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12. 1. 13. 00:47














남편이 저녁약속이 있어 늦게 오는 날이면 6시쯤 서둘러 저녁상을 차린다.
이유식먹는 연호까지 셋이 밥상에 둘러앉아 먹다 놀다 먹이다 하다보면 7시.
졸려 하품하는 아이들데리고 얼른 안방에 들어가 연수 그림책 읽어주며 연호 젖을 먹인다.
거의 잠들뻔한 연호를 연수가 한번 건드려 깨워놓고 둘이 헤헤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살짝 한숨..
한시간쯤 둘이 웃고 까불고 엄마를 타고넘고 뒹굴다가 연수 먼저, 그담엔 연호가 다시 한번 젖을 먹고 잠든다.
 
하루가, 짧고도 길었던 겨울 하루가 겨우 끝난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좀더 일찍 잠들어 8시에 거실로 나왔다.
한시간쯤 남은 집안일을 해놓고 모처럼 컴퓨터앞에 앉았다.


휴... 이번 겨울은 유독 힘들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지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합니다만 감옥에 사는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하지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하시던 신영복선생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구절이 자주 생각날 정도였다. 
나는 겨울보다 여름이 지내기 훨씬 나으니 그냥 없이 사는 사람인가보다.. 하면서.

왜 올해 겨울이 유독 힘들게 느껴질까... 생각하다 문득 이것이 두아이와 함께 보내는 첫번째 겨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힘들지.. 힘들 수밖에 없구나.
세살 터울 나는 두 아이, 그것도 둘째는 이제 막 만7개월을 채운 갓난아이.
아직도 참 여리디 여린 어린 아기를 보듬고 지내는 첫 겨울이니 힘든게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일동으로 이사와서 처음 지내보는 겨울이기도 했다.
어느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새집에서 처음 지내보는 계절, 그 계절의 풍경과 삶은 또 낯설었다.
이 계절까지 살고나야 온전히 1년을 채우게 되고 이 동네의 사시사철을 다 겪어본 것이 되지.. 그래.. 여러모로 어렵고 낯설고 조심스러운 날들이다. 그러니 이만큼 힘든거지.. 조금만 더 힘내서 잘 살아내자.. 











(결론이 너무 일찍 나왔다.. 
기왕 시작헀으니 이 겨울, 우리 네식구가 어찌 버티고 사는지 궁시렁은 다 떨어야하는데. ^_^;)



어린 아기가 있으니 아무래도 겨울 바깥출입은 조심스럽다.
그래도 어지간히 춥지 않으면 두터운 겨울옷입혀 아기띠해서 안고, 두터운 담요로 또 한번 덮고는 하루 한번쯤은 바깥 나들이를 한다. 무엇보다 연수가 놀이터나 공터에 나가 흙도 만지고 자전거도 타고 뛰기도 하면서 놀아야하기 때문이고, 연호가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낮잠도 달게 자기 위해서다. 무거운 연호 안고 연수랑 축구공도 몇번 차고 날쌘 녀석 뒤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오면 나는 어깨며 허리가 좀 아프지만 그래도 그렇게 바깥 나들이를 하는게 나에게도 기분전환이 되어 좋다.  

몹시 추운 날은 집밖으로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작은 아파트 방안에서 두 아이와 종일 뱅글뱅글 돌 수 밖에 없다.
그런 날이 며칠 계속 될 때면 마당있는 집생각이 간절했다.
아무리 추워도 현관문열고 바로 내려설 수 있는 마당이 있으면 하루에도 몇번씩 그 마당을 들락거리지 않을 수 없을텐데..
나는 마당에서 이런저런 설거지하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엇이든 가지고놀고 땅도 파고 하면서 계절을,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그런게 진짜 사는거지..
12월에 강릉 친정집을 다녀와서 더 마당있는 집이 간절해졌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느날은 너무 그 생각이 절절해서 충남 홍성으로 귀촌해 남편은 지역신문기자로, 아내는 텃밭가꾸고 아이키우며 살고있는 솔이네(블로그 '도시자연육아')에 연호낳고 첨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언제들어도 씩씩한 솔이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그리운 마음이 왈칵했다. 올해 5월에는 솔이네에도 둘째가 태어난단다. 그전에 꼭 오세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와서 아빠들은 나무도 좀 같이 하고(솔이네는 나무보일러때는 한옥집이다) 우린 맛있는거 같이 해먹고 그래요. 하는데 바로 짐싸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애써야했다.
설 지나면.. 2월이나 3월에는 꼭 가야지.. 

 
겨울해는 짧고 종일 집에 붙어있으니 밥때는 또 어찌나 금새 돌아오는지.
7시에 아침차려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먹고나면 10시께엔 간식, 1시쯤엔 점심, 낮잠 한숨 자고 4시쯤에 또 간식, 저녁7시엔 퇴근한 아빠와 함께 저녁. 
날로 아는게 많아지는 연수는 먹고싶은 것도 어찌 많은지 '오늘 점심메뉴는 뭐야?' 묻고 '오늘은 오믈렛먹을래~!'하고 선언하질 않나, 저녁엔 삼겹살이 먹고싶다하고 시시떄떄로 옥수수, 구름빵, 곶감, 아이스크림.. 먹고싶은 간식도 가지가지다.
그거 다 대령하면서 연호 이유식도 만들고, 어른들먹을 반찬과 국도 만들고 하자면 부엌에 서있는 시간이 정말 많다. 다행히 요즘은 연호가 보행기를 타서 형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과 한쪽 깍아서 손에 쥐어주면 조그만 이 다섯개로 오물오물 갉아먹느라 한참 조용해서 그짬에 부엌일을 부지런히 한다. 그 시간도 지나고 안아달라 칭얼대면 얼른 둘쳐업고 남은 요리도 마저 하고, 때로 설겆이도 하고 그러다보면 짧은 겨울해가 어느새 저물고 있다.

 
겨울이라 남편이 조금 일찍 퇴근하는게 정말 다행이다.
'띠릭~!'하고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연수는 정말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하고 달려간다. 그 반가운 목소리! 아빠가 평생 들어본 것중에 제일로 자기를 반기는 목소리아닐까. ㅎㅎ 
연호도 보행기를 타고 짧은 다리를 놀려 부지런히 달려간다. 아빠가 집에 오면 연호는 이제 아빠가 가는 데로만 졸졸 따라다닌다. ^^;
낮잠을 안잔 날이면 아빠가 도착할때쯤이 연수에게는 무척 졸린 시간이다. 아빠가 저녁약속이 있는 날이면 연수가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자기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빠가 일찍 오는게 훨씬 좋다. 연수가 많이 웃고 행복해하니까 그게 더 좋다. 종일 셋이서만 얼굴보고 지내다 저녁에 다시 보는 아빠 얼굴은 얼마나 새롭고(?) 반가운지 모른다. ㅎㅎ 어떤 날은 아빠 얼굴이 그날 우리 셋이 서로의 얼굴말고 처음 본 '다른 사람'일때도 있으니..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빠여서 반갑고 좋은 것이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집안 공기부터가 다르다는 말을 나는 이제 실감한다. 다정하고 든든한 어른의 존재, 내 아빠, 내 남편의 존재.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맞다. 겨울은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는 계절이다.
 













겨울나기가 참 쉽지 않구나... 싶던 어느 날, 작은 일 두가지를 시작했다. 
새들에게 쌀을 주는 것과 고구마를 물에 담가 키우는 일. 










우리집 앞에는 키 큰 소나무 서너그루와 작은 정자가 있는 아파트 마당이 있다.
이 소나무에 까치들이 자주 와서 운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고향집에서 듣던 까치 소리도 생각나고, 고향 동네에 가득한 크고 굵은 소나무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소나무 꼭대기가 마침 4층인 우리집에서 가까워 까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몹시 추워 밖에 나가기 어렵던 어느날, 문득 고향집 마당에 새들 먹으라고 쌀을 뿌려주던 엄마아빠 모습이 생각났다.

 







'연수야, 우리도 외할머니처럼 새들한테 밥주자!'하고는 창문을 열고 베란다밖에 쌀을 조금 뿌려주었다.
저 턱은 아파트 각 동마다 4층에만 있는 가느다란 건축장식물이다. 
처음에는 베란다 난간에 밖으로 매다는 긴 화분을 걸어서 그 안에 쌀을 놓아두려고 했는데 마침 우리층에는 저 시멘트바닥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얼마나 고맙던지! ^^

연수와 나는 생각날때마다 창문밖에 있는 쌀을 확인해보았다. 
며칠동안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눈이 조금 오고난 뒤에 보니 쌀알이 부스러져있길래 눈에 젖어 그런줄 알았다. 
'왜 새들이 안 먹지?'하고 연수는 서운해했다.
'새들이 아직 우리집앞에 쌀이 있는줄 모르나봐... 좀더 지나면 알게 되겠지..'하고 연수를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코 안방 베란다를 쳐다보다가 이녀석을 보았다.
안방 베란다밖에 뿌려놓았던 쌀을 콕콕 쪼아먹고 있던 녀석.
내가 쳐다보는걸 알았는지 종종종종 턱을 따라 걸어서 거실쪽으로 갔다.
'연수야, 새가 왔어!' 하고는 연호를 한팔에 안고 한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부지런히 따라갔다.










첫날은 우리를 보자마자 날아갔던 비둘기.
두번째 마주쳤을 때는 우리가 거실에 가면 안방쪽으로, 안방으로 따라가면 또 거실로 이쪽저쪽 왔다갔다하며 우리를 피해다니기는 했지만 날아가지는 않았다. 
셋째날에는 요리 우리를 들여다보며 연수 한번 보고, 나 한번 보고, 쌀 한번 먹고 한다.
늘상 소나무에 와 앉아있는 까치가 쌀을 발견할 줄 알았는데 먹는 눈치 빠른 녀석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새들도 같이 오지않고 늘 요 녀석 혼자 오늘걸 보면 '여기는 내 구역!'하고 선언을 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요녀석이 쌀을 다 먹고 간 뒤에 내가 '연수야, 비둘기가 쌀을 다 먹고갔네' 했더니 연수 하던 말. 
'친구들도 같이 먹게 좀 남겨놓지.. 다 먹고 갔네.' ^^
그래.. 그러면 좋을껄..

겨울은 생명들에겐 너나없이 힘든 계절이다. 
가지끝 붉은 감들은 까치밥으로 남겨놓으시는 어른들 마음처럼, 양지바른 마당가에 쌀낱 흩어주시던 엄마아부지 마음처럼 연수와 나도 하루에 한번씩 우리 먹을 쌀을 아주 조금 새들과 나누어 먹으며 겨울을 함께 나고 있다.
연수는 '엄마 오늘도 새들한테 밥줘야지. 우리 매일매일 주자'하고 잘 챙기고 있다.
햇볕비치는 창가에서 새를 기다리고, 새가 밥먹고 똥싸는 모습도 지켜보고 그러다 또 동생이랑 풀쩍거리고 놀면서 이 겨울이 가겠지.
고구마싹 자라는 것도 보고, 햇볕 잘드는 곳에 데려다주기도 하면서..

마당이 아쉽고, 나무와 바람과 새가 아쉬운 도시의 유년.
올 겨울은 아쉬운데로 거실 창가에서라도, 밖에 못나가는 날은 집안에서라도 새와 고구마싹을 바라보자.













이번 겨울이 지나고나면 나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두애기맘이 될 것 같다.
두 아이와의 첫겨울.. 셋이서만 하루종일 얼굴 맞대고, 세끼 밥 해먹고, 지지고볶고 웃고울면서 살아냈으니...
그리고 맞는 새봄에는 우리, 훨씬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지내든 이 겨울보다야 낫겠지. ^------^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겨울을 잘 견디고난 새싹들처럼 새봄에는 우리가 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서로 더 깊이 결속되고 서로 더 사랑하면서 세상속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는, 이 아이들보면서 견딜 수밖에 없다.
내게는 햇살인 이 아이들을 보면서.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