쓰지는 못할 것 같다.

아빠엄마가 모두 피부가 좋지않아 아이들도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은 아토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천기저귀를 쓰는 것이 아이들 피부를 위해 좋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땅도 건강해야 황사도 적어지고 공기도 맑아져서 우리 아이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다.
천기저귀를 쓰는 일은 내게는 먼 미래까지 아이들의 건강을 빌어주는 내 나름의 방식인 셈이다.  











천기저귀를 쓰고 싶어하던 지인께 유아용품점에서 파는 얇은 정사각형 기저귀가 제일 잘 마르고 접기도 편하다고 추천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함받을 때 끈으로 묶었거나 안에 곱게 넣어온 소창두루마리가 있으면 그게 제일 좋을 것 같다.
손이 부족해 늘 동동거리는 육아에서 편리함만큼 큰 가치도 없어보이지만 
어떤 물건이든 그 안에 담긴 기운까지 생각한다면 할머니의, 그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내려오는 따뜻한 기운들이 감싸고있는 집안, 장차 그 집의 안주인이 될 새식구를 맞으며 정성스럽게 준비한 소창천만큼 갓 태어난 생명을 따스하게 보듬어줄 천이 또 있을까. 
빨고 개기가 힘들다면 좀 짧게 자르고, 좀 길다면 개는 수고가 더 들긴 하겠지만 그만큼 또 푹신하니 좀 덜 반듯하게 개어지더라도 아이들은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아이들이 입는 것은 따스한 엄마의 숨결, 햇살, 바람, 할머니의 기운.. 그 모두일 것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2. 1. 21. 01:45






뚱구 빵구... 가끔 아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연수 신생아 시절에 산모도우미 해주셨던 이모님이 연수를 안고 '둥구 둥구 둥구 둥구~'하면서 재워주셨는데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 그때부터 별명삼아 '둥구야~'하고 불렀다.
내 오랜 블로그이웃들은 연수가 똑순이였던 시절(^^) 가끔 내가 '김둥구'라고 썼던 것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둥구 둥구 하다가 '뚱구'가 된 연수에게 동생이 생겨서 그 녀석은 바로 '빵구'가 되었다.
연수가 '엄마 왜 내가 뚱구야?'하고 묻길래 '음... 뚱뚱해서 뚱구야'했더니 '그럼 연호는 왜 빵구야?'하고 물었다.
'연호는... 빵빵해서 빵구야' 하고 둘이 킥킥 웃은 뒤로는 뚱구빵구에 뜻붙이는 놀이를 가끔 한다.

'엄마 내가 왜 둥구야?' '둥글둥글 잘 놀아서 둥구야~' 
'연호가 왜 빵구야?' '빵긋빵긋 잘 웃어서 빵구지~' ^^









둥글둥글 잘 놀고 빵긋빵긋 잘 웃는 두 녀석 덕분에 겨울나기가 고단해도 잘 견디고 산다.
종일 집에서 셋이서만 노는 것이 큰형아에게도 어린 동생에게도 이래저래 심심하고 어려울텐데도 
잘 지내주고, 웃어주고, 또 아픈데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고맙다.. 뚱구빵구.

아이들은 늘 엄마 마음을 읽고 있는것 같다.
엄마가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들은 금세 그 기색을 알아챈다. 
겨울나기를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이 나때문에 힘들었을까봐 뒤늦게 걱정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들. 
24시간, 그야말로 꿈속에서도 함께 붙어있는 일생에 그리 흔치않은 시기를 살아내고있는 엄마와 아이들이다.
더 고마워하고, 더 아껴주고, 다독여줘야한다.
그래야지.. 내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내게 해주는 것처럼..









연호는 요즘이 아기시절 중에서도 제일로 예쁜 시절이다.
이제 막 앉기 시작한 통통한 젖먹이 아가처럼 예쁜 존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엄마만 보면 웃고, 두 팔을 벌려 나를 안고, 뺨에 침이 가득한 뽀뽀를 해주고, 엄마 젖을 먹느라 온통 엄마 가슴에 얼굴을 부비는 아가. 
너무, 너무 예쁘다. 
8개월 무렵의 아가들이 이렇게 예쁘다는걸 나는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연수 키우던 시절에도 '아 예쁘다'했겠지만 어쩐 일인지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벌써 까먹고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그때는 워낙 조심스럽고 첫애기 돌보는 일이 낯설고 힘들 때라 이렇게까지 마냥 예쁘게만 바라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8개월 아가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아는 사람은 지금 8개월 아가를 키우고 있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것도 둘째면 더욱..^^









'저, 앉았습니다~ㅎㅎ'









'어우아아!' 
엄마만 보면 세상에서 젤로 기쁘게 웃는 요녀석이 비슷하게 옹알이만 해도 고슴도치 엄마 귀에는 또렷하게 '엄마'하고 부르는 걸로 들린다. ㅎㅎ 
요즘은 보행기를 타고 못가는 데도 없고 못 집는 것도 없고.. 그래서 살짝 말썽꾸러기 시대로 들어서려는 조짐이 보인다.
그래도 아직 나는 못 믿겠다.
이 녀석이 형아같이 말 안듣는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다섯살이 될 거라고는. ^^;;
한없이 말랑말랑하고 여리기만한 아기 살결이 어느새 뼈가 단단하다못해 살짝만 부딪혀와도 몹시 아픈 다섯살 단단한 사내아이 몸이 될거라고는..ㅜㅜ 









'음.. 엄마가 믿고싶지 않은 거겠지. 나도 형아랑 똑같아질거라구~~!'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 그전에, 요렇게 보드랍고 여린 시절에 더 많이 안아보고 볼 부벼야겠다.
통통한 젖살이 빠지기 전에...^^ 









자, 이제 우리 촐싹까불 오도방정 다섯살 김연수 차례!

요즘 내가 연수한테 하는 양을 가만히 되짚어보다가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다.
'팥쥐엄마'.
어쩌면 옛날이야기 '콩쥐팥쥐'에 나오는 팥쥐엄마는 계모가 아니고, 그냥 둘째를 낳은 친엄마가 아닐까..
둘째를 낳고 보니 큰애가 하는 짓은 모두 야단칠 일 뿐이고, 마침 또 한창 말썽 많이 부릴 나이가 된 큰아이는 미울 때가 너무 많은거다.
말못하고 웃기만 하는 둘째는 당연히 야단칠 일도 없고 그저 예쁘고 애틋하기만 하니 둘째는 볼때마다 껴안고 볼부비고 뽀뽀하고, 첫째는 볼때마다 인상쓰고 한숨쉬고 야단치기 바쁘다.
그러니 첫째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그 다정하던 우리 엄마맞나?'싶을 수밖에... 
나를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하던 우리 엄마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첫째는 내 엄마는 죽고, 팥쥐엄마가 팥쥐를 데리고 우리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게 된 거.. 이게 혹시 '콩쥐팥쥐이야기'의 진실은 아닐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참을 넋놓고 앉아 할만큼 요즘 내가 연수한테 하는 일이 참 그르다.
더 웃어주고, 어린 동생 샘내서 어리광부리는 것도 넉넉하게 받아주고, 다섯살한테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은 조급하게 짜증내지말고 기다리고.. 그럼 참 좋을텐데 어째 오늘도 그렇게 각박하게 굴었니.
반성한다. 미안하다.. 연수야.










연호 놀으라고 애기적 놀이감을 꺼내놓았더니 당연히 연수가 먼저 차지하고 앉는다.
구슬들을 옮기면서 맨 마지막 구슬은 연호, 그 앞에 것은 연수, 그앞은 엄마, 아빠란다.
그런데 다들 저끝까지 옮겨놓고 연호 구슬만 이쪽에 덩그라니 남겨놓는다. 연호 혼자 떨어졌단다.
'어떡하지'했더니 '연호는 올 수 없어. 그냥 혼자 있어야해' 했다.
한참 그 상태를 즐기더니 나중에는 연수 형아가 가서 데려오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노는 연수를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짠했다. 











얼마나 속상한게 많겠는가.
이 놀이도 하고싶고, 저 역할도 하고싶고 엄마를 상대로 하루종일 하고싶은 놀이랑 말이 가득가득한데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미적미적,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제 얘기는 그저 대충 건성으로 '응, 응' 응대만 할뿐 흡족하게 놀아주질 않으니 나라도 너무 속상하고 화나겠다..
 
밤에 잘때 내가 연호 젖을 물리느라고 연수에게 등을 보인채 돌아누워있으면 연수는 뒹굴거리다 내 등 뒤에 와서 내 옷속으로 제 손을 넣어 엄마 등을 만져보기도하고, 때로는 내 등에 자기 등을 가만히 붙여보기도 한다.
잠깐 그러다가 저만치 멀리 굴러가서 혼자 잠이 드는 아이의 기척을 등뒤로 다 느끼고 있지만 연호가 깰까봐 다정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다. 연호가 깊이 잠들고 나서야 연수가 아직 잠이 안들었으면 연수 곁에 가서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팔베게를 해주기도 하지만 엄마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 같은 서운한 마음이 그 정도로 풀릴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우리 연수.. 연호에게 참 잘 해준다.
아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호에게 심한 장난을 치지 않는 것만 해도 나는 연수가 어린 동생을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처음 연호태어났을 때 툭툭 때려보던 것도 얼마 안지나 거의 없었졌다.
익숙한 제 공간에 새롭게 출현한 동생의 존재가 낯설고 엄마 품을 뺏긴 것이 속상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어른들이 하도 질색하니 장난끼가 발동해서 굳이 더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연호가 제 장난감 만지는 것도 때때로 눈감아주고, 가끔은 제 동생이라고 무척 챙겨주기도 한다. 주로 그게 이렇게 제가 썰매에 태워 끌어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 등이지만..^^;;










연호는 태어나서부터 늘 형과 함께 였다.
그게 가끔은 연호에게 미안할 때도 있다. 엄마와 단 둘만 있는 집안의 고요.. 같은 것이 연호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네살배기 형은 늘 번쩍번쩍 뛰어다니고 큰 소리를 지르고 연호를 깜짝 놀래킬 때도 많았다.
연호는 그런 형이 무서워 울기도하고, 깊은 잠을 못자 힘들어하기도 했다. 
연수를 키우던 시절의 그 고요한 안정감을 지금은 꿈꾸기 어렵다. 
물론 그래서 심심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연호는 엄마와 단둘이 오랜 시간 평온하게, 차분하게 교감을 나누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동생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대신 형아가 보여주는 다이나믹한 세계가 늘 어린 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줄 것 같다.
엄마와의 교감도 짧은만큼 더 강렬해지는 것 같다.










연호에게 형아는 엄마 다음으로 제일 가까운 사람이고, 그래서 아마 연호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는 제일로 믿고 의지하는 든든한 존재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 저를 질투해 좀 괴롭힌 적도 있지만 그래도 연호는 늘 형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동경하고 배우면서 자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호에게 연수가 있는 것이 고맙고 좋다.
연호가 연수와는 아주 다른 생각을 하고, 아주 다른 삶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연수는 연호를 뒤에서 늘 지켜봐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호도 힘들때는 언제고 연수 곁에 찾아와 잠시 기대었다 갈 수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 그렇게 지내다오.










연수에게도 연호는 밉기도 하지만 애틋하기도 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 될 것이다.
제가 다섯살이었을 때 이렇게 슬쩍 깔고앉는 것으로 미운 마음을 한 올 풀어내기도 했던..









뚱구 빵구를 키우며 내가 얻는 것이 참 많다.
일상의 매순간에 그렇지는 못하지만 가끔 이렇게 천천히 돌아볼 때
부모님, 내 형제자매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관계들과 삶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게 뭘까..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애를 둘이나 낳고나서야! 아기를 갖기전에 이런 생각을 해야하는거 아닌가..ㅠ)
아이를 낳는다는건.. 앞으로의 내 삶이 늘 그 아이와 함께 펼쳐진다는 것.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의 모든 순간을 이제 시작하는 내 아이와 다시 한번 더 사는 것.. 이번에는 부모의 자리에서.

아이를 낳고나서 '내 삶'은 어디 갔나.. 싶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지만, 내 삶은 어디 간게 아니라 그대로 있다는 것. 내 삶은 계속 진행중이고 이제 늘 거기에 아이가 함께 있다는 것. 그러니 '아이와 상관없는 내 삶'을 꿈꿀 수는 없으며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뚱구 빵구.. 내 사랑. 
내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까.. 새해를 맞으며 잘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어떻게 자라날까, 어떻게 살아갈까. 내 아이들과 함께.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2. 1. 13. 00:47














남편이 저녁약속이 있어 늦게 오는 날이면 6시쯤 서둘러 저녁상을 차린다.
이유식먹는 연호까지 셋이 밥상에 둘러앉아 먹다 놀다 먹이다 하다보면 7시.
졸려 하품하는 아이들데리고 얼른 안방에 들어가 연수 그림책 읽어주며 연호 젖을 먹인다.
거의 잠들뻔한 연호를 연수가 한번 건드려 깨워놓고 둘이 헤헤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살짝 한숨..
한시간쯤 둘이 웃고 까불고 엄마를 타고넘고 뒹굴다가 연수 먼저, 그담엔 연호가 다시 한번 젖을 먹고 잠든다.
 
하루가, 짧고도 길었던 겨울 하루가 겨우 끝난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좀더 일찍 잠들어 8시에 거실로 나왔다.
한시간쯤 남은 집안일을 해놓고 모처럼 컴퓨터앞에 앉았다.


휴... 이번 겨울은 유독 힘들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지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합니다만 감옥에 사는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하지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하시던 신영복선생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구절이 자주 생각날 정도였다. 
나는 겨울보다 여름이 지내기 훨씬 나으니 그냥 없이 사는 사람인가보다.. 하면서.

왜 올해 겨울이 유독 힘들게 느껴질까... 생각하다 문득 이것이 두아이와 함께 보내는 첫번째 겨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힘들지.. 힘들 수밖에 없구나.
세살 터울 나는 두 아이, 그것도 둘째는 이제 막 만7개월을 채운 갓난아이.
아직도 참 여리디 여린 어린 아기를 보듬고 지내는 첫 겨울이니 힘든게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일동으로 이사와서 처음 지내보는 겨울이기도 했다.
어느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새집에서 처음 지내보는 계절, 그 계절의 풍경과 삶은 또 낯설었다.
이 계절까지 살고나야 온전히 1년을 채우게 되고 이 동네의 사시사철을 다 겪어본 것이 되지.. 그래.. 여러모로 어렵고 낯설고 조심스러운 날들이다. 그러니 이만큼 힘든거지.. 조금만 더 힘내서 잘 살아내자.. 











(결론이 너무 일찍 나왔다.. 
기왕 시작헀으니 이 겨울, 우리 네식구가 어찌 버티고 사는지 궁시렁은 다 떨어야하는데. ^_^;)



어린 아기가 있으니 아무래도 겨울 바깥출입은 조심스럽다.
그래도 어지간히 춥지 않으면 두터운 겨울옷입혀 아기띠해서 안고, 두터운 담요로 또 한번 덮고는 하루 한번쯤은 바깥 나들이를 한다. 무엇보다 연수가 놀이터나 공터에 나가 흙도 만지고 자전거도 타고 뛰기도 하면서 놀아야하기 때문이고, 연호가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낮잠도 달게 자기 위해서다. 무거운 연호 안고 연수랑 축구공도 몇번 차고 날쌘 녀석 뒤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오면 나는 어깨며 허리가 좀 아프지만 그래도 그렇게 바깥 나들이를 하는게 나에게도 기분전환이 되어 좋다.  

몹시 추운 날은 집밖으로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작은 아파트 방안에서 두 아이와 종일 뱅글뱅글 돌 수 밖에 없다.
그런 날이 며칠 계속 될 때면 마당있는 집생각이 간절했다.
아무리 추워도 현관문열고 바로 내려설 수 있는 마당이 있으면 하루에도 몇번씩 그 마당을 들락거리지 않을 수 없을텐데..
나는 마당에서 이런저런 설거지하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엇이든 가지고놀고 땅도 파고 하면서 계절을,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그런게 진짜 사는거지..
12월에 강릉 친정집을 다녀와서 더 마당있는 집이 간절해졌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느날은 너무 그 생각이 절절해서 충남 홍성으로 귀촌해 남편은 지역신문기자로, 아내는 텃밭가꾸고 아이키우며 살고있는 솔이네(블로그 '도시자연육아')에 연호낳고 첨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언제들어도 씩씩한 솔이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그리운 마음이 왈칵했다. 올해 5월에는 솔이네에도 둘째가 태어난단다. 그전에 꼭 오세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와서 아빠들은 나무도 좀 같이 하고(솔이네는 나무보일러때는 한옥집이다) 우린 맛있는거 같이 해먹고 그래요. 하는데 바로 짐싸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애써야했다.
설 지나면.. 2월이나 3월에는 꼭 가야지.. 

 
겨울해는 짧고 종일 집에 붙어있으니 밥때는 또 어찌나 금새 돌아오는지.
7시에 아침차려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먹고나면 10시께엔 간식, 1시쯤엔 점심, 낮잠 한숨 자고 4시쯤에 또 간식, 저녁7시엔 퇴근한 아빠와 함께 저녁. 
날로 아는게 많아지는 연수는 먹고싶은 것도 어찌 많은지 '오늘 점심메뉴는 뭐야?' 묻고 '오늘은 오믈렛먹을래~!'하고 선언하질 않나, 저녁엔 삼겹살이 먹고싶다하고 시시떄떄로 옥수수, 구름빵, 곶감, 아이스크림.. 먹고싶은 간식도 가지가지다.
그거 다 대령하면서 연호 이유식도 만들고, 어른들먹을 반찬과 국도 만들고 하자면 부엌에 서있는 시간이 정말 많다. 다행히 요즘은 연호가 보행기를 타서 형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과 한쪽 깍아서 손에 쥐어주면 조그만 이 다섯개로 오물오물 갉아먹느라 한참 조용해서 그짬에 부엌일을 부지런히 한다. 그 시간도 지나고 안아달라 칭얼대면 얼른 둘쳐업고 남은 요리도 마저 하고, 때로 설겆이도 하고 그러다보면 짧은 겨울해가 어느새 저물고 있다.

 
겨울이라 남편이 조금 일찍 퇴근하는게 정말 다행이다.
'띠릭~!'하고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연수는 정말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하고 달려간다. 그 반가운 목소리! 아빠가 평생 들어본 것중에 제일로 자기를 반기는 목소리아닐까. ㅎㅎ 
연호도 보행기를 타고 짧은 다리를 놀려 부지런히 달려간다. 아빠가 집에 오면 연호는 이제 아빠가 가는 데로만 졸졸 따라다닌다. ^^;
낮잠을 안잔 날이면 아빠가 도착할때쯤이 연수에게는 무척 졸린 시간이다. 아빠가 저녁약속이 있는 날이면 연수가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자기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빠가 일찍 오는게 훨씬 좋다. 연수가 많이 웃고 행복해하니까 그게 더 좋다. 종일 셋이서만 얼굴보고 지내다 저녁에 다시 보는 아빠 얼굴은 얼마나 새롭고(?) 반가운지 모른다. ㅎㅎ 어떤 날은 아빠 얼굴이 그날 우리 셋이 서로의 얼굴말고 처음 본 '다른 사람'일때도 있으니..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빠여서 반갑고 좋은 것이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집안 공기부터가 다르다는 말을 나는 이제 실감한다. 다정하고 든든한 어른의 존재, 내 아빠, 내 남편의 존재.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맞다. 겨울은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는 계절이다.
 













겨울나기가 참 쉽지 않구나... 싶던 어느 날, 작은 일 두가지를 시작했다. 
새들에게 쌀을 주는 것과 고구마를 물에 담가 키우는 일. 










우리집 앞에는 키 큰 소나무 서너그루와 작은 정자가 있는 아파트 마당이 있다.
이 소나무에 까치들이 자주 와서 운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고향집에서 듣던 까치 소리도 생각나고, 고향 동네에 가득한 크고 굵은 소나무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소나무 꼭대기가 마침 4층인 우리집에서 가까워 까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몹시 추워 밖에 나가기 어렵던 어느날, 문득 고향집 마당에 새들 먹으라고 쌀을 뿌려주던 엄마아빠 모습이 생각났다.

 







'연수야, 우리도 외할머니처럼 새들한테 밥주자!'하고는 창문을 열고 베란다밖에 쌀을 조금 뿌려주었다.
저 턱은 아파트 각 동마다 4층에만 있는 가느다란 건축장식물이다. 
처음에는 베란다 난간에 밖으로 매다는 긴 화분을 걸어서 그 안에 쌀을 놓아두려고 했는데 마침 우리층에는 저 시멘트바닥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얼마나 고맙던지! ^^

연수와 나는 생각날때마다 창문밖에 있는 쌀을 확인해보았다. 
며칠동안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눈이 조금 오고난 뒤에 보니 쌀알이 부스러져있길래 눈에 젖어 그런줄 알았다. 
'왜 새들이 안 먹지?'하고 연수는 서운해했다.
'새들이 아직 우리집앞에 쌀이 있는줄 모르나봐... 좀더 지나면 알게 되겠지..'하고 연수를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코 안방 베란다를 쳐다보다가 이녀석을 보았다.
안방 베란다밖에 뿌려놓았던 쌀을 콕콕 쪼아먹고 있던 녀석.
내가 쳐다보는걸 알았는지 종종종종 턱을 따라 걸어서 거실쪽으로 갔다.
'연수야, 새가 왔어!' 하고는 연호를 한팔에 안고 한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부지런히 따라갔다.










첫날은 우리를 보자마자 날아갔던 비둘기.
두번째 마주쳤을 때는 우리가 거실에 가면 안방쪽으로, 안방으로 따라가면 또 거실로 이쪽저쪽 왔다갔다하며 우리를 피해다니기는 했지만 날아가지는 않았다. 
셋째날에는 요리 우리를 들여다보며 연수 한번 보고, 나 한번 보고, 쌀 한번 먹고 한다.
늘상 소나무에 와 앉아있는 까치가 쌀을 발견할 줄 알았는데 먹는 눈치 빠른 녀석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새들도 같이 오지않고 늘 요 녀석 혼자 오늘걸 보면 '여기는 내 구역!'하고 선언을 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요녀석이 쌀을 다 먹고 간 뒤에 내가 '연수야, 비둘기가 쌀을 다 먹고갔네' 했더니 연수 하던 말. 
'친구들도 같이 먹게 좀 남겨놓지.. 다 먹고 갔네.' ^^
그래.. 그러면 좋을껄..

겨울은 생명들에겐 너나없이 힘든 계절이다. 
가지끝 붉은 감들은 까치밥으로 남겨놓으시는 어른들 마음처럼, 양지바른 마당가에 쌀낱 흩어주시던 엄마아부지 마음처럼 연수와 나도 하루에 한번씩 우리 먹을 쌀을 아주 조금 새들과 나누어 먹으며 겨울을 함께 나고 있다.
연수는 '엄마 오늘도 새들한테 밥줘야지. 우리 매일매일 주자'하고 잘 챙기고 있다.
햇볕비치는 창가에서 새를 기다리고, 새가 밥먹고 똥싸는 모습도 지켜보고 그러다 또 동생이랑 풀쩍거리고 놀면서 이 겨울이 가겠지.
고구마싹 자라는 것도 보고, 햇볕 잘드는 곳에 데려다주기도 하면서..

마당이 아쉽고, 나무와 바람과 새가 아쉬운 도시의 유년.
올 겨울은 아쉬운데로 거실 창가에서라도, 밖에 못나가는 날은 집안에서라도 새와 고구마싹을 바라보자.













이번 겨울이 지나고나면 나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두애기맘이 될 것 같다.
두 아이와의 첫겨울.. 셋이서만 하루종일 얼굴 맞대고, 세끼 밥 해먹고, 지지고볶고 웃고울면서 살아냈으니...
그리고 맞는 새봄에는 우리, 훨씬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지내든 이 겨울보다야 낫겠지. ^------^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겨울을 잘 견디고난 새싹들처럼 새봄에는 우리가 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서로 더 깊이 결속되고 서로 더 사랑하면서 세상속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는, 이 아이들보면서 견딜 수밖에 없다.
내게는 햇살인 이 아이들을 보면서.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2. 9. 20:47








강릉에 눈이 많이 왔다.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눈은 오늘 오전까지 쉼없이 내렸다.

연수는 새끼곰처럼 눈속을 쏘다녔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나갈 때마다 양말과 장갑을 흠뻑 적셔서 돌아왔다.

따뜻한 아래목에 바지를 말리고 밥을 먹고 귤을 좀 까먹다가
새 바지와 양말을 찾아입고 또 나갔다.

눈속에 뒹구는 연수는 새끼곰같았다.
곰은 겨울잠을 잘텐데.. 어쩌다 잠 안든 새끼곰이 생전처음 보는 눈풍경에 신이 나서 정신없이 하루 논 걸로 해두자.








아침 7시. 아직 날도 채 밝기 전.
마당에서 눈을 치우시는 할아버지를 보고 따라나오는 것으로 눈과의 첫만남 시작.









감기 걸릴까 걱정하시면서도 아빠는 연수에게 딱 맞는 작은 삽을 하나 찾아주셨다.
아이들과 노는 자세에 있어 나는 늘 아빠께 배운다.









아침에 남편과 전화하면서 '눈이 한 40cm는 온 것 같아' 라고 했는데 뉴스를 보니 강릉에 43cm가 왔단다.
강릉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이정도 눈대중은 할 수 있다는게 뿌듯하다. ^^
내가 자라는 동안 강릉에는 80cm쯤되는 그야말로 대설이 내린 적도 몇 번 있었다.
바로 이 마당에서 80cm 눈 속에 터널을 만들던 그 기억을 어찌 잊으리.
언젠가 연수도 그렇게 해보는 날이 올까.









새끼곰.. 아무도 밟지 않은 눈속으로 걸어간다.
강릉에선 이런 일을 '생눈을 헤치고 간다'고 한다. 길을 만들어놓지않은 그냥 눈밭위를 걸어간다는 말이다.









매일같이 놀던 모래언덕이 눈에 덮혀 보이지 않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터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새끼곰.
자... 이제부터 이 신난 새끼곰의 활보를 한번 지켜보시라.



































태어나 처음으로 이렇게 큰 눈을 만난 네살 연수는 물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리며 지치지도 않고 눈속을 뒹굴었다.
그러고도 기침 한번 안하고, 아침밥 먹으러 들어가자는 어른들의 말에 서럽고 서럽게 울면서 더 놀겠다고 졸랐다.
밥먹고 와도 눈은 그대로 있다고, 앞으로 며칠은 눈이랑 놀 수 있다고 해도 연수는 '밥먹고 오면 녹을꺼야'하면서 엉엉 울었다.









형이 밖에서 새끼곰처럼 눈밭을 구르는 동안 연호는 따뜻한 거실에서 증조할머니와 '풀~미 풀~미'하며 놀았다.
다리힘이 생긴 아기를 일으켜 세워서 흔들어주는 놀이노래는 '세상~ 세상~'이다.
아침마다 근 1시간 가까이 증조할머니와 노는 연호.
할아버지와 엄마를 키워내신 그 손길, 그 노래로 증조할머니가 오늘은 연호를 키워주고 계시다.















아침먹고 엄마는 만두를 빚으셨다.
눈오는 날 먹는 따끈한 떡만두국을 위해 엄마는 어제부터 사골을 끓이고 떡을 썰어놓으셨다.
오전 내내 눈을 치고 오신 아빠와 눈밭에 구른 어린 외손주, 그리고 멀리서 온 딸이 모두 그 뜨뜻한 사골국물에 몸을 녹였다.
나는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우리 엄마의 삶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도 엄마처럼 식구들을 살뜰하게 거두어 먹이며 보살필 수 있을까.. 아직 자신이 없다.












뒷산 소나무숲에서 우지끈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우수수 눈쏟아지는 소리가 이어 들린다.
연수도 누워서 그 소리를 들었을까.

어린 시절, 지금 집 이전에 살았던 기와집 툇마루에서 나는 눈오는 하늘과 눈덮힌 소나무들을 한없이 올려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까치 소리가 맑게 울렸던 것 같고, 그 날은 설날이어서 나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 날도 눈처럼 하얀 떡국을 먹었다.
눈이 많은 고장에서 나고 자란 것이 고맙다.
눈쌓인 소나무 숲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멀리 가지 않아도, 때때로 일상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에 살았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이 감촉. 나도 안다.
연수도 언젠가 눈을 보면, 그 위에 저처럼 누운 누군가를 보면 제 온 몸에 와닿던 눈의 포근하고도 서늘한 감촉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빠. 겨울마다, 눈이 올떄마다 이 마당에 길을 내셨고 또 내실 아빠.
아빠가 내놓은 길로 이 집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고 돌아왔지.
길을 내는 사람.. 우리 아빠. 부디 건강하시기를..!









몇번이나 눈속에서 놀아 고단해진 연수는 저녁에는 평소에 비해 훨씬 얌전히(?) 밥을 먹고, 조용히 사부작거리다 7시반쯤 일찍 곯아떨어졌다.
눈에서 더 놀겠다고, 눈썰매가 제 뜻대로 안된다고, 손발이 젖어 춥다고 오늘 낮에는 꽤 많이 징징거려 어린 손주의 눈놀이 시중을 들어주던 외할머니외할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연수..
내일은 좀더 나아지려나. 그래야할텐데..

연수 이녀석, 너 크면 네살 겨울에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엄청 애먹였다는 거 꼭 알아야한다. 
그럼에도 그 분들이 한없이 깊은 사랑으로 너를 한없이 보듬고 다독여주셨다는 것도. 
알았거든 외가집 쪽 쳐다보고 '감사합니다'하고 큰절 한번 올리렴. 
^^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2. 8. 20:32








눈이 올거라는 예보가 있었던 날, 엄마는 떡집에서 찾아온 가래떡을 써셨다.
떡써는 할머니 곁에 자리잡고 앉아서 연수는 말랑한 떡국떡을 많이도 집어 먹었다.









비로 시작된 눈은 금세 굵어지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가득 메워버렸다.
이런 기세면 금새 쌓일 것이다.
멀리 보이는 땀봉의 키큰 소나무들도 곧 하얗게 눈을 덮어쓰겠지.








연호가 잠시 잠든 사이, 집안에서는 아빠엄마가 연호 보행기를 조립하느라 바쁘셨다.
자다 깬 연수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연호를 앉혀놓고 외할아버지는 무척 흐뭇해하셨다.
아빠는 나이가 드실수록 손주들을 더 예뼈하시게 되는 것 같다.
예전부터도 손주들을 참 귀하게 대하시고 살뜰히 보살펴주시는 다정한 할아버지셨는데
다섯번째 손주인 연호를 대하시는 모습을 보니 해가 갈수록 더 애틋해지시는 아빠의 사랑이 느껴진다.








외할아버지 품에 안긴 연호,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눈.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엄마가 거실 창문을 열어보시더니 깜짝 놀라'욱아 이 눈 좀 봐!' 하며 옆에 앉은 나를 불렀다.
잠옷 입고 팔을 휘휘 크게도 젖던 엄마 모습, 얼마나 귀엽고 재밌던지.
찍을 수 있었다면 그 모습을 찍어놓을껄.. 머리속에 오래 기억해놓고 싶다.









아이들 곁에 가 누워서도 한참은 잠이 들지 않았다.
고향집 마당에 내리는 눈.
친정집 마당에 눈 쌓이던 밤..
고요하고 포근하고 추운 이 광경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지은지 25년된 오래된 주택인 외가집에서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하듯이 이불을 발로 차내고 이불 밖으로 굴러나왔다가도
살풋 잠이 깨면 서늘한 공기에 놀라 후다닥 이불 속으로 돌어가곤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감기 걸리지않고 씩씩하고 나는 서울에서 걸려왔던 감기가 다행히 다 나았다.

밤새 코끝을 감도는 찬 기운.
두꺼운 이불깃을 끌어올리면 얼굴을 덮혀주는 포근한 온기.. 사르르 밀려오는 잠.

외가집의 겨울밤이 깊어간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2. 2. 23:48









며칠전 연수가 그려준 엄마 얼굴.

"엄마, 내가 눈도 그렸어"

저 위의 작은 점 두개를 기리키며. (흠. 그럼 꼬리가 달린 점은 코인가?)

"이건 입이고, 이건 턱이야"

입은 정말 크고~ㅎㅎ 턱은 또 참 뾰족하다. 정말 내 모습같아서 한참 웃었다. (너도 아는구나, 엄마 턱 뽀죡한거~ㅜㅜ)


41개월의 연수가 그려준 내 얼굴. 오래 기억하고 싶다.
웃는 얼굴로 그려줘서 고맙다, 연수야.









그건 뭐야? 하고 물었더니

'편지쓴거야~'하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엄마한테 편지쓴거야. 봐봐, (줄 하나씩을 가리키며) 사.랑.하.는. 엄.마.에.게.'


여덟개의 선. 여덟음절의 편지.
살면서 받아본 편지중에 제일로 웃기고 제일로 뭉클한 편지. 











마카펜을 하나 사주었더니 그 굵고 시원한 느낌이 좋은지 한동안 오만군데에 다 그림을 그려놓고 다녔다. 
유리창, 거실바닥, 냉장고... 그리고 이렇게 놀이방 문과 벽지까지. 
다른 곳들은 다 지워졌지만 문과 벽지는..ㅠㅠ

그래도 나는 그림그릴 때의 연수가 좋다.
특히 엄마 눈에 안띌만한 곳을 찾아 혼자 몰래 슥슥 그림을 그리고있는 꼬마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가 좋다.
조용히, 그러나 신중하게 어떤 신명에 둘러싸여 몰입해있는 모습.
가끔은 그 뒷모습이 동그마니 외로워보일 때도 있지만..

문에 그린 이 작품은 '연수 얼굴'.  










오늘로 만42개월을 꽉 채운 연수. 
얼마전부터 연수가 또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처음 형아가 되었던 36개월 여름으로부터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6개월 동안에도 많은 변화가, 또 한차럐의 성장기가 지나간 것 같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기도 하고, 저만의 상상의 세계속에서 재미있게 놀거리를 찾아내 잘 놀고 또래친구들을 만나도 덜 부딪치고 부드럽게 놀게 된 것 같다.
블럭을 쌓거나 조립해서 뭔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데도 훨씬 능숙해졌다. 
비행기를 특히 좋아하는 연수가 좀 어설픈 모양이긴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이런저런 비행기, 헬리콥터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어린 동생에게도 제 장난감을 나름의 공평한 원칙하에 안배해주려 애쓰고, 연호를 웃게 하려고 연호가 좋아하는 소리를 거듭거듭 내기도 하고, 둘이 함께 뒹굴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진심으로, 연수가 있어 연호를 키우는 일이 훨씬 즐겁고 수월하고 행복하다. 형아를 향해 늘 눈을 반짝이며 해바라기하듯 쳐다보고 즐거워하는 연호도 그럴 것이다.

지난 가을, 텃밭에서 들꽃다발을 꺽어들고오며 연수는 말했다.
"큰 꽃은 연수꽃이고, 작은 꽃은 연호꽃이야.." 
아직 피지않은 꽃봉오리를 보고 연호꽃이라고 했던 말을 엄마는 기억하지. 그래, 우리 두 아이 정말 꽃이구나.. 생각하며 고마워했던 것도.

도서관으로 가던 어느 아침, 파란 하늘을 보고 내가 
'연수야, 하늘 좀 봐. 구름이 하나도 없어. 와~ 신기하다' 했더니
'다들 소풍갔나보지. 맛있는거 싸가지고, 친구들이랑 놀러갔나보지~' 하고 말해줬던 것도 기억해.

성당밖 놀이터에 서있는 큰 느티나무 아래서 작은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탁탁탁탁 일제히 뛰듯이 굴러오는 모습을 보고
'연수야, 저것 좀 봐, 넘 웃기다'하고 웃었더니
'응, 병아리 같아. 병아리들이 뛰어오는 것 같아' 하고 말해서 엄마를 기절할 뻔하게 했던 것도.

지난 가을, 너와 함께 해서 매일매일 빛나는 추억이 얼마나 많았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생각하면 엄마는 정말 벅차고 고맙단다.



겨울지나고 봄이 오면 유치원에 갈꺼라고, 가서 재미있게 놀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연수.
나는 굳이 안가도 된다고, 엄마랑 동생이랑 집에서 더 오래 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기대감을 알면서 그저 무시하기가 미안해 한번 알아나보자 하고 동네 유치원을 둘러보러 다녀오는 길에 
'연수야, 엄마는 연수랑 같이 노는게 참 좋아. 5살에도 엄마랑 연호랑 같이 집에서 놀면 어떨까?' 묻자
'나도 엄마랑 연호랑 노는게 좋아. 그러니까 유치원 안가는 날에 같이 놀아줄께' 했지.
'유치원은 문화체육관처럼 하루 가는게 아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 가는거야. 주말에만 안가..' 했더니
'그럼 주말에 놀아줄꼐. 주말에 많이많이 놀아줄꼐' 해서 엄마 마음을 또 울컥하게 했지. 

아쉬운 마음에 내가 또 '엄마는 연수가 집에 같이 있는게 좋은데..' 했더니 
'그럼 이 유치원말고 우리집에서 가까운데 생기는 거기 가지 뭐. 거긴 가까우니까 (엄마한테) 괜찮을거야..' 해서 깜짝 놀랐다.
아파트 단지안에 마련돼있는 보육시설 공간에 구립어린이집이 들어오게 해달라고 주민청원을 넣은것을 어른들끼리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걸 어느새 기억하고 거기라면 자기랑 멀리 떨어지는게 아니니 엄마에게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아이.
아이들은 모르는게 없나보다. 어른들이 무심코 한 말도 저와 관계되는 것이라면(그렇지 않은 것들도!) 아이들은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 같다. 더 신중해야지, 더 솔직해야지..

꼭 가고싶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이나 대안교육유치원에 보내주고싶은데
알아보니 이곳들은 이미 내년 5세 모집인원이 다 찼고 또 자리가 있다해도 내가 차로 태워다주고 데려와야한다는 어려움도 있어 쉽지가 않다. 그래도 좀더 빨리 알아보고 대기자 명단에라도 올려놓을걸 그랬나...

이런저런 고민으로 마음 무거웠다가 그래도 다시 조금 밝아질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우리 연수 참 잘 크고 있다는 것, 너무 고맙게도 늘 손부족한 엄마와 어린 동생 옆에서도 잘 놀고 잘 웃으며 잘 지내준다는 것. 그 고마운 사실을 생각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우리 연수.. 잘 클 수 있을거야' 하고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다. 
 
내일은 강릉에 간다.
연수연호와 함께 2주정도 지내다 올 예정이다.
눈이 많이 와서 연수와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터널도 만들고, 눈미끄럼도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츠도 챙기고 장갑도 넣어가야지. 
늘 사람이 그리운 나와 아이들에게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와 여러 친척들이 있는 강릉에서의 2주는 선물같은 충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푸근하게 아이들과 놀다 오자. 
많이 웃고, 많이 안고, 뒹굴다 오자. 
돌아와서의 일은 미리 걱정하지 말자. 그떄의 우리는 조금 더 자란 우리들일테니 우리앞에 놓인 삶의 숙제들도 조금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보자.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1. 10. 00:12









'아이들 크는 건 잠깐'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실때 '아고~ 잠깐은 무슨..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고 힘든데..' 생각했었다.
그런데 연호 크는걸 보니 그 말 뜻을 조금은 알것같다.

이제 5개월을 거진 채워가는 연호는 참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하루 지나면 한가지씩 재주가 늘고, 또 하루지나면 표정이며 옹알이도 한결 또렷해지는 것 같다.

엄마만 보면 그저 웃고, 엄마가 안보이면 바로 울고마는 
이 단순하고도 지순한 어린 아기와 함께 지내는 날들이 
지나고보면 얼마나 빨리 흘러간 것 같은지..

그 시간동안 부지런히는 못 찍었지만 짬짬히 예쁜 모습 담아놓았었는데
미처 블로그에 올리지못한 사진들이 제법 많았다.
9월부터 11월까지 두 달남짓한 시간동안에도 연호 참 많이 컸다. 고맙다.. 고맙다.










여름 끝무렵, 아빠 무릎에 앉아놀던 때. 











무릎위에 앉히는 것도, 세워보는 것도 모두 어색하던 떄.
지금은 어느새 너무 익숙하게 앉고, 세워주면 다리에 짱짱하게 힘을 주고 무릎도 잘 편다.











초가을. 주말에도 출근했다가 오후에 퇴근해서 돌아온 고단한 아빠 얼굴을 물끄러미 봐주던 날.











연수키울때 나는 포동포동하게 살찐 아기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몸무게도 작게 태어났고 모유만 먹으면서 볼살도 없고 팔다리도 가늘었던 연수를 보며 
혹시 젖이 모자란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몸무게가 잘 늘고있는지, 소변은 얼마나 보는지 꼼꼼히 체크해가며 늘 마음 졸였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늘 볼은 통통하다못해 살짝 늘어질 정도고, 팔다리도 올록볼록한 살이 층을 이룰만큼 토실토실하다.
어쩌다 몸무게를 재보면 5개월밖에 안된 녀석이 10kg 가까이 된다.
26개월동안 모유를 먹었던 형아가 길을 잘 뚫어놓은 것일까... 연호키우면서는 젖이 충분하고 가끔은 남기도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연수에게도, 연호에게도, 내 몸에게도.. 모두 참 고맙다.











요녀석 통통한 볼만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
보드라운 살결에 얼굴 부비고 뽀뽀도 퍼붓고... 연신 벙글거리는 내 옆에서 연수아빠가 샘난 얼굴로 묻는다. '그렇게 좋냐?'
ㅎㅎ 그럼, 좋지~~!











얼마나 좋은데... 이런 시절이 그리 길지않다는걸 알기 때문에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
네살배기 형아도 예쁘고, 그 형아가 세살, 두살이었을때도 모두다 너무 예쁘고 좋았지만...
갓난아이 이 시절은 정말 짧은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아이에게도 엄마인 나에게도 정말 잠깐밖에 없는 시절인걸.
그러니 많이 안아주고, 많이 뽀뽀하고, 많이 볼 부비며 지낼거야.
너무너무 예쁜 시절, 아련하고 곱고 애틋한 마음만 가득한 시절..

하지만 연수 키울 때보다 집안일도 훨씬 많고, 늘 함께 있는 큰형아와 놀고 얘기하는 시간도 정말 많아서
정작 연호랑 눈맞추고 얘기하고 놀고 얼러주는 시간은 연수떄에 비해 훨씬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연호는 한번 안아줄때 더 꼭 안아주고, 뽀뽀도 더 많이 해주려고 애쓰게 된다.
이런게 둘째들의 안타까움이자 기쁨이려나..
 










10월. 국화 화분을 하나 사와서 거실에 두고 두 아이들과 오래 들여다보고 놀았다.
향기도 맡아보고, 연수는 꽃 몇송이를 따서 온 집안에 자잘한 꽃잎들을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연호도 신기한지 꽃가지를 손에 오래도록 쥐고 놀았다. 이 때부터 연호는 범보의자에 가끔씩 앉기 시작했다. 











모처럼 꽃화분 옆에서 형아랑 의젓하게 앉아 사진을 찍었는데 그만... 연호 양말이 한짝 벗겨졌다.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사진찍으며 웃기 바빴네..^^;;











4개월 즈음부터 이유식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미응이'를 만들어주었는데 요녀석, 이유식도 아주 잘 먹는다. 
숟가락도 좋아하고, 요즘에는 그릇에 부쩍 관심이 가서 손으로 그릇잡으려고 야단이다.
아랫니 2개가 잇몸속에서 올라오는게 눈에 보인다. 아직 잇몸을 뚫고 나오진 않았지만 형태도 또렷하고 가끔 내 손가락이나 젖을 깨물때보면 살짝 까끌한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잇몸이 얼마나 근지럽고 아플까... 치발기도 열심히 빨고 씹고, 무엇이든 입에 넣고싶어하는 연호. 힘내라..! ^^

현미응이는 여려 시간 불린 현미를 절구로 찧어서, 살짝 볶고 물을 부어 오래 끓인 후에
걸쭉하게 만들어진 그 죽을 고운 면보로 한번 걸러서 만든다.
휴.... 한번 만들려면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한다. 엄마니까... 연호가 잘 먹으니까.. 
떄로는 연호 업고 재우면서 절구 찧고, 면보를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짜고있으려면 허리며 팔다리가 몹시 아프기도 했다.
그랬다구. ^^ 엄마가 그랬다구. 
그래도 잘 먹어주면 힘들었던건 잊고 또 좋아서 헤벌쭉 한다. 
엄마니까 어쩔 수 없다.











바운서가 참 유용하다. 
여기 앉아서 이유식도 먹고, 엄마랑 형아 밥먹는 것도 구경하고, 엄마 일하느라 왔다갔다하는 것도 구경한다.
둘째들은 엄마가 바빠서 그런가.. 배고프고 졸리기 전까지는 이런 바운서에 앉아 참 오래오래 잘도 논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 











좋다. 엄마만 보면 좋다. 
누군가 자길보고 눈맞추고 웃어주면 또 좋다. 벙글 웃는다. 이 웃음.. 오래 기억해야지. 
고단한 젊은 엄마의 날들에 나를 제일로 행복하게 해주었던 이 웃음을.











신날 때는 '깔깔깔' 웃는다. ^^
개구쟁이 형아가 와서 제 배에 머리를 슬쩍 갖다대도 이렇게 웃는다. 
동생이 웃으니 좋아서 연수도 자꾸 한다.

얼마전부터는 입술을 모아서 '부우우~~'하고 투랭이도 하고 혀를 입술사이로 쏘옥 내밀고 '메롱'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숟가락이 입속을 자꾸 드나드니 혀도 점점 다양하게 쓸 줄 알게 되어서 소리도 늘고, 움직임도 늘었나보다.










연호 태명을 '평화'라고 지으면서 나는 연호가 태어난 후의 날들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어떤 날들보다 '평화'롭기를 빌었었다.
5개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순간 힘들고 화나고 지쳤었지만 
연호가 이렇게 웃는 순간만큼은 정말로 깊은 평화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내게 이런 평화를 알게해주려고 왔구나.. 생각할만큼.

잘 웃고, 잘 우는 아이. 연호.
기쁘면 한없이 좋아하고, 슬프면 정말로 크고 서럽게 우는 아이. 
리트머스시험지처럼 바로바로 감정을 드러내는 이 아이가 
적게 울고 많이 웃으면서 지낼 수 있으면 나도 행복할 것이다.
요 꼬맹이가 가리키는 방향이 우리 모두가 행복한 방향일 것이다.
내일, 또 내일도 많이 웃자, 연호야.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0. 31. 23:59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소풍이라 이름붙이고 나선 길은 아니었지만 다녀와 사진을 보고있으니 어린 시절, 엄마가 김밥 싸들고 함께 따라와주시던 그 가을소풍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노란 은행잎.
집에서 나설 때는 꼭 운동회가는 기분이었다.
'아. 운동회에는 삶은 밤이랑 김밥이 있어야하는데... 가면 팔지않을까?' 생각하며 온가족이 함께 나서는 길,
마음이 설렜다. ^^











지난 주말, 블로그이웃인 고래님, 살림님 가족과 함께 찾아간 곳은 '한살림 가을겆이 잔치한마당'이었다. 
하지만 많은 천막과 사람들로 북적이던 유적지 앞마당을 지나 조용한 유적지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우리에게는
그저 낙엽과 햇살이 너무 고운 가을 소풍같았다.










희범이와 연수.
희범이는 '나는 장군이다~!'하고, 연수는 '나는 해적이다~!' 했다. ^^

숲은 사시사철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가을숲이 제일 아름다운 것 같다.
암사선사유적지는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데 이번에 처음 가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가까이 있다니... 겨울에 눈왔을 때도 꼭 아이들과 다시 와봐야겠다.









네살배기 꼬마장군, 나뭇가지칼을 쥔 손이 야무지다.

희범이는 연수가 제일 자주 놀고싶어하는 친구다.
"엄마, 오늘 우리 희범이네 집에 가자. 3413 버스 타고가면 되잖아~"
희범이네에 가면 연수가 좋아하는 로보카폴리 장난감이 무지 많아서이기도 하고, 버스여행이 하고싶어서이기도 하고...
친구가 보고싶어서이기도 한 것같은 조름을 참 자주도 한다. 










선사유적지 안에는 나무가지들을 붙여서 만든 동물조각상들이 멋스럽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에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상도 있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는 펠리온산의 동굴에서 많은 영웅들과 왕들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고,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 그대로 12월의 별자리인 '사수자리'의 주인이기도 하다. 

켄타우로스 앞에서 나무가지칼을 들고 뛰어오는 우리 꼬마해적.. 그 기세 한번 늠름하구나.
집안에서도 종일 저러고 노는데... 집안에서 이리저리 피해다닐때는 참 고달프더니, 밖에 나와서 보니 멋있고 좋다.
에효.. 자주 나오자. 그 수 밖에 없다...;; 











연수 손에 찍힌 흙도장이 예쁘다. 











10월에는 윤우가, 11월에는 희범이가 세돌 생일을 맞았다.
작은 시루떡 위에 초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연수의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윤우희범이 생일축하합니다아~' 노래가 끝나자마자 
희범이의 '용감한 구조대! 로보카폴리~~' 노래가 바로 이어져서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지난 봄에 처음 만나 여름지나고 가을까지..
그사이 참 많이 큰 것 같다.. 우리 꼬맹이들.
자주 만나진 못했어도 한번 만나고나면 즐거웠던 여운이 오래 남아서 늘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던 친구들.
 
셋이 모이면 제일 개구지고, 제 맘대로고, 펄쩍펄쩍 뛰는 것은 연수다.
희범이는 연수보다는 한결 차분하지만 연수랑 같이 장단맞춰 잘 놀아주기도 한다.
윤우는 그런 둘을 조용히 지켜보기도하고, 멀찌감치서 저만의 놀이세계를 사브작사브작 만들어 재밌게 논다.
아이들.. 참 다르면서도 어느새 많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졌다. 
더 자라면 어찌 놀까? 궁금하고.. 보고싶다.










사실 이날 소풍의 주인공은 아이들이 아니고 엄마들이었다.
서로 그리워하고 보고파하는 맘도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깊을, 우리는 '블로그 친구들'!! 
이 엄마들의 만남을 위해 아이들과 아빠들이 모두 함께 나서준 것이 이 날 소풍의 실체이고,
'한살림가을겆이 잔치한마당'은 고마운 핑계거리 되겠다. ^^










아이들과 아빠들이 신나게 숲속을 뛰어다니는 동안(연수 아빠는 연호 아기띠까지 하시고!^^) 
우리들은 팔짱끼고 한살림 장터들을 돌아다니며 벼룩시장에서 그림책도 사고, 
이 천막 저 천막 기웃거리며 구경도 하고 시식하는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아이들 밥먹이랴, 두어번 자리옮기는 동안 치우고 펼치랴 
처음 만나 뻘쭘할 남편들 눈치도 보랴.. 여유롭게 얘기꽃 피울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 만나 
함께 햇살받고, 웃고 뛰어노는 아이들과 아빠들모습 쳐다볼 수 있는 것만해도 얼마나 좋으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잠깐씩은 아이들을 아빠들에게 맡기고 모처럼 홀가분하게 우리끼리 걸어다니기도 하고, 얘기도 나누었으니 그것만 해도 우리 만남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라 신기하고 신선한 기분전환이 되었다.  











육아라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일인지 우리는 서로 너무 잘 안다.
아이들과 지지고볶고, 남편과 투닥거리고 부엌에서 종종거리며 보내는 우리들의 평범한 하루속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깃들어있는지도 잘 안다.
해도 티도 안나지만 안하면 큰일나는 살림이 얼마나 어렵고 고단한 일인지에 대해 절절히 공감하고 있고,
사람 살아가는 일이 어쩌면 그렇게 속상하고 근심스런 일 한둘은 빠지지않고 따라붙는지..
그 모든 사연들을 구구절절 하소연하면서 조금은 무겁던 어깨도 가볍게 하고 굳었던 마음도 풀곤 한다.
그렇게 서로 위로받고 위로하고.. 따뜻하게 어깨 두드려주고 돌아서면 너무나 고맙고 좋다. 
 
그래서 이 날도 가을햇살만큼, 딱 그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러나 우리에겐 블로그도 있고.. 언제고 또 만날 수 있으니 괜찮다. 
다음번 만날 날에는 더 깊어진 얘기들을, 더 오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해보니 가족 사진이 한장씩 있다.
고마워요, 모두들. 
특히 아빠들. ^^









고래가 부르는 노래.

내 블로그 오른편에 그녀의 블로그가 링크되어 있다. 육아동료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싶은 블로그. (찾아가보시면 알겠지만..이건 진짜 알짜정보다.ㅎㅎ)









살림하는 사람.

이 가족을 만난다면 누구라도 따뜻해지고 깊어지지 않을 수 없을걸...^^ 









그리고 나, 부끄러운 살림공부.
 
(연호의 첫 등장이자 마지막 등장이다. ^^;; 그 사람많고 정신없는 장터에서도 울지도 않고 잠도 잘자고 잘 놀아준 연호. 정말 고맙다~^^)











짧은 가을해 긴 그림자. 아쉬운 귀가길.











차로 걸어가면서 한살림 가을겆이 잔치한마당에 들러보니 그야말로 흥겨운 잔치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경인 경물 경천' 멀리 걸린 현수막이 아름다웠다. 
사람을 공경하고 먹거리, 살림거리를 공경하고 하늘을 공경하는.. 예쁜 사람들의 춤추는 모습이 아련했다. 

아름답게 살아야지.. 뜬금없는 다짐을 다시금 했다.





덧.
그러고보니 엄마들끼리 찍은 사진이 없네.. 담에는 어느 아빠께 부탁해서 우리끼리 같이 사진도 한장 찍읍시다요~ㅎㅎ
약간 어깨를 비스듬하게 하고 바짝 붙어서찍는 그 엄마들 사진말예요.^^


덧2.
이 날 음식들은 정말 맛이 없었다ㅠㅠ
한살림의 젊은 활동가들이 부쳐주는 파전맛은 대학시절 장터 파전맛과 다름없었고.. 생산지방문에서 맛본 여성생산자분들의 손맛을 기대했던 우리 가족은 모두 실망...ㅎㅎ 그래도 좋았어요,
한살림 가을겆이 잔치한마당.^^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0. 15. 01:19










한동안 블로그를 쓰지 못했다.
뚱구빵구들과 보내는 하루가 퍽 고단하였던 덕분이다.
아침6시반부터 시작해서 저녁7시반까지 열세시간동안 풀타임으로 노는 연수와 함께 이리저리 뛰면서 짬짬히 연호를 업고안고 재우는 하루.
해가 지고 드디어 아이들이 밤잠에 들고나면 그때부터는 다 내 시간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저녁밥먹고 수북히 쌓인 집안일들 하고나면 대략10시. 그 사이에도 번갈아가면서 꺠서 우는 뚱구빵구 달래서 다시 재우다가 결국 10시 좀 넘으면 연호 젖물리다 나도 같이 잠들어버린다.
그러면 또 하루가 끝...
 
어느 날은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가, 또 어느 날은 애들이 탈없이 무럭무럭 잘 커주는 것만해도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이냐... 하며 혼자 가슴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어느새 10월도 반이 지나갔다.
연수는 40개월을 꽉 채우고 41개월차에 들어섰고, 연호도 곧 5개월에 접어든다.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 기록하지 못한 생각들.. 
매일매일 뒤집어졌다가 겨우 다시 추스르곤하는 내 마음. 
육아의 날들은 그 날이 그 날같고 늘 똑같은 날같기도 하지만 긴 흐름으로보면 기승전결이 있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 아주 심각해졌다가 천천히 해결점을 찾게 되는 일들.  

지난 1, 2주 동안은 연수때문에 마음이 많이 괴로웠다.
시작은 연호의 기침감기였다.
연호가 기침을 좀 하다 가래도 끓기 시작해서 며칠동안 바깥출입을 자제했다.
연수도 '동생이 아프니 집에서 놀자'는 말에 잘 수긍해서줘서 밖에 나가자 조르지 않고 며칠을 잘 보냈다.
다행히 연호 감기가 사그라질 무렵, 연수 낮잠에 문제가 생겼다.
밖에서 활발하게 뛰어놀며 에너지를 써야할 아이가 하루종일 집안에서만 놀다보니 낮잠자기를 점점 어려워했다. 
졸립기는 한데 잠은 안 들고.. 몸은 고단하고 정신은 산만한 상태로 오후 내내 집안을 휘젖고 다니고 엄마에게 매달렸다.

오후에는 엄마도 피곤해서 잠깐 누워 쉬고싶은데 연수가 낮잠을 안자니 그럴 수도 없고, 
'아이고 모르겠다'하고 연호 젖물려 누워있으면 오전에 밖에서 논 날은 누운 엄마 옆에 와서 뒹굴거리다 잠들기도하던 연수가 
졸립기는해도 잠들 정도로 고단하진 않으니 엄마 등을 타고 누웠다가 머리도 잡아당기다가 
끝내는 연호에게 굴러와서 밀고 머리로 들이받고 해서 결국 엄마를 폭발시키곤 했다.
소리도 지르고, 떄로는 화가 너무 나서 연수 등짝을 세게 때리기도 했다.

'엄마 아파'하면서 엉엉 우는 연수를 보면 미안하다가도 
내 감정을 내가 추스르지 못해서 연수를 더 때리고 싶은 것을 참느라 속으로 무진 애를 써야했다.
동생을 괴롭히면 엄마가 무척 싫어한다는걸 알면서도 엄마를 도발이라도 하려는 듯이 동생을 울리는 아이가 밉살스럽게 여겨져서 '지금 저 녀석 따귀를 한 대 때리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겨우겨우 참고, 손이 막 들리려고하는 것을 간신히 간신히 눌러 참았다.

저도 힘들어서 그러는 것을.. 졸립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한테 더 응석부리고 매달리고싶고, 싫은 잠청하기는 그만 하고 엄마랑 신나게 놀고싶은데 엄마가 어린 동생때문에 제 맘에 맞춰주지 못하는 것이 속상해서 그러지... 
이해하면서도 그 순간에는 너무 미웠다.

연수에게 소리지르고, 그래서 연수가 울고 엄마와 형아의 큰소리를 듣고 연호까지 덩달아 우는 일이 몇일 이어지자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 다 잠도 못자고 괴롭기만한 오후가 셋 모두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것 같았다. 

그렇게 지지고볶는 동안 다행히 연호의 감기는 한결 덜해져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고, 연수의 낮잠을 억지로 재우지 않았다. 
낮잠을 안자도 된다고하니 연수는 너무나 좋아했다. 대신 엄마가 고단하니 30분만 누워서 쉬겠다고 했더니 그전처럼 누운 엄마를 괴롭히지 않았다. 
옆에 누워 그림책을 읽어달라는건 여전하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옆에누워 놀다가 자주 거실에 나가 시계를 보며 이제 시간이 얼마나 됐나.. 살펴보았다. 
내가 요령을 좀 피우느라고 '아고 엄마가 힘드니 10분만 더 눕자, 20분만 더 눕자'하고 시간을 자꾸 늘려서 한시간 가까이 누워있으니 그때서야 다시 엄마와 연호에게 뒹굴고 부딪혀오기에 얼른 나도 일어나고 연호도 팔에 안았다. 

그렇게해서 이번주부터는 연수가 낮잠을 안자는 대신 저녁7시쯤부터 밤잠을 자고있다. 
연호도 대략 그 즈음에는 잠이 든다. 
힘들다 힘들다해도 나도 이럭저럭 이 새로운 리듬에 적응이 되었나보다. 오늘 이렇게 블로그를 쓸 수 있게된 걸보면..^^; 










힘든 한 매듭이 또 지어지는 것 같다.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폭력에 대한 욕구를 확인하고 많이 놀랐던 시간이었다.
어린 아이를, 저항할 수 없는 어린 아이를 심하게 때리고 싶은 욕구가 내게 잠재해있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가 무섭기도했다.
또 어떤 특정 상황이 특히 나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속으로 확 끌고들어간다는 것도 알았다.

연수가 연호를 아프게해서 연호가 울면 나도 모르게 연수의 손을 아프게 꽉 잡게 된다. 그 순간 화가 확 나고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머리속은 정지. 연수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연수를 안방밖으로 내보낸 뒤 문을 닫아버리기도 했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않다. 어린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심지어 때리는 스스로가 너무 싫은데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연수는 제 앞에서 엄마가 문을 닫고 가버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저만 떨어뜨려놓고 가버려서 불러도 오지않는 엄마... 
예전에 연수가 두돌반쯤 됐을때 심하게 울고 떼를 쓰는데 그 상황을 견디기가 굉장히 힘든 때가 있었다.
나는 우는 연수를(그것도 발가벗은 애를... 아마 목욕하고나서 옷을 안입겠다고 떼를 쓰다가 울었나보다) 집안에 두고 혼자 아파트 현관문을 닫고 나와버렸었다. 이 울음소리에서 벗어나고싶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벗어날거야 벗어날거야...'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겨울이었는데 나는 실내복만 입은채로 후다닥 뛰어서 관리사무실로 갔다. 등기우편 찾아가라는 전화를 아까 받았던게 생각나서였다. 100m쯤 떨어져있는 관리사무소에 다녀오는 동안 가슴이 얼마나 쿵쿵 뛰었는지 모른다. 5분정도 시간밖에는 안 걸리는 출입이었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 흐른것 같았다.
우리집 현관문은 무거워서 연수 혼자 열수는 없다는걸 알고 나간 길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아이가 나를 찾아 밖으로 나왔을까봐 뒤늦게 너무 무서웠다. 돌아와서 문을 열어보니 연수는 내가 나갈때 모습 그대로 똑같이 현관앞에 서서 '들어와 엄마 들어와' 하고 소리지르며 울고있었다.  
그때 이후로 연수가 그걸 제일 싫어한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연수가 연호를 울려서 화가 나면 연수를 방밖으로 몰아냈다. 
정말 나쁘다.. 정말 나쁜 엄마다..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내 분노를 내가 다스릴 수가 없었다.

결국 서너차례 이 일을 반복하고 나서 아예 화날 상황에 빠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함정'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빠지는 함정..
연수도, 나도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그 상황을 만들지 말자.. 이 함정에서 그만 빠져나가자.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연수를 대하는 마음도 다시 풀려서 
도서관으로 놀이터로 놀러다니고 맛있는거 챙겨먹이며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서럽고 아픈 시간도 있었지만 언제그랬냐는듯 아이는 헤헤 웃고 잘 놀고 잘 잔다. 
그렇지만 아픈 상처는 없어지는게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가 비슷한 함정이 다시 나타나면 '흠칫'하고 아이를 두렵게 할 것이다.
그런 긴장감과 두려움을 아이에게 주었다는 것이 미안하다..  
나 또한 자라면서 받은 상처와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내 아이에게도 그런 상처를 주고있다니..

어릴때 나는 부모님께 맞은 기억은 많지 않다. 
아버지는 한번도 때리시지 않은 것 같고(우리 아빠는 아주 엄한 분이시라 어쩌다 야단만 한번 치셔도 온집안이 숨을 죽였었다), 엄마는 가끔 부지깽이나 파리채같은 것으로 삼남매를 쪼로록 세워놓고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리셨지만 그도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물론 그것도 무섭긴했다) 
두살 터울의 오빠에게는 어린 시절에 몇 번, 아프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나는 오빠가 동네 큰형들 여럿에게 맞고 아파서 엉엉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오빠는 자기가 우는 것을 내게 보인것이 속상해서 보고있는 나를 때렸었다. 그때 나는 오빠를 가여워하면서, 많이 아프겠다.. 생각하면서 보고있었는데 오빠가 다시 나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존심상한 오빠가 이해되면서도 아프고 미웠다. 그때 말고도 몇 번 오빠에게 맞아 속상한 기억이 있고, 오빠가 자주 나를 질투하고 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런 오빠를 내가 아이 둘을 낳고보니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다. 연수가 연호를 바라보는 마음처럼, 오빠도 제게서 부모님 관심을 빼앗아가는 것같은 어린 동생이 미운 순간이 있었겠지..

학교를 다니면서 받은 체벌은 지금도 큰 두려움으로 남아있다. 긴장감, 무서움.. 나는 초등학교때 회초리를 맞기도전에 두려움만으로 기절한 적이 있었다. 꼭 내가 맞는게 아니어도 긴장감이나 두려움에서는 내가 맞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폭력에 대한 공포를 가장 깊이 체험한 것은 대학시절이다. 대학시절 나갔던 집회에서 만나는 전투경찰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전투경찰이 나를 붙잡거나 때리려고하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서웠다. 실제로 잡히거나 맞은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 잡히고 맞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무서웠다.

연수가 연호를 때릴때 나는 마음속에서 '어리고 약한 존재'를 향해 휘두르는 폭력에 대한 적개심이 확 일어난다.
내가 연호가 된듯 무섭고 싫다. 게다가 지금은 내가 연수보다 훨씬 힘센 어른이니 폭력을 쓰는 연수를 응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나도 모르게 연수를, 연수가 연호를 아프게 한 것보다 몇배나 더 아프게 때려주고 싶어지곤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떄린다고 무엇이 나아질까. 내 마음이 시원해질까, 연수가 때떄로 속상한 마음과 고단한 몸상태를 이기지못해 어린 동생에게 그 모든 상황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풀어줄 수 있울까. 
아프고 서럽고 그 순간 엄마가 야속하기만 할 것이다. 매가 무섭고 싫고, 나처럼 폭력이 두려워질 뿐이다.
그러면서도 폭력이 학습되어서 어느순간 화가 나면 저도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질 것이다, 화낼 수 있는 약한 존재에게..
나도 한번 때리면 더 때리고싶고, 마음은 더 헝클어지고, 그래서 상황을 추스르지 못하고 한동안은 연수를 바로 볼수도, 웃을 수조차 없게되고만다.

그러니 그만 두어야한다. 나부터, 나는 아이들을 때리지 말아야한다. 때리지 말자.









 
연수는 요즘 자주 '아기처럼 안아달라'고 한다. 
엄마가 연호를 안고있으면 저를 업어달라고 하고, 연호를 업고있으면 저는 안아달라고 한다.
식탁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에는 연호를, 한쪽 다리에는 연수를 안고 내 밥도 떠먹고 연수밥도 먹일 때도 있다.
혼자 입고벗을 줄 알면서도 때때로 옷도 아기처럼 입혀달라, 벗겨달라 해서 엄마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동생 생긴후 더 심하게 퇴행하는 아이들도 있다는데 연수의 요구는 그저 응석부리는 수준이고
제가 졸리고 엄마한테 속상했을 때를 제외하면 평소에는 연호를 참 좋아라하니 그만해도 참 다행이고 고맙다..

결혼할때 신영복선생님께서 서화를 한장 선물로 주셨다.  
액자로 만들어서 거실에 걸어두었는데 마음이 힘들때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함께 여는 새날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아이키우는 요즘, 아이와 어떻게 지내야할까 고민할때 저 말씀이 마음에 절절하게 와닿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도 힘들다고, 엄마를 좀 이해해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네살배기 아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네살배기 아이에게 서른네살짜리 엄마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봐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내가 함께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이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내 마음도 함께 머물고, 네살아이의 발길이 가는 곳으로 그 보폭에 맞춰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거듭거듭 깨닫게 된다. 

너무 졸린 날은 자고, 별로 졸리지않은 날은 억지로 재우지않고 맘껏 놀다가 배부르면 곯아떨어져 잘 자고 
그래서 한번도 울지않고 보내는 날이 많아지면 그게 평화지... 
어느새 그만큼의 생활은 제 의지와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큰아이. 
연수의 성장에 맞춰 나도 새롭게 연수와의 날들을 꾸려가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모두 또 힘든 과정을통과해온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늘 새날을 열어야한다, 부지런히.. 유연하게.
그러다보면 나도 새로운 사람이 되어있을 수 있겠지.
내 안에 들어있는 폭력성, 나약함, 이기심 같은 것들을 조금씩 더 극복할 수 있기를..
우리가 함께 하는 이 날들이 진정 우리 모두에게 '함께 여는 새날'이 되기를..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1. 10. 3. 02:22










통통하게 쳐진 볼, 딱붙은 목.. 이 분은 누구실까요?











동그란 눈, 곱슬거리는 머리... 이 분은 누구일까요?











앗. 위의 둘을 섞어놓은 것 같은 이 분은 누구...? 













넓은 이마, 아름다운 이목구비(역시 목은 딱붙은..^^:), 선인장 화분을 옆에 두고 계신 이 분은 그럼..? ^^







우리집 아이들은 모두 집 소파 가운데에 앉아서 백일사진을 찍었다.
연수부터 내복입고 그저 집에서 찍다보니 연호도 똑같이 그렇게 찍었다.
엄마아빠가 보고 예쁘다..하고 웃으면 되지 뭐.. 하고 백일날 아침에 모두 그렇게 찍었다.

문득 생각나 엄마아빠의 백일사진도 찾아보았다.
결혼할때 슬라이드만드느라 어린시절 사진들을 스캔해둔게 있어서 이번에 다시 보니 얼마나 웃음나던지... 
사진은 그래서 참 좋다. 
옛날, 그 다정했던 사람들과 추억들을 고스란히 불러내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으니 우리의 어린 시절 모습과 지금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닮아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더 많이 웃게 된다.
연수는 아빠가 다섯살 무렵에 해수욕장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보고 연수 사진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

우리들의 백일사진을 보면서 새삼 그 사진을 찍어주며 지금 우리처럼 웃고 행복해하셨을
젊은 시절의 우리 엄마아빠들 모습이 그려져 마음 찡했다.
연수아빠 백일에는 외할머니인 청상할머니가 시장길에 있는 연수아빠집앞에서 아주 맛있는 닭국을 끓이셨다고 했다.
첫 외손주의 백일에, 외할머니가 정성껏 푹 고아서 끓인 그 닭국을 시장다녀가는 이웃분들께 한그릇씩 나눠주셨는데
그 분들은 지금도 외할머니를 만나면 그때 그 닭국 얘기를 하신단다.
'참 맛있었는데.. 한그릇 더 먹고 싶었는데 (옆에 있던)누구가 한그릇만 먹고 그만 가자는 바람에 더 달라는 말도 못하고 일어섰네.. 그 때 한 그릇 더 못먹은게 아직도 아쉽다'고.
34년전에 먹었던 닭국 한그릇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시는 시골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어서 만나면 거듭 이야기할 거리가 된다는 게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다.
그 백일 닭국을 젖으로 먹었을 연수아빠에게는 외할머니와 이웃할머니들이 보내준 '잘 크라'는 축원이 아마도 사는 내내 보이지는 않지만 연수아빠를 지켜주는 포근한 막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백일 즈음에 목이 많이 짓물러서 어른들 걱정을 많이 끼쳤다고 했다.
늘 딱 붙어있는 목살에 땀이 차다 짓물렀던 모양인데 약도 바르고해서 어렵게 나은 그 자리가 지금도 약하게 흔적이 남아있다.
그런데 요즘 연호가 목이 잘 빨개진다.
연수보다 살이 훨씬 통통한 이 녀석은 조금만 땀을 흘렸다하면 목안에 접힌 살이 빨갛게 된다.
목욕하고 접힌 살을 펼쳐 바람도 쐬어주고 하면 한결 나아진다.
가끔 연호를 안고 고개를 좀 젖혀서 목을 불어주느라면 '호호 불어키운다'는 말이 이런거구나.. 새삼 생각하곤 한다. 
우리 부모님도, 우리 할머니도 나를 이렇게 호호 불어 키우셨겠지...
그렇게 곱게, 정성스레 키워준 것이 우리들이다. 
어른이 된 모두는 그렇게 큰 것이다.
모두 그렇게 참 소중한 존재들이다. 

할 수 있을때 더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줘야지... 생각한다.
나 자신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정성껏 나를 키워준 그 분들의 마음에 보답하는 일.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남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나도 더 정성껏 아이들을 키워야겠다.



 
덧.
우리들의 백일사진.. 위에서부터 누구인지 모두 아시지요?
음. 혹시 궁금하신 분들꼐는 댓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ㅎㅎ 
친절하게 정답(?)을 맞춰주시는 분들꼐는 연수연호가족의 사랑이 가득 담긴 포옹을.. 다음에 만날때 해드리지요. 
뺨가득 침이 묻는 연호의 뽀뽀도 해드릴 수 있습니당~~.

 







ㅎㅎㅎㅎ 삐꾸 사진 공개합니다~!  
아구, 엄마.. 나 힘들다요~









잉~~ 누가 나 좀 일으켜줘... 자꾸 사진만 찍고. 인젠 그만 안아줘~~ 










뭐라고? 어디 보라고? 소리는 이쪽이 더 큰데.... 
왜 나 혼자 여기 앉혀놓는거야... 하는 의아한 표정. ^^'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