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18.03.07 겨울 친구들
  2. 2017.12.18 겨울 소나무 2
  3. 2017.09.14 외할머니의 수건
  4. 2017.09.11 요양원을 지나며 2
  5. 2017.09.02 신을 닮은 구름
  6. 2017.09.02 외출길 단상
  7. 2017.08.30 갑자기 가을
  8. 2017.08.25 서울 풍경
  9. 2017.08.01 매미
  10. 2017.07.28 두 발 자전거
하루2018. 3. 7. 12:03


올해는 겨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었다.
많이 추웠고 집밖에 나가지못한 날들도 있었다.

그래도 바람이 좀 덜하고 햇볕이 쨍한 날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옆 냇가에 가서 잠깐씩 바람을 쑀다.

망월천. ‘달을 바라보는 마을’ 망월동에 사는 지금 우리집 옆 냇물 이름이다.
강일동에 살때는 고덕천 바로 옆에 살았으니
우리 꼬마들은 어린 시절을 냇가 옆에서 첨벙거리고 뛰어다니며 크는 셈이다.










망월천에는 새들이 많이 산다.

요가가는 길에 하얀 백로 한마리가 훨훨 날아서 키큰 소나무 위에 앉는 모습을 보는데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새가 어쩌면 이렇게 위로가 될까.
‘온기가 있는 생명은 모두 의지가 되는 법이야’ 하는 대사를 며칠전 영화에서 듣고 뭉클했는데
지난 겨울동안 망월천의 새들은 나에게 크게 의지가 되는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추운 계절을 함께 견디고 있다는 것, 꽁꽁 언 얼음과 땅 위에서 깃털을 움츠리면서도 묵묵히 담담하게 살아간다는 것.
새들을 한참씩 바라보게 되는 이유였다.

연수가 1학년때 학교에서 배운 <겨울 물오리>라는 동요가 참 좋다.
나랑 동생들도 집에서 배워서 오리들을 볼 때마다 같이 불러본다.

“얼음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제 찬바람 무섭지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이원수 선생님의 동시인 노랫말이 곱고도 굳세다.

끝날 것 같지않던 겨울도 이제는 슬그머니 새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났다.
겨울 철새인 청둥오리들은 떠났지만 망월천에는 텃새인 흰뺨검둥오리들과 왜가리들이 자리를 지키고 봄을 시작하고 있다.

봄에는 아이들과 더 자주 냇가에 가야지..
긴겨울 함께 나준 모든 친구들 고마워요.
봄 힘내서 모두 잘 자라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12. 18. 10:01


우리집 앞에는 나무가 많다.
봄여름가을에는 창문 바로앞 느티나무가 초록잎과 단풍 풍경을 곱게 보여준다.
새들도 자주 날아오고, 아파트 뜰 건너 교회와 학교 건물위로 하늘과 구름도 본다.





겨울이 와서 느티나무 잎이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남으면
비로소 뜰 끝에 서있던 소나무들이 보인다.
키큰 소나무는 겨울에도 푸르고
단정히 서서 눈을 맞는다.




소나무가 많은 고장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소나무는 고향같은 나무다.

오늘 아침은 함박눈이 내려 혼자 조용한 집에서
눈 사이로 소나무 풍경을 한참 구경했다.
문득 대학교 입학원서 넣던 날 생각이 났다.
한 대학의 본고사를 보기위해 수시 접수는 안하기로 마음먹고 서울 언니에게 엄마와 같이 놀러가있다가
마침 그 대학을 다니고있던 친척언니와의 통화에서
관심없는 학과에 점수맞춰서 가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에 마음을 바꿔 수시접수를 하기로 했다.
새벽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가서
마중나오신 아빠와 함께 고등학교로 갔다.
교무실에서 안된다는 담임선생님께 아빠가 화를 내시며 “아이가 가고싶다고 하잖습니까” 하시던 모습.
아빠가 강하게 말씀하시자 담임선생님도 어쩔수 없이 원서를 써주셨고
그 봉투를 들고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와서
지하철안에서도 뛰어
간신히 5시 마감전에 원서접수 창구에 원서를 넣었던 날.
겨우 숨돌리고 나와 엄마랑 대학앞 박리분식에 앉아 참을 먹었던 기억.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으시지만 필요할 때는 강하게 말씀하실 줄 알았던 아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셨던 엄마아빠.

좋은 날들을 살아왔다.
돌아보면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눈이 살짝 그쳤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산책을 나왔다.
소나무를 보며 나도 저렇게 푸르게 서있어야지 생각한다.
내 아이들 곁에 든든하게.
이제는 내가 엄마아빠의 편이 되어드리고,
원하는 것을 함께 해드리면서.

고향에도 눈이 왔을까.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9. 14. 23:11



화장실 수건걸이에 고운 분홍색 수건이 걸려있는데 

'용계2동 노인회 봄놀이 기념'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예전에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 받아온 새 수건들 중에 하나인 모양이다. 


용계동은 우리 엄마가 결혼한 직후(?) 정도에 외할머니가 삼랑진에서 대구로 이사하시면서부터 살아온 동네다. 

그래서 어린 시절 우리에게 외할머니는 '용계동 외할머니'였고, 외갓집은 항상 동대구역에서 내려서 찾아가는 용계동에 있었다.

용계동 외갓집에는 젊은 막내외삼촌의 책들이 많이 쌓여있는 벽장이 있는 작은 방이 있었고,

꽃이 예쁘게 핀 작은 화단과 수돗가가 있는 마당이 있었고

누군가 한 가족, 혹은 한분이 세들어 살던 작은 툇마루가 딸린 건넌방이 있었다. 


연호가 아주 어릴 때,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던 적이 있다. 

내 결혼식때도 외할머니는 연로하셔서 멀리 서울까지 못 오셨었고 

나도 결혼 뒤로 어린 아기들 낳고 키우느라 외갓집까지는 잘 안 가보았어서 

외할머니를 한번 뵙고 싶어서 강릉 엄마와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모처럼 대구 외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많이 편찮으셨다가 다행히 좀 나아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어릴때 외갓집 갈 때처럼 엄마랑 여행하는 기분으로 찾아간 곳은 

용계동이 아니고 조금 떨어진 옆동네였다. 

외할머니는 이사를 하셨던 것이다. 


오래된 집을 할머니 혼자 돌보며 지내시기에는 힘들겠다고 생각한 외삼촌들이 의논하셔서 

외할머니께 가까운 동네의 아파트 1층집을 구해드린 것이다. 

외할머니도 자식들의 의견을 따르셔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셨는데 

그 얼마 후에 아프셔서 한동안 고생하시다가 다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 즈음에 우리가 찾아간 것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 외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불고기볶고 시금치나물 무쳐서 차려주신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엄마와 외할머니 모시고 시장에 갔었다. 

엄마가 옷을 사드리는 동안 외할머니는 시장 옷집 아주머니에게 "둘째딸이 왔다"고 하셨고, 아주머니는 "딸이 오니 얼굴이 환해졌다"며 같이 반가워해주셨다.

옷도 사고, 할머니 좋아하시는 멍게살도 사고는 할머니 가고싶은 곳- 용계동 집을 보러 갔다. 


한동안 비어있었어도 용계동 외갓집은 깨끗했다. 할머니 사실 때처럼 깔끔했고, 마당의 화초도 싱싱했다. 

용계2동 마을회관에 두유 한박스를 사들고 놀러가니 외할머니의 친구들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둘째 딸이고, 둘째 손녀고, 손주사위고, 증손주들이고.. 소개를 쭉 하고 할머니들이 꺼내다주신 음료수를 한병씩 먹는 동안

외할머니와 친구분들은 요즘 노인정에 누가 오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런두런 얘기들을 나누셨다. 

외할머니는 평소의 밝고 높은 목소리 톤으로 돌아가 계셨다. 


분홍 수건을 보며 그 날의 풍경이 후루룩 떠올랐다. 

할머니는 슬프셨을 것이다. 

삼십여년을 산 정든 집을 떠나는 것이, 정든 마을과 이웃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지하철 두 정거장을 지나 찾아와야하는 거리. 

예전처럼 아침 저녁으로, 아니 거의 하루 종일 드나들며 얼굴보고 이야기나눌 수 있었던 익숙하고 좋은 사람들과 

그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셨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작년에 리엔파크를 떠나 미사로 이사오며 슬펐던 것처럼

그리고 이내 몸 어딘가가 아파져 한동안 고전했던 것처럼

할머니도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고 나는 이제야 분홍수건을 보며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5년전에 외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내 생각처럼 그래서가 아니라 그저 연로하셔서, 혹은 몸 어디가 특별히 약해지셔서 아프셨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사가 할머니께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셨을지 그때의 나는 가늠해볼 줄 몰랐던 것이다.


그때 외할머니는 새로 이사간 아파트의 경로당에는 아직 잘 안 나간다고 하셨었다. 

낯설고 서먹하셨겠지..

그 뒤로 사촌동생이나 엄마를 통해 드문드문 들은 소식은 외할머니가 건강히 잘 지내신다는 것과 

외할머니의 1층집이 동네 할머니들이 많이 놀러오셔서 같이 밥도 드시고 화투도 치시며 즐겁게 지내시는 사랑방처럼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올여름에 외할머니를 만나고온 엄마는 외할머니도 허리를 많이 아파하신다고 알려주셨다.


다시 외할머니를 뵈러 가고 싶다. 

내년 봄쯤에는 엄마를 모시고 찾아뵈러 가야지.  


자매애.. 라는 것이 여성이 살아가는데 정말로 중요하구나.. 하고 요즘 많이 느낀다. 

혈연으로 이어진 자매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 친구, 아이들 친구 엄마들, 다양한 삶의 공간에서 만나는 여성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서로 도와주고 마음을 나누면서 쌓아가는 자매애.

자기애 만큼이나 어떤 여성들에게는 절실하고 중요한 관계이고 감정인 것 같다.  


내 삶을 오늘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자매들이 고맙고

1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조금은 아픈 마음 자리를 들여다보며 조용히 손을 얻어 따뜻하게  만져주고픈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9. 11. 11:20



내가 버스를 타고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 요양원이 두 곳 있다. 

둘 다 건물이 아주 크다. 

먼저 만나는 갈색 건물의 요양원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작은도서관 가려고 버스에서 내릴 때 앞에 서있는 푸른 건물은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한다. 

안에 계신 어르신들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이 두 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안에 있을 어르신들 생각을 잠깐 한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다 오신 분들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그러니 저 큰 건물에는 정말로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겪고 느끼며 살아온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예전에 아빠가 아빠의 작은아버지, 그러니까 나에게 작은 할아버지께서 요양원에 계시다해서 한번 뵈러 서울에 다녀가셨다고 했다. 

몸이 많이 편찮으시고 치료와 돌봄이 필요하셔서 자제분들이 시설 좋은 요양원에 모신 것이었다.  

작은 할아버지는 젊을 때 고향인 강릉을 떠나 서울에서 자리잡으시고 자식들 키우며 오래도록 살아오신 분이셨다. 

강릉에서 조카가, 이제는 그도 칠십이 된 조카가 안부를 여쭈러 찾아왔을 때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잘 가늠하기가 어렵다. 

누군가가 찾아온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했던 한 시절이, 혹은 그 사람과 깊이 연관된, 내게도 깊은 인연을 지닌

어떤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함께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닐까. 

할아버지에게는 조카가 아주 어리던, 형님이 아주 혈기왕성하던, 본인이 너무도 젊었던 

강릉에서의 청년시절로 잠시 데려간 만남은 아니었을까. 


요양원이 처음 생겼을 때 아이들과 고덕천을 산책하다 운동기구가 있는 벤치에 앉아 쉬노라면 

걸어가다 힘드신 할머님들이 옆에 앉아 잠시 쉬시면서 

요양원을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시기를 

"저기 가면 끝이야, 끝. 나가 다니지도 못하고.. 들어가지 말고 살아야해" 하셨었다. 

그리 생각하시는구나,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들으며 생각했는데 

살뜰히 돌봤던, 힘들어 겨우겨우 꾸리며 살았던지 간에  

익숙한 자기 집을 떠나 낯선 공간에 적응한다는 것, 마음 대로 출입할 수 없다는 것, 정든 관계들과 단절된다는 것, 

편안하고 안전하다 해도 분명히 많이 힘들고 마음 아프실 것 같다. 

하지만 그 곳에도 여전히 삶은 있고, 어떤 마음들로, 어떤 인연들을 나누며 오늘을 보내고 계실까.

버스를 타고 지나며 한번씩 바라보게 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9. 2. 23:40





저녁 무렵, 구름이 참 멋졌다. 

하얗게,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꼭 신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토록 슬픔이 많은, 고통이 많은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 여자아이는 처음 보는 나를 향해 너무 친근하게 활짝 웃어주어서 마음속으로 조금 놀랐는데

조금 더 지켜보니 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아이 옆을 지키는 엄마의 눈썹 사이에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엄마란 어느만큼 힘든 것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걸까. 

어둑해지는 아파트 길로 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강하고도 슬퍼보여서 오래 바라보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9. 2. 23:36

#1. 


정류장. 죄인처럼 고개 숙인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 보느라.. 죄도 없는데.

고개들고 앞을 보는 사람이고 싶다. 

근데 나도 전화기 꺼내서 사진찍었다. 

(햇볕이 넘 좋길래.. 노트꺼내 벽에 기대 세워놓고. ^^;)




#2.

정류장에서부터 다정히 노모를 챙기던 아들.

버스에 타서도 자리가 없자 어머니한테 "멀리 가지 마세요, 여기 잡으셔요." 한다. 

어머니는 "응. 곧 내리니까" 하신다. 

사위인가..? 너무 다정해. 그리고 존댓말을 쓰잖아. ^^




#3.

버스가 지하철 공사장 옆을 지난다. 불꽃 튀기며 큰 철관을 용접하신다. 

어제 아이들과 자전거타고 바로 이 길 옆 인도를 지날 떄

현장에서 일하다 퇴근하시는 것 같은 젊은 아저씨 한 분 곁을 지났는데 

손에 들고가는 작업모에 이름이 쓰여 있어서 눈길이 갔다. 

이름이 쓰여있는 모자. 

위험한 곳에서 일하다 위험한 일을 겪을 때 나를 알려줄 내 이름이 쓰인 모자. 마음이 아련해졌다. 

건강한 모습으로 퇴근하시는 아저씨의 모습에 안쓰러움과 안도감이 함께 들었었다. 

그 생각을 하며 오늘 아침, 군인들도 철모에 이름이 써있나.. 문득 궁금했다. 

더 열악한 곳에서는, 더 이름없이, 아무 안전장비없이 일하는 분들도 많지...ㅠㅠ

돼지 분뇨를 치우는 작업을 하다 숨진 이주노동자들처럼... 





#4. 

어린이집 등원하는 아이를 데리고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는 젊은 엄마를 보았다.

나처럼 볼살이 많이 빠졌다.

가느다란 몸매. 가끔 이런 엄마들을 본다.

어린 아기 키우느라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건 모두 비슷하겠지만 

체질 때문인지, 부실한 식사 때문인지, 어디가 아파서인지

살이 빠지고 마르는 사람들.

아이들 좀 크고 많이 쉬면 괜찮아질까. 살이 찔까. 

살이 빠져도 아파보이지 않으면... 힘이 있으면 괜찮지.

아이데리고 매일 버스로 등하원시키는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힘들겠다. 애쓴다. 

신도시 미사에는 지금 유치원도 부족하고, 입학을 해도 차량에 자리가 없어서, 또 학기중에 이사와 그전 동네 어린이집으로 직접 등하원하는 엄마들이 꽤 있는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된 뒤로는 엄마들 모습이 눈에 자주 들어오는데, 

엄마들 참 예쁘다. 

정말로 아름답다. 

육체적 아름다움에 더해서 어떤 기품 같은 것이, 어머니가 된 여자에게서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나름 아픈 시간을 겪은 것, 힘든 수고를 해내고 있는 사람이 받은 선물 같은 것.

그런 아름다움이리라고 생각한다.






#5.

지하철 객차 안에서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좋은 목소리로, 맨 앞 객차 맨 앞 문옆에 서셔서 여러 곡의 찬송가를 구슬프고 아름답게 부르셨다. 

기관사 아저씨의 자제해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온 후에야 아주머니를 노래를 멈추시고 다음 역에서 내리셨다.

처음 든 생각은 저 분도 마음 속에 지금 피를 흘리고 계신가보다.. 하는 것이었다. 

마음안에 남에게 말하지못하는 슬픔이, 힘겨움이 있어서 저렇게 노래로 울고 계시는거 아닐까.. 하는 거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선교, 포교 활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은 옛날에, 내가 대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이렇게 지하철을 타서

시민들께 유인물을 나눠드리면서 정치연설(?) 같은 것을 하는 지하철 선전활동을 꽤 자주, 많이 했는데

그때는 기관사 아저씨들이 한번도 방송을 안 하셨다는 것. 

지하철 노조 조합원이셨을까. 우리가 탔던 모든 지하철의 기관사 분들이 노조원인 것은 아니었다면

90년대 후반, 2천년대 초반의 사회분위기리는 것은 

그 정도의 정치집회, 선전활동은 그럴 수 있다고 용인해주는 분위기였던걸까. 



왕십리역까지 오고가는 전철 안에서

연습장을 꺼내 가방위에 올려놓고 앉아서 글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짧지 않은 시간이 후딱 가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갔을 단상이 

못그려서 민망하지만 내게는 큰 즐거움을 주는 내 그림과 함께 남았다.

옆자리에 앉았던 강릉 임계에서 올라왔다는 고등학생에게 반갑다고 말을 걸어(정동진에 가까운 임계에서 온 이 친구는 강릉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얘기가 나에게도 들려서;;) 잠시 이야기도 나눌 정도로 마음에 용기가 있었던 외출길이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8. 30. 12:27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가을 처음 맞는 사람처럼 우왕좌왕한다.
애들 긴팔옷을 어디 뒀더라...



부쩍 쌀쌀해진 공기 속에
어린시절 가을운동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긴팔 긴바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나가보면
이슬젖은 땅 위로 하얗게 그어진 줄, 펄럭이는 만국기.
점심 나절쯤엔 엄마와 친척 숙모들, 동네 아줌마들이 모두 오셔서 집집이 돗자리를 깔고 함께 둘러앉아먹던 점심밥.
찰밥과 사이다, 삶은 밤과 계란이 있던
맛있고 푸르고 높고 어느새 따뜻해져있던 가을 한낮.

그리워라.
우리 아이들도 그런 운동회를 하면 좋겠다.





(그림 그리다가 생각난건데 그때 우리 체육복은 위아래가 온통 하얀 츄리닝이었다. 거기에 하얀 실내화..--;; 도대체 엄마들은 빨래를 어떻게 하라고ㅠㅠ 세탁기도 잘 없었고 우린 흙땅에서 맨날 뒹굴고 놀았는데.. 아고ㅜㅜ)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8. 25. 16:42



'서울이 아주 장엄한 구름과 하늘 아래 있는 날.
서울도 그저 하늘 아래에 있는 작은 도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둔촌동을 지나는 3413 버스 안에서'

하늘을 보는게 좋다.
어디있든 하늘을 보면 이 땅은 작다는 것, 넓은 하늘 아래, 더 멀리 우주 아래
우리는 아주 작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좋다.
그리고 구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도 걷고 비둘기들도 걷는다.
좋다.
누구는 걷는데 누구는 날아서 도밍치랴.
같이 걷자.
볕 좋은 늦여름 거리.

- 아이들 데리러 유치원가는 길'


나와 가까이서 도망치지않고 유유히 같이 걷는 비둘기들이 예뻤다.




연제가 냉동실 문을 열어 제 인형이 잘 있는지 살폈다.

"연제야, 곰돌이가 춥지 않을까? 왜 냉동실에 넣어놨어?"

물었더니 돌아온 답.

"곰돌이는 북극곰이잖아~~"

ㅎㅎㅎㅎ

그랬구나~~ 그래서 걔가 거기 있는게 좋겠구나.

엄마는 짐작도 못했네ㅠㅠ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8. 1. 16:30



여름 하루 중에는 아침이 제일 시원한 것 같다.
어제 비가 오고 오늘은 날이 화창하고
바람도 시원했다.

아이들과 아파트 놀이터들을 돌며 자전거도 타고 그네도 타고
잠자리도 잡다가
땅에 떨어진 매미를 주웠다.

꼼짝안해서 죽은 줄 알았는데
정자 마루에 올려놓고 그림을 다 그리고나니 다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밤새 울고 지쳐 나무에서 떨어져있었던걸까.

매미릏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본건 처음인것 같다.
매미야 기운차리렴.
7년이나 땅속에서 애벌레와 번데기로 지내다가
올여름 처음 땅위로 올라왔을 매미.

일곱살 연호가 자기 친구라고 좋아했고
연제는 매미 형아라고 불렀다.
정자에서 바라보이는 나무 밑에 데려다줬는데
기운차리고 올라갈지 모르겠다.

여름이 깊어간다.
방학도 한복판이다.
어제 저녁에는 쓰르르 하는 풀발레 소리를 아이들과 창문에서 귀기울여 들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하루2017. 7. 28. 09:45



연호가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날

"엄마 너무 기뻐!"

하고는 전화로 아빠한테 소식 전하고
동네 이모들한테도 다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제 노트에 기록도 남겼다.

그림은 연호가 그리고, 글은 연호가 불러주는데로 내가 적었다.

씽씽 바람을 가르고 빠르게 달릴 때의 그 자유로움, 기쁨, 설레임.
열두살때 강릉대학교 운동장에서 동네언니에게 자전거를 처음 배웠을때
엄마도 느껴봤지.
도시의 아이들의 '달빛 창가에서'를 부르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내 그림자가
운동장 흙땅위로 길게 그려졌었다.

연호는 미사강변19단지, 지금 우리집 앞마당에서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탔고
풍차놀이터와 무당벌레놀이터와 방방놀이터들 사이로 요리조리 씽씽 돌아다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