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2012. 4. 10. 23:04


미각이 뛰어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좋은 일이 많다.

뭐가 먹고싶다고 하면 '그건 어디가 잘한데'하면서 꼼꼼히 찾아낸 맛집으로 데려가주기도 하고 

직접 요리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는 고마운 경우도 왕왕 있으며

무엇보다 먹거리와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정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내 마음도 좋다.


우리 남편이 그런 사람이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ㅎㅎ)

절대음감 대신 절대미각을 타고났다. 

내 입에는 다 맛있는 고기들을 어떤 것은 맛있고, 어떤 것은 별로인지 세심하게 집어내고

국물요리며 각종 양념 맛들도 나름 날카롭게 평가한다. 


아기 시절부터 맛이 없었던지 분유는 거부하고 모유만 먹으려해서 

'그 좋은' 분유를 먹이지 못해 애가 쪼그맣고 약했다며 안타까워하시는 시어무님의 말씀으로 짐작컨데

이 사람의 대장금 입맛은 갓난아기 시절부터 발휘되었나보다.  








남편은 아주 가끔 요리를 하는데 주로 자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스파게티, 라면 같은 것을 

엄청 공들여서 재료 장만하고 밑손질해서 요리법 여러번 검색한 뒤에 (라면도!ㅋ)

무슨 '식객'에 나오는 요리사처럼 팬에 불꽃을 휙휙 일으켜가면서 만든다.

가끔 성공하고 가끔 실패하는데 실패하면 '버렸네, 버렸어~~'하면서 엄청 안타까워한다. 

(진짜 버리는건 당근 아니고, 우리는 모두 맛있게 먹는데 혼자서 높은 '완성도'에 이르지 못했다며 속상해하는 것이다. ㅋ~)



몇 년전에 이 분이 처음으로 토마토스파게티를 만들었던 날이 있었다. 

어린 똑순이를 보러 블로그이웃이었던 미페이님과 명이님이 연신내 우리집에 놀러왔던 날이다.

자기가 손님상을 준비하겠다고 의욕에 차서 달려들었던 남편은 바작바작 국물이 다 졸아버린 스파게티 소스에 허연 면을 비벼 내놓으며 몹시 민망해했다. 

그때 미페이님이 '서울와서 며칠동안 먹은 음식중에 유일하게 먹을만한 음식'이라며 맛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남편은 아마 너무도 상심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 그 토마토스파게티 소스는 남편이 오징어랑 바지락 삶은 육수에 토마토페이스트를 넣고 이런저런 야채들도 넣고 집에 있던 월계수잎까지 넣어서 무척 야심차게 만든 것이었다. 

비록 다 졸아버리기는 하였지만 미페이님은 아마도 그 소스에 깃든 재료의 맛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초라한 모양새에 상관없이 '맛있다'고 말해준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광주 미페이님네에 놀러갔을 때 한밤중에 수다떨다 출출해진 아낙들을 위해 미페이님이 뚝딱뚝딱 만들어주었던 잔치국수의 맛도 잊을 수 없다. 

멸치 새우 다시마 버섯 등으로 맛을 낸 진한 육수에 잘 삶긴 소면.. 


아.. 참 다시 돌아봐도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차려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서 참 고맙다.  



미페이님과 명이님이 운영하는 '실버스푼'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여러 음식들을 미리 맛보고 평을 해주기로 했는데 

게을러서 인제사 한꺼번에 정리해본다.

그냥 전화로 얘기해도 되지만 맛있게 먹은 사진도 보여주고 싶고, 내 블로그에 소개도 하고싶어서 뒤늦게 포스팅한다.








실버스푼에서 판매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고맙게 잘 먹은 '불태산 전통 손두부'.

전남 장성의 한 마을에서 직접 키운 콩으로 할머님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매일매일 만드신다는 손두부다.

이 두부를 사러 전라도 여기저기서 많이들 오신다는데 한번 먹어본 후로는 이 두부만 사먹게 되었다는 명이님이 광주에서 장성까지 달려가서 산 뒤에 서울 우리집까지 보내주셨다.


나는 무슨 광주에 친정동생이라도 둔 언니마냥  

깊은밤 서울 우리집에 도착한 두부를 열어보고 한참을 뭉클해서 말없이 쳐다보고 앉아있었다.

마침 그때 나는 처음으로 차 사고를 낸 뒤에 문득 사는 일이 모두 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기운이 쭉 빠져있었다. 

명이님이 보내준 두부를 보며 나는 고개 숙이고 둘러앉아 또르륵 또르륵 콩을 고르고 가마솥 앞에 서서 펄펄 끓는 두부물을 휘젖는 할머님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또 차를 타고 멀리 가서 두부를 사와 택배 박스에 넣고 우리집으로 보내주는 명이님 모습을 그려보며 정말로 큰 위로를 받았다.

힘든 일 없는 사람이 있겠냐고, 떄로 사는 일이 무섭기도 하고 그런거라고.. 그래도 다들 또 일어나 콩밭에도 가고 두부도 만들고 하면서 살아간다고.. 할머니들이 내게 조근조근 얘기해주시는 것 같았다.   


늦게 퇴근한 남편을 기다렸다가 뚝딱뚝딱 두부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약간 투박한 듯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진하게 나는 손두부. 

청상 증조할머니가 가마솥에 끓여서 만들어주시곤 하는 그 두부 맛을 아는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고마운 두부 한모를 천천히, 배부르게 먹었다. 


전라도에서 지원하는 '마을기업 1호'가 됐다는 이 불태산 전통두부를 혹시 실버스푼에서 판매할 수 있는걸까?

그럼 정말 좋을텐데..









돈까스는 실버스푼의 대표상품이라 먹어보지 않아도 그 훌륭함을 짐작할 수 있다. 

예상대로 '안심까스' 맛있었다.

카레맛이 살짝 나고, 고기가 얇아서 아이들이 먹기에 좋았다. 식빵으로 만든 튀김옷의 바삭함도 참 좋다.


(참! 지금 실버스푼 돈까스 판매기간이다. 딱 3일간~! ㅎㅎ 드시고픈 분들은 어서어서 가보시라~~!  www.sspoon.kr)


그러나 이 멋진 안심까스를 제치고 박스를 열자마자 우리의 눈을 화~~악 사로잡은 것은 바로바로 '생새우까스'!!! ^^









새우 좋아하는 엄마와 연수는 아빠 퇴근을 기다리지 못하고 일단 뜯었다.

'연수야... 반만 먹자. 알았지?' 

'응!!'









엄청 통통하다...ㅠ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우리끼리만 먹다니... 친정엄마아부지도 생각나고, 명절마다 새우튀김 하느라 고생하시는 시어무니도 생각나고... 

무튼 이거 판매되면 내가 꼭 여러 팩사서 시댁이랑 친정에 들고갈꺼다.









처음에는 기름양이 넘 적어서 굽는 수준이었는데 살짝 좀 덜 익은 감이 있어서

두번째는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튀겼다. 보글보글...! 꼴깍. 보기만 해도 침넘어간다...^^;









음~~ 맛있겠다~

실버스푼 이모삼촌 덕분에 늘 맛있는 음식 잘 먹고 있는 김연수. 감사합니다, 꾸벅!









어디 먹어볼까, 냠냠~~~~









아. 맛있어.. 벌써 꼬리네.. 아쉬워라.ㅠㅠ

너무 맛있어서 연수 혼자 몇 개나 먹었어요. 

새우 언제 파는 거예요? 얼른 알려주삼....! ^^









주인장이 발품팔아 찾아낸 질좋은 생고기로 만드는 실버스푼의 소세지와 햄들.









요녀석은 소고기로 만든 햄. 









맛있다. '진짜 햄'을 먹어본 기분. 

고기가 맛있어야 햄도 맛있다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전분이 섞인 시중 햄보다 훨씬 쫄깃하다. 퍼석하지 않은건 참 좋은데 약간 단단해서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맛이다. 


배송중에 상하는걸 막기위해 '아질산나트륨'이라는 첨가물을 안 쓸 수는 없어서 최소한으로만 썼다고.

그래서 냉장실에서는 최대한 빨리, 가급적 3일 이내에 먹어야하는 햄이다.

냉장보관 기간이 20일씩 되는 다른 햄이나 아무리 캔에 들어있다지만 유통기한이 2, 3년씩 되는 가공식품들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걸까...ㅠ 










밥 한끼 잘 먹고나면 아이들도, 나도 마음 푸근하다. 

차릴 때는 정신없었더라도 다같이 둘러앉아 숟가락에 반찬 얻어주며 한그릇씩 배부르게 먹고나면 

새삼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웃음이 난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구나... 싶고 모두에게 고마워진다.


정성어린 밥상에 대한 고마움, 맛있는 음식이 주는 감동...

아이들도 나도 마음깊이 간직하고 늘 서로에게 선물하면서 살고싶다. 

그리고 우리에게 늘 그런 것들을 전해주는 실버스푼 주인장 이모삼촌, 고마워요.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