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한살림.농업2011. 4. 30. 02:34



햇살이 환했던 지난주 토요일(4월 23일), 한살림 딸기생산지 방문을 다녀왔다. 
해마다 봄이면 한살림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딸기생산지 방문'행사가 열린다. 
딸기생산지 외에도 여러 생산지별 방문 행사가 연중 진행되고 파종과 추수 때에 맞춰 단오 행사와 가을겆이 한마당 등 큰 행사가 많지만.. 어린 아이 키우는 집에서 가장 가보고싶어하는 행사는 아마도 이 '딸기 생산지방문'이 아닐까. ㅎㅎ 

딸기킬러 연수는 제사지내러 가서도 꼭 딸기 앞에 서서 절한다. 
더 어려 절도 못할 때는 제사지내는 내내 그냥 제사상(딸기) 앞에 앉아서 어른들이 주신 딸기만 먹고 있었다. ^^;;;
그런 연수를 보고 어른들이 '얘는 필히 딸기밭에 한번 데려가야겠다'고 하셨었는데 
그 말을 잊지않고 있던 엄마, 올 봄에는 꼭 '한살림 딸기생산지 방문'을 신청해서 가보리라... 벼르고 있다가 
신청일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걸어 다행히 선착순 안에 드는데 성공했다.    
연수는 딸기밭에 가는 날이 언제인지 자주 물으며, 집에 있는 대바구니를 꼭 가져가서 저는 거기다가 딸기를 가득 따오겠다고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내가 속해있는 한살림서울 동부지부에서는 아침 8시에 전세버스 1대를 대절해서 40여명의 조합원가족들과 지부 활동가분들이 함께 방문길에 올랐다.
덕분에 토요일아침 6시부터 일어나 씻고, 밥먹으려니 피곤하기도 해서 "으이그~~ 이 녀석아, 딸기는 왜 그리 좋아해가지고~!!" 하며 공연히 연수에게 한마디 하기도 했지만 막상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세식구가 손잡고 버스를 타러 가자니 봄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레고 기분이 좋아서 마냥 웃음이 나왔다.
배가 많이 나와 조심스럽긴 하지만 아직은 평화가 배속에 있으니 내가 가보고픈 곳에 마음대로 찾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이제 곧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와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바깥나들이를 많이 하기 어려워질 연수에게 즐거운 나들이 선물을 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했다. 
날이 맑은 것도, 고단한 신랑이 즐겁게 동행해준 것도 모두 기쁜 아침이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충남 부여에 있는 '소부리 공동체'.
지부에서 나눠준 안내문을 보니 소부리공동체는 1994년 딸기를 주요작물로 하는 '청마공동체'로 출발해서 한살림 초창기부터 딸기 공급을 책임져왔던 곳이라고 했다.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2006년부터로 현재는 벼, 잡곡, 수박, 버섯, 취나물, 산딸기 등 다양한 품목을 한살림에 공급하고 있었다. 공동육묘장과 공동퇴비장, 친환경자재 공동구입과 공동방재 등을 통해 생산관리와 기술개발을 함께 하면서 친환경농업을 통한 지역농업 살리기, 한살림적 마을공동체의 모델을 만들기위해 애쓰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한살림의 생산지들은 대부분 '공동체'라는 생소한 이름을 쓰고 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하기 힘든 유기농, 친환경 농업을 서너가구가 뜻모아 함께 시작하고, 점차 마을의 더 많은 이웃들과 그 뜻과 농법을 함께 하게 되면서 꾸려지는 '공동체'. 종내는 그것이 마을 전체로 퍼져가 우리 농촌을 그저 살벌한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휘둘리는 피폐한 공간이 아닌 사람기운, 생명기운이 가득한 공동체로 살아있게 하고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산지에 도착해보니 서울 말고도 경기도 군포와 대전 등 여러 곳에서 출발한 전세버스들이 속속 도착하고 
어린 아이들은 벌써 논둑길 밭둑길로 꼬물꼬물 몰려다니고, 생산지의 어르신들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띠고 멀찌감치 서서 도시 식구들을 바라보는...  참 흐뭇하고 따뜻한 광경이 봄을 맞아 눈부시게 피어나는 자연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생산자 조합원과 소비자 조합원이 인사를 나눴다.
한 동네에서 농사지으며 함께 비맞고 눈맞고 냉해와 폭염같은 이상기후에 함께 걱정하고 긴장하는 생산지 조합원분들뿐만 아니라 멀리 도시에서 이 분들이 보내주신 먹거리 먹으며, 구제역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안전한 먹거리들을 보내주시려 애쓰는 생산지 분들께 늘 고마워하는 소비자 조합원들도 한살림이라는 한솥밥을 먹는 공동체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참 좋아했던 공동체라는 말이
파편화된 개인들의 살벌하고 끝없는 경쟁만을 강요하는 세상의 질서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왠지 따뜻한 사람의 피가 흐르는 말인 것만 같아서 막연한 대안으로 좋아해왔던 이 말이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이즈음에는 조금씩 더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딸기밭에 가기전에 우선 점심을 먹었다.
생산지의 여성농민들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점심.
참가자들은 모두 개인식기를 준비해왔다. 가뜩이나 바쁜 봄농사철에 밥을 준비해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설겆이까지 생산지에 맡길 수는 없다는 이유로 준비물(개인식기, 컵, 수저)을 꼼꼼히 공지해 준것도 좋았고, 그렇다고 많은 참가자중에 덜렁 일회용품을 들고온 사람이 없는 것도 한살림 조합원답게 여겨져서 뿌듯했다.
 
딸기 생산지답게 음료대에는 '딸기쥬스'가 보리차와 함께 큰 통에 준비되어 있었는데 와~~~!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 연수는 연거푸 몇잔을 들이키고도 '또~! 또~!'를 외쳤다. 연수는 밥 반, 딸기쥬스 반으로 달콤하게 배를 채웠다.










잡곡밥, 된장국, 배추겉절이와 취나물 무침, 양송이오징어무침, 김, 멸치볶음으로 차려진 푸짐한 밥상.
얼마나 맛있었는지 나 혼자 3인분은 먹은 것 같다. 장금이 미각을 자랑하는 연수아빠도 연신 '너무 맛있네, 너무 맛있어!'하면서 큰 그릇에 밥을 몇차례나 더 받아오더니 남은 밥풀까지 물에 말아 싹싹 긁어 먹었다.









드디어 출발~! 각자 배정받은 트럭을 타고~~~!!! ^^










두둥~~! 여기가 바로 딸기밭~!! ^^











초록색 잎사귀위로 핀 하얀 꽃들, 그 아래 올망졸망하게 드리워진 빨간 딸기! 
사진만 봐도 그 달콤한 향기가 느껴지시는지 모르겠는데..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말 달콤~~~ 했다. 오호호호~~!! ^^









집에서 들고온 대바구니에 신나게 딸기를 따담는 연수.

딸기 순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따야하는데 어른들은 딸기따는 요령을 그래도 쉽게 손에 익혔지만
연수같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도 쉽지 않아서 무턱대고 세게 잡아당기기도 했다. 
생산지 방문이 우리들에게는 참 기쁜 일이나 생산자 분들께는 귀한 딸기밭이 수난을 겪어 살짜쿵 마음아픈 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우리에게 열어주신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 이 흔치않은 기회가 더욱 귀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신나게 따고....









열심히 먹었다. ^^;;;

그 자리에서 따서 먹는 것은 얼마든지 먹고, 집에 가져가고 싶은 만큼만 바구니에 담아서 들고오면 한살림의 판매가격과 동일하게 받고 파신다는 말씀에  
그래.. 어렵게 키우신 딸기를 거저 너무 많이 먹으면 되랴.. 조금만 먹고 많이 사가자... 생각했건만
아. 한 입 먹어본 순간... 일찌기 먹어본 적이 없는 생생한 맛에 그만 주체할 수가 없었다.
따는 족족 입으로....ㅠ.ㅠ

정말 맛있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맛! 작고 못생긴 딸기일수록 달고 맛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멋모르고 크고 잘생긴 딸기만 바구니에 따담다가 나중에는 못생긴 녀석으로 골라서 그냥 계속 따먹으면서 걸어갔다. 아. 얼마나 정신없이 먹었던지~^^;;;
평화는 정말 복받은 아이다. 엄마가 이렇게 원없이 딸기를 먹었으니 평화도 배속에서 무척 행복했을 것같다.











한참 먹고, 따고 한 뒤에는 집결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딸기밭가에 앉아 햇볕을 쬐며 놀았다.
우리 팀은 연수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있는 세 가족이었는데  한 가족은 정말 열심히 계속 딸기를 따고, 우리와 또 한 가족은 그저 슬렁슬렁 밭둑길을 오가며 아이들과 놀았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생산자 분들마다 스타일이 다르셔서 어떤 분은 시간이 남자 근처의 선사유적지에 데려가시기도 하고, 
어느 분은 산등성이에 올라가 나물을 캐도록 한 분도 계셨단다. 
하지만 연수 또래의 요 아이들은 길섶의 민들레 꽃을 따고, 그저 논둑길을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지켜보는 부모들도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개구장이 김연수는 논물에 뛰어들어서 한쪽 발을 온통 적셨다. (이후에 사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
햇볕이 좋아 장화는 금새 말랐다.









젖은 발도 말리고...










연수가 만든 민들레 꽃다발.











맨발에 닿는 흙의 감촉. 어때, 연수야? ^^











아무데나 철푸덕 잘 앉는 엄마는 아이도 아무데서나 맨발을 벗겨놓는다.
더 조심하며 살아야지... 생각하다가도 햇볕 좋은 날, 흙땅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안에서 퍼지고 앉고 싶고, 아이도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은 욕망이 솔솔 피어오른다.
맨발로 걷자, 햇볕도 더 받자. 궁둥이로 올라오는 뜨뜻한 땅의 열기도 느껴보자. 
 









봄은 아련하다.
멀리 산이 푸르게 물드는 모양도 아련하고, 복숭아꽃 살구꽃 핀 나무도 아련하다.
날로 보드라워지며 푸석하게 숨을 쉬는 봄땅도 아련하다.
가끔 아이 마음에 저런 풍경이 들어앉았으면.. 하고 바라는데 지금 내가 아이에게 주고 있는 것은 도시와 아파트의 삶이니.. 참 쉽지않고, 거창하기만한 꿈이다.  
















이번호 녹색평론에 실린 나희덕 시인의 글에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갖게 되는 유토피아의 상은 열 살전에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 그래서 내가 이토록 시골의 풍경을, 자연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꿈꾸는구나... 비로소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유토피아는 논둑길과 밭둑길 사이를 하루종일 헤집고 다니며 동무들과 소꿉놀이를 하고, 또 때론 멍하니 들판의 나무들을,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던 그 때에 만들어졌구나. 언제고 그리워지는 풍경. 아무때나 들어가있고픈 공간.

연수의 유토피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하다.











산등성이에 핀 진달래를 꺽으러 갔다가 기어코 진흙탕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진달래따러 가자고 부추긴게 엄마였으니... 넘어진 아이를 어찌 탓하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옴팡 뒤집어쓴 연수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터지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제딴에는 처음 겪어본 일에 놀라 서럽게 우는 아이 옆에서 애써 웃음을 참아가며 달래느라 애먹었다. 












이 상태로 집결지로 돌아가자 버스타고 오는 길에 얼굴 익힌 동부지부 조합원들과 활동가분들, 생산지의 여러 어르신들이 모두 연수보고 웃느라고 뒤로 넘어가셨다.
"아이고~~ 니가 제일 신나게 놀았구나~!" 하는 말씀을 들으며 식당 부엌에 가서 따신 물에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모인 공동체 창고에서는 떡메를 치고, 돼지고기를 볶고 막걸리를 나누며 푸짐한 잔치가 벌어졌다.











바로 떡메로 쳐서 그 자리에서 슥슥 잘라 콩고물에 묻혀주는 따뜻한 인절미는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렸다.
연수가 혼자 두 접시는 먹은 것 같다. 받아오는 족족 오물오물 눈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워서 엄마아빠는 몇개 맛도 못봤다.
그나저나... 생산지방문 행사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입맛이 너무 고급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맛있는 떡을 언제 또 먹어보겠나... 
약도 안치고 유기농으로 키우는 딸기를 밭에서 바로 따서 먹어보았으니 다른 딸기가 눈에 차기가 참 어렵다.
아들을, 아빠를, 그리고 나 자신도 이런 진짜배기 맛속에서 살게하고 싶어 한살림을 하는 것이지만... 이 눈높은(?) 사람들을 데리고 앞으로 어찌 살아야하나... 생각하면 막막하기도 하다.

한편으론 이렇게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쪽에선 떡메를 치고, 한쪽에선 부지런히 썰어 콩고물 묻혀 내놓는 갓 만든 인절미의 맛을 잃고 살아가는 오늘 도시 사람들의 삶이란 참 안쓰러운 것이구나.. 참 쓸쓸하고 가여운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생산지의 젊은 여성농민들.
나와 같은 애기엄마들이실 이 분들과 언제 이야기나눌 날도 있었으면...











연수아빠가 한 잔 더 못마시고 온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던 막걸리.
"야~ 이거 농활가서 먹던 딱 그 맛인데!"하고 얼굴 환해지시더니.. 여보, 서울에서 먹으면 그 맛이 안 나겠지..? ^^











돌아오는 길.. 연수는 벌써 눈이 감긴다.
참 배부르고 맘따신 날이었다.
내가 갔던 박철용 생산자님댁의 안주인 아주머니는 내년에도 꼭 오라고, 갓난아이는 본인이 봐주실테니 걱정말고 딸기따라고.. 꼭 우리집으로 다시 와야혀~ 하고 신신당부하셨다.
큰따님 어릴적에 젖이 적어서 돌전부터 딸기즙이랑 미음먹여 키웠었노라고 말씀하시며 배속의 아기한테 좋은 것이니 많이 먹으라고 딸기도 내가 드린 값보다 훨씬 많이 싸서 마다하는 내손에 기어코 들려주셨다.
먹을 것 하나라도 더 싸주려하시는 어머니들을 보면 나는 친정엄마같이 느껴져서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또 '소부리 공동체'에 아는 친지, 가족 한 분 계신 것처럼 애틋하게 떠올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동부지구 황순화 활동가께 부탁드려 찍은 유일한 이 날 가족사진.
내년에는 갓난쟁이 평화를 안고 다시 또 오게 될까.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고 한살림 딸기를 먹을 때면 이 날이, 이 곳이 떠오를 것이다.
먹거리 하나에 풍경 하나, 이야기 하나, 사람 하나.. 떠올릴 수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넉넉해지는지 모른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