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동네.세상2009. 6. 11. 15:54

며칠 찌푸렸던 하늘이 청명하게 개었습니다.
이제야 6월 같습니다.

6월은 장미꽃이 절정이었다가 사그러드는 계절,
따가운 초여름 햇살이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투명하게 내리쪼이는 달입니다.
그리고 6월은 항쟁의 달입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인간다운 삶을 향한 노동자, 시민들의 항쟁의 달.

북한산이 건너다보이는 우리 마을은 이렇게 조용한데
세상은 올해 6월에도 어김없이 전쟁중입니다. 
우리집에도 아침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한 두 개의 세상이 들어옵니다.

오늘 아침 경향신문 헤드라인에는 아주 굵은 글씨로 <22년만에 터진 "민주주의" 요구>라고 쓰여있었습니다.
두번째 기사 제목은 <"위법.폭력 행사로 민주주의 왜곡" 李대통령 기념사 '책임전가' 논란>이고,
1면 마지막 기사인 세번째 기사는 <공정택, 항소심도 당선무효형>이란 반가운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공짜로 들어오고 있는(얼른 넣지 마시라고 해야지.. 건강에 무척 해로워요ㅜ) 조선일보의 1면 헤드라인은
<'시위'가 '시민'을 몰아낸 서울광장>입니다.
'예정된 문화행사 대신 구호와 깃발 난무... 무원칙한 당국 대응도 문제'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경찰은 이날 광장 주위에 차벽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원칙하다는 것이죠.

같은 사건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다릅니다. 
하는 얘기는 하늘과 땅 차이고요. 
무엇이 옳은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곰곰히 살펴보고 작은 내 한 걸음이지만, 옳은 쪽에 보태야 겠습니다. 

이제 갓 돌을 지낸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이유로
세상의 치열한 전쟁을 멀리 강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보고 삽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일렁이는 저 불길의 연기는 우리집 하늘위도 뒤덮고 있는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바라보는 마음도 착찹하고 슬펐으나 
역시나 멀리서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듯 덤덤하게 지나갔습니다. 
신문 1면도 겨우 읽을까말까한 애기엄마의 바쁜 일상 때문이었다는건 변명이고요,
그 소용돌이에 내 몸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는게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될 것 같습니다. 
역사는 방관하는 사람들까지도 휩쓸고 지나가는 강물이니까요. 
무심해져선 안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가족에게도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과 행복을 주었는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들은 우리 시어머니의 첫마디는 "노무현이 우리 애 수배도 풀어줬는데..." 셨습니다. 
그랬어요. 그 시절에 우리는 노무현 정부를 참 많이 비판했지만, 그래도 그것때문에 잡혀갈거란 걱정은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하는 것을 겁내야하는 시절입니다. 슬프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무서워하면 지는 것 이란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6월 항쟁 계승하여 민주주의 회복하자"
어제 시민들은 6.10항쟁 22주년 기념대회에 모여 이런 구호를 외쳤다고 합니다. 
새댁 생각엔 이 구호가 옳습니다. 저는 여기에 발은 못가도 마음을 보냅니다. 
똑순이가 자라서 물으면 엄마는 이때 이 사람들을 마음깊이 응원했다고 얘기해야겠습니다.
네가 좀더 크면 손을 잡고 광장에 꼭 서겠다고 다짐했노라고 얘기해줘야지.. 그 약속을 꼭 지켜야지. 속으로 다짐합니다.


다시 생각하니.. 민주주의가 충분했던 시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지금 그 작은 싹이 싹싹 밟혀 뭉그러지고 있는 것도 분명해보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동요처럼 부르고 싶습니다.
새싹을 살려요. 
그 싹이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큰 나무로 자라
6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머리위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도록
울울창창한 민주주의의 나무를 키워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9. 3. 30. 23:41


조용한 한낮 누군가 새댁네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똑똑~
"누구세요?"
"아 네~ 사모님, 이것 좀 받아보시라고요~"

아. 신문판촉이구나.
보통때같으면 '아 괜찮아요~ 저희 다른 신문 보고있어요' 하고 대답하고 말텐데(물론 그렇게 말해도 아저씨들은 그냥 안가시고 계속 얘길하시지만요ㅜ)
오늘은 큰맘먹고 문을 열었습니다.

며칠전 신랑과 '또 불법신문판촉 하러 오면 꼭 받아서 신고하자'고 다짐했었기 때문입니다.

문을 여니 아저씨 한분이 흰봉투를 내미시는데
아이고 이런.. 봉투 안에는 만원짜리 네 장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모님, 신문 보시는거 있으세요? 이참에 동아일보로 한번 바꿔보세요.
연말까지 무료로 넣어드릴테니 보시다가 연말부터 1년만 구독해주세요.
스포츠신문이나 경제신문도 하나 같이 그냥 넣어드릴께요."
"...."

심경이 무척 복잡했습니다.
막상 현금봉투를 보니 살짝 기가 막혀 손이 선뜻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신고를 위해서라지만 이런 검은(?) 돈을 받는 것 자체가 꺼려졌어요.

한편 재빨리 계산기도 돌아갔습니다.
불법신문판촉 포상금은 제공된 불법경품의 10배라니까..
현금 4만원*10만원=40만원, 신문 7개월(15000원*7)*10=100만5천원, 경제신문 끼워준것도 100만원.. 아, 이건 내년에도 공짜로 준다는 거니까 얼추 한  250만원... 도합 400만원?!!!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ㅠㅠ

'그래, 이번만큼은 꼭 받아서 신고하자. 이런 불법행위는 신고해야 없어져..'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새댁이 아무 말이 없자 돈이 적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는 얼른 현금1만원을 더 꺼내서 봉투속에 넣었습니다.

그걸 보니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아니 됐어요. 아저씨, 안 봐요" 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아저씨가 문을 잡으며 다급하게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제가 이번에 저 앞에 새로 지국을 열었거든요. 
실적이 중요해요. 꼭 좀 받아주세요. 실적이 좋아야 본사에서 정규직되는 시험칠 자격을 줘요.
내 나이가 마흔여덟인데 이 나이에도 비정규직이라니.. 불쌍하지 않습니까. 
저도 호텔 이사(?)하다가 나와가지고 겨우 직장 다시 구한거예요.  
한 부만 받아봐주세요."

아.... 마음이 또 아파왔습니다.
그동안 꽤 여러번 신문불법판촉 아저씨들을 만날때마다 그냥 본다하고 받아서 신고할까 매번 고민했지만 
결국 이 분들이 안쓰러워 번번히 안본다고 말하며 그냥 돌려보냈었는데..

신문고시가 만들어져서 불법신문판촉을 신고, 처벌할 수 있게 된것은 무척 다행이지만
불법판촉을 지원.조장한 본사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본사의 압력하에 자기 돈 써가며 불법판촉에 나섰던 지국만 처벌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정규직이 바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이 되기위한 시험을 볼 수있는 자격을 준다니... 
정말 너무하네. 동아일보!

아저씨는 제 손쪽으로 계속 봉투를 밀며 받아달라고 하셨지만 
아저씨 사정을 알고 나니 더 마음이 약해져서
손사래를 치며
"제가 왜 아저씨 돈을 받아요. 신문 안 볼꺼니 그냥 가져가세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괜찮아요, 이 중에 3만원은 본사에서 지원으로 내려온 거구요, 2만원만 제 돈이예요.
그리고 저는 실적이 더 중요하니 괜찮아요."  
하시는게 아닙니까.

본사에서 아예 불법판촉하라고 돈을 주는구나!
화가 확 나면서 불쑥 용기가 생겨 봉투를 받아들었습니다. 

아저씨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연신 감사하다, 고맙다 인사를 하시더니
작은 표에 저희집 주소와 제 전화번호 등을 써가지고 가셨습니다.
본사에서 전화가 오면 본다는 얘기만 해달라고 부탁하시며..

휴우.....

하지만 저는 결국 아저씨를 불러세워서 다시 돈을 돌려드리고 말았습니다.
머리속으로 오고간 생각을 다 얘기하기가 쉽지 않지만... 결국 또 용기를 못낸 것이죠.

계속 '그러지말고..' 하시며 경품받고 신문을 봐달라는 아저씨께
'불법이라 신고할까 하다가 그냥 돌려드린다, 신고하면 아저씨가 벌금 많이 무셔야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불법인줄 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벌금 물지 뭐' 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ㅠㅠ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꼭 신고를 해야겠습니다.
거대신문재벌들이 돈으로 판촉에 나서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화를 미끼로 불법판촉에 나서도록 강요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더 신고하고, 그래서 한 지국이라도 불법판촉을 덜하게 되기를..
본사가 불법판촉을 강요하면 내부고발을 할 용기라도 내실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 그런 용기를 기대하려면 나부터도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국 분들의 처지가 안쓰럽고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침묵하면 거대재벌신문사들만 더 의기양양하게 불법을 조장하고, 강요하고, 저지를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갖고, 더 막강한 영향력을 우리 사회에 행사하게 되겠지요..  


다음번엔 꼭....!
그렇게 생각하며 인터넷을 좀 찾아봤는데.
에고.
'불법신문판촉'도 진화하고 있나봅니다.
신고할때 증거물이 되는 '구독계약서'와 '명함'.. 그 어느 것도 오늘 아저씨는 주지 않았습니다.
새댁도 받을 생각을 미처 못 했고요.

'본사에서 전화가 올 것'이라고 얘기하신 것으로 보아
구독신청자의 정보만 가지고 가서 전화상으로 확인만 하면 구독계약이 되는 방식인가 봅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받은 경품은 증거물이 되지만 보다 자세한 증거물들이 있을수록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MB정부들어 전체 신고 건수는 늘었는데 '과징금'처벌은 현저히 줄어들고, 시정명령에 그치는 경우가 늘었다는군요.
방법이 진화하기 때문인지, 처벌 의지가 약해진 것인지ㅠ


다음엔 정말로. 꼭. 신고해야겠습니다. 마음 다부지게 먹고요.


+ 불법신문판촉 신고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를 참고해보셔요.
http://blog.daum.net/kpt004/15712392?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kpt004%2F15712392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12. 15. 13:31

똑순이 독감 예방접종 하고 왔습니다.
새댁네가 사는 아파트의 옆문을 나와 경사가 심한 작은 골목길을 조심조심 걸어내려가서
큰길만나 조금만 걸어가면 똑순이 다니는 동네병원이 있습니다.

쌀쌀하지만 아주 춥지는 않은 겨울 공기를 마시며
병원이 한적한 때에 다녀오려고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습니다.

골목은 조용합니다.
얼마전 구멍가게가 미용실로 바뀌었는데
작은 유리창에 A4지 출력해 붙여놓은 광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일반커트 4000원 학생커트 3000원'
참 착하고, 그래서 짠한 가격입니다.
새댁도 머리가 많이 길었는데.. 담에 여기와서 자를까 생각하며 안을 슬쩍 보니 손님이 2명 앉을까 말까 합니다.
신랑이랑 세식구가 오면 다 들어가 앉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사은품 증정' 멋진 궁서체로 누군가 쓴 붓글씨도 붙어있습니다.
개업기념 수건이 좀 남았나봅니다.

병원이 있는 큰길에서 젊은 청년이 어깨를 움츠리고 새댁 옆을 지나가는데
어디서 밤을 샜나.. 까칠한 얼굴이 맘에 걸립니다.
새댁도 예전에 밤 많이 새고 다녔는데.. 그러면 얼굴이 꼭 저렇게 푸석하고
아침밥도 못 먹은 빈속은 참 허하고 그랬습니다.
저 청년에게도 이 겨울은 참 추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시험과 취직 준비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의 얼굴이 낯선 청년의 어깨위로 오버랩됩니다.

주사를 맞고 한바탕 운 똑순이는 돌아오는 길에도 어깨때 안에서 코 잠이 들었습니다.
새댁이 자주 가는 큰 슈퍼에 가려면 좀 멀리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아까 내려온 골목이 시작되는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러
새댁먹을 우유랑 똑순이 장난감에 끼울 건전지를 사기로 했습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계산대로 쓰는 책상앞에 앉아계시던 나이많은 주인아저씨가
아기안은 새댁을 보고 황급히 일어나 문을 잡아 주십니다.
이것참.. 서비스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우유냉장고문도 열어주시고, 건전지도 손수 갖다주십니다.
뭘 좀 더 사야할것만 같습니다.
작지만 물건들이 가지런히 잘 정리된 낡은 가게, 바코드 읽는 기계가 없는 가게는 참 오랫만이구나.. 생각하며
'혹시 이 가게에 오늘 내가 첫손님인건 아닐까' 문득 궁금했습니다.
문을 열어주시는 아저씨의 배웅까지 받으며 새댁, 담엔 뭘 좀 많이 사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골목은 오르막이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똑순이를 안고 걸었습니다.
꼭 달팽이가 된 것 같습니다.
앞에서 할머니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내려오시는게 보입니다.
한 분은 허리가 아주 심하게 휘셨고, 옆에 할머니도 만만치않지만 그래도 좀 덜 굽어지셔서
친구(인지 언니인지..) 할머니를 지탱해주고 계십니다.
두 분은 새댁 가까이까지 훠이훠이 엉금엉금 내려오셔서는 전봇대를 붙잡고 허리를 펴며 한숨 돌리십니다.

그 곁을 지나가며 옆 골목을 바라보니
검은 얼굴의 키큰 청년이 헌옷수거하는 트럭옆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을까.. 네팔? 파키스탄?
아주 짧은 순간 새댁과 눈이 마추쳤는데.. 조금 불안하고 슬픈 빛이 그 눈에 반짝했던 것 같습니다.
새댁만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 청년을 보니 얼마전에 똑순이 병원에서, 그 날도 6개월 예방접종하러 간 길이었는데
"예쁜 얼굴에... 세 군데나.. 아 너무 속상해요.." 라고 띄엄띄엄 간호사에게 얘기하던
예쁜 목소리의 젊은 아시아 여성이 생각났습니다.   

국제결혼이 참 우리 가까이에 와있다는 것을 새댁은 똑순이를 갖고 실감했답니다.
산부인과를 다니며 이주여성인듯한 젊은 엄마들을 종종 봤거든요. 
한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듯 그이들의 곁에는 강보에 쌓인 아가를 안은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꼭 함께 계셨지요. 
한국어를 잘못하는 그들을 대신해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간호사로부터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듣고, 
다음에 병원올 날을 듣고.. 함께 돌아가는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은것 같았어요. 
아직은 많이 낯선 땅, 낯선 가족들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직후의 마음이 오죽할까.. 멀리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그리울까..
제 나라 제 땅에서도 갓난아이 키우다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데
이주여성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새댁 혼자 속으로 생각했지요.
  
이제 소아과에 오니.. 아이들이 자란만큼 그이들의 한국생활도 길어져서일까..
서툴지만 밝은 목소리로 아기가 아파 놀라고 속상했던 순간을 얘기하는 그 엄마를 보며 새댁도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아이와 엄마 둘만 병원에 온 것도 그이의 한국생활 적응도를 보여주는듯해 반가웠구요.
물론 예전 산부인과에서 본 이주여성들을 다시 본 것이 아님에도(다시 봐도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렵겠지만..) 
괜시리 혼자 반가워하며, 그이들도 지금 이 엄마처럼 밝게 지내고 있기를 속으로 빌었습니다.
그 엄마와 새댁은 서로의 아이를 바라보며 '참 예쁘다'고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엄마들의 만국 공통인사입니다.
그 녀석은 돌쯤 됐는지 아장아장 걷더군요. ^^

낯선 땅에 와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그 청년 곁을 지나며
그가 부디 건강하게, 무사히 일을 마치고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 곁으로 잘 돌아가기를 저도 바래보았습니다.
한국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결코 호의적인 나라가 아닌데.. 
그의 슬픈 눈동자가 마음에 자꾸 남습니다.
블로그에 쓰는 것이 주저될 정도입니다. 혹시라도 그 청년에게 해가 되는건 아닐까.. 조심스럽습니다.

짧은 길이지만, 별 외출이 없는 새댁에게 
똑순이 병원다녀오는 길은 
천천히 걸으며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드문 시간입니다.
시간은 겨울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춥지않게.. 우리 이웃들이 모두 이 겨울을 무사히 나고 봄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가을, 똑순이 유모차 태워 산책하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난 새입니다.
이녀석은 겨울을 무사히 잘 나고 있을까요..? 어디서든 건강히 있다가 봄에 다시 만나자..!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9. 29. 20:41


똑순이가 오늘은 좀 일찍 저녁잠이 들어서 새댁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컴앞에 앉았습니다.
주초인 월요일, 화요일은.. 하루가 저물고나면 안도감과 함께 평소보다 조금 더 피로감이 밀려옵니다.
주말에는 신랑과 함께 똑순이를 보니까 새댁이 몸도, 마음도 많이 푸근해졌다가
다시 똑순이와 둘만 지내는 주중이 시작되면 아무래도 긴장을 하게 되나 봅니다. 휴..

*
 
요즘 뉴스는 온통 '멜라민분유' 파동으로 씨끌하지요..
신장결석으로 사망하거나 아파하는 중국 아기들을 생각하면 같은 아기 엄마로서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의 과자, 어른들의 커피크림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지요.. 참 짠하고 애틋한 먹거리들인데.. 사람의 안전보다 돈을 앞세우는 행태에 너무 화가 납니다.
카제인단백질이 들어가는 식품은 저 둘 외에도 햄, 어묵.. 등등 참으로 다양하다 하니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사람들 입에 안심하고 맛있는 먹거리들을 넣어줄 수 있을지..

식품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그 유통범위도 이미 국경을 넘어 전세계를 아우르고 있으니 문제의 해결이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입식품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는 것은 작은 그물을 하나 치는 것일뿐
애초부터 위험한 먹거리들이 만들어지지 않게 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고...
어떤 것이 대안이 될까요...
먹거리의 자급자족, 식문화의 변화, 자연과 함께 상생하는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소통과 신뢰...
다양한 고민과 함께 생활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새댁에게는 농사를 짓는 지인들이 좀 있습니다. 
이렇게 먹거리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할때는 그 분들 생각이 많이 나지요.
정성껏 농사짓는 그 분들과
덕분에 새댁네 식탁에 도착하는 그 분들을 닮은 먹거리들을 생각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네요.

새댁의 친정부모님도 농부이시니 우선 그 분들이 제일 가깝겠고요^^
신랑의 큰댁도 농사를 지으시는군요.. 외할머님도 농사를 지으시고요. 이제는 연세가 많으셔서 소소히 작은 텃밭을 가꾸시는 정도지만요..
도시에 사는 새댁네, 그 분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아먹습니다.
쌀, 김치, 고추가루, 감자, 각종 장류, 그 외에도 많고많은 소소한 채소들... 
무농약 유기농은 아니지만..(연세 많은 분들이라 비료나 약을 빼고 농사짓기를 어려워하시지요ㅜ) 
그래도 텃밭의 야채는 약 많이 안치고 정성껏 키우셔서 자식들에게 보내주십니다. 
   
가족 말고도 좀 있습니다. 새댁의 대학 선배들이지요..^^
한 선배커플은 서울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전남 화순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쌀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정미소도 운영하고 있지요. '황금눈쌀'이라는 이름의 친환경 무농약 쌀을 짓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쌀집아저씨네' 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도 받고, 농촌소식도 올리면서 생산자-소비자, 농촌-도시의 작은 소통에도 노력하고 계시답니다.



                                                 http://ssalzip.goodfarm.net/

 
또 한 선배는 '요즘도 그런 일이 있어?'하고 놀랄 수도 있는.. '도시처녀 시집와요~'의 경우입니다.
새댁네 학교가 몇 년을 농활가던 지역의 총각과 결혼한 것이지요. ^^
언니는 형님의 고향이자 우리들의 농활지였던 상주에서 시부모님 모시며 함께 열심히 포도, 곶감, 인삼, 고구마.. 등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언니도 '밤원골농장' 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문도 받고, 농촌생활도 얘기합니다.   




                                                               http://bwgam.com



새댁은 이 분들께 현미쌀도 사먹고, 고구마도 사먹고.. 가끔 명절에는 곶감으로 어른들께 선물도 합니다.
새댁이 결혼할때 쌀집아저씨는 축하한다며 쌀을 보내주시기도 했지요^^
똑순이가 태어났을때 밤원골농장에서는 맛있는 호박고구마먹고 힘내서 아기 잘 키우라고 고구마도 보내주셨습니다.
이 농민분들의 마음을 받아서 똑순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나 봅니다.

'고향의 부모님이 더이상 농사를 못짓게 되시는 날이 오면 그땐 누군한테 그 정성스러운 먹거리들을 구하나..'
어느날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이 분들이 떠오르면서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래.. 내 곁에 농부들이 여전히 계시는구나.. 그 사실이 참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한여름에도 뙤약볕아래 고생하실 이 분들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 얼마전 도착한 쌀집아저씨네 현미와 밤원골 안심고구마를 찍어보았습니다~
최대한 맛있어 보이게 찍으려고 했는데 흑~ 그 맛만큼 사진이 안나온것 같아 속상합니다ㅜ 정말 맛있거든요!^^ )

요즘 삶은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으며 새댁,
"똑순아, 이 고구마는 똑순이도 여러번 본 적 있는 밤원골 아줌마가 열심히 키우신 거란다~ 아주 달고 맛있어. 엄마가 맛있게 먹고 똑순이 젖으로 줄께~" 얘기합니다.
현미밥을 먹으면서도 역시 얘기합니다.
"똑순아, 쌀집아저씨 기억나? 똑순이가 엄마 배속에 있을때 만났단다~^^ 담엔 아저씨네에 놀러도 가보자~" 
외가집에서 온 것들도 마찬가지지요. ^^

앞으로 새댁에게 꿈이 있다면..
식탁에 오르는 모든 음식들의 생산자, 혹은 판매자에 대한 이야기를 똑순이와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만들어졌는지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먹거리들, 거대한 기업들만 배불려주는 먹거리들이 아니라
우리 땅, 우리 이웃들이 정성껏 땀흘려 만든 것들로, 그 분들과 그 분들이 흘린 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밥상을 차리는 것입니다.
토마토새댁 아줌마네 토마토, mepay 아저씨네 쏘세지와 삼겹살, 또 다른 많은 분들의 야채, 과일... 
물론 모든 먹거리를 믿을 수 있는 생산자로부터 공급받는게 쉽지는 않겠지요.  
언제까지 아이가 집밥만 먹을 수도 없을테구요..
 
하지만 작은 변화들이 퍼지고 퍼지면 온 세상이 변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음식을 생산하는 분들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생산,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또 그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한 삶도 지키려고 한다면-
언젠가는 똑순이가 세상에 나가 먹게될 급식, 식당밥들, 군것질거리들도
믿고 먹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오늘도 새댁은 '이야기로 가득찬 밥상'을 꿈꿉니다..





(*사진은 무항생제 친환경돼지로 만든 mepay 아저씨네 소세지로 차린 밥상입니다. ^^ 불고기맛 소세지인데.. 별다른 소스없이 먹어도 맛있습니다. 소세지가 큼직해서 2개 먹고나니 한나절 내내 속이 든든했답니다.)


mepay 님네 멋진 돼지고기를 만나보시려면 여기 '도토리속 참나무'로! ^^



                                                              http://docham.kr/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5. 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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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새댁과 신랑도 '광우병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저 예쁜 리본이 '30개월 이상 미국산소고기 수입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봅니다.
나눠주는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작은 촛불을 하나씩 밝히고.. 이 초가 다가오는 어둠을 조금이라도 밀어내주기를 바라며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새댁과 신랑도 잠시 청계광장 한 구석 자리를 밝히다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뉴스를 보니 밤샘 시위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더군요.
마음이 찌르르하고 아파왔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재협상에 나서라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 걸까요...
이 정부는 왜 국민의 목소리에 이다지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산모체조교실에 함께 다니는 한 엄마는
"무서워서 어디 애기낳고 소고기미역국 먹겠냐.. 우리는 이제 산후조리할 때 사골미역국도 못 먹어요'라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정말 그렇더라구요.
장관 고시는 또 연기되었지만 재협상을 통해 '20개월미만 소의 살코기'만 수입하는 등의 그나마 안전한 수입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이 '광우병소고기 공포'는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단체급식이 이루어지는 많은 곳들-오늘에서야 '병원'도 그 중에 있다는 생각을 새댁은 처음 하게된 것입니다ㅠ 그동안은 학교랑 군대만 걱정했지요-과 식당들, 정육점 어디든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모두 찝찝하고 무서운 마음을 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작은 촛불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불신의 시선을 던져야만 하는 사회를 막기 위해 켜는 작은 안전등인지도 모릅니다.  

'책임' 이라는 말의 무게를 새삼 느낍니다.
"엄마 아빠는 그때 뭐했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응.. 그때 우린 말이야... 그게 말이지..." 하며 민망해하고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더 해야할텐데..
새댁이 종종 가는 육아관련 까페들에도 모두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대문이 걸렸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데 든든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엊그제 촛불집회장에는 오랫만에 뵙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은 저를 잘 모르시지만 저는 압니다.
예전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때 매일 광화문을 지키시던 이관복 할아버지,
그리고 말씀 한마디 없이 늘 촛불집회에 나와 주변 청소도 하시고 엠프 나르는거며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곤 하시던 이름모를 중년의 아저씨.
참가자들이 유난히 적던 어느날, 이 분은 늘 메고 다니시던 작은 가방(꼭 봇짐같이 생긴)을 열어 까만 봉지를 꺼내셨는데
그 안에는 공장에서 바로 담아온 것 같은 작은 카라멜사탕들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그 사탕을 먹으며 저는 '이 사탕은 이분이 만든게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큰 체구에 순한 얼굴과 눈매가 인상적이던 이 분도 청계광장 촛불바다 한 구석을 환하게 밝히며 서계셨습니다.
그 분들을 뵈니 문득 이 자리에 안계신 한 분 생각이 또 났고,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나 '저녁은 드셨어요?'라며
온얼굴에 주름을 만들어내는 예의 그 아름다운 웃음을 환하게 지어주셔야할 분,
자신처럼 단단하게 생긴 촛불 한자루 다부지게 틀어쥐고 계셔야할 그 분, 허세욱 선배님.
찾을 수 없는 그 한사람 빈자리에 넓은 촛불집회장이 텅 빈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그 자리를 꽉 메워줄 얼굴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생각에 새삼 힘이 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또 오늘도 아름다운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한층 지혜롭게 자라날 이 땅의 청소년들도 생각하면 희망입니다.
분노스럽고 힘겨운 5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래서 이땅의 5월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열심히 싸워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5.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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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동네에서도 길을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광우병 얘길 하고계셔서 정말 큰 문제구나.. 실감하게 된다.
횡단보도에 서있으면 뒤에 있는 청년들이 큰소리로 얘기하고 있기도 하고,
얼마전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앞에서 어디 나들이라도 다녀오셨나 싶은 가족들을 만났는데 좀전에 다녀온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 동영상을 보며 얘길 하고 계셨다.
그 날은 마침 새댁과 신랑도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다녀오던 길이어서
"어~ 저희도 거기 다녀오는 길이예요!^^"라고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이 정부는 정말 국민들을 바보로 아는 걸까.
그렇게 위험한 내용을 졸속협상으로 처리하고 돌아와도 국민들이 가만있을줄 알다니..
(아니다. 요즘 속속 드러나는 어이없는 협상 내용과 '실수인지 헛소리인지' 알수없는 발언들을 들어보면 이 정부가 바보인게 틀림없다. 누가 뽑은거야ㅠ)
폭력단체들이 집회 좀 하면 집시법을 강화해서 주동자 처벌하고 벌금 왕창 물리고 하면 얼마안가 잠잠해지겠지.. 생각했던걸까.

그러나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졸속협상을 하고도 좋다고 웃으며 사진찍고 돌아온 후  
켜지기 시작한 국민들의 촛불이 어느새 열흘을 훌쩍 넘겼고
숨겨져있던 협상의 진실들은 하나씩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국민 무서운줄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 정신차릴 때까지 촛불은 점점 그 친구를 늘려가며 전국 곳곳으로 번져나가야할 것이다.
새댁은 자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서진 못하지만 절절한 마음으로 매일매일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제 곧 엄마가 되는 새댁은 광우병 소고기문제도 아무래도 아가의 미래와 관련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만화에서처럼 소고기가 쓰이는 곳은 얼마나 많은가.
정부가 아무리 원산지표시제를 강화한다 해도 식재료와 음식업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데
그 모든 곳을 일일이 규제.감독할 수는 없다.
또 그런 감독에 드는 예산은 얼마겠는가. 협상을 제대로 했으면 굳이 들이지 않아도 될 예산을 낭비하는 셈이다.
얼마전에 새댁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소개한 복지부의 '산모/신생아도우미' 서비스는 예산부족으로 벌써 2008년 사업비가 동나 하반기에 출산하는 산모들은 그나마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한다.
우리 사회를 정말 살맛나는 사회로 만드는데 써야할 예산들을 왜 쓸데없는 곳에 쓰는지.. 그런다고 결국 광우병의 위험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도 위험부위로 분류돼 학교급식 등에는 소비가 엄격히 규제되는 소고기까지 한국에 수입하기로 했다니
내 나라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보다 더 중요한게 어디 있다고.. 정말 화가 난다.

한국의 농민들과 축산업자들의 피해도 엄청날 것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으니 '한우'라고 해도 소비자들은 구매하기가 꺼림칙할 것이다.
대형마트도, 동네 정육점도 다 무섭다. 단골인 정육점 아저씨를 못믿어서가 아니라 그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속았을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새댁도 애기 이유식에 소고기를 넣고 싶으면 '믿을만한 한우'를 구하기위해 사방팔방 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판이다. 그러나 강풀 만화에서처럼 나 혼자만 피해가려 해서 피해지겠는가.
처음부터 같이 막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장관의 고시 연기가 아니라 지금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재협상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국민 무서운줄 아는 정부라는 민주주의의 최소목표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 이 밤도 촛불을 켜고 계신 전국의 모든 분들께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4. 7. 18:22

국제곡물가격이 연일 치솟고, 세계가 식량대란에 빠져들었다는 뉴스를 심심치않게 보게 되는 요즘이다.
동남아시아에선 쌀부족 사태가 심화되면서 대중폭동이 일어나고,
남미에서도 농민파업이 발생하는 등 곡물을 둘러싼 소요가 확산되고 있나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렇다할 식량관련 소요는 발생하지 않아서 피부에 와닿지 않기도 하지만
짜장면이나 식당밥 가격들이 500원씩 오르는 걸보면 조금은 오싹한 기분도 든다.

초보주부인 새댁은 아직은 밀가루값이나 야채가격 등 소위 '장바구니 물가'라는걸 체감하는 수준은 아니다.
장볼 예산에 맞춰 값이 오른 야채를 바구니에 담았다뺐다 하며 걱정할 정도로 잘 계획해서 살림을 꾸리지는 못하고 있다보니
그저 '음~ 비싸네... 앞으로 더 오르지않으면 좋을텐데...'하고 생각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번 '물가대란'의 대책으로 정부가 나서서 50개 관리품목을 정하고 물가동향을 체크하는 것은
영 넌센스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큰 빵집체인점에 '식빵값 올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플랭카드가 붙을걸 보았다.
친구들에게 '식빵도 그 50개 관리품목에 들어간걸까?' 물으며 웃었더니
한 친구 왈, "그럼 뭐해~ 이제 (값은 안올려도) 식빵 크기가 줄어들겠네, 아님 나머지 빵값들이 엄청 오르거나~" 해서 다같이 웃었다.

원재료인 밀가루값이 오르는데 손해를 보면서도 기존 가격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들을 기업이 있을까.
그럼, 밀가루값에 붙은 관세를 내려 '소비자물가'를 유지하는 것은 과연 좋은 방법일까?
기본적으로 나는 '세금인하'가 능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소득층의 입장에서 '세금'은 '공공서비스'와 같은 의미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금이 인하되면 세금을 많이 내는 부유한 이들은 좋겠지만, 그 세금으로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받아온 가난한 사람들은 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세금이 제대로, 꼭 쓰일 곳에 적절히 쓰이고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고
무조건 '세금폭탄 땜에 못살겠다'고 말하며 모든 분야에서 감세부터 추진하는건 그래서 우려스럽다.
더구나 농산물에 대한 수입관세인하는 국내농업에 대한 보호장벽은 더 낮아지는 것이란 점에서
손쉽긴하지만 좋은 대책은 아닌 것 같아보인다.

아무튼.. 물가폭등에 대한 적절한 단기대책은 뭘까?
식료품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가계를 위협하는 요소는 너무 많다. 특히 집값.
서울의 전세값이 많이 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곳곳마다 뉴타운,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살던 집을 비워주고 나와야하는 사람은 많고, 전세살던 사람 내보내고 이 사람들 대상으로 월세받으려는 집도 많고,
그나마 있는 전세집들도 개발 바람을 타고 전세값을 올리고,
재건축된 아파트나 개발된 뉴타운 아파트는 값이 엄청나게 올라서 기존에 살던 사람들은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란다.
결국 아파트 건설사와 기존에 집가진 사람들, 그리고 새로지은 아파트들을 사서 다시 집장사에 나설 수 있는 사람들만 살맛나는 것이 뉴타운, 재개발 바람인 듯하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비상식적인 이 개발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50개 관리품목에 집값, 전세값, 월세값부터 좀 넣어야하지 않았을까. 
(앗. 집값도 52개 품목에 들어있다고 신랑이 확인해주었다. 음... 그러면서 집값이 오를만한 정책만 추진하다니!
정말 관리할 생각이 있는걸까....ㅠㅠ)

물가인상의 또다른 주요 품목중 하나인 공공요금 인상을 막으면서,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재정 투자가 더 필요하다.
대운하 같은 반환경적인 토목공사에 쓸 재정이 있다면 지하철과 버스같은 기존 공공서비스 개선과 안전관리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사교육비, 의료비도 그렇다... MB정부가 주창하는 '자율화'와 '개방'은 이 분야의 비용도 치솟게 할 것이다.
경쟁을 통한 질 상승은 사실 돈있는 사람들을 위한 명품교육, 명품의료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저렴한 공공서비스는 중단되거나 퇴출되어버려 서민들도 비싼 값의 의료, 교육서비스를 울며겨자먹기로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앗. 이 글을 시작한 이유에서 너무 멀리 왔다.
날로 심각해지는 식량문제에 대해 미봉책에 가까운 단기대책만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싶은데 정부도, 신문도 그런 얘기는 잘 하지 않는듯 했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쌀 자급도 불안한 것이 한국농업이다. 쌀을 제외한 나머지 농산물의 자급율은 5% 가량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으로 식량자급률을 높일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아무튼 이런 때에 18대 총선이 3일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식량을 '무기'로 한 세계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FTA를 통한 농산물시장 전면개방만이 능사가 아니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우리 농민과 농업을 보호하고 살려가야 한다는
작은 목소리를 일관되게 국회에서 말해온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금 경남 사천에서 18대 총선을 치르고 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이방호 사무총장을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같은 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도시와 건설업자를 대변하는 다른 의원들에게 저고리 고름 쥐어채여가며 절절하게, 외롭게 국회에서 싸웠던 분이
다시 그 국회로 돌아가기 위해 목이 쉬도록, 발이 부르트도록 분투하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고자란 사천 땅에서 고졸 학력으로 소키우고 농사지으며 아이 넷을 키우던
농부 강기갑, 농민운동가 강기갑이 국회에서 농민, 어민의 대변자로
머리 시어가며, 도포자락 휘날려가며 싸우도록 만든 데에는 나도 책임이 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 정당투표 한표를 던져 그를 국회로 보냈기 때문이다.
많은 싸움에서 다 이긴 것은 아니지만, 의미있게, 무엇보다 해야만하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농민, 어민, 그리고 이땅의 농민이 해주는 밥먹고 사는 우리 아이들과 우리 모두를 위해 싸웠던 그가
다시 국회로 돌아가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 싸우겠다는데
경남 사천에 전화걸어 지지를 호소할만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땅에서 밀농사를 다시 지을 순 없나. 푸른 보리밭 고랑을 우리 아이들이 다시 밟아볼 순 없나.
이제 곧 태어나 자랄 내 아이에게 안전하고 맛있는 우리 농산물을 먹일 순 없나.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우석훈.박종일은 그들의 책 '88만원세대'에서 농업도 지키고, 청년실업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농민 공무원' 같은 제도를 제안했었다.  
무분별한 개발을 그만 두고, 우리 땅에서 건강한 우리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농업부문에서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보자고.
허튼데 허비되는 정부 예산으로 충분하다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도시농업, 유기농업으로 유명한 쿠바에서도 도시민들의 농사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농업 공무원'들을 대거 육성했고, 그들의 활동으로 도시농업이 안정화될 수 있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이런 얘기들은 아직 먼 꿈같지만... 강기갑 한명이 국회에 들어간다고 바로 꿈이 현실이 되는것은 아니겠지만
기름기 흐르는 얼굴을 하고 손에 직접 흙한번 안묻혀봤을 것같은 금뱃지 의원님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국회에
적어도 '농민 국회의원' 한명쯤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정말 그래야하지 않을까.
강기갑 후보의 선전과 사천 주민 여러분의 남다른 결심을 부탁드린다.  
멀찍이 서울에 앉아 바라보고만 있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천을 지금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3. 6. 14:42

봄볕이 무척 따뜻해보였던 어제,
새댁은 아장아장.. 실은 뒤뚱뒤뚱 걸어서
연신내역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 연신내점에 다녀왔습니다. ^^
바람이 여전히 차갑긴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모르게 살짝 부드러워진 것 같았어요.

연신내역 2번 출구에서 나온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다보면 왼쪽으로 연서시장이 길게 펼쳐집니다.
시장 골목을 걸어가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입니다.
호떡, 찐빵, 도너츠같은 군것질거리들이 제일 먼저 새댁의 눈을 사로잡지요. ^^
오뎅꼬치의 유혹을 가까스로 비켜나 골목으로 좀더 들어가면
봄나물들이며, 각종 채소와 반찬들, 과일(싱싱한 딸기가 가격이 많이 떨어졌더군요~ 와~^^)들, 생선과 조개들이
좌판마다 싱싱하게 쌓여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장사가 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새댁은 집까지 무겁게 들고가기가 무서워 지갑을 잘 열지 않았지만
시장 분들 얼굴이 그닥 밝지만은 않은 것이 다른 사람들 지갑도 이런저런 이유로 햇빛을 잘 못보나 봅니다.

연서시장을 다 빠져나오면 작은 상가건물들이 나타나는데
그중 한 곳에 '아름다운 가게'가 있습니다.
시민들이 기증한 헌 물건을 잘 손질해서 판매하는 곳인 '아름다운 가게'는
수익금 전액을 우리 사회의 약자와 지구촌 곳곳의 여성, 어린이들의 자립을 돕는 기금으로 사용하는
비영리 시민단체입니다.

아름다운 가게의 예쁜 로고와 간판도 눈에 잘 띄는 편이고, 이번 토요일에 열릴 '연신내점 개관 2돌잔치' 현수막도 시장이 끝나는 큰길가에 붙어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가게에 들어서니... 우와 의외로 사람이 많았어요!
자원활동가인 분들도 여러분 계셨고, 물건을 사러오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새댁이 가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동안
평일 오후인데도 아주머니, 아저씨,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와 아가씨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제일 많은 것은 역시 옷,
그 다음은 신발과 가방, 책, 접시.컵 등의 소소한 그릇 종류가 많았구요
다른 물품은 아직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옷들이 정말 예쁜게 많았어요! 가격은 또 어찌나 싼지~!! ^^
눈이 휘둥그레진 새댁, 열심히 이쪽저쪽을 오고가며 결국 옷을 세 벌이나 고르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더 많이 골랐는데.. 제가 다 입을 순 없고 누구에게 선물할까.. 궁리하다가 결국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ㅠ

헌 옷들이 주로 많지만, 의류회사 차원에서 기부한 새옷들도 많았습니다.
'랄프 로렌'이라는 유명 의류브랜드의 기부품도 따로 한쪽에 있었는데 음.. 3천원, 5천원 하는 다른 예쁜 옷들을 보다가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나름 '고가품'인 3~4만원대의 그옷들을 보니 선뜻 손이 잘 안가더군요. ^^
원래 가격은 십여만원을 호가할 그 옷들이 아름다운 가게의 수수한 옷걸이에 걸려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아름다운 가게는 '나눔과 순환'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생산하면서 끊임없는 소비에 중독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최소한의 것도 부족해 고통받는 우리 시대..
서로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고, 가치있는 것들이 함부로 버려지지 않도록 순환시켜
모두의 생명을 살려나가겠다는 그 가치가 참 마음에 듭니다.
자기것을 쪼개 기부하고, 또 그렇게 기부된 물건을 구매해서 유용하게 쓰면서 그 기금이 사회 곳곳에 조금의 희망이라도 나눠줄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고...
단순해보이는 재활용이 이렇게 아름다운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해준
아름다운 가게의 아이디어와 열정에 감사를 보냅니다.

새댁도 뭔가 기부할만한게 없을까.. 가게로 출발하기전에 집안을 구석구석 봤는데
무거운 것들 빼고 가볍게 들고갈만한 것을 찾지못해(새댁이 워낙 뭘 잘 쌓아두는 성격이라 그렇기도 합니다만 ^^;;) 
빈손으로 가게에 들어선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돌아오는 손은 묵직했습니다.
3500원짜리 니트티셔츠와 원피스, 5500원짜리 가디건 한벌이 오늘 새댁의 소득입니다. ^^

기증받은 헌 물품들을 정리하고, 수선하고, 판매하는 모든 일들이
연녹색 앞치마를 입은 평범한 우리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
자연의 봄과 함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도
연녹색 희망의 봄이 더 넓고 튼튼하게 뿌리내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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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2. 27. 11:49

어제 저녁에는 TV로 생중계된 뉴욕필하모닉의 동평양대극장 공연을 지켜보았다.
명색이 북한 관련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인데 안보면 되랴 하는 생각도 있었고
요즘 잘 모르는 클래식이지만 라디오 주파수를 클래식 FM에 맞춰놓고 지내기도 하는터라
뉴욕필의 연주를 한 번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음악은 참 아름다웠다.
연주자들의 실력이 대단하구나 싶기도 했고,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이 들어도 아름다울만한
편안하고 고운 곡들로 선곡되어 있어 듣기 좋았다.
북, 미 양국의 국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 서곡,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이 본곡으로 연주되었고,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중 파란도르, 번슈타인의 '캔디드 서곡', 이북 작곡가 최성환이 편곡한 관현악곡 '아리랑'이 앙코르로 연주되었다.
 
피날레 곡이었던 최성환의 '아리랑'을 뉴욕필하모닉의 연주로 들어본 것.. 이 한곡만으로도
2시간여의 공연을 본 의의는 충분했던 것 같다.
'아리랑'은 세계의 어떤 음악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조선반도에서 나고 자란 내 정서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의 연주무대에 올려져도 조금도 손색없이 고운 선율과 거기 담긴 애수어린 향취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 잇닿을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음악 외의 다른 것들에 더 눈이 가는 것은 전공상(?)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우선 약간 수선스럽다싶게 살짝 흥분한 MBC 중계방송 아나운서들이 눈길을 끌었다.
역사적인 공연, 평화의 선율, 양국간 선린과 우호... 평소 듣기 힘든 이채로운 단어들이 동평양대극장 로비에 선
남, 여 아나운서를 통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뭐랄까, '역사적인 공연'이라며 살짝 흥분해있는 와중에 정말로 '역사적인 공연'의 의의랄까.. 그런 공연현장을 중계하는 사람으로서 준비했어야할 마음가짐은 좀 부족해보여 안타까웠다.
두 아나운서는 공연이 끝난후 공연을 본 평양 시민 한 분의 소감을 듣겠다며 노란 한복을 곱게 입은 여성 한명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그 분의 소개를 들어보니 '만수대예술창작단'의 작곡가 선생이었다. "준비된 인터뷰이"인 셈이다.
'그렇지. 전문가 아닌 사람을 남쪽 TV 화면에 내보낼리 있나' 살짝 웃음이 나왔다. 
북측의 애교 또는 문화방송에 대한 대접이라고 생각할만한 일이다.

그런데 이 분과 아나운서들간에 서로 하고싶은 얘기의 핀트가 살짝쿵 안 맞았다.
남자 아나운서는 2002년에 동평양대극장에서 있었던 남측가수 윤도현, 이미자 씨의 공연 사회를 본 자신을 기억하시는지 물으며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다.
이때 역시 준비된 인터뷰이, 작곡가 선생은
"네~ 저도 그때 객석에 앉아서 본 선생을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는 날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이것이 다 '6.15'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선생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가는데 크게 기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큰 내용없이 웃겨보려고 했던 아나운서는 살짝 머쓱해져서 "네~ 저도 통일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답하며 마무리지었다.

이 작곡가 선생이 '준비한 멘트'를 전후 대화속에 어떻게든 잘 끌어들여 살려가는 동안
두 아나운서의 표정은 그야말로 '에고~ 또 나왔다.. 썰렁한 공식멘트'라는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난처한 웃음과 함께 조금은 지겨워하는 표정.
나는 그게 맘에 걸렸다.
물론 생방송 중계 현장에서 행여나 도를 넘는 돌발멘트로 '방송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난처하고 걱정되었을 아나운서들의 심정이 짐작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긴장감보다는 의례성 멘트라고 생각하고 건성으로 듣고 넘기려는 인상이 더 강해보였다.
'역사적인 공연'이라고 자신들도 그렇게 들떠서 한참 말해놓고,
왜 평양 시민이 나름의 '역사적 인식'을 얘기하는 것은 '으레성 멘트'로만 취급하려 하는가.
 
남쪽의 반공교육은 북쪽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은 '앵무새들 같이 외워서(혹은 세뇌되어서) 말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오히려 '세뇌' 시켜 버렸다.
사실 누구라도 방송사 마이크가 불쑥 다가오면 굉장히 '상투적인 대답'을 하게 된다.
뉴스를 자세히 보라.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답은 우리의 예측을 빗나가지 않는다.
남쪽 사람들도 그럴진데 북쪽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북쪽 사람들의 '상투성'은 그들의 발언이 남쪽 사람들이 보기에 어색할만치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평소에 토론하고, 대중앞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모습이라 낯설 수는 있어도, 그런 모습을 쉽게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 진지하게 듣고, 그 속에 담긴 정신에 공감할 수 있다면 함께 나누고 대화하려하는 남쪽 사람들의 자세를 보고 싶다.
   
공연을 보는 동안 화면에 비친 북쪽 사람들의 표정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 같았다.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일제히 치솟았다 떨어지는 바이올린 활들은 어느 순간 날카로운 칼이나 힘찬 창을 연상시켰다.
60년이 넘게 지속되었던 무력 대결이 이제는 종식될 수 있을까.
몇 번의 전쟁위기와 일상적인 공포속에 치열하게 대립하던 두 나라가 이제는 칼을 내려놓고 서로를 인정할 수 있을까?
바이올린 활들의 힘찬 움직임을 지켜보며
'저 활이 언제고 다시 칼로 변하지나 않을까..?'
북쪽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궁금함과 기대, 불안함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 같다.
어쩌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보다는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의 표정이나 지휘자 로린 마젤의 말 한마디에 더 귀를 쫑긋 세우고
자신들의 불안함을 가셔줄 수 있는 따뜻한 우호의 기운을 찾아보려 애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약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공연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역사적인' 공연은 그렇게 끝났다.
뉴욕필 단원들은 어제 평양음악대학을 방문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악교실을 열었다고 한다.
오늘은 로린 마젤의 지휘하에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실내악 협연도 한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활이 다시는 칼로 바뀌는 날이 없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남북의 연주자들도 함께 윤이상의 교향곡이나 세계인이 사랑하는 오페라곡들, 민족의 정취가 담긴 아름다운 선율들을 함께 연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새댁은 우리 똑순이랑 신랑이랑 손잡고 그런 공연을 보는 아름다운 밤을 꿈꾸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2. 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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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증조할머니는 눈 온 다음날이면 꼭 이런 얘길 하셨다
"아이고~ 날 좋은 것 좀 봐라. 눈 온 다음날에는 거랭이도 빨래한다더니 그 말이 참 맞네"
단벌신사 거렁뱅이도 옷을 벗어 빨아 널만큼 햇볕이 좋다는 말이다.

서울에 봄눈치고는 꽤 큰 눈이 온 다음날,
해가 뜨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눈을 덮어쓴 북한산과 올망졸망한 지붕들이 정겹다.

북한산은 참으로 거대해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자그마한 것인지 때때로 실감하게 한다.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빽빽한 연신내 시가지가
순간 아주 작아보이게 만드는 북한산의 웅장한 풍경.
사람 살아간다는 것이 거대한 우주와 넓은 지구와 아름다운 자연과 시간속에서는
아주 작고 찰나같이 짧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것..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북한산 위로 기어올라가는 뉴타운인지 하는 아파트 건물들을 보며 일견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우공이산'의 고사에서처럼 세대를 이어 매일매일 한 삽씩 퍼나르다보면 큰 산도 옮기게 마련-
언제고 인간들이 저 높은 산도 다 허물고 콘크리트 싹 발라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모래바람만 휑하게 날리는 빌딩숲으로 바꿔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도 한다.

눈 쌓인 북한산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동이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로 오래오래 남아주기를 바란다.
대운하를 파둔지겠다는 대통령도 취임한 마당에 너무 큰 소망인건 아닐까...
건설경기만 활성화된다면 북한산도 통째로 들어내버리겠다고 나서는건 아닐까.
그 사람들의 눈길이 북한산에 미치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걸까..
에이. 좋은 산보며 괜히 입맛이 쓰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