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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1.16 택배
이웃.동네.세상2008. 1. 17. 10:41

9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나는 또래의 대학생들보다는 집회 경험이 많은 편이다.

등록금인상반대, 통일대축전, 출범식, FTA저지, 노동자대회... 등 다양한 집회에 나가보면

한결같이 들리는 정겨운 소리가 있었는데

바로 "마스크~" 다.

쌀푸대 같은 자루안에 마스크를 한가득 담아가지고 팔러 다니시는 이 아저씨는

그날그날의 집회 주제에 맞게 마스크에 이름을 붙여 부르셨고, 그 6~8음절의 가락이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듣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다.

"독재타도 마스크~", "비정규직철폐 마스크~", "이적규정철회 마스크~" 등등

이름은 제각각이어도 '마'자에 힘을 주는 독특한 '마아~~스크'라는 마무리때문에 통일성이 있었고,

겨울밤에 아련하게 들리는 '찹싸알~~떠억 메밀묵~'소리같은 정겨움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마스크 아저씨가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 집회가 곧 위험해질수도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최루탄이 날아올수도 있고, 사진 체증이 이루어질수도 있으며,

조만간 전경이 진압을 해들어올수도 있다는 것이어서

아저씨의 등장은 반가움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 슬며시 두려움이 깔리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청명한 날 오전에 갑자기 '마스크 아저씨' 얘기를 하는 것은..

내가 오늘 마스크를 끼고 책상앞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신혼살림으로 내가 장만한 대표적인 가구는 장롱과 책상이다.

침대는 쓰지 않기로 했고, 거실 소파는 나무가 아닌지라 큰 나무로 된 녀석은 이 둘인데,

새가구냄새에 민감한 내가 장롱은 '친환경인증'을 받아 '새가구냄새'가 없다는 신모델 녀석으로 장만했으나

책상은 그런 녀석을 못 구한 것이다.


덕분에 큼직한 책상이 방의 반을 차지하는 서재(로쓰는 작은방)에 들어오면 머리를 띵하게 하는 새가구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책상이 들어온 다음날부터 거의 매일 창문을 열어놓고 냄새를 뺴보았지만 여전히 10분만 앉아있으면 눈이 시큰해지는 수준이다.


유해물질을 나 혼자 먹는건 그래도 괜찮으나

명색이 곧 엄마가 될 사람으로서

이 냄새때문에 태어날 애기가 아토피라도 앓게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책상앞에 앉아 일을 시작한 오늘부터는

공기청정기도 작은방에 갖다놓고, 마스크까지 찾아끼고, 창문을 조금 열어놓는 대신 목도리도 칭칭 두르는

중무장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 팜플렛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엄마는 오늘도 치료비와 싸운다"

패러디하자면 "엄마는 오늘도 유해물질과 싸운다"

아토피없는 세상,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물질을 만들어내지 않는 세상, 치료비걱정 없는 세상...이 올때까지는

마스크가 필수품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이웃.동네.세상2008. 1. 16. 10:27

신혼살림을 차리고 나서 내가 가장 주력하는 일은 무엇보다 '요리'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하루 일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택배 받기'다.
신혼살림들의 대부분이 택배를 통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우리 둘은 머리를 맞대고 오늘은 무슨무슨 택배(또는 설치 기사님이)가 올것인지 점검한다.
참고로 오늘은... 집전화 설치 기사님이 9시에 왔다 가셨고
이따는 체중계 등 소소한 물품들, 그리고 오디오가 각각 택배로 올 예정이다.
어제는 강릉엄마가 쌀과 배추 등 먹거리들을 공수해주신 택배가 왔고,
그제는 식기세척기 설치 기사님이 다녀가시는 식이다.

..하여 초인종이 울리면 뛰어나가 택배를 받는 것은 나의 중요한 일과다.
세상이 흉흉하여 택배를 가장한 강도도 있다하고,
겁많은 우리 엄마는 '문밖에 두고 가세요'라고 말하라고 내게 신신당부하시지만
겁은 엄마못지않게 많아도 나는 왠지 배달하시는 분을 얼굴도 안보고 문전에서 돌아가게 하는게 맘에 걸려 얼른 문을 연다.
작은 방 창문으로 무슨 택배인지 확인하고 열수도 있는데...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신호를 받아서 멈춰있는데
버스 옆에 서있는 택배 트럭안에서 기사분이 봉지라면을 깨먹고 계신 모습을 보았다.
그때는 마침 12시경, 점심시간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상품구매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택배사업도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개인들간에도 택배나 퀵서비스로 물품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졌고.. 택배와 퀵서비스 노동자의 수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이런 얘길 하면서 교수님께서 이 새로운 직종의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나 근로조건에 대해 아직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하셨었다.
4대보험은 되는지, 노동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일종의 자영업자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비정규직 고용 노동자들일텐데..
택배의 경우 한 지역에서 일정하게 자리잡기 전까지는 밤늦게까지 일하는건 기본이요, 정말 밥먹을 시간도 없다더니
그날 생라면을 깨먹는 택배 기사님의 모습이 눈에 밟혀 마음이 아팠다.

아침부터 얘기가 무거워졌지만...
요즘은 정말 '살아가는 일'의 만만챦음을 새댁도 약간 실감하게 된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을 다룬 경향신문의 헤드라인은
"이주노동자 죽어서야 드러나는 '그들'"이었다.
마음을 쿡 찌르는 제목이었다.
너무 소박해서 너무 어려워보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정말 어려운걸까.

새해, 비정규직 택배노동자들이 제때 점심먹고 제때 퇴근해서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밥먹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히 잠들수있는 날이 오기를...
새해에는 그런 세상을 위해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새댁은 혼자 집에 앉아 다짐한다.

다음 택배는 언제 오려나....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