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을 잘 보내고 왔다.
위에 사진은 큰댁에 차례지내러 갔을때 찍은 '끼미'다.
상주 시댁에서는 떡국을 먹을때 아주 짭짤하게 끓인 저 '끼미'를 떡국위에 얹어 먹는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잘게 썰고, 역시 깍둑썰기로 잘게썬 무를 많이 넣고 간장을 넣어서 푹 끓인후에 두부도 넣는다.
맛도 향도 독특하고 강릉 친정에서는 못 보던 음식이라 처음엔 아주 낯설었다.
세번째 먹어보는 올해에는 어느새 입맛이 많이 적응해있었다.
'끼미'없는 떡국은 심심해서 못 먹을 정도로..
이번 설에는 시댁에 내려가면서 처음으로 먹을걸 만들어보았다.
명절음식은 거의 모두 어머님이 만드시고, 만들줄 아는게 별로 없는 나는 옆에서 아주 초보적인 조수 노릇만 한다.
그러니 명절에 쓸 음식을 만든 것은 아니고..
곰탕을 끓여서 얼린 것을 들고 갔다.
우리 어머님은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신다.
평소에도 어머님의 거칠고 마디굵은 손을 보면 괜히 죄스럽곤 한데
얼마전부터는 손목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다.
의사가 처방해준 관절염약을 드시면서도 어머니는 일을 쉬지 않으신다.
그 얘기를 어머니께 듣고 나는 처음으로 사골을 사보았다.
멀리 서울에서 사골 1kg를 사놓고 언제고 내려갈때 고아서 들고가야지.. 생각만 하다가 몇 달이 흐르고 설이 되었다.
설이 열흘쯤 남았을때 나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사골을 꺼내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는 큰 솥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솥에 가득 물을 채운후 그 물이 1/3이 될때까지 끓이기를 세 번 반복해 모은 국물을 다시 한번 끓여 또 1/3로 만들어야 곰탕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든 곰탕은 식혀서 비닐봉지에 넣고 꽁꽁 묶어 냉동실에 넣는다.
이 과정을 한번 더 반복해서 또 비닐봉지에 넣어 얼리고, 그 다음부터는 한번씩 끓여 바로바로 국으로 먹었다.
이즈음에는 기름기가 거의 없는 담백하고 연하게 뽀얀 국물인지라 어린 연수도 부담없이 잘 먹었다.
사골을 고아 곰탕을 만들면서 곰탕에는 만드는 사람의 뼈와 기운도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뜨겁고 뽀얀 곰탕 국물속에는 그토록 긴 시간 불 위에 솥을 걸어놓고, 부지런히 그 솥주위를 오고가며 마음을 쓰고 정성을 기울인 엄마의 기운이 들어있었다는걸 내가 한번 해보고 나니 알 것 같았다.
기운없을 때, 왠지 힘이 부칠때 엄마가 끓여주는 곰탕을 한그릇 먹고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든든해지면서 힘이 났다.
그 때 몸안에 스르르 퍼졌던 따뜻한 기운은 엄마가 엄마의 뼈와 몸에서 퍼올려 함께 끓인 엄마의 생명에너지 자체였던 것이다.
내가 연수를 낳았을때 엄마는 식당에서나 쓸법한 큰 솥을 사들고 오셔서 더운 여름에, 이 집 작은 가스렌지 위에서 며칠동안 사골을 끓이셨다.
시어머니가 끓인 곰탕을 처음 먹어본 것은 신혼여행을 다녀온후 인사드리러 갔을때였던 것 같다.
늘먹던 익숙한 맛이 아닌지라 살짝 어색은 했지만 처음 먹는 내 입에도 큰 거부감없이 고소하고 깊은 맛이었다.
그 때 너무도 맛있게 훌훌 잘 말아먹던 신랑 모습이 생각난다.
오랫만에 돌아와 먹는 집밥, 엄마가 끓여주신 곰탕. 얼마나 맛있고 든든했을까.
신랑도 역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님의 뼈속 기운을 받아먹고 자랐겠지.
다른 명절준비는 아무 것도 할게없는, 달랑달랑 가볍게 애기 손만 붙잡고 내려가면 되는 서울의 며느리는
처음 끓여보는 곰탕과 씨름하며 근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생각을 꽤 한참씩 했다.
그 수고와 고달픔과 감사함에 대해..
얼려둔 다섯봉지 중에 두 봉지를 작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차에 실었다.
며칠을 수선 떤 것에 비하면 참 작은 양이지만 내 손으로 어머님아버님 드실 음식을 한가지는 마련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지난 추석에는 연수만 한복을 입혔었는데, 이번 설부터는 우리 세식구가 모두 한복을 입기로 했다.
결혼할때 맞춘 예쁜 한복을 내내 장롱속에 넣어놓기만 하는 것이 아깝기도 했고,
아빠엄마도 함께 한복을 입고 연수와 더 기쁘게 명절 기분을 느껴보고 싶기도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러나 할 줄 아는게 없더라도 옆에서 거드는 시늉은 해야하는 며느리가 한복을 차려입고 나서니 어머님은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어머님은 한숨을 좀 쉬셨지만 명절기분을 내고파하는 철없는 며느리를 나무라진 않으셨다.
우리집 제사와 점심식사까지 다 끝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앉자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티셔츠를 두 개 샀어. 언제 봐도 니가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아서.. 인터넷에 봐도 그 옷이고. 너희들 옷은 어디서 사야하는지 몰라서 한참 찾았네. 맘에 들지 모르겠다"
어머님이 꺼내오신 비닐봉지 안에는 노랑, 빨강 예쁜 티셔츠 두 벌이 들어있었다.
멋낼 줄도 모르고, 어린 아기와 늘 집에서 지내다 보니 편하고 만만한 옷 두 세벌을 늘 번갈아입는 나를 보고
언제부턴가 어머님은 마음을 쓰고 계셨던 것이다.
이 블로그에도 자주 들어와 연수 사진을 보고 기뻐하시는 어머니는 가끔 등장하는 내가 늘 비슷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나도 신경쓰지 않아 잘 모르는 사실도 알아채고
설이 되기 얼마전부터 젊은 사람들 옷을 파는 가게를 찾아가서 내 옷을 사놓고 기다리셨던 것이다.
내가 곰탕을 끓이는 동안 어머님은 티셔츠를 고르고 계셨던걸까..
마음이 뭉클했다. 어머니 덕분에 올 설에는 나도 설빔이 생긴 것이다.
아이 낳은 뒤로는 내 손으로 내 옷을 사본 적이 없다.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가 옷을 강제로 사주다시피해서 들고오곤 했는데, 시어머니께 옷을 받으니 어머니가 무척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나는 어머니가 사주신 티셔츠를 입고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사진을 미처 못 찍은 것이 안타깝다.
다음에 내가 등장하는 사진이 있으면 아마 그 티셔츠들을 입고 있을 것이다. ^^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란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사이일 것이다.
나도 여전히 그렇고, 앞으로도 아마 많이 그럴 것이다.
엄마와 딸 사이같이 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집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만큼 똑같진 않겠지만..
다만 한번씩 뵐 때마다,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작고 기쁜 일들이 쌓였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어머님과 내가 둘이 찍은 사진은 결혼식장에서 찍은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
다음번에 어머님을 뵈면 어머님과 함께 사진을 한장 찍어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