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는데
연제가 엄마랑 형아가 자기한테 말도 없이 먼저 가버렸다고 울면서 쫒아왔다.
나있는 곳까지 다 와서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 반 짜증 반으로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난 못 가~!” 한다.
햇볕은 너무 뜨겁고 얼굴이 빨간 연제는 지쳐보였다.
애들 책가방과 장본 가방들까지 주렁주렁 들고있던 나는 난감했다.
“연제야 엄마가 짐이 너무 많은데 어쩌지? 안아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가방을 들께. 나한테 줘!”
연호가 가방을 들겠다고 나섰다.
제 책가방을 다시 메고 연제 유치원가방도 든다.
나는 연제를 업었다. 내 가방들은 무게가 제법 나가는 것들이라 내가 들려고 했다.
그런데 연호가 그것도 달란다.
“무거운데..?”
“괜찮아! 나 들 수 있어! 엄마, 나 힘세지?!”
가방 하나를 연호주니
등에 업힌 연제가 자기도 들 수 있다며 자기도 하나 달라고 해서
가방 하나는 연제가 잡고 내 목아래 달랑달랑 매달려서 왔다.
연호는 현관문 비밀번호도 앞장서서 누르고
집까지 들어와서 “아~~ 진짜 무거웠다!”하며 짐들을 내려놓았다.
나는 연호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얘기했다.
저녁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밥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러 갔더니
연제 딱지를 정리해주며 연호가 묻는다.
“엄마, 내가 아까 낮에 엄마 목숨을 구해줬지?
엄마가 연제도 업고 엄청 무거운 가방들 드느라 허리가 부러져 죽을 뻔 했는데
내가 도와줘서 살은 거잖아~?”
“어 그래... 맞아. 진짜 고마웠어.”
“그럼 내가 엄마의 생명의 은인이지?”
“그..렇지. 그럼 이제부터 ‘생명의 은인님’이라고 부를까~?^^”
“좋아~! 그럼 ‘생명의 은인 고릴라님’이라고 불러. 난 고릴라를 좋아하니까!”
“나도! 나도 ‘생명의 은인’이야! 나도 가방 하나 들었어! 나는 ‘생명의 은인 킹콩님’할래~!!!”
연제가 끼어든다.
그렇게해서 어제 저녁에 우리집에는 ‘생명의 은인 고릴라님 밥드세요~’, ‘생명의 은인 킹콩님 양치하세요~’하는 공손한 어투가 한동안 유행했다.
연제는 “엄마, 너무 기니까 난 그냥 ‘전하’라고 불러도 돼~” 했다.
밤에 잠들기전 전하만 엄마가 손발톱을 깍아주고,
생명의 은인 고릴라님과 생명나무(연수)님은 손톱깍기를 들고 낑낑거리며 제 손발톱들을 깍았다.
한때 내 손발톱을 포함해 한꺼번에 80개의 손발톱을 모두 내가 깍던 시절이 있었는데...
40개만 깍아도 되다니.. 성은이 망극하네. ^^
어서어서 전하도 독립하시옵소서.
“엄마, 내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어제를 ‘생명의 날’로 정할꺼야. 내가 엄마의 생명을 구해준 날이니까~!” 하고
연호는 크게 종이를 한장 써붙여놓고 학교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