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2011. 1. 18. 23:17











아버지는 우리를 바다에 자주 데려가셨다.
짙푸른 동해바다 앞에 서면 뭔가 모르게 마음안에 맺혀있던 답답한 응어리가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돌아올 떄는 시원한 파도소리에 씻어낸듯 마음 자리가 맑고 담담했다.
그것이 체념이나 포기였다고 해도 파도 속에, 바다 앞에 내려놓을 때는 부끄럽지 않았다. 큰 일 하나 끝내는 듯이, 버거웠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듯이 홀가분했다. 
먼 길을 떠날때는 바다에 들러 꼭 인사를 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내 결심을 밝히고 다짐한 적도 많았다. 

강릉에서 보낸 유년기동안 나는 자연에게 말을 거는 법을 익혔다. 
바다에게, 멀리 보이는 태백산맥의 능선에게, 경포호수 안에 있는 바위에게.
우리집 마당에서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이던 태백산맥의 능선은 '어머니'라고 불렀고, 아빠가 아침마다 오빠와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시던 길에 만나는 경포호수안의 바위 조암은 '바위 아저씨'라고 불렀다. 
집의 뒷산으로 이어지던 길에 있던 작은 히말라야시타 나무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은 후로 '슈르르까'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가만가만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읊조리던 어린 소녀는 이제 서른넷,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건다. 
이전처럼 고향에 자주 내려가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찾아가 만나면 한없이 반가워서 오랜 친구만난듯 마음속의 이야기가 터져나온다. 현재의 소망들을 얘기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쭉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보살펴주기를 빈다.
그리고 이제는 제법 나이도 들고, 자연이 겪는 고통을 이전보다 조금은 더 알아차리는 나이가 되어서 내가 그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순간도 새로이 생겼다. 

어린 시절부터 생겨난 이런 생각과 태도가 세상 만물에는 모두 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는 범신론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아름답고 큰 대자연 앞에서 작은 인간으로서 느낀 경외심 같은 것에다가 무엇을 향해서건 내 속의 이야기를 건네고싶은 마음,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했던 독백을 누군가는 들어주고, 깊이 공감해주고, 나를 응원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를 바다앞에 데려가셨을 적에는 내게 그런 시원한 소통의 공간, 언제고 변치않는 마음의 벗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게 아닐까. 아버지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평생을 땅을 일구며 사셨던 아버지에게 들판과 산맥과 바다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인간들의 얄팍한 계산과 악다구니와 복잡다단한 세상살이에 노련하셨던 아버지지만 땀흘려 땅을 일구고, 이따금 바다앞에 서서 번잡하고 시끄러운 생각들을 시원하게 내려놓고 중요한 것만 남겨서 새롭게 다잡고 오는 시간을 사랑하셨다.     

서울에 와서는 어린 시절처럼 자연에게 말을 걸며 살지 못했다. 
일종의 준비기였던 10대 소녀 시절이 끝나고 몸으로 부딪히는 행동의 20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두운 술집과 골방과 집회의 앰프소리가 울리는 광장에서 사람들을 보며 전율하는 것에 내 젊은 마음이 온통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교정 곳곳에 가득했던 오래된 숲들과 키큰 나무들이 참 아름다웠던 것은 기억한다.

서른에 결혼하면서 얻은 연신내 신혼집에서는 수려하고 웅장한 북한산의 능선이 한눈에 잘 보였다. 이 잘생긴 산은 내게 큰 기쁨과 힘이 되었지만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신혼집 앞산인 봉산은 낮지만 꽤 넓게 우리 마을을 감싸고 돌아 퍽 아늑했다. 갓난아이를 안고 거실에 앉아 봉산의 사계절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더없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말을 걸지는 못했다.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연물이란 것도 어느 시절, 어떤 특정한 성장의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자연의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 

둘째 아이 평화를 가지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며칠전에는 문득 우리 가족이 모두 인디언 이름같은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딴 이름, 혹은 그의 성정을 잘 표현해주는 이름. 
인간 역시 우주와 대자연의 한 부분임을 이름을 부를때마다 숨을 쉬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이름 말이다. 

소녀시절에 감동깊게 봤던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오는 '늑대와 춤을', '주먹쥐고 일어서'같은 이름은 내가 거의 처음 알게되었던 인디언 이름들이었다.
그후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 아이가 전통인디언의 방식으로 산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기를 담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 이름이 너무 좋아 혼자 가만가만 불러보기도 했다. 
앉은 소, 구르는 천둥, 빨간 윗도리, 검은 새, 열 마리 곰, 느린 거북, 방랑하는 늑대... 이들은 모두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에 나오는 인디언 추장과 전사들의 이름이다.

우리 가족의 인디언 이름을 짓는다면 어떻게 지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인디언 이름은 내가 꾸었던 태몽을 생각해서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연수를 가질 적에 나는 아주 하얗고 예쁜 구름 하나가 나를 향해 쓩-하고 날아오더니 내 품에 와락 안기는 꿈을 꾸었다. 차고 상쾌한 구름속에 내가 실은 폭 싸안긴 것이었다. 그 시원한 느낌이 깨고 나서도 생생했다. 그 꿈을 따서 연수는 '흰구름'이라고 부르면 좋겠다.
평화는 블로그에도 썼듯이 푸른 들판을 산책하다가 알곡이 실하게 잘 달린 푸른 벼이삭을 손으로 쥐어보는 꿈을 꾸었었다.
평화는 '푸른 벼'라고 부르고..
그리고 또 철없는 내 꿈 하나를 보태서 내가 만약 셋째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깊고 푸른 바다 꿈을 꾸고 가져서 '푸른 바다'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나와 남편의 이름은 한자어의 뜻을 풀어 지으면 어떨까.
내 이름인 '욱(旭)'의 한자어 뜻은 '빛날 욱, 아침해 욱'이다. 아침햇살이 치밀어 오를때의 기세 같이 씩씩한 느낌을 담은 글자다. 나는 초겨울인 음력 11월 초이레날, 아침 여섯 일곱시쯤 한옥이었던 시골집에서 태어났다. 그해 서른한살이었던 엄마가 나를 낳고 나니, 동편이 밝아오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고 했다. 8살 무렵까지 살았던 내 생애 첫집인 그 집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젊은 날의 엄마아빠가 살았던 안방은 해가 떠오르는 앞동산 쪽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러니 내 생애의 첫 순간에는 겨울 여명의 첫 햇살정도가 막 엄마 몸을 열고나와 뜨거운 김이 나는 작고 여린 것의 이마를 건드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 인디언식 이름을 '아침해'라고 부를 수 있겠지. 

남편의 이름인 '준철(俊鐵)'은 '좋은 쇠'라는 뜻이다. 시어머니는 신랑을 가질 적에 태몽으로 붉은색 용이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고 하셨다. 남편은 '좋은 쇠'라고 불러도 좋고 '붉은 용'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쓰다보니 태몽 얘기들이 참 재미있는데, 내가 연수를 가질 적에 시어머니는 고구마밭에 가서 크고 붉은 고구마들을 한아름 따는 꿈을 꾸셨고, 친정엄마는 옛날 우리집 방앗간 옆에 있는 밤나무 밑에 가서 큰 밤알들을 줍는 꿈을 꾸셨다고 했다. 그 꿈들을 전해듣고 나는 "연수는 농부가 될 건가봐!"하고 웃음을 터트렸었다. 새로운 생명이 잉태될때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신비로울만큼 생생한 자연물의 꿈을 꾼다는것도 참 신기하지 않은가.

아침해, 붉은 용, 흰 구름, 푸른 벼... 
이런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우리 가족이 긴 여행을 함께 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좀 크면 도보로 전국일주도 해보고 싶고, 제주 올레도 걷고, 멀리 산티아고 길도 걸어보고 싶다. 
백두산도 가보고 싶고, 안나 푸르나도 가보고 싶다. 
그 곳들을 만날 때는 우리가 서로를 저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만나는 경이로운 자연들에게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건네고, 듣고, 위로받고, 격려하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유명하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 만나는 자연도 좋지만 제일 좋은 것은 아이들의 고향집, 아이들의 생활 공간에 마음 붙일 수 있는 아름답고 시원한 자연이 있는 것이겠지. 

얼마 후면 북한산과 봉산이 있던 연신내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서는 어떤 자연을 만나게 될까.. 지금은 집을 따라 가는 이사이지만, 다음에는 자연을 따라 가는 이사였으면 좋겠다. 
인디언의 이름을 하나씩 마음에 품고, 자연과 생명앞에 한없이 감사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려 했던 인디언의 삶의 철학과 자세를 배우려고 애쓰면서 살고 싶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어느 해보다 춥다는 2011년 새해, 구제역 파동을 생각하면 마음 속까지 추워지는 새해를 보내면서 해보는 다짐 하나다. 
  











































지난해 연말, 친정집에 가있을때 아빠와 연수와 함께 경포바다를 찾았었다.
이제는 제법 큰 연수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밀려오는 파도앞에 용감하게 섰다.
파도가 바로 앞까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이 젖지않게 도망쳐나오는 저 놀이를 나도 어릴때 무척 좋아했다. 추운 겨울에도 몇번은 결국 발을 적시곤 했다. 덜덜 떨며 집에 돌아와도 시원하고 재미있었다.
이제는 연수가 내 아빠와 그 놀이를 한다. 더 겁이 없고, 더 신나한다.

참, 우리 아빠 이름은 별 성(星)자에, 비 우(雨)자를 쓰시니 내 방식대로 아빠의 인디언 이름을 짓는다면 '별비'가 되겠다. ^^
별비 아빠... 오늘밤에는 막내딸 걱정없이 편히 잠이 드셨는지.
아빠, 편히 주무세요. 내일은 막내딸 '아침해'가 씩씩하게 전화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11. 1. 15. 16:44



릴레이 포스팅의 바통을 받았어요. ^^
덕분에 오전나절 오고가며 행복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오늘 아침 블로그를 열어보기 직전에도 '행복' 생각을 했었다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는 콩나물밥을 해먹었습니다.
냄비에 불린 쌀을 안치고, 콩나물을 한웅큼 씻어 올리고 천천히 뜸들여가며 밥을 지었지요.
다진 파, 마늘, 깨, 참기름을 넣어 양념간장도 만들어서 같이 비벼 먹었습니다. 
냄비에 남은 눌은밥을 끓여서 누룽지까지 먹고 나니 몸도 마음도 든든! 남편도 "아. 참 잘~ 먹었다"하고 연수도 밥한그릇 뚝딱했어요. 단순한 요리, 소박한 맛, 여유로운 시간... 뜨끈하고 구수한 누룽지를 천천히 떠먹으며 '행복이 별건가.. 이런게 행복이지.' 생각했었지요. 
그러니 오늘은 '행복'을 생각하라고 원래부터 정해져있었던 날같습니다. 
바통 넘겨주신 토댁언니, 감사합니다~~~^^ (릴레이의 오상, 저도 읽어봤는데 넘 재밌더라구요. 깊이깊이 감사하고, 열심히 숙제 하겠습니다.ㅎㅎ )


 
1. 나의 행복론


난 행복하다, [시간]이 있으니까. 


온가족이 함께 앉아 천천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행복하다. 주중에 일찍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밥도 못차려주는 날은 슬프다. 온통 장난감으로 어지러진 거실을 보며 심란해하다가도 잠시 고개들어 눈덮인 겨울산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고요한 한낮, 햇빛좋은 방에서 아이와 낮잠을 잘 수 있어 행복하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오래오래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어 행복하다. 가끔 좋은 친구들과 마주 앉아 웃으며 이야기할 시간이 있어 행복하다. 깊은 밤, 아이를 재워놓고 책읽고 글쓸수 있는 시간이 있어 행복하다. 


 
 
2. 앞선 주자 
3. 다음 주자

미탄님, 오드리할뻔님 께 바통을 넘기겠습니다. ^^

치열하고 깊은 사유와 글로 늘 감동을 주시는 미탄님,
책 쓰시랴, 강의하시랴 많이 바쁘실텐데 바통을 넘기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미탄님의 행복 이야기 들어보고픈 마음에 덜컥~! 넘깁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온 제 오랜 친구, 오드리할뻔
자신에 대한 탐구, 꿈을 찾기위한 노력을 멈추지않는 그녀의 행복이야기가 궁금해요. 조금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위해 늘 저보다 한발 앞서서, 말보다 행동으로 부딪히는 그녀에 대한 응원과 고마움을 담아 릴레이 바통을 넘겨봅니다.  




4. 규칙
1. '난 행복하다. [ ]가 있으니까.'의 빈칸을 하나의 명사로 채우고, 다섯 줄 이내로 보강 설명을 주세요. 
 평범한 답은 쓰지 말고, 거창한 답도 쓰지 말고 자기만의 작고 소중하며 독특한 행복요소를 적으시기 바랍니다. (금칙어: 가족, 건강 등)
2. 앞선 주자의 이름을 순서대로 써 주세요.
3. 다음 주자로 두 분의 블로거를 지정해주시고, 글을 부탁드립니다.
4. 규칙을 복사합니다.
5. 이 릴레이는 1월 31일 11:59분에 마감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을 참조 바랍니다.
 



오랫만에 릴레이에 참가하니 설레이고 재미있네요. 자꾸 생각하니 좀 어려워서 횡설수설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인제 다른 릴레이주자 분들도 만나보러 가봐야겠습니다. 새해에는 모두모두., 조금 더 많이 행복해지시길..!!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10. 12. 7. 23:26




어제부로 나는 서른 세살이 되었다.

만으로 꽉채운 서른셋. 아직 만으로 세살도 안된 아이를 생각하면 와. 나는 참 얼마나 많이도 산 것인지. ^^;
세 식구가 함께 사는 집. 생일을 맞은 나를 위해 식구별로 한번씩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음식만큼 정성과 마음이 깃드는 일도 드문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생일 저녁, 남편은 회사에서 돌아와 스타게티를 만들어주었다.
'알리오 올리오'라는 이 담백한 스파게티는 올리브유와 마늘과 소금과 스파게티면만으로 만드는 정말 단순한 스파게티인데 담백하고도 향긋한 맛이 입안에 오래남아 자꾸 먹고싶어지는 스파게티였다. 
스파게티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짬짬이 열심히 레시피 찾아보고, 추운 퇴근길에 재료들 사들고 와서 정성껏 만들어준 남편. 눈물나게 고맙다.
비록 처음이라 맛은 조금 심심했지만 나는 정말 맛있었다. 언제나 이 스파게티를 먹을 때는 남편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늘 이 사람이 해주는 이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참 행복했다.











퇴근하는 신랑을 기다려서 만들어주는 스파게티까지 먹고나니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평소 연수와 둘이 먹을때는 7시면 먹는 저녁밥인데 이 날은 참 늦긴 했지만 연수도 나도 잘 기다렸고, 맛있게 먹었다. 
늦더라도 아빠랑 같이 먹을 수 있으니 좋은 것이다.  

아빠가 생일선물로 사온 국화꽃 화분도 참 고마웠다. 
분홍빛 꽃송이와 싱싱한 초록빛 잎사귀들은 오늘 하루 동안에도 몇번이나 연수와 내 시선을 머물게 했다. 
그 밝은 빛이, 은은한 향기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축하합니다아! 후우!!!"
내 품에서 꼼지락거리던 갓난쟁이가 어느새 엄마의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줄 수 있을만큼 자랐다.
제 노래가 끝나면 손뼉도 손수 치고, 촛불도 제가 다 끈다.
이렇게 보니 웃는 눈꼬리가 아빠랑 고모랑 할머니랑 똑같구나, 우리 연수.










그리고 연수가 차려준 소꿉놀이 생일상.

"엄마 엄마, 생일 축하해~. 연수가 맛있는거 해줄께~!" 하고 제 부엌으로 달려가서 소꿉놀이 세간들을 다 꺼내놓고(우선 와르르 한번 다 쏟고 시작..) 한참 뚝딱뚝딱 자르고 담고 한다.
택배박스를 붙여서 만든 연수의 밥상에 한 상 가득하게 차려준 음식들을 "와~ 참 맛있다!"하고 냠냠 먹는 시늉을 하는 동안 내내 참 행복했다. 아이도 정말 행복하게 만들고 먹는다.  
다 먹고 나면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따뜻한 차도 끓여주는 센스쟁이.











나중에 이 아이가 커서 진짜 제 주방을 갖게되면
그때도 내게 손수 따뜻한 밥 한끼와 차 한잔을 끓여주었으면 좋겠다.
아이 집에 놀러가면 아이의 여자친구나 부인이 요리한거 말고, 아이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기를. ^^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잡채를 만들었다.
생일 전날 저녁, 내일 아침 생일상에 놓을 맛있는 음식을 한가지는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슥슥 분주하게 손을 놀려 만들어보았다.

이 음식은 사실 내 어머니께 마음으로 드리는 음식이다.
연수를 낳은 뒤부터 나는 내 생일마다 고향에 계신 엄마를 생각했고, 엄마께 드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한가지씩 만들었다.
재작년에는 엄마가 내 생일에 서울에 오셨었는데 그때도 잡채를 만들어서 함께 먹었고,
작년(생일)에는 도토리묵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단촐한 내 생일상에 올려놓고 엄마를 생각하며 먹었다.
어설픈 실력이지만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그 음식이 들어가는 내 몸과 마음만은 감사의 정으로 그득하게 채우고 싶었다.










그래도 어느새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는 3년이 흘렀는지라 
이번에 만든 잡채는 입맛 정직한 남편으로부터 '예상외로 괜찮다. 아주 맛있다'는 평을 들었다. ^^
친정 엄마아부지께도 이 잡채 맛을 보여드려야하는데... 집에만 가면 푹 눌러앉아 쉬기 바쁘니. 언제쯤 철이 들까나.
  










서른셋 생일이 행복하게 지나갔다.
올해는 엄마 배속에서 엄마가 먹는 모든 음식들을 함께 먹으며 엄마 생일을 함께 보낸 평화도 내년에는 한자리 어엿하게 차지하겠지.
휴.. 그때는 또 갓난이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며 참 정신없는 와중에 서른넷이 되겠구나.
그러고보니 서른셋 생일은 참 근래들어 조용하고 차분했던 생일이었던 것 같다.

밤에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방에 누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서른셋, 내가 놓치고 가는 것은 무엇인지...
어린 아이키우며 사는 즐거움과 고단함에 푹 빠져 있는 요즘의 내가 혹시 너무 소홀히 여기고 있는 중요한 어떤 것이 없는지..
내가 하던 공부, 내가 관심가지고 있던 사회활동들, 그 가치들과 시급함에 너무 마음쓰지 않는 것은 아닌지.
뒤척뒤척 생각은 길었지만 답은 뾰족하지 않았다.
서른셋의 내 삶은 아직은 좀 안개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아이들을, 남편을, 그리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깍고 다듬고 뭉그러진 나를 부둥켜안고 이 안개를 헤치고 나갔을때 어떤 세상과 마주하게 될까.
어떤 세상으로 가는 길을 나는 열 수 있을까.
내 삶이 궁금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10. 2. 18. 00:42








설명절을 잘 보내고 왔다.
위에 사진은 큰댁에 차례지내러 갔을때 찍은 '끼미'다.
상주 시댁에서는 떡국을 먹을때 아주 짭짤하게 끓인 저 '끼미'를 떡국위에 얹어 먹는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잘게 썰고, 역시 깍둑썰기로 잘게썬 무를 많이 넣고 간장을 넣어서 푹 끓인후에 두부도 넣는다.
맛도 향도 독특하고 강릉 친정에서는 못 보던 음식이라 처음엔 아주 낯설었다.
세번째 먹어보는 올해에는 어느새 입맛이 많이 적응해있었다.
'끼미'없는 떡국은 심심해서 못 먹을 정도로..

이번 설에는 시댁에 내려가면서 처음으로 먹을걸 만들어보았다.
명절음식은 거의 모두 어머님이 만드시고, 만들줄 아는게 별로 없는 나는 옆에서 아주 초보적인 조수 노릇만 한다.
그러니 명절에 쓸 음식을 만든 것은 아니고..
곰탕을 끓여서 얼린 것을 들고 갔다.

우리 어머님은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신다.
평소에도 어머님의 거칠고 마디굵은 손을 보면 괜히 죄스럽곤 한데 
얼마전부터는 손목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다.
의사가 처방해준 관절염약을 드시면서도 어머니는 일을 쉬지 않으신다.

그 얘기를 어머니께 듣고 나는 처음으로 사골을 사보았다. 
멀리 서울에서 사골 1kg를 사놓고 언제고 내려갈때 고아서 들고가야지.. 생각만 하다가 몇 달이 흐르고 설이 되었다.
설이 열흘쯤 남았을때 나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사골을 꺼내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는 큰 솥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솥에 가득 물을 채운후 그 물이 1/3이 될때까지 끓이기를 세 번 반복해 모은 국물을 다시 한번 끓여 또 1/3로 만들어야 곰탕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든 곰탕은 식혀서 비닐봉지에 넣고 꽁꽁 묶어 냉동실에 넣는다.   
이 과정을 한번 더 반복해서 또 비닐봉지에 넣어 얼리고, 그 다음부터는 한번씩 끓여 바로바로 국으로 먹었다.
이즈음에는 기름기가 거의 없는 담백하고 연하게 뽀얀 국물인지라 어린 연수도 부담없이 잘 먹었다.

사골을 고아 곰탕을 만들면서 곰탕에는 만드는 사람의 뼈와 기운도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뜨겁고 뽀얀 곰탕 국물속에는 그토록 긴 시간 불 위에 솥을 걸어놓고, 부지런히 그 솥주위를 오고가며 마음을 쓰고 정성을 기울인 엄마의 기운이 들어있었다는걸 내가 한번 해보고 나니 알 것 같았다.
기운없을 때, 왠지 힘이 부칠때 엄마가 끓여주는 곰탕을 한그릇 먹고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든든해지면서 힘이 났다.
그 때 몸안에 스르르 퍼졌던 따뜻한 기운은 엄마가 엄마의 뼈와 몸에서 퍼올려 함께 끓인 엄마의 생명에너지 자체였던 것이다.
내가 연수를 낳았을때 엄마는 식당에서나 쓸법한 큰 솥을 사들고 오셔서 더운 여름에, 이 집 작은 가스렌지 위에서 며칠동안 사골을 끓이셨다.

시어머니가 끓인 곰탕을 처음 먹어본 것은 신혼여행을 다녀온후 인사드리러 갔을때였던 것 같다. 
늘먹던 익숙한 맛이 아닌지라 살짝 어색은 했지만 처음 먹는 내 입에도 큰 거부감없이 고소하고 깊은 맛이었다. 
그 때 너무도 맛있게 훌훌 잘 말아먹던 신랑 모습이 생각난다.
오랫만에 돌아와 먹는 집밥, 엄마가 끓여주신 곰탕. 얼마나 맛있고 든든했을까. 
신랑도 역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님의 뼈속 기운을 받아먹고 자랐겠지.

다른 명절준비는 아무 것도 할게없는, 달랑달랑 가볍게 애기 손만 붙잡고 내려가면 되는 서울의 며느리는
처음 끓여보는 곰탕과 씨름하며 근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생각을 꽤 한참씩 했다.
그 수고와 고달픔과 감사함에 대해.. 
 
얼려둔 다섯봉지 중에 두 봉지를 작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차에 실었다.
며칠을 수선 떤 것에 비하면 참 작은 양이지만 내 손으로 어머님아버님 드실 음식을 한가지는 마련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지난 추석에는 연수만 한복을 입혔었는데, 이번 설부터는 우리 세식구가 모두 한복을 입기로 했다.
결혼할때 맞춘 예쁜 한복을 내내 장롱속에 넣어놓기만 하는 것이 아깝기도 했고, 
아빠엄마도 함께 한복을 입고 연수와 더 기쁘게 명절 기분을 느껴보고 싶기도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러나 할 줄 아는게 없더라도 옆에서 거드는 시늉은 해야하는 며느리가 한복을 차려입고 나서니 어머님은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어머님은 한숨을 좀 쉬셨지만 명절기분을 내고파하는 철없는 며느리를 나무라진 않으셨다.

우리집 제사와 점심식사까지 다 끝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앉자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티셔츠를 두 개 샀어. 언제 봐도 니가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아서.. 인터넷에 봐도 그 옷이고. 너희들 옷은 어디서 사야하는지 몰라서 한참 찾았네. 맘에 들지 모르겠다"
어머님이 꺼내오신 비닐봉지 안에는 노랑, 빨강 예쁜 티셔츠 두 벌이 들어있었다. 

멋낼 줄도 모르고, 어린 아기와 늘 집에서 지내다 보니 편하고 만만한 옷 두 세벌을 늘 번갈아입는 나를 보고 
언제부턴가 어머님은 마음을 쓰고 계셨던 것이다.
이 블로그에도 자주 들어와 연수 사진을 보고 기뻐하시는 어머니는 가끔 등장하는 내가 늘 비슷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나도 신경쓰지 않아 잘 모르는 사실도 알아채고 
설이 되기 얼마전부터 젊은 사람들 옷을 파는 가게를 찾아가서 내 옷을 사놓고 기다리셨던 것이다.
내가 곰탕을 끓이는 동안 어머님은 티셔츠를 고르고 계셨던걸까..

마음이 뭉클했다. 어머니 덕분에 올 설에는 나도 설빔이 생긴 것이다.
아이 낳은 뒤로는 내 손으로 내 옷을 사본 적이 없다.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가 옷을 강제로 사주다시피해서 들고오곤 했는데, 시어머니께 옷을 받으니 어머니가 무척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나는 어머니가 사주신 티셔츠를 입고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사진을 미처 못 찍은 것이 안타깝다.
다음에 내가 등장하는 사진이 있으면 아마 그 티셔츠들을 입고 있을 것이다. ^^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란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사이일 것이다.
나도 여전히 그렇고, 앞으로도 아마 많이 그럴 것이다.
엄마와 딸 사이같이 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집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만큼 똑같진 않겠지만..
다만 한번씩 뵐 때마다,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작고 기쁜 일들이 쌓였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어머님과 내가 둘이 찍은 사진은 결혼식장에서 찍은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    
다음번에 어머님을 뵈면 어머님과 함께 사진을 한장 찍어와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10. 1. 1. 00:13


2009년이 40분 남짓 남은 시간.
연수는 자고 나는 서재에서, 남편은 부엌 식탁위에서 각각 컴퓨터를 보고 있다. 
부엌에 피워놓은 아로마 향의 향긋하면서도 싸한 냄새가 방안으로 흘러들어온다.

2009년 한해 참 행복했다.
온전히 일년, 365일을 나는 아이와 함께 지냈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울고 웃으며 지냈던 날들. 
그 사이에 연수는 기어다니고, 뭔가 붙잡고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걷고.. 그러다 뛸 수 있게 됐다.

상주와 강릉, 엄마 아빠의 고향집에서 지낸 날들도 있었고 단양으로 시댁식구 모두 함께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한동이님과 토마토새댁님을 만나러 문경과 성주를 여행하기도 하고, '하늘과 계란' 농장과 영광 바닷가를 여러 블로거분들과 함께 여행한 적도 있었다. 
서산의 가원이네도 다녀오고, 안산에 있는 민규네와 산이네에도 다녀왔었다. 미술관에도 한번 다녀왔고, 헤이리 예술마을과 파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가까운 서오릉과 월드컵공원은 우리가 자주 찾는 놀이터였다.
연수와 둘이서 돌아다닌 동네나들이도 빼놓을 수 없다. 아윤이네도 다녀오고, 쌍동이들과 건우형아와 매일같이 뛰어놀던 우리 아파트 놀이터의 추억도 즐겁다.
자주 나가기 어려운 우리를 위해 우리집으로 놀라와준 친구들도 고마웠다. 경수 이모와 미옥이 이모, 크이짱과 YD, 오드리할뻔과 승모, 명이님과 미페이님, 솔이네... 
한해를 마무리하며 일년동안 쓴 블로그들을 다시 펼쳐보면서 고마운 분들도 떠올려본다.

여름에는 연수의 돌잔치를 했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물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며칠전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눈밭에서 뛰어놀기도 했다.
처음인게 참 많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기시절부터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나도
마치 처음인듯 함께 설레고 즐거웠었다.

매순간 좋기만 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처음 해보는 육아가 힘겨워 울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는 고단한 순간도 참 많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연수와 함께 해온 날들은 언제나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은 날'이었다. 
어제도 좋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덜 힘들고 훨씬 더 수월하고 새로운 감동과 행복이 있는 고마운 날들이었다. 
2010년은 2009년보다 그래서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2009년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연수가 자라는 동안 아마도 나는 이 고민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름의 답을 조금씩 찾아가겠지.
그 답은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 것일까'하는 질문의 답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에 대한 답이기도 할 것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실은 나를 더 돌아보게 되고, 내 삶의 방향과 내용을 더 세우게 되는 것 같다. 

2010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몇가지 생각해봤다. 
연수와 함께 더 잘 놀고, 더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기본이라 굳이 꼽지는 않았지만 실은 이게 제일 먼저다. 그리고 미뤄뒀던 논문을 써서 여름에 졸업을 하는 것. 논문을 마치면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것.. 그리고 둘째 아이를 갖는 것.
신랑도 함께 2010년 목표를 세웠다. 3가지 채우는걸 어려워했는데 지금쯤은 다 정했는지 모르겠네. ^^
신랑도, 나도, 연수도,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기도 함께 빈다.
마음의 건강과 평화도 서로 노력해서 북돋워주고, 몸의 건강도 서로 보살펴서 챙겨주는 2010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까이 사는 이웃, 멀리 사는 친구들과도 더 자주 오고가며 다정하게 지내고, 언제든 편하게 마음 기대고 실컷 수다떨 수 있는 든든한 사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9년이 이제 몇 분 안 남았다. 곧 있으면 새해가 밝는다. 
2009년에는 슬픈 일이 참 많았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도 슬픈 일보다는 따뜻하고 기쁜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내 집과, 내 이웃 그리고 세상에도 작지만 따뜻한 온기 하나 보탤 수있도록 나도 더 정갈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블로그 이웃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9. 12. 28. 01:26








신랑과 나는 2007년 12월 25일에 결혼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우리 부부는 결혼2주년을 맞았다. ^^

얼마전 가계부를 뒤적이다가 맨 뒷장 <경조문. 수례 서식>에 적힌 '결혼기념일'의 명칭을 우연히 보게됐다.
1주년 - 지혼식 (紙婚式)
2주년 - 고혼식 (藁婚式)
3주년 - 과혼식 (菓婚式)
이런 식으로 5주년까지는 매년 명칭이 다르고 그 뒤로는 7, 10, 12, 15, 20주년 등으로 띄엄띄엄 명칭이 있다가 60.75주년으로 끝났다. 

아마도 숫자가 작은 쪽은 부부가 함께 그 뜻을 새겨보며 기념하라는 것일테고, 숫자가 큰 쪽은 부모님들의 결혼기념일을 자식들이 챙기려고 할때 참고하라고 써있는 것인듯 했다. 
그런데 명칭만 있고 뜻은 안 적혀 있어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니 그 뜻도 재미있었다. 
" 결혼기념일의 명칭과 뜻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눌러보세요~^^"

결혼 1주년을 뜻하는 '지혼'은 종이 지(紙)자를 써서 말 그대로 '(혼인서약) 종이에 잉크도 안 마른 때'라는 뜻이었다. 혼인서약을 할 때의 마음을 다시 새겨보며 새롭게 결심을 다져보란 의미인 듯했다.
2주년 '고혼'의 고(藁)자는 '나무마를 고, 볏짚 고(藁)' 자다. '이제 겨우 지푸라기 구멍만큼 소통이 되는 때'란 뜻이었다. ㅎㅎ
정말 적절한 비유다 싶어 한참 웃었다. 바람 한 줄기가 겨우 지나갈까말까한 지푸라기 구멍만큼밖에 서로 이해 못하고, 그만큼밖에 말이 안 통하는 시절을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같이 산 세월이 그렇게 짧은 것이다.

평생을 함께 살아보자고 약속한 것이 부부인 것을 생각하면 2년은 얼마나 짧은지..
그 짧은 시간동안 때론 고마워도 하고, 새삼스레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알아보고 기뻐하기도 하고, 너무나 든든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토라지거나 무심한 적도 많았다. 의사소통이 넘 안된다 싶어 답답하고 화나는 때도 있었다. 
그 2년을 거쳐 이제 우리도 '지푸라기 구멍'만큼은 소통을 하게 되었나..? ^^
생각해보면 그 보다는 조금 더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도 안되는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해가 가고 달이 가면서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의사소통만이 아니라 우리 부부 둘다 '더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리라 믿는다. ^^

'평생'이라고 말하면 참 긴 시간같지만 나이를 셈해보면 얼추 '30년 혹은 40년'정도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 중에 2년을 벌써 살았다고 생각하면 남은 날들도 금방 지나갈 것 같다. 
더 행복하게, 우리가 함께 또는 각자 하고싶은 일들을 더 많이, 열심히 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음. 이런 마음으로 우리는 '고혼식'을 의미있게 보내고자...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




 



파티 요리는 장금이 입맛(+손맛?!)을 가진 신랑이 맡기로 했다. 
여러번의 집들이(우리집, 친구집)와 많은 외식 경험을 통해 엄선된 '손 많이 안가고 푸짐하고 맛있는 손님초대요리' 메뉴는 
바로 '샤브샤브' ~ㅎㅎㅎ
나는 청소와 집안 장식을 담당했다. 풍선을 불고, 트리 장식하는 반짝이 줄로 창문에 달님, 별님을 만들어 붙였다.
연수가 아주 많~이 도와주었다. 

띵똥~!
첫번째 손님이 왔다. 우리 가족 모두 무척 좋아하는 경수다. (연수는 경수이모가 책 읽어준걸 기억하고 이모 오기를 기다렸다ㅎ) 
신랑과 대학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인 그녀는 나와는 직장생활을 할때 만나 친해졌다. 경수는 우리 부부를 소개해준 책임자(?)다. 나는 경수를 몹시 좋아하는데, 가끔은 신랑보다도 그녀가 나를 더 잘 챙겨준다고 느낄 때도 있다. ^^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경수가 만들어온 '월남쌈'과 '과자'~! ^^
이 맛있는 것을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먹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지만... 언젠가는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겠지. 냉큼 나타나시오~~! 내 친구의 운명의 짝꿍~!ㅎ
 








두번째로 도착한 손님은 나의 오랜 벗, 오드리할뻔과 그의 가족들! ^^
내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소중한 친구인 오드리의 신랑인 '형님'은 예전 나의 직장동료이기도 하다.
와~ 이 넓고도 좁은 세상이여~^^ 내가 두 사람을 소개해 준것은 아니고, 두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한참후에 형님이 내가 일하던 곳으로 직장을 옮겨오시면서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제일 가까운 친구의 신랑과도 잘 알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고마운 인연은 이렇게도 깊다. 
오드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로 가장(?)한 나의 결혼기념일을 먼저 축하해주더니 잊지못할 선물을 주었다.
이 블로그에 올렸던 연수 사진들로 2010년 달력을 만들어 준 것이다.
오드리~ 정말 고마워~!!!^^ 내년 한해도 그 달력보면서 더 열심히 잘 살께! 









마지막으로 도착한 손님은 수아언니와 진환선배 부부, 그리고 두 분의 예쁜 아이들(채윤양과 민결군)~^^
수아언니와 진환선배는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다. 공부에서도, 삶에서도..
나는 언제나 이 부부에게 인생의 귀감이 되는 조언을 너무나 많이 듣고 있어서 '고혼'을 어떻게 의미있게 보낼까.. 생각할때도 제일 먼저 언니 부부가 생각났다. 두 사람을 초대해서 밥을 같이 먹어야지.. 고작 2년밖에 안되는 결혼기념일 이름을 거는건 좀 부끄러우니 크리스마스를 핑계삼아 저녁 초대를 하자! 이게 우리 부부가 궁리한 것이었고 두분은 기꺼이 응해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채윤이의 팬이기도 하다. ㅎㅎ
이번에 만나면 채윤이가 또 어떤 얘기들을 해줄지 우리는 너무도 기대하고 기다렸다.
똑부러지고, 새침하고, 그러면서도 아이답게 천진한 채윤이의 얘기와 놀이를 함께 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나는 채윤이가 태어난 날, 병원에 가서 이 아이를 보았다. 엄마품에 안겨 젖을 빨고, 아기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그 작은 손도 꼭 쥐어보았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큰 것이다.









좁은 우리집 거실이 가득 찼다. 어른들과 아이들과 장난감들로..^^;
나는 이 모습이 너무 좋다. 비록 집은 좁고, 어린 아가들과 어른들이 발디딜틈 없이 한데 모여 앉아 있지만
웃음섞인 대화가 있고, 맛있는 음식도 있고, 반가운 얼굴들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시간이 정말 좋다.    
더 자주 우리집에서, 혹은 친구들의 집에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똑순이에게도 이런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데 모여 얘기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웃음과 마음도 나눌 때의 행복한 분위기를...
나중에 아이들이 더 크면 노래도 같이 부르고, 아이들끼리도 더 재밌게 놀고, 가족들이 같이 몸을 부대끼며 하는 게임같은 것들도 하면서 놀면 더 좋겠지... 그런 날을 나는 마음 속으로 그려보았다. ^^ 








신랑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저녁 준비를 마쳐놓고 아이들과 어른들로 북적이는 거실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신랑. ^^

사실 생각해보면 이날 손님들은 대부분 내 친구들이었다.
결혼기념일을 이렇게 보내고 싶다는 내 제안에 군말없이 '그래!'하고 응해주고, 즐겁게 함께 파티를 준비하고 즐겨준 신랑이 새삼 참 고맙다. 여보.. 고마워~!^^








준비 끝~! 저녁메뉴인 샤브샤브 테이블 세팅을 모두 마친후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
역시... 맛있었다. 장금이 신랑에게 이제 그만 부엌을 넘겨야겠다. ㅎㅎ

이제 10개월된 민결이와 19개월된 연수, 34개월된 승모, 그리고 50개월(다섯살 큰언니!!)이 된 채윤이까지 
네 아이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는 한 사람이 젖먹이러 다녀오면, 또 한 사람이 아이들과 놀러 거실로 나가고, 또 한 사람이 아기 쉬시키러 화장실로 가는 식이라 제대로 건배 한번 다같이 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런 식사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인지라 참 정신없는 와중에도 다들 웃고 이야기하며 잘 먹었다.  

상을 치운 후에는 거실과 부엌에 모여 앉아 아이들 키우며 겪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또 한참 얘기했다.  
하고픈 얘기가 더 많은데, 먼 연신내에서 모인지라 다시 집까지 돌아가기위해 일찍 헤어져야하는 것이 아쉬웠다.
어느새 졸려하는 아이들을 안고 풀어놓았던 짐을 챙겨 친구들은 일어섰다.
사실 제일 졸려한 것은 밤에 일찍 자는 연수였다. ^^;;;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후 식탁위를 정리하다 오늘 받은 선물들을 한데 모아 사진 한장 찍었다. 
진교가 만들어준 '연수 달력', 그리고 수아 언니가 주신 연수 그림책과 모과차.
수아 언니가 직접 담근 모과차는 깔끔하고 맛있었다. 나는 그 차를 성탄절 다음날 아침에 타 마셨는데, 그윽한 색깔과 은은한 향기를 맡고만 있어도 언니랑 다시 마주 앉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마음도 몸이 스르르 풀리고 편해지는 것 같았다.  

아. 경수의 선물인 월남쌈과 과자는 아주 맛있게 잘 먹은 뒤라 사진에 같이 못 담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렇게 많이 받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사진에 담긴 선물들 말고도 좋은 사람들이 우리집에 가득 남겨놓고 간 따뜻한 기운과 즐거웠던 기억 같은 것들이 
연수와 나와 신랑을 모두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좀 정신없었을 것 같아 걱정도 되었지만
늘 똑순이와 조용히 둘이 지내는 날들이 많은 나는 오랫만에 보고픈 얼굴들을 한꺼번에 내집에 모셔서 보고 얘기나눈 것이 참 고맙고 즐거웠다. 









배웅나가 보니 밖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은 반갑지만 눈길은 걱정스러웠는데 다행히 모두 잘 도착했다 한다.

졸려하는 똑순이를 얼른 재워놓고 신랑과 나는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설겆이를 했다.

벌써 2년이나 지났어. 와.. 고마워. 응 정말 생각하니 참 고맙다.. 연수가 건강하게 잘 커주는 게 젤로 고맙다. 그지? 응. 그럼.. 사람들 보니 참 좋다. 맞아. 채윤이한테 스무밤 자고 놀러간다고 약속했는데. 응.. 그럼 1월 중순이겠네. 꼭 가자. 아이들하고 한 약속은 꼭 지켜야돼. 다 기억한단말이야.. 정말? 그럼... 채윤이가 날 너무 좋아하는것 같아(신랑).. ㅎㅎㅎ 새침떼기 아가씨가 정말? 응. 블럭 잘 만들어줘서? 응. 나한테 꼭 놀러오라고 여러번 말했어. 그래.. 그런가보다. 승모는 2월에 생일인데 그때 또 보면 좋겠다. 응.. 경수도 참 고맙다. 그지? 그래.....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9. 10. 27. 23:44



똑똑~!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겆이를 하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노크했습니다. 
문을 여니 앞동에 사는 건우가 엄마손을 붙잡고 서있습니다.
'그릇 돌려주려고..'
건우엄마께서 수줍게 웃으며 건네주신 그릇을 열어보니..









와~~ 김밥입니다~!
갓 싸서 따끈따끈한 김밥이 한그릇 그득 들어있습니다.
넘 맛있어보여서 사진찍기전에 얼른 한개 집어먹고 말았습니다^^;

오랫만에 먹는 김밥은, 그것도 집에서 방금 싼 김밥은 참 맛있었습니다.
건우엄마의 음식실력이 워낙 훌륭하시기도 합니다.
연수는 처음 먹어보는 김밥이었는데, 안에 든 것들을 쏙쏙 빼먹는 재미에 빠져서 3개쯤 혼자 먹었습니다.

건우의 누나들중 누군가 오늘 가을소풍이라도 갔나봅니다. 
밖에서 일하고 공부하던 시절에는 툭 하면 사먹던, 무척 만만하던 음식중 하나인데
집에서 살림하면서부터는 먹기 어려워진 별식입니다.
모처럼 먹어보는 김밥은 넘 맛있어서 곶감빼먹듯 연수랑 저랑 하나씩 먹다보니 점심시간도 되기전에 동이 났습니다.
따뜻한 이웃의 정이 담긴 김밥을 먹고 오전내내 마음도, 배도 참 든든했습니다. 









실은 얼마전 비오던 날에 마침 집에 부추랑 오징어가 있길래 숭숭 썰어넣고 부침개를 부쳤었거든요.
쌍둥이네랑 건우네랑 조금씩 나눠먹었는데 부침개 담아갔던 그릇이 푸짐한 김밥을 담아 돌아온 것입니다.
히힛~~ 이럴땐 참 행복합니다 ^-----------------^ 

비오는 한낮에 함께 부침개를 먹자고 연락할 수 있는 이웃이 있어 참 좋습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는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얼굴만 봐도 좋은 사람들.

우리를 이웃으로 만들어준건 아이들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한 아파트에 살아도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몰랐는데
아이가 태어나 밖에 나가 놀 나이가 되면서부터 조금씩 '이웃'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기 엄마들, 할머니들과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마당에 자주 나와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인사를 드리게 되었어요.
경비아저씨, 청소하시는 할머니와도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한두마디는 꼭 나누게 되었고요.
놀이터에서 늘 함께 노는 형아누나들과도 많이 친해졌습니다. ^^

그중에서도 연수와 개월수가 가까운 수진이, 준태, 건우와는 늘 함께 놀다보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서로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 함께 놀기시작했던 따뜻한 5월에
연수는 11개월, 쌍동이인 수진이와 준태는 13개월, 건우는 17개월쯤이었지요.

봄에 만나 여름을 함께 지나며 아이들은 서툴던 걸음마가 점점 완전해졌고, 
놀이터의 여러 기구들을 하나씩, 한명씩 차례로 마스터해가게 되었습니다.
제일 큰 형아인 건우가 기저귀를 떼고 쉬를 가리게 되는 과정도 신기해하며 함께 지켜보았지요.
뜀박질을 하고, 함께 강아지풀과 온갖 꽃들을 꺽고, 모래를 헤집으며 온여름내 아이들은 즐겁게 놀았습니다.









매일 같이 놀지만 사진은 정작 찍어놓은 것이 거의 없네요.
지난 여름에 찍었던 사진을 찾고 보니, 아고.. 얼마나 지났다고 아이들이 지금보다 많이 어려보입니다~ㅎㅎ

아기 하나 키우는 엄마보다 세배, 네배는 더 힘들 것만 같은 쌍동이 언니는 그래도 늘 씩씩하시고, 아이들에게도 다정하십니다.
언니는 요리 실력도 대단해서 김치도 쓱쓱 직접 담그시고, 이런저런 밑반찬도 대량(?)제작해 초보주부 새댁에게 늘 나눠주시지요.
언니 덕분에 밑반찬있는 밥상을 차리며 고마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










돌아보니 여름내 우리 아이들을 키운건 놀이터 모래밭과 그 앞의 화단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함께 놀았던 친구들과 이웃 아줌마들이 서로, 함께 키워준 것 같아요.

회사일에 바빠 하루 30분도 채 못놀아주는 아빠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친구와 아줌마를 보면 반가워 소리도 지르고, 
엄마가 잠깐 옆에 없어도 아줌마들이 옆에 있으면 무서워하지 않고 잘 놀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주위에 도움받을만한 가까운 친지없이 어린 아가를 키우다보면 문득문득 겁이 날때가 있습니다.
'신랑이 집에 없을때 내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나..'
이웃이 생긴뒤로 그런 걱정이 덜해지고 든든함과 고마움, 그리고 책임감이 생겨났습니다.
이제는 전화해서 급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곁에 있다가 달려와줄 수 있는 이웃이 생겼고,
나도 이들에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웃이 된 것입니다.  










동이 2개밖에 없는 작은 아파트 단지안에서는 물자도 참 잘 돌아서,
지난 여름 포도철에는 아파트의 터줏대감이신 13층 할머니께서 '제부도에 포도사러 가려하니 필요한 집들은 얘기하라'고 벤치에 앉아 공지하신후
주문도 않은 우리집까지도 할머니가 사오신 제부도 포도가 여러송이 도착했습니다. ㅎㅎ
포도 좋아하는 연수는 신이 나서 까치발을 하고 포도를 끌어내려 호호호~ 웃으며 까먹었습니다.









13층 할머니가 좋아~ 포도를 나눠주신 건우엄마가 좋아~~ 포도가 좋아~~~^^










'음.. 제부도 포도도 맛있군~'
연수는 포도가 많이 나는 경북 상주에 친가를 둬서 그런가.. 포도 매니아입니다. ^^









'엄마도 사진만 찍지말고 얼른 나 좀 까줘봐요~' 두 손으로 와구와구 포도를 집어넣고 있습니다.
휴... 포도먹고 나면 그 옷도 빨아야겠구나~
빨래는 많아져도, 연수가 좋아하는 포도를 나눠주시는 이웃들이 있어 엄마는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 



+


가끔 아이들 밥먹이다 지칠때는 서로의 집에 가서 밥 한그릇 더 올려놓고 한끼 뚝딱 함께 해결하기도 하고,
맛있는 것이 생기거나 시골에서 뭔가가 넉넉하게 올라오면 서로 나눠먹고,
새로 만든 반찬을 우리 아이가 잘 먹으면 작은 통에 담아'그집 아이도 먹여보라'며 갖다주기도 하면서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실감하게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

다행히 전세계약이 연장되어 이사를 가지않게 될듯 합니다.
처음 사귄 이웃들과 헤어지지 않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이웃을 사귀고보니 참 좋아서 이제는 어디로 이사를 가더라도 꼭 이웃을 사귀고, 
꽁꽁 막힌 벽과 담을 넘어 얘기를 나누고 정을 나누며 아이들을 함께 키워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9. 6. 12. 21:16


하루밤 곰곰히 생각했어요.
나에게 '독서'는 어떤 것이었나, 책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나는 왜 책을 읽을까..
그래서 한 마디로 독서는 내게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어렵지만 재밌었습니다.

몇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독서는 나의 힘, 독서는 엄마다, 독서는 육아(育我)다... 그리고 독서란 권투다. 

넷 중에 몹시 고민하다 결국 4번을 택했지만 그 한 가지로 독서에 대한 제 생각을 다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생각난건 다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제가 원체 뭐 하나 딱 고르는걸 못하기도 합니다.. 우유부단 30년ㅜㅜ
규칙은 '간단하게'인데... 흑ㅠ

이번 릴레이를 시작하신 inuit 님께서 정하신 규칙은~

규칙입니다.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1-1, 독서는 [나의 힘]이다.

첫 아이를 키우며 부모님과 여러 선배엄마들께도 참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혼자 아이를 키우다보니 가장 자주 손이 가는 곳은 책입니다.
똑순이가 잠든 사이에 짬짬히 읽는 육아책들이 제게 건네준 지식과 격려, 위안과 용기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독서는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불빛과 같아서
초보엄마의 불안을 잠재워주고, 한걸음 한걸음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독서는... 나의 힘입니다.



1-2, 독서란 [엄마]다.

책을 읽으면 엄마품에 가서 안긴듯 편안합니다.
위로도 얻고, 힘도 얻고, 삶의 지혜가 담긴 엄마의 얘기를 들을 때처럼 든든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엄마에게 꾸중을 들을 때처럼 긴장도 되고요.
책을 읽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엄마가 곁에 계셔서 행복하듯이..

책을 열면 거기서 다정한 이웃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를 위해 성심껏 얘기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아기가 엄마의 사랑을 처음 받으며 세상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듯이 
열심히 쓴 좋은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은 따뜻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3, 독서란 [육아(育我)]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나를 키우듯, 독서는 스스로를 보살피고 키우는 방법 같습니다.
나를 치유하고 키우기 위해 때로는 쓴 약도 먹어야하듯, 잘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도 독파해야할 때가 있고,
마음이 슬프고 외로울 때는 따뜻하고 진실한 글들을 읽어 스스로를 다독여줍니다. 
그렇게 사는동안 내내 스스로를 키워야하는 거겠지요.
 
혼자 기고, 서고, 걷는 과정을 어렵게, 하지만 지치지도 않고 즐겁게 배워가는 아이를 보며
스스로를 키우는 '독서'의 과정도 그래야겠다 생각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똑순이가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납니다.^^
독서도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조금씩 더 자라고 더 깊어질 수 있게 
어렵더라도 꾸준히 해가야하는 것 같습니다.
 


1-4, 독서란 [권투]다.

이제, 마지막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저는 사실 권투를 할 줄 모릅니다. 음.. 그래도 본게 있으니(아니면 본능적으로!^^) 링에 세워 글로브를 끼워주면 막고, 칠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권투를 떠올린 건,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때문입니다.

 
왼팔을 쭉 뻗어봐라
한바퀴 돌아봐
네 주먹으로 그린 원이 너라는 인간의 크기다.

알아듣겠니?
원안에서 손이 닿는 만큼만 손을 뻗어야 다치지 않고 살수 있지.
그런 인생을 어떻게 생각해?

시시해

권투가 뭐냐?
원을 주먹으로 깨부수고 밖의 것을 쟁취하는 행위야.
원밖에는 강적이 우글우글해.
적들이 원안으로 치고 들어올 거다.
맞으면 아프고,
때려도 괴롭다

그래도 할래?
원안에 있으면 안전한데.

할래.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 영화 'GO' 중에서 스즈하라와 아버지의 대화. (영화의 원작은 가네시로 가츠키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이예요)


재일조선인 아버지가 열살쯤된 어린 아들이 권투를 가르쳐달라고 하자 이렇게 설명합니다.
'네 주먹으로 그린 원이 너라는 인간의 크기다'.
그리고 '권투는 그 원을 깨고 밖의 것을 쟁취하는 행위'라는 얘기의 울림이 하도 강해서 제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다가
'독서'를 생각하는 마당에 툭 튀어나왔습니다.

나를 넘어서서, 원밖의 세계를 만나는 것. 내 안에 쟁취하는 것. 그렇게해서 내 원의 크기를 넓혀가는 것.
원을 깨고 일단 손을 뻗지 않으면 안전하지만 답보된 현재에 머무르게 되겠지요.
원을 깨고 나가 새로운 것을 알고, 그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아픈 과정을 통해 한 걸음 성장하는 것이 독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식은 실천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줍니다.
일단 '매트릭스' 밖으로 빠져나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면 그 사실을 알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게 됩니다.
이전의 삶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마음은 참 불편합니다.
그래서 새댁, 신랑에게 열심히 육아책을 함께 읽자 권하고 있습니다. ^^
(첨엔 바로바로 읽고 둘이 같이 토론했는데... 똑순아부지, 요즘은 넘 바쁘셔서 몇 권 밀리셨다지요? 으흠흠흠~~~)
새댁도 그 마음의 불편함을 많이 지닌채 살아갑니다.
인식과 실천의 괴리를 조금씩 좁혀가는 삶을 살아야할텐데요...

독서가 저에게 불편함만 주는건 아니고요, 
실은 더없이 다정한 선학들과 작가들과 이웃들의 아름다운 고민과 삶을 배우게 해줄 때가 더 많습니다.
좁고 작은 내 세계의 벽을 깨고 넓고 깊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지요.
쓰다 보니 주제에서 벗어나.. 독서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웅.. 육아서 말고는 거의 책을 안보고사는 요즘인지라 쓰고보니 너무 부끄럽습니다ㅠㅠ

 
 
2.
어릴땐 숙제가 참 싫었는데, 어른이 되서 그런가.. 숙제가 떨어져야 겨우 어떤 하나를 진득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쿨럭~~--;;;
그래서 릴레이를 시작하신 inuit님 (독서란 [자가교육]이다)과
유정식 님과 (독서란 [성장]이다, 이 분께서 토댁님께 바통을 넘기셨고..)
토마토새댁님께 (독서란 [밥태우기]다! ^^ 언냐, 늘~~~ 감사해요, 오늘 똑순이가 낮잠을 안자고 넘 열심히 논 덕분에 글이 왕 늦었어요ㅠ)
감사하단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3.
이 바통을
블로그를 통해 사귄 보석같은 벗, YD님과 
따뜻하고 다정하고 깊은 속을 지닌 아름다운 아가씨, 히로미 님께 넘깁니다.  
바쁜 일이 있으시면 천천히 해주셔도 괜찮아요, 두 분~^^ (6월 20일까지 한다네요~~)
(6/15 덧. YD님이 숙제를 끝내셨네요~ 네이버블로그라 트랙백을 못 거신듯하여 제 본문에 링크해둡니다. "독서란 [양념]이다" ^^)

아무래도 다 쓰고 생각해보니
이 릴레이는 첨에 inuit님이 의도(?)하신데로
책읽기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해주는 효과 만점 숙제 같습니다.
음... 시원한 여름밤, 똑순이 재우고나면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꼭!! 꼭....)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9. 3. 10. 22:42


지난주 일요일,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전세계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제정된 여성의 날을 맞아...
새댁도 육아와 살림에 평등하게 임할 것을 신랑에게 촉구하며 과감하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려고 했으나
거듭되는 회유와 눈물과 반성과 다짐을 받고
혼자 외출하겠노라는 선언을 철회하고 세 식구 모두 함께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금요일 회사 회식후 새벽에 들어와 
토요일에 하루종~~일 작은방에서 잔 신랑에게 있음을 밝혀둡니다.

회식에는 새댁도 대찬성입니다! 모처럼 맛있는 것도 먹고 스트레스도 풀면 좋지요.
근데 토요일에 똑순이랑 새댁이랑 같이 안 놀아주고 '혼자' 하루종일 자서..
새댁도 급기야 일요일엔 나도 '혼자' 좀 쉬겠노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흠!!!

회사일이 많아 늘 야근하고.. 주말에도 자주 출근하고..
하루 종일 자주기라도 하지 않으면 그 피곤을 풀 길이 없다는걸 잘 알면서도..
똑순이랑 늘 둘이 지내는 새댁은 
주말만큼은 신랑이 똑순이랑 좀 더 놀아주고, 새댁이랑도 좀 더 얘기도 많이 나누고 같이 밥도 먹고.. 그러길 바라게 됩니다.
똑순이도 새댁처럼 아빠랑 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을 꺼예요.ㅠㅠ

사실.. 꼭 신랑에게 화가 나서 혼자 외출하려한 것은 아니예요.
너무 아이랑만 붙어지내다보니 가끔은 혼자 쉬고 싶기도 합니다. 마침 요즘이 좀 그랬고요.  
그래서 가끔 신랑은 새댁에게 혼자 잠시 나가서 영화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오라 합니다.
하지만 새댁은 똑순이랑 잠깐도 떨어져 있기가 어렵습니다.
모유는 유축해서 먹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똑순이가 잠이 오면 엄마품만 찾고, 잘 놀다가도 엄마가 안보이면 불안해해서 
신랑 혼자 똑순이 보기가 힘듭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번에는 신랑에게 똑순이를 부탁하고 잠시 바람을 쐬고 오고 싶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그리해서
혼자(미술관이 일산에 있어.. 가면서 명이님께 연락해볼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더랬습니다 ㅎ) 가려던 미술관에 셋이 다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는 분이 표를 주신게 있었거든요.(안그랬음.. 사실 갈 생각을 못했을거예요ㅠ)







"엄마, 어디 간다고?"
그러고보니 똑순이의 첫 미술관 나들이입니다. 우와~~~ 똑순아, 아주 큰 그림책 보러가자~~^^


새댁의 여성의날 맞이 대투쟁의 결과로.. 
세 식구가 모처럼 문화생활을 하게 된 전시회는 고양 아람미술관에서 열린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전 입니다.

고양 아람누리는 처음 가봤는데 주차장이 지하가 아니라 우선 맘에 들었고,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참 잘 되어있어 좋았습니다.
연신내에서도 가깝고요.






일요일.. 12시쯤 도착한 미술관은 한산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 데이트온 연인들, 혼자 여유롭게 그림을 보는 사람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림을 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똑순이가 엄마 배속에 있을때 신랑과 신랑 청년회 동료분들과 함께 '반고흐전'을 보러 갔었는데
그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인파속에 끼어 후다닥 보고 나와 많이 아쉬웠었거든요.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화폭속에 담고자 했던 인상파는
어두운 스튜디오의 낡은 아카데미즘을 거부하였고 종교나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눈을 풍해 보이는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시회 팜플렛의 소개글 중에서


아마도 19세기 말쯤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화가들중에도 새롭게 열리는 '근대'라는 시대의 공기를 호흡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실내에서, 모델을 세워두고 그리는 정형화된 그림 그리기와 살롱에서의 전시회를 거부하고 
밖으로, 풍경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세상이 모두 '혁명'에 빠져들던 시기니만큼 미술에서도 '혁명적 시도'들이 있었겠지요.. 
새댁이 보기에는 그저 한없이 차분해보이는 풍경 그림들이 당시로서는 무척 혁명적인 그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림에 문외한인 새댁의 눈에는 모든 그림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숲과 마을, 풍경과 사람들..  아, 일하는 사람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는 이런 귀절이 나옵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 보아도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피사로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는 일하는 사람들, 농민들이 많이 나와서
새댁은 인상파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동안 똑순이는 엄마품과 아빠품에 안겨
잠깐씩 액자속에 들어있는 오래된 그림들을 보기도 했지만
주로는 그림보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구경했습니다. ^^;

유모차에는 안 앉아있으려고 하는 통에 내내 똑순이를 안고 봤는데
마침 그림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려고 설치해놓은 어른 무릎 높이의 양철 보호대가 있어
똑순이가 잘 붙잡고 서 있었습니다.
고슴도치 엄마눈에는 그 모습이 꼭 발레하는 소년같이 예뻐보였는데.. 
전시장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그 모습을 담아오지 못해 아쉽습니다.





미술관 입구에 크게 프린트되어 있던 피사로의 '창 밖의 풍경, 에라니 쉬르 엡트'라는 그림 앞에서 똑순이랑 사진을 찍었습니다.
요녀석.. 엄마 볼을 잡아당기고 있네요. 아야야~~
햇살이 따뜻한 날, 모처럼의 외출에 똑순이도 신났습니다.








그림을 보고 나와 고양 아람누리 안에 있는 '산 레모'라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일 싼 파스타가 13000원이나 하는 비싼 밥집이어서 새댁네 한달 부식비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ㅠ
어린 아가를 데리고 들어서는 새댁네를 보고
얼른 작은 방으로 안내해주고 베이비체어를 가져다주어서 참 좋았습니다.

사람많은 곳에 가서 아가랑 밥을 먹으려고 하면 낯가림하는 똑순이가 울지나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또 이유식을 먹이다보면 아무래도 좀 부산스럽고 소란해 다른 손님들께도 미안해지는데 
아늑하고 독립된 공간을 주니 마음이 무척 편했습니다.
덕분에 똑순이도 즐겁게 이유식 먹고, 엄마아빠 밥먹는 동안 내내 잘 놀다 나왔습니다.
음식 맛도 아주 좋았어요~^^

고양 아람누리라는 문화공간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번 전시회(3월 25일까지 해요!)는 입장료도 저렴한 편(어른 1만원, 영화 한편 보는거랑 비슷하지요, 똑순이랑 같이 볼 수 있으니 더욱 좋습니다^^)이었어요.
바로 건너에 일산 호수공원이 있어 산책도 하면 좋겠더라구요.
다음엔 도시락싸들고 와서 그림도 보고, 호수공원에도 가봐야겠어요.^^


+


똑순이도, 새댁도, 신랑도 모처럼의 문화생활과 외출로 행복한 '여성의 날'을 보냈습니다.
저는 행복했는데... 다른 여성분들도 행복했는지.
힘든 분들도 많을텐데.. 혼자 너무 편히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 조금 무겁습니다.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아이들도, 지구인이 모두 행복해질텐데.. 
아자아자~!!!  여성이 행복한 세상을 조금씩 더 댕겨오기 위해 남성, 여성 모두 화이팅화이팅입니다~!!


덧.
'혼자 놀기'보다 '셋이 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셋이 같이 노니까 더 재미있고, 셋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때로 혼자있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 앉아,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이란 것을 한번 멀찍이 떼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잠도 한숨 자고.. 하는.
신랑에게도, 새댁에게도 모두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Posted by 연신내새댁
신혼일기2009. 2. 22. 21:35


결혼을 한뒤 '고향집'이란 말을 '친정'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은 어떤 곳일까요.

결혼전에도 고향집은 편안한 곳이었지만 엄마아빠의 걱정어린 잔소리가 마냥 싫을때는
서울 작은 내 자취방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보니
친정은 우주에서 제일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생활을 시작한 스무살 이후로
'집에 내려가는 길'은 늘 제게 
서울에서의 숨가쁜 삶에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이었습니다.

그 쉼표는 대개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따스한 것이었지만
때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휴식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귀향도 있었고
패잔병이 된 기분으로 다시 서울행 고속버스에 오르기도 했지요.

남한강과 섬강을 건너고 대관령 높은 령마루를 넘어내려가는 길... 
이제는 그 길을 제 분신같은 아기를 안고 갑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가 저를 데리고 가는 날도 오겠지요.
삶이란 참 신기한 것이구나..
열어도 열어도 계속 예쁜 상자가 나오던 어린 시절의 색종이 상자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재미있는 책처럼..
문득 삶의 다음 장이 궁금해집니다.

+

지난 연말과 이번에 아파서 내려갔을때 친정에서 찍은 풍경들입니다.
  




+ 햇살이 밝게 떨어지는 친정집 거실에서 아빠가 큰조카와 똑순이를 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얼마전에 작은 조카도 태어나 이제는 세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신 아빠.. 아빠 주름살이 문득 낯섭니다. 






+ 네살(30개월)된 조카가 제 똑딱이 카메라로 할아버지를 찍었습니다. 아빠의 어색한 표정..  저는 이 사진이 참 맘에 듭니다.^^  



  


+ 친정에 가면 하루종일 먹을걸 입에 달고 살게 됩니다.
오랫만에 본 딸에게 조금이라도 뭔갈 더 먹이지 못해 애쓰시는 엄마 덕분에. 
한때는 얼굴만 보면 싸우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울엄마없으면 못 살 막내딸입니다. ^^ 






+ 경포바다 앞에 선 할아버지와 두 손주^^
친정에 가서 바다를 안보고 온적은 없었던것 같아요. 바다앞에 서면 답답했던 마음이, 번잡했던 머리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큰 답은 못 구해도.. 다시 또 힘을 내보자 마음잡고 돌아오곤 했던 바다.






+ 경포에 가서 '입도 쩍' 못하고 오면 안되지요~ 겨울호수 앞에서 먹는 오뎅맛이 끝내줍니다. ^^




+ 경포호수 앞에 선 외할머니와 똑순이






+  호수앞.. 손주들을 안고 사진찍는 부모님의 팔이 어쩐지 살짝 무거워 보입니다. ^^;
그새 많이 늙으셨나보다.. 철없는 딸 마음이 조금 무거워집니다.






+ 요리솜씨 좋으신 울엄마, 경단을 만드십니다. 할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졸졸 따라다니는 귀여운 조카녀석이 한몫 거드네요~^^






+ "예원이가 할머니랑 만든거야~"라고 설명중인 예쁜 녀석 ^^
친정집의 첫조카인지라 새댁과도 참 정이 많이 든 녀석입니다. 울엄마(할머니)를 많이 닮았지요. 이 아이를 보면 왠지 이집딸인 울언니와 제 어린시절 생각이 더 납니다. ^^




+ 할머니가 화분 물주실때도 어김없이 거들고 나섭니다. 아고.. 울 똑순이는 언제 저만큼 크나~~~^^



 




+ 사촌누나와 똑순이.. 이렇게 보니 다큰 녀석같네~!
새언니가 둘째를 막 출산할 무렵이어서 큰조카가 할아버지댁에 잠시 내려와있었습니다.
두 녀석.. 아옹다옹 은근히 신경전도 벌이면서 그래도 재밌게 잘 지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형제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 외가집에 온 똑순이, 아주 신났습니다. 외할아버지랑 아침부터 새보러 간다고 마당에 나섭니다. 2월치고는 날이 많이 포근해서 이번에 집에 있을때 똑순이랑 바람을 많이 쐴수 있어 참 좋았어요.  
아파트 놀이터 한번 나가자고 해도 옷입히고 유모차 태우고.. 준비가 넘 힘들어 외출 엄두를 잘 못내는 서울에서와는 달리
친정집에서는 담요하나 덮거나, 모자씌어 포대기에 업기만하면 바로 마당에 나설수 있습니다.
마당있는 집이 참 그리운 서울 생활이네요.







+ 외할머니와 공부하는 똑순이~ 잼잼 곤지곤지 짝짜꿍을 배우다...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중^^;;






+ 요즘 뭐든 붙잡고 일어서는 똑순이, 빨랫대를 붙잡고 일어선다는게 그만 빨래대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
빨빨거리며 다니는 똑순이 따라다니느라 외할아버지 아주 바쁘십니다. ㅋ




+ 친정집 마당에서 건너다보이는 앞산아래 이웃집 담장입니다.
똑순이 유모차에 태워 가까이 가서 사진 한장 찍어왔습니다.
지금은 개집이 있는 바로 저기서.. 어린 시절에 새댁과 친구들은 소꿉장난을 했습니다.
볕이 잘드는.. 무척 따뜻한 곳입니다. 바로옆 석류나무에서는 잘 익은 석류가 탁탁 터지던... 
저기 앉아 친구와 흙으로 밥짓고 꽃으로 반찬만들던 까맣고 작은 다섯살배기 여자애가
이제는 아기엄마가 되어 다시 와 섰네요.   
시멘트보루꾸(블록?) 담장이 근 30년을 그대로 서있는게 신기합니다. 쓰러지기 전에 사진 한장 찍어두자싶어 얼른 나섰습니다.







+ 앞산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걸어가면 새댁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나옵니다.
산속에는 친구들과 소꿉장난거리를 모아두던 아지트도 있었습니다.
그 아지트, 다시 올라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저 산 언덕에 올라 대보름엔 달구경하고, 쥐불놀이하던 기억이 선합니다.


어린시절 친정집 앞길을 달랑달랑 뛰어다니던 저를 지켜봐주던 앞산의 소나무들이
오늘은 똑순이를 지켜봐주고 있었습니다.
30년 세월을(실은 그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도..) 말없이 서서 우리 가족과 우리 동네 이웃들을 지켜봐온 나무들... 
그 나무들에게 똑순이를 잘 부탁하고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모두 떠난 뒤에도 이 나무들은 이 곳과 다정한 사람들을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외가에 가니 똑순이 볼이 빨갛게 터서 시골아가같이 되었습니다. 새댁은 그게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똑순이가 좀더 크면.. 외할아버지따라 논에도 가고 냇가도 부지런히 돌아다녀서 더 까맣고 빨간 볼을 가진 소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