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펜'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9.05.25 예쁜 날
  2. 2019.04.29 담장 아래
  3. 2019.03.24 봄바람
  4. 2019.02.09 생선
  5. 2018.10.20 가을 한 때
  6. 2018.10.01
  7. 2018.09.29 마을 아이들
오늘 그림2019. 5. 25. 22:45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다.
덥다고 옷을 걷어올려 배를 다 내놓고 잠든 연제의 옷을 내려주고, 창문을 닫았다.
창문 밖에는 시원한 밤공기를 반기며 뛰어노는 동네 아이들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한낮에는 많이 더웠다.
언제 따뜻해지나 했는데 갑자기 여름이 되어버린 듯-
날씨가 점점더 종잡기 힘들어진다.

1월부터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
단지 안에 있는 가정미술 교습소 선생님께 일주일에 1번, 2시간 동안 배우는데
붓글씨를 쓰고 그림을 같이 그려넣는다.

5월에는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있어서
아이들 선물로 나태주 시인의 시구를 적은 작은 작품을 하나 만들어 주고
엄마아빠께는 편지봉투에 작은 글씨와 카네이션을 그려서 드렸다.

아이들을 잘 키우지는 못하는 엄마지만
아이들 덕분에 참 많이 행복하기는 한 엄마.
그게 요즘의 나인 것 같다.

더 잘 먹이고, 더 튼튼하게 키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더 다부지게 가르치고, 똘똘하게 성장하도록 다잡아주지도 못하고..
그저 나는 예쁘구나, 고맙구나.. 바라보고 안아주고 내버려둘 때가 많다.







지난 주말,
아이들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노는 동안
나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어느새 초록 나뭇잎이 무성해지고
장미꽃이 넝쿨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파트 풍경을
수첩에 그렸다.
텃밭에 물을 주는 고등학생같은 큰언니, 자전거타는 중학생 아이, 공놀이하는 초등 아이들, 산책하는 어른들..

우리들의 삶에는 힘든 순간이 많고
세상도 험한 세상이지만
삶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보내려고하는 예쁜 마음들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꽃향기가 섞인 선선한 오월의 저녁 바람과 함께
그리워질 것이다
이 날들이.





Posted by 연신내새댁
오늘 그림2019. 4. 29. 15:18




신도시가 만들어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미사로 이사오고 어느새 세 번째 봄을 맞고 있다.
신축 아파트 단지의 조그맣던 나무들도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고
호수공원이며 전철역과 상가 공사는 여전히 뚝딱뚝딱 쿵쿵쿵 진행중이지만
건물들도 꽤나 많이 완성되었다.

사람들의 삶도 많이 뿌리내렸을까?
우리 꼬마들도 나도 익숙한듯 낯선듯 적응하며 살아가고있다.
이 동네의 사람들은 모두 신도시로 입주한 이방인들.
이 동네는 원래 비닐하우스와 농원, 야산들이 있는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 옆동네로
하남의 구도심과도 먼, 한적한 변두리였다.
종류가 참 다양한 새들이, 곤충들이 이 마을의 옛시절을 조금 알려준다.

큰 도로들이 생기고 고층 아파트들이 지어지면서
아파트와 찻길 사이에 방음벽들도 높게 지어졌다.
이사하고 한동안 길을 걷다가 내가 제일 많이 한 일중 하나는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들의 사체를 치우는 일이었다.

그냥 보고 지나갈 수가 없어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살짝 싸서 집어올린후 가로수 나무 밑 풀숲에 눕혀주고 풀잎이나 나뭇가지들로 덮어주는 일.

한동안은 하루 걸러 하루마다 새들을 묻어주어야 했다.
아무 것도 없던 땅에 생긴 투명한 유리벽.
나는 그저 묻어주는 것밖에 못했지만
관청에 전화를 걸어 민원을 넣어준 분들 덕분에
반년쯤 뒤엔 유리벽에 까만 썬팅지로 새들의 그림이 붙었다.
날아가는 새, 앉으려는 새..
새들이 동료들의 그림이라도 보고 조심할 수 있도록..

미안하다.
산다는 일이 이렇게 미안한 일이구나.
방음벽 담장 아래 올해도 민들레가 많이 피었다.
꽃처럼 피어나길 고운 생명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9. 3. 24. 22:24

잠든 아이들이 콜록콜록 기침을 한다.
연수는 어제 밤에 열이 높아 힘들어하다가
오늘 아침에 병원에 가서 독감 진단을 받았다.
연호도 열이 있긴한데 심하지않지만 가래와 기침은 더 많다.
내일 아침엔 연호도 병원에서 검사를 해봐야할 것 같다.

봄들어 조금씩 쿨쩍거리던 아이들 감기가 지난주중에 비오고 날이 추워지면서 심해졌다.
미세먼지는 덜해져서 좋았는데
친구들과 찬바람쐬며 놀이터에서 노는걸 놔뒀더니 주말에 탈이 났다.
연수는 밖에서 많이 놀지도 않았는데
학교 수업들 들으며 바람속에 오고가는게 힘들었나...
겨울내 집에만 있으면서 체력이 약해진 것같기도 하고ㅠ

나도 학기초라 아이들데리고 좀 종종거리고
나 나름대로 겨울방학동안 꼼짝못하고 집에만 있어 답답했다고 오랫만에 친구들 얼굴도 보고 나름 먼 외출도 하고 다녔더니
기침감기랑 몸살이 와서 콜록거리며 밤마다 일찍 이불덮어쓰고 자줘야했다.

아이들이 아플때나 내 몸이 아플때는 ‘아 아프지만 않으면 정말 바랄게 없겠다’ 생각하다가도
아픈 것이 낫고 나면 또 다른 바램들, 속상한 것들로 마음을 끓이곤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더 바랄게 없다.

아이들이 아프면 어깨에 힘이 저절로 빠진다.
잘 챙겨주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살뜰히 보살펴주지도 못하면서
뭐 대단하게 잘 해주는 엄마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화내고, 혼내고 했었나... 싶어
미안하고 부끄럽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나 혼자 바람 좀 쐰다고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광화문 나들이를 갔었다.
영화를 한편 예매해놓고 이리저리 걷다가 덕수궁 석조전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단아한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다.

크지는 않지만, 대한제국 황실의 궁전이었던
석조전의 은은한 베이지색 벽돌들과 기둥들.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황실의 기품이라고 해야할까..
서울 도심에 남아있는 1900년대 초반의 다른 오래된 건물들-교회, 은행,학교 등-과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봄바람을 쏘이고 오니 기분이 참 좋았다.
몸은 좀 힘들었지만 새로운 기운도 나고.

아이들은 어떨까.
새 학년, 새로운 친구들 선생님을 만나며
새로운 자극도 받겠지만 힘든 것도 많겠지..
무엇보다 지금은 몸이 고달픈 것 같고ㅜㅜ

아픈 시간을 통과하며 얻는 것이 있기를..
새롭게 더 단단해지고 여물어지는 것이 있기를.
내가 그렇게 보살필 수 있고, 아이들이 힘을 내서 부디 잘 견디고 성장해주기를
봄바람 속에서 기도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9. 2. 9. 20:46




명절에 시외가에 들렀더니 차례상에 올렸던 큰 조기를 두 마리나 싸주셨다.
불에 잘 구워진 조기에서는 훈제한 생선처럼 연기 냄새도 나고 살도 부드러워서 아이들이 맛있게 참 잘 먹었다.

한 마리는 그제 낮에 먹고
오늘 저녁에 다섯 식구가 큼지막한 한 마리를 마저 데워 잘 먹었다.
밥 한공기 다 먹었는데 머리랑 여기저기 속살들이 남아있어서
밥을 조금 더 퍼와서 내가 마저 발려먹었다.

“옛날에 엄마 어릴때.. 엄마의 할머니랑 증조할머니가 생선 머리를 엄청 잘 드셨어. 머리만 있어도 밥 한 공기는 뚝딱 할 수 있다고 하셨어~ ‘어두육미’라는 말도 있거든..”

생선 머리를 발려먹으며 아이들과 해산물이 많았던 고향 밥상 이야기, 젓가락으로 슬쩍 건드리고마는 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생선머리를 싹싹 잘 발려드시던 할머니들, ‘어두육미’라는 말의 여러가지 의미.. 이런저런 얘길 재밌게 나누었다.

연제가 “엄마, 외갓집에 증조할머니가 계실 때
내가 만화보러 할머니 방에 가면 할머니가 맨날 맛있는걸 주셨어~” 하고 말했다.
“사탕같은 거?”
하고 연호가 묻자
“응. 그런거. 마카롱이었나? 그게 이름이 뭐지?”
“카라멜?”
“어 맞아. 엄청 맛있었어~”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기억되고 있어서 참 좋았다.
달콤한 사탕에 담긴 증조할머니의 정을 아이들도 크면 더 알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함께 했던 추억, 따뜻한 기억들 속에서.

설을 잘 보내고 왔다.
시댁 어른들과 친지 분들이 주렁주렁 싸주신 먹거리들을 보따리보따리 들고와서
하나씩하나씩 꺼내먹으며
시골마을에 내려앉던 햇살과 시댁에 옹기종기 모인 자식들, 손주들보며 좋아하시던 얼굴들 기억한다.

자주 가야지.. 마음먹은 것을 잘 실천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8. 10. 20. 21:26



친정 부모님들이 홍시와 밤, 김치 등 가을 먹거리를 풍성하게 담아서 택배를 보내주셨다.
아이들 맛 보여주라고..
제 때에, 그 계절의 맛을 보여주고 싶으셔서.
지금 한창 자라고있는 밭의 배추와 무를 솎아서 담근 김치까지.
시댁에서는 햇고구마를 한 박스 캐서 보내주셨다.

덕분에 신도시 아파트, 텃밭농사도 안짓는 우리집 베란다에도 가을이 도착했다.





아이들 키우는 일이 참 쉽지 않다.
제 때에 무언가 필요한 것들을 잘 채울 수 있도록 보살피고 가르치는 일을
나는 잘 하지 못해서
우리 아이들은 공부며 생활습관, 건강.. 여러모로 허술하고 부족한 면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을 두루 잘 보살피는 주위의 언니들이나
후배맘들을 보며 참 대단하다.. 생각하고 반성할 때가 많다.
도시의 복잡하고 바쁜 삶속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뜰하게 살림하며 살아가는게 참 쉽지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잘 해내시고들 계실까..
정말 부지런히 애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살수록 느낀다.





음식이 때가 있듯 아이들 키우는 것도 다 때가 있겠지..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 때인지..
가을 햇볕 아래 많이 뛰어놀며 알밤처럼 영글기도 해야할 때이고
편식하는 습관을 이제는 고쳐야할 때이고..
또 어떤 때일까.
내가 놓치고 있는 때는 무엇일까..
아이들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본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이고
우리가 함께 바라보는 이 가을은 참 아름답다.
마음에 이 한 때를 잘 간직하자.
아쉬움도, 희망도, 보살펴주시는 사랑도, 함께 살아가는 오늘 속에 녹아들던
빛나는 가을을.



Posted by 연신내새댁
오늘 그림2018. 10. 1. 15:52




손길이란 신기한 것이다.
손길이 한번 가면 달라진다.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마음, 시간, 부지런함, 성실함 같은 것이 필요하다.

재능이 있다면 더 좋겠지.
금손이나 야물고 재주많고 빠른 손이라면 더 좋겠지.
그러나 그렇지 못해도
천천히 한번씩 손길이, 구석구석
필요한 곳에 가닿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고맙고 좋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고 게으르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애쓰는
내 손아, 고맙다.
배우려고 하고 익히려고 하고
십년째 버벅거리는 살림과 육아의 나날들에도
꾸준히 움직이는
내 작은 손.
애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18. 9. 29. 23:16



우리 단지 안에 작은 축구장이 있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바로옆에 아기들 놀이터가 붙어있지만
초등1,2학년 정도의 어린 아이들은 자주 어울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공가지고 할수 있는 것은 다 하며 논다.

2년 전에 모두 같이 이사온 아이들.
낯설고 서먹한 동네와 친구들, 어른들 사이에서
조금씩 조금씩 어울려 놀다보니 이제는 제법 아는 얼굴도 많아졌고
많이들 모여 잘 논다.

큰 아이들은 운동기구가 있는 배드민턴장 쪽에서 발야구도 하고 피구도 하느라
가끔 오후 늦게 떠들썩할 때도 있다.

학원을 많이 가고, 스마트폰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짬짬히 용케 틈을 내어 뛰어논다.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곁을 맴돌다가 끼어서 논다.
숨이 차게 이어달리기도 해보고, 자전거 경주도 한다.

아파트 단지들 입구에 작은 상가가 있고
작은 소아과병원과 약국, 학원들, 슈퍼, 부동산들, 떡볶이 가게가 있는데
가끔 아이들끼리만 온 것을 본다.
집에서 멀지 않고, 늘 동네 어른들이 오가는 곳이니 아이들끼리만 보내도 조금은 안심인 곳들.
떡볶이집에 앉아 간식을 사먹는 남매도 있고 친구들끼리도 곧잘 있다.

소아과 병원에도 혼자 카드를 들고 오는 초중등 아이들이 가끔 있다.
혼자 와서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간다.
연수 학교 친구 아이도 혼자 왔길래 나와 같이 얘기하며 조제약을 기다렸다.
그 엄마도 동네에서 뵌 적이 있는데 아마 직장을 다니시는 모양이다.
많이 아픈건 아니지만 그래도 낮에 병원다녀와 약을 지어놓으면 안심이 될 것 같은 부모님 마음이 이해된다.

더운 날 같이 더워하고 추운 날 같이 추워하며
함께 크는 마을 아이들.
놀기 좋은 가을이 왔지만 아침저녁 쌀쌀해진 날씨에 기침하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 꼬마들도 콜록, 쿨쩍.
다들 많이 아프지말고 잘 나아서
친구들과 건강하게 잘 뛰어놀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