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뒤 '고향집'이란 말을 '친정'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친정..은 어떤 곳일까요.
결혼전에도 고향집은 편안한 곳이었지만 엄마아빠의 걱정어린 잔소리가 마냥 싫을때는
서울 작은 내 자취방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보니
친정은 우주에서 제일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생활을 시작한 스무살 이후로
'집에 내려가는 길'은 늘 제게
서울에서의 숨가쁜 삶에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이었습니다.
그 쉼표는 대개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따스한 것이었지만
때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휴식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귀향도 있었고
패잔병이 된 기분으로 다시 서울행 고속버스에 오르기도 했지요.
남한강과 섬강을 건너고 대관령 높은 령마루를 넘어내려가는 길...
이제는 그 길을 제 분신같은 아기를 안고 갑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가 저를 데리고 가는 날도 오겠지요.
삶이란 참 신기한 것이구나..
열어도 열어도 계속 예쁜 상자가 나오던 어린 시절의 색종이 상자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재미있는 책처럼..
문득 삶의 다음 장이 궁금해집니다.
+
지난 연말과 이번에 아파서 내려갔을때 친정에서 찍은 풍경들입니다.
+ 햇살이 밝게 떨어지는 친정집 거실에서 아빠가 큰조카와 똑순이를 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얼마전에 작은 조카도 태어나 이제는 세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신 아빠.. 아빠 주름살이 문득 낯섭니다.
+ 네살(30개월)된 조카가 제 똑딱이 카메라로 할아버지를 찍었습니다. 아빠의 어색한 표정.. 저는 이 사진이 참 맘에 듭니다.^^
+ 친정에 가면 하루종일 먹을걸 입에 달고 살게 됩니다.
오랫만에 본 딸에게 조금이라도 뭔갈 더 먹이지 못해 애쓰시는 엄마 덕분에.
한때는 얼굴만 보면 싸우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울엄마없으면 못 살 막내딸입니다. ^^
+ 경포바다 앞에 선 할아버지와 두 손주^^
친정에 가서 바다를 안보고 온적은 없었던것 같아요. 바다앞에 서면 답답했던 마음이, 번잡했던 머리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큰 답은 못 구해도.. 다시 또 힘을 내보자 마음잡고 돌아오곤 했던 바다.
+ 경포에 가서 '입도 쩍' 못하고 오면 안되지요~ 겨울호수 앞에서 먹는 오뎅맛이 끝내줍니다. ^^
+ 경포호수 앞에 선 외할머니와 똑순이
+ 호수앞.. 손주들을 안고 사진찍는 부모님의 팔이 어쩐지 살짝 무거워 보입니다. ^^;
그새 많이 늙으셨나보다.. 철없는 딸 마음이 조금 무거워집니다.
+ 요리솜씨 좋으신 울엄마, 경단을 만드십니다. 할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졸졸 따라다니는 귀여운 조카녀석이 한몫 거드네요~^^
+ "예원이가 할머니랑 만든거야~"라고 설명중인 예쁜 녀석 ^^
친정집의 첫조카인지라 새댁과도 참 정이 많이 든 녀석입니다. 울엄마(할머니)를 많이 닮았지요. 이 아이를 보면 왠지 이집딸인 울언니와 제 어린시절 생각이 더 납니다. ^^
+ 할머니가 화분 물주실때도 어김없이 거들고 나섭니다. 아고.. 울 똑순이는 언제 저만큼 크나~~~^^
+ 사촌누나와 똑순이.. 이렇게 보니 다큰 녀석같네~!
새언니가 둘째를 막 출산할 무렵이어서 큰조카가 할아버지댁에 잠시 내려와있었습니다.
두 녀석.. 아옹다옹 은근히 신경전도 벌이면서 그래도 재밌게 잘 지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형제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 외가집에 온 똑순이, 아주 신났습니다. 외할아버지랑 아침부터 새보러 간다고 마당에 나섭니다. 2월치고는 날이 많이 포근해서 이번에 집에 있을때 똑순이랑 바람을 많이 쐴수 있어 참 좋았어요.
아파트 놀이터 한번 나가자고 해도 옷입히고 유모차 태우고.. 준비가 넘 힘들어 외출 엄두를 잘 못내는 서울에서와는 달리
친정집에서는 담요하나 덮거나, 모자씌어 포대기에 업기만하면 바로 마당에 나설수 있습니다.
마당있는 집이 참 그리운 서울 생활이네요.
+ 외할머니와 공부하는 똑순이~ 잼잼 곤지곤지 짝짜꿍을 배우다...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중^^;;
+ 요즘 뭐든 붙잡고 일어서는 똑순이, 빨랫대를 붙잡고 일어선다는게 그만 빨래대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
빨빨거리며 다니는 똑순이 따라다니느라 외할아버지 아주 바쁘십니다. ㅋ
+ 친정집 마당에서 건너다보이는 앞산아래 이웃집 담장입니다.
똑순이 유모차에 태워 가까이 가서 사진 한장 찍어왔습니다.
지금은 개집이 있는 바로 저기서.. 어린 시절에 새댁과 친구들은 소꿉장난을 했습니다.
볕이 잘드는.. 무척 따뜻한 곳입니다. 바로옆 석류나무에서는 잘 익은 석류가 탁탁 터지던...
저기 앉아 친구와 흙으로 밥짓고 꽃으로 반찬만들던 까맣고 작은 다섯살배기 여자애가
이제는 아기엄마가 되어 다시 와 섰네요.
시멘트보루꾸(블록?) 담장이 근 30년을 그대로 서있는게 신기합니다. 쓰러지기 전에 사진 한장 찍어두자싶어 얼른 나섰습니다.
+ 앞산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걸어가면 새댁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나옵니다.
산속에는 친구들과 소꿉장난거리를 모아두던 아지트도 있었습니다.
그 아지트, 다시 올라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저 산 언덕에 올라 대보름엔 달구경하고, 쥐불놀이하던 기억이 선합니다.
어린시절 친정집 앞길을 달랑달랑 뛰어다니던 저를 지켜봐주던 앞산의 소나무들이
오늘은 똑순이를 지켜봐주고 있었습니다.
30년 세월을(실은 그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도..) 말없이 서서 우리 가족과 우리 동네 이웃들을 지켜봐온 나무들...
그 나무들에게 똑순이를 잘 부탁하고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모두 떠난 뒤에도 이 나무들은 이 곳과 다정한 사람들을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외가에 가니 똑순이 볼이 빨갛게 터서 시골아가같이 되었습니다. 새댁은 그게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똑순이가 좀더 크면.. 외할아버지따라 논에도 가고 냇가도 부지런히 돌아다녀서 더 까맣고 빨간 볼을 가진 소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