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2013. 9. 2. 00:45






8월의 마지막 한 주를 아이들과 강릉 친정에 가서 보내고 왔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시작하기 전부터 겁을 엄청 냈던 여름이었다.
잘 지낼 수 있을까.. 젖먹이 신생아와 기운찬 여섯살, 세살 세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너무 겁을 냈더랬다.

그래서 한학기 신나게 유치원 잘 다니고 여름방학을 맞은 연수를 숨돌릴 틈도 주지않고 아파트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며 많이 미안해하고 내내 마음 졸였던 여름이었다. 
큰 형님이 잠시 집을 비운 한낮, 어린 아이 둘과 내가 조용히 점심 챙겨먹고 두어시간 깊은 낮잠을 자며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름을 그래도 비교적 수월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 아주 현실적인 대책이기는 했다.
다만 연수가 너무 쉴 시간없이 새로운 공간에 또 적응하고, 너무 많은 자극을 받고, 엄마 곁에서 좀 푸근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미안하고 걱정스러웠다. 

다섯살까지 집에서만 지내며 연수 나름대로 많은 에너지를 안으로 충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섯살되고 동생이 둘이 되면서부터는 너무 집밖에서 오래, 엄마에게서 저 혼자만 뚝 떨어져 지내게 하고 있다. 
연수는 다행히 새 어린이집에도 씩씩하게 잘 다녔고 새로운 친구와 배움들에 호기심도 많고 적극적이지만, 나는 쉬지 못하는 연수가 많이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세 녀석이 한꺼번에 엄마를 찾는 시간이 되면 힘들어서 연수에게 제일 많이 인상쓰고 밀쳐내며 살았다.  
여름이 깊어갈 수록 연수도, 나도 지쳐갔다. 
몸이 편하면 그만큼 마음이 불편하다. 
힘들더라도 함께 지낼껄.. 엄마 곁에서, 동생들과 함께 푹 쉬고 마음껏 놀고 유치원으로 돌아가게 할껄... 
꼼수부린 것이 후회스럽고 속상해서 여름 보내기가 참 힘들었다. 
잘 웃고 잘 놀았지만 여름감기도 앓고 어린 몸으로 더운 날들을 살아내느라 연호와 연제도 힘들었으리라. 

연수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고민, 집 이사 고민, 아이들을 키우는 내 육아의 문제들... 
이번 여름에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몰려왔던 여러가지 일들은 결국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놓고 돌아보고 반성하고 두려워하고 망설이며 고민하게 했다.
결정할 시일이 정해져있는 일들이었으므로 모두 어찌어찌 결론은 났다. 
어쨌든 결론은 났으므로 마음 한켠은 시원했지만 내 삶을 두고, 내 생각과 태도, 자세같은 것들과 이후의 삶까지 생각해봐야할 것들은 더 많이 생겨난 시간이었다.
 
뜨거운 날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막바지 늦더위도 힘이 좀 빠진다 싶을때쯤 
그 때서야 강릉에 갈 수 있었다. 
다정한 외가어른들과 시원한 바다가 있는 강릉은 
힘든 여름 내내 우리에게 구원처럼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부린 꼼수였던 어린이집과 이런저런 일들의 일정상 8월의 맨 끝에, 여름의 제일 끝자락에야 강릉에 내려갔다.

연호가 딱 연제만 하던 2년 전 겨울 어느맘때 
그때는 두 아이 키우는 일이 어려워서 쩔쩔매던 때인데
그 때 어느날 드디어 강릉으로 출발하게 되어 두 아이 카시트 앉히고 트렁크에 짐을 잔뜩 싣고 우리집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서걱거리는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며 '휴..'하고 비로소 길게 한숨이 쉬어지던 때가 있었다.
드디어 출발했구나, 오래 기다렸던 휴식의 시간이, 지상에서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이제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었다. 
핸드크림 바를 정신도 생기고..
너무 거친 손을 보면 엄마아빠가 마음 아파하실까봐
외갓집에 간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카시트에 앉혀놓고 드디어 내 두 손이 다 자유로워졌을 때 
그 때서야 기저귀가방 주머니에 늘 넣어가지고만 다니고 좀처럼 발라볼 짬이 없었던 핸드크림을 많이 짜서 천천히, 구석구석 바르던 순간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세 아이를 데리고, 
지친 몸과 마음을 좁은 차안이지만 편안하게 풀어놓고 강릉으로 향했다.
이 부족한 엄마 곁에서도 그래도 웃으며 잘 놀아주고
아픈 것도 어린 몸으로 견디고 이겨내준 세 아이를 데리고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남편이 운전해주는 차에 타고 
고향집 가는 길은 기뻤다.
내가 안고 사는 고민은 고민이고,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할머니, 언니.. 그리운 이들에게로 향하는 그 순간만큼은 근심걱정 다 잊고 행복해질 수 있었다.



















강릉에서 보낸 일주일 동안 아이들은 정말 잘 뛰어놀았고 나도 참 잘 쉬었다.

외가집 마당에 펼쳐놓은 물놀이장을 몇번씩 들락거린 더운 날도 있었고, 

아빠와 함께 경포바다에 가서 올여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해수욕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다니고, 할머니와 함께 밭에 배추모종과 무씨도 심었다.

경포 호수가를 신나게 뛰어보고, 소나무숲속 까페에도 여러번 다녀왔다.

일주일 사이에 아이들이 모두 물씬 큰 것같다.


우리는 오늘 서울로 돌아왔다.

고단했던지 아이들 모두 일찍 잠들었고, 연호는 자다깨서 좀 울기도 했다.

강릉 사진들을 블로그에 정리했다. 이번주에는 그 얘기를 하나씩 써야지.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아버지 곁에서 차를 마시고, 고향집 마당과 논길을 오고가는 동안

조금씩 힘이 충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여러날 만에 처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상처만 남은 것 같은 여름이지만 그 여름 사이에도 우리는 자랐으리라.

상처가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이 무엇인지 차분히 짚어보는 가을을 살아야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