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11. 9. 7. 00:06



오늘은 아침 일찍 연수와 함께 마을 뒷산에 다녀왔다.
연호가 이제 제법 목을 가눈다. 덕분에 아기띠를 해서 안고 산에 갈 엄두를 낼 수 있었다.
연호 낳기전에는 거의 매일 연수와 뒷산에 올라갔었다.
근 세 달만에, 연호 낳고는 처음으로 연수와 산에 가니 기분이 참 좋았다.
연수도 신이 나서 발걸음도 가볍게 앞장서 뛰었다.

산에는 치열했던 여름의 흔적이 역력했다.
발길뜸한 체육시설 마당에는 풀이 무성했고, 운동장옆 소나무도 그새 훌쩍 큰 것 같았다.
울창해진 숲속에서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쏟아졌다.

그래도 계절은 계절인지 밤나무에는 어린 밤송이들이 올망졸망 달려있었고
참나무 아래에는 모자에서 채 빠져나오지도않은 어린 도토리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연수는 오고가는 길에 그 도토리들을 열심히 주워서 내 작은 가방에 가득 넣었다.
집에 와서는 온 거실에 도토리를 펼쳐놓더니 혼자서 한참 집중해 놀았다.
개미집도 여러개 보았는데 큰 개미들이 나무뿌리 아래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부지런히 드나드는 광경은 어른인 내게도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우리는 개미집 앞에 오래 서있다가 밤나무 아래에 가서 밤송이가 어디 달렸나 찾으며 즐거워했다.

연수가 좋아하는 성당안 놀이터와 성당과 성당밖 놀이터에도 들려 한참 놀았다.
지난 세 달동안의 공백이 천천히 메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형과 엄마가 두 시간을 꼬박 즐겁게 노는 동안 연호는 아기띠안에서 순하게 단잠을 잤다.
산에서는 시원한 산기운에 잠을 더 잘 자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랫만에 연수와 손을 잡고 걸었다.
연호 태어나기 전에도 워낙 앞장서 뛰어가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배부른 엄마랑 다정히 손잡고 가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동생이 태어난 후론 엄마손에서 동생이 떨어질 날이 없어서 더구나 손잡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퍽이나 오랫만에 엄마와 흡족히 놀았고, 또 돌아오는 길에는 배고프고 힘들기도 해서인지 엄마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서 왔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작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좋았다. 
곧 내 손에서 빠져나갈 어린 아들의 손, 부지런히 뛰고 구르고 노느라 도통 엄마 손속에 가만히 잡혀있지않을 손...


돌아와서는 포도랑 우유부터 차려 출출한 연수도 먹이고 나도 먹고 연호 젖도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어제에 이어 고구마를 쪘다. 햇고구마가 막 나오기 시작했는데 연수는 과일이든, 야채든 이렇게 새로 나올때 제일 좋아하고 잘 먹는다. 비싸서 망설이지만 과자나 음료수를 거의 사먹지 않는 우리집이니 햇과일이나 햇곡식은 눈 딱감고 사서 좋아할때 얼른 많이 먹인다.

간식을 든든히 먹고 연수와 연호를 모두 목욕을 시켜줬다.
날이 선선해진뒤로 아이들 목욕을 매일 시키진 않는다.
모처럼 깨끗해진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
계란찜해서 점심밥먹고 낮잠까지 잤으면 딱 좋았겠지만... 오늘은 연수가 만화영화본다고 낮잠은 안 잤다.
대신 나랑 연호는 누워서 젖먹으면서 형아 영화볼 동안 잠시 잘 쉬었다.

오후에는 아랫집 찬이네랑 놀이터도 갔다가 두 집을 왔다갔다하며 잘 놀았다.
저녁에 낮잠을 못자 눈꺼풀이 막 감기던 연수는 퇴근한 아빠와 함께 밥을 먹자마자 방에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든든히 먹어 동그랗게 부른 배를 하고 잠든 아이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연호낳고 한동안 연수에게 손이 안 갈때 
제대로 챙겨먹이지 못해 홀쭉한 배를 하고 잠든 연수를 보면 정말 미안했었다.
요즘은 저 혼자 밥도 떠먹고, 또 시간안에 약속한 양만큼 밥을 먹게 하려고 노력중인데 그것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무엇보다 내가 연수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어줄 수 있게 되어서
엄마가 저를 위해 정성껏 만든 제 입맛에 맞는 음식들을 좋아하면서 잘 먹는다. 그런 아이를 보니 마음이 참 좋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풍경"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란 노래 가사가 오늘 많이 떠올랐다.
손을 잡고 마을 뒷산을 산책하고, 고구마를 쪄먹고, 놀이터에 다녀오고, 매끼니 따뜻한 밥을 챙겨먹는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을 내 손으로 다시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비로소 내 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엄마의 자리를 든든히 지키는 건 정말 중요한 일 같다.
다른 거창한 교육이나 뒷바라지를 못해주더라도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 따스한 밥상을 차려주고 함께 소박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서 엄마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꼭 해야하고, 하고싶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야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내일 아침밥상을 위해 늦은밤 국거리를 준비해놓고, 기저귀를 삶아놓고, 거실에 쌓인 하루만큼의 먼지를 닦아내는 일.
 
엄마가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엄마의 자리로 조금씩 돌아가면서
그동안 내가 걱정했던 연수의 문제행동(?)들도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
엄마말도 더 잘 듣고, 엄마가 싫어할만한 일은 안하려고 노력하고, 행여 실수를 해서 엄마에게 야단을 듣더라도 얼굴 찌푸리거나 화내는 것이 많이 줄었다.
엄마가 살림과 육아에서 얼마나 여유로운 자세를 가질 수 있느냐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아이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걸 이번에 깊이 느꼈다.
내가 단단하고 여유로와야 아이도 단단하고 여유롭게 클 수 있을 것 같다.

어제부터 목이 좀 붓고 따끔거렸었는데 오늘밤에는 더 심해져서 침 삼키기가 힘들었다.
얼마전에 연수 연호가 같이 감기를 앓고 나았는데 나도 그때부터 감기기운이 약하게 있던 것이
어제오늘은 좀 심해지는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죽염으로 가글을 하고 목에 수건을 감았다. 따뜻한 물도 많이 마시고...
그래도 몸이 으실으실한게 조심을 해야할 것 같아서 원래 내일 우리집으로 놀러오려고했던 블로그이웃들과의 약속을 아쉽지만 취소했다.
참 보고싶고 그리운 사람들인데 물리는 마음이 쓰렸지만.. 지금은 내가 내 자리에서 잘 버텨야만하기에 내일은 좀 조심하면서 최대한 몸을 구슬려봐야할 것 같다.
 
밤이 늦었다.
얼른 자야 또 내일 일찍부터 우리 귀염둥이들과 하루를 잘 시작하지...
하루가 무사히 저문 것이 고맙고, 손톱만큼 더 자란 아이들이 고맙다.
그리고 하루에 한 발짝씩, 다시 씩씩한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고맙다.
아니, 어쩌면 돌아가는게 아니라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예전엔 아이가 하나였고, 이제는 둘이니까!
나는 돌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걸지도..
우야든동('어쨌든'이란 말이예요^) 힘내자, 욱.





 



++ 엄마가 부족하나마 살림을 꾸리고 형아도 더 돌볼 수 있게 된건 생각해보면 모두 연호가 잘 자라준 덕분이다. 
연호가 목을 제법 가누게되면서부터 아직 어려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급하면 포대기해서 업고 요리도 하고, 연수도 씻긴다. 
다행히 업으면 잘 자는 덕분에 비록 서서 먹어야하지만 업은채로 엄마가 밥도 제때 먹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손이 훨씬 많아졌다.
둘째를 업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아이 둘 키우는 일이 한결 나아진다더니(나보다 먼저 두아이 엄마가 된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질적으로 달라진다') 정말 그렇다. ^^
고맙다, 연호야.. 어느새 이만큼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