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동네.세상2013. 8. 26. 00:44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집은 서울시에서 임대하는 장기전세아파트다.

이 집에 들어온지 이제 꼭 2년반이 되었다.

둘째 연호를 임신하고 있을때 신혼부부특별청약으로 신청해서 당첨이 되었고, 완공되고 바로 이사와 얼마후에 연호를 낳았으니 이 집은 연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처음 입주할 때는 아직 공사중이었던 냇가가 이제는 많이 다듬어졌다.

진짜 하천은 바로 옆 자전거도로 밑에 파묻힌 시멘트관속으로 흐르고, 이 냇물은 조경을 위해 흘려보내는 수도물과 아파트 단지안에서 나오는 빗물들이 모여 흐르는 것이라 깨끗하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든 애매한 가짜냇물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 냇가를 참 좋아한다.

봄가을로는 냇물에 돌멩이를 던지며 놀고, 겨울에는 얼음 구경하고 눈썰매타며 놀 수 있어 참 좋다.

그리고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발도 담그고 심지어 몸도 담근다. ^^;;

 

시골에서도 이제는 냇가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이 드물텐데, 발만 담가도 금새 흙탕물이 되고마는 먼지 많고, 뭔가 찜찜한 냇물에 어린 아이들이 첨벙거리도록 놔두는 엄마를

지나가는 어른들이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처음에는 나도 애들을 말리는 시늉을 좀 했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나한테, 우리한테 중요한게 뭘까.. 하고.

냇물이 더럽다면 집에 가서 깨끗하게 씻으면 된다. 길어봐야 30분쯤, 어쩌다 하루 이 물에서 첨벙거렸다고 아이들이 잘못되지는 않을거다.

물론 수질검사를 해서 아주 깨끗하다고 판정이라도 받으면 한결 마음이 놓이겠지만 

사람사는 집 가까이에 보기 좋으라고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냇물인데 뭐 그렇게까지 절대 몸에 묻히면 안되는 물이기야하랴..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중요한건

이 작은 냇물이 내게 정말 큰 위안을 준다는 것이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있기만 해도 나는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 어디 산속의 계곡물 곁에 와있는듯 청량해지곤 했다.

냇가 양 옆으로 우거진 풀밭에는 여름 풀벌레소리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그 물 속에서 웃는 모습은 또 얼마나 보기만해도 시원한가.

그래서 나는 괜히 주눅든 사람처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되도록 남들은 안 쳐다보고, 예쁜 아이들 모습만 쳐다보기로 했다.

그래서 자세를 낮추고 아이들과 함께 물위를 헤엄치는 소금쟁이들과, 수면 가까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 그리고 연수가 찾아주는 고동들을 보는 일에 집중했다.

그런 순간에 연제는 대개 유모차에서 자거나 내 등에 업혀서 잠들어있곤 했다.

저녁이 다되어가는 아직도 더운 오후에 아이들은 한번씩 냇가에서 옷을 적시고 놀다가 '이제 춥겠다, 집에 가자'하면 맨발로 긴 나무 계단을 걸어올라와 벤치와 작은 산책로를 지나 106동 우리집 현관으로 뛰어들어가곤 했다.

 


 

 

 

 

이 냇물 때문에 나는 우리 아파트가 좋다.

아니, 이 냇물과 우리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푸른 소나무 한그루 때문에 나는 우리집을 견디며 산다고 해야 맞다.

살수록 나는 아파트가 싫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아파트에 살고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더 아파트에 살 계획을 세우고 있는건 순전히 좋은 대안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아보고, 남편도 나도 어려운 상황들을 좀 감내할 결심을 해야 아파트에서 벗어날 수 있을텐데 지금까지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우선은 이 집에서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다행히 냇물이 있으니 여기서 자주 놀면서 아이들은 가공된 자연이라해도 흐르는 물의 느낌을 조금은 알고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냇가옆 길을 걸으면서 양쪽으로 높이 솟은 아파트 풍경이 참 삭막하다.. 생각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풍경도 예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프랑스 삽화가인 장 자끄 상페가 그린 건물들 그림이 생각나면서 그런 느낌으로 이 냇가와 양쪽으로 서있는 아파트들을 그려보면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연제가 조금 더 크면.. 아이들과 같이 이 길에 앉아서 연필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두 아이 데리고, 그리고 지금은 세 아이 데리고 거의 매일 이 길을 오고가면서 고단하고 힘들던 순간 마다 바라보면 늘 위로가 되었던 하늘, 먼 산..

그리고 우리의 작은 집이 끼여있었던 빽빽한 아파트 건물과 함께 놀던 냇가를 그려봐야지.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림 그리는걸 참 좋아한다.

많이 큰 아이들과 스케치북을 들고 이 길에 나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졌다.

 

 


 

 

 

이번 여름에 집고민을 좀 많이 할 일이 있어서 집중적으로 하다보니 아파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더운 여름밤, 사람들이 잔뜩 쏟아져나와있는 아파트 마당 한켠에 앉아있다가 문득

나만의 마당이 없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달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공간, 집 안 말고 잠시 바깥바람을 쐬며 조용히 좀 서성이고 싶을 때 편안하게 현관문열고 나갈 수 있는 마당, 내 의자, 내 뜨락...

도시의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조용한 성찰의 공간이 없는 것이다.

아파트에는 큰 마당과 벤치들이 많지만 그 어느 곳도 오롯한 나만의 공간은 아니며 늘 타인들과 같이 점유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불밝힌 아파트 집집에서 내려다보는, 혹은 주위를 오고가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공간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조용한 자기만의 시간, 공간이 필요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조용히 나에게 집중해볼 수 있는 시공간이.

도시는 여간해서는 그런 기회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토록 작은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하철이나 버스같은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끼고싶을 때, 잠시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때

그럴때 스마트폰은 몸은 아직 거기 있지만, 정신만큼은 훌쩍 그 장소와 사람들 속을 벗어나 스마트폰안의 내 세상으로 탈출하게 해주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그토록 현대인에게 절실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용히 내 집 마당에 앉아 천천히 하루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들의 삶은 훨씬 차분해지고 생의 깊은 의미를 찾으며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작은 마당이라도 뜨락이 있고 수돗가가 있고 내 하늘이 있는 마당 생각이 참 간절해지던 밤이었다.

 

아파트는 어쩔 수 없이 획일적인 생활문화를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가 하는 행동,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모두 유심히 보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어른들도 비슷하다. 공동주택은 비슷한 삶의 사이클, 비슷한 삶의 양식 속에서 저도 모르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거기서 조금 벗어나려고하면 나도 모르게 이질적인 존재가 될 것 같은 불안감 같은 것이 밀려온다.

너무 밀집해있고 너무 거리들이 가까우니까 영향력도 크다.

다 똑같이 사는게 좋은 것도 아니며, 나와 다른 삶을 포용할 때 뭔가 배우고 새롭게 자랄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질적인 존재가 될 것 같은 외로움과 불안감을 곧잘 느끼는 나로서는

아파트의 가깝고도 무책임한 관계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아파트의 또 한가지 안타까움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요즘 신축아파트들은 조경을 잘 한다. 키 큰 소나무들도 많이 옮겨다 심어놓고, 정자며 인공연못 같은 공간도 많다.

하지만 나는 아파트의 키 큰 소나무들을 볼 때마다 왠지 안쓰럽고 미안하다.

그토록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도 바로 옆에 서있는 높다란 아파트 건물에 비해보면 너무 작다.

소나무를 압도하는 아파트 건물들 때문에 소나무는 몹시 왜소하고 위축되어 보인다.

사람이 그 밑에 서서 올려다보면 나무는 참으로 아름답고 경외스러운 생명체다.

모든 생명과 자연이 그렇지..

그래서 주위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이 아쉽다.

자연에 무심한 구조물 속에 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무지하게, 무감해지게 되는 우리들이 안타깝다.    

 


 

 

 

아파트와 집 생각을 자꾸 하다보니 몇가지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우선, 아파트 1층집들에게는 마당을 주면 어떨까.

저마다의 조그만 마당을. 신축아파트 1층 어린이집들이 그렇게 하듯이 베란다 난간 한끝을 여닫이로 해서 나무계단 같은 것을 놓고 마당으로 바로 내려설 수 있게 하면 아파트 1층집들은 조그만 자기 마당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단점(?)이 있다하여 분양가도 제일로 싼 1층인데

자기 마당을 준다하면 안그래도 아이들이 많아 층간소음 걱정으로 어디 아파트1층없나.. 찾게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꼭 들어가고 싶은 아파트가 될텐데...ㅎㅎ

작은 마당이지만 내가 꽃도 가꾸고 오고가는 이웃들에게 좋은 구경(?)도 시켜주고, 여름에는 물놀이 풀장도 하나 내놓고 오고가는 아파트 이웃아이들도 와서 같이 놀고가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

그래도 프라이버시가 걱정되면 나무 울타리 같은걸 할 수도 있고..

 

두번째는 아파트 정원에 과실수를 많이 심는 것이다.

철따라 여러 과일이 달리는 과실수를 심어서 아파트 아이들에게 어떤 나무에 어떤 열매가 어느 철에 열리는지 알게 해주는 거다.

우리 아파트에는 매실과 모과가 달려서 연수와 나는 봄, 여름으로 그 열매들을 열심히 찾으며 지낸다.

앵두도 있고, 살구도 있고, 사과 복숭아 감 대추 배 밤나무들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 나무들에는 팻말이 잘 달려있기도 한데, 아예 처음부터 자연학습장처럼 여기저기 다양한 나무들을 심어놓고, 아파트 나무 지도같은걸 만들어서

아파트안에 있는 어린이집들에 팜플렛이나 책으로 나눠주면 아이들이랑 선생님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나무 구경하고 열매구경하고 꽃보고 풀보고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재밌고 알찬 자연공부, 자연놀이가 되지 않을까.

나는 우리 아이들과 그러고 시간을 잘 보내는데 자연의 놀이감들과 함께 놀다보면 정말 시간도 잘 가고 아이들도 재미있어한다.

아파트가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는 그들의 고향집이 되어가고 있는 도시에서

아파트 공간을 그렇게 자연과 조금 더 가까운, 우리 곁의 자연을 알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어른들의 지혜와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참 많이 오가고 전기도 꽤 많이 들것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한강과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고 그래서 건물들 안에 '필로티'라고 부르는 빈 공간이 꽤 있다.

바람이 지나갈 수있게, 건물이 위험해지지 않게 비워놓는 뻥 뚤린 공간인데

그만큼 바람이 센 곳이니까 작은 풍력발전기들을 좀 놓을 수는 없을까?

태양열을 이용해서 온수를 공급하거나, 세대마다 뭔가 대안적인 에너지생성 시설이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우선 공동공간인 가로등 불빛이나 엘리베이터 전력이라도 바람이나 태양에너지 같은 것으로 공급할 순 없을까?

아파트는 워낙 큰 건축물이므로 그런 대안적인 시설도 하려고하면 개인집에 설치하는 것보다 더 규모있게 할 수 있진 않을까?

기술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조금씩 현실에서 더 구현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른들도, 아이들도 더 대체에너지나 기후변화 같은 우리 공동체의 미래와 관련된 여러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배우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내 아이들도 모두 아파트가 나고 자란 고향집인 아이들이 되었다.

나중에 자라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게 되든 유년의 첫 집과 그 마을의 느낌은 오래도록 아이들 마음에 남을 것이다.

답답하고 어렵지만.. 아이들과 힘껏 행복해지려고, 마음 기댈 곳 찾으려고 애쓰면서 살아야겠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우리집을 포근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곳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물리적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이들이 조금더 자연의 품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노력하며 지내고싶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