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2020. 1. 31. 14:59

올 겨울 우리 동네에는 아직까지 눈이 거의 오지 않았다.
강원도나 다른 지역은 눈 소식도 있고, 제설작업이 힘든 곳도 있다던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는 눈다운 눈이 한번도 안 온것 같다. 벌써 1월도 끝나가고 2월인데..

기후가 변하고 날씨가 달라지는 것이 한해한해 더 피부로 느껴진다.
이러다 또 춥고 눈많은 겨울이 찾아올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기온이 올라가고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의 계절이 예전과는 점점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온난화.. 멈출 수 있을까.
지구의 시간을, 아니 사람들의 시간을 지킬 수 있을까.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논다.
방학이고, 날이 따뜻하니 동네 남자 아이들은 우리집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작은 축구장에 모여 낮이면 늘 떠들썩하게 축구를 한다.
우리집 아이들도 끼여서 놀다가 집에 와서 밥먹고 또 나가서 뛰어논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두려움과 긴장을 안고 있지만 아이들은 타고난 생명력으로 뛰고 웃고 어울린다.
부디 더 퍼지지말고, 아픈 분들도 잘 나았으면..

설 전에, 그러니까 19일 일요일 오전에 눈이 살짝 왔었다.
1시간 남짓되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올겨울들어 처음보는 함박눈이 잠시 펑펑 내렸다.
아파트 단지 안이 금새 하얀 눈나라가 되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눈은 아쉽게도 금방 그치고 잠시후 해도 나는 바람에 다 녹아버렸지만
짧은 한나절 눈세상이 된 아파트 단지에 정말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나와
모처럼의 눈을 반가워 했었다.

그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나와서 눈을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아이처럼 공을 들여 예쁘게 눈사람을 만들던 어느 아빠의 모습과
반갑고 좋으면서도 아쉽고, 걱정되는듯한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의 복잡한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디 멀리 눈썰매장이나 스키장을 가도 좋겠지만
내 집 앞에서, 우리 동네에서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같은 눈을
신비롭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맘껏 놀 수 있는 겨울날이 아이들에게 허락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20. 1. 29. 11:36

설 명절을 잘 쇠고 왔다.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인 시댁 식구들과 재미있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동안 대식구 먹일 음식들을 만드시느라 어머니가 올해도 고생을 많이 하셨고, 나는 그저 옆에서 좀 거들고 치우고만 했는데도
집에 돌아와서는 파김치가 되어 연휴 마지막 날을 꼼짝않고 누워 쉬었다.

마음속으로는 새해도 되었으니 어지러운 집을 좀 정리해야지.. 늘 생각하고 있었어서
어제는 몸을 다시 움직여서 청소를 하고 맘먹었던 집정리도 좀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정리할 거리가 너무 많고, 한 구석에서 내가 정리를 하는동안 심심한 아이들은 청소해서 나름 깨끗해진 거실에서 또 꼬물꼬물 자기들 맘대로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석 낚시놀이를 하겠다며 종이에 물고기들을 그려 오리고 클립을 붙여 자석달린 낚싯대로 잡는 놀이를 신나게 하느라 셋이 여기저기에 스케치북 쪼가리, 색연필 들을 흩어놓더니
나중에는 각자 기지를 만들어서 너프총(길쭉하고 말랑한 고무총알을 쏠 수 있는 총)들을 하나씩 들고 공격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그래서 한쪽 머리에서는 엄마 혼자 아일랜드와 장식장 위를 치우고
나머지 집 전체에서는 아들 셋이 온갖 가구와 이불을 끌어다가 기지를 만드는 난리북새통이 펼쳐졌다.


연수가 거실 한복판에 식탁 의자들로 기지를 건설하자 연호는 아일랜드 옆쪽에 공부방 의자를 끌어와 이불로 덮어 기지를 건설했다.

연제 기지는 식탁 아래와 옆으로 남은 식탁의자를 연결해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기지를 만드는 속도도 빠르거니와
한창 신나서 즐겁게 쿵짝쿵짝 노는데 내가 끼어들기도 뭐해서 가만 두고 봤더니
금새 거실은 볼만하게 되었다.

에고... 이 난리통에 정리는 무슨 정리냐..
새해를 맞아 수첩을 펴들고 적은 집정리 목록은 열가지도 넘는 것 같은데
딱 한군데(아일랜드 위)만 하고 나서
나는 우선 보류했다. ^^;;;

봄이 오면 하지..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나면..
그전에 살살 할 수 있는 옷장 정리같은 거나 좀 하고,
아이들 침대방에 우선 다 몰아넣은 장난감 정리랑
공부방에 잔뜩 쌓인 작년 교과서들과 책상 정리나 또 하루 하고...

연수는 막대걸레 봉에 오래된 밥상보를 매달아 자기 기지의 깃발도 만들어 신나게 흔든다.
열세살 큰아들의 겨울방학.
집에서는 이렇게 맘껏 어지르면서도 놀 수 있어야지.. 다같이 치우면 금새 치울 수 있다.
나만의 기지란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공간인가.

가끔 빨랫대를 펼치고 의자들을 연결해서 이불을 덮어씌우고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다.
제 힘으로 만든 텐트같은 공간에 아이들은 좋아하는 만화책도 갖다놓고, 귤이랑 간식거리도 챙겨다 놓고, 불을 밝힐 후레쉬랑 별거별거를 다 갖다나른다.

엄마인 내가 우리집을 가꾸고 싶어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자기가 마련한 작은 공간이 좋아서 포근하게 그 안을 꾸미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집안에 각자의 집도 마련해보고,
그러다가 또 다같이 치우고, 맘껏 어지르고 맘껏 놀고 같이 깔깔 웃고, 한쪽 구석을 치우고 밥을 함께 먹고,
잠잘때는 이불들을 다시 제 침대로 가지고 가서 덮고 잔다.
그러다 보면 이 겨울도 지나가고 봄이 오겠지..

아이들과 남편과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집의 오늘 풍경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