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나무들2011. 2. 15. 18:31










아빠가 쉬는 주말, 온가족이 파주출판단지를 다시 한번 찾았다.
원래는 지난번에 같이 갔던 선배언니가 '탄탄스토리하우스' 공연장에서 주말에 한다는 '마술공연'을 보러가자고 해서 '그러자!'고 약속했던 것인데 언니네는 사정이 생겨 못가게 되었고 별일없던 우리 가족끼리만 단촐한 나들이에 나섰다.
지난번에 시간이 없어 못가봤던 곳들도 천천히 가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파주로 향하는 걸음이 즐거웠다.

딱 점심때에 도착한터라 '아시아출판정보센터' 1층에 있는 '다이닝 노을'이란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스파게티 집이라 알고 갔는데 한식 메뉴도 있었다. 
넓은 창으로 햇빛이 따뜻하게 들어왔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운치있었다.
아주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토마토스타게티 1만원) 큰 식당안은 한적하고 여유로워서 아이데리고 밥먹기에도 마음 편하고 좋았다.

쿠폰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이는 아줌마 욱, 지난번에 왔을 때 이 식당에서 주말에 2인 이상 식사 주문을 하면 쓸 수 있는 '치킨 엔칠라다' 쿠폰을 보고 언제 또 올진 모르지만 일단 챙겨두자.. 하고 지갑에 넣어두었는데 이번에 아주 요긴하게 잘 썼다. 
우리가 주문했던 두 종류의 식사보다 쿠폰 덕분에 먹은 이 요리가 훨씬 더 맛있었던 것이다.
연수는 식사 전에 주는 따뜻한 모닝빵에 딸기잼을 듬뿍 발라 먹는 것으로 행복하게 배를 채웠고, 후식으로 주는 커피도 맛있어서 우리는 '다이닝 노을'에서 또 밥먹을 건수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벼르며 돌아왔다.  
(쿠폰도 다시 한장 챙겨왔음은 물론이다~ㅎㅎ)











너무 맛있어서 몇개 먹고나서야 사진을 찍은 '치킨 엔칠라다'.
소스의 약간 매콤한 맛과 치즈와 고기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잘 어울렸다.
출판단지 안에서 내가 들렸던 곳 중에는 이 쿠폰이 두 군데에 비치되어 있었으니.. 
아시아출판정보센터 2층에 있는 헌책방 '보물섬'과 보리출판사가 운영하는 '보리 책놀이터'의 계산대 앞. ㅎㅎ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밥을 먹고 나와 넓은 아시아정보센터 안을 마구 뛰어다니는 연수를 따라 한번 더 찾아간 백창우.이태수 전시회.
아빠와 함께 온 덕분에 나는 지난번보다 더 여유있게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장 한켠에 지난번에는 못보고 그냥 간 작은 공간이 있었다.
세밀화가 이태수씨의 작품들로 꾸며본 아이방이란다. 

아이들이 방에서 조금이라도 자연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주고파 한번 만들어보았다는 세밀화 띠벽지, 작은 원화그림액자들, 원목가구, 탈바가지같은 것들이 참 예뻤다.
생각해보면 연수 놀이방도 색깔이 참 화려하다.
알록달록한 원색의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가득하고, 인기 만화영화의 캐릭터가 큼직하게 그려진 것들도 많다.

좀 헐렁하게 비어있고, 나무결, 나무색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이런 방을 만들어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처럼 도자기 화분과 그릇까지 다소곳하게 올려놓을 수야 없겠지만
색깔도 현란하고, 정신없이 어질러지기 일쑤인 장난감들을 좀 줄일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꼭 비싼 원목가구를 들여놓지 않아도, 좀 비우고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여유롭고 차분한 느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심심해서 그림도 좀 그리고, 책도 좀 보다가, 뒹굴뒹굴 아무거나 오리고 접고 만들어볼 수 있는 책상 하나, 걸상 하나만 있는 방.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있고, 가끔 뛰어내릴 수도 있는 이층침대나 
혼자 들어가 숨어있을 수 있는 벽장같은 것이 있으면 더 좋겠지...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연수와 평화에게 그런 방을 만들어주는 꿈을 꾸어보았다.

독일에서는 저출산대책의 하나로 만6세 이하 아이는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쿵쿵거려도 괜찮게 소음규제를 완전히 풀었다던데
아이가 조금만 뛰어도 아래층의 항의를 걱정해야하는 우리네 공동주택 문화에서 
우리집 사내아이들은 어찌 지내야할지... 생각하면 걱정이지만
밖에서 있는 힘껏 많이 뛰어놀아 힘을 뺀 다음에 집안에서는 좀 차분하게 책읽고, 그림그리고 놀게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집에서는 그저 숨바꼭질 정도나 할 수있게 작은 집이라도 아기자기한 비밀공간을 많이 만들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












정보센터 대각선 건너편에는 비룡소 북아울렛 '까멜레옹'이 있었다.
비룡소 그림책 중에도 연수가 좋아하는 책이 많다.
입구에는 우리가 지난 여름에 재밌게 봤던 '파도야 놀자' 그림이 큰 걸개로 걸려있었다.
다시 더운 날이 와서.. 바다에 저렇게 뛰어들고 싶다.












아빠랑 앉아서 '신기한 스쿨버스'를 보는 연수.
친척이 물려준 그림책들 속에 우연히 저 시리즈가 두 권 들어있었다.
너무 큰 형아들이 보는 책인 것 같아 안읽어주고 있었는데 어느날부턴가 연수가 자꾸 들고와서 읽어달라고 조르기에 큰 글자들만 읽어줬더니 너무 좋아했다.
어려운 내용이 잘 이해도 되지 않을텐데 그저 버스를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고, 전기줄과 가전제품들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얘기들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꼼짝도 않고 앉아 참 잘도 듣는다.
덕분에 과학에 약한 엄마도 새삼 과학공부를 많이 했다.(만화책이라 술술 잘 읽힌다~ㅋ 옛날에 학교다닐때 이런걸 봤어야했는데..ㅎ)
날이 갈수록 자꾸만 어려운 질문을 하는 연수에게 잘 대답해주기 위해서는 연수보다 엄마에게 이 시리즈가 필요할듯.
(연수야, '왜 추우면 물이 얼어?' 같은 질문은 공대나오신 아빠에게 해다오.. --;;;)

암튼 '신기한 스쿨버스'는 정말 재미있는 그림책인데, 이번에 가서 보니 '베이비'와 '주니어'판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작가들의 글, 그림이라 해도 베이비, 주니어 판보다는 초중학생용 책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작은 글씨들이야 나중에 연수가 초등학생이 된 뒤에 저 혼자 읽어도 될 것이니, 여섯살쯤되면 아예 초중학생용을 구입해서 큰글씨만 읽어주면서 함께 보는게 나을 것 같다.











'까멜레옹'에서는 비룡소에서 나온 새책을 50%(출간된지 1년 이상된 구간도서, 비치된 도서들은 거의 대부분 50%가 된다)의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책을 보고, 또 사가는 부모님들과 아이들로 무척 북적북적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보리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보리 책놀이터'.
보리출판사는 '보리 아기 세밀화', '도토리 계절그림책', '개똥이 그림책' 등 연수가 태어나서 지금껏 제일로 많이 보고, 참 좋아하는 그림책들을 만들어준 고마운 출판사다.
변산공동체를 일구고 있는 분들이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좋은 세상도 만들고, 그런 꿈과 이야기들을 담은 어린이책도 만들어보자 해서 같이 기획하고, 글도 쓰는 출판사라고 알고있어
내 아이가 자라는 시절에 이런 출판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으면서 자랄 수 있어 참 고맙다, 든든하다... 늘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보리책놀이터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자란 길다란 담쟁이 덩굴.
햇볕 좋은 그 벽에 마냥 기대앉아 해바라기 하고싶어지게 하던 계단.











숲이나 산에서 주울 수 있는 동물 똥, 동물 흔적들을 모아놓은 작은 전시대.
초등학생쯤 돼보이던 형아가 나와 연수에게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저건 토끼똥이고요, 이건 청설모가 먹다남긴 잣이예요. 또 저건... '
보리책놀이터에서도 그렇고, 출판단지내 여러 문화공간들에서 아이들과 엄마아빠가 함께 할 수 있는 '자연체험.자연놀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연수가 조금 더 크면 그런 프로그램들을 찾아 주말에 재미있게 해볼 수 있겠지.. 기대된다. ^^












그러나 아직 네살배기인 연수에게 요즘 가장 관심있는 일은... 뛰어내리기.
어디서든 뛴다.
여기서도 뛰고...










저기서도 뛰고...









착지! ^^;










책놀이터에 넓게 펼쳐진 공연장.
공연이 없을 때는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 책도 읽고, 연수같이 어린 녀석들은 맘껏 뛰고 굴러도 아무도 눈치주는 사람이 없는 신나는 공간. 그야말로 '책+놀이터'다. ^^












"아빠, 이쪽에 앉아~" 연수의 요청에 뻘쭘하게 공연장에 앉아보신 연수아부지. ^^ 노래라도 한곡~~!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본 책들은 다 참 좋았다.
아이들 책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이 보면 좋을 책도 많이 나와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중에 두권, 임길택 선생님이 쓴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와 윤구병 선생님의 <변산공동체학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란 책을 샀다.

임길택 선생님의 책은 예전부터 제목을 볼 때마다 마음이 뜨끔해지곤 했다. 
우는 것들을 사랑한다니... 아이가 울면 갓난아이 시절에는 어쩔 줄 몰라 그만 함께 울고싶었던 초보엄마였고, 조금 큰 뒤에는 '울음=떼'라는 생각에 화나 짜증부터 나기 일쑤인 내게 '우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선생님은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어떤 경지에 오른 분같이 보였다. 
 
'나는 누가 울 때,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 이 세상엔 없을 거라 여깁니다.
짐승이나 나무, 풀 같은 것들이 우는 까닭도 알고 싶은데,
만일 그 날이 나에게 온다면,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덩실덩실 춤을 출 것입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 우는 것들의 동무가 되어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라면 아이, 어른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쓰려 합니다' 

- 임길택 시집 <할아버지 요강>(보리, 1995년)에서 따온 책 표지글.
 
1997년에 세상을 떠난 임길택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해져왔다.
이런 분이 계셨구나.. 아이들 마음을 이렇게 보살피는 분이. 자신이 만난 모든 아이들, 그중에서도 특히 약하고 힘든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셨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게 찾아온 내 아이들, 나는 이 아이들에게 만이라도 좋은 엄마, 좋은 어른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리책놀이터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가만가만 다짐했다.











내가 여기 앉아 1000원받고 머그잔에 가득 담아주는 맛있는 유기농커피(다방커피도 차별없이 천원이다^^)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아빠와 연수는 놀이터 밖 계단도 뛰어다니고 놀이터 안에 들어와 둘이 그림책도 재밌게 보았다.











책방 나들이는 엄마에게는 모처럼 혼자 앉아 마음편히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아빠에 목마른 아이는 저와 계속 함께 뛰어다니고, 붙어앉아 그림책도 읽어주는 아빠의 향기를 흠뻑 마시며 맘껏 놀았다.
아빠도 다른 곳보다 덜 북적대고, 아이와 놀 거리도 많은 출판단지 나들이가 참 좋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만난 아이들중에 책 읽어주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었다.
어른이 피곤하거나 귀찮아서, 혹은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잘 안 읽어줘서 그렇지
아이들은 어른과 함께 그림책을 보며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쫑알쫑알 제 이야기도 하다가, 또 다시 같이 보고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아이가 책읽다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질문에는 성심껏 대답도 하고 그러면서 함께 책을 읽으면 아이도 책에 참 귀를 잘 기울인다.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는 그 내용으로 재미있는 저만의 놀이들을 만든다. 
책의 세계는 그래서 풍성하고, 따뜻한 소통과 공감의 터전이 된다.  

책을 읽으며 아이와 마음도 나누고, 체온도 나누고.. 널찍한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기에도 참 좋은 곳.
파주출판도시였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1. 2. 11. 23:20










+ 요즘 어딜가나 쿵쿵거리며 발을 구르고, 춤을 추듯 뛰어다니는 연수는 사진마다 포즈가 신기하다. ^&^




설연휴가 끝나고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던 8일,
서대문 민주노동당 애기엄마들의 모임에서 파주출판도시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홍제동에서 어린이책서점을 운영하면서 출판기획자로도 일하는 순영언니가 '파주출판도시도 아이들과 함께 놀러가면 참 좋다'며 안내를 맡아주었다.  

헤이리나 임진각에 갈때 자유로 한켠으로 '파주출판단지' 표지판이 크게 보여도 그곳에 내가 갈 일이, 갈 곳이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수 그림책 속지나 택배 송장에 찍힌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란 주소로만 익숙한 곳.










큰 간판도 없고, 죽 늘어선 낮은 시멘트 건물들 사이로 겨울바람이 황량하게 부는 넓디넓은 출판단지.
순영언니가 없었다면 어디가 어딘지 몰라 헤메다 말았을 것 같은 거리 한켠,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라는 건물앞에 차를 세웠다. 
출판도시 진입로로 들어와 두번째 사거리인 응칠교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왼편에 있는 회색 큰 건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는 출판도시의 안내창구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이곳 1층 카페 앞에는 출판도시안에 있는 여러 문화공간과 출판사들의 안내팜플렛이 비치되어 있었다.
팜플렛에 있는 약도를 보니 비로소 다음에 안내인없이 와도 찾아다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다면 그 출판사 주소를 바로 네비게이션에 찍고 찾아가도 좋을 것 같다. 보리, 사계절, 비룡소, 책소풍, 보림, 다섯수레 등... 파주출판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책출판사들은 거의 모두 전시장과 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다하니 그곳부터 찾아가면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주인공들을 만나 반갑게 놀 수 있을 듯.. 그래도 이 건물은 까페와 식당도 있고 어린이책예술센터 '책마을'도 있어 출판도시 관람의 출발지나 중간 쉼터로 무척 유용한듯.)









+ 정보센터 1층에 전시된 출판단지 모형. 남자아이들은 이런 건축물 모형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한참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연수가 건물들을 자꾸 집어보려고 해서 말리느라 애먹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정보센터 1층에서는 마침 어린이노래를 짓고 부르는 백창우씨와 세밀화가 이태수씨의 소장품과 작품 전시회(백창우 이태수의 조금은 별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백창우 씨의 소장품인 신기한 악기들.
연수가 들고있는 긴 통은 한번씩 기울일때마다 '차르르 쏴아아...'하고 예쁜 빗소리가 났다. 백창우 아저씨의 노래창고 음반들을 듣다보면 이 소리를 또 만날 수 있으려나.










평일이라 전시장에는 우리 밖에 없었다. 악기들도 만져보고, 그림책도 읽어볼 수 있는 편안한 전시장이 좋았다.










메롱쟁이. ^^ 그나저나 백창우씨는 신기한 소장품도 많다. 저 뒤의 성은 집에 세워놓고 보는 걸까.. 혹시 들어가도 보시나? ㅎ










타자기도 쳐본다. 와. 엄마는 한번도 못 써봤는데.. 타자기로 치는 글맛은 어떨까? 궁금하다.











백창우씨의 애장음반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 반가운...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이 노래와, 이 노래를 불러주던 선배들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며 어느새 애기엄마가 된 아줌마들의 발길과 눈길이 한참 머물렀던.


















이태수씨의 세밀화는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도토리 계절그림책'으로 처음 보고 참 좋아했는데, 그 외에도 여러 아름다운 책들이 참 많았다. 책에 나온 그림들을 크게, 원화로 볼 수 있게 전시해놓았다. 전시장 한켠에 작은 의자도 있어서 아이와 함께 앉아 그 그림이 들어있는 책도 읽을 수 있다.  


















"엄마, 이 책 읽어주세요~!"
집에서도 모자라 밖에 나와서까지 책을 읽어야하다니... 출판도시 나들이는 실수였구나. 절감하는 순간.--;
서너번은 반복해서 읽어야했다. 
 











1층 까페 창문으로 내다본 갈대밭.
갈대밭 위에 지어진 출판단지는 겨울에는 특히 황량한 듯했다.
그러나 그 쓸쓸하고 고즈넉한 풍경이 나는 더 좋았다.
사람은 적고, 공간은 넓고, 건물들은 나지막한... 올수만 있다면 자주 찾아와 마음 한켠 쉬고가고 싶은 곳이었다.












코코아 기다리는 연수.
엄마들은 맛있는 커피를 한잔씩 마셨는데, 모두들 '그래, 이렇게 조용하고 넓은 곳에서 커피를 한잔 꼭 마시고싶었어..'하고 입을 모았다.
우리는 모두 긴 명절을 이제 막 치르고난 며느리들이었던 것이다.
  










아시아출판정보센터에는 출판단지에 머무르는 일반인을 위한 숙박시설인 '게스트하우스 지지향'도 있었다.
와. 여유가 된다면 이런 곳에 와서 며칠 묵으면서 보고싶은 책과 문화공연들을 찾아보고 천천히 쉬다가도 참 좋을 것 같다.
출판사 직원들에게는 밤샘을 해가며 고달프게 일하는 일터일텐데.. 또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휴식공간도 되는 출판도시.
생각해보면 모든 여행이 다 그렇다. 여행지도 언제나 누군가의 일터이고 삶터... 












출판센터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계단.
널찍하고 볕좋은 이 계단은 사진찍기에 참 좋을만한 곳이다.
저 회벽에 아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면 작품도 나오겠건마는.. 고물이 다된 내 똑딱이와 펄펄 뛰는 사내아이를 데리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계단을 올라 찾아간 곳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헌책방 '보물섬'.












어릴때 즐겨보던 만화잡지의 이름이자 내 대학시절 첫사랑의 필명이기도 했던.. 보물섬. ^^













보물섬 앞에는 보물같은 자갈들이 가득한 널찍한 마당이 있다.
두 개구장이들은 눈녹은 물이 고인 이 마당을 철퍽거리며 뛰어다니다가 신발과 양말을 모두 적셨다.
눈이 녹을 무렵에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는 반드시 여분의 양말과 신발을 챙겨야한다는 교훈을....-.,- 



















보물섬 안 풍경. 아이용 책상과 의자, 어른들을 위한 창가의 탁자가 아늑했다. 
연수가 몇번이고 읽은 '내 표범무늬 팬티 어디갔어?'란 제목의 멋진 그림책은 단돈 500원. 얼른 사왔다. 




 








이사를 앞두고 있으니 이런 포스터가 예사롭지 않다. 잘 찍어뒀다가 나도 기증해야지.
(신랑은 "당신이 과연 뭘 버릴 수 있겠어?" 하겠지만... 혹시 뭔가 나오면 말이야, 나도, 여보. ^^;)













정읍에서 옮겨왔다는 작은 한옥.  
집을 통째로 들어왔다는 설명에 "역시 건축하는 사람들은 무서워~"하며 다들 웃었다. 
그러나 건축에 문외한이고 초행길인 내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출판도시는 도시 전체가 자연과 공생하는 생태건축을 지향하고 있다하니 찬찬히 잘 둘러보면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편안한 느낌을 줄 것 같았다. 
아마 이 한옥은 그 상징이 아닐까.  













어린녀석들을 데리고 밥풀 주워가며 점심을 먹고나니 짧은 여정이 더 짧아져서 오후에는 어린이책출판사 한곳밖에 가볼 수가 없었다.
건물안의 다섯 전시마당을 다 돌면서 도장 다섯개를 받아오면 책을 한권씩 준다는 말에 혹하여(공짜라면 양잿물도 큰 것으로...^^;;;) 여원미디어의 '탄탄스토리 하우스'를 찾았다.

연수는 순영언니를 '도서관이모'라고 부르면서 파주에서 내내 잘 따라다녔는데, 아마도 언니가 연수에게 책을 재미있게 읽어줬기 때문인듯. ^^  
언니는 지구당 사업으로 구청과 함께 서대문구에 새로운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의 실무도 담당하고 있다.
몸이 서너개쯤 되면 좋을텐데..ㅠㅠ 고생많은.. 멋진 언니, 화이팅~!












여원미디어에서 나온 인기그림책시리즈의 주인공 '곰돌이' 조각이 있었다.











그림책 '곰돌아 어디가니?'에서 봤던 곰돌이 자전거를 직접 타보고 연수는 무척 기뻐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을 키워본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계단을 정말 좋아한다.
어른들은 긴 계단을 쳐다보기만해도 무릎이 쑤시지만 아이들은 신나서 눈을 반짝거리며 올라간다. 
그러니 '비밀의 계단' 같은 것은 정말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판타지겠지... ^^
 























큰 전시장 안에는 그림책의 원화들과 조각이 전시되어 있었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귀신이나 지네 같은 것들은 왜이리 무서운지.. 그런데 아이들은 왜그리 옛날얘기를 좋아하는지. ㅜㅜ














주말에는 그림책을 보러온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좀 북적이기도 한다는 넓은 전시장.
평일이었던 이 날에는 관람객이 우리밖에 없었다.
와. 내 어린 시절에 이렇게 멋진 의자에 앉아 예쁜 그림책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황홀했을까.
시골에서 자란 나는 계절이 바뀔 때쯤 한번씩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계몽사 아저씨'를 무척 기다렸다.
엄마가 고심끝에 큰맘먹고 전집을 하나 사주시면 온 계절 내내 그 책들에 빠져 행복했던 기억... 
친구들 집에 가면 그 집에 있는 책 읽는 것이 참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대학생 고모들이 있고, 시골에서도 형편이 좋은 편이었던 우리집에는 그나마 새 책이 가끔 등장했지만 다른 친구집들은 그렇지도 못했다. 
누가 새로 이사를 오면 그 집에는 무슨 신기한 책이 있을까.. 궁금했었다. 도시에서 이사온 우리 윗집 언니에게 놀러가서 처음 봤던 '안데르센 명작 동화'는 그 그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다 지나간, 이제는 볼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인 것만 같지만..  아직도 책이 고픈 아이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우아한 공간은 아니더라도, 작고 편안하고 가까운 도서관들이 그 아이들곁에 생겨나기를..  
아이들은 그 안에서 저만의 보물을 찾고,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아고~ 책구경도 좋지만... 누워서 쉬는게 제일로 좋구나~!
널찍한 의자에 누웠다. 연수, 순영언니...^^












이 책상... 원래는 이런 용도다. 어린 아이를 품안에 끌어안고 책 읽어줄 수 있는. 
바람직한 이용법을 보여주고 있는 희진언니와 정민이. ㅎㅎ













탄탄스토리 하우스를 한바퀴 빙 돌았지만 아쉽게도 '도장+책 증정'행사는 나눠줄 책이 동이 나서인지, 관람객이 적어서인지 이 날은 하고있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책이 있는 공간에서 잘 놀고, 잘 걷고 왔으므로.

파주출판도시 안에는 어린이책 아울렛 서점(비밀의 책방)을 비롯해서 여러 어린이책출판사들에서 '리퍼도서'(서점에 한번 나갔다 돌아온 책)들을 정가의 50%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중고책과는 다르게 거의 새책이나 다름없는 책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수 있으니 나처럼 책에 잘 혹하는 분들은 지갑을 단단히 여미고 둘러보시는게 좋을듯. ^^
(사실 리퍼도서의 구입은 값도 착할뿐만 아니라 환경을 살리는 '착한 소비'이기도 하고, 수익금 일부를 저소득층 책나눔 운동에 쓰는 등 여러모로 좋은 일이니 지갑을 두둑히 해서 가시는 것도 멋진 일!^^) 

연중내내 거의 매주말, 문화공간과 출판사 사옥에 있는 공연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많은 공연과 전시가 진행된다하니 주말 가족나들이로도 참 좋을 것 같다. (평일에 오면 공연은 없지만 전시장에서 한적하고 여유롭게 놀 수 있다)
아... 서울 서부권을 떠날때쯤 돼서야 출판도시를 알게된 것이 못내 아쉽다.
매년 5월에는 아주 크게 '어린이 책잔치'도 한다하니.. 꽃피는 5월쯤에 다시 한번 찾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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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2월의 오후 햇살이 봄날처럼 따뜻했다.
자유로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는 큰 얼음덩이들이 떠내려와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연수와 평화가 많이 커서 혼자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됐을 때쯤, 그러니 아마도 한 10년쯤 후에는.. 나도 여기서 아이들은 아이들 책을, 나는 내 책을 보면서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으려나...
생각만해도 흐뭇해지는 꿈을 꾸면서 출판도시를 떠났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1. 1. 24. 16:28








+ 오랫만에 가족사진이 생겼다. 과천 서울랜드 안에 있는 '윈터하우스'.
겨울을 테마로 한 어느 예술대학 디자인과 학생들의 졸업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집과 크리스마스트리, 귀여운 소품들이 많았고, 귀여운 토끼와 함께 도우미학생분이 사진도 찍어 주었다. ^^ 





모처럼 포근했던 토요일, 세 식구가 오랫만에 바깥나들이를 했다.
오전에는 연수 치과와 엄마 산부인과 진찰을 받고, 오후에는 지인의 돌잔치에 참석하려고 신나게 관악구로 건너갔다.
그런데... 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알았다. 돌잔치가 그 날이 아니라 다음날이라는 것을...--;;;

오후 햇살은 눈부셨고, 오랜 한파 뒤라 그런지 이렇게 따뜻한(?) 날에 그냥 집에 들어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과천으로 차를 돌렸다.
대공원에 가면 눈썰매장도 있을꺼야... 연수야, 우리 눈썰매타러 갈까? 좋아!










대공원 입구에서 코끼리 열차를 타고 서울랜드로 향했다.
눈쌓인 숲들을 지나치며 천천히 달리는 겨울의 코끼리 열차가 참 좋았다.  아주 오래전, 처녀적에 친구들과 동물원에 놀러왔을 때 타보고는 처음이다. 연수도 코끼리 열차를 무척 좋아했다. 멀어져가는 코끼리열차를 아쉬운 듯 오래오래 바라보았고, 다음에 또 타러 오자고 여러번 얘기했다.
아직 어린 연수에게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했던 서울랜드 안의 다른 어떤 놀이기구들보다 편도에 800원하는 코끼리 열차가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한산하던 대공원 입구와는 달리 서울랜드 안은 어딜 가나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북적북적... 
목표했던 눈썰매는 인파에 묻혀 천신만고끝에 겨우 한 번 탈 수 있었다. ㅎㅎ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하고, 베낭과 손가방에 먹을것, 놀것들을 잔뜩 들고있는 부모님들을 보니 겨울 하루를 놀이동산에서 보내기위해서는 얼마나 준비가 많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예정에 없던 놀이공원행이라 아주 준비도 없었던 우리는 여러가지로 당황하고 허둥거려야했지만 그래도 오랫만의 겨울 나들이는 즐거웠다. 
 









연수는 작은 아기들만 탈 수 있는 '미니 바이킹'도 한번 탔다.
저 작은 배에 연수를 혼자 태우며 남편과 나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 
기구를 작동시키는 도우미 분의 도움만 받으며 혼자 배에 오르는 연수를 지켜보는데 어디 멀리 혼자 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음이 뭉클해졌다. 연수에게 거듭 "혼자 탈 수 있겠어? 정말 괜찮겠어?"하고 물으며 계단 위까지 조심조심 손잡아 올려주던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부모들이 이다지도 마음이 여리니 어디 연수를 어린이집이라도 보내겠나.. 싶어 혼자 웃었다.
아마 우리는 연수가 커서 혼자 가방메고 초등학교 정문으로 뛰어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둘이서 교문밖에서 손붙잡고 울지 싶다. ^^:;

반면에 김연수는.... 너무 재밌어했다.
바이킹이 움직이는 1분 30초동안 내내 소리도 지르고 깔깔 웃었다.
'엄마아빠, 걱정마, 안심해. 난 아주 잘 놀 수 있어~!' 엄마아빠 마음을 다독여주기라도 하려는듯..^^;;;
동영상 파일이 용량초과라 여기 올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ㅜ












햇볕이 포근했다 해도 영하의 기온속에 구두를 신고, 스타킹에 정장치마 차림으로 두어시간을 밖에서 돌아다니자니 임신 6개월의 엄마는 무척 힘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다리가 얼얼해서 이틀쯤 고생했다. 펄펄한 네살배기 아들을 따라다니며 커버하느라 아빠도 무척 고생했다. 
그러나 놀이공원 안을 내내 뛰어다니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모처럼 원없이 바깥놀이를 하고온 연수는 저녁밥도 정말 많이 먹고, 초저녁부터 깊고 단잠을 밤새 잘 잤다. 
다음 날에도 눈 오는 장례식장 마당을 내내 들락거리며 뛰어놀았는데 추위가 무서워 집안에서만 지낼때는 흔히 부리던 짜증한 번 없이 잘 웃고 잘 먹고 잘 잤다. 역시 아이들은 겨울에도 밖에서 뛰어놀며 커야하는구나.... 절감했다.

그러니.. 엄마는 더 강해져야하리.
더 씩씩하게 잘 뛰어놀고, 아이와 함께 부지런히 움직여야하리.... 아이들이 나를 찾지않고 저희들끼리 밖에서 놀 수 있게 될때까지, 그때까지는 내가 그 아이들과 늘 함께 걷고 뛰어야할 테니까. 
게다가 나는 곧 두 명의 사내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지 않는가. 
이날 오전에 산부인과에서 나는 평화가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들만 득시글거릴 우리집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어찌하랴. 그것이 내 운명인 것을.ㅠ

다만 나는 내게 용감하게 셋째로 고고씽~!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를 바라고, 하늘이 우리 부부에게 셋째를, 것도 꼭 딸을 주시기를 빌 뿐이다. 
그 날까지... 세 남자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최대한 이성을 잃지않고, 온화하고 따뜻한 비폭력의 노선을 견지하기위해 노력해봐야겠다. 물한동이 언니도 계시고, 토댁 언니도 계시고, 희진언니도 있고... 그 외에도 아들 둘을 키우고계신 여러 존경스런 선배엄마들을 떠올리며 열심히 마음을 다잡아본다. -.-;;;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8. 6. 23:14










금전산을 가득 채운 안개는 어느 날보다 진했다.
아빠가 창밖을 바라보며 "구름인가 안갠가.." 하고 말한 것이 재미있어서 연수는 거듭거듭 그 말을 따라하며 웃었다.
"구름인가~ 안갠가~!"













밤처럼 어두웠던 세상이 천천히 밝아졌다.
구름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안개가 천천히 걷힌 것도 같다.
천천히, 천천히 우리도 이제는 짐을 챙기고 다시 세상속으로 나갈 시간이다.











여행 마지막날 아침, 오래오래 낙안민속자연휴양림안을 산책했다.
삼일동안 머물면서도 날이 흐려 가보지못했던 물놀이장에도 들어가보고 서울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굴피나무며 여러 풀과 나무들도 구경했다.
민속놀이장에 있는 투호도 재미나게 던져보고 잔디밭과 평상에서 한참동안 놀았다.
여행지에서의 아침도 이제 마지막이다. 숲 속의 아침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고 계곡물소리를 듣으며 어린 연수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던 날들이 꿈같아질 것이다. 












9일간의 여행동안 연수는 아주 많이 큰 것 같았다.
말도 많이 늘고 힘도 세졌다. 무엇보다 매일 새로워지는 풍경과 낯선 장소로의 이동, 자연속에서의 많은 놀이들이 연수에게 큰 자극과 인상을 남겼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금방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연수의 내면을 조금 더 풍성하게, 따뜻하게 채워주었기를 빈다.  











순천에서 서울까지는 300km가 넘는 먼 거리.
이번 여행길에 우리가 들리고 싶었던 두 곳, 담양과 전주를 거쳐서 올라가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담양에서 점심을 먹고 전주에서 저녁을 먹고 가는 것이다. 둘 다 남편의 추천 맛집이 있다. ㅎㅎ

밥먹으러가는 길에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콰이어길에 들렸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첫장면은 택시기사인 주인공이 너무도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달리는 것이다.
택시는 이어서 농부가 일하고있는 푸른 들판을 지나고, 그 하늘위로 공수부대를 태운 헬기가 날아간다.
그 아름다운 가로수길이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이른 낮잠에서 깬 연수를 태우고 가족 자전거도 한바퀴 탔다.
사진이 무척 멋있게 나올줄 알았는데 긴 여행에 시달린 카메라가 그만 고장이 나서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담양시내에 있는 '승일식당'은 밖에서 보면 조그만 가게같지만 안에 들어가보면 어찌나 큰지 깜짝 놀랄 정도다.
맛은 더 놀랍다. 돼지갈비가 다 구워진채로 나오는데 어린 연수도 잘 먹고, 어른들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가게입구에 있는 화덕에서는 갈비만 굽는 아주머니가 세 분쯤 따로 계실만큼, 손님많고 바쁘고 정신없는 맛집이었다.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
작은 산 하나쯤은 될만한 큰 대나무숲이 들판 곳곳에 동그란 섬처럼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숲은 부드럽게 수런거렸다.

짧은 한나절이라 담양에서 많은 곳에 갈 순 없어 딱 한곳, 소쇄원을 찾았다. 
식영정, 면앙정 같은 조선시대의 정자들도 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연수가 좀더 크면,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담양 곳곳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대숲들이 섬처럼 드문드문 솟아있는 마을길을 달려 이 정자에서, 저 정자로.. 메타세콰이어길도 지나고 너른 논길도 지나며.
    
 









소쇄원의 내원으로 가는 대숲에 사는 오리들.
검은 오골계들이 검푸른 대나무 사이로 걸어다니며 목청껏 울고 있었다.












소쇄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광풍각'.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을 가진 이 정자는 소쇄원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했다한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소쇄원을 찾은 많은 손님들이 이 정자에 앉아 소쇄원을 관통하는 개울을 바라보며 더위를 식히고있었다.

소쇄원은 중선중기에 양산보(梁山甫,1503~1557))란 이가 조성한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죽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낙향하여 소쇄원을 만들었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소쇄원을 구성하는 큰 두 건물중 또 하나인 '제월당'이다.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었다 한다.
500년 세월을 버티고도 누각은 튼튼하게 서있었다. 어린 객은 그 마루바닥 위에서 제 집처럼 구르고 뛰었다. 
'제월당' 현판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라한다.

조선중기 호남 문인들의 교류처에 와 앉은 선글라스 김 선생님, 시 한 수 읊어달라는 청에
"별다방 미스김은 아메리카노 다 됐느냐 콩다방 미스최는 까페라떼 아직 멀었느냐..." 하고 계신다. 부끄럽다. --;;;;;
그러나 나보고 읊어보라했어도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들고있던 소쇄원 여행안내책자를 거꾸로 놓고 열심히 보고계신 김연수씨.

연수는 아빠엄마보다는 시에 대한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얼마전 엄마와 작은 동산에서 풀꽃을 보며 놀던 연수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분다
꽃이 흔들린다
....
꺽자!"

둘째연까지 듣고 나는 말도 못하게 감동을 받았다.
24개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하다니... 이건 정말 한편의 시야! 하고 감탄하다가
마지막 연을 듣고는 그만 푸~!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쨌든 고슴도치 엄마는 이 것을 김연수의 생애 첫 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운율도 좋고 대구도 있고.. 3연의 반전도 멋지지 않은가! 라고 양껏 흐뭇해하면서.  











여행책자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나... 슬며시 밀쳐놓더니 누워버린다.
무더운 한낮, 단잠 한숨 자고가면 정말 좋을 곳이구나.
저렇게 귀를 대고 누우면 이 정자 주인들이 시대와 정치와 문학을 두고 나누었을 대화들이 자장가처럼 울려나올 것 같던 마루.













소쇄원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이 나무물통이다.
나무속을 파고 작은 구멍들을 뚫어서 나무안을 흐르는 물이 아래 개울로 떨어지게 해놓았다.
구슬을 엮어 만든 발같다.
가는 물줄기들이 일으키는 작은 물보라가 큰 더위를 정말 멀리도 밀어내주었다.
이 작은 장치 하나로 소쇄원을 관통하는 작은 개울은 보통 개울이 아니라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정원의 훌륭한 정원수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소쇄원 안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 
광풍각으로 갈 때, 또 제월당으로 갈 때 개울위로 놓인 가느다란 나무다리를 건너다보면 속세와의 격절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건너왔다'는 것.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대숲 사이로난 좁은 길을 통과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비현실적인 어떤 공간, 낙원으로 들어서는 느낌. 비밀의 정원으로 입장하고있다는 기분.
정원은 결국 그런 장치와 상징들로 가득찬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연수는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놀았다.
어딜가든 이제는 물이 있으면 서슴치않고 들어가 첨벙거린다.












깊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것인지 냇물은 아주 찼다.
연수는 개울물을 거슬러 계속 올라가보고 싶어했다. 나도 연초록 대나무 숲이 우거진 저 길로 더 걸어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야할 시간.. 아쉬움을 안고 겨우 발길을 돌렸다. 
 











저녁 무렵 우리는 전주시내에 도착했다.
연수는 차가 달리는 동안 오후낮잠을 한번 더 잤다.
긴 여행의 마지막 저녁, 연수도 엄마도 꽤나 노곤했다. 몇 걸음 걷다 연수가 길가의 돌위에 주저앉았다.
전주의 느낌은 정갈하다. 왠지 그렇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릴때쯤 다시 와서 천천히 이 도시에서만 며칠 있다가면 좋겠다.
여행은 해도해도 허기진 구석이 생겨서 다음에, 또 다음에 하고 자꾸 계획만 늘려놓는다.











우리 식당 바로 옆에옆 식당앞에 이 큰 개가 있었다.
연수는 꼼짝도 안하고 서서 한 20분은 이 개를 보고 있었다.
아빠가 혼자 식당에 가서 세사람 몫의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무료한 개가 하품하고, 공연히 앞뒤를 두리번거리고 밥그릇을 덜그럭거리며 굴리는 것을 내내 지켜보았다.












처음엔 지켜보는 우리를 좀 의식하는 듯하더니 저도 지루해졌는지 기지개를 쭉 켠다.
연수는 큰 개앞에서 좀 긴장했다. 길 건너편 가게계단에 앉아서 보자했더니 기어코 개 앞에 가서 봐야한다고 가서는 
딱 저기서 더 움직이지 않는다. 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연수는 신비한 존재라도 만난듯 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 뻘속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게, 파도에 닳은 둥근 조약돌, 식당앞의 큰 개. 
대단치도 않아 보이는 그 것들의 무엇이 아이 마음을 뭉클하게 할까. 엄마는 옆에서 짐작해볼 뿐이다. 

 










맛있는 전주비빔밥 한그릇을 끝으로 여름여행은 끝났다.
여러 사람에게 걱정과 폐를 끼치며 다녔던 여행이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세식구에게는 작은 매듭 한번 정도는 짓는 여행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길고 자유로운 여행을 한 남편에게도, 결혼과 출산을 포함해 꼬박 3년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본 나에게도, 생후 2년을 꽉 채우고 처음으로 먼 여행을 소화한 연수에게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포함해 남편이 낸 2주간의 휴가는 우리 세식구가 가장 오래 같이 있어본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일상에 복귀했다.
연수는 다시 산더미같이 그림책을 꺼내놓고 읽어달라며 엄마를 못살게군다.
꽃게보행기만 소파위에 올려진채로 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벌써 2주가 넘었는데 이제서야 여행기를 끝낸다. 휴....
여행사진을 다 정리하고, 이렇게 포스팅도 다 하고나니 비로소 여행이 다 끝난 것같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우리 가족에게는 오래오래, 작은 것 하나라도 더 기억해두고싶은 추억이라 길게도 썼지만
더운날, 땀흘리며 고생하시는 이웃들께는 저희들끼리만 신나게 놀러다닌 얘기를 줄창 늘어놓는 것 같아 죄송했다.

세살배기 아이와 지지고볶으며 오늘도 더운 하루를 용케도 살았다.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그때는 좀 더 푸근하게,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큰 연수와 동행하게 되겠지.
9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한 한달은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것 같던 여행가방에 다시 눈이 가는 요즘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8. 4. 22:22



오늘 아침도 비와 함께 시작했다.
서울에는 해가 쨍하고 무덥다는데 비구름도 우리의 이른 여름휴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
비가 오니 아침산책도 짧아지고 밥되기를 기다리며 잠시 시간이 떴다.









그리하여 김연수어린이는 여행 출발후 처음으로 아빠 노트북으로 '벼랑위의 포뇨'를 봤다.
포뇨는 토토로와 함께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영화다.
집에서도 하루에 30분쯤은 꼭꼭 챙겨보던 포뇨를 여행하면서는 한참동안 잊고 지냈는데 이제 여행도 길어지고, 비도 자꾸 오고하니 가져온 그림책 몇권도 너무 많이 봐 지루하고 장난감도 시들해져버렸다.
엄마아빠도 놀아줄 거리가 궁해지던 차에 엄마가 예전에 노트북에 받아놓았던 포뇨를 기억해낸 것이다.
포뇨의 출현으로 연수는 초집중, 아주 조용해졌다.

 








이 틈을 놓치지않고 연수아버지는 얼른 트위터에 집중.
남자 둘이 아주 조용하게 각자의 세계에 빠져있어준 덕분에 나는 혼자서 천천히 카레를 만들고 비오는 창밖도 바라보며 모처럼 찾아온 고요한 아침을 누렸다.











아침을 먹고 조계산 선암사를 찾아갔다.
숙소가 있는 금전산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깊은 산속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인지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이 길의 이름도 조정래길이다. 그러니까 조정래길은 벌교읍내에서 시작해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길인 것이다.
빨치산의 입산로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주위의 산을 다시 보게 된다.
저 깊은 산으로 들어가버리면 정말 찾기 어려울 것같다. 빙 둘러 포위하기에도 너무 크고 게다가 산들은 계속 이어져 그야말로 '산맥'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이 짙은 푸르름속으로 숨어드는 사람도, 쫓는 사람도 모두 참으로 막막했으리라.

가는 길에 연수가 잠이 들어 남편은 차에 남고 나 혼자 선암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를 떠날 때부터 아마도 그렇게 될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혼자 길을 걷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어린 아기를 키우다보니 혼자 어디를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늘 아이와 함께 가고, 때때로 남편도 함께 가고.. 어쩌다 이렇게 혼자 어딜 가게되면 홀가분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육아의 시간은 늘 긴장과 함께 한다.
어린것을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동안에도 행여 다치지 않을까 긴장하고, 늘 애정을 요구하는 아이와 감정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도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하루종일 그렇게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쉼없이 하다가 아이가 잠을 잘때, 잠깐의 낮잠이나 제법 긴 밤잠을 잘 때.. 그때에야 엄마는 비로소 긴 한숨이 '후....'하고 터져나오고 어린 생명을 키우며 느끼는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도 아이가 잘 때 마시는 커피가 제일로 맛있고, 아이가 잘때 엄마도 자는 것도 좋겠지만 그 시간만이라도 긴장을 풀고 홀가분하게 나만의 생각과 일을 해보고 싶어서 피곤한 몸으로 인터넷도 보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하는 것이다. 

연수와 남편 없이 혼자서 카메라가방을 메고, 우산을 받쳐들고 인적없는 선암사 길을 조용히 걸어가자니
대학시절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불안한 행복'이 숨쉴 때마다 느껴졌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마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 참 그리웠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선암사 매표소에서 절 경내까지는 2km 가까이 되는 제법 먼 길이었다.
넓고 평평한 길이 짙은 녹음속으로 구부러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길 옆의 계곡은 요며칠 비로 물이 불어나서 곳곳에 작은 폭포를 이루며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 길 내내 누군가의 이름을 단 꽃등이 걸려있었다.
그 이름을 달아준 사람들의 극진한 마음들이 꽃등이 되어 환하게 이름표들을 비추고 있었다.
선암사 아름다운 길에 둥실 떠있는 이름표들은 행복할 것 같았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저 이름의 주인들도 모두 행복하시기를..
 










소원을 비는 돌탑들이 군데군데 쌓여있었다.
돌 두개가 놓여있던 곳에 내 돌도 하나 얹어보았다.
바로밑의 돌이 기우뚱하더니 한쪽으로 기운채로 내 돌을 받혀주었다.
고마웠다.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저 혼자 살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으로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나도 누군가를 받쳐주는 일... 우리 엄마가 나를 받쳐주었듯 나도 이제 연수를 받쳐준다. 내게 기대서 내 아이도 자라고, 남편과 나도 서로 기대고 산다.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도 마음으로 얼마나 많이 기대고 사는지..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제 위에 얹힌 내 돌을 받혀주기 위해 원래의 자기 자리에서 기우뚱 하고 움직였다. 제 모습, 제 자리를 바꾸고 잃는 것을 감수해야만 누군가를 제 위에 받혀줄 수 있다. 스스로의 변화를 감내하는 것, 그것이 관계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돌탑 앞에 서서 참으로 뭉클했다. 












일주문에 닿기전, 작은 호수와 그 속에 떠있는 동그란 섬을 보았다.
'삼인당'이라 부르는 이 작은 섬은 뒤의 키큰 나무숲과 어울려 신비롭게 보였다.
연수가 봤으면 좋아했을텐데.. 아마 저 물에 들어가고 싶어했겠지.
엄마의 여행은 혼자 있어도 아이와 함께 가는 것 같다.










삼인당 바로 옆에 걸려있던 저 플랭카드를 보고 나는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왠지 선암사의 스님들은 유쾌한 분들일 것 같다.
그 옆에 진짜로 서있던 버스는 또 얼마나 재미있던지~!









자세히 안보이지만 "가자! 선암사로!! 영원한 중생의 도량!" 이라고 써있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 영원한 청춘의 도시, 영원한 낭만의 해변... 신성한 불전앞에서 이런 경망한 생각들을 한것이 죄송하지만 '영원한 중생의 도량'이라는 씩씩한 문구앞에서는 이런 상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왠지 정말로 이 절은 씩씩한 호남사람들, 털털하게 웃고 농담 잘하는 남도사람들의 기운이 배어있는 절 같았다.   










선암사 종무소 앞에 서있던 빨간 우체통.
저 우체통을 보며 출가한 젊은 스님이 속가에 계신 어머니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그 편지도 '그리운 어머니께'로 시작할까..











버드나무 푸른 가지가 낭창하게 드리워진 작은 연못에 수련이 참 예쁘게도 피어있었다.
저 꽃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한 나절은 가겠구나.. 싶게 아름답던 꽃.












신영복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떡신자' 이야기가 있다.
군대도 그렇겠지만 옥에서도 일요일에는 교회 예배도 열리고 절의 법회도 열리는 모양이다. 거기에 가면 쵸코파이도 주고 떡도 주는데 떡을 좋아하는 신선생님은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법회에 참가해서 떡받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다는 얘기였다. 그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먹기 힘든 간식들이 좋아 그렇게 종교행사에 참가하는 이들을 '떡신자'라 불렀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나도 '밥신자' 정도는 될 것이다. 
절에서 먹는 절밥(바리공양)이 좋아 잘 알지도 못하는 불교의 절들을 즐겨 찾으니 말이다.

아직 입문 수준인 밥신자의 눈으로 보건데 제일 훌륭한 절이 이 선암사다. 
밥먹는 곳이 어딘지 크게 써붙여놨기 때문이다. 
다른 절에서는 점심때쯤 도착해 눈치껏 밥냄새나는 곳을 찾거나, 마음씨 고와보이는 보살님께 체면불구하고 절밥을 먹을수 있겠냐고 여쭤봐서 공양간을 찾아야하는데 이렇게 크게 '식당'하고 붙여놓고, '스님들은 11시 40분부터, 일반인은 12시부터 점심을 드실 수 있습니다'하고 친절한 안내문까지 붙여놓으셨다.
이렇게 감사할데가... 연수랑 아빠가 자고있어서 먹고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뒤ㅅ간'이라고 써있는 이 나무집이 선암사 해우소다.
애초 선암사에 올 마음을 먹은 것은 이 해우소 때문이다.
보성 근방까지 왔는데 선암사 해우소에서 똥을 한번 싸보지 않으면 인생이 불우할 것 같았다. 
김훈씨가 '자전거여행'에 그리 썼다.

"선암사 화장실은 배설의 낙원이다. 전남 승주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선암사 화장실은 3백 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아마도 이 화장실은 인류가 똥오줌을 처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금자탑일 것이다. 화장실 안은 사방에서 바람이 통해서 서늘하고 햇빛이 들어와서 양명(陽明)하다." 
(김훈, 자전거여행 1, '그리운 것들 쪽으로' 선암사 중에서)
   










화장실 앞에는 손씻는 돌절구도 있다.
저렇게 호스 하나만 꽂으면 땅속에서 물이 나온다.
이런 단순함이 때로는 너무 신비롭다. 우리가 워낙 자연에서 멀리 사는 탓일게다.











나무로 지은 이 오래된 화장실 안에서는 햇살도 은은하고 바람도 은은하다.
화장실의 칸들은 문은 물론 없고 벽도 들어가서면 가슴쯤까지 오는 낮은 나무벽으로 구분되어 있다.
선암사 화장실 안에서는 남녀칸도 "철벽으로 가로막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떨어져" 있다.
이렇게 남녀 화장실이 한 건물안에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분리된 건축양식이 남도지방에서는 수백년전부터 있었던 모양인데 남아있는 것은 이 선암사 화장실뿐이라한다. 그래서 이 뒤깐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 문화재 안에 들어와 쉬도 하고 똥도 싸게된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선암사 화장실 자리에 앉으면 바깥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화장실이 높이 있어서 밖에서는 안이 안보인다.

여기서 똥누는 기분을 김훈씨는 이렇게 썼다.
"똥을 안 눌 때 똥누는 사람을 보는 일은 혐오스럽지만, 똥을 누면서 창살 밖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계면쩍고도 즐겁다. 이 즐거움 속에서 배설 행위는 겸손해진다. 햇빛은 창살을 통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빛은 굴절되어서, 화장실 안에는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고 늘 어둑어둑하면서도 그늘이 없다. 바람이 엉덩이 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엉덩이가 허공에 뜬 것처럼 상쾌하다. 똥을 누기가 미안할 정도로 행복한 공간이다."

그러니.. 이 화장실에 꼭 한번 와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해우소 옆모습. 윗층에서 싼 똥은 아래층에 떨어져 나무탄 재와 짚과 섞여 두엄이 된다.


김훈씨는 또 이렇게도 썼다. 
"똥을 누는 일은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변소처럼 감옥 같은 공간에 갇혀서 해야 할 일도 아닐 성싶다.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 한다. 선암사 화장실은 이 자유의 낙원인 것이다. 이 화장실에 앉으면 창살 사이로 꽃핀 매화나무며 눈 덮인 겨울숲이 보인다."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연수가 한사코 화장실 안에서 똥을 안싸고 "밖에서, 밖에서 싸~!"하며 도망치는 이유도 이게 아닐까 싶었다. 감옥이 어떤 곳인지야 아직 알 수 없는 어린 아이지만 좁은 화장실안이 답답하기도 할 것이고, 정해진 규칙이란 것은 속박처럼 느껴져서 거부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똥이 그저 어디서든 급할때 얼른 싸기만 하면 되는 일같기도 하지만, 작은 행위 하나에서도 자유롭고 홀가분한 기분을 깊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학시절 농활다닐 때 남편은 화장실이 설어 열흘이 넘는 긴 기간동안 똥을 한번도 안 싼 적도 있다했지만, 나는 시골집에 별채처럼 떨어져있는 변소에 앉아 시원하게 뚫린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판 풍경을 볼떄가 참으로 좋았다.  보통 그 창들은 창문도 없이 시멘트벽에 그저 네모낳게, 벽의 위쪽에 옆으로 길게 뚫어놓은 그야말로 큰 구멍이지만 그 안으로 쏟아져오는 바깥풍경과 바람만큼은 도시의 내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선암사 해우소 벽에는 손으로 옮겨쓴 시가 붙어있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나는 이 시를 순천에 도착해서 받은 '순천관광안내' 책자의 한 귀퉁이에서 처음 읽었다.
선암사 해우소에 와서 앉아보니 정말로 좀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울기에 참 좋은 곳.. 오래 참았던 눈물을 뚝뚝 떨굴 수 있는 곳.











선암사 뒷산에는 편백나무 숲이 있다한다.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다는 생각에 멀리서 건너다보며 저 돌길끝에 있는 키큰 나무숲이 그 숲이 아닐까... 생각만 했다.
나중에, 나중에 템플스테이같은 것을 할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온다면
나는 여기 선암사에 와서 하고 싶다.
편백나무숲을 걷고,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에도 다녀오고 싶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 무지개 모양을 한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를 사진에 담아보았다.
1689년에 호암대사가 이 옆의 절벽에서 관음보살을 뵙고 나서 만든 다리라는 전설이 있다.
무지개다리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기에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주차장에 돌아오니 연수는 벌써 일어나서 아빠와 차 안에서 잘 놀고 있었다.
부쩍 친해진 둘을 보니 안심도 되고, 이제는 내가 좀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그런 시간을 더 만들어봐야지.
 











순천 시내로 돌아와서 먹은 점심.
금빈회관의 돼지떡갈비는 전날 낙안읍성 앞에서 큰맘먹고 먹은 소고기 떡갈비보다 정말 몇배나 더 맛있었다. 값은 더 싸다.
이번 여행에서 먹어본 여러 맛집중 단연2위로 등극했다.

밥을 먹다말고 밖에서 놀고싶어하는 연수를 데리고 나와 순천시내의 오래된 골목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순천시청이 바로 앞에 있으니 구도심 정도 될 것 같은 그 길에는 '셋방있음'이라고 종이에 펜으로 써서 붙인 주택도 있었고, '달방 있음'이라고 써붙인 작은 여관도 있었다. 
열린 대문으로 여관 마당이 보였는데, 작은 문앞에 놓인 빨래가 가득 널린 빨랫대와 어린아기 유모차가 눈에 들어왔다.
연수 유모차와 같은 것이었다. 연수는 "연수 유모차가 있네" 하며 반가워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달씩 달세를 내며 여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내가 잘 짐작할 수 없는 그 삶을 생각하며 시내를 떠났다.


   









오후에는 순천만을 찾아갔다.
유명한 철새도래지인 순천만은 자연생태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입구의 넓은 잔디밭에는 "12세 미만 출입가능" 팻말이 붙어있었다. ^^
3세 김연수는 마음껏, 혼자서 그 넓은 잔디밭은 독차지하고 뛰어다녔다.











회색의 고운 진흙뻘위로 갈대숲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었다.











연수는 여행을 시작한 이래 최고로 신이 났다.
우산도 던져버리고 비를 맞으며 신나게 나무길위를 뛰고 또 뛰었다.
이렇게 놀고도 감기 한번 안걸린 것이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도대체 이 펄펄한 사내아이는 얼마나 뛰어놀면서 자라야하는 걸까.
 
 















한껏 친해진 둘이서 뒤도 안돌아보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사실 모기가 너무 많아서 이 갈대숲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ㅜㅜ
순천만을 여름에 여행하려면 모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가야만할 듯.










게가 딱 한마리 보인다.
실제로보면 게도 정말 많고, 짱뚱어라는 다리달린 작은 물고기도 정말 많아서 연수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저기! 꽃게! 저기! 짱뚱어!"하면서 연방 탄성을 질렀다. 
그 사이에도 모기는 쉼없이 연수 다리와 엄마 아빠의 다리를 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꽃게를 더 보고싶어하는 연수를 데리고 나오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공간이었다. 마음껏 뛰고, 진흙뻘속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동물들을 마음껏 보고, 갈대잎를 꺽어쥐고 낚시대라면 마음껏 흔들고 다닐 수 있는... 
다음에 연수와 또 올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바람에 눕는 갈대들이 아련했다.
아름답구나, 이 땅의 곳곳은.. 눈물겹기도 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숙소로 돌아오니 여행의 마지막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암사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갈대밭에서 잘 뛰어논 연수도 순하게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돌아간다. 우리들의 집으로.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28. 14:58









여행 7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아주 가는 실비가 내린다.
비가 와도 아침산책을 안할 수는 없어서 연수와 아빠는 우산을 받쳐들고 자연휴양림 안을 슬슬 걸어다닌다.
세살 남자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는 작은 방안에서는 감당이 안된다.

혹시 몰라 챙겨온 연수 우산과 장화가 톡톡히 빛을 발했다.
좋아하는 장화와 우산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 연수는 비가 반갑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에는~ 우산 쓰고 장화신고~ 그렇게 하고 나가는 거지요~"
노래인지 말인지 여행중에 말이 한층 는 연수가 재잘재잘 떠들며 앞장선다. 


지난 밤에 도착한 숙소는 전남 순천 금전산에 자리잡은 '낙안민속자연휴양림'이다.
순천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인 낙안읍성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금전산에 머무르는 삼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덕분에 금전산을 둘러싼 아름다운 안개는 실컷 보았다.
떠나는 날 아침에야 날이 갰는데 멀리 내려다보이는 낙안들판 풍경도 아름다웠다.

휴양림 안에는 사람만큼 많은 다람쥐가 산다. 아니, 우리가 못 봐서 그렇지 사람보다 더 많이 살 것이다.
그 중 몇 마리가 늘 연수의 산책길에 살짝 살짝 동행했는데 연수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금전산 다람쥐들을 자주 추억했다.
그래.. 엄마도 또 보고싶다. 우리집 돌계단에도 다람쥐가 앉아있었으면 좋겠구나..
그치만 다람쥐는 서울 우리집이 그닥 편치 않을거야..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순천에 온 것은 남편이 보성차밭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계산에 있는 선암사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양쪽 모두에서 가까운 순천에 숙소를 잡았다. 
우선 보성부터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차밭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수가 우산을 받치고 걸어가기에는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보를 보니 오후엔 그칠 것도 같다해서 차밭이 있는 산을 타고 그대로 내려와 가까운 율포해수욕장에 들렀다.

남해 바다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강물 만나서 바다로 간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연수랑 내가 자주 부른 노래처럼.. 우리도 흘러흘러서 우리가 사는 땅의 제일 남쪽 바다까지 왔다.
용현계곡에서 출발해서 서해바다를 지나 깊은 산과 큰 강들을 따라 여기 남해까지.
우리 세 식구.. 먼 길을 참 씩씩하게 왔다.   










여름이라 해도 흐린 날 바다바람은 추웠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 바람을 맞으며 춤을 춘다.
연수는 출줄아는 유일한 춤인 '짝발뛰기'를 해가며 모래사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지난 밤에 연수는 여행와서 처음으로 토를 했다.
평소에도 거의 토하는 일이 없었는데 졸릴 때쯤 심하게 울더니 그만 그 전에 먹은 포도를 왈칵 다 토해버렸다.
포도는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과일이라 광주에서 장볼 때 큰맘먹고 비싼 것을 두 송이 샀었다.
포도 한송이를 숨도 안쉬고 급하게 먹은 탓인지, 광주에서 낙안읍성 쪽으로 들어오는 꼬불꼬불한 국도길에 속이 불편했었던 것인지 알 수없지만 연수의 토는 엄마아빠를 일순간 긴장시켰다. 
어린 연수에게는 너무 무리한 여행인게 아닐까... 어린 것이 힘들고 고단한데 말을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과 자책으로 어제 저녁 우리는 조금 무거운 분위기로 잠이 들었었다. 
   
이럴떄는 내가 아직 젖을 먹이고 있다는게 다행스럽다.
아이에게 엄마젖은 세상에서 제일 큰 위안이고 안식이다. 
연수는 먹은 것을 다 토한 지친 몸으로 엄마젖을 천천히 잘 빨아먹고는 곤히 잠들었다.
그 젖이 연수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한번 뒤집어졌던 위장속도 쓸어주고, 날카로와졌던 마음도 부드럽게 다독여주기를 빌었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나면 밤에만 먹이는 이 젖도 끊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나는 연수의 만병통치약 하나를 잃은 것같이 허전하고, 때때로 연수가 아프기라도하면 불안할 것이다.
 
연수는 밤새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다시 기분좋게 잘 웃고 잘 놀았다.
다행이었다. 연수가 많이 힘들어하면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가자고 엄마아빠끼리 얘기했던 터였다.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지만 씩씩한 연수를 보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것 같았다.
고맙다. 연수야.. 남은 여행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가자. 











율포에서는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도 차고 해서 실내에서 놀기로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율포 녹차해수탕' ^^
녹차해수 물놀이장도 있지만 역시 실외고, 어른이나 아이나 뜨뜻한 물에 들어가 좀 쉬는 것도 좋겠다 싶어 목욕탕으로 갔다. 
아빠는 홀홀단신 남탕으로 가고, 연수와 엄마는 여탕으로. 
결과부터 말하면 아빠는 잘 쉬었고, 엄마는 운동 아주 제대로 했다.

남도 할머니들의 사투리가 이쪽 저쪽에서 튀어오르는 오래된 목욕탕은 정겨웠다.
쉴 새 없이 이 탕 저 탕을 오고가며, 또 쫑알쫑알 쉬지않고 떠드는 연수가 재밌어서 할머니들은 웃었다. 
"아고~ 뭐라는겨? 쪼그만 놈이 참 쉬지도 않고 떠드네잉~" ^^;;

지난 봄에만 해도 목욕탕의 큰 탕들에는 무서워서 들어가지 않던 연수는 이번 여행에서 물놀이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니면 만 25개월쯤되면 호기심이 겁을 이기는 것인지 이번에는 제 가슴까지 차오르는 목욕탕 물에 들어가 신나게 걸어다녔다.
냉탕도 가고, 온탕도 가고.. 3개쯤 되는 큰 탕들을 번갈아 들어가며 노는 세 살짜리 아이를 따라다니려니 나는 목욕의자에 느긋하게 엉덩이 한번 붙일 수가 없었다. 목욕하러 온게 아니라 목욕탕 안을 산책하러 온 셈이다. 무려 한시간 반동안...ㅠ.ㅠ   
 
점심을 먹고 다시 차밭들이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오니 밑에서는 내리지 않던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차밭 입구에 있는 매점 간판에 크게 '우산 비옷 카메라 음료수"라고 써있는 걸로 보아서 
여기서는 비오는 날이 맑은 날보다 많을 것도 같았다.
우산을 받쳐쓰고 살살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보다 더 큰 문제는 목욕하고 밥도 먹은 연수가 본격적으로 졸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성차밭으로 통칭되는 이 지역의 많은 다원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듯한 '대한다원'이 바로 큰 길옆에 있어 거기에 가보기로 했다. 차밭으로 가는 길에는 키 큰 삼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었다. 
이 길을 본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있다 싶을만큼 아름다운 길이었다.

입구에 가서 대한다원을 소개한 입간판 글을 읽어보니
차는 원래 따뜻하면서도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것이어서 일부러 주위에 키큰 나무들을 빽빽하게 심어 그 습도를 보장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녹차를 대량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인공적으로 차를 대량생산하기위해 적합한 산지를 물색하다가 전남 보성일대가 제일 적합하다고 평가되어 시험포전을 만들었다고 적혀있었다.

이번 여행을 하며 절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차에 대해서도 천천히 좀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 모르는 눈에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이 조금씩 보이기는 하지만
역사와 깊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 깊은 감동이 있지 않을까.











차밭은 아름다웠다.
앞으로는 녹차를 마실때 이 풍경을 떠올리게 되리라.
빗방울을 매달고 있던 작은 차잎들과 차나무들로 만들어진 길고 푸른 이랑들을.
사람도 그가 자란 고향을 알면 왠지 그 사람의 정서나 감정 한자락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듯이 
차의 고향을 보고나니 녹차에 대해서도 조금 더 친근하게, 그윽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린 우리 아들은 너무 졸렸다.
엄마 등에 업혀 거의 반쯤 잠든 녀석을 업고 넓은 차밭을 계속 걸어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비도 조금씩이지만 계속 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보니 전국의 아름다운 곳마다 초등학생쯤 되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가족여행객이 정말 많았다.
그래...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방학이 남아있는가. 너무 일찍부터 많이 다니면 나중에 갈 데가 없어질꺼야... 가자 가자, 그만 돌아가자. 보성차밭은 연수 좀 큰 뒤에 또 오자.










갈 때 가더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녹차아이스크림은 하나 먹고가야지. ^^
연수는 사랑하는 '아크림'을 보더니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쳐들었다. 











잠든 연수를 차에 태우고 먼저 찾아간 곳은 벌교읍내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이었는데 아쉽게도 월요일, 휴관이었다.
순천에서 보성으로 나오는 국도의 이름도 '조정래길'일만큼 보성벌교는 '태백산맥'이라는 뜻깊은 소설의 무대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살아있는 작가의 이름을 길 이름으로 한 것은 작가 입장에서 왠지 쑥스러울 것도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소설이 준 감동과 결연함, 그전까지 몰랐던 현대사에 대한 충격 같은 것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어서 보성, 벌교까지 왔으니 한번은 다시 그 이야기속에 빠져봐야할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벌교를 지나며 표지판을 보니 고흥도 가까이 있었다.
대학시절에 나는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달려 고흥 친구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행여 귀향을 한다면 아마 그때는 고흥에도 다시 한번 가보게 되지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정래길을 되돌아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숙소에 가기전 '낙안읍성'을 잠시 산책하기로 했다. 
    

 








이 길은 낙안읍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위 길이다.
꽤 넓고 평탄해서 성곽을 빙 돌며 읍성 안과 밖을 볼 수 있다.
도련님이 땅을 밟지 않으려고 하셔서 전속 하인 둘이 낑낑거리며 유모차를 들고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야했다. -.,-

도련님, 어떻게 전망은 마음에 드시는지...?  
음~~ 좋구나, 너는 거기서 계속 그렇게 뛰어오도록 해라...











도련님, 유모차에 탄채로 들꽃들을 흐뭇하게 보고있다. 
"이건 강아지풀, 이건 개망초..." 
이름도 제법 많이 기억한다. 
연수가 풀꽃들을 좋아해서 함께 여행하는게 훨씬 수월하다.
어딜 가든 풀꽃 한송이 피어있으면 한참 보고 놀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성곽과 관아, 민가들에 연수가 관심을 가지기야 어려웠지만 초가집 돌담을 따라 곱게도 만들어진 화단에 핀 야생화와 도라지꽃들은 어린 연수를 즐겁게 해주었다.











수로가 있다. 나리꽃 떨어지고, 도라지꽃 떨어지는 작은 수로.
어딜 가든 수로있는 마을이 나는 좋다.
이 수로도 400년전에 이 읍성이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들어졌을까.
이 수로를 따라가면 성곽 밖에는 물레방아간이 있다. 빨래터는 어디쯤이었을까.. 
지금도 이 오래된 마을에는 사람들이 산다. 
마을에 사시는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읍성 안에 있는 벤취에 앉아 핸드폰 너머에 있는 아저씨와 부부싸움을 하고계셨다.
"당신이 그라믄 안되재..!!" 
이 읍성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 같은 대화를 들으며 낙안읍성을 나왔다. 해가 저물고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아빠와 아들이 뒹군다.
연수는 엄마아빠 겨드랑이털 만지는걸 정말 좋아한다. 만지기만해도 쑥스러운 기분을 참기가 어려운데 잡아당기기까지 한다.
따그닥 따그닥 아빠 등위에서 말을 타던 연수가 드디어 아빠 겨드랑이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벌러덩... 도망간 아빠를 향해 무지막지한 발차기를 날린다.
세살 아들이 찬 것이 뭐 얼마나 아플까.. 하겠지만 맞아보면 진짜 아프다.
불쌍한 아빠.. 안쓰럽다.
하지만 평소엔 주로 엄마가 당하던 것을 여행때만이라도 아빠가 당해주니 고맙고 좋기 그지없다. ㅎㅎ

여행을 하며 아빠와 연수는 눈에 띄게 친해졌다.
2주의 휴가.. 연수가 태어난 후로 이렇게 아빠와 오래 있어본 것은 처음이다.
일년에 두어차례 연휴를 제외하면 주말 외에는 거의 아빠와 놀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 연수도 그중 하나다.
아빠가 큰 마음을 먹고 어렵게 낸 두 주일의 휴가는 늘 아빠에게 목말라있는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단비같은 시간.
여행 전에 연수는 한동안 아빠에게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 아빠가 '연수야, 뽀뽀~'하고 다가가면 도망가고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리곤 해서 아빠도 엄마도 마음이 아팠다.
여행을 하면서 연수가 다시 아빠한테 뽀뽀를 한다. 꼭 안아주기도 한다. 물론 저렇게 발로 차고 털도 많이 뽑지만 말이다. ^^;

아빠에게도 천천히,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여행 7일차, 여기 순천에서부터 아빠가 연수 밥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도 내가 부탁하면 아빠가 연수에게 밥을 먹이긴 했다. 조금 먹이다 금새 '잘 안먹어' 하면서 포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연수 밥그릇과 숟가락을 챙겨서 먼저 먹이고, 끝까지 먹인다.
엄마가 부탁하기 전에 옷도 갈아입히고 자주 손과 얼굴도 씻어준다.
'말하기 전에' 가 중요하다.
연수를 지켜보며 연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아빠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아이와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러니까 평소에 아침 일찍 잠깐 얼굴보고, 주말에만 아이와 놀아줄 때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아이의 주양육자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은 바로 이 것이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20. 22:54









저녁, 채석강.
부안에서의 마지막 밤. 해수욕으로 고단해진 연수는 일찍 잠들었다.
아빠는 잠든 연수 곁을 지키고 나는 혼자 카메라를 들고 채석강을 찾아갔다.














겹겹이 쌓이고 쪼개진 지층들 사이를 걸으며 세월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날들이 흘러갔으리라.. 이 돌들 사이로.
바다가 돌 위에 제 물길을 내고 바위들이 둥근 자갈이 되었다가 끝내 모래가 되기까지의 시간.

연인들은 수천만년전부터 쌓이고 굳어진 땅 위에서 약속처럼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생 아들이 끄는 힘에 끌려가듯 일렬로 뒤를 따라가는 가족도 있었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어놓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세월은 이 모든 사람들 사이를 공평하게 흘러갈 것이다.
나는 어떻게 나이들고 있는걸까.  
내 얼굴에는 어떤 길들이 그려지고 있을까... 

자신없는 생각들이 머리속을 오가고 있는데 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연인들 중 남자분이 나를 돌아보더니
"선생님, 사진 한장 찍어주시겠습니까?" 하고 부탁해왔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특이한데, 이 분의 억양도 독특하다. 중국동포 또는 새터민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진을 두 장 찍었다. 두 사람 다 참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두 분이 행복해보여서 나도 기뻤다.










여행 5일째 아침. 부안 해넘이팬션을 떠나며.
삼각대를 세우고 가족사진을 찍는 것은 어째 늘 이 순간이다. 이틀밤 또 잘 재워준 숙소, 잘 살아준 세사람, 모두 고맙다.









멀리 이동하는 시간, 주인도 쉬고 신발도 쉰다.


부안을 떠나서는 고창 선운사에 가기로 했다.
내가 오래전부터 가보고싶어했던 절이다.
애틋한 사랑의 시와 소설에 등장하는 선운사 동백이야기 때문에 나는 동백꽃을 볼 때마다 그 절이 생각나곤 했다. 

그러나 선운사로 오는 길은 즐겁기보다는 고단했다. 
여행을 언제 마무리할지에 대해 의견을 맞출 때까지는 여행은 계속 불안하고 삐걱거릴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대화가 자주 끊겼고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을 담은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웠다.
얼마나 가보고 싶었던 곳인가. 이런 맘으로 그 곳에 갈 순 없다.
마음이 다시 미래의 일정이 아니라 현재의 여행으로 돌아오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여행의 자잘한 풍경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꺼내 신발을 찍고, 빨래가 어지럽게 널린 차안을 찍고, 잠든 아이의 고단한 얼굴을 찍는다. 
차 밖으로 나와 우리 차 위로 드리워진 푸른 나무가지를 찍는 동안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열렸다. 
그래.. 얼마나 어렵게 떠난 길인가. 지난 2년동안 나는 이렇게 떠날 수 있는 날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떠나서 만나는 것들은 모두 참으로 새롭게 내 마음을 두드린다.
일정에 대한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우선 이 순간에 만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깊이 느끼자..










도착한 뒤에도 연수가 계속 자서 한동안 주차장에서 차문을 열고 쉬었다.

매일 물놀이를 하고, 여행이 길어지다보니 빨래가 많다.
저녁에 빨아서 널어놓았다가 아침에는 덜마른 빨래를 차안 여기저기에 널고 출발한다.
남보기에는 좀 민망하지만 에어컨 때문에 건조한 차안 공기도 촉촉해지고, 빨래도 잘 마르니 일석이조다. ^^

가끔 한 군데 뿌리박고 사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떠돌아다니는 유목의 삶도 물론 쉽지 않겠지만...
'온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세 식구가 딱 붙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먹고 자고 하다보니 마치 우리가 유목민이 된 것 같았다.
이틀밤씩 묵는 숙소가 내 집 같기도 하고, 세 식구를 태우고 달리는 자동차는 가재도구가 모두 들어있는 유목민의 마차같다.
연수는 숙소를 '우리집'이라 불렀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놀다가 숙소로 돌아갈 때는 '우리집에 간다'며 좋아했다.










큰 절의 주차장들은 정말로, 정말로 크다.
나는 이렇게 큰 주차장들은 서울에서 본 적이 없다. 서울에는 이만한 공간도 없을 것만 같다.
처음 갔던 개심사를 제외하고 수덕사, 내소사 오늘 선운사까지 대형주차장마다 고속버스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서곤 했다.
절을 찾는 관광객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고 그 다음에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반가웠다.
고단한 일상을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들.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어렵사리 시간을 잡고 옷가방과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겨서 떠난 사람들.. 우리는 같은 편인 것이다.   

동네 골목길에서 토요일에도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어린이집 노랑 버스를 보면 마음이 어두워졌었다.
쉴 수 없는 부모들, 늘 바쁜 부모와 마음껏 놀 수 없는 아이들...
토요일의 관광버스 행렬은 그렇게 어려운 일상에 잠깐이나마 놀 짬을 만들어서 떠난 사람들의 행렬. 
고속버스에서 방금전까지 춤을 추다 내린듯 어깨를 흔들며 화장실로 들어서는 할머니들을 만나면 코끝이 시큰하다. 
노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겨워지는 사회라니.. 정말 이상한 사회 아닌가. 

















잘 자고 일어난 연수는 선운사 주차장 옆 정자에서 신나게 놀았다.
어제 해수욕으로 탄 볼이 발갛다.
해와 파도에 익어 발갛게 달아오른 소년... 연수가 자라는 동안 이런 얼굴을 자주 보고싶다.

(오늘 엄마랑 같이 이 사진들을 본 연수가 말했다. "연수 혼자 놀고 있네... 꼭꼭 숨어라도 하고.. 까꿍도 하고.." 그래. 그런 놀이를 했었지..^^ 세살 아이의 기억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어제 내소사 입구에도 문수스님을 추모하는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여기 선운사 입구에도 있다.
스님 4천여분이 4대강 사업 반대 서명을 하셨다고 남편이 말해주었다.  
스님들은 '조선시대 왜구를 막는 심정으로' 서명운동에 동참한다고 하셨단다.
멕시코만에 유출된 원유때문에 만들어진 허리케인이 '기름비'를 미국에 뿌릴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환경재앙은 예상할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인간들의 세계를 덮쳐올지도 모른다.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자연, 그로인한 위험들을 물려받을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고 미안했다.










선운사를 품고있는 산의 이름은 '도솔산'이고, 선운사를 감싸고 흐르는 이 천의 이름은 '도솔천(川)'이다.
도솔천(天)은 불교경전에서 이르는 이상적인 세계 중 하나다. 
미륵보살이 지상으로 내려가기 전에 때를 기다리며 머무는 곳이고, 전생에 덕과 복업을 쌓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 하늘나라를 뜻하는 그 도솔천의 세계를 선운사는 절이 자리잡은 산과 강 안에 구현하고 싶었나보다. 
오늘도 도솔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계곡물에 시원하게 발을 담그고, 선운사 입구 자연생태공원에서는 놀러온 한 무리의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도 참 좋았다. 
곧고 높은 전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내소사 길이 왠지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어야할 것 같은 길이었다면
넉넉한 도솔천을 끼고 있는 선운사 길은 꼭꼭 여몄던 옷깃도 좀 시원하게 풀어놓고, 담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탁 소리를 한쪽 귀로 들으며 시원하게 탁족을 하면 좋을 것 같은 그런 길이었다. 
속세를 벗어난 구도의 길이라기 보다는 속세를 바로 곁에까지 불러 앉혀놓고 그 희노애락을 모두 안아주는 길.. 
이런 인상은 내가 이미 선운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애틋한 사랑의 이미지와 겹쳐져서 선운사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해주었다.

선운사를 그리워하게 만든 시는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였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지난 봄에 나는 강릉 친정집 마당가에 있는 동백나무 한 그루에서 동백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았다.
나무 한그루에서도 붉은 꽃이 얼마나 많이 피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침이면 어제 만개했던 꽃들이 송이째 뚝뚝 나무밑에 떨어져 있었다.
연수는 매일 동백꽃과 놀았다.

그때 나는 연수에게 말했었다.
"연수야, 저기 남쪽에 선운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 뒷산에는 동백나무가 삼천그루나 있대.. 
한 그루만 있어도 이렇게 꽃이 많은데 삼천그루면 얼마나 꽃이 많이 필까..
봄에 꽃이 피면 온 산이 빨갛겠다.."

그 많은 꽃이 피면 얼마나 장관일까. 그 꽃이 지면 또 얼마나 서글플까. 온 산이 아마 피를 흘리는 것 같겠지.. 
동백꽃이 필 때를 맞춰 선운사를 찾는 것도 쉽진 않겠지만 동백꽃이 질 때 선운사를 찾는 일은 더 어려울 것같다.
마음을 굳게 먹지 않고는 차마 못 볼 장면같다. 

김훈씨는 '자전거여행'에서 이렇게 썼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그러니 그 눈물을 어떻게 본단 말이지. 










연수.. 지난 봄의 이야기, 기억하고 있을까.










선운사 경내는 대부분 평지였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도 오르막길이 아니라 거의 평지에 가깝고, 다른 불전들도 모두 수평의 공간위에 자리잡고 있다.
수직의 고양감이 없는 대신 넓은, 아주 넓은 공간감이 절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승가대학이 있고, 가까운 마을에 승려노후수행촌을 만들기위한 불사도 진행하고 있었다. 
올해 노동절에는 '이주 노동자를 위한 템플스테이'를 하기도 했다는 이 절의 품이 넓어보였다.

선운사가 등장하는 윤대녕 씨의 단편소설 '상춘곡'도 생각하며 절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다 
절 마당 한가운데, 그러니까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는 '만세루'라는 전각에 펼쳐진 다기들에 눈이 갔다.
연수와 함께 올라가니 나이 지긋하신 보살님께서 차를 마실거냐고 물으셨다.
그러겠다 하니 말없이 차를 한 주전자 끓여다주신다.
무슨 차냐고 물었더니 지리산 녹차를 발효시킨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셨는데 발효액 특유의 달콤한 맛이 있어 연수가 좋아했다.  

만세루는 선운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700년이나 된 나무기둥이 아직도 이 오래된 전각을 받치고 있다.
연수는 그 기둥들을 붙잡고 빙빙 돌기도 하고, 마룻바닥에 대자로 누워 뒹굴거리기도 했다. 
연수를 귀엽게 본 보살님이 어린 방문객의 무례를 눈감아주셨다.




 






대웅전 앞 마당에 연등을 달고 계시던 할아버지.
만세루 마루바닥에서 발을 쿵쿵 구르는 연수를 번쩍 들어안고는 등을 다시던 철근탑위에 올려주려 하셨다.
연수는 '엄마한테 갈래~!'를 외치며 금세 돌아왔다. 아이에게 꽃등을 가까이서 보게 해주시려던 마음이 참 감사했다.


선운사를 나와 광주로 향했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여행 5일차의 숙소를 제공해주기로한 명이님네가 있었다.
미페이님과 명이님을 블로그에서 만난지 딱 2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갓난쟁이 연수는 만 두 살을 꽉채운 '오빠'가 되었고, 명이님과 미페이님은 결혼을 했고 어여쁜 딸을 낳았다.
백일이 채 안된 이 아이 얼굴을 본다는 핑계로 우리는 염치불구하고 명이님께 하루밤 숙박을 부탁하였다.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더운 날, 에어컨나오는 시원한 안방을 우리 식구가 차지하질않나.. 명이님 어머님이 해주시는 온갖 맛있는 요리들을 우리 식구가 거진 다 먹질않나... 
더구나 그 날 밤에는 전남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밤새 천둥번개가 요란했다. 대가족의 포근한 품안에서 세 식구 모두 너무도 안락하게 자고 쉬었다. 어디 작은 펜션이나 외딴 휴양림안에서 이 비오는 밤을 보냈다면 아마 우리는 몹시 외롭고 불안했으리라...

명이님네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고마운 중간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었다.
따뜻한 가족들 속에서 많이 웃고, 잘 먹고 잘 쉰 몸과 마음에서는 새로운 기운이 났다.    
연수도 모처럼 차가 아닌 집 이불위에서 아주 단 낮잠을 오래오래 잤다. 
남편과 나는 수요일에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삼일밤을 묶을 숙소를 잡았다.
남편이 대폭 양보해 어렵사리 합의를 본 일정이었다.  

여행 여섯째날 오후, 점심까지 든든하게 얻어먹고 쏟아지던 빗줄기가 좀 가늘어졌을때 우리는 명이님네를 떠났다. 
장을 보고 광주를 떠나자니 새롭게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으나 사실은 전체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들이 될 것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전남 순천이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17. 00:12









나흘째 여행을 시작하며 꼼꼼히 부안관광안내책자를 읽고계신 김연수씨.

여행의 새로운 하루를 여는 첫 일정은 연수와 함께 하는 아침산책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연수의 손을 잡고 어제 놀았던 바닷가를 한바퀴 빙 돌며 산책했다. 
물이 많이 차서 울퉁불퉁하던 자갈밭은 반도 넘게 줄었다. 만조는 낮 12시경이라 하니 물은 앞으로도 몇시간 더 차오를 것이다.

연수와 나는 생활리듬이 많이 닮았다. 둘다 아침잠이 없고 밤잠은 많다. 남편은 반대다. 밤잠은 없고 아침잠이 많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연수는 남편 대신 내 짝꿍을 하라고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아침산책을 할때는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 보는 것보다는 둘이 보는게 좋다. 둘이 같이 손을 잡고 나무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고, 천천히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어 고맙다.
모래사장에 앉아 예쁜 돌멩이와 조개껍질을 주으며 함께 웃을 때 참 행복하다.
우리가 산책에서 돌아올 때까지 달콤한 아침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는 남편도 행복할 것이다.
연수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내가 놀고싶을 때 자고싶어하는 남편때문에 곧잘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연수 덕분에 우리에게 평화가 온 것일까. 
요 작은 짝꿍과의 산책은 보살펴야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고 나를 업어주기는커녕 내 등에 업고 돌아오느라 낑낑거릴 때도 많지만 말이다.   









아침을 먹고 숙소를 출발해 찾아간 곳은 부안에 있는 내소사. 
오래된 전나무 숲 사이로 일주문에서부터 사천왕문까지 500m가 넘는 긴 길이 나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시원해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내소사는 어제 수덕사에서 불편했던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주었다.
절을 향해가는 길은 그 절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 같다. 길이 주는 느낌과 절이 주는 느낌은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의 길은 절의 첫인상이자 이 길 속에 그 절이 추구하는 정신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는 것같다.
개심사의 소박한 길은 그것을 감싸는 자연도 소박했고, 절도 소박했다. 세속에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씻어주는 엄마의 손길 같았달까.
수덕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주는 수직적인 고양감이 내게는 좀 벅차고 권위적으로 느껴졌던 절이다.
내소사 길은 넓고 평탄했다. 하지만 좌우에 서있는 푸르고 높은 전나무숲으로 인해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 또한 높은 이상과 아름다움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고 고무되는 길이었다. 
위압적이지 않되, 마음을 곧고 정갈하게 가다듬게 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능가산 아래 펼쳐진 내소사의 대웅보전은 목조건물의 소박함과 단청과 문의 화려한 문양들이 참 조화롭게 어우러진 불전이었다.








빛깔이 아니라 문양만으로도 이렇게 화려하다. 나무의 자연스러운 색채만 있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화려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이 많아 눈길닿는 곳마다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던 절.









내소사에서는 대웅전 오른편에 찻집이 있었다.
값은 써있지 않고 차를 마신후 문앞에 있는 작은 불전함에 내고싶은만큼 넣고가면 된다.
작은 나무상마다 다기들이 준비되어있다.
책을 읽고 계시던 보살님이 '뽕잎차'를 우려 주셨다. 그냥도 먹어보라고 연수와 우리에게 조금 주셨는데 바삭하게 잘 마른 뽕잎은 고소했다.
더운 날, 많이 걸어 힘들었던지 엄마에게 자꾸 업히고 매달리던 연수는 방에 들어오니 좋았는지 양말까지 벗고 차를 마셔가며 잘 놀았다.
차에서도 그 절 느낌이 난다. 은은하고 담담한 뽕잎차같은 절, 내소사는 내게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내소사 공양간에서 점심공양까지 감사히 얻어먹고 내려오는 길, 연수는 전나무길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유모차안에서 잠이 들었다.
전나무길가에 있는 벤치 옆에 유모차를 세우고 나는 둥근 탁자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블로그에 첫날 여행기를 올렸다.
여행와서 처음으로 써보는 포스팅이었다. 여행중에도 틈만 나면 아이폰을 꺼내 트위터를 보는 남편에게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왔는데 그 아이폰 덕분에 전나무 숲길에 앉아 인터넷을 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고보니 그간의 구박이 살짝 미안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가보고싶었던 절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이었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또 각자의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떠난 '긴 여행'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하고 맨밑바탕에 놓인 의미겠지만 그위에는 자신만의 무언가가 놓이게 될 것이다. 

36개월된 아들과 함께 한 한달동안의 터키 베낭여행기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에서 오소희씨는 여행 후반, 자신은 너무나 지쳐있었던 터키의 한 대도시에서 마침내 아이는 여행의 절정을 만끽하고 있었다고 했다.
내 여행은 내소사에서 절정을 맞은 것 같았다.
내소사는 그만큼 내게 큰 충족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소사'하고 말하면 입에서 전나무숲을 스치고 지나가던 시원하고 푸른 바람 소리가 날 것 같은.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키워온 나무처럼, 오랜 수행끝에 얻은 곧고 정갈한 마음들이 느껴지던 단아한 절.










연수의 낮잠이 끝나자 아쉬운 인터넷 시간도 함께 끝났다.
이제는 물놀이 시간! 꽃게보행기를 데리고 바다로 갈 시간이다. ^^










엄마의 무릎 정도까지 오는 물이지만 연수에게는 꽤 깊은 물이고, 처음으로 바다에서 해보는 수영(?)이다.
작년 여름 첫 돌을 막 지난 후였던 연수는 바닷물에 발을 적셔보기는 했지만
바다에 몸을 담그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를 온 몸으로 느껴보는 경험은 오늘 처음 해보는 것이다.
무서울 법도 한데 이 녀석, 보행기를 타지 않고 그냥 물에서 수영을 해보겠다고 무척이나 떼를 썼다.  
누굴 닮아 이렇게 물을 좋아할까. 수영을 좋아하는 엄마를 닮은걸까, 술을 좋아하는 아빠를 닮은걸까..? ^^
깊은 물로 가고싶어하는 연수를 얕은 물에서 데리고 노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엄마의 배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태아 시절의 기억이 연수의 몸과 마음에 깊이 기억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중력의 중압을 벗어난 보는 것은 사실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 일인가.
사는 일이 몹시 고단하고 팔과 다리가 천근같이 무겁게 느껴질 때면 나는 물위에 가만히 떠있을 때의 편안함, 배영을 하며 누워서 하늘을 볼 때의 시원함을 가끔 꿈꾸곤 했다.
현실은 아직 연수가 저도 엄마처럼 튜브없이 수영하겠다고 따라하는 바람에 제대로 바닷물위에 한번 누워보지도 못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해변에 앉은 선글라스 김선생님. 놀고있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망치처럼 생긴 돌멩이를 찾아내 신나게 다른 돌들을 두드리고 다니던 연수.
이 맑은 서해바다에서는 멸치같이 작은 물고기들이 우리 다리 옆으로 떼지어 헤엄쳐 다녔고
조금 먼 바다에서는 탁탁 물위로 튀어오르는 제법 큰 물고기들도 있었다.
신기하고 즐거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바닷가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이 날 저녁 온가족을 매혹시킨 부안 '칠산 꽃게장'.
연수는 꽃게장 국물에 쓴 것과 같은 간장으로 맛을 낸 '메추리알 조림'을 혼자서 두 접시나 먹고, 그 국물에 밥을 비벼 먹었다.남편과 나는 각자 공기밥을 두 그릇씩 먹었다.
이 게장을 먹고 남편은 '이렇게 맛있는 게 세상에 있는줄 모르고 살았던 지난 세월'을 안타까워했고 이 식당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다. 이 사진도 처음 한입 먹어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그만 정신없이 반 이상 먹고나서야 '아 사진!'하고는 뒤늦게 찍은 것이다.
부안의 갯벌이 키워내는 꽃게의 비밀인지, 간장의 비밀인지, 그도 아니면 햇살과 바람이 곰소 염전에서 만들어내는 소금의 비밀인지 이 간장꽃게장의 깊고 오묘한 맛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가 가는 곳의 맛집을 찾아가고파했던 남편에게도 칠산꽃게장은 여행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게 되었고,
연수도 조약돌이 가득하던 해변과 바다에서의 수영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나는 내소사에서 깊은 평화로움과 충족감을 맛보았다.  
우리 가족은 이 날, 모두 함께 여행의 절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그만 돌아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본 것 같았고 행복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길게 여행하는 것을 걱정하는 집안 어른들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거듭되고 있기도 했고,
1년동안 우리집에서 함께 살아온 연수 삼촌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 다음주 목요일로 거의 확정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나는 주말지내고 다음주 초에 일찍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러고싶지 않아했다.
20대의 오랜 시간동안 한번도 이렇게 긴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남편이었다. 
대학시절의 농활이나 동아리 산행,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청년회에서 단체로 가는 짧은 여행을 제외하면 거의 여행을 하지 못했던 남편에게 이번 휴가는 처음으로 긴 시간동안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여러 곳을 돌아다녀보는 여행이었다.
비록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난 길이기는 하지만 남편은 최대한 오래, 더 많은 아름다운 곳을 가보고 싶어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휴가를 낼때 얼마나 어렵게 결심했을지, 얼마나 떠나고 싶었을지.. 그 마음을 짐작하면서도 나는 자꾸 뒷걸음질치게 되었다. 
어린 아이가 고단할까 걱정스럽고, 어른들의 근심이 길어지는게 마음에 걸렸다. 

여행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우리의 여행은 이제 '전'의 시점, 그러니까 갈등의 국면에 접어든 것 같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11. 13:05







여행 3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연수가 아빠와 휴양림을 산책하는 동안 나는 풀어놓았던 여행가방을 다시 꾸렸다. 
짐싸는 기술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우리 엄마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도 이제는 제법 가방을 빨리 싼다.
엄마는 자식 셋이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10여년 동안 우리들의 자취집, 하숙집 이사짐을 정말 여러번도 싸고 푸셨다.
그 뒤론 시집장가간 자식들이 집에 다녀갈때마다 반찬과 이런저런 먹을 것 꾸러미를 또 얼마나 싸셨는지 모른다.
엄마의 짐싸는 손놀림은 경쾌하고 민첩해서 그 손길 덕분에 싸넣는 먹거리들이 더 맛있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번 여행 소식을 듣고 '아직 어린 애기를 데리고 힘들게 돌아다니지 말고 강릉집으로 와서 푹 쉬다 가라'고 하셨던 엄마는
아마 우리가 서울집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으실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서른이 훨씬 넘어서도 나는 엄마에게 물가에 내논 아이다.

용현자연휴양림을 떠나기전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가족 사진을 한장 찍었다.
고마웠어, 노루귀방..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어. 








여러날에 걸쳐 차를 많이 타고 많이 걷고 물놀이도 자주 하는 이번 여행이 25개월 연수에게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연수가 힘들어하면 일찍 돌아가자고 엄마아빠끼리 얘기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연수는 씩씩하다. 
열심히 노느라 고단하니 잠도 잘 자고, 밥도 많이 먹는다. 여행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록 터득해가고 있는듯.. 
씩씩하게 함께 여행하고 있는 연수가 정말 고맙다.
이제는 엄마아빠가 나누는 여행에 대한 대화에도 익숙해져서 차에 타면 엄마가 보던 지도를 들고 가서 
"오늘은 여기에 가고, 내일은 저기에 가고... 오늘은 잠을 여기서 자고..." 하며 여행일정도 읊는다.  ^^

 






여행 3일차인 오늘은 서산에서 가까운 예산에 있는 '수덕사'로 향한다. 
이 역시 그저 이름만 알고있던 절인데 마침 가까이 있으니 우리의 두번째 여행지 '부안'으로 내려가기 전에 들렸다 가기로했다. 
가서 보니 수덕사는 엄청나게 큰 절이었다.
주차장부터가 어마어마하다. 어제 본 '개심사'처럼 조용하고 고즈넉한 절일꺼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팜플렛을 읽어보니 수덕사는 조계종 안에서 '덕숭총림'으로 묶여있는 충청도 인근 지역 작은 절 50여개의 본산(중심절)이었다.
예전에 천태종 본산인 단양 구인사에 가본적이 있는데 한 종파, 혹은 지역의 본산인 절들이 본래 그런지 
절이 아니라 마치 큰 대학같기도 하고, 기업같기도 해서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불전들도 모두 너무나 으리으리하고 거창했다. 나는 그런 곳에 가면 그만 마음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그 큰 규모가 불편해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주눅들린 사람처럼 얼른 내려와버리게 된다.
그래도 구인사에서는 큰 장독대들이 가득 모인 곳 옆에 있는 큰 식당에서 공양 한그릇을 먹으며 주눅든 마음을 녹이고라도 왔는데 수덕사에서는 공양간도 찾지 못했으니 마음붙일 데가 영 없었다.
다행히 감로수 마시는 곳을 찾아 연수와 목을 축이고, 수직으로 높이 뻗어있는 절길을 힘들게 올라 겨우 대웅전 마당에 도착했다.   









아. 수덕사 대웅전은 아름다웠다.
백제시절에 지어진 절의 대웅전은 단아한 목조건물이었다.
남편은 대웅전이 정말 인상적이고 아름답다며 기뻐했다.
내게는 이 절안에서 유일하게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곳이었다. 
나중에 팜플렛을 보니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시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국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무척이나 다행스러워했다. ^^; 









수직으로 높이 올라오는 절의 구조상 대웅전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경치는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는데 대웅전 바로 밑에 새롭게 지은 '황하정루'라는 누각이었다. 
2층으로 세운 누각의 지붕이 대웅전 마당 가운데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도록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누각을 피해 마당의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가야지 산 아래 경관을 비로소 조금 볼 수 있다.
본래 수덕사 대웅전 마당에서 볼 수 있었을 그 탁 트인 경관을 막으면서까지 높은 누각을 지어야했을까...   
나는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수덕사의 많고, 높은 건물들은 조화롭지 못한 것 같이 느껴졌다. 
절의 중심인 이 마당에 서서 위로는 덕숭산과 아름다운 대웅전을 올려다보고 아래로는 푸른 예산벌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면 수덕사를 찾은 감동은 더 커졌을 것같다. 









문제의 누각 2층은 절에서 운영하는 찻집이다.
지하에는 미술관이 있다. 건물의 내용으로만 보면 좋은 건물인데 그만 그 위치 때문에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찻집에 들어가니 상냥한 보살님께서 "제가 대추차를 맛있게 만들어서 시원하게 해뒀거든요. 한번 드셔 보세요" 한다.
차림표에는 가격도 써있다. 연수에게는 따로 작은 잔에 오미자차도 주셨다. 
대추차는 달고 시원했다. 누각의 창문으로 대웅전 마당에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러니 이 전망은 누각의 찾집에 들어와 돈을 내고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전망이 된 셈이다.










수덕사 아래에는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미술가 이응로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수덕여관'이 있다. 
이 여관을 사서 자신의 거처로 삼은 이응로 화백이 직접 마당의 돌에 조각한 암각화도 볼 수 있었다.
'한국 근대불교의 선풍을 진작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알기 어려웠지만 수덕사 입구에 서있는 절 소개문은 아주 전투적인 느낌을 주었다. 
절의 큰 규모와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듯한 분주함이 어제 갔던 개심사의 고요하고 소박한 정취와 대비되면서 개심사를 더 그리워지게 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조작된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며 몸과 마음에 모두 깊은 상처를 받았을 노화가가
머물면서 마음을 치유하던 시절에는 이 산과 이 절이 그런 느낌은 아니었으려나... 아마도 대웅전만큼은 그 깊은 아름다움으로 노화가를 고요하게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수덕여관으로 들어가는 돌다리위에서 내려다본 작은 개울.











수덕사를 떠나 부안으로 가는 길. 연수는 차에 타고 얼마 안있어 낮잠에 빠져들었다.
어린 얼굴이 고단해보인다. 여행은 참 고단한 것이지... 그러다가 문득 아주 행복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여행인 것 같다. 









차는 변산반도국립공원을 향해가는 30번 국도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30번 국도.
반도 서해의 곡선을 따라가며 아름다운 바다와 갯벌과 모래사장과 마을들이 펼쳐지는 길... 30번 국도에 들어서는 마음이 설레는데 얼마안가 '새만금간척사업'의 공사현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를 막고, 갯벌을 메우고.. 포르레인과 덤프트럭들이 오고가고 검게 변한 갯벌이 꾸덕하게 말라 죽어가는 현장을 지나가며 
죽이지 마라, 아름다운 것들을 제발 죽이지마라... 터져나오지 않는 소리들만 마음안에서 되씹었다.










차를 격포항 주차장에 세우고 잠시 내려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절벽이 있다. 
바다와 자유롭게 오고가야할 것같은 물은 그러나 '격포 다기능항 건설공사'로 그만 거의다 막혀있었다.
지금 뚤려있는 좁은 틈도 곧 공사가 진척되면 메워질 것이다. 









격포항 건너편에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위도라는 섬이 있다.
그 섬으로 오고가는 여객선도 있고, 작은 낚시배도 이렇게나 많다. 
격포항이 다기능항이 되면 격포항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과 많은 음식점 상인들은 좀더 살기가 나아지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마도 다기능항이 된 격포항은 예전의 아름다운 풍광은 조금더 잃을 것만 같다. 

남편이 찜해둔 맛집인 '군산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반찬이 나오는 7천원짜리 백반이었는데 배도 고팠고 맛도 좋아 각자 공기밥 2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부안에서 잡은 숙소는 격포항에서 멀지 않은 '원창 해넘이마을'이란 펜션이었다.
문화관광부가 지정하는 좋은 숙박업소인 '굿스테이' 인증이 있는 집이었는데 아담하고 깨끗했다. 
주인아저씨도 무척 친절하시고 숙박료도 저렴한 편이다. 
'굿스테이 믿을만한데~'하며 하루 전날에야 다음 묵을 숙소를 잡고 있는 대책없는 여행자들은 숙소를 잘 잡았다고 무척 기뻐했다. 
연수는 방에 짐도 풀기전에 펜션 마당에 있는 튜브풀장으로 달려가더니 나올 줄 몰랐다. 
바다에 다녀오는 숙박객들이 물을 떠서 발에 묻은 모래를 씻고 들어가라고 만들어놓으셨다는데 연수는 바로 풍덩~ 입수!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바닷가. 
고이 모셔온 모래놀이 장난감이 진가를 발휘할 시간!









신나게 한 삽 푼다.
모래놀이를 워낙 좋아하는 연수를 보며 아빠는 '삽질은 인간의 본능인가봐'한다.
여기서 이렇게 놀다가 아파트 작은 모래놀이터로 돌아가서 연수 섭섭해하면 어쩌지..^^









이 근방을 '적벽강'이라고 부른다한다.
중국 시인 소동파가 놀던 적벽강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근처의 채석강은 역시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이백이 배를 띄우고 놀다가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뛰어들어가 빠져죽었다는 그 채석강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이 이름을 붙이던 당시의 중국 문화에 대한 흠모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된다. 작은 우리나라에도 대국만큼 아름다운 곳이 있다고 얘기하고픈 마음이었던걸까.. 하고 달리 생각해보기도 했다.
무튼 경치는 정말로 아름답다. 여기 앉아서 먼 바다와 가까운 절벽과 발밑의 조약돌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맙다는 생각을 할만큼.









발을 덮어주려고 모래를 파니 아주 작은 새우가 나온다. 
우리가 앉은 돌멩이에서는 고동들이 느릿느릿 기어내려갔다. 
연수는 돌에 붙은 고동들을 찾아내 등껍질을 살짝 건드려보기도 하고 고동의 느린 움직임을 오래오래 지켜보기도 했다.









물이 빠지고 있었다. 연수와 모래놀이를 하는 중에도 물은 계속 슬금슬금 먼 바다 쪽으로 걸어나갔다.
연수는 그 물을 따라가고 싶어했다. 
"더 깊은 곳으로, 저기 멀리 있는 바다로 가자" 먼곳으로 가보고싶은 마음이 이 어린 아이에게 참 강하기도 하다.
알랭드보통
겁이 없으니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낭만주의자일 수 밖에 없다.  










꼭꼭 숨어라~ 집게발이 보일라.














변산반도에서도 이틀밤을 잔다. 
하루더 이 바닷가에 있을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무참한 공사현장들을 지나.. 그래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것들 곁으로 기어이 왔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10. 00:46







새벽 일찍 일어나 휴양림 구석구석을 산책했던 연수는 아침을 먹고 차를 타자마자 이른 낮잠에 빠져들었다. 
개심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서 연수가 깨기를 기다리며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읽었다.
김훈씨의 여행에세이는 정말로 뜨거운 언어와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모국어로 씌여진 가장 아름다운 에세이'라는 소개글이 허언이 아닌 것 같다.

잠에서 깬 연수를 유모차에 태우고 개심사 일주문을 지나 걸어올라간다. 
완만한 경사의 넓은 포장길 주위로 나무가 울창하다. 여름 숲의 초록색 기운은 눈이 부시다.  
개심사로 올라가는 길은 한적하고 차도 한대 지나가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절 바로 밑까지 차가 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급할 일이 없고, '마음을 씻는다'는 절의 이름을 생각하며 일주문을 지나 천천히 걸어올라가는 것이 여행자에게는 더 좋은 길이리라.

평탄한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세심동'이라는 작은 돌 표지판이 서있다.
거기서부터는 산 속으로 난 길을 따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놓은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유모차를 밀고 절까지 올라갈 수 있을줄 알았던 우리는 잠시 난감했으나 절과 산을 오가는 이들이 손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유모차를 접어 세심동 입구 산턱에 놓아두기로 했다.

계단을 너무 좋아하는 연수는 반가워라하며 씩씩하게도 그 험한 계단을 거의 다 혼자 올라갔다.
"엄마 머리 위에도 나무, 아빠 머리 위에도 나무, 연수 머리 위에도 나무, 온통 나무네~"
쉬지않고 종알거리는 연수 덕분에 힘든 길을 힘든 줄 모르고 간다.
이어폰으로 라디오나 노래를 들으며 산을 내려오는 분을 뵀는데 우리에게는 연수가 라디오나 다름없다.  

세심동에서 개심사까지 올라가는 길옆에는 골짜기를 따라 작은 냇물이 흘렀는데 그 소리가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씻고, 몸 속에 깃든 정신까지 씻으며 올라오라는 길이었다. 









개심사 첫머리에 서있는 종루.
구부러진 나무들을 그대로 쓴 기둥들이 아름다웠다.
이 종이 울리면 상왕산에 사는 나무들이 듣고 새들이 들을 것이었다.
자연속에 묻혀 그대로 하나의 자연인 이 절에서는 사람과 건물도 모두 자연에 거슬리지 않는 모양을 하고 있는듯했다.







해우소로 가는 길가 나무밑에 내려와 있던 작은 새.
날지 않고 이쪽 저쪽으로 걸어다니기만 해서 아직 날지 못하는 어린 새가 둥지에서 떨어졌나하고 나무가지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둥지는 보이지 않았다.
연수가 아기새에게 바싹 다가가자 아기새는 호르르 하고 살짝 날아서 담장 밑으로 도망갔다. 









해우소 앞에는 아주 큰 오동나무가 서있었다. 
"딸을 낳으면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어 두었다가 딸이 시집갈때 장롱짜서 준다더니 저만한 나무라면 장롱 짤만 하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딸을 낳으려면 마당있는 집이 있어야겠네"한다. 
아비들은 어딜 가든 집장만할 걱정, 처자식 먹이고 재울 걱정을 놓지못한다.
한손에는 개심사 주차장 앞에서 산 살구를, 한 손에는 떨어진 오동잎을 들고 뭘 저리 보고 있을까 연수.









천왕문 기둥의 아름다움.
자연에는 직선이 드물고 모두 제가끔의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며 산다.
그 곡선 하나만 살려 써도 이렇게 눈물겹게 아름다울 수 있다.









개심사에서 남편이 제일 좋아한 건물.
오래된 나무의 색과 결이 참으로 곱던 작은 집.
종무원 겸 기념품 판매소로 쓰는 널찍한 방이 있는 이 건물의 나무 기둥들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구멍들이 나있고, 그 구멍마다 벌들이 사는 것 같았다.
방은 사람이, 기둥은 벌이 나눠쓰는 집이다.  









엄마아빠는 절이 예쁘다고 신이 났는데 
여행 첫날의 노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날이 더워서인지 연수는 시무룩했다.
감로수를 발견하고서야 겨우 조금 활기를 찾아서 바가지로 물을 떠먹고 찰랑거리는 대야속의 물에 손을 담그기도 하며 놀았다.

연수가 기운을 차린건 명부전을 구경하던 중에 기도를 마치고 나오시던 스님께 떡 두덩이를 받아서 먹으면서부터였다.
더운날 산길을 걸어올라오느라 기운도 빠졌고, 이전에 절집에 별로 가본적이 없는 연수에게는 이 공간이 영 낯설었던 모양이다. 엄마에게 딱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물을 먹고 떡도 받아 먹고 나서야 절이 푸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점심때가 다 되어 절에 오면서 나는 내심 절밥을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큰 절에서 가끔 절밥을 먹어본 나는 절밥으로 나오는 여러 나물과 절에서 직접 담근 장을 넣고 슥슥 비벼먹는 그 밥이 참 맛있고 좋았다. 
그래서 은근히 개심사에서도 절밥을 먹어볼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을 잘 못하고 쑥스러운 것을 못 참는 남편은 그냥 내려가서 음식점에서 사먹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알찬 '맛집 여행'을 꿈꾸면서 출발한 첫 날부터 휴양림에 틀어박혀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마누라때문에 저녁은 카레밥, 아침은 볶음밥을 먹고 섭섭해했던 차에 점심은 절밥을 먹자고 하니 애써 모은 서산의 맛집 정보들이 무색하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의 이런 심정을 모르고 마음씨 고우신 보살님께서 절집 마당을 서성거리는 우리를 보시더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불공 끝나고 나면 같이 점심공양 하고 가세요~" 하셨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 날은 마침 우란분절(백중) 49재 기도를 드리는 첫 날이어서 작은 절 곳곳에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대웅전 앞마당의 바로 오른편에 붙은 불전 안에 여러개의 식탁을 붙여놓고 점심 공양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나물밥을 맛있게 먹고 49재를 시작하느라 장만했을 떡과 과일도 아주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연수는 아주 신이 나서 배불리 밥을 먹고는 불전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천정에 달아놓은 꽃등들을 쳐다보았다.
"빨간 꽃도 있고 노란 꽃도 있고 주황색 꽃도 있고..."   


 






밥을 다 먹고 불전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사람들.
연수 또래의 아이들도 두어명 있어서 함께 절집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수수하고 아름다운 작은 화단들과 석탑이 있는 작은 마당을 가진 이 아름다운 절은 1500년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나중에 남편의 트위터로 알려주신 분께 들으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꼽은 남한 5대 사찰에 개심사가 들어있다 한다.
개심사가 5대 사찰에 드는 절인줄은 몰랐으나 예전에 좋아하는 지인으로부터 '개심사에 꼭 한번 가보라'고 들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서 오늘 우리 세식구도 이 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고마웠다.
개심사는 언제고 다시 가보고 싶은 절이다.  
절을 둘러싸고 쌍벚꽃이 핀다는 봄에는 안그래도 산속에 들어앉은 새둥지같은 이 작은 절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어부바'하고 엄마 등을 찾는 연수를 업을 때 나는 가끔 내가 지고가야할 인생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전생에 내 부모로 나를 키워주었던 이가 이생에는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말도 생각한다.
전생에서는 연수가 나를 이렇게 업어던 것일까..
개심사 앞 연못에는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를 건너보려고 연수는 엄마 등에서 미끄러지듯 뛰어내렸다.









개심사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마음이 아주 개운하지는 않았다.
너무 많이 받았는데 나는 아무 값도 치르지 않고 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떡도 받고 밥도 얻어먹고 마음의 감동까지 깊이 받았는데 기와 불사 한장, 공양미 한 자루 내지 않고 내려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다시 오면 오늘 지고가는 마음의 빚을 꼭 갚아드려야지... 
상왕산 개심사. 예서체로 쓴 듯한 현판의 부드러운 글씨도 참 아름다웠다.
세심동 입구에서 유모차는 우리를 놓아둔 모양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용현자연휴양림으로 올라가는 길에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다.
차에서 잠시 내려 보고가기로 했다.
가파른 계단을 10여분쯤 올라가야하는데 연수는 역시나 씩씩하게도 계단을 혼자 올라간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의 모습이 뭉클했다.
'백제의 미소'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애삼존불의 옷자락과 동글동글한 발가락의 부드러운 곡선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뭉클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뎌온 조각인가.
백제시절부터 이곳에 서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맞고 그들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을까.
'큰바위얼굴'이란 미국소설처럼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고 사는 아름다운 것들을 닮아간다.
산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산을 닮고,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은 바다를 닮고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바라보면서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은 삼존불의 미소를 닮아갔을 것이다.
삼존불을 보러 오기를 잘했다. 
삼존불을 보았으니 서산에 온 보람이 있다.
서산에 개심사가 있고 삼존불이 있다고 생각하면 서울에서도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서산이 다시 그리울 것 같았다.

내가 감동받았다고 했더니 남편은 삼존불이 생각보다 작다며 별로 아름다운줄 모르겠다고 했다.
여기저기에 워낙 크게 광고되어 있다보니 조각이 아주 클거라고 생각했다가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실망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삼존불이 작은 것이 더 좋았다.
자연이 만든 것은 큰 것도 대체로 조화롭고 아름답지만 인간이 만든 것은 큰 것들은 왠지 위압적이고 아름답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람 몸보다 조금 큰 크기로 돌에 새겨진 세 부처님 앞에서 사람들은 친구를 찾아온 것 같고, 스승을 찾아온 것같이 거기 기대서 위로받고 감동받지 않았을까.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큰 부처님 석상들에서는 느낄 수없는 인간미가 삼존불에는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절집 마당에서 절을 찾은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얘기하고 뛰어놀면서 잠깐이라도 부처님 품안에서 함께 쉬는 가족들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작은 절, 작은 불상에 더 깊은 넉넉함과 따뜻함이 깃드는 것 같았다.




  





연수와 아빠.
함께 여행하는 것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다.
엄마와 연수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 24시간, 730일을 늘상 붙어 지내왔지만 아빠도 그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연수는 자기가 좋아하고 그리워하지만 자주 같이 놀 수 없는 아빠를 조금 미워하는 듯도 하다.
흔히 말하는 애증의 관계가 만 2살을 꽉 채운 이 아동에게도 벌써 생겨난걸까.
아빠한테 뽀뽀도 안 하겠다고 하고, 아빠가 뭔가 해주려하면 '엄마가 해줘~!'하면서 도망치는 연수가 이번 여행을 통해 아빠와 더 많이 친해지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 아마 남편도 그러고 싶을 것이다.
두 사람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어쩜 그렇게 유적지에 나들이온 아빠와 아들 같은지... 
우리 어린 시절에 아빠랑 같이 찍은 사진들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아빠들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다는 것도 똑같다.


 






나는 또 어쩜 이렇게 아이 데리고 유적지 나들이온 엄마 같은지.
옛날 엄마가 있던 자리에 내가 들어가 앉은 것처럼 아직도 문득문득 이 자리가 낯설다.

마애삼존불을 보고 돌아와 연수는 또 한번 용현계곡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고, 
해질무렵 아빠가 찾아낸 맛집 '영성각'으로 가는 차안에서 이른 저녁잠이 들고 말았다.
우리는 잠든 연수를 유모차에 태워 옆에 눕혀놓고 짬뽕과 간짜장을 나누어 먹었다. 
연수가 깨있었으면 짜장면 진짜 잘 먹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며.
해미읍성에서 젤로 유명하다는 짜장면과 짬뽕은 아주 맛있었다.
여행 둘째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