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2013. 5. 15. 23:11

 

 

강릉 날씨가 엄청 춥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당으로, 외가집 논밭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신나게 뛰어다닌다.

연호의 '하삐! 하삐~!' 소리가 꼭 병아리 삐약거리는 소리같다.

엄마닭을 종종종 따라다니는 노란 아기병아리처럼 연호는 할아버지할머니를 따라 외갓집 안팍을 부지런히 누비고 다닌다.

이렇게 다니다가 서울에 돌아가 마당을 잃으면 우리 아이들은 섭섭해서 어떻게 지낼까..

나도 연제 재워놓고 두 아이 데리고 잠시 한가하게 마당가에서 노닥거리던 시간을 잃어 얼마나 서운할까.

연제 울음소리 들리면 금방 뛰어들어갈 수 있는 마당. 그 마당에 연수랑 연호만 내놓아도 크게 걱정이 없고, 내가 잠시 같이 나와있어도 집에 있는 아기 걱정이 없고..

 

까불까불 장난이 너무 심해진 연수를 오늘 크게 혼내느라 잠시 마당에 내보내놓고 저녁먹을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추운날, 어린 손주가 현관 계단에 오도카니 앉아있는게 안쓰러웠던 외할머니가 데리고 들어오셨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을만큼 개구지고 말 안듣는 연수때문에 며칠동안 마음이 무거웠는데

문득 깨달았다.

강릉에 와서는 연수가 화를 낸 적이 없다는걸.

항상 너무 즐거웠다. 즐거워서 까불거리고 정신없이 웃고 장난치다가 사고 연발이어서 엄마한테 혼나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걱정을 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참 좋아하고 있었다.

연수는 외가집을 정말 좋아한다. 이번에도 얼마후에 강릉에 갈거라고 하자 당장 가자, 빨리 가자 졸랐던 연수였다.

서울에서 연수는 곧잘 화를 냈었다.

엄마아빠가 뭔가를 안된다고 했을 때, 제 뜻에 안 맞을 때, 뭔가 속이 상하고 말이 잘 안나온다 싶을 때.. 소리도 크게 지르고 화도 냈었다.

강릉에서 지내는 2주동안 그 모습을 못 봤다는게 문득 떠올랐다.

꽤 오랫동안, 하루에 한번씩은, 어떤 날은 그보다 더 자주 벌컥 화를 내던 아이였는데...

그랬구나... 참 행복했구나, 얘가..

 

꼭 외가에 와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동안 막내 동생이 새로 태어나고, 처음으로 할머니와 오래 지내보고, 유치원에 새로 다니고 하면서 많이 긴장되고 속상했던 것이 그렇게 화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마침 유치원이 방학을 하고 좋아하는 외가에 와서 지내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기뻤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외가 어른들께는 함부로 화를 낼 수 없는 어떤 기운같은게 있었나.. 엄마인 나의 태도가 뭔가 달랐나...

엄마인 내가 연수 장난치고 까부는 것에 대해 야단치고 주의주는 것은 서울에서나 강릉에서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연수 기분이 내내 좋은 것은 확실히 다르다.

외가에서 할머니할아버지를 따라 마당과 논밭으로, 시내로 자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아이에게 많이 활기를 주는 것일까.

짜쯩내지 않고 화내지 않는 연수 모습을 좀더 귀하게 봐주고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돌아가서도 그렇게 지낼 수 있길..

마음 푸근하고, 자유롭게.. 언제든 걱정없이 뛰어나갈 수 있는 마당과 정겨운 어른들의 보살핌은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엄마인 내가 대신 열어주고 품어주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길..

 

우리가 와있는 동안 어른들은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우리 올라가고나면 엄마는 한 사흘 앓지않을까...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세 아이 데리고 친정내려온 나를 위해

내 대신 아이들을 봐주시고, 내게 맛있는 것 먹여 기운 복돋워주시려고 너무너무 애쓰셨다.

어떻게 잊을까.. 이제 나도 아이낳는 일은 마지막일테니 갓난아기 데리고 친정에 와서 지내는 일은 이번이 끝일 것이다.

두고두고 오래오래 이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