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한살림.농업2020. 8. 21. 15:29



우리 아파트 안에 작은 텃밭이 있다.
매해 이른 봄에 분양을 하는데 동별로 1~2 가구 정도가 추첨을 통해 선정된다.
경쟁률이 아주 높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많은 가정에서 신청을 하고, 해마다 알차게 농사를 지으신다.
관리사무소와 경로당, 작은도서관, 탁구장 등이 함께 있는 ‘커뮤니티 센터’ 옆에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는 아파트 텃밭은 스무개 남짓되는 작은 구좌들로 나누어져있고 각 구좌마다 ‘토끼네 텃밭’처럼 각 텃밭의 이름이 적힌 예쁜 팻말이 하나씩 꽂혀있다.

상추, 토마토, 고추, 깨, 가지, 오이, 감자, 고구마 등 다양한 작물들이 봄과 여름동안 쑥쑥 자랐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오며가며 눈으로 구경하는 즐거움이 컸고, 동네 이웃들이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어느날은 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에 옹기종기 모여 얘기하고 물주는 풍경을 보는 것도 정겨웠다.

전부터 우리 옆 라인에 사는 이웃 언니가 “우리 텃밭에서 상추 좀 따다 먹어~” 하시더니, 얼마전에는 아침에 자전거타고 지나가는 나를 불러 오이를 두 개 따주었다.




상추도 따가라는걸 상추는 사놓은게 있어서 괜찮다고 하고, 언니가 텃밭에 풀뽑는 것을 옆에 서서 좀 구경했다. 토마토 밑으로 바질을 키우니까 바질 향 덕분에 토마토에 벌레가 덜 생긴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이 아파트로 이사온 첫 해에, 그 때는 내가 시이모님과 강일동에서 텃밭을 하던 마지막 해였던 것 같은데 올망졸망한 무를 한가득 푸대에 수확했었다.
그 때 둘째랑 같은 유치원에 다니고있었던 언니네에게 무를 몇개 나눠드렸다. 아침에 아이들이 유치원 버스탈때 푸대째 들고나가서 같이 타던 서너명 되는 아이들 엄마들과 다같이 몇개씩 나눴다.

그 해 이후로 나는 텃밭농사를 접었는데 그 때 “아! 나도 텃밭 농사 짓고싶은데!”했던 언니는 그 다음 해부터 하남시에서 분양하는 도시농장 텃밭을 신청해 여러해 지어오셨다고 한다. 올해는 아파트 텃밭이 당첨되어 가까이서 일하니까 좋다고 말하며 웃는 언니네 밭을 보니 깔끔하고 튼실한 것이 도시농부의 내공이 착실히 쌓이신 것 같아 부러웠다.

사실 그전에 강일동에서 텃밭을 할 때 농사는 이모님이 다 지으시고 나는 아이들데리고 구경삼아 따라다닌 얼치기 농사꾼이었던 터라 텃밭농사를 잘 모른다.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고.. 상상마루 작은도서관 친구들과 자연놀이동아리를 만들어 공동체 텃밭 농사를 지을때도 농사일은 영미언니가 다 맡아하시고 나랑 다른 엄마들은 그저 조금씩 일손이나 거들면서 지냈던 터라 이사온 후로 나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은 생각도 안 했다.

근데 요즘에는 다시 텃밭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나도 아파트 텃밭을 신청해봐야지.
아이들도 아파트 텃밭을 볼때마다 “엄마, 우리도 이거 하자”고 졸랐는데 내가 엄두가 안나서 신청을 못했었다.
이제 세 녀석도 제법 컸으니 텃밭에 물 주고 풀 뽑고 하는 일도 좀 거들겠지?
아파트 텃밭이 안되면 미사리 쪽에 있다는 하남시 텃밭이라도 신청해보자.





여름 한 복판에 있을때 강릉에서 엄마아빠가 옥수수를 한 박스 보내주셨다. 사촌동생 올케네 친정에서 농사지으신 옥수수라고. ^^ 멀리 우리집까지 친정집 밭에서 자란 감자랑 대파까지 함께 넣어져서 고맙게 잘 도착했다.





그래서 우리집에 옥수수 공장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옥수수 1개당 100원씩 일당(?)을 받기로 하고 옥수수 껍질을 열심히 깠다ㅜㅜ




옥수수를 한 솥 삶아 몇개는 식혀서 냉동하고, 몇개는 이웃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우리도 실컷 많이 먹었다.
입맛없는 여름에 옥수수 같은 간식을 먹으면 배도, 마음도 따뜻하고 든든해진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자기 손으로 농사지을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하고 소중한 일이다.
먹지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농부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분들이다.
마트에서 쉽게 농작물을 사고, 또 그렇게 많이 산 것들을 다 못먹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면서 살다보면
농작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것을 키우는 수고가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지 잘 모르게 된다.

농작물을 직접 키워보고, 다양한 작물을 골고루 먹어보면서 아이들이 채소와 친해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지금은 부모님들이 보내주시는 먹거리들, 한살림에서 오는 채소들을 아이들과 함께 다듬고 손질해 버리는 것 없이 잘 거두어 먹는 것이 우선 목표.






코로나와 기후위기 관련된 글들을 읽다보면 식량위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기후 위기가 불러온 기상 이변들로, 올여름에 우리 나라도 이미 많은 농가가 심한 비피해를 입은 것처럼 먹거리 생산에도 큰 어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나라처럼 식량 자급률이 23%(쌀을 제외하면 23%, 그나마 자급을 하고있는 주식인 쌀을 포함해도 46.7%로 50프로가 채 되지 않는다) 밖에 안되고, 식량에 대한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코로나같은 국제적 위기 속에 무역거래가 위축되고 기후위기로 식량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식재료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도시에 텃밭이 많아지고, 조금씩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농업을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농사를 짓고, 농촌에서 잘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꿈꾸며...
우선은 세 끼 집에서 밥먹는 이 날들을 무사히, 밥 잘 지어먹으며 버텨내자.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