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무거워지는 말이다.'
두 달뒤면 형이 되는 연수의 심정을, 저 유명한 <청춘예찬>의 첫 문장을 빌려와서 말해보자면 이렇지 않을까...^^:;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 민태원 수필, <청춘예찬>중에서.)
형제가, 혹은 자매가 싫기보다는 좋고, 밉기보다는 이해가 되고, 괴롭히고 싶기보다는 애틋해서 뭐한가지라도 더 챙겨주고싶어지는 나이는 보통 언제쯤일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네살 터울인 언니는 대학시절에 함께 자취할 때부터고, 두살 터울인 오빠는 그보다도 훨씬 뒤 그러니까 오빠도 나도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게 된 뒤부터인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3남매가 그렇게 대놓고 으르렁거리고 싸우며 자란 사이는 아니고
어린시절에 함께 장난치고 재미있게 논 기억도 분명히 있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언니오빠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감정이 질투나 경쟁심에서 동질감이나 연민, 고마움 같은 것으로 바뀐 것은 철이 들어도 꽤 많이 들고난 뒤의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궁금하다.
나는 그저 내 경험에 비추어 다른 집 아이들도 다 비슷하겠지.. 생각했는데 대학시절에 그렇지 않은 경우들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남자후배는 한살 터울인 여동생과 서로를 '아주 친한 친구'라고 얘기할 수 있을만큼 좋아하고, 편안하게 잘 어울려 지냈다. 워낙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속에서 권위적인 오빠와 그에 맞선 반항적인 여동생의 관계를 한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내가 보기에 어떤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서로의 관심과 취미도 비슷해서 서로 조언해주고 함께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다니고 까페나 술집에서 서로의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려 노는 그 남매는 정말 부럽고 신기한 존재였다.
그들의 어머니께서 이혼후 혼자 자기만의 일을 하며 지내신다는 것을 알고는 막연히 어떤 자유롭고 평등한 가치를 지향하는 어머니나 그 가족의 문화가 이들 남매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첫아이를 키우면서 둘째도 낳을까말까 고민할때 사실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것은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 나이쯤 되고나서보니 어린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지닌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이 고맙고 좋다는 생각이지만 사실 자라는 동안에는 단순히 '좋다'고 말하기에는 참 복잡다단한 마음을 들게했던 존재들이 바로 형제자매들이었다.
태어나 최초로 경험하는 인간관계 중 부모와의 관계 다음으로 맞딱뜨리는 형제자매관계를 통해 인생의 단맛 쓴맛을 모두 맛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성숙해왔던 것이 우리들 아닌가... 생각하면 가족이 많으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대가족도, 마을공동체도 없는 도시의 작은 핵가족 안에서 아이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한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충분한 관심은 적어지는게 아닐까, 먹이고 입히는 기본적인 일들만이 아니라 친밀한 어른과의 충분한 정서적 교감, 안정 같은 것들이 어렵진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 블로그 이웃 살림님과 희범이가 놀러왔을때 찍은 사진.
제 또래나 저보다 큰 형아들이 오면 연수는 제법 함께 '놀이'도 하고 같이 잘 노는 편이다. 그런데 왜 동생들이 오면 그렇게 울려보고싶어하는걸까.. 제 힘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지, 그저 어른들 말에 반대로 하고싶어 그러는 것인지, 뭔가 불안하고 막연하게 화가 나서그러는건지...ㅠ.ㅠ
이런 고민에 아직 딱부러지는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둘째 아이가 생겼고, 곧 태어난다.
연수와 동생 이야기를 하게된 뒤로 이야기거리를 더 풍부하게 해줄만한 그림책을 몇권 구해 같이 읽고 있다.
처음에는 동생 얘기가 나오면 그저 좀 어리둥절한 것 같았던 연수는 시간이 흐르고, 주위 어른들의 이야기를 자꾸 듣다보니 뭔가 이 변화가 마뜩치않다고 여기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엄마가 동생을 가진뒤로는 만나는 어른들마다 "연수야, 동생 태어나면 이쁘겠지?", "남동생일까, 여동생일까?"하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하신뒤에 곧이어 "연수야. 형이 되면 동생한테 잘 해줘야지?", "동생을 가져서 엄마가 힘드니 앞으로는 연수가 엄마 힘들게하면 안되겠지?" 하는 권고성 당부를 많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하더니 나중에는 "싫어, 잘 안해줄꺼야!", "연수는 동생 잘 못 돌봐.", "동생이 태어나면 괴롭혀줄꺼야." 등등 어른들이 깜짝 놀랄만한 대답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 연수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평화가 태어난 후에 일어날 일들이 걱정도 되고, 또 지금 이런 말들을 하는 연수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네가 느끼는 부담감이나 어른들의 관심이 어린 동생에게 쏠리는 것이 싫은 마음같은건 당연해.. 엄마가 너랑 지금처럼 많이 놀지못할까봐 걱정되는 것도 당연하고, 그래서 동생이 태어나는게 싫을 수도 있어. 네 마음 엄마도 충분히 이해해.. 동생을 싫어할 수도 있어. 사람은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있고, 그런 감정은 나쁜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동생을 괴롭히거나 아프게 때리는건 안돼. 너보다 큰 누가 너를 때리려고할 때도 엄마가 못하게 할꺼야. 화가 날때는 차라리 소리를 지르거나, 베게를 때리거나 하는 다른 방법으로 네가 속상한걸 풀도록 하자. 답답한게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해서 우리 같이 뭔가 방법을 찾아보자. 그리고 동생이 태어난다고해서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단다...
어린 동생한테는 엄마가 젖도 주고, 많이 안아주는 보살핌이 필요해. 아기들은 그렇게 보살펴줘야만 잘 자랄 수 있단다. 그건 엄마가 꼭 해줘야할 일이야. 아직 어린 네가 동생을 보살피진 않아도 돼. 그러니 동생한테 네가 보살펴주거나 잘해줘야만한다는 부담은 안 느껴도 돼.. 엄마가 아기보살피는걸 도와줄 순 있겠지. 엄마가 다른 집안일할때 연수가 잘 도와주는 것처럼.. 연수가 그렇게해주면 엄마는 무척 기쁘고 고마울거야...'
연수에게 앞으로 어떤 얘기들을 해야할지 생각해본다. 막상 얼굴 마주하고는 차분하게 잘 안나오는 얘기들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더 노력해야지.. 연수는 이제 뭔가 답답한 게 있으면 먼저 물어오고, 말로 제 기분을 설명하거나 요구할 때가 많아서 엄마도 점점더 차분하게 연수랑 얘기할 준비를 많이 해야한다. (저 말은 에다 르샨의 책 <아이가 나를 미치게할때>에 나오는 '바람직한 대화'를 따라해본 것이다.^^) 그런데 연수랑 그전처럼 많은 시간을 놀아줄 수 없거나 밖에 자주 나가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는 얘기들도 너무 많다. 천천히 더 생각해가야지...
아래 책들은 연수랑 엄마 배속에 있는 동생 이야기를 할때 도움이 많이 된다. 재미있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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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속에 있는 태아가 아주 귀엽게 그려져있는 책.
날로 둥그래지는 엄마 배속에 있다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는 동생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어서 그런가.. 연수가 아주 좋아한다.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어떻게 먹는지, 어떻게 놀고 자라는지 알려줘서 좋다. 어린 형아누나들이 동생을 두고 엄마아빠와 나누는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귀여운 그림과 예쁜 색감 때문인지 동생관련 책들중 연수가 제일 자주 찾는 그림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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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지켜보며 함께 마음을 모으는 가운데, '우리집'에서 태어나는 아기.
우리에게는 많이 생소한 '가정분만(home-birth)' 이야기를 6살 셋째아이의 시각으로 담담하고, 따뜻하게 들려준다.
위로 오빠가 둘이 있는 마나카(6살)는 엄마에게 동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가을부터 겨울, 봄을 지내며 엄마 배속의 아기 사진을 집컴퓨터로 함께 보기도하고, 심장소리도 들어보면서 동생을 기다린다.
자기가 태어났던 바로 그 욕조에서 엄마가 동생을 낳는 것을 지켜본 마나카는 "우리 집에 찾아온 아기, 자기 힘으로 태어난 아기, 정말정말 대견해요."하고 얘기하며 동생을 반긴다.
연수는 마나카누나가 엄마 배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하고, 뽀뽀하는 사진을 보며 저도 엄마 배에 귀를 기울여보고 뽀뽀를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모습, 좋은 모습을 보면 따라하고 싶어지는 것은 사람의 좋은 본성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자주 보여주고싶은 책.
엄마는 엄마대로 생명의 탄생이 뭉클해서, 고통과 두려움을 견뎌내고 새 생명을 온전히 가족의 품에서,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이 존경스러워서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보게되는 책이다.
알라딘에서 책을 찾으면 첫 아이는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는 가정분만으로 낳은 블로그 '평온한 강가에서'의 주인장 평온님의 감동적인 리뷰도 볼 수 있다.
가정분만에 대한 입장이나 관심을 떠나서, 새 가족을 맞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밝고 따뜻하게 해줄만한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아이를 가진 모든 엄마아빠들께 권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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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유명한 거장인 존 버닝햄, 헬렌 옥슨버리 부부가 함께 만든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조명을 받았던 책.
연수보다 한두살쯤 많을 것같은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이 책은 "엄마, 동생한테 오지말라고 하면 안돼요? 우리에게 아기가 꼭 필요한건 아니잖아요."하는 대사만으로도 어린 연수의 마음에 뭔가 시원함을 선사해주었을 것같은 책이다.
'동생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작은 질문 하나로 겨울, 봄, 여름, 가을을 지내며 엄마와 큰아이가 함께 가는 여러 공간에서 '동생이 이 곳에서 일을 한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펼치고, 그때마다 골탕먹는 동생을 보며 고소해하기도 하고, 말썽꾸러기 동생을 그려보기도 하고, 고단한 동생을 안쓰러워하기도 하는 등.. 동생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을 가상경험해가는 아이가 신기하고 예쁘다. 엄마가 그 모든 얘기들을 귀기울여 듣고, 같이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막상 동생이 태어났을때 "우리 모두 그 애를 많이많이 사랑해줄 꺼예요. 그죠?"하고 말해주는 큰아이..
연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나는 너무 기대가 큰 엄마겠지...? ^^;;;
큰아이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배부른 엄마의 모습이 참 예뻐서.. 아, 나도 연수와 더 열심히, 더 많이 움직이고 함께 다녀야겠구나.. 생각하게 됐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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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골랐던 <터널>은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상상력이 빛나면서도 최근에 보여주는 '너무 초현실적인' 상상까지는 아닌.. 전래동화 수준의 무난한(?) 이야기다.
서로 너무도 다르고, 그래서 절대 같이 놀지 않는 남매가 어느날 '터널'안에서의 극적인 사건을 통해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믿음을 깨닫게 된다. ^^ 너무 교과서같지만... 그래도 '역시 남매(형제)가 있으니 좋지, 응응?' 하고 대놓고 말하고싶은 것을 참고 은근슬쩍 자꾸 읽어주게 되는 책이다. 그림은 앤서니 브라운답게 역시 재밌다.
연수와 평화는 형제.
이 형제가 함께 여행을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우리 부부도 여행을 많이 했으면.. 싶고, 아이들도 함께 온가족이 여행을 해도 좋겠고 아이들이 좀 큰뒤에는 저희들끼리만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기대고, 의논하고, 같이 감동도 하고 어려움도 겪으면서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든든함과 살가움을 여행을 통해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처음 평화가 태어나면 어려움이 많겠지...
엄마도, 연수도, 아빠도 그리고 어린 평화도 모두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변화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할테니까....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어려운 시간이 한동안 지나가야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연수가 너무 많이 마음 아프지 않기를, 그래도 우리가 함께 웃는 순간들이 때때로 자주 있어서 서로 마음 따뜻하게 보듬고 지낼 수 있기를... 빌고 또 빈다.
오늘도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네의 어린 아들(15개월쯤 된 동생이었다)을 보고 연수는 제 장난감도 빌려주지 않고, 또 동생을 때리고 밀치려고 해서 어른들이 자주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연수의 그런 행동을 보며 또 깊은 걱정이 밀려왔지만.... 잘 타이르는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좀더 엄하게, 강하게 얘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걱정했던 연수의 여러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면 대개 사라지긴 했지만, 어린 동생들에게 보이는 이 적대감같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까? 성장의 한 시절은 그렇게 가지가지 진통을 겪으면서 천천히 극복되고 흘러가는 것일까...
초보엄마의 한숨과 고민은 깊어만 가지만.... 잘 될거라고, 잘 커줄거라고 다시 또 믿으려한다. 그리고 더힘껏 안아주고, 내 삶으로 내가 가르치고싶은 것들을 보여줘야지...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