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8.02.08 나무의 노래
  2. 2009.09.14 엄마 걱정 10
  3. 2009.06.02 사랑 1년 37
  4. 2009.03.27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 26
  5. 2009.03.19 봄밤 7
  6. 2009.01.22 墨畵 10
  7. 2009.01.17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16
  8. 2008.03.21 반지의 의미 4
  9. 2008.03.21 결혼에 대하여
  10. 2008.03.18 쌀죽사진, 시한편 3
2018. 2. 8. 07:54

우리 아이들이 '달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동네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딸을 나는 '작은 달님'이라고 부르는데 올해 아홉살이 되었다. 

엄마랑 딸이 모두 책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고, 뛰어놀기도 좋아하는 예쁜 모녀다. 


작년에 '작은 달님' 은교가 여덟살이었을 때 동시를 한편 지었다고 달님이 내게 보여주었었다. 

'나무의 노래'라는 고운 제목의 동시였는데 참 좋았다. 

그 전날 엄마랑 같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책을 읽었다는데 그 여운이 많이 남았는지 

이 귀엽고 진지한 꼬마 시인이 시를 한편 쓴 것이었다. 


나는 은교의 동시를 읽고 그림을 한편 그렸다. 

내 연습장에 네임펜과 색연필로 슥슥..^^

대단한 그림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시가 준 느낌을 살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충만한 마음이 되어 참 좋았었다.

작년 여름 정도에 그린 것 같다. 









나무의 노래 


                                                                       이은교(서울 강명초등학교 1학년) 지음




1. 얘~야 이리로 놀러오렴 

   시원한 바람과 달콤한 열매를 너한테 다 줄께

   내가 있는 곳은 높은 산이란다

  높은~ 산에는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과 친척 있지


2. 얘~야 나한테 안겨보렴

  내 품은 너의 온도와 맞을꺼다

  나와 껴안아보자 안아보자 내 품은 따뜻하다

  너와 안아보면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있겠지


3. 얘~야 이리로 와보렴 너의 마지막 인사다

  나는 풀이 없어지고 너에게 시원한 바람을 이젠 못 주겠구나

  이젠 진짜로 안녕

  나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도는구나 안~녕








은교의 시를 읽고 나는 높은 산위에 있는 아주 크고 아름다운 나무 생각을 했다. 

바람에 풍성한 가지와 나뭇잎을 흔들며 자유롭게 노래하는 큰 나무.

평화롭고 굳센 나무.

그림을 그리고 나니 나도 그런 나무처럼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작은달님 동시와 그림을 언제 한번 블로그에 올려야지.. 생각만 하다가 늦게사 이제야 올려놓는다. 

할머니가 떠나시고 나는 가끔 이 그림을 보며 할머니 생각을 했다. 

할머니의 삶도 큰 나무처럼 우리들을 모두 품어주고, 달콤한 열매를 먹여주시고, 그안에서 쉬고 놀게 해준 삶이었다. 

나이가 많이 드신 뒤에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셔서 바퀴달린 작은 보조기구에 의지해서 천천히 걸어 마을 회관에 다녀오시며 지내셨다. 그래도 예쁜 웃음을 잃지않으셨던 할머니. 

할머니는 높은 산의 고운 나무같은 아름다운 인상으로 내게 늘 남아있을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처럼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그렇듯이...


작은 달님. 고마워요. 

작은 달님의 시가 이모에게 많은 기쁨과 위로를 주었어요.  

새 봄에는 따뜻한 햇볕 받으며 우리 또 함께 노래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9. 9. 14. 23:00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중에서



얼마전 후배의 블로그에서 이 시를 읽었다.
가슴을 뭔가로 맞은 것처럼 찡하고 아팠다.
기형도 시집의 맨 마지막 시였다.  

어린 시절에, 엄마는 가끔 지하시장 한귀퉁이 만두집 탁자앞에 나를 앉혀놓고
만두 천원어치, 혹은 찐빵 천원어치를 시켜주고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이걸 먹으며 기다리고 있으라 이르고 장을 보러 가셨었다.

생선가게들이 줄지어있는 어두운 지하시장 한켠에서
나는 아주 천천히 만두를 먹었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그 와중에도
달달한 찐빵은, 보드라운 만두는 참 맛있었다.
그릇이 비어가면 먹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서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한개는 꼭 남아있었다.
저만치 엄마가 보이면, 혹은 내 등뒤에서 엄마가 나타나면
나는 얼른 남은 하나를 꿀떡 삼키고 
엄마 손을 잡고 물이 찰박거리는 지하시장을 떠나 지상으로 올라갔다.

얼마나 안도스러웠던가.. 엄마가 나를 데리러와준 것이, 나에게로 돌아와준 것이.
그러나 돌아보면 이정도 기다림밖에 안 가지고 자랄 수 있었던 내 유년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이었던지.

누구나 엄마를 기다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크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뛰어노는 시간도, 뭔가를 배우는 시간도, 때론 무료하게 흐르는 시간도 
엄마가 곁에 없으면 모두 온통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우리 아기는 엄마와 하루종일 붙어있으므로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도 거의 없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면 아이는 문앞을 오가며 기다리고, 
집안일을 할 때도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기다린다.
제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얼른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서 엄마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자는 동안에도 엄마가 제 곁에 와서 누울때까지, 그래서 팔을 휘젖거나 발을 뻗으면 엄마 살이 닿을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른다.

기다림을 배워가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세상일 중에는 꼭 기다려야만 하는 것도 있고, 그런 것들은 잘 기다릴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엄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아야지.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를 기다리느라 훌쩍거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가끔 늦은 시간까지 아파트 안에 있는 유치원에 불이 켜져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어느 아이가 아직까지 엄마를 기다리고 있구나.. 생각하면 
그 아이의 두려운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기다리는 아이에게 돌아오려고 그 엄마, 혹은 아빠는 이 저녁 또 얼마나 마음졸이며 서두르고 있을까..
  
아이들을 너무 일찍, 너무 오래 엄마아빠와 혹은 할머니할아버지같은 살가운 어른들과 떼어놓는 것이
요즘 도시의 어쩔 수없는 삶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또래 아기엄마들과 모여앉으면 아기를 어딘가 맡기고 일을 해야할까, 어쩔까 하는 고민이 자연스레 화제에 오른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는 경우도 있고, 
당장의 생계는 아니지만 이 살벌한 서울땅위에 내 집한간 마련하고, 아이들 공부시키며 살려면 맞벌이하지 않고는 안된다고도 하고,
엄마도 자기 일을 계속 하고싶고, 혹은 자기 꿈을 위해 공부를 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그 모든 필요와 미래와 고민을 접고 아이와 온전히 함께 지내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모두들 엄마가 키우는게 아이에겐 제일 좋다고 얘기하면서도 '그렇지만..'하며 긴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이다. 

아이양육비나 교육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집마련과 노후대책을 위해 아둥바둥 몇십년을 맞벌이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나 아빠가 일하는 직장안에 탁아시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함께 있고픈 엄마와 아이를 떨어뜨려놓는 세상의 모든 처사들은 비인간적이고 어리석다. 



 

덧.
사람은 아는만큼 꿈꿀 수 있다. 그리고 꿈꾸는 것만이 현실이 될 것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라>(스티브 비덜프 지음, 북섬 출판사)에 보니 
스웨덴이나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육아휴가를 3년으로 규정해(그중 첫해에는 거의 100% 가까운 임금을 지급한다) 부모의 복직을 보장한다고 한다. 
이렇게 가족정책이 잘 발달한 나라의 젊은 부모들은 어린아이들(특히 만3세 이하의)을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고 직접 돌볼 수 있다.
이른바 big3 라고 불리는 '유급 육아휴가/ 탄력적 근무제(하루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 그러면 아이를 '아침부터 밤까지' 보육시설에 맡기지않을수있다)/ 고용보장'의 3대 정책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럽다.. 고만 말하고 말려니 화가 난다.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제도를 마련하지 못할까.. 
저출산의 대책으로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아. 저 책은 곧 서평을 올릴 생각인데.. 그 전에라도 관심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싶은 좋은 책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9. 6. 2. 15:40


천둥소리 요란한 것이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똑순이는 코 낮잠을 잡니다.

지난 주말, 가까운 친지분들 모시고 똑순이 돌잔치를 했습니다.
잔치라고 할 것까진 없는 가족들과의 점심식사였지만
똑순이의 첫 생일인만큼 돌상도 차리고, 돌잡이도 하고..
멀리 지방에서, 그리고 서울 곳곳에서 찾아와주신 집안 어른들께 축하와 덕담도 많이 들었습니다. 

큰 잔치도 아니었는데 막상 치르고나니 몸에 힘이 쭉 빠져서 
몸살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하룻밤 자고나니 괜찮아졌어요. ^^

똑순이도 엄마도 한살이 되는 6월이 시작됐습니다.
이제 지난 1년 천천히 돌아보는 차분한 시간도 갖고, 
똑순이 돌잔치 얘기도 조만간 사진정리해 포스팅해야겠어요.

돌잔치 치르고 오는데 문득 노래 하나가 오랫만에 떠올라 흥얼흥얼 했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사랑'이랑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
"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 이런 가사가 대학시절과는 다른 의미로 절절했습니다. 
 
엄마가 되고서 '사랑'이란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듯합니다. 
그 시, '사랑'을 옮겨놓습니다.





사랑은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
사랑은 갈라섬,
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
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
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
사랑은 노동, 지루하고 괴로운 노동자의 길
사랑은 자기를 해체하는 것,
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들어 소생하는 것
사랑은 잔인한 것, 냉혹한 결단
사랑은 투쟁, 무자비한 투쟁
사랑은 회오리,
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일어서
폭풍치고 번개치며 포효하며 피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고요의 빛나는 바다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
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위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 하나이 되어
춤추며 노래하는 눈부신 새날의 
위대한 잉태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9. 3. 27. 22:04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꼭 일주일이 다 끝나는 날처럼 피곤합니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지만.. 다가오는 휴일 생각에 안도하게 되기도 하고요.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신랑이 어제도 새벽 1시에 들어오더니
오늘 아침에는 몹시 피곤해하다가 지각을 했습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일이 없는 것보다야 바쁜 것이 훨씬 다행이라지만..
연일 잘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는 신랑이 안쓰럽습니다.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잘 내색하진 않지만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바람부는 추운 세상으로 매일 아침 나서려면 얼마나 떨릴까..
하고싶은 일도 많을텐데.. 생계를 위한 매일의 고단한 노동 외에 다른건 잘 엄두내지 못하는 신랑.
고맙고 미안합니다.

문득 엊그제 봤던 시 한편이 떠올라 올려봅니다.

+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박목월 시, '가정' 전문



피곤하면 자면서 코를 고는 신랑은 요즘 거의 매일 아주 심하게 코를 곱니다.
새댁도 요즘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오른팔이 쑤시고 아파서 한참동안 잠을 못이룹니다. 
둘 다 참 피곤한 날들을 통과하고 있나봅니다. 
그래도 무럭무럭 잘 커주는 똑순이를 보며 힘을 내야하는, 힘이 나는 우리..
어설프지만 우리도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나 봅니다.








오늘은 똑순이가 새댁이 듣기에도 분명하게 "아~빠빠빠바바바"라고 말했습니다.
(신랑은 전부터도 '아부와~'라고 말한다고 주장해왔어요~ㅋ)
내일 듣고 기뻐할 신랑을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똑순아부지, 힘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9. 3. 19. 20:05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兄)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 박목월 시, '下棺' 전문



3월을 나는 밤공기로 느낀다.
특유의 부드러운 밤공기.
차가운 겨울기운이 사라진 부드럽고 시원한 밤공기.
이런 공기라면 곧 목련도 꽃망울을 터트리겠고
이제는 잔디밭에 앉아 술잔을 기울여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공기.

내가 처음으로 앞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뽀글뽀글 파마를 했던 
대학교3학년 시절에 새내기로 만났던 후배가 며칠전에 세상을 떠났다.
누나. 
하고 부르며 눈을 온통 감고 웃던 녀석. 

아이에게 골몰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사는 내가
후배 빈소를 찾아가며 올해 처음으로 봄밤공기를 마셔보았다.
그 공기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는데..

빈소를 지키는 후배의 부모님과
후배의 연인이었던 또다른 후배의 작은 등이 몹시 추워보였다.

이제 곧 꽃이 필텐데.. 
후배 떠나는 길에 꽃이 좀 피어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봄이 오고, 그 녀석 생각할 때쯤엔 꽃이 많이 피어 그의 부모님도, 연인도, 친구들도.. 조금씩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

미안하다, 얘야.. 더 가까이 지내지 못한 것, 아픈 날에 찾아가보지 못한것, 이토록 젊은 날에 떠나보낸 것..
생각하니 모두 너무 미안한 일들이다.

부디 잘가렴..

떠난 곳에서는 아픔없이 언제나처럼 눈을 거진 다 감은채로 껄껄껄 많이 웃어라. 얘야.
우리들이 다시 만나는 날에는 처음 만났던 그 봄날들처럼 재미있게 놀아보자..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9. 1. 22. 11:07


墨畵(묵화)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엊그제 똑순이 병원다녀오는 길에 
허리가 많이 굽어진 할머니를 다른 할머니가 부축하고 걸어가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았습니다.
한쪽은 모녀지간인듯 했고 다른 한쪽은 친구이거나 형제같았습니다.
나이들면 서로 의지하고 보살피며 지낼 친구가 꼭 있어야겠구나.. 생각하며
할머니들의 모습이 먼 일같지 않아 마음 짠해하며 걸었습니다.

+
 
어제는 새댁이 허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아침에 똑순이가 깨서 우는데 허리가 아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똑순이가 낮에 졸려하면 업어재우다 보니
저녁이 되면 허리가 뻐근하게 많이 아픕니다.
요즘 불면증(몸은 너무 피곤한데 잠이 안와요ㅠ)도 살짝 생겨  밤새 엎치락뒤치락하다보니
어제 아침엔 허리를 못 일으켜세울만큼 녹초가 되어버렸어요.
결국 어제는 신랑이 연차를 쓰고 똑순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했습니다.

몸이 힘드니 마음이 무척 약해집니다.
아이가 울면 덩달아 눈물부터 나고, 아기 울음소리가 커지고 길어지면 마음이 걷잡을수 없이 헝클어집니다.
아.. 이 정도 상황에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잠시 멍해집니다.
이런게 우울증인가.. 겁이 납니다.

지나치게 과민한 것 같기도 하고,
더 황폐해지기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엄살 떨어서 조언도 듣고, 기운차려야할 것 같기도 합니다.
휴... 
어느새 똑순이는 8개월을 열흘 앞두고 있습니다.
참 많이 왔고, 또 참 많이 가야합니다..

+

오늘자 신문에서
용산철거투쟁 현장에서 숨진 아버지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 어린 상주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80년 광주에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안고 있던 어린 소년의 사진이 오버랩되더군요....
아버지는 아마 저 아이와의 삶을 지키기위해 망루위에 섰을 것입니다.
살아야겠다는 처절한 목소리들이 공권력에 가차없이 짓밟히고,
가난한 삶이 너무 쉽게 부서지는 요즘같은 세상을
아이와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아버지를 잃은 그 아이들의 마음에 앞으로 끝내 씻겨지지 않을 상처가 남으리란 사실이 더욱 무섭습니다.
무엇이 그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마음 무거운 세밑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9. 1. 17. 12:12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마다 집을 치웠었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진 적도 없었고,
자장가는 오래전에 잊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풀에 독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예방 주사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누가 나에게 토하고, 내 급소를 때리고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빨로 깨물고, 오줌을 싸고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 팔로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 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봐 언제까지나
두 팔로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 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이 엄마가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그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작자 미상


생일에 선물받은 책중에 시집이 한권 있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유명한 제목의.. 
거기에 이 시가 들어있었다. 
똑순이가 아프기 전에도 그랬지만 집은 늘 너무나 어지러웠고, 나는 늘 참 분주했다.
세수 한번 샤워 한번하는데도 어렵게 시간을 쪼개야했고 , 마음놓고 잠을 자본지는 7개월이 되었다.  
그래도 한순간, 잠시 노는 아이 옆에 누워 그 녀석과 눈을 맞추고 웃으면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집은 어지럽고, 나는 아직 세수를 못했지만..
어쩐 일로 똑순이의 낮잠이 길어져 이 시를 블로그에 옮겨본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과 그들의 '또 다른 나의 심장'에게 평화가 깃들길...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8. 3. 21. 10:22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왕 시작한 김에 한편 더- ^^;
이 시들을 올릴 요량으로 엊그제 신랑이 집에 오자마자 열심히 사진을 찍었더니
신랑, 무척 궁금해하였습니다.
사실 이 카메라는 신랑이 열심히 찍던 것인데 요즘은 저만 씁니다.
하여.. 대답해주었지요.
"내 작품세계에 대해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
실은 신랑이 좋아하는 사진도 찍을 여유없이 바쁘게 일하는 것이 못내 마음아픕니다.

아무튼... 저와 신랑은 손발 크기와 모양이 아주 비슷합니다. 점이 있는 손은.. 누구 손일까요?


반지의 의미

만남에 대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만남에 대하여 감사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아름답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순결하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사랑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꽃이 진다고 울지 말자는 것이다
스스로 꽃이 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가난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영원하자는 것이다

-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 이 시에서 가장 마음을 쳤던 구절은 '처음과 같이 가난하자는 것이다' 입니다.
아직 초보 주부이지만 가계부와 곤히 신랑의 잠든 어깨를 번갈아보며
가끔 한숨도 쉴 수 있게된 새댁은 저 구절에 뭉클하여 한참 코끝 찡해 하였답니다...
생활비 빠듯하여도 마음만큼은 정말 행복하고 따뜻한 이 시절을 함께 살아주고 있는 그 사람이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8. 3. 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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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의 신발 옆에 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사진을 한장 찍어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고, 얼마나 고단하냐고..
새로운 내일이 찾아올 때까지 포근하게 서로 다독여주며 이 밤도 오손도손 잘 쉬어주자고...
신발들이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지인들의 결혼소식이 많이 들리는 요즘입니다.
결혼.. 참 좋은 것 같아요. ^^
서로 아껴주고 마음껏 안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참 고맙고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마음안에, 그리고 실제 삶에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의 자리를 마련하게 되면
그만큼 스스로 변화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 내가 이럴 수도 있네?'하고 자신에게도 놀라게되는 날들.

며칠전에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어울리는 사진을 찍어 한번 올려두고 싶었던 시가 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맨 마지막 구절에 박수를 보냅니다. ^^;
참, 이 봄- 결혼을 결심하거나 또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와 격려를 보냅니다! ^^



결혼에 대하여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깍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깍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을 보리밥에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Posted by 연신내새댁
2008. 3. 1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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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밤, 철분제를 먹고 한참 토하고 설사한 날이 있었다.
임산부 빈혈을 예방하기 위해 먹어야하는 철분제는
꼭 첫 날에는 복통과 구토를 일으킨다.
처음 먹을때도 그랬는데, 한 통을 다 먹고 종류를 바꿔 새 약을 먹기 시작한 첫 날도 그랬던 것이다.

밤새 끙끙거리는 내 옆에서 안절부절하다 잠이 든 신랑이
아침에 쌀죽을 끓여 주었다.
김치 한쪽에 따뜻한 쌀죽 한 숟가락씩-
꼭꼭 씹어서 먹어주니 밤새 불안과 복통에 시달렸던 몸과 마음이
봄눈녹듯 스르륵 풀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문득 그 쌀죽 사진을 다시 보니
말갛고 뜨겁던 온기가 다시 느껴지는 듯 하다.

저녁먹고 앉아 펼쳐보다 울컥했던 정호승씨의 시 한편도 같이 올린다.

*


그리운 목소리


나무를 껴안고 가만히
귀 대어보면
나무 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행주치마 입은 채로 어느 날
어스름이 짙게 깔린 골목까지 나와
호승아 밥 먹으러 오너라 하고 소리치던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