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동네.세상2008. 2. 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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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증조할머니는 눈 온 다음날이면 꼭 이런 얘길 하셨다
"아이고~ 날 좋은 것 좀 봐라. 눈 온 다음날에는 거랭이도 빨래한다더니 그 말이 참 맞네"
단벌신사 거렁뱅이도 옷을 벗어 빨아 널만큼 햇볕이 좋다는 말이다.

서울에 봄눈치고는 꽤 큰 눈이 온 다음날,
해가 뜨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눈을 덮어쓴 북한산과 올망졸망한 지붕들이 정겹다.

북한산은 참으로 거대해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자그마한 것인지 때때로 실감하게 한다.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이 빽빽한 연신내 시가지가
순간 아주 작아보이게 만드는 북한산의 웅장한 풍경.
사람 살아간다는 것이 거대한 우주와 넓은 지구와 아름다운 자연과 시간속에서는
아주 작고 찰나같이 짧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것..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북한산 위로 기어올라가는 뉴타운인지 하는 아파트 건물들을 보며 일견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우공이산'의 고사에서처럼 세대를 이어 매일매일 한 삽씩 퍼나르다보면 큰 산도 옮기게 마련-
언제고 인간들이 저 높은 산도 다 허물고 콘크리트 싹 발라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모래바람만 휑하게 날리는 빌딩숲으로 바꿔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도 한다.

눈 쌓인 북한산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동이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로 오래오래 남아주기를 바란다.
대운하를 파둔지겠다는 대통령도 취임한 마당에 너무 큰 소망인건 아닐까...
건설경기만 활성화된다면 북한산도 통째로 들어내버리겠다고 나서는건 아닐까.
그 사람들의 눈길이 북한산에 미치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걸까..
에이. 좋은 산보며 괜히 입맛이 쓰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