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그림책'이란 모임을 시작했어요.


같은 아파트에 살고있는 엄마들 일곱명 정도가 모여서

한 달에 두 번, 단지 안에 새로 생긴 '작은도서관'에서 조용한 오전에 둘러앉아 

차 한잔 같이 마시면서 다른 엄마가 한장 한장 넘기며 읽어주는 그림책을 듣고 이야기나누는 모임입니다.

돌아가면서 자기가 참 좋아하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나누고싶은 그림책을 한, 두 권씩 골라와 읽어주기로 했어요.

 

며칠전에 첫모임이 있었습니다.

엄마와 어디든지 동행하는 우리집 꼬마들은 '작은도서관에 엄마 모임하러 가자'했더니 신나서 엄마보다 먼저 뛰어들어갑니다.

가끔 엄마 무릎에 올라와 젖도 먹고, 엄마 손을 잡아끌며 저희랑 놀자고 조르기도 했지만

다행히 차려진 과자도 먹고 저희들끼리 익숙한 도서관 안을 오고가며 놀기도 하는 동안 

엄마는 그럭저럭 두 권의 그림책을 모두 잘 듣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어요.


거의 매일 아파트 마당과 놀이터를 오가며 얼굴 보고 얘기 나누는 이웃엄마들과

그림책의 따뜻한 감동과 소중한 삶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너무 고맙고 좋습니다.




할머니가 남긴 선물 - 10점
마거릿 와일드 지음, 론 브룩스 그림, 최순희 옮김/시공주니어




아랫집 아기엄마가 '제목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던 이 그림책을 듣는 동안

저도 눈물이 핑 돌다가 끝내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어요.


죽음은 그 앞에 놓여지는 삶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절실한 가르침을

얼마나 담백하게 가르쳐주는지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누리는 하늘, 햇살, 바람, 산책, 따뜻한 포옹 같은 일상의 작은 풍경들이

실은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잔치'라는 것을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가 함께 보내는 마지막 하루를 통해 마음 깊이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고 하지요.

어린 아이들이 품안에 안겨들고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그 안에 얼굴을 파묻는 시절은 금새 지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해 보내기는 참 어려운 이 시절이지만

돌아보면 꿈결같을 이 시절을, 이 풍경을

고운 것인줄 알고 예쁜 것인줄 알고 소중한 것인줄 알고 

마음껏 누리며 지내야겠습니다.

그게 참 어렵기도 하지만, 그래야겠어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혼자 남겨질 것이고, 또 남겨두고 떠나야할 테니까요.

줄 수 있는 선물은 오늘, 함께 있는 이 시간에 최대한 주고, 또 받아서 마음안에 오래오래 간직해두어야겠습니다. 










너무 가물어 농사짓는 분들이 올 여름 많이 힘드시다고 하네요.

비가 좀 왔으면 좋으련만.. 

여름 장마같은 그림속의 빗줄기가 시원해보입니다.


비를 피할 곳이 없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비도 고통이 됩니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서명운동을 전국을 돌며 받고 있는 

세월호 사망자, 실종자 가족대책위 분들도 비가 오면 

죽은 아이들 생각에 더 마음이 아프시겠지요..

무더운 날 길에 서서 서명을 받으시는 것도 힘드시겠지만 비가 와서 그마저 받을 수 없는 날이면 몸도, 마음도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으실 것입니다.


어느 비오는 아침, 영이는 등교길에 비를 맞으며 담벼락에 기대앉은 거지할아버지를 봅니다.

빗물이 가득 고인 깡통이 할아버지 옆에서 찰랑거립니다.


'망할 영감탱이, 왜 하필 남의 가게 앞에 와서 널부러졌노' 

문방구 아주머니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우산 끝으로 툭 건드려봅니다.

영이는.. 쉬는 시간에 달려나가 할아버지에게 자기의 초록빛 비닐우산을 씌워드리고 뛰어들어옵니다.


살면서 맞닦드리는 많은 일들에 대해

나는 언제나 이들 중 한 입장에 서게 되고,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그럴 것입니다.


비가 그친 오후에 영이는 하교를 하며 담벼락을 살핍니다.

영이의 비닐 우산이 곱게 접혀진채 담벼락에 기대 세워져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져가셔도 되는건데'

영이는 종알거리면서 우산을 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림책이 깊이 묻습니다.



*



이 두권의 그림책을 소개해준 분은 연수와 같은 나이의 막내를 둔 세아이 엄마십니다.

<할머니가 남긴 선물>을 처음 본 것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때라 이 책만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셨었다고..

 그 무렵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할아버지가 나오는 그림책만 보면 모두 내 얘기 같아서 슬펐다고요.


같은 그림책도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삶의 고민과 아픔을 안고 지낼 적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으로, 깨달음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를 들으며

아이들과 함께 여러번 반복해서 읽게 되는 그림책, 특히 좋은 그림책은 어른에게도 참 좋은 울림을 주는구나.

마음을 정화해주는 것이 꼭 '시'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이의 비닐우산>은 유화로 그린 그림이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의 감동을 담담하고 힘있게 담아내는 것 같아요.

멀리 큰 미술관에 그림 전시를 보러 가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도서관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오래도록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신 인상좋은 우리 언니! 정말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