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전날 밤, 똑순이가 잠든 후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청리할머니께서 보내주신 도토리가루 봉지를 열었다.
청리할머니는 남편의 외할머니, 그러니 우리 시어머님의 어머니시다.
다른 조부모님께서 다 돌아가신터라 시외할머니가 내게는 시댁의 제일 큰 어른이시다. 할머니는 시댁이 있는 상주 시내에서 좀 떨어져있는 청리라는 높은 산골마을에서 혼자 사신다. 친정이 가까운 우리 시어머님이 그래도 자주 뵈러 다니시지만, 시골집에 혼자 계신 할머님을 생각하면 먼 도시의 자손들은 마음 한구석에 걱정이 일곤한다.
그래도 할머님은 씩씩하시다.
팔십노구에도 할머니는 가을내 부지런히 뒷산을 다니시며 도토리를 주워다 도토리가루를 만드셨다. 도토리가루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주워온 도토리들을 멍석위에 펼쳐놓고 햇살과 바람에 말리면서 썩은 놈을 골라내기를 여러날 해야하고, 그 뒤에는 망치나 돌로 두드려 딱딱한 도토리 껍질을 깨고 속살만 모아야한다. 추석에 모인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두 달려들어 도와도 끝을 보기 쉽지않은, 그래서 자식들이 도시로 돌아간 후 혼자 남은 할머니가 또 여러날 밤 뒤적이며 고르고 까고 하신 후에야 겨우 전반부가 끝나는 일이다. 후반부에는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 도토리가루를 물에 섞어 고운 면보로 거르고, 그 뽀얀 국물을 다시 여러번 물을 갈아가며 앙금을 잘 가라앉혀야 한다. 그 앙금을 펴 말리는 수고는 또 얼마인지..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보드랍고 고운 도토리가루 한 자루가 완성되는 것이다.
힘드니 이제 그만 하시라고 해도, 본인도 힘들어 이젠 못하겠다.. 하시면서도 가을이 되고 뒷산에 도토리가 떨어지면 또 그게 그렇게 주워주고 싶으시다는 할머니는 올해도 어김없이 도토리 가루를 만드셨다. 손에 힘이 남아있는 날까지는 아마 평생토록 해오신 이 일들을 멈추지 않으시리라... 할머니는 도토리가루를 잘 갈무리해두셨다가 가족보다 자주 보고 큰일 작은일 의지하며 사는 이웃들을 불러 따뜻한 도토리묵국을 한번 끓여 먹이기도 하고,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집에 오면 또 큰 가마솥을 열어 할머니품같이 푸근한 도토리묵을 쑤어먹이시기도 하고, 이따끔 생각나는 귀한 사람에게 한 봉지 꽁꽁 싸서 선물로 주신다.
이렇게 귀한 도토리가루를 할머니께서 서울 우리집으로 두 봉지 부쳐주셨다.
손부의 친정, 그러니 강릉 우리집에 보내시는 것이다. 도토리묵을 좋아하시는 친정 부모님은 작년에도 할머니가 주신 도토리가루로 맛있게 묵을 쒀드시고, 올해 연수 돌잔치때 만난 할머니께 내복 한벌을 사드리며 감사인사를 하셨었다.
생일 전날밤, 9시가 넘은 시각에 이 봉지를 연 것은 내일 아침상에 놓을 도토리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며칠전 엄마가 전화로 '그리 어렵지 않으니 너도 한번 해보라'며 만드는 법을 알려주셔서 일간 한번 해봐야지 하고 있었지만, 내 생일에 먹을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수는 잠들고, 남편은 오랫만에 모임에 가서 회포를 풀고 있는 그 시간에 평소대로 내일 아침에는 뭘 먹나 생각하다가 미역국과 함께 '도토리묵'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이다.
내가 손수 차리긴 하지만 그래도 내 생일상이 아닌가.
저녁 먹기 전에 엄마께 받은 전화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일이 네 생일인데 엄마가 찰밥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며 미리 축하전화를 하셨다. 지난달, '네 생일이 마침 주말이니 집에 와서 생일밥 먹고 가지'하는 엄마 말씀에 그러마고 했다가 일주일전쯤 친정식구들이 신종플루라는 진단을 받는 바람에 그 계획이 취소됐었다. 다행히 식구들은 그리 심하게 앓지않고 주말 전에 모두 잘 나으셨지만 엄마는 어린 연수가 혹시 옮기라도 할까봐 진단을 받자마자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셨다. 그런 사정으로 못 먹이게된 막내딸의 '생일밥'이 엄마는 마음에 걸리셨던 것이다.
이제는 다큰 딸을 아직도 더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엄마 마음이 감사해서 코끝이 살짝 찡해왔다. 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아유~ 괜찮아. 내가 엄마한테 맛있는거 해드려야하는 날인데 못해드려서 죄송해요. 다음에 가서 맛있는거 꼭 해드릴께! 이 추운날, 나 낳느라고 고생많았지? 고마워, 엄마~~'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전화를 했던 탓일까... 나를 위해, 그리고 멀리 있는 엄마께 마음으로나마 상을 차리는 마음으로 도토리묵을 조용히 만들었다.
도토리묵은 도토리가루 푼 물을 천천히, 아주 오래 끓여서 만든다.
바닥까지 힘을 줘서 계속 젓지 않으면 금세 눌러붙기 때문에 팔이 좀 아프더라도 천천히 저어줘야한다.
도토리묵을 저으면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추운 날, 가을 농사 마무리가 미처 끝나지 못했었나... 쌀가마니를 담는 일을 저녁까지 거든 만삭의 엄마는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진통을 하고는 새벽 동틀 무렵 나를 낳으셨다, 따뜻한 안방에서. 나를 낳고 나니 아침해가 막 뜨고 있었다고 했다. 세살, 두살이던 언니와 오빠가 내 울음소리에 깨서 어린 동생을 보러 왔겠지..
내가 나를 존대하는 것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존대하는 일이리라..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키워주신 우리 부모님을 존대하는 일이리라. 그러니 나는 어떤 경우에도, 나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돌봐야지. 묵을 만드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은 내가 엄마가 된 뒤 그전보다 훨씬 깊게 느끼고 바라는 것이다. 연수가 언제, 어떤 경우에서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주었으면.. 그래서 스스로를 돌보고 아꼈으면 좋겠다고 나는 바랬다.
아침에는 조개살을 넣고 미역국을 끓이고 지난밤에 만든 도토리묵을 썰어 올려놓았다.
시외할머님의 정성이 가득한 도토리묵 한 접시, 그리고 왠지 엄마 냄새가 나는것 같은 미역국만으로 차린 단촐한 생일상.
생일에 왜 미역국을 먹는지 그제야 나는 알것 같았다. 그건 나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 그 분,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뜻일 것이다. 나를 낳고 그 아침에 우리 엄마도 달게 미역국을 드셨겠지.. 밤새 진통하셨으니 입은 얼마나 깔깔하셨을까.. 그래도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위해, 기운을 차리기위해 엄마는 할머니가 끓인 미역국에 밥을 꾹꾹 말아 드셨으리라.
나도 그랬다. 연수를 낳고 얼마나 많이 미역국을 먹었던가. 대접으로 며칠, 아니 몇달을 계속 먹었다.
그러니 미역국은 어머니의 국이다. 뜨거운 '어머니의 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나는 마음으로 멀리 있는 엄마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더없이 다정하고 엄한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셨던 아버지께도 감사와 사랑을 보냈다.
요 콩알만한 녀석이 엄마의 생일 밥상을 함께 지켜 주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 새벽에야 들어온 남편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아침이었다. (마누라 생일에 미역국도 끓여주지 않고, 심지어 생일케잌도 하나 사들지않고 덜렁덜렁 들어온 우리 신랑은 이 시대 진정으로 '간큰 남자'가 아닐까 싶다..--+)
아침상은 너무도 소박하였으나 점심에는 시이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잡채를 먹으며 많은 시댁 식구들께 축하인사를 받았고 저녁엔 오리고기도 얻어먹었으니 생일은 거하게 잘 치르긴했다.
멀리서 시어머님은 축하전화도 해주시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도 부쳐주셨다. 남편은 물론 시동생들께도 형수의 생일을 잘 챙겨주라고 옆구리를 쿡쿡~! 찔러주시는 어머님을 보며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른 어머니는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더없이 귀하게 생각하고 아낌없이 축하해주시고픈 것이다.
건강하게 잘 살아야겠다.
그것이 제일 큰 효도일 것이므로.. 그리고 나를 아껴주고 축하해준 모든 분들께 그 고마움을 갚는 길일 것이므로.
똑순엄마 우가짜짜, 서른셋에도 화이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